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8월 7일)
제목: "습관을 따라“
말씀: 누가복음 22:39-46
찬양인도: 쉐키나()
대표기도:
설교자: 박단열 부목사님
-----

* 누가복음 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

▶몇 년 전 한창 특새 기간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특새 때 교역자들은 3시 30분에 기도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나오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서 일찍 출발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대체적으로 2시경에는 일어나서 와야 늦지 않게 주차도 하고 여유 있게 기도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새벽 2시에는 자는 사람이 많을까요? 그때 일어난 사람이 많을까요? 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 그 기간에 특별히 긴장하고 매일 긴장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을 떴는데, 2시 50분입니다.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큰일 났다 하면서 주차는 어디하지, 또 기도회는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런 막 많은 생각을 하면서 화장실에 딱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특새가 지난주에 끝났습니다. 1주간 특새에 맞춰 삶을 살아가다 보니 1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습관이 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침대에 누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에도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최후의 만찬에 마치신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으로 가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란 산으로 가셨다는 것은 곧 기도하러 가신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셨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문장입니다. 감람산으로 가신 주님께서는 함께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까? 바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도에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 가족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에게도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근데 여러분에게 유혹은 언제 찾아옵니까? 요한일서 2장 16절 함께 한번 보겠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하고 그것들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우리 육체가 원하는 것을 탐하는 욕심을 말합니다. 인간의 일반적인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 배설 욕 같은 것들을 지나치게 탐닉하려고 할 때 우리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안목의 정욕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욕심을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보며, 나보다 뭔가 더 나아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아 나도 좀 저런 걸 갖고 싶다. 라는 생각이 지나치게 작동할 때 우리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이생의 자랑은 부유한 재산이나 높은 신분을 자랑하는 것을 말하며,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잘못된 수단이나 방법을 이용하려는 것이 또한 유혹에 빠지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유혹은 언제 우리에게 다가옵니까? 이 말씀의 내용을 볼 때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순간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하루를 살아가고, 직장에 가고, 학교에 가고,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고, 티브이를 보고,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걸어가는 모든 순간이 유혹이 유혹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마저 그 동기가 세상의 것을 쫓기 위함이라면 그것마저도 유혹에 휘둘리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가 습관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습관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일이든지 하게 만든다.” -도스토예프스키-
-그는 이 자막의 말과 같이 습관의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습관에 능력이 있다는 것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에 한번 주목해 봐야 될 것입니다. 그 어떤 일이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능력을 행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같은 유혹에 빠져 이 세상이 추구하는 죄 된 본성을 강화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그 최선이 하나님 뜻 안에서 행하는 최선인지 아니면 이 세상이 주입하는 죄의 유혹에 근거한 최선인지를 날마다 스스로 점검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 살아갈 수 있습니까?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 행하기 위해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습관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I. 첫째로, 예수님과 같이 습관에 따라 기도하여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처럼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 유혹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기도하겠다. 라는 그런 결단과 실행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말씀처럼 쉬지 않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기도하고자 하는 갈망과 기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정말 그 간절함, 열심히 기도하겠다는 의지가 있더라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삶의 하나님을 거역하기 쉬운 습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2장 21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레미야 22장 21절,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중하지 아니한 것이 네 습관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죄 된 본성 가운데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아니 하고자 하는 습관이 기본 값으로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깊은 뿌리 깊은 습관 즉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려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죄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아무리 애써도 그것을 이뤄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뿌리 깊은 습관인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습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에 기도의 습관을 단단히 새겨야 합니다. 습관을 따라 기도하지 않고서는 우리 안에 있는 불순종의 습관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나의 계획과 나의 의지 나의 노력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피곤하나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 행하기 위해, 두 번째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기도하여야 합니다.

II. 두 번째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기도 내용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라는 기도구요.
두 번째는 그러나 내 원이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십자가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예수님의 요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모든 인간의 대속 제물로 십자가 형태를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임을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의 수치와 고통 그리고 모든 사람의 대신 죄를 짊어짐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버림받게 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대한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느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옮겨달라고 요청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의 원이 아닌 하나님의 원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를 올려 드리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런 기도와 같아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원하고 소원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 소원한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때로는 그 소원을 꺾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때때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기도 할 수 있죠.

ex) 하나님, 올해 고3인 우리 아들이 정말 지혜 주셔서 반드시 좋은 대학 가야 됩니다. 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정작 아들에게는 “아들아, 너는 고3이니까. 열심히 공부해야 해 그러니까 여름에 고등부 수련회는 올해는 가지 말자. 공부해야지. 그리고 대학가서 수련회 가면 되잖아. 이번 학원 방학 특강 시간이 고3부 예배 시간이랑 겹쳤네 학원 다녀와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면, 돼. 이번 여름이 너무 중요한 거 알지? 올해만 잘 참고 내년에 대학 가서 그때 예배 잘 드리면, 돼.”
-이런 기도를 하고 있진 않습니까? 분명히 하나님께 기도는 하고 있지만 현재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이 추구하는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유혹에 휘둘려 하나님께 하는 기도마저도 나의 욕망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철저하게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20여 년 전 제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 2학년에 복학하였습니다. 제가 그 시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정말 하나님과 깊은 친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 그때는 아직 신학교는 가지 않았는데 하나님 말씀을 묻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기도한 것이 너무 즐거워서 매일 도서관에 가면 하루에 최소 1시간에서 2시간은 말씀만 읽고 연구하고 또 기도도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최소한 하루에 3~4시간은 말씀과 기도만 했던 시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만큼 하나님과 깊은 어떤 충만한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제 자신을 돌아보니, 원래 제가 참 세상적인 욕망과 유혹에 잘 넘어가기 쉬운 그런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하나님 외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진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충만한 은혜를 누리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 보면 제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유혹에 빠져 실수하고, 실패하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을 보면서 저는 제 신앙을 돌아보게 되었고 나름대로 왜 이런 것일까? 그것을 고민하고 묵상하며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한번 그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그렸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항상 그림과 같이 우리의 삶은 항상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과 17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17절,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다시 그림 보여주세요. 우리 이 말씀에 나온 것처럼 우리 애는 성령을 따르는 어떤 마음과 육체를 따르는 마음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는 마음과 세상의 것을 따르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과 같습니다. 근데 여기서 이 그림에서 볼 때 하나님과 세상 속에 있는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제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만유인력의 공식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만유인력의 공식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은 기억 못 하실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에프는 알 제곱분의 쥐 곱하기 엠1 곱하기 엠2입니다. 뭐 잘 아시는 것처럼 에프는 힘이고요. 쥐는 중력 가속도를 얘기하는 거고, 알은 거리를 얘기합니다. 그리고 엠1 엠2는 두 매개체의 무게를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두 무게가 무거울수록 더 인력이 당기는 힘이 커지고 그리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더 가까워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그 힘이 커진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아까 그림을 봤을 때 하나님과 세상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당기는 힘과 세상이 나를 당기는 힘 사이에서 우리가 있다라는 거죠. 근데 아까 그 공식은 다 잊어버리고 거기서 변하는 것이 다른 상수는 다 변하는데 어 변하지 않는데 예를 들어서 중력 가속도 이런 것들은 다 변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변하는 변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리입니다. 즉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큰 힘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내가 서로 당기는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만큼 세상에 죄와 죄의 유혹이 당기는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반대로 세상의 죄와 유혹에 가까워질수록 죄의 유혹이 담기는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하나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암송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과의 거리는 서서히 좁혀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급속도로 좁혀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좁혀지게 된다는 겁니다. 내가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고 어제도 기도하고, 오늘도 내 기도하고, 내일도 기도해야 서서히 조금씩 그 거리가 좁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점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놀랍게도 죄의 유혹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어느 지점 이상 나아가면 하나님과 끌어당기는 그 힘이 너무 강해지고, 죄의 유혹이 담긴 힘이 너무나 약해져서 마치 내가 그 죄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초월한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주 지극히 높은 영적인 충만함과 동시에 영적인 교만함이 우리 마음 가운데 싹트게 됩니다. 반대로 세상 적 욕망에 가까이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말씀도 싫고, 기도하기도 싫고, 예배도 귀찮아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여기서 진짜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림을 보여주세요. 보여주실 겁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존경하는 영 가족 여러분, 너무나 거룩한 여러분,
저희 중간에 있는데, 여러분이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떠한 인풋도 없이 가만히 중간에 있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으로 가까이 나가겠습니까?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난 아무것도 안 하는데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나간다. 라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에게는 불순종하는 습관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예레미야 22장 21절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22장 21절,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너무 슬프게도 가만히 있으면 서서히 세상에 죄의 유혹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시선과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중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경건한 습관을 가진 것도 어렵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고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상황일 때도 계속해서 말씀과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우리는 서서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가까워지는 것은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한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점차 죄와 유혹으로 나가고 영적으로 교만해서 한순간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나름대로 발버둥치려고 하여도 그 방향이 잘못되어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그것이 우리의 기본 값입니다. 오늘 본문 44절부터 46절을 제가 한 번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 누가복음 22:44-46,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셔서 땀이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질 만큼 그렇게 기도 하신 이후에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곳에 있는 제자들에게 다시 돌아오셨을 때, 그의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습관에 따라 기도하고, 나의 원이 아닌 하나님의 원대로 살기를 소망하며 기도하지만 여전히 제자들과 같이 자고 있는 것이 저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말씀의 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던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때에, 그 감격과 기쁨은 어디 가고 여전히 나는 세상에 죄의 유혹과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의 주님께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돌 던질 만큼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저토록 처절하게 기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영적으로 어두워져 자고 있었구나! 그렇게 한탄하게 됩니다. 여전히 나는 영적으로 실패하고 무능한 무가치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어찌하여 자드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는 말씀에서 저는 다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실패하고 넘어지기 쉬우며 유혹에 빠져 영적으로 넘어지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구나, 예수님께서 저에게 그래 너 실패했으니 이제 넌 끝이야, 아무리 해도 넌 안 되는구나. 내가 그렇게 주의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한숨을 쉬시며 나를 포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나마저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일어나 기도하라고 하시는구나, 내가 영적인 실패와 그 실패의 그 순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순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며 불순종의 습관을 끊으며 기도의 습관을 쫓아 살아가며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의 그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수요저녁기도회 나오신 영 가족 여러분,
기도하는 습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코로나가 한창 심각할 때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란 것을 한 것이 벌써 4년 전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는 실패하면서도 정작 고강도 영적 거리 두기에는 대성공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영적 거리 두기는 결과적으로 세상의 죄와 유혹과의 거리를 좁히게 만듭니다. 그런 실패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많은 것들이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원인이긴 한데, 여전히 세상의 유혹에 휘둘리고 나의 욕망에 휘말려서 하나님을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혹시나 나의 본모습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의 영적 거리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영적 거리에 가깝게 하기 위해 우리는 습관에 따라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할 때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 자리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친밀히 나아가는 기도의 자리를 습관화하시는 우리 모든 영 가족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2024년 여름 토요 성령 집회와 이번 주 광복주일에 진행되는 ‘2033-50 비전’을 순명으로 품는 청계산 산상구국기도회 같은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아침 진행되는 날마다 솟는 샘물 새벽 기도회와 글로벌 사랑글로벌 기도회 그리고 여러 가지 우리의 기도에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거리를 더욱더 좁히기 위해 애쓰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물로 주시기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순종의 습관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보다는 하나님께 거역하기 쉬운 삶을 살아가는 그런 우리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들어 주심에 감사드려야 한다. 하나님과 세상의 죄 유혹 가운데 살아가며 날마다 수많은 유혹의 순간에 습관을 따라 기도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유혹을 이겨내며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하지 않는 습관이 아니라 죄와 유혹을 이기기 위해 습관을 따라 기도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 나의 계획과 생각을 관철하는 기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연약한 본성으로 인해 죄로 실패하고 넘어질 때에 낙심하여 영적 실패의 순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다시 기도의 자리로 습관을 따라 나아가자.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