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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0년 10월 7일)

제목: “용서 계산법”

말씀: 마태복음 18:23-5절

설교자: 양은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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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뉴스에 보니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값으로 따지면 = 약 천 만원 값과 동일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 자와 함께 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게 하겠는가? 부정적 감정의 에너지가 술술 빠져나간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돈으로 계산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에 누군가가 나의 이런 감정의 원인을 해결해 준다면 얼마로 지불할 용의가 있는가? 내가 반대로 상대방에게 감정을 제공한 사람이라면, 그 잘못을 지워준다면 얼마로 보상하겠는가? 이렇게 값을 계산한다면 나는 얼마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가? 이런 값을 정해보는 것은 우리의 반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몇 번이나 지불할 수 있겠는가? 베드로는 이렇게 표현한다. 주여! 형제가 내게 범죄하면,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겠는가로 여쭙고 있다. 그 때에는 예수님의 설교들 들은 바로 그때 여쭙는 것이다. 베드로가 왜 7변 용서한다고 말하는가? 용서의 정신은 3번이면 된다고 말한다. 3번 은 용서 받을 수 있지만 4번째는 용서 받을 수 없다라고 한다. 베드로가 이것에 두 배로 곱하고 한 번을 더해서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하냐고 예수님께 묻는 것이다. 형제가 너에게 죄를 범하면 조용히 가서 1:1로 이야기 하라고 하신다. 안 들으면 두 명이나 한명의 증인을 데려가서 말마다 모두다 증거를 삼고 이야기 하라고 하신다. 세 번째 이야기 하라고 하고 안 되면 교회에다 이야기 하라고 하신다. 교회에서 말을 해서 안 들으면, 세리나 이방인처럼 여기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그때에 기다린 듯이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한다. 형제가 내게 죄를 지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를 해야 하냐고 여쭙는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베드로는 용서를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계산이 맞는지 예수님께 확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대답을 하신다. 네게 이르노니 하신다. 너는 몇 번의 손가락을 접었냐며 일곱 번의 일흔 번이라도 네 형제를 용서하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비유를 하신다. 마태 세리에 대한 비유하신다. 이 비유는 천국의 계산법이다. 예수님의 계산법이다. 이 비유를 살펴보면, 용서를 7번을 70번이라도 용서하라시며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는 어떤 임금과 같다라고 하신다.

 

◆용서 계산법.

1 용서는 탕감해 주는 것이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있다. 문제는 이 종에게 갚을 돈이 없다는 것이다. 임금은 그의 몸을 팔고 자녀들을 팔아서라도 그 빚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데 그 좋이 내게 참으소서! 하며 다 갚으리이다! 한다. 한 달란트는 금 34킬로그램이다. 만달란트 금 34킬로가 만개가 있는 것이다. 만 명이 지고 가는 돈이다. 삼십사만 킬로그램의 금을 빚진 것이다. 빚은 어쩌면 이 일만 달란트는 죄의 크기이며 일만 달란트는 죄의 횟수이기도 하다. 빚 앞에는 간절한 것이다. 그래서 왕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천국은 일만 달란트를 용서받는 것이다. 임금의 탕감으로 하는 하늘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탕감 받은 자이며 용서 받은 자다.

2. 용서는 잘못된 행동처리보다 존재를 받는 것이다. - 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것처럼 똑같다. 가두었다는 것은 잡아서 던졌다는 것이다. 백 달란트는 팔백에서 천만원정도이다. 이 임금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형제가 형제에게 진 빚이다. 다르게 말하면 헤아릴 수 있는 크기이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크기라는 것이다. 마음으로 용납하지 안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용서를 가장 잘하는 것은 바로 자녀들 에게이다. 우리는 항상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용서할 것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치사하게 그랬다. 처벌과 배상 규정을 아이에게 용서해서가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그 용서는 존재를 용서하고 용납했다는 것이다. 자녀는 쉽게 용서가 된다. 다만 형제는 잘 안 된다. 섭섭하면 잘 해결이 안 된다. 별거 아닌 것으로 용납이 안 된다. 용서는 아비의 심정이다. 하나님의 심정이다. 하나님의 자비로 하는 것이다. 용서는 우리의 성품이 아니다. 늘 우리는 계산하고 따지지만, 용서는 하나님의 것이다. 만달란트 빚진 자로서 주님 앞에 설 때에 주의용서가 내 전체에 용서를 하신다. 탕자에게도 기뻐하시고 잔치를 베푸셨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누구를 향하여서 손가락을 접고 있냐를 말씀하신다.

 

3. 용서를 선포하는 자에게 예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

이방인과 세리처럼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다. 복음에 대해서 관심 밖에 있는 자처럼 불싸히 여기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8:18-20절 보면, - 매는 것, 푸는 것이 무엇인가? 이 일을 위해서 하늘 아버지께서 일하시겠다는 것이다. 푸신다는 것이다. 용서는 하나님은 자녀에게 주신 특권이다. 요한복음 20:22-23절을 보면, --- 성령 받은 공동체, 성령 받은 성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우리가 죄를 사하여야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죄를 사할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알기에 기도해야 한다. 그 사랑을 맛보지 못한 자에게 이방인 세리 같은 자에게 향하여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자본은 늘 헤아린다. 우리의 자본은 별거 아닌 것을 가지고 풀지 않지만 용서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본으로 용서로 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용서의 크기를 선포하는 것이 교회이다. 그것을 선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자이니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우리의 용서가 필요한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할 세리와 이방인 같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는 것이며 용서한다는 것이다. 그 자비로 용서로 충만한 매 주일마다 인도하실 것이다. 용서, 자비, 사는 행복을 알도록 그 용서의 크기를 못하는 자에게 전하게 하고, 용서로 천국을 경험하길 바란다.

 

♣요약---코로나 상황이지만, 모두 어둡다. 우리의 용서가 필요한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으로 기도해야 될 그 대상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어서 세리와 이방인 같은 자가 누구인가를 바라봐야 한다. 그 용서의 은혜를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다락방, 가정, 훈련에 용서를 베풀어 주신 은혜로 함께 기도하며, 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용서의 은혜가 다른 영혼들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도 전해지기를 원한다. 용서에 대한 천국 계산법,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계산법을 우리가 가진 짐을 깨끗이 덜어내는 경험이 되고, 하나님 자본으로 나도 그 능력을 받아서 다른 형제와 이웃을 용서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용서 계산법을 받아서 그렇게 용서의 마음으로 주님을 순종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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