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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예배(주후 2020. 7. 15일)

제목: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 마태복음 6:25-34절

설교자: 배성진 목사님

 

우리시대는 참 염려할 것이 참 많은 세상이다. 혹시 ‘내가 코로나를 걸리지 않았을까’로 위험에 빠지는 것을 아닐까로 염려한다. 우리는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많은 염려로 살아왔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노후에는 과연 무얼먹고 살 수 있을까로 염려한다. 아이들의 공부, 시집도 보내고 결혼도 시킬 수 있을까로 우리 인생은 이렇게 크고 작은 염려 덩어리로 머리에 얹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오래전에 염려가 참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이다. 탕자는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미리 받아서 나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들 탕자는 그 많은 재산을 다 허비하고 결국 거지가 되었다. 탕자는 이제 염려한다. 무엇을 먹을까를 그래도 오늘은 쥐염 열매라도 먹을 수 있는데 내일은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를 염려한다. 또 무엇을 입을까도 염려한다. 옷에서는 더러운 옷으로 갈아입을 옷이 없다.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며 이 탕자는 늘 염려하는 삶이 우리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염려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염려하지 않게 하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길을 주신다.

*우리들에게 주님은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첫째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큰 능력으로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이 우리 삶을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28, 30절 – 28절 -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들판에 아무렇게나 핀 야생화를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다. 대가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꽃이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어서 그 사진을 확대해서 살펴보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정교하고 생김이 기품이 있는 색깔로 도무지 인간이 만들지 못하는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아무도 그 꽃을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비바람에 꺾이고 사라질 꽃들이다. 하찮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하찮은 꽃도 귀하게 입히신다. 그런 하찮은 피조물도 하나님은 귀하게 입히시는데, 하나님은 소중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입히실 것인가!!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지금 이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소중하게 우리 삶을 돌보신다는 것이다. 주님은 들에 백합화를 말씀하시기 전에 공중에 새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신다. 하늘에 보면 널린 것이 새들이다. 어렸을 때 참새를 잡아보았다. 그 고기를 구워먹으면 맛있다. 그래서 마당에 그 망태를 쳐두고 쌀을 보면 참새가 날아와서 먹으려고 할 때, 그 망태의 줄을 당기면 잡힌다. 당시에 나름 상당히 현대적인 사냥 시스템인 셈이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새가 오지 않았다. 참새가 세상에 먹을 것이 천지인데 고작 쌀 몇 톨을 보고 그 망태 밑으로 들어오겠는가! 이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는 참새 먹이가 참 많다는 것을...세상에서 처음 겪은 사업의 실패인 셈이다. 하늘의 새는 먹을 것에 대해 애를 그리 쓰지 않는다. 늘 놀러 다니다. 그렇다고 새들이 굶어죽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26절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들보다 더 귀하게 먹이시고 돌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얼마나 더 먹이시겠는가! 우리를 소중히 돌보시니 우리 삶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둘째 –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아시기 때문이다.

32절 후반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다 아시기에 우리에게 있어야할 것을 주시고, 있지 않아야 할 것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아시고 돌보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삶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잘 모들 수 있다. 어떤 아들이 배고프다고 돌을 달라고 한다. 배가 고프면 떡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이 떡과 돌을 구별을 못하는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떡 대신에 돌을 달라고 한다. 그 아버지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 아버지가 돌을 달란다고 돌을 줄까요? 그렇지 않다. 돌은 좋은 응답이 아니다. 무척 위험한 응답이다. 아버지는 돌을 주지 않고 배고픈 아들에게 떡을 준다. 그것이 자녀를 잘 알고 돌보는 것이다. 우리도 그 아들 같아서 염려하면서 기도로 뭔가를 구하는데 잘못 구하는 경우가 참 많다. 우리에게 있을 안 되는 것을 구할 때가 있다. 우리가 잘못 구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미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잘 아시는 분이시다. 우리 인생 전체를 심지어 먼 미래까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또 그것을 주신다. 우리 인생을 살펴보시면서 있으면 안 되는 것을 아시고 아무리 우리가 구해도 주시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어떤 때는 왜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염려하고 발을 동동거리고 때론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참 지나고 보면 그것이 내게 있었으면 큰일 날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신데 더욱이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함을 잘 아시고, 그것을 적절하게 주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무엇을 먹을끼 무엇을 입을까 삶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하신다. 우리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란다.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 하나님을 신뢰하고 염려하지 말고 당장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망도 말고 결국 하나님께서 선하게 우리 삶을 인도하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자 되길 바란다. 주님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것에 염려하지 말라시며,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주신다.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은 먼저 우리에게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더 중요한가?

-여기서 그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이다. 오해로 어떤 분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더 열심을 내야한다고 염려한다. 하나님나라에 먼저 힘을 써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굉장히 신앙적이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문맥상 맞지 않다. 그것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문자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얻는 것에 힘을 쓰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힘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돌보심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 땅에 살 동안 구원받은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돌보심의 안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우리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서 돌보심과 다스림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돌보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혈을 믿었기 때문이며 절반은 얻었다. 나머지 절반의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이다.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이다. 이 역시 문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힘을 쓰라는 것이며 하나님 보시시기에 의롭고 합당하게 살라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백성이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백성이 왕에게 충성하듯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왕 대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 성경 전체에 흐른 언약 개념이다. 우리가 구약성경, 신약에서 약이란 언약을 말한다. 언약의 당사자가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우리가 언약이 왕이신 하나님과 백성인 우리의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돌보시고 그의 백성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충성하고 순종하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의 언약개념이다.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시다.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기까지 충실하신 분이시다. 그 충실하심으로 우리를 품으시고 돌보신다.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왕으로서 언약에 충실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언약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되 그 말씀 앞에 내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말을 주셨냐하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큰 낭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언약에 충실하지 않아서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고 말았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비참함을 보시고 안타까운 모습을 보시고 너희는 그러지 말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충실한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언약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주신다는 것이니 하나님을 신뢰하면 되는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났기에 늘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없기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으면 탕자는 걱정이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아 그것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늘 기다리신다. 돌아오라 그러면 회복된다라고 아버지는 기다리시는 것이다. 돌아온 탕자는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 아버지께 달라고 할 이유가 없다, 아버지가 다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장 좋은 것으로 먹이신다. 또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으로 아들을 입히신다. 계절마다 잘먹고 잘 입게 되고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하나님께 돌아와 아버지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내 고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염려할 것이 많은 세상을 넘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삶으로 은혜가 있기를 기원하다.

-하나님과 좋은 언약관계를 유지하면서 염려하지 않고 살아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다윗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하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고백한다.

시편 23편 1-2절에 그 백이 담겨있다.

 

시편 23장 1-2절 –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 역시 수많은 문제와 문제로 염려할 수밖에 없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고백한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한다.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한다. 다윗이 그런 고백을 한 것은 하나님과 목자와 양의 관계였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다윗의 목자가 되어주셔서 양 같은 다윗의 삶을 돌보셨기 때문이다. 사실 양은 염려할 것이 많은 동물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약해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 양은 푸른 풀밭에 가야 먹을 수 있고, 쉴 만한 물가로 가야 먹을 수 있다. 어떻게 먹을 것을 찾지를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들짐승에게 잡혀 먹힐지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양은 염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염려 없이 사는 양들이 있다. 바로 목자와 함께 있는 양들이다. 목자 있는 양은 염려할 것이 없다. 목자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갈 양은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목자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목자가 가자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서야한다. 순정하면 그래서 염려가 없게 살아가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순종해서 하나님도 양처럼 돌봐주셨다. 다윗의 목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목자이시기에 하나님만 따라가면 된다. 양처럼 우리도 연약하기에 우리도 하나님만 따라가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하여 살면 하나님은 돌봐주신다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께 충실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라.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좇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주님께 돌아오면 회복된다는 것을 믿고 주님이 맡긴 삶을 충실히 해서 살기를 바란다.

♣요약

염려할 것 많은 세상에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심을 믿고 언약에 충실하셔서 우리를 돌봐 주시니 우리도 하나님과 친밀하여 언약에 충실해서 주님을 늘 순종하며, 주님께 충성을 다하길 마음과 뜻을 다하게 해주시길 원한다. 세상일에 염려하기보다는 기도와 찬양과 예배에 열심을 내며, 내게 밑겨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은혜롭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나의 의를 내려놓고 주님 나라의 의를 구하며 뜻을 따라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염려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의식주 문제 ( 6:25-34 )

예수님께서는 의식주 문제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목숨과 몸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인 영혼의 구원이 음식과 의복 같은 부차적인 것에 대한 염려보다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의식주에 연연할 때 물질의 노예가 되기 쉽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재 빈부의 문제나 분배의 문제가 괴리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일과 영광을 돌리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세상의 염려에서 벗어나 의식주 문제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워야 한다.

*내일 일의 문제 ( 6:34 )

예수님께서는 염려가 내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한 불신앙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통해 오늘의 은혜는 오늘에 족하고 내일은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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