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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7월 26일)
제목: "깊은 슬픔을 노래로 바꾸시는 하나님"
말씀: 시편 39:1-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조충현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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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9:1-13,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1 0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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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며 수요일 저녁 기도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축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위로와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고 고침 받는 시간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말씀 부흥과 예배 부흥의 실체가 나타나는 수요 저녁 기도에 나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수요 저녁 기도회를 통해서 회복을 넘어 부흥의 역사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시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시편 39편 말씀입니다. -오늘 저는' 기쁨, 슬픔을 노래'로 바꾸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으로 우리 함께 성도님들과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독서하실 때 어떤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책을 읽을 때 은혜가 되는 저자를 만나면 시중에 나오는 저자의 책을 모두 사서 읽으려고 합니다. 얼마 전 하나님의 품에 안식하신 팀 켈러 목사님이 쓰신 고통에 답하다.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시편에 150편 중에서 긍정적인 메시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 시편이 두 개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읽었던 다윗이 쓴 시편 39편과 헬만이 쓴 88편입니다. 여러분, 일반적으로 시편에 나오는 시들은 적어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냐 찬양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시에서는 어떻게 긍정적인 메시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인지, 저는 굉장히 궁금해서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오늘 저는 두 편의 시 중에서 다윗을 쓴 39편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아멘. 저는 오늘 시편 39편의 말씀을 읽어가는 도중에 제일 먼저 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3절이었습니다. 13절을 세 번역 성경으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39:13,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다시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나에게서 눈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돌려주십시오. 여러분 다윗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하나님을 향해 이런 슬픈 고백을 하는 걸까요?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한 번만, 나에게 눈길을 달라고 지금 다윗이 하나님께 마지막 13절 마무리하면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왜 이런 고통에 겪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시편 39편의 말씀을 묵상하며 내려가 보면 그의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통증 지수를 1에서 10으로 계산한다고 하면 아마도 다윗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아마도 구에서 10에 가까울 정도로 그런 고통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한 번만 나에게 눈길 한 번만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겠죠. 저는 이 시간 다윗의 깊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신앙의 자세를 보여줬는지 오늘 세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다윗은 고난 가운데 잠잠하고 침묵했습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잠잠하고 오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고난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작은 고난이든 큰 고난이든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 중에서 성도님들 중에 고난을 겪어보지 않은 분이 있으십니까? 혹시 있으시면 손 들어보시겠습니까? 없으시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작은 고난이든 큰 고난이든 그런 고난들을 겪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내 앞에 고난이 닥칠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시나요? 처음에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이고, 화를 내기도 할 것이고요. 원망할 것 같기도 할 것이고요. 한탄하기도 할 것이고 그 시간을 지나면 우하에 멍만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감정은 고난 앞에서 쉼없이 요동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다윗은 고통의 수렁 속에서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요? 1절을 다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39:1,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다윗은 고난 앞에서 불평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불평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자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불평하는 혀를 억제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자신의 입에 재갈을 먹이겠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재갈이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재갈은 말의 입에 물리는 토막 같은 거죠.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사람의 입에 물리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고난 앞에서 입마개를 하고 자기 입을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왜 고통 앞에서 재가를 물고 입을 열지 않기로 다짐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셔서 기분이 상해서 입을 닫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을 괴롭히는 악한 자의 힘이 너무나 세서 겁나서 침묵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데는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어서 좌절해서 입을 다무는 걸까요? 다윗은 침묵을 선택한 이유를 주님께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 9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9절입니다.
 
*시편 39:9,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않음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침묵을 선택한 이유는 이 모든 고난이 주님께서 주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잠잠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닥치는 모든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시인 다윗이 행동했던 것처럼 잠잠히 침묵할 수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보통 사람들은 쉽게 열을 내고 흥분합니다. 감정은 모두 곤두서고 마음은 불붙듯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거침없이 신경질이 되기도 하죠. 여러분, 다윗이 침묵을 설득했다는 것은 결코 고통을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침묵은 고통 중에 성도가 선택할 수 있는 위대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뭐라고요? 침묵은 고통 중에 성도가 선택할 수 있는 위대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시에스(C.S) 루이스가 쓴 스쿠르 테이프에 편지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고참 악마인 스쿠르 테이프가 마귀의 영역을 아주 시끄러운 소음의 왕국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마침내 온 우주를 소음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를 위해 스쿠르 테이프는 다른 악마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침묵을 경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침묵이 악마들이 하는 일인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에 큰 위협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소음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았던 다윗은 고통 앞에서 잠잠히 침묵하며 주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래야 그곳에서 고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은 고난 가운데 어떤 모습을 보이십니까? 오늘 다윗이 주님 앞에 잠잠히 침묵하며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가 고난 앞에서 잠잠히 주님께 나아가면 어떨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의 해결책을 허락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혀의 재갈을 물고 있다가 고난 가운데 잠잠한 다윗의 태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뀔까요?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만 토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만 토로하였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시편 39:4,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여기에 본문에 보시면 4절에서 주어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 앞에서 잠잠히 입을 열지 않은 채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4절에서 6절에 보면 메시지 성경으로 한번 보기 원합니다. 다윗의 심정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 무슨 일인지 알려주소서. 나의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소서. 죽을 날이 언제인지 알려주소서. 주께서 내 수명을 짧게 하셨으니 내 목숨 줄 건질 것 없을 만큼 짧습니다. 아 우리는 한단 이김. 아 우리는 모닥불 속 그림자, 아 우리는 허공으로 내뱉는 침. 기껏 모아놓고는 그대로 두고 갈 뿐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만 바라보며 이 시간 토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토로의 사전적인 정의는 마음에 있는 것을 죄다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토로(吐露)의 연속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고난 속에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오직 하나님께만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음에 있는 짐들을 토로할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나의 아픔과 고뇌(苦惱)를 토로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어느 종교도 인간이 신에게 고통을 토로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성도들이 고난의 터널을 지나며 겪는 모든 아픔을 들어주십니다. 여러분 다윗은 이번 한 번만 하나님께 토로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인생 자체가 토로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마주할 때마다 고난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토로하였습니다. 시편 142편 1절과 2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편 142:1-2,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와께 간구하는 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한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 도다.
- 다윗이 하나님 앞에 토라고 한다고 할 때 토로하다. 라는 쏟아 붓다. 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사정을 숨김없이 쏟아 붓고 있습니다. 여러분 1절과 2절에 9절에 보십시오. 소리 내다. 불을 짓다. 소리 내다. 간구하다. 원통함을 하나님께 토로하다. 우한을 진술하다. 토로하다. 라는 동사 비슷한 동사들이 이렇게 많이 나옵니다. 이렇듯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과 슬픔 앞에서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게 드러낸 것은 몹시 중요합니다. 신앙을 내세워 감정을 부정하거나 지나치게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해 쏟아놓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걱정, 근심을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쏟아 부으십시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토론을 듣기 위해 길을 열고, 들을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아멘. 고난은 우리의 시선을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게 하는 특효약입니다. 다윗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토로한다고 해서 조금은 마음의 짐이 내려놓을 수 있지만 완전한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 모든 시선을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고통의 무게를 하나님께 쏟아 부으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마음의 짐을 이 시간 내려놓고 하나님의 참된 평화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습니다.
 
-시편에 39편에 유일한 한 줄기의 빛은 7절 하반 절입니다. 우리 39장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편 39:7,
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여러분 원문에서는 그것이라는 인칭 대명사가 따로 등장하여 나의 소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면 나의 소망, 그것은 바로 주님께 있습니다.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소망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망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향한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그분께 자신의 삶을 모두 위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신앙의 가치는 바로 소망인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 소망을 갖는 것보다 더 실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소망이 상실되면 우리 앞에 닥친 시련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망 없고, 빛도 없는 흑암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경험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눈길 한 번만 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 외면당할 뿐 아니라 완전한 흑암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자신의 다른 열두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셨으며, 심지어 하늘 아버지에게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로 걸어가신 예수님 덕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우리의 삶에 가장 어두운 순간을 마주한다 하여도 우리의 소망은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6장 19절에서 이렇게 담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쉬운 성경으로 함께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6:19,
19 우리가 가진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안전하고 튼튼하며, 그 소망을 통해 하늘 지성소의 커튼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우리 다시 한 번 있기 원합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안전하고 튼튼하여 그 소망을 통해 하늘 지성소의 커튼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붙잡고 있는 소망은 영혼의 다처럼 안전하다고, 튼튼하다고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소망을 붙잡고 나아간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잠시 당하는 고난이 있을지라도 언젠가 하늘 지성소의 커튼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맛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소망을 우리 모두가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저는 한 가지만 오늘 적용을 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기억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기억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서 소망을 잃지 않도록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언제나 이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을 우리는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약속의 말씀이 없는데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매일 날마다 솟는 샘물을 통해서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이 주신 음성을 들으십시오. 토요 성령 집회를 통해서 참 만족을 주시는 생수의 강을 여러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매주 토비세 때 담임 목사님과 함께하는 72구절을 암송하면서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 되도록 말씀 앞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십시오. 개인적으로 저는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서 붙잡았던 소망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는 2012년에 정격 성 강경변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정격 성은 번개같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갑작스럽게 강경 변으로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의 위태로움을 겪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두 번의 간이식을 받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응급으로 간이식 수술을 하고 수술을 했는데, 하루가 지나서 제 몸이 이식받은 간을 거부하여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의료진이 모두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주셔서 두 번째 간 이식을 받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6년의 투병 생활을 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이식 수술을 하고 무균 실에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던 기도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시 사명의 길로 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 제가 다시 하나님께 안아주심을 본당에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요?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붙잡았던 말씀이 시편 118편 17절이었습니다.
 
*시편 118:17,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 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일날 사회자 목사님이 예배 부름 때 하셨던 말씀을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어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의인의 장막에 깊은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었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 도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 선포하리로다.’ 아멘.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 되십니다. 또 나의 구원이 되십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그가 살아갔던 것입니다. 드디어 오늘 그 소망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제 생명을 살려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바로 이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 증거 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담임 목사님의 돌보심과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충복이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안아주심의 본당에 예 드리시거나 부득이하게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분 중에 다윗처럼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고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병마와 씨름하는 분들도 있으실 것이고, 어떤 분들은 진로의 문제로 뜬눈을 밤을 새며 지세 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회사의 스트레스로 인해서 고통 받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중에는 가장으로서 가정을 온전히 세워가기 위해 부딪혀주려 노력하지만, 경쟁적인 문제로 회복되지 않는 어려움 가운데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참한 현실 속에서 취해야 할 신앙의 자세는 단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의 소망 대신 예수님을 붙잡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당하는 고난이 힘들고 낙심되더라도 다윗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이 말씀 나의 소망이 죽겠나이다. 나의 소망이 오직 살아계신 주님께 있습니다. 라고 기억하며 이 말씀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소망만 붙잡고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키실 것이며, 우리의 삶에 믿음 보고 2.0을 써내려가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대신하여 우리를 위하여 가장 깊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가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다윗의 뿌리이시며,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온갖 모욕과 침 뱉음과 고통을 당하면서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않으시고 잠잠히 침묵하셨습니다.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과 그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숨김없이 아버지가 할 만하시거든 이 자는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토로하셨던 주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으므로 고난에는 늘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심지어 그 뜻을 우리가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그분을 신뢰하며, 소망 가운데 오늘 다윗처럼 나의 소망은 죽게 있나! 라고 고백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를 다윗의 깊은 슬픔을 소망의 노래로 바꿔주신 그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거두시고 고난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토로할 때, 소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어떤 고난과 위기가 닥쳐도 하나님 앞에서 혀로 범죄 하지 않고, 이 모든 고난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고난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 가운데 나의 아픔과 슬픔을 토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기억하며, 나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고통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토로하고 쏟아 부어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땅에 잠시 당하는 고난 앞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의 소망되신 예수님을 꼭 붙잡아 깊은 슬픔을, 소망과 기쁨의 노래를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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