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8월 9일)
제목: 우리를 구별하시는 하나님"
말씀: 사사기 16:19-22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최종민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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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6:19-22,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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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부흥 보고 수요 저녁 기도에 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크나 큰 은혜를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 함께 나누실 하나님 말씀은 사사기 16장 19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사사기 16장 19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 390페이지 사사기 16장 19절에서 22절 말씀 함께 교독하시겠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갖는 그 신앙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위해서 간구하며 나아갑니다. 예를 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면서 또한 이제 다윗과 같은 담대한 믿음, 또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우리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는 솔로몬과 다니엘과 같은 지혜로 일터에서, 가정에서, 자연들을 위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지혜가 충만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간구하며 나아갑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온전한 순종으로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즉각적인 순종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을 우리는 들어서 주님 앞에 그와 같은 믿음, 그와 같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인물들 중에서 언급되지 않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삼손입니다. 우리는 삼손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힘이 셉니다. 그리고 나실 인으로 구별 받았고 사사기에서 마지막 사사로 등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좋지 않았다. 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삼선을 생각할 때에 그가 과연 하나님의 사람인가라고 우리는 의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32절은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2,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브리서 저자는 11장 믿음 장을 말하면서 32절에 누구를 말하냐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나열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도온, 바락, 삼손을 말하면서 그 사이에 삼손을 넣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 뒤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담고 싶어 하는 다윗도 여기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사무엘과 선지자들, 정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그 사이에 믿음의 사람으로서 누구를 놓고 있냐면 바로 이 삼손을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게 되면 우리는 아, 삼손은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맞구나! 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손과 같이 살고 싶으세요? 삼손과 같은 믿음으로 삼손과 같은 그런 삶의 결말을 주요 나에게 주시옵소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삼손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뿐입니다.

그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끝은 너무나도 후하고 비참하게 죽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누구도 삼손과 같은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탄생 기사를 처음부터 살펴보게 되면 그와 같이 그 앞에 탄생을 바라보며 바라볼수록 기대와 소망이 충만한 사람이 구약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의 그 탄생 이전에 바로 사사기 13장에 무엇이라 말하냐면 바로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어두운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시기 위하여 임신하지 못하는 마노아의 아내를 찾아가서 무엇이라 말하냐면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서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나실 인으로 구별한 사람이며 또한 나신으로 세웠을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삼손의 어머니가 되는 이 만호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그리고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을 찾아와서 아들을 낳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를 어떻게 키워낼지 나실 인 기회를 주면서 그가 나실 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을 말해줍니다. 그때 마노아가 다시 한 번 우리 가정 가운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그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옵소서!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다시금 그 여호와의 사자를 나타나게 하셔서 어떻게 양육해야 될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보내신 이 여호와의 사자, 이 여호와의 사자의 이름을 바로 이 나노아가 묻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때 이 여호와의 사자가 무엇이라 말하죠? 바로 기묘자라고 말합니다. 이 기묘자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사람일까요? 어떠한 인물일까요? 바로 구약성경에서 얼마 등장하지 않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연이 바로 이 기묘자라는 것입니다. 이 삼손이라는 나실 인이자 사사를, 태어나게 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자 누가 나타났느냐? 바로 신약에서, 이 땅에 오셔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우리 수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삼손이 도대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 길래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가 태어날 것을 말씀하셨는지 우리는 기대하게 됩니다. 이 나실 인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민수기 6장에 보게 되면 나실 인의 규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나실 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6장에서 말하는 나실 인은 바로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특별히 구별하여서 선하여 자기 자신을 드린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게 되는 이 삼손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선별하여서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린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주권에 따라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구별하셨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 나실 인은 바로 이 히브리어 나자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바쳐지다, 봉원하다 이 의미와 함께 ‘구별 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삼손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그의 탄생 가운데 놀라운 계획 가지고 그를 나신 인으로 세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13장 1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그들이 그 죄악 가운데서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신을 섬기는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징계하시기 위해서, 그 불레셋 가운데 40년 넘겨주신 그 고통의 시간, 인내의 시간을 주께서는 이제 그만 멈추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삼손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시작할 사람이 누구냐 바로 이 삼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구원을 이루실지, 어떻게 역사하실지 기대하고 소망하게 됩니다. 이 기대와 소망은 바로 사사기 13장 24절과 25절 말씀을 통해서 더욱 극대화됩니다.

*사사기 13:24-25,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25절 말씀에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시작한 이 하나님의 구원자로서 삼손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어떻게 붙드시고 함께하셨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소라, 소라라는 땅은 바로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에스다올이라는 것은 바로 이 유다와 단 지파 사이의 경계선에 있는 말을 말하는 것이죠. 이 사이에 소라와 에스더블 사이에 마하네단이라는 그 마을이 있습니다. 마하네단이라는 것은 바로 이 삼손의 고향입니다. 삼손이 태어나서 자란 곳, 그리고 나중에 죽어서 그가 묻힌 곳이 바로 이 마하네단이라는 것이죠. 삼손이 그의 삶을 시작한 곳, 그의 삶을 펼쳐나간 곳,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을 이루고 나서 결국 묻혀서 죽은 곳, 바로 이곳이 마하네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어떻게 하셨냐면 여호와의 영, 성령, 하나님께서 이 삼손을 붙들어서 움직이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신약적인 표현으로는 무엇을 말하냐면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이제 삼손을 통하여 놀라운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기를 주님이 준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이 삼손을 통해서 놀라운 계획과 거룩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정으로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다고 로마서 5장 8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를 통하여 주 거룩한 뜻을 온전히 행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줄로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시기 위해서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나실 인으로, 또한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부르신 사사로서 이 삶을 시작한 이 삼손이 14장에서부터 어떠한 역사를 감당했을까요? 우리는 이와 같은 좀 낙관적인 한번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와 같이 이 삼손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사사로 구별되어서, 또한 나실 인으로 주님 앞에 선택되어서, 그 배후 력과도 같은 그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모아서 블레셋을 공격할 모든 수단을 갖추고 전략을 세우고, 이제 분리세대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삼손은 사사기 14장에서부터 그와 같이 행하지 않고 블레셋 여인을 쫓아다니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계획과 소망을 가지고 삼손을 사사로, 나실 인으로 세웠지만 이 삼손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도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27살의 전도사로 이제 사역을 시작했는데 이제 제가 이제 많은 처음 사역한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 앞에서 설교를 하려고 이제 설교문도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기도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단상에 서서 이 강단에 서서 말씀을 선포하면,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며 주님 앞에 엎드려 엉멍 울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가 설교를 마치자마자 또 다른 의미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정말 절반 이상의 분들이 깊은 안식 가운데 들어가셔서 편히 쉬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그런 거 없으시죠? 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진정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인데 우리의 삶에는 그런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말 기도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데 그 기도가 응답되기는커녕,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는가? 내 기도에 지금 귀 기울이고 계시는가? 우리는 의심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이 삼손을 세웠다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시작하셔야 되는데, 이 삼손, 하나님께서 나실 인으로 세운 이 사사는 지금 분류된 여인들 뒤를 쫓아다니기 바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이 사설을 통해서도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사사기 14장 4절 말씀 우리 같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하였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14:4,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자신의 정욕에 따라 행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했습니다. 민수기 6장에서 말하고 있는 나실인 규례에는 아내에 대한 말은 없습니다. 사사가 죄송합니다. 나실 인이 어떻게 아내를 맞이하고, 그 아내를 통해서 어떻게 가정을 꾸려야 되는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나실 인 교리와 비슷한 것이 바로 제사장 규례입니다. 레위기 21장에 말하고 있는 이 제사장 규례에 따르면, 제사장은 바로 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현숙하고 정결한 처녀와 결혼해야 된다는 그런 교례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사로 세워진 이 나실 인 삼손은 그와 같이 이 제사장들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정숙한 여인과 함께 결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여인을 쫓아다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바로 자신의 정욕을 따라서 행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당시에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이 세속주의에 휩쓸려서, 혼합주의에 휩쓸려서, 블레셋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그 모습을 지금 하나님 앞에 구별되어 거룩하게 선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이 삼손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상소를 통해서 놀라운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혈을 단신으로 불레셋과 싸우지 마.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그에게 승리를 허락하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로마서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죄악을 따랐던, 자신의 욕망을 따랐던 이 삼손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이 삼손이 자신을 구별하여서 거룩함을 온전히 지켜가면서 세상과 자신을 구별하여서 주님 앞에 자신을 내어드렸다면 어떤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온전한 구원 완벽한 구원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블레셋을 향하여서 이루고자 하시는 그 놀라운 구원 이스라엘을 블레셋 가운데 건져내시고자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면 이 시대에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삼손과 같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구별되어 주의 거룩한 말씀으로 자신을 선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들고 나아갈 때에 우리를 통하여 우리가 진정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놀라운 구원과 회복의 역사, 회복을 넘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을 주님은 우리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요한일서 2장 15절 16절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2:15-16,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누구를 사랑해야 될까요? 오직 우리 주 하나님, 우리 아버지만을 사랑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 앞에 우리가 갖춰야 되는 것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이냐? 바로 거룩히 구별된 삶입니다. 구약에서 나실 인이 있었다면 이 시대에는 바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구약에서의 나실 인과 같은 존재이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지금도 블레셋이라는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들, 우리의 가정,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모든 주님 믿지 않는 영혼들을 우리를 통하여 구원하기를 시작하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를 통하여 이 놀라운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들릴라와 같은 이 세상 가운데서 몸을 누이면 안 됩니다. 그 들릴라의 그 무릎에 우리의 머리를 누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거룩하게 지키고 온전히 주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들을 내어드리며 나아가야 합니다. 삼손이 마지막으로 찾아가 그의 머리를 누인 여인이 바로 들릴라죠. 이 들릴라의 이름에 대해서 여러 신학자들이 다양하게 말합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 이름은 히브리어로 밤과 비슷한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 ‘밤의 여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고, 또 다른 신학자들은 요염하다, 유혹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을 또 합니다. 이 여인은 바로 어떤 사람이냐 바로 어둠 가운데 속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유혹하고 그 유혹 가운데 빠뜨리는 사람이 바로 이 들릴라, 이 밤의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들릴라는 어디 살았냐? 바로 소래 골짜기에 살았습니다. 소레는 바로 이제 삼손이 자신의 삶을 시작했던 이 마하네단과 근처에 있는 블레셋의 국경 지역입니다. 그래서 이 소래에 사는 사람들은 불레셋 사람도, 이스라엘 사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리하면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붙고, 아니면 블레셋 사람들이 유리하면 블레셋 사람들한테 붙는 그런 회색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이 들릴라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 블레셋 사람이냐 이스라엘 백성이냐 의견이 분분합니다. 근데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들릴라는 이 당시에는 블레셋에 붙어서 볼레셋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이 들릴라의 그 품에 안겨서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블레셋의 지도자들이 바로 이 삼손 안에 있는 삼손을 품고 있는 이 들릴라에게 찾아가서 무엇이라 말하냐면 바로 이 삼손을 결박하여 넘겨주면 내가 우리가 바로 너에게 거금을 줄 것이다 그렇게 유혹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릴라는 그때부터 이제 삼손에게 어떻게 하면 당신을 결박할 수 있나요? 라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여기서 결박이라는 것은 단순히 묶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결박은 영적인 의미를 보게 되면 바로 이 삼손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삼손을 분리하는 그런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을 떼어놓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당신을 분리시킬 수 있나요? 지금 들릴라는 계속적으로 묻고 있죠? 그런데 세상은 우리에게 묻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있는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역사하심이 어디로 통하나요? 묻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주님 앞에 온전히 서 있지 못하면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에게 묻지 않습니다. 우리의 거룩함을 경건함을 밀어버립니다.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바쁘기 때문에, 생활이 너무나도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말씀 읽을 시간도 없고 기도할 시간도 없고 주님 앞에 나아가서 주의 말씀에 귀 기울일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들릴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들릴라에 지금 무릎에 누워서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그 나실 인의 규례가 없어지는지도 모르고 우리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사사기에서 삼손이 바로 이 들릴다에게 자신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주신 능력이 없어질 것인가 결박당할 것인가에 대해서 세 번을 말합니다. 이 세 번 다 나실 인의 규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 방법을 써서 결박하려 한다 할지라도 이 삼소는 결박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함을 가지고 있다면 주의 거룩한 말씀으로 나아간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 간절한 기도로 나아간다면 이 세상은 우리를 어떠한 방법으로든 결박하려 한다 할지라도 결박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 39절 말씀 다 같이 한 목소리를 또 하겠습니다.

*로마서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지 일이나 장례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기쁨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는 이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온전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결박하려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우리를 구별한다 할지라도 분리시키려고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붙잡고 계시고 끊어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한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항상 기억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삼손이 해야 될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을 세 번이나 결박함으로 자신을 불레셋 가운데 넘겨주려 했던 이 들릴라, 이제 들릴라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될까요? 그 집에서 나와서 도망가야 됩니다. 그 집에서 나와서 그 집을 벗어나야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들릴 나의 무릎에 누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자신이 더 이상 이 들릴러와는 상관없는 사람임을 고백하면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주신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사람임을 온전히 고백하며 사명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삼선이 들릴라를 떠났을까요? 안 떠났을까요? 네 다 대답하고 계시죠 어떻게 됐을까요? 들릴라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들릴라를 떠나지 않고 어떻게 했을까요? 여전히 들릴라 품 가운데 있습니다. 들릴라가 어떻게 했을까요?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 아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계속적으로 매일 마다 울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계속적으로 삼손이 괴로워 죽기까지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당신을 결박할 수 있습니까? 드디어 삼손이 비밀을 말합니다. 나는 나실 인이고 나실 인의 규례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 들릴라는 어떻게 합니까? 바로 그의 머리를 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서는 똑같이 이 삼손을 끼우기 시작합니다. 삼손, 일어나세요. 즉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왔어요. 똑같이 자신을 묶고 있는, 결박하고 있는 그 밧줄을 풀고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발휘하려고 했을 때에, 삼손은 여호와의 영이 성령께서 자신을 떠난 지 몰랐습니다. 그리고서는 결박당하여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끌고 가는 대로, 두 눈은 뽑히고 그는 이제 맷돌을 지하 감옥에서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삼손을 통해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냐면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나시린 규리와 같은 경건함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 3:5,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 바로 3장 2절에서 4절 말씀 가운데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쭉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 나열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종합해보면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바로 경건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선적으로 주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의 거룩한 말씀 붙들고 나아가며 주의 거룩한 뜻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따라 조차 살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경건함이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주신 경건의 능력으로 세상 가운데 어떠한 일을 당하든지 우리는 담대히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승리를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사기 16장 이 말씀 가운데 우리가 함께 읽었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바로 22절 말씀입니다. 사사기 16장 22절 말씀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우리 온 마음 다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사기 16:22,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지금 삼소는 어디에 있죠? 감옥 가운데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죠? 눈이 뽑혀서 연자 맷돌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끝났습니다. 주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재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그가 그 상황 가운데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22절 말씀이 바로 이어집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 하니라’ 이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주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저의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이 삼손에게,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삼손아 네가 지금 나실 인의 그 규례를 어겼지. 너는 이제 더 이상 나실 인이 아니지. 그런데 내가 다시 너의 머리털을 자라에 할 거야. 내가 너를 향해서 가지고 있었던 거룩한 계획, 거룩한 뜻과 소망 나는 버리지 않았단다. 나는 너를 통해서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룰 거야. 주님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좌절하고 낙심하고 낙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재정적인 문제, 자녀의 문제, 인생의 개인적인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모든 문제들이 우리를 엄습할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하냐면 네가 어려운 가운데 있지만 힘들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가운데 있지만 나는 너와 함께 있단다. 내가 너와 동행한단다. 주님을 말씀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승리를 외칠 수 있고 주님 앞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결박하게 한 자신의 신에게 지금 영광 올려드리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다곤 신전에 다 모여서 모든 지도자들 모든 방백들 다 모여서 파티를 개최합니다.

그들이 즐겁게 파티를 하면서 야! 우리의 전리품과 같은 삼손을 끌어와라 그러면서 제주를 부리게 하고 그러면서 막 즐겁게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서는 이제 기둥에 눈이 뽑힌 상태로 기둥에 이제 붙들고 있는 그 삼손, 그 삼손이 자기를 도와주는 어린 소년에게 말합니다. 나를 이 다곤 신전에 바치고 있는 기둥을 붙들게 해 달라. 그리고 저는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님, 이번 한 번만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이번 한 번만 나를 도우사, 내가 이 불레셋 사람들 가운데 주의 거룩한 구원을 나타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나를 기억하사.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삼손을 우리를 단 한 번만 기억하실까요? 우리 함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49장 1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사야 49:15,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이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주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절대 잊지 않으십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너무 예쁘죠 어머님은 어머니는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젖 먹는 자식을 잃을지라도 나는 잊지 않겠다. 나는 잊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나는 잊지 않고 너를 돕고 너와 함께하며 너를 일으킬 것이다. 주님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으며 고백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주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바로 삼손과 같이 주의 거룩한 뜻 가운데 행하며 주의 뜻대로 간구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고 또한 음부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주의 거룩한 군사로서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음부의 권세가 흔들려서 무너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고 바라셨던 이 세상 가운데서 구별하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의 삶을 통해서 흘러가며,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모든 죄의 사슬에서 끊어져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임하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삶을 날마다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 말씀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20,
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께서 이 말씀 붙들고 나아가게 하시는 우리 모두가 이 시대에, 실패한 삼손이 아니라 주의 거룩한 말씀 의지하며, 주의 거룩한 말씀의 능력을 날마다 우리 삶 가운데 행하며, 다음 세대를 그리스도에 일으키며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가정과 일터와 이 사회와 나라와 민족을 온전히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요약
우리는 온전히 세상 가운데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음을 이 시간 고백하며 아버지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주의 거룩한 말씀의 권능과 경건의 능력을 주셨으니 우리가 날마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 삶 가운데 음부의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체험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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