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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陶靖節自挽詩(화도정절자만시)- 崔奇男
나의 죽음을 슬퍼하며 
  

乘化會歸盡  승화회귀진
六十敢言促  육십감언촉

조화에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니  
육십 평생을 어찌 짧다 하랴.

但恨失師友  단한실사우
無善可以錄  무선가이록

스승과 벗들을 잃게 되고
이름 남길 만큼 좋은 일 못한 것만 한스러워라.

游魂散何之  유혼산하지
風號墓前木  풍호묘전목

혼백은 흩어져서 어디로 가나,
무덤 앞 나무에선 바람이 울부짖겠지.

在世無賞音  재세무상음
吊我有誰哭  적아유수곡

세상사는 동안 아름다운 시 못 남겼으니
그 누가 곡하며 내 죽음 슬퍼하랴.

縱有妻兒啼  종유처아제
冥冥我何覺  명명아하각

아내와 자식 놈들이야 운다고 하겠지만
어두운 땅속에서 내 어찌 들으랴.

不省貴者榮  불성귀자영
焉知賤者辱  언지천자욕

귀한 자의 영화도 돌아보지 않았거든
천한 자의 치욕을 내 어찌 알랴.

靑山白雲中  청산백운중
歸臥無不足  귀와무부족

푸른 산 흰 구름 속에
돌아가 누우면 부족함도 없으리라.

  

※나의 나이 예순 셋이 되었는데, 몇 년 전부터 왼쪽 귀가 멀어서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올해엔 오른쪽 팔에 병이 들어서 마음대로 굽히고 펴지를 못했다.

연달아 침을 맞고 뜸을 들였으며 또 약까지 먹었지만,

시원하게 낫지를 않았다. 기력이 차츰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보니, 生·老·病·死라는 말도 거짓이 아님을 알겠다.

신음하던 중에 우연히 『靖節集』을 펼치다가 「自挽」편을 보고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붓을 들고는

그 운에 따라서 나의 느낌을 적었다.

  

崔奇男(최기남 1586년(선조19)∼미상).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영숙(英叔),

호는 구곡(龜谷)·묵헌(默軒).현종초에 실록감인원(實錄監印員)이 되어

효종실록(孝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나이가 70여세였다.75세 때인 1660년에는 교유하던 위항시인인 정담수(鄭柟壽)·남응침(南應琛)·

김효일(金孝一)·최대립(崔大立)·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동인지 육가잡영(六家雜詠)을 간행하였다.

신익성은 “그의 고체시는 육조(六朝)의 것과 같고, 가행(歌行)은 당나라 시인들의 풍이며, 율조(律調)는

장경(長慶: 唐穆宗年號, 821∼824) 이전의 어투를 본받았다.”라고 평하였다.저서로는 구곡집(龜谷集)

2권이 있는데 문(文)은 자서전격인 졸옹전(拙翁傳) 한편뿐이고, 나머지는 440여수의 시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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