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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6월 21일)
제목: "다른 신은 없다"
말씀: 열왕기하 5:14~19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설교자: 강경식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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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14~19,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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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수요 저녁 기도회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이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온전히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주 앞에 나오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이에 끝나는 시간까지 온전히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옵고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부흥과 또 예배의 부흥에 새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리 부흥 보고 수요저녁 기도회에 참여하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수요일 기도회를 통해 회복을 넘어 부흥의 실체를 경험하고 응답받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5장 14절부터 19절입니다. 구약 568쪽, 열왕기하 5장 14절부터 19절 말씀이다. 교독함.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인으로서 어떤 일을 결정하려고 할 때 갈등할 때가 있다. 예컨대 사업을 하시는 분은 자기가 좋은 일을 또 좋은 일에 쓰기 위해서 돈을 벌려고 할 때, 어떻게든지 세를 줄이기 위해서,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 절세를 하려고 하는 것을 뛰어넘어, 예를 든다면 탈세를 하는 그런 환경이 주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일 직장인이 자기가 직장생활하면서 좋은 정보를 얻게 되었을 때, 그 정보를 직장을 위해서 써야 하는데 자기의 경쟁력을 위해서 그것을 숨긴다면 그 숨기려고 할 때 그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을 두신 우리 학부모 입장에서 좋은 학교를 보내려면 좋은 학군에 있는 학교를 보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학군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주소가 또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위해서 위장 전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결정하시겠습니까? 이렇게 그동안 우리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을 때, 여러분은 갈등하셨습니까 아니면 아예 내 생각대로 해버리셨습니까? 특히 주일 예배 드리는 것이 시간이 있을 때 드리겠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주일 예배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큰 고민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고민하셔야 한다. 아니요, 고민만 해서는 안 되고 고민에 대한 선택과 그 행동을 하셔야 한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생명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예배가 선택이 아니다. 하나님께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 백성이 되었다면 그 은혜의 마땅한 행동을 반응을 보이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기쁨이오, 구원의 감사로 표현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배는 선택이 될 수가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드릴 때, 주일을 지킴으로 인해서 우리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느껴야 된다. 라는 그런 두려움에 직면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그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시기를 소망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결단할 때가 있다.

예컨대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사업하다가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돈 쓸 곳이 많은데 수입은 적고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 일주일의 시간이 부족한데 주일을 성수해야 되나 나의 신앙도 부족한데 전도도 해야 되나? 이런 믿음의 갈등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라는 것을 믿으신다면 그 모든 문제는, 그 모든 갈등은 해결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믿음의 갈등의 문제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답을 찾으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은 아름나라 장군 나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교장 강의에 몸을 7번 받고,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이후에 하나님이 하나님 위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믿게 된 이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고,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네 가지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시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1.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역사하심에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람 나라 군대장과 나아만 열왕기하 5장 1절에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다.

*열왕기하 5:1,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성경은 나아만에 대해서 나아만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라는 이 사실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들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비록 이방 나라 군대 장관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전쟁에서 승리케 하셨다. 라는 것이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택하신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나라 군대장과 나만을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만 다스리고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라는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여러분에게도 모든 일들이 다 펼쳐질 것인데, 여러분의 있는 모든 일들도 다 하나님의 능력에, 하나님의 수하에, 손 안에 다 들어와 있다. 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뜻, 다신 바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민족의 신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계가 없다. 우리 성모님 중에 요즘 경제적으로 어려워하거나 육체적으로 힘들어하시는 분 계실 것이다.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 원망의 마음으로 하늘만 물끄러미 쳐다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야 될 것이고, 우리의 그 어려움에서 건져내달라고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 상반 절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야고보서 5:13,
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운영하고 계시는 이 하나님은 왜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신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일깨워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안다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손해이다. 성경 말씀을 통해 받는

2.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사람의 진심을 들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의술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이 나병, 이 나병 환자인 나아만이 이스라엘 땅에서 잡아온 어린 소녀 자신의 아내의 종으로 두게 되었다. 그 어린 소녀가 나아만 장군의 병을 안타깝게 여겨서 그런지 그에게 치료에 좋은 정보를 주게 된다. 그 어린 소녀가 나아만에게, 나아만 아내에게 치료할 수 있다. 라는 그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데, 이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면 자신을 종으로 삼은 이 장수를 과연 치료해 줄 만큼 고마운 존재일까? 그리고 그 정보를 믿는 이 장수의 태도는 과연 어떤 마음의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것일까? 우리 여기에서 나아만과 나아만의 아내와 그리고 이 어린 소녀의 마음을 통해서 이 사람들이 서로가 어떻게 서로를 대했는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종으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나아만과 그의 아내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만일 나아만과 그의 아내가 이 어린 소녀를 종으로 잡아서 자기네들이 실컷 부려먹고, 괴롭히고, 타박하고 그리고 또 괴롭혔다면, 어린 소녀는 자기 주인 나아만이 그런 중병에 걸렸을 때, 그에게 그 병에 대해서 관심조차 갖고 싶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린 소녀가 평소의 말과 행동이 진실하지 않고 불성실했다면, 나아만과 그의 아내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우리의 평소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깨닫게 된다.

사람들에게 평소에 우리가 어떤 마음 자세로 다가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나아만 장군은 그 치루의 정보를 듣고 나서 그 내용을 자기 주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왕에게 이야기합니다. 왕은 그 정보대로 이 나아만 장군을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에 보내게 된다. 아람 왕이 나만 장군의 보고를 들었을 때, 이 왕의 입장에서는 치료하라고 결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다. 왜 그럴까요? 그 정보를 누구에게서 얻었느냐를 물었을 때, 그 정보는 바로 종으로 삼았던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서 종으로 삼았던 어린 소녀에게서부터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면 얼마나 믿음이 가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러한 어린 종의 말의 귀를 귀담아 듣지 않을 법한데, 이 아람 왕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나아만 장군을 이스라엘에 보내게 된다. 자, 이 내용을 보면서 만일 어린 소녀가 주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없어서 이스라엘 선지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치료에 이 과정이 이루어졌을까? 그리고 나아만의 아내가 어린 이 소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이 치료 과정이 이루어졌을까? 또 나아만 장군이 자기 아내의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이 치료의 과정이 이루어졌을까? 마지막으로 왕이 이스라엘 선지자가 나만 장군을 치료할 수 있다. 라는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과연 이 치료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음을 알게 된다. 참 하나님의 이끄심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환경임을 알 수 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서 불치의 병이 낫는다는 것은 이것은 상식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 방법적인 부분에 있어서 우리 두 가지 사실, 이 문제를 해결 받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첫 번째는 눈에 보인 그 사람의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이끄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질 때 이러한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받는

3. 세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그 정하신 방법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를 보내어 자신의 군대장과 나만을 치료해 달라고 한다. 그 병을 고쳐달라고 하면서 그에게 은, 10달란트, 금 6천 개, 또한 의복 10벌을 선물로 보내게 된다. 당시 이스라엘보다 강국이었던 아람으로부터 이 소식을 접한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이 소식을 접하자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왜 그러냐면 이 불치병이었던 나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보다 강대국인 나라가 이것을 빌미로 자신들을 공격하려고 전쟁으로 자신들에게 공격해 오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너무나 힘든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소식을 접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는 사람을 보내서 왕에게 그 나아만을 자기 집에 오게 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나아만이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집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이 엘리사 앞에 서 있는데, 엘리사가 바로 와서 자기를 마중 나오고 환대할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엘리사의 사제에게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요단강에 몸을 7번 씻으라 내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이 말을 들은 이 나아만 장군은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렇게 자신을 대할 수 있는지,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이 치료 방법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 심정에 대해서 성경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열왕기하 5장 11절이다.

*열왕기하 5:11,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르게 너무나 다른 치료 방법 제시에 비해서 나아만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나아만은 너무나 먼 길을 왔겠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이 치료 방법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더 갈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갈등을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갈등이 이렇지 않는가? 인간적으로 더 나은 방법이 있는데 그보다 더 못한 방법으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제시를 받는다면 여러분은 그 방법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의문을 갖게 된다. 왜 다른 강이 아닌, 요단강에 몸을 씻으라고 했을까? 그 당시에 요단강보다 깨끗하고 큰 강인 아바나, 아바나와 바르발 강이 이 다메섹 강에 이 아람에 있었는데 왜 더 좋은 이스라엘에서도 볼 수 없는 그 좋은 강에 씻으라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스라엘까지 왔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요단강의 씻으라고 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왜 7번 씻으라고 했을까? 성경에서는 이 7이라는 숫자를 굉장히 좋은 숫자로 상징하고 또 쓰이고 있다. 이 7이라는 숫자는 성부, 성자, 성령 3의 숫자와 그리고 동서남북의 이 세상을 이야기하는 사회 숫자가 합해져서 완전한 수라고 하기도 하고 또 세븐, 행운의 숫자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이 치료만 했을까? 예를 들면 이 하나님께서 여리 성을 붙일 때, 7일 동안 돌게 하시고 마지막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 돌게 한 다음에 그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할 때도 7이라는 숫자는 믿는 사람들에게 7일째 되는 날, 안식년을 갖게 하고 그리고 7년에 7번이 지나면 그다음 해에 50년에 희년이라고 해서 모든 종들을 자유하게 하는 그런 너무나 좋은 수로 우리가 의미를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좋은 의미와 다르게 생각해봐야 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은 굳이 7번 해야 된다. 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 번으로도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6번도 아니고 8번도 아닌 이 7번을 통해서 쉽게 했다. 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7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정한 그 방법대로 그것에 순종하게 했을 때, 그 결과를 낳게 하려고 했다. 라는 것이다. 그 말은 나만이 나병에서 나온 이유가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순종했을 때, 깨끗한 물도 아니고 우연히 한 번, 우연치 않게 한 번 물에 담가서 낫게 하는, 그런 오해를 살 만한 방법도 아닌, 하나님께서 정한 7번의 그 방법대로 순종하게 함으로써 낫게 했다는 것이다. 자, 이렇게 치료의 방법을 정한 이유가 있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나아만이 낫게 된 것은 우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길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붓게 되는데 그때 그 기름을 관유라고 한다. 그 관유를 만드는 방법이 출국기의 30장 23 25절에 나와 있다.

*출애굽기 30:23^25,
23 너는 상등 향품을 가지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과.
24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로 하고 감람기름 한 힌을 가지고.
25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 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여기에 보면 몰약 6개, 창포, 계피 2대 1 대 2의 이 비율 하고 또 올리브유를 섞어서 만들게 되는 이 성경에서 정했다. 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런 방법으로 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 이 방법대로 관유를 만드는 이 방법 중요하기 때문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방법 향 기름을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하는 그런 직분의 사람들에게 그 기름을 만들어서 사용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한 방법대로 관유를 만들고 그것을 구별하게 사용하라는 것이고 이 향이 좋다고 해서 아무나 만들어서 사용하여서는 안 될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출애굽기 30장 31절과 3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출애굽기 30:31-32,
3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32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한 방법대로 하느냐? 입니다. 비슷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아담과 아비후가 하나님 앞에 분향을 하게 되는데, 이 분향을 할 때, 이 두 아들이 다른 걸로 분향을 하였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레위기 10장 1절에서 이것을 말씀한다.

*레위기 10:1,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그 결과
*민수기 26:61,
61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26장 61절에 나온 대로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들리다가 죽었더라.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명령한 불이 어떤 불인지, 구체적으로 설명은 되어 있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정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하나님 앞에 분양을 하였다가 죽음을 맞게 되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 우리의 생각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똑같지는 않지만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을 우리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비로 나만이 제시 받는 치료 방법이 자신의 생각대로, 그런 방법대로 제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자신이 생각하지 아니한 이 방법과 이것에 대해서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방법을 따르시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남한과 함께한 그의 종들이 열왕기하 5장 13절에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열왕기하 5:13,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 이보다 더 한 방법을 제시받았어도 순종하지 않았겠습니까? 라고 그의 종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의 생각과 달라도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아만의 종들이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는 ‘평소에 이 종들이 너무나 순종을 잘한 삶을 살지 않았나, 거기에서 비롯된 생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이런 약한 자를 들어서 쓰는 것을 또한 보게 된다. 어찌 이런 말을 나만의 종들이 할 수 있는지, 너무나 대단하게 생각이 든다. 이 종들의 말을 들은 이 나아만이 이 갈등을 하였을 때, 이 종들의 말을 통해서 그는 답을 찾게 되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과 내 생각이 다를 때,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것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회복과 부흥의 길이다. 나아만이 종들의 말을 듣고 순종했을 때, 그 결과가 무엇인지 열왕기하 5장 14절에서 증언하고 있다.

*열왕기하 5:14,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이렇게 치유함으로 이렇게 순종함으로 치유를 경험한 나아만 장군은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는데 여란기하 5장 15절에 보면,

*열왕기하 5:15,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이방인인 나아만이 어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하나님을 참신이라고 고백할 수가 있는지, 그리고 다른 신은 없다. 라고 고백할 수가 있는지, 어떻게 이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은 나만이 의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치유하셨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치료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님을 이 나만을 스스로 체험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여러분도 그렇게 고백이 되십니까? 어느 성도님께서 심방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자신은 여느 부모처럼 자녀들을 공부에 공부를 계속 강조하면서 세상에 뒤지지 않고, 세상에서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신앙보다도 공부의 우선순위를 두고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한 이 자녀는 변호사가 되고, 또 다른 자녀는 의사도 되고, 주변에서 사람들이 세상 적으로 잘 키웠다고 칭찬을 해주는데 이 부모는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고, 그에게는 마음의 근심이 생기게 됐다. 이 자녀들이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였고 게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건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왜? 하나님보다 또 하나님 말씀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저 아이를 키웠을까? 그는 마음에 한이 마음에 마음의 아픔을 그는 겪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는 자녀로 키우고 싶은데, 지금 자녀들이 이미 커버려서 자기에게 다시 한 번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는 자녀로 키우고 싶다. 라고 그렇게 눈물로 그의 고백을 하였다.

예배에 참여하신 우리 성도님들도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는 자녀로 키우시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러한 믿음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소망한다. 나아만의 이제 오직 제사를 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에게나 드리지 않고, 다만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리겠다. 라고 선포한다.

나아만이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이나, 이 어린 종 소녀의 말을 시작으로 해서, 믿음이 없으면 결단할 수 없는 이 왕의 허락이나,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자기의 불치의 병이 낫게 되는 이 상황을 보면서, 나만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주변의 상황을 보시면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고백할 수 있으시기를 소망한다. 성경 말씀을 통해 받는

네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나아가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 천하에 다른 신이 없다고 고백한 나아만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자신의 왕이 우상 리몬의 신당에서 제사를 드릴 때, 경배할 때, 자기도 그 옆에 서서 그를 지지하면서 같이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충신으로서 왕을 보좌하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상에게 절을 하는 그 상황에 놓이게 된다. 라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이럴 때 이런 우상승배의 모습에 대해서 용서해달라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이 마음이 없었다면, 이런 고민, 이런 이야기를 엘리사에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원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 거기에 못 미치는 모습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였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에게 “평안히 가라 너는 평안히 가라.” 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이 말은 내가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왕의 시중을 드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취하게 되는 행동으로 왕에 대한 충성이지, 우상에 대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의미였다.

우리 여기에서 나아만의 자세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길 원한다. 겉으로 보면 우상숭배에 대해 타협한 거 아니냐?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타협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하나의, 하나의 예라고 저는 생각이 든다. 나아만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겠다. 라고 결단하고 고백했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본인이 직접 우상을 섬기는 것은 아니지만 왕이 숭배할 때 신하로서 그 위치를 지켜야 하는 상황 속에서 마음에 거리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만은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아직 신앙적으로 어린 나만의 결정을 이해해 주고, 또 그가 그 있는 위치에서 상당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나만의 마음을 엘리사가 헤아려 준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나아가는 자의 자세이다. 하나님을 전심을 다해 섬기고자 할 때, 조금이라도 마음의 거리낌이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향하여 깨어 있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이 마음,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부응한 상태이다. 이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것이다.

정리하겠다. 나아만의 고백처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이끄심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서 선하심을 느끼게 해주실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다를 때 갈등하게 된다. 그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내 생각대로 하고 싶은 마음의 충동을 꼭 이기시기 바란다. 그럴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치료와 회복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참 신이시며,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국민을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그런 믿음의 경험이 계속 쌓여갈 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는 여기 계신 모든 성로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요약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른 신이 없음을 알려주시고, 우리의 신앙의 갈등이 생길 때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로 결단하여야 한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나아만을 승리하게 하시고, 치유하게 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주변에 믿지 않는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참 신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 되심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음과,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과 부흥을 주실 분이심을 인정함으로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아무것도 아닌 그런 나의 존재, 그런 상황 속에서 내게 들려줄 때, 내가 원하는 방법과 내가 원하는 상식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의 100% 전심으로 순종하는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이 이루어지는 줄로 믿어야 한다. 나아만이 고백했던 그 이상의 고백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것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발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은 구원에 아무런 역할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은사를 자기 치부(致富)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은 큰 불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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