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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6. 7일)

제목: ''낙심하지 않는 질그릇''
말씀: (고린도후서 4:7~12)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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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만지시고 터치하시길 바란다. 말씀의 영감과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덧난 것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가 다 코로나사태에서 영적승리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전사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까지 말씀하고, 다음 주부터 스가랴를 공부한다. 본문은 바울사도가 ‘그리스도인들을 그릇으로 본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몸을 그릇으로 보는데 그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 몸은 상처도 많고 조급하고, 답답하고, 사실 상처의 몸, 상처의 전이기고 하고, 조급함의 전이기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피로 값으로 대신 산 성령의 전이라고 하셨다.


I. 성령의 전이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후 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8절에도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바울사도가 낙심한 일이 많았는데 고후 1:4절에도 늘 눈물이 떠나지 않았다. 1:8절에도 얼마나 힘든지 고난을 당하여 사형 선고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상황이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신구약 전체에 생태계이며, 우리 삶의 반격이다.
이천 년, 삼천년 전에 시편 42편5절에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하는가? 이것이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본문에 바울은 본래 종교적으로 학문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며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바울이 그 마음속에 큰 짐이 하나 있다. 고전 15:9에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바울의 입장에서는 늘 치명타를 안기고, 바울의 마음속에 큰 고통을 안겨준 것은 스데반을 죽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인 일들이며, 바울의 손에 피 묻은 손이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자신의 상처이고 힘든 일이었기에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전 15:10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아무리 익숙하더라도 어제와 오늘 받은 은혜가 다르다. 바울이 낙심이 있었고, 치명타가 있었어도, 그래도 깨어진 질그릇으로 성령 충만 질그릇으로 남아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우리가 낙심을 극복하려면,
1.은혜를 받으면 낙심하지 않는다.-
낙심은 불신앙의 열매이다. 내가 예수님의 사랑 받는 그 순간 낙심이 사라진다. 코로나 불루로 낙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영혼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시골에 가면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여름에 누워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처럼 낙심을 버리라.
2. 고전 8절부터 10절
♥ 4가지 우리를 깨뜨리는 것.
1)우겨쌈 - 포도를 짜는 것(취빌레이션)-상황이 어려울 때 예상치 않는 일이 있을 때 등이 우겨쌈이다.
2) 답답한 일의 도구-불확실한 일을 말한다., 코로나도 끝이 안 보이니 그렇다.
( 개척 교회에서는 확진이 없기를 바란다).


3) 박해의 도구 - 초대교회에 박해가 어마했다. 운명처럼 그랬다. 당연한 것처럼 그랬다. 요즘은 배척받고, 냉대 받고, 비판 받고, 명예가 훼손되고, 신체적은 공격을 받고, 심지어 고의적인 박해가 많다.


4)거꾸러뜨림 - 갑작스런 천재지변을 말한다. 교통사고나, 예상치 않은 천재지변 등이다. 코로나사태가 그렇다.
*이것이 우리를 기절 시킬 만큼 산산조각이 나기도 한다. 치명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신앙을 당황하게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무서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이다. 모두가 부정적이지만,,,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우리는 성령 충만으로 깨어지고 변화되어 성숙해지는 것이다.ㅡ영적으로 재해석 되면 성숙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제대로 해석을 했다. 우리가 깨닫는 것 중의 하나가 해답보다 해석이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해석은 올바른 가치관 올바른 신앙관에서 나온다. 우리는 올바른 해석을 해야 한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해석하지만, 우리는 성령님께 묻고 해석을 해야 한다. 올바로 해석을 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해석을 잘하면 성숙의 신앙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그 상황 자체도 괴롭지만, 우리가 해석에 있어 더 괴롭다. 보는 관점이 너무 달라서이다. 그리고 특별히 사회주의 신념을 가진 사람은 다르다. 우리 기독교는 공산주의 해석은 절대 안 된다. 해석을 통하여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신념 화 시키기 때문이다. 진실과 비 진실을 떠나 갑자기 이념 싸움이 되기도 한다. 사랑의 교회의 성도들은 이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성령님께 물어보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모든 일들을 이념화나 상황화를 시키지 말고 절대적인 말씀에 계시와 조명을 비추어 성령님께 물어야 한다. 그러니까 성령님을 통해 위아래 주님이 주시는 해석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겨쌈, 답답함, 박해, 거꾸러뜨림 이런 상황을 만나면,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필요한 질그릇으로 만들어 주신다. 성숙한 질그릇이다. 깨어져서 그 속에서 나는 향기가 보배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죄의 본성은 그냥두면 교만해진다. 성경에 모든 인물들은 몽땅 다 겸손했다. 그래서 질그릇이 되었다. 겸손하지 않는데 무슨 일을 하겠는가?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모두가 깨어질 때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II. 깨어지면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된다.


*깨어질 때 일어나는 일.
고후 4:5절에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4:15절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4가지 상황을 당하였을 때 어떤 해석을 해야 하느냐에 따라서 올바른 겸손을 배우고 우리는 예수님을 더 드러내게 되고 특별히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5절이나 15절은 보면서 낙심하지 않는 질그릇은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통하여 낙심하지 않게 하여 감당할 수 있도록 깨어짐의 4가지 도구를 주셨는데 그 모든 것들을 통해 결국은 내가 겸손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되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이다.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절에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깨어지면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겸손해지니 남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늘 이 4가지를 통하여 늘 죽는 것이다. 나 때문에 이웃이 살고, 가족이 살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짐을 통하여 예수의 생명의 능력이 공동체가 이웃과 가족에게 에너지를 주게 된다. 낮아져서 교회도 살고 가족도 살고, 나도 산다. 문제는 자신이 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게 문제이다. 자기는 안 깨어지고 남을 깨뜨리려 한다. 그렇게 된 사람들은 말년이 비참하다. 말년이 초라하다. 누가 그 옆에 가고 싶겠는가! 이 말씀 앞에 경험을 통해 영적 에너지를 주는 자 되라. 두 종류의 자가 있다. 깨어져야 보배가 되고 향기가 나오며 주님의 영광을 드리게 된다. 복음의 깨어진 전사가 되기를 바란다.
고후 4:16- “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바울은 은혜를 받아서 수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주는 에너지 발전소이다. 서로 영적에너지를 나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를 통해 바울은 나누었다. 디모데에게도 주고, 21세기 오늘 우리도 이웃들에게 에너지를 주시기 바란다.


♣ 요약
낙심하게 하는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 묻고, 성경적인 조명으로 해석하며 교만한 죄의 본성을 깨뜨려서, 주님이 주시는 해답을 얻어야 한다. 또한 남을 깨뜨리는 인생이 되지 말고, 자기 의가 와장창 깨어져서 남을 낫게 여기고, 자신을 겸손하게 하여서, 우리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야 하고 영적인 에너지로 준비하고 발전소가 되어서 늘 사람들에게 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질그릇이며 낙심하지 않는 질그릇이 되어야 그리스도인답다.


▶느낀 점. 낙심되는 모든 일들을 주님께 맡기고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나는 늘 낙심을 많이 할 때가 많았다. 자녀 남편, 친구, 나의 형제, 이웃 등을 보면 잘 사는데, 나는 신앙인으로서 더 당당하게 못살았음이 회개가 되었다. 이제는 주님 안에서 낙심하지 않고 담대하게 남을 사랑하고 높이고, 남을 영적으로 세우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다짐해 본다. 오늘 예배와 찬양도 좋았지만, 우리교회 공동의회 투표용지를 한 번 더 헌금 위원들이 나누어주고 걷었다. 단지 어떤 분들이 도대체 장로님이 되시며 교회의 중직 자가 되시는지에 알 수가 없는 것이 아쉽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겠지만 궁금했다.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사람이길 바래보며 기도해야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든든히 이끌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래본다. 나도 정말 낙심하지 않는 질그릇이 되어서 주님 앞에서 인정받는 자로 살아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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