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題僧舍 / 李崇仁 [제승사 / 이숭인] -
山北山南細路分 [산북산남세로분] 산 아래 위쪽으로 오솔길이 나있고 松花含雨落繽紛 [송화함우락빈분] 송홧가루 비 머금고 어지러이 떨어지네. 一帶靑烟染白雲 [일대청연염백운] 한 줄기 푸른 연기 흰 구름을 물들이네. 이번엔 노란 송홧가루가 바람에 날린다고 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5월초쯤이었던 모양이다.
아래위로 난 산길을 따라 시인은 스님의 암자를 찾아간다. 비를 머금어 날이 잔뜩 흐렸다. 산 위 쪽은 흰 구름에 포근히 잠겨있다. 비가 오기 전에 빨리 절을 찾아들어야겠는데 절은 좀체 눈에 보이질 않는다.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닐까? 마음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자꾸 고개를 들어 불안해진다. 그때 저 멀리 웬 스님 한 분이 물을 길러 나왔다. 반가워 빨리 가서 절 있는 곳을 물어보려고 서둘러 갔더니만, 그 사이에 스님은 산모롱이를 돌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잠시 후에 그 너머 어디에서 한 오리 푸른 연기가 한 줄기 하늘로 올라간다. 하얀 흰 구름 사이로 생가지를 태우는 푸른 연기가 경계선을 그으며 구불구불구불 올라가고 있다. 한 폭의 그림이다.
옛날 송나라 때 휘종 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하던 임금이었다. 그 자신이 또한 훌륭한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툭하면 옛 시의 한 구절을 가지고 화가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곤 했다. 한번은 이런 제목이 나왔다.
"亂山藏古寺 [란산장고사]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
어지러운 산 봉우리 속에 감춰져 잘 보이지 않는 옛절을 그리라고 한 것이다. 절을 그려야 하지만, 감춰져 있는 절이라야 한다. 그래서 화가들은 깊은 산 숲 속에 절의 지붕 처마만 삐죽이 나와있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또 어떤 화가는 탑이 숲 속 나뭇가지 위로 삐쭉 솟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1등한 그림은 화면 어디에도 절을 그리지 않았다. 다만 숲속 오솔길에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지고 물을 길어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다. 스님이 물을 지러 나왔으니 분명히 그 근처 어딘가에 절이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산이 하도 많아서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자! 절을 그리라고 했는데, 절을 그리지 않고, 물 길러 나온 스님을 그렸다. 절이 그곳에 있다는 것은 이 스님만 보면 누구나 알 수가 있다. 이것이 그리지 않고 그리기이다.
시인도 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그도 또한 스님의 집을 찾아 길을 헤매다가 숲 저편 너머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를 보고, 그곳에 절이 있음을 겨우 알아차리고, 휴우하며 마음을 놓고 있다. 흰 구름 속에 절을 감춰두고 산은 나그네의 발걸음을 지치게 한다.
정말 소중한 것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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