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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07일) 제목: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07일)
제목: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Who is JESUS") ⓼번째
말씀: 여호수아 20:1~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최민규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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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0:1~9,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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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22차 봄 특새에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2차가 되다 보니까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아니하고, 물론 힘든 사람 몇 명은 있었지만 힘들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새벽에 일어나는 것 훈련이 되어 있어 가지고 물 흐르듯이 해서 자연스러웠습니다. 주의 영이 많은 곳에 주시는 자유를 능력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번에 22차 특세니까 22차 총선도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첫 번째 오늘 생각할 것은 오늘 제목이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이라고 그랬는데 성찬을 앞에 놓고 우리가 아 좀 말씀 앞에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먼저 생각할 것은 정글 같은 이 세상입니다. 여러분 3절에 보니까 도피성이 왜 생겼는가 보니까, 어떻게 실수했다고요?
I. 첫째, 정글 같은 세상.
*여호수아 20:3,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 자를 피할 곳이니라.
-이게 뭐 이렇게 소위 과실치사죠 그 이유는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 자를 피할 수 있도록, 그리고 9절에서도 오늘 보니까,
*여호수아 20:9,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오늘 여러분들 그 구절 그쪽에 좀 뭔가 좀 어리버리 하게 합독을 하시는데 마지막에 뭔가 9절에 제 보니까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리고 마지막 구절 뒤에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마지막에, 이 땅의 삶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부지중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를 들어서 나무 하다가 어떻게 도끼날이 날아가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이웃과 서로 다투다가 어떻게 상대편을 밀쳤는데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살인이 되어서 과실치사(過失致死)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앞에는 가나안 전쟁을 7년 동안 수행을 했습니다. 외부적 전쟁이죠.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 근처에도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 전쟁 또 이 북한에 있는 탈북자들, 또 북한에 지금 그 전쟁 같은 삶을 사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갑작스러운 지진이 난 대만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이 세상은 뭐 이것도 어렵지만 아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이 세상은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탈락하고 이긴 자만 살아남는다는 승자 독식의 논리가 타락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어떤 철학자는 삶이 너무 무한한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갈등이 있으니까, 남을 짓밟지 않으면 짓밟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언제 뒤처져 낙오될지 모른다는 그 논리에 코뚜레를 꿰어서 끌려가는 그런 삶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참 짐이 있잖아요. 그거는 외부적인 전쟁도 그렇지만, 내면의 전쟁도 만만하지 않죠. 가장 극복하기 힘든 대상이 나 자신이에요.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젊은이들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내 자신이 정글이고 내 자신이 가장 큰 적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소위 중독,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성 중독, 게임 중독, 소위 어딕션(Addiction), 유튜브도 들었는데, 들었다 하면 그냥 1시간 2시간 3시간 쭉 가는 거지. 이것이 일상을 정글같이 옭아매어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도록 그리고 우리의 내면 가운데 나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상처 난 부분들 그리고 부지중에 나는 모르지만 상대방을 말로써 죽이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죠. 자, 외적으로, 내적으로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외부적으로 살인을 했을 때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특별한 사법 조직이나 경찰 조직이 없었어요. 그래서 피해자 가족들이 살인자를 조사하고 보복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소위 피해 보복의 관계였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으면 대체적으로 감정적이 되고 판단력이 흐려져 가지고 같이 망하거나 무고한 사람들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그런 비극이 있었어요. 이런 경우 이 정글 같은 사회 내 외부적으로 이런 경우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회 무슨 해결 방법이 있었을까? 3절에 보니까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가게 해라.” 그리로 도망가게 해라. 그러니까 그리로 라는 말이 이 도피성에, 도피성을 만드시고 그리로 도망가게 하라. 부지중에서 있던 사람들 무슨 우리 찬송은 피난처에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주 여호와 피난처요. 세상의 날 리을 다시 그치게 하시는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의 피난 도피성 피난처가 이 도피성이라는 말이에요. 도피성 피난처라는 말인데 refuge(도피), shelter(대피소), 그래서 오늘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가운데 이런 삶의 도피성이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한 사람도 없고 또 도피성에 가지 못할 만큼 저주 받은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정글 같은 세상을 다 피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정글 속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 힘 있게 살아갈 비결 중의 하나가 오늘 도피성이라는 사실이에요. 정글의 늪에 빠지지 않고 저와 여러분이 꿋꿋하게 우리의 삶을 걸어갈 수 있는 그 장소가 도피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나중에 깊이 들어가면 이 성찬이 우리의 삶의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와 성찬이 도피성이 되기 위하여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II. 도피성이라는 해답.
-도피성이라는 해답을 주님이 허락해 주셨는데 구약의 도피성은 아까 말씀한 대로 피해 보복자가 따라와서 죽이려고 하는 순간 그 그걸 이렇게 피할 수 있도록 레퓨지로서 쉘터로서 피난처로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요단 서편의 3개 요단 동편의 3개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루길이면 뛰어갖고 하루 만 4-50km, 한50km 정도만 48km에서 50km 정도만 뛰어가면 대체적으로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제가 한번 도표를 한번 만들어 드려서요.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왼쪽은 지중해고 밑에는 사해고 위에는 요단강이죠? 저기 뭐야 위에 갈릴리 바다죠 사인의 요단강이 있고 요단 서편에, 서편에 보세요. 오늘 성경 보니까 7절 8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납달리 산지에 갈릴리에 아니 보여줘요 예 갈릴리에 뭐예요? 게데스 갈릴리에 어디에 어 저 위에 저 위에 게데스 보입니까? 그 다음에 에브라임 산지에 3개보입니까?
그 다음에 유다 산지에 헤브론 보입니까? 저 근처에 예루살렘이 있죠? 요단 딱 잘라고 오른쪽에 이제 동쪽 동편에 뭐야 요단강 베셀 보입니까? 밑에 그다음에 길르앗 라못 보입니까? 중간에 저희 므낫세 지파 바산 골란이 보입니까? 제가 이걸 이런 걸 제가 잘 안 보여드리는데 이 보여드리는 거는 어디에 있어도 하룻길이면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저 도피성은 언덕 위에 산지에 있었어요. 접근이 늘 보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도피성을 향하여 잘 찾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계곡마다 다리를 놓고 또 안전판이 있었고, 그래서 결과 죽을 목숨이 구원받는 것이 도피성이다. 그리고 6절 그리고 이제 중요한 도피성으로 도망간 사람은 오늘 6절 시작.
*여호수아 20:6,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오늘 6절을 여러분, 2절 3절과 함께 잘 기억해야 되고,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도피성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고 그다음 그 살인자가 도피성에 들어갔을 때에,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뭐예요?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살인자는 그 성읍 고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을 자기 집으로 돌아갈 지이라 하시니라. 그 성 자기 집으로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도피성에 들어가면 이제 먹을 양식을 주고 거기에 살도록 되어 있는데 그래도 큰 감옥이죠. 감옥 같이 있는데 그 그가 자유의 몸을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당시에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제사장의 죽음과 도피성에서 편안했던 그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자유와 바꾸어지는 것이에요. 그러면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대제사장이 1년 만에 죽을 수 있으면 1년 만에 나오는 거고, 수십 년 동안 제 세상에 죽지 않으면 수십 년 동안, 거기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제사장 오래 살면 도피성 있는 사람이 ‘주여! 대제사장을 빨리 데려가 주옵소서.’ 그건 여러분 쓸데없는 상상이고 복음의 핵심을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자, 지난주에 지난 아론의 싹 난 지파이가 예수님이 뭘 예표 했다고요? 부활을 예표 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서 구약의 대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이에요.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그랬고 그래서 여러분 제가 자막을 해 놓으면요 같이 보겠습니다.
*구약의 대 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구약의 대 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훌륭합니다. 자막 팀 훌륭합니다. 정말 내가 감사드려요. 이번에 우리 그 특사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하고 저하고 19년 20년 영상 팀은 나하고 12년 발맞추어 왔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정말 오늘 이 말씀은 말씀도 안 봐도 여러분들 다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아까처럼 잘못된 상상하지 말고요. 대제사장이 죽어야 뭡니까? 도피성에 피한 사람이 자유롭게 된다. 이거 어떤 뜻입니까? 사실 도폐성에 들어간 사람은 과실치사로 죽어야 되는 거예요. 실수여도 고귀한 생명을 죽인 범죄자예요. 그런데 그가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 나왔다는 말은 그와 대제사장의 목숨과 바꿨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마치 영적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목숨을 버리시고 우리의 죽을 목숨과 바꾼 거예요. 복음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살인자가 도피에 들어갔다고 해서 살인자의 죄가 다 없어진 것이 아니에요. 모든 죄는 마땅한 형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죗값을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대속한 거예요. 대신 바꾼 거예요. 썹스티투션(substitution-치환, 대체) 된 거예요. 여기에 십자가의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범죄(犯罪)는 값을 치러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진노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도피성(逃避 城))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다 퍼부어 쏟아 부어진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의 죄를 지우개로 지운다고 다 지워지는 게 아니고, 우리의 죄를 지우개로 지운다고 다 지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죄를 내가 지어야 할 죄를 예수님께 다 쏟아 부으셨다. 그 말이에요. 그것이 도피성에 나타난 복음의 진리예요. 사도바울은 이걸 깨닫고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신 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했고 로마서 3장 26절에
*로마서 3장 26절
26 곧 이때에 자기 의로우심을 나타내 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의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뭐냐 하면 누군가가 형벌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누군가가 죗값을 치러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도피성 되신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이건 참 값비싼 은혜예요. 값비싼 은혜, 한 단계 더 올라가 가지고 구약의 도피성은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람들을 정글 같은 세상에서 보호해 주시지만, 오늘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가 믿는 이 참된 복음은 우발적인 살인자뿐만 아니라, 고의 적으로, 고의적으로 죽인 악질(惡質) 죄인까지도 구원(救援)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구약에서는 대 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성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만 신약 시대에 지금은 우리가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고 부활하신 그 은혜의 복음을 우리가 믿고 그분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을 의탁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의 몸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걸 너무 놀라워 가지고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 6장 18절부터 20절까지 또박또박 기록하고 있는데 뭐라고 그랬냐면 18절에,
*히브리서 6:18-20,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도피성을 찾은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아니라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았는데, 이것이 도피성이라는 거예요. 도피성을 찾은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아니라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았는데 이것이 도피성이라는 거예요. 도피성을 찾는 우리에게 큰 용기를 주시는데 그리고 이 도피성 안전한 곳에 누구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다음에 20절 보겠어요. 20절 시작.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아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대사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 그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이런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은혜의 보자 앞에 지금도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무슨 은혜가 있는가, 오늘 히브리서 6장 19절에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무슨 말인가? 이 시대의 정글 같은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시대의 파도에 흔들림이 없이 도피성 되시는 안전한 영혼의 닻을 경험하신 주님께 이 시간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주중에는 어떻게 보면 정글과 같은 세상 고통스럽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주일마다 예배에 이 예배가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우리가 내 삶을 올려드리고 이럴 때, 진짜 이 시간이 여러분들 파도 많은 이 세상 가운데 영혼의 닻을 내린 안식(安息)을 누리게 되는 것이에요. 이게 얼마나 이걸 모르고 말이에요. 정글 같은 세상에 날마다 살다가 뭐 겉으로 평안하다. 하지만 뭐가 평안 하겠어요? 정글,,, 그러니 여러분 주중에 정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이와 같이 주일 나와서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이 도피성 되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영혼의 닻을 경험하는 겁니다.
안전한 영혼의 닻을 경험하는 거예요. 안식의 항구에 들어가는 거예요. 피난처(避難處)에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와서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 그리스도가 도피성인 신약 적 의미를 제가 도표를 만들었어요. 오늘 성찬식이니까 제가 길게 못 하니, 신약의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른쪽에 어떻게 돼 있죠?
첫 번째, 남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 당신의 피를 흘리시고 도피성이 뭐예요? 되어 주신 거예요.
두 번째, 구약의 도피성은 신약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는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일방적으로 주어진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구약의 도표성은 범죄자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오른쪽에는 뭐예요 여러분 이 복음의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이 오래 기다려 주신다.
네 번째, 구약의 도피성은요. 일회성, 신약의 도피성은요. 영구적
다섯 번째, 구약은 도피성에서 해방 받았다. 하더라도 평생 짓눌림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신약은 도피성에서 완전히 새 생명의 소유자가 되고, 영적인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아도 과부도 기댈 것 없는 인생도 과부도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룻기 2장 12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룻기 2:12,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이번에 보아스 우리가 배웠는데 보아스가 룻에게 그 과부에게, 그 정글 속에서 사는 과부의 룻에게 그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너에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놀라운 피난처입니다. 시편 61편 1절로 3절에 보니까,
*시편 61:3-4,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셀라).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주 날개 이 즐겁도다. 이 세상에 수많은 파도가 있어도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피난처와 견고한 망대와 장막과 과부들과 고아들에게 날개가 되는 줄 이 시대에 도피성 되는 줄 믿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찬을 앞에 놓고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거기서 먹고 마시고 그냥 산만 지탱해야 합니까? 소울 바이브 라이프로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이 잘 되기 위해서 두 가지를 해요.
-거기서 무장을 하고 변화를 받아야 돼. 변화만 받으면 안 되고 거기서 세상 앞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사명을 갖고 나와야만 하는 것이에요. 삶의 변화를 거기서 자기의 삶에 대한 재조명과 재정비를 하고, 삶을 점검(點檢)하고, 회개(悔改)하고, 평가(評價)하고, 오늘 우리 교회로 말하면 이 도피성 대신 주일마다 나와 가지고 여러분의 삶을 재정비하고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인생의 자동차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오늘 찬송하면서 말씀 듣고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삶을 재정비하고 재점검하고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는 그리고 동시에 재정비할 뿐만 아니라, 소명자로 준비되고 사명자로 나와야만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역사가 나를 부를 때 시대가 나를 부를 때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도폐성 안에서 회계와 변화를 갖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사명자로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사명자로, 우리가 마틴 루터처럼 종교 개혁은 못한다 할지라도,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7천기도 용사를 은혜를 가지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기도 군대가 돼야 하는 것이에요.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구원하겠느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가르치겠느냐? 주의 마음을 알아서 사명 자가 되겠는가? 이 시간 우리가 주의 마음을 알아 들이는 하나님의 신신한 남녀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누가복음 15장에 돌아온 탕자는 탕자로서 살 때, 그가 저 멀리 가가지고 향락, 사치 방탕하고 허랑 방탕 하고 그럴 때 그것은 정글이었어요. 수많은 중독과 아픔과 결국은 돼지 쥐엄 열매를 먹는 엉망진창의 삶이었어요. 이리 살다가는 내가 죽겠구나! 이리 비참하다가는 인생도 아니구나! 개돼지처럼 살구나! 우리 아버지 집에 가면 우리 아버지 집에 가면 지금보다 낫지. 그 아버지의 품이 돌아온 탕자에게는 도피성이 된 것이 그럼 그걸로 끝인가? 아니에요.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 품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를 돌아봤어요. 내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귀하게 살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제는 내가 마음대로 살았는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아버님을 더 사랑하고 아버님께 더 영광을 돌려야지, 그 마음을 품는 순간 제대로 도피성에서의 준비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그리고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피성을 매년 한 차례씩 보수를 했습니다. 가는 길도 새로 닦았고 뒤에서 피의 보복 자가 따라와도 빨리 뛸 수 있도록 다리도 새로 놓고 잡초도 제거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매년 닦고 수리하고 보수하고 점검했습니다.
오늘 성찬식을 통하여 이 성찬식 자체도 도피성이 되게 하여 주셔서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다시 사명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준비될 수 있는 그런 축복이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도피성 근처 가까이 가가지고 그 성 밖에서 천막을 친다고 해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도피성 안에 완전히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예수 믿는 아내를 만났다고 해서, 예수 잘 믿는 친구를 뒀다고 해서, 예수 믿는 아내의 치맛자락을 붙든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남편들이 식구들을 교회에다 데려다 주고 본인은 안 들어오고 데려다 주고, 본인은 옆에 골프 연습장 가 골프 연습하고 소위 제가 이름을 붙여 성도라고 맴맴 성도, 맴 맴 맴 가운데서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들어와 가지고 이 안에 들어와 가지고 도피성 대신 이 안에 들어와 가지고 말씀을 깨닫고 피해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순장되는 분들 많이 계세요. 다시요 도피성을 향해 힘차게 달린다고 하더라도, 그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달리기 자체가 당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겉으로 도는 신앙 제가 표현한 말로 맴돌기만 하는 신앙,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신앙 이런 신앙, 은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신앙을 달팽이 신앙, 이라고 했어요. 수년 동안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출발했는데 여전히 같은 지점에서 뱅 뱅 뱅 뱅 맴도는 신앙이 무슨 신앙이라고요? 달팽이 신해 오늘 성찬을 우리가 참여하면서 은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헌신의 수준이 뭔지를 모르는 그런 수준이 되지 말고 오늘 모두가 다 우리가 이 시간 맴 맴 성도 달팽이의 신앙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은혜의 문턱을 넘어가는 귀한 성찬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오늘 성찬에 참여해야 되는데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 예수님의 몸과 보혈의 우리의 몸을 피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의 삶에 뭐가 된다고요?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도피성이 되는 그래서 오늘 이 성찬이 최고의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도피성 대신 떡과 보혈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이 그리고 도피성에 참여할 때에 오늘 마음의 소원을 하세요. 아까 제가 그 지도를 보여드렸는데 7절 8절에 요단강 서편의 3개, 그다음에 요단 동편의 3개, 그 6개가 그냥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각 이름 하나하나가 지닌 뜻이 있어요. 그래서 그 이름 하나하나 지닌 그 뜻의 도피성을 향하여 온 그 뜻이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이번 성찬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게데스는 어떤 뜻이에요? 거룩한 곳이다. 성소다. 거룩한 곳이다. 여러분의 삶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한 분들 주여, 내 성찬을 통해 내 삶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 번째 뭐가 있어요? 어깨 견고함입니다.
세 번째는 뭐예요? 헤브론 헤브론에 있는 그 뜻이 뭐라고요? 교제라는 뜻이에요. 주님과의 교제가 뭐든지 오늘 성찬을 통해 주님과 더 나은 교재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외롭고 친구가 필요한 분들에게도 교제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 오른쪽에 뭐예요?
베셀은 요새다 포트리스다. 안전하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그대로 여러분들이 이걸 그대로 되게 그다음에 골란은 어떤 뜻이에요? 기쁨이라는 그 앞에 라못 이라는 뜻은 높은 곳 보호자라는 뜻이에요. 은혜의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골란은 기쁨을 오늘 성찬식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 참된 기쁨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기에 대한 어떤 글들에 대한 문턱만 문턱 앞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문턱을 넘어가세요.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요약
우리는 보복이 두렵고 중독으로 가득 찬 정글 같은 세상에서 도피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기를 소원하며, 매주일 성전에서 온전한 치유와 안식을 경험해야 한다. 가장 강력한 도피성인 성찬을 통해서 맴맴 신앙, 달팽이 신앙을 재정비하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기도 군대가 되어서 뚜벅뚜벅 걸어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2033-50 비전’을 이루어 가야 한다. 제22차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에 좋은 지도자의 복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자.
-도피성은 극단적인 피의 복수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는 은신처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 사랑 속에서도 발견된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행해야 할 많은 일들을 지시해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역을 지정하는 일이었다. 마음에 계획한 바 없이 단지 손으로만 죄를 범한 사람의 피가 그 피의 복수자에 의해서일지라도 흘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땅을 위해서였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율법이 그들에게 크게 유익이 되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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