♣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월 11일
제목: "내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말씀: 히브리서 11:23~26
찬양인도: 쉐키나 찬양대(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정상익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히브리서 11:23~26,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여러분은 살면서 불안해 본적이 있는가?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불안한 적은 없을 것 같다. 여러분은 보통 어떤 때에 불안해하는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불안해하는가? 아니면 혹시 건강상에 문제가 있을 때, 불안해한다. 여러분은 어떤 때에 불안함을 가장 많이 느끼시는가? 저는 고3때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그 때에 어깨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혼자 수술대에 올라갔을 때 굉장히 불안해했다. 목사가 되고 나서 카드 값을 다 내고, 수중에 남은 돈이 하나도 없을 때, 빚을 지며 십일조를 냈을 때, 사실 솔직히 불안해했다. 추가 합격을 놓치고 ‘내가 가야될 대학교가 있을까?’를 불안해하는 고3 수험생이 있을 것 같다. 사업을 시작하신 분들 중에는 올해 특별히 경제가 어렵다고 하던데,
올해 사업은 어떻게 될지에 불안해하실 것이다. 또 건강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과연 올해는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해하시는 불들도 계실 것 같다. 연말연시를 맞아 직장을 옮겼거나 새로운 부서로 발령 받은 분들은 올해 업무가 어떻게 될지에 불안해하실 것이다.
 
생계를 꾸리고 계신 분들 중에는 금리가 올라서 올해 과연 어떻게 될지에 불안함으로 한해를 시작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것은 적고 불 확신성은 자꾸 커져만 가는 가운데에 사실 신앙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때때로 불안해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불안해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당연히 믿음으로 살 것 같아 보이는 내 모습 안에도 어느 순간 불안이 엄습(掩襲)해 오는 것을 경험하고는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사실 세상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고 뒤쳐져 간다는 그런 생각이 우리를 종종 괴롭히곤 한다. 때로는 연약하고 불안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이런 시대를 산다는 것이 벅차고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불안은 믿음의 부재를 의미한다. 우리는 불안할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을 더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사실 내 주위에 있는 환경에 눈을 더 돌리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더 힘을 쓰곤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앞에 두고 믿음 없이 불안해하며 매 순간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결해 보려고 할 때가 많다.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 왜 그렇게 반응하는가? 사실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하나님을 정말 믿는다고 하지만 그런 선택의 순간에 특별히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에 믿음 없이 행동하기 때문에 그렇다. 불안할 때 내게 필요한 것은 믿음을 잘 알면서도 사실 그 믿음을 선택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런 시대 가운데에 믿음을 지키며 살았던 믿음의 영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그 불안함 가운데에 끝까지 충성하며 승리했던 사람, 바로 모세의 이야기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 모세의 이야기를 히브리서 기자가 11장 23절에서 쭈욱 이어서 설명하면서 불안(不安)의 시대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모세가 살아간 시대는 모두가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애굽의 왕이었던 애굽 바로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抑壓)하기 위해서 아주 가혹(苛酷)한 노예(奴隸)정책(政策)과 함께 유아(乳兒)말살(抹殺) 정책을 펼친다. 히브리인들의 남자아이들은 죽음을 맞이할 상황에 놓여 져 있었다. 히브리 산파들이 말을 듣지 않자 남자 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는 그 바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임신했던 그 임산부는 아마 이렇게 불안해했을 것이다. ‘혹시 내 아이가 남자아이면 어떡할까?’ 이미 남자 아이를 출산(出産)한 가정은 더더욱 불안해했을 것이다. 언제 ‘이 금쪽같은 아이가 잡혀가서 나일 강에 던져질까?’ 모두가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 모세가 태어난다. 그리고 그 불안했던 시대를 40년간 살아간다.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는 어떠한가? 안락했던 그 애굽을 떠나서 미디안 광야로 가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다. 언제, 어떻게, 내 삶이 어떻게 굴러갈지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그 시대를 계속해서 살아갔다.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는 어땠을까? 여러분이 아시듯이 애굽 바로 앞에 목숨을 걸고 단판을 짓는 일을 해야 했다. 홍해가 앞에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있었던 그 상황 가운데에 행동해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40년 가까이 광야의 생활 가운데 하루하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불안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생을 통틀어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모세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영웅이라 칭찬한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라.”라고 이야기 하면서 오늘 우리가 읽었던 11장 23-26절을 통해 모세가 가졌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자세하게 이야기 해 준다. 모세가 가졌던 믿음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I. 모세가 가졌던 믿음은 세상에 맞서는 담대한 믿음입니다.
-모세는 세상을 맞서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던 영웅중에 한 사람이다. 히브리서를 보자.
 
*히브리서 11:23,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모세는 세상에 맞서는 담대한 인물이었다. 히브리 사람들은 남자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모세의 부모는 남자아이를 낳았을 뿐 아니라 백일 가까운 그 남자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져서 더 이상 그 아이를 숨기지 못했을 때,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나일강에 던지는 대신 갈대 상자에 담아 떠나보내는 믿음의 모험을 감행한다.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 발각 되었을 때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지만 믿음의 선택을 했던 그 모세의 부모, 그 부모의 믿음대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에게 건짐을 받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바로의 공주의 손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유모로서 자기 친 어머니 아래서 믿음으로 양육 받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모세의 부모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는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야기 한다. 모세의 부모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맞섰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모세의 부모만 세상에 맞선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히브리 산파들도 이 출산을 도와주는 도우미들도 세상에 맞섰던 사람들이었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출애굽기 1:17,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히브리 출산 도우미들은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세상에 맞서서, 세상의 권력을 모두 쥐고 있는 그 바로의 명령에 맞서서 아기들을 지켜내는 놀라운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모세는 믿음의 부모를 통해 그리고 출산 도우미를 통해 주위에서 믿음으로 살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특별히 세상에 맞서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살아간 사람이었다. 성경은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단어라고 해석되는 헬라어 단어에는 용모의 매력뿐만 아니라, 비범함, 위대함이라는 뜻도 담겨져 있다. 모세는 정말 아름다운, 하나님이 보시기에 평범하게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범하게 세상을 맞서며 살아갔던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주위에도 세상의 시류에 거슬러서 마치 신앙에 연어처럼 살아갔던 사람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 그리고 한국전쟁 때, 신앙을 버리라는 명령을 거스르면서 세상의 시류에 맞서서 싸웠던 신앙의 선배들이 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성경에 침 한 번 뱉으면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발 한 번 올리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그 때에 과감하게 그것을 거절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려고 세상에 맞서 싸웠던 그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날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모세는 마치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일제 강점기 때에 또 한국전쟁 때에 세상의 시류에 맞서 싸운 것처럼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갔던, 세상을 맞서며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II. 모세가 가졌던 믿음은 고난을 감당하는 과감한 믿음입니다.
-모세는 고난을 감당하는 과감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히브리서 24절에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히브리서 11:24,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믿음으로 자랐을 뿐만이 아니라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사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애굽의 0.0001%의 사람도 누리지 못하는 정말 극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이다. 그것도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감히 선택할 수조차 없었던 엄청난 특권이었다. 그런데 그런 특권을 모세가 거부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야기 한다. 성경 신학자인 유진 H메릴에 따르면 모세를 건져준 바로의 딸은 하셉수트라는 여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 하셉수트라는 사람은 이집트 신왕조, 18왕조의 다섯 번째 파라오였던 여왕이었다. 이집트 역사를 통틀어 가장 번영했던 시기라고 했던 이야기하는 신왕조, 그것도 18왕조의 시작을 알렸던 굉장히 번영했던 시기에 일궈냈던 능력있 던 파라오였다. 물론 모세가 태어난 시기를 100% 확정할 수는 없다. 여러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이 추정하는 것처럼 모세를 건졌던 그 공주가 제18호 왕조였던 다섯 번째 파라오였던 하셉수트가 맞다면 정말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양아들이었던 것과 같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 보면 이와 같이 나와 있다.
 
*사도행전 7:22,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는 그런 엄청난 양자였을 뿐만이 아니라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가 말과 행동이 능했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세가 그런 능력도, 그런 지혜도, 심지어 그런 신분(身分)조차도 다 거부(拒否)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고자 했던 그 모습을 우리는 히브리서를 통해 볼 수 있다. 권력자의 아들이었던 모세가 자신의 정체성을 그 권력자와 함께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 백성과 함께 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는데 출애굽기 2장 12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자.
 
*출애굽기 2:11,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모세는 히브리 사람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그들을 대신해서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선택을 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이런 선택을 했던 이유를 25절을 통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히브리서 11:25,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에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는 일시적인 의미하는 단어가 맞다. 그렇다면 이 세상 가운데 일시적으로 누릴 수 있는 그 낙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 즐거움, 재물, 명예,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감당한다. 실제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떠났고, 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출애굽해서 40여 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위대한 설교자로 중 한 명인 찰스 스펄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고난의 바다에 뛰어 드는 자는 진귀한 진주들을 얻는다.” 고난의 바다에 뛰어 드는 자는 진귀한 진주를 얻는다. 라고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진귀한 진주를 얻는 것보다 더 값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처럼 모세는 고난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잘 보고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선택을 했다.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죄악의 낮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을 함께 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믿음이었다.
 
III. 모세가 가졌던 믿음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이다.
-모세의 믿음을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이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한다.
 
히브리서 11:26,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집트의 보화는 감히 누가 상상 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보화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시절에 가장 크게 번영을 누렸던 그 왕국 가운데서 계속해서 모아왔던 그 금은보화를 놓고 본다면 과연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는 것이 더 큰 게 맞는가? 그런데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가 더 큰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구약시대에 살던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모를 더 큰 것으로 여겼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겠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모세가 하나님을 위해 일한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 선택한 것처럼 행동했던 그 모든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과 같다. 라고 한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하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섬긴 것이라고 말한다. 모세는 모든 평안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았고 때로는 같은 민족에게 수모를 받기까지 하면서 오직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다. 마침 히브리서를 처음 최초의 독자들도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았던 신앙인들이었다. 그들은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모세가 하나님을 위해 일 한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 선택했던 그 모든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과 같다고 말한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하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섬김 것이라고 한다. 모세는 세상이 주는 모든 평안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선택했다. 하나님을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았고, 때로는 같은 민족에게 수모를 겪기까지 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다. 마침 히브리서를 처음 읽게 된 독자들도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았던 신앙인들이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일 것 같다. 그래, 모세가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처럼, 내가 선택한 일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었어,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았던 것은 그 어떤 일보다 값진 일이었어. 라고 아마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성경에 펼쳐진 이 모세의 삶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수모를 받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인생인가를 깨닫게 된 것 같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 모세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이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수모를 받으신 적이 있는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가? 최근에 제가 제자 훈련을 위해 면담을 다니다가 한 집사님을 만났다. 믿지 않는 시댁 식구들 때문에 수십 년간 고통을 받으신 분이었다. 제가 면담을 하는데 삶의 스토리를 담다 보니까 면담 시간이 좀 길어졌다. 외간 남자가 내 며느리랑 이렇게 긴 시간을 쓴다고 하면서 화가 나셨던 시아버지께서 역정을 내며 문을 쾅 닫아버리시며 사실상 저를 그 시아버지가 쫓아내셨다. 그런 와중에도 저를 따라 현관문까지 따라 나오신 집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목사님, 우리 아버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라구요. 시부모님 때문에, 시댁 때문에, 믿는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던 그 집사님이 여전히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로서 그 고난을 감내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 가족 여러분,
모세는 이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는 것을 더 귀한 것으로 여겼던 사람이다. 세상에 맞서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을 뿐만 아니라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갔던 위대한 믿음의 영웅이었다. 모세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졌던 신실한 믿음이었는데 불안하면서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가?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을까? 바로 상주시는 이가 누구신지 그분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렇다. 이집트에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상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사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수모는 정말 큰 희생이 따른다. 그렇게 인내하는 믿음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대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세의 계산이 옳았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수모는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잠시 동안 누릴 수 있는 그 죄의 쾌락보다 그리고 견줄 수 없는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일이다. 우리는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믿음으로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불안해하는 대신에 믿음으로 담대하게 오늘 하루 살아가고 있는가? 불안한 시대에 내게 어떠한 바로 믿음이다. 사실 믿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가? 사실 그러기가 너무 쉽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세상의 것, 그것은 너무 현실적으로 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다. 

그런데 여러분, 고난을 쉽게 감당할 수 있는가? 아인 믿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모두는 고난 받기를 싫어한다. 고난보다는 그래도 복을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가 참 많다. 또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겪는 수모가 싫어서 그 수모를 피하는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웬만하며 회사에서 그리스도인인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시진 않는가? 내 앞에서 교회와 예배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그 사람 앞에서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괜한 일 만들기 싫어서 침묵(沈默)하신 적은 없는가? 사실 우리는 조용히 사려고 하는 때가 더 많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한 시대에서 쉽게 믿음을 선택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살아가라. 너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의 선택을 해라.”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주문하신다. 믿음의 용사가 되어서 세상에 맞서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膽大)하고 과감(果敢)하게 그리고 굳건하게 믿음의 용사(勇士)로 서기를 간절(懇切)히 바라고 계신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사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참 어렵다. 아마 성도님들 중에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들도 있다. “목사님, 사실 어려워요. 목사님은 그런 적이 없어서 잘 모르시죠?” 한다. 실제로 제가 사역하면서 한 집사님께 받았던 질문 중에 하나이다. “목사님, 목사님은 사회생활 안 해보셔서 잘 모르시죠? 저는 장교로 군 생활을 했었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곳이 사실 회사와 비슷한 셋팅을 가졌던 곳이었습니다. 군 안에서 건설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사실 건설회사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졌다고 스스로도 고백하는 그런 사무실이었다. 매주 최소 두 번 이상 회식을 하고 회식을 하면 반드시 폭탄(爆彈)주(酒)로 시작하는, 반드시 잔(盞)을 돌려야만 하는, 그런 사무실이었습니다. 당시 회식을 하면 기독교인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반드시 잔을 돌려야만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또 잔을 거절(拒絶)하면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온갖 모욕(侮辱)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믿는다고 고백하던 사람들이었다. 함께 했던 그 부서들 안에 교회를 다닌다고 고백했던 사람들 중에 특별히 더 잔을 씻을 수 있는 물을 친히 가져와서 친히 음료수와 함께 어떻게든 잔을 함께 돌리자고 권유했던 것이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머릿속에 믿음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정말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거의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회식에 끌려 다니면서 1차, 2차, 3차, 4차까지 하고 새벽 두세 시에 들어오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은 이 기류에 휩쓸려가서는 믿음을 지킬 수 없겠구나! 나는 반드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더 굳건히 맞서 싸워야겠구나! 하는 그런 감정을 가졌습니다. 어려움을 겪을수록 더 믿음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급류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은 여러분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급류에 휩쓸려서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게 만들려고 한다. 여러분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급류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가? 계속해서 불안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떠나가게끔 만드는 그 세상을 어떻게 맞서고 있는가?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어떤 믿음인가?
 
▷모세가 가졌던 것처럼 바로 세상에 맞서는 믿음,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이다.

영 가족 여러분,
세상을 맞서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될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아멘, 여러분, 고난을 선택하는 과감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선택하고 감당할 때, 그 고난을 견뎌내고 이겨낼 능력을 주실 줄 믿는다. 성도여러분,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을 갖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受侮)를 당할 때,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천국의 상급(賞給)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모세와 같은 그런 믿음의 용사들이 참 많다. 주위를 들러보면 이미 모세처럼 열심히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저와 제자훈련을 받았던 집사님 중에 허리가 아파서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신 집사님이 계신다. 그분은 훈련 가운데 척추(脊椎) 분리(分利)증 때문에 시술(施術)을 받게 되었다. 병상에 누워서 시술을 받고 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 집사님을 제가 기억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 같이 허리가 아픈데 왜 굳이 교회에 가서 그런 어려움을 사서 받느냐고 만류(挽留)했다. 그래도 집사님은 훈련의 자리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하는 훈련 공동체를 위해 고난을 감당하는 선택을 했다. 어떻게든 훈련 받고자 누워서 성경을 읽고 어떻게든 훈련에 나아가고자 그 허리를 붙들고 복대를 차고 하루하루 허리를 최대한 안 쓰려고 노력했던 그 집사님, 남편이 실직하고 재취업하는 그 어려운 과정 가운데서도 사역훈련의 자리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그 자리를 끝까지 참석해서 이제 순장으로 파송되어서 열심히 순 원 들을 섬기고 있다. 여전히 경추와 요추 관절에 아픔을 감당해야 하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인생을 열심히 사역하고 있다. 여러분 주위에도 세상에 맞서는 용사들이 있을 것이다. 고난을 감당하는 그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믿음의 영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도 뚜벅뚜벅 걷고 있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가는 그 영웅들이 주위에 계실 것이다. 그런 작고 큰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히브리서 뒤에 있는 이 믿음의 행전에 계속해서 기록되고 그 믿음행전을 수놓고 있는 줄 믿는다. 회복을 넘어 부흥을 소망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상주시는 이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에 내 믿음이 내 삶에 부흥으로, 그리고 내 삶에 부흥이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 부흥으로 이어질 줄 믿는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모세처럼 세상에 맞서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라.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을 가지길 소망한다. 바로 이 믿음이 부흥을 소망하는 우리에게 오늘 내게 필요한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에게 주실 그 영광을 미리 이 땅에서 맛보는 축복을 전해 주실 것이다. 아멘,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승리할 때, 영원한 상을 이 땅 가운데 먼저 누리며 하나님이 오늘 하루도 나를 지켜주시고, 함께 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줄로 믿는다.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요약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믿고 세상에 시류에 거스르기에는 우리의 믿음이 연약함을 깨달으며 우리를 공격해 오는 마귀를 이기기에는 너무 연약하니, 우리를 모세처럼 세상에 맞서는 믿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 그 믿음으로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상을 바라보면서 나그네 인생 같은 이 땅의 삶 가운데 일하실 주님을 보고 그 영광을 체험하여야 한다. 회복을 넘어 부흥을 소망하며 내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만드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여 진정한 간증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영웅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모세는 세상의 명예를 거절했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세는 오직 보이지 않는 능력의 손을 인내함으로 의지했다. 진정한 믿음은 이처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극복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