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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7월 5일)
제목: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말씀: 이사야 40:1-8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설교자: 조철민 부목사님 ----------------- * 이사야 40:1-8,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 ▶저는 요즘 책을 볼 때 인터넷 플랫폼에 인터넷 플랫폼 도서를 많이 이용해서 책을 봅니다. 인터넷 도서 플랫폼을 이용을 하면요 아무래도 예전처럼 종이를 산책을 집에 쌓아놓지도 않게 되고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검색을 하면서 요즘 신학 책이 아닌 다른 책의 정보를 얻을 때 사용하곤 하는데요. 최근에 과연 어떤 주제의 책들이 많이 나왔을까 검색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소망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검색을 했더니 도서 분야에서 59건, 59건 정도의 책을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이렇게 살펴보니까 대부분은 다 기독교 책이더라고요. 그래서 소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의 단어가 무엇일까 검색을 해봤더니 ‘희망’이라는 단어로 한번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300 27번의 책을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조금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이 아무래도 제일 많은 단어 중에 하나가 여러분 돈이지요. 여기 계신 분들은 돈에 관심이 없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라면 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 돈을 한번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1175번이나 되는 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마음속에 그러면 코로나 이후에 위로라는 단어를 많이 우리는 얘기를 하는데 과연 얼마나 될까? 검색을 해보았더니 1157권이나 되는 도서를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제 검색했던 숫자였는데요. 사람들이 정말로 ‘위로’라고 하는 단어를 돈이라고 하는 단어만큼 많이 사용하는구나! 이것은 우리가 믿는 크리스천만의 용어가 아니라 많은 세상 사람들이 위로라는 단어를 관심 가지고 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 도서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에 이렇게 표시가 되어 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이름이 뭐냐면요. ‘오늘의 위로가 도착했습니다.’ 라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그래도 한번 살펴보려고 읽었더니 내용은 되게 간단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라는 것이 가장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You have to love yourself. 라고 하는 이 단어는요. 사실 우리나라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보이 밴드 그룹이 많이 외치는 단어입니다. 그러면서 저도 한번 묵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과연 너 자신을 사랑하라. 라는 그 메시지가 정말 성경적인가? 그리고 정말로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를 주는 메시지인가? 라고 하면서 이렇게 성경을 뒤적뒤적 거리다가 제가 그러고 나서 발견했던 본문이 오늘 이사야서 40장 본문입니다. 여러분 이사야는요 기원전 우리가 대충 알고 있기로도 여러분들 지금으로부터 8세기 그러니까 500에서 2800년 전의 사람인데 여러분 이사야서의 뜻은 여호와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1장부터 39장까지는 주된 내용이 뭐냐면 심판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이 40장부터 66장까지가 구원과 위로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아 그러면 이사야 40장을 한번 읽으면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 위로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과거 그 시대에 얘기했던 내용이 오늘날에도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변치 않으니까 한번 찾아보자. 라고 하면서 제가 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에 대해서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나누려고 하는데요. 먼저 처음 본문 1절과 2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라는 말입니다. * 이사야 40:1-2,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너희는 누구를 위로하라고요?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내 백성을 위로하라. 라는 메시지지. 위에 따라오는 얘기가 뭐였냐면 노역의 때가 끝났다. 그리고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 라는 것이 위로의 내용입니다. 노역의 때가 끝났다. 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종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 죄악이 사함받았다. 라는 것은 너희가 과거 포로로 끌려가서 죗값을 이젠 다 치렀기 때문에 이젠 더 이상 종으로 살지 않아도 되고 어떻게 살아도 된다. 자유인으로 살 수 있다. 라는 것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께서 이사에게 주셨던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위로의 메시지 이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이냐면 3절부터 5절까지 나와 있는데요. * 이사야 40:3-5,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첫 번째가 뭐냐면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그리고요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라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너희는 뭐라고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라고 돼 있잖아요. 종의 신분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사실은 좀 쉬어도 될 것 같은데 너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 하냐면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예비하라고 하는 단어를 좀 찾아봤더니 원어에서는 클리어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또한 있더라고요. 무슨 말입니까? 너희는 여호와의 길을 깨끗하게 해라 정화시켜라. 그가 오실 기회를 좀 치워라. 그리고 그걸 통하여서 그러면은 우리 스스로가 그러면 깨끗하게 해야 되니까 어떻게 다시 노역이 시작된 겁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내가 올 길에 대해서 너희가 조금 정리를 해야 된다. 이것이 종으로서 삶을 정리하고 자유인으로서 살아야 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사에게 주시면서 광야에서 너희 하나님이 길을 예비하라고 하셨잖아요. 여러분 광야라고 하는 단어는 ‘디바르’ 라고 합니다. 다바르라고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무슨 얘기냐면요. 모모 로부터라고 하는 m이라고 하는 접두사와 다바르 라고 하는 말씀이라고 하는 우리 명사가 합쳐져 있는 겁니다. 그럼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라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러면 광야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곳이 광야라는 사실 그 얘기는 광야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이 있다. 라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 가운데 있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시면서 좀 정리하라는 얘기를 이 백성에게 주시는 거죠. 그러고 나서 사막에는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하시면서 그러면 정리하고 그 골짜기를 메우고 평탄케 하면서 무엇을 보여주신다. 라고 하냐면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주겠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좀 정리를 해볼까요?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어떻게?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리고 죄악은 사라졌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좀 정리해라. 이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만을 기준 삼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와 같이 정리하고 평탄케 하는 작업을 하면 사막에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준비하기만 하면 어떻게 된다? 바로 이곳에 하나님께서 우리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하시겠다. 라는 말씀을 주신 겁니다. 그러면 진정한 위로가 무엇입니까? 우리 모든 이 백성이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 여러분, 진정한 위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악이 사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그 영광을 보이겠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제 가슴 속에서 약간 뜨거운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심장이 뛰었습니다. 세상은 ‘너 자신을 사랑하라.’ 그러는데 사실은 그 메시지 가운데에는 끝나고 나면 공허한 게 되게 많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의 무엇을 하다 보면 사실은 나만 사랑하라는 얘기로 결국은 귀결되거든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지금 얘기하신 건 뭡니까?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기만 하면은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기만 하면은 내가 너희에게 여호와의 영광을 통하여서 위로를 주겠다. 라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면서 이 시대 가운데에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참된 위로이고, 그 영광을 볼 수 있다. 라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여러분 그 사실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안아주심의 본당에 와서 매 주일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우리가 고백하는 게 ‘주 영광 여기 임하사 열방향의 그 비추소서. 주의 은혜 구할 때 그 은혜가 이 땅 가운데 있기를 바란다.’ 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실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뭐냐면 그러면 종에서 벗어난 자들, 자유인들이 무엇을 외쳐야 하는가? 라는 얘기를 6절에서 8절을 주십니다. *이사야 40:6-8,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무엇을 외쳐야 하는가 실은 그 얘기는 무슨 얘기냐면요. 종에서 벗어난 자유인들은 이제 자기를 무엇이라고 선포하고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라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 이사를 통해 주신 말씀이 뭐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아멘. 저는 ‘푸른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라는 그 찬양은 많이 불렀어도 이 말씀 가운데 주시는 의미가 이 시대를 향한 위로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사실은 좀 더 이것을 묵상하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이 시대를 향하여서 내가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 주님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나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했을 때 우리 모두의 고백 가운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라고 하는 그 고백이 우리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서 흘러나오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좀 더 우리가 세부적으로 세 가지 정도로 좀 나눠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첫째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이냐면요. 우리가 풀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풀이다’라고 하는 사실 여러분 동의가 되십니까? 동의가 안 되면 여기서 지금 저 설교가 나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풀이라고 하는 거는요 마른다. 라고 지금 표현이 되어 있는데 마른다. 라는 것은 건조해진다. 라는 겁니다. 생명력이 없다는 겁니다. 어느 순간에 시들어서 이것은 더 이상 생명의 능력을 갖출 수 없고 죽게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언제든지 말할 수 있다. 라는 그 사실을 갖다가 내가 인지하면서 사는 자는 내가 결국은 마르는 존재구나라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성경을 찾아보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그렇게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 아담이 있었던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가봅시다. 우리 모두는 아담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뭐냐면요.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얻기 위한 배의 유혹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내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아담은 그것을 먹지 않았을 겁니다. 또 한 번 살펴볼까요? 여러분, 창세기 11장에 보면 바벨론 탑 사건이 나옵니다. 바벨탑 사건, 바벨탑 사건은 왜 일어났습니까? 인간이 모두가 다 높아지고 싶어 하는 그 욕심으로부터 나온 겁니다. 하나님처럼 되겠다. 라고 하는 그 사건 그 일 때문에 모두가 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을 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지요. 자신이 풀린 줄 알았다면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장면에서 풀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풀이 마른다. 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거역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그때마다 제 마음속에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할 때 늘 찾아보는 성경이 뭐냐면 전도사입니다. 여러분 전도서 1장 14절 말씀 같이 한번 우리가 읽어보기를 소원하는데요.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전도서 1:14,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여러분 솔로몬의 이 고백 가운데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내가 이 땅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동안 모든 일을 보았는데 모두 다 헛되다. 라고 하는 헛됨, 저기 헤벨이라고 하는데 저게 원어로 무슨 뜻이냐면 ‘숨결’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숨결 숨 한 번 쉬는 것과 같다. 라는 겁니다. 어떻게 됩니까? 그만큼 인생이 뭐 하다는 거죠? 짧다. 라는 겁니다. 근데 그 짧은 인생 동안 우리는 뭐 한다는 겁니까? 바람을 잡는다는 겁니다. 바람을 아무리 잡으려고 해보십시오. 잡힙니까? 우리 인생이 그만큼 짧고 우리 인생은 무엇을 하려고 잡을 수가 없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이 인생 가운데서 무엇을 잡으려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자신이 풀이라는 사실,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풀이다, 언제든지 마른다. 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누구를 인지하냐면요 절대자이신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인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풀’이라는 사실을 내가 늘 인지해야만 언제든지 마르는 존재다 그리고 언제든지 나는 이와 같이 건조해질 수밖에 없고, 내 생명은 한계가 있다. 라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저는 이 ‘풀이다.’ 라고 하는 것을 묵상하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게 우리 성도들과 함께 ‘약할 때 강함 주시네.’ 라는 찬양을 우리 담임 목사님과 우리 성도님들 부를 때의 모습이 참 많이 기억이 났습니다. ‘약할 때 강함 주신의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는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예수 어린 양 종교 아니라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약하다. 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풀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요 그런 찬양을 부를 수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인지 다 알 수 있는 존재이고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그 존재라면 우리는 절대로 주님 앞에서 예수 어린 양 종기한 이름을 갖다가 마음 담아 부를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진심과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이 고백을 올려드릴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무엇이냐? 내가 언젠가는 죽게 되고 이 땅 가운데 더 이상 소망이 없고 한계가 있다. 라고 내가 풀이다.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을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그 찬양이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시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내가 연약하다. 라는 사실을 아는 분에게는 이 찬양이 여러분의 가슴을 때릴 겁니다. 저는 훈련하면서 성도들에게 이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이 찬양 부르실 때만큼은 우리 교회 성도들 아마 가사 다 모르시는 분 없을 텐데 아마 부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경우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요즘 제 주변에 얼마나 연약한 분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저도 연약한데 너무나 몸이 안 좋고 어렵고 그리고 금방 쓰러질 수밖에 없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때 우리는 누구를 찾아야 합니까? 내가 풀이라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통한 참된 위로를 받으시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풀리라는 사실을 고백할 때마다 여러분의 약함을 강함으로 채워주시는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이 여러분의 마음과 심령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누구라는 거죠? ‘꽃’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꽃 하면 떠오르는 게 결국은 아름다움입니다. 그리고 화사함입니다. 그리고 화려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이 우리가 표현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 화려함에 우리가 취하곤 하는데요. 여러분 운동선수들은 전성기라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도 전성기라는 게 있으셨습니까? 괜히 옆에 있는 분 쳐다보지 마시고 자기만 먹고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전성기가 있으셨습니까? 사람들은요 누구나 자신만의 전성기라고 하는 거를 참 회고하고 싶고 그때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아 그 시절이 너무 금방 지나갔구나! 라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맞습니까? 여러분은 여전히 전성기를 지금 구가하고 계실 줄 믿습니다. 제가 그러면서 시편에 있는 우리 103편 15절의 말씀이 생각이 났는데요. *시편 103:15,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아멘. 여러분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고 앞서 풀에 대해서 얘기했잖아요. 풀은 마른다. 그런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이 결국에는 시들 수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예전에 왕년에는 참 저 잘 나가고 아름다웠습니다. 라고 하는 얘기 많이 하셨을 겁니다. 맞죠? 지금도 옆에 있는 분 괜히 쳐다보실 필요 없습니다. 분명히 그럴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아름다우시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너무나 아끼시는 귀한 보배와 같은 것이 우리 성도님들이십니다. 그런데요 그 꽃으로 지낼 수 있는 이 땅 가운데 시기가 금방입니다. 꽃은 화려하긴 하지만 시들 수밖에 없다. 라는 사실입니다. 영원히 시들지 않고 화려하게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땅을 사는 동안 꽃은 잠깐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보이기는 하지만 씻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풀과 마찬가지로 꽃도 동일하죠. 풀이든 꽃이든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바가 무엇이냐면 우리 인간은 한계가 있다. 라는 겁니다. ‘연약하다. 라는 거죠. 잠깐 뭔가 대단해 보이는 것 같아 보이고 이 땅을 살아가면서 권력을 영원히 누릴 것 같아 보이고 그리고 저 아름다움을 영원히 구할 것 같아 보이지만 꽃은 반드시 시든다. 라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섭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무엇일까요? 맨날 우리는 이 땅 가운데에서 다른 사람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우리는 왠지 저 아름다움은 계속될 것 같아 보이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것이 예수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그것이 중요한 부분 세 번째 진짜 위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하다는 겁니까? ‘영원하다.’ 라는 겁니다. 아멘이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입니다. 그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요 푸른 마르고 꽃은 시입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마르지 않고 시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왜 하나님께서 이사를 통해 이 말씀을 주셨을까요? 여러분 잘 살펴보시면요 출애굽부터 한번 살펴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종에서 자유 함을 얻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신산 언약도 주시면서 그들에게 율법과 성막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정도였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 그들 모습이어야 됐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출국 1세대들은 어느 누구도 단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출애굽 2세대의 삶을 한번 살펴볼까요? 가나안 땅에서 그들은 아말렉 족속과 통혼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별되라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또한 듣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사사 시대 한번 거슬러 가볼까요? 사사 시대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 시대가 끝나고 그리고 사무엘 이후에 이스라엘 초대 왕인 누구입니까? 사울, 오죽했으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그리고 다윗을 지나 솔로몬 시대 그리고 솔로몬 이후에 남과 북이 나눠지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서 나눠진 이스라엘 왜 나눠졌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눠졌습니다. 그런 이 백성을 향하여서 하나님께서 오늘 주시는 말씀은 이제는 더 이상 너희가 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여호와의 말씀만이 영원하다. 라는 사실을 너희가 좀 알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오늘 이 사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늘 주고 계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백성에게 미래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백성에게 소망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위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모하면서 이 말씀만을 우리가 세울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되어야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하여서 참 위로,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을 여러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사실은 단순히 오늘날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사실이 아니라 과거 1904년, 1905년에 있었던 제가 웨일즈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 얘기를 잠깐 해드리겠습니다. 1904년 10월 31일 이반 로보트라고 하는 사람에 의해서 모리아라고 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도회가 일어났습니다. 간증이 일어나고 고백이 나왔습니다. 같이 말씀을 나누면서 뜨겁게 기도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11월 4일 금요일 밤에 그곳에서 요한 계시록 6장 2절과 4절의 말씀이 여호와의 인을 떼자 흰말, 붉은말, 결국 그 탄자들이 어떤 일을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이 땅의 종말에 대한 한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회개하면서 반드시 이런 일이 일어나겠구나! 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11월 5일 토요일 에베소서 5장 18절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에베소서 5:18, 18 술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다.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 -그 말씀을 통해 웨이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술집이 문을 닫고 그리고 음란한 것들이 하나하나 정리가 되면서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세워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웨일즈 저녁으로 그 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확산된 운동은 유럽과 미국과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거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까지 미치게 되었는데요. 하워드 존스톤이라는 사람이 1906년 9월에 우리나라에 들어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1904년에 이미 원산에서 합의에 의해서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요. 부흥 운동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영향을 받은 웰즈와 인도에서 영향을 받은 이 사람의 하워드 존스턴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라는 것들을 알려주자 우리나라에서는 같이 시너지를 받아서 1907년에 평양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흥 운동 가운데 가장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볼 것은 무엇이냐면 우리나라 부흥 운동에 있어서 가장 특징은 무엇이냐? ‘사경회’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경회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통해서 변화와 회개의 자리가 일어나는 것이 사경회입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은요 선조 때부터 이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우리를 통하여서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 민족이 이 성경 말씀을 사모하고 이 성경의 말씀을 같이 읽어가면서 문맹이 퇴치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호했다는 그 사실에서 우리 민족은 이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으로 품고 나아가는 데 앞장섰던 민족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요한복음 1장 1절 여러분 잘 아시는 말씀을 함께 제가 좀 나눠드리고자 하는데요. 그 말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1, 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십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이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신 분이 누구십니까?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분이 이 땅 가운데 육신의 몸을 입고 와 우리를 통하여서 무엇을 하길 원하면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기 위하여 이 땅 가운데 몸소 오셨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신 로마서, *로마서 8:1, 8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아멘.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 안에는 무엇이 없다고요? 정죄함이 없다. 이 민족에게는 그런 하나님의 놀라우신 말씀을 통한 역사가 일어났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묵상함으로 그분만의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고 그분 안에 있는 것이 가장 큰 위로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았을 때,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러면서 광야에서 외쳤던 주의 길을 준비했던 세례 요한이 생각이 났습니다. 마태복음 3장 3절 말씀 같이 한번 우리 읽었으면 좋겠는데요. *마태복음 3:3,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곱게 하라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레 요한은요. 약대 탈 옷 입고 석천 먹으면서 광야에서 무엇을 했냐면 주님 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저 말씀대로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그리고 세레 요한은 말씀의 성취를 하기 위해서 그곳에 쓰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성취는 그 시절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우리 모두 사랑의 교회 여기 계신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이어지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말에 저도 우리 사역 반 집사님들과 함께 아웃리치를 다녀왔습니다. 제 마음속에 들었던 딱 하나의 생각은 뭐냐면요. 여러분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준비하면서 어떤 곳을 가서 사약을 준비할 때, 분명한 사실은 그것을 가장 싫어하는 게 누구겠습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너 풀 아니야 너 꽃 아니야 니 힘으로 다 할 수 있어. 라고 얘기하는 그러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준비하다 보면서 내 힘을 과시하기도 하고 내가 풀이 아닌데 어떻게 나의 이런 부분들을 건드릴 수가 있어. 근데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무엇 하는 자입니까? 주님께서 오실 길을 깨끗하게 하는 자일뿐입니다. 하는 자일뿐입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외쳐야 되냐면 딱 하나입니다. ‘나 풀입니다.’ ‘주님 당신 필요합니다.’ ‘나 꽃입니다. 내 인생 언젠가 시듭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주님 나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간 말씀이신 그리스도만을 세워 가는데, 내 모든 정성과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주님 내 인생은 바로 오직 여호와의 말씀이신 그리고 그 말씀이신 그리스도 이것을 세우기 위해 준비된 주님의 제자입니다. 이 고백을 할 때 제일 싫어하는 건 사탄이요 제일 기뻐하시는 거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수많은 역경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좌절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야 될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이고 광야에 우리는 그 길을 준비하는 자이며,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우리는 평탄케 하는 자라는 그 사실을 기억 하신다면요. 내가 지금 풀이라서 연약한 게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내가 꽃이라서 연약해서 힘이 없는 게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진짜 부끄러운 게 무엇인 줄 아십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못 세우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 이제는 너희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했던 그 말씀 기억하신다면 우리의 모든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오직 우리 주님의 말씀, 그 말씀만을 세우는 역사가 여러분 삶의 중심 가운데 온전히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을 외쳐야 할까요? 무엇으로 위로받아야 될까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얘기합니다. 영원하신 말씀만 그리고 그 말씀을 세우는 일에 우리 모두가 절벽 투구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오늘도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영원하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듯이 오늘 다시금 깨달아서 말씀이신 그리스도만을 세우며 나아가는 남은 인생 되어야 한다. 다시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자가 되고, 주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데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비록 우리는 들풀처럼 금방 말라져버릴 그런 인생들이지만 하나님과 날마다 말씀 안에서 교제하고 그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영원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확신하며 그런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방의 포로 생활 가운데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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