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내신 연꽃송이 ☆
연꽃을 군자라고 하지만, 강남의 채련곡(采蓮曲)을 들을 때면 반드시 오희월녀(吳姬越女), 즉 강남의 아가씨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신앙 때문에 연꽃을 너무나 신성시하여 도리어 그 참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데 장애가 된다. 고려에서는 연뿌리나 연밥을 모두 감히 따지 않는다. 나라사람들이 모두 그것이 부처님의 발이 올라앉으신 곳이라고들 말한다. 그것이 부처의 보좌(寶座)인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연꽃은 거의 천편일률로 종교적 색채를 띤 이야기뿐이어서 따뜻한 인정미 있는 일화를 좀체 기대하기 어렵다. 불교 국가는 어디든지 대부분 같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심한 편이다.
그러나 연꽃에 대해 예외적으로 운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하나 전해진다. 예전 고려 충선왕(忠宣王)께서 원나라 서울인 연경에 계실 때 어쩌다 한 아름다운 여인과 가연(佳緣)을 맺어 애정이 자못 깊었었다. 그러다가 충선왕이 하루 아침에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녀에게 사랑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주었다. 생이별의 괴로움에 울던 그녀는 충선왕에게 시를 보냈는데 그 시는 이렇다
贈遺蓮花片 [증송연화편] 보내신 연꽃 송이 서양풍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궁화나 장미를 준다고 한다. 충선왕이 그녀에게 연꽃을 준 것은 자못 운치가 있다. 이것이 우리 역사상에 나타난 연꽃에 얽힌 로맨스로는 대표적인 것이다. 불경에는 이따금 청련(靑蓮)이 나타난다. 옛날에는 있던 것이 오늘날 없어지고 말았는지, 인도 본토에서도 청련은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북경에는 자주색에 가까운 홍련이 있다고 한다.
위 시에서 여인에게 꺾어준 연꽃을 두고 시에서 '작작홍(灼灼紅)' 즉 불타듯 붉다고 노래한 것만 보더라도 그것이 흰 색 꽃은 아니고, 담홍 혹은 아주 붉은 홍련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진흙탕에 더럽히지 않는 정결한 꽃이니, 멀리 떠나는 애인에게 주는 것이 또한 의미가 깊다.
충선왕이 스스로 이런 것을 의식하고 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꽃을 기념으로 받은 그 여인은 충선왕이 떠난 뒤 항상 몸을 정결히 지키면서 그를 오매불망하였다. 충선왕은 그녀를 잊을 수 없어 이제현을 돌려보내 그녀가 어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라 하였다. 이제현이 가보니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거의 다 죽어갈 지경이었다.
이제현을 본 그녀는 왕에게 전해 달라며 위의 시를 써 주었다. 그러나 이제현은 충선왕의 마음이 흔들릴까 염려하여 그 시를 전하지 않고, 충선왕이 그녀의 안부를 묻자, 술집에 나가 젊은이들과 노느라 찾을 수가 없었노라고 거짓으로 아뢰었다. 왕은 침을 뱉고 그녀를 잊었다.
1년 뒤 왕의 생일날 이제현이 사죄하며 그녀의 시를 왕에게 올리며 사실대로 아뢰었다. 충선왕은 이 시를 읽고 울면서, "만일 그때 이 시를 보았더라면 귀국하지 않고 그녀에게도 돌아갔을 것이다."라고 하며, 이제현을 책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의 충성과 의리를 가상하다고 칭찬하였다 한다.
우리 지난 역사를 되돌이켜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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