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6월 5일)
제목: “인자의 날 하루”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말씀; 누가복음 17:20-22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백승준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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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20-22,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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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저녁 기도회에 오신 모든 성도님들을 환영합니다. 창립 46주년 성역 컨퍼런스가 며칠 앞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와 또 새로운 서명으로 채워주시는 시간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누가복음 17장 20-22절까지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간절히 기다리는 어떤 그 하루가 있으십니까? 아마 한참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는 우리 대학생들은 빨리 시험 마치고 방학하는 그 하루를 기다릴 거라고 생각됩니다. 군 복무 중에 있는 장병이 있다면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제대하는 그 하루를 기다리지 않을까요? 아마 또 직장인 분들은 긴 일들을 마치고 짧게 주어지는 그 여름 하루에 달콤한 하루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하루를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해야 될 그 하루가 무엇일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날 하루'를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기다려야 될지 오늘 말씀을 좀 깊이 있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서 먼저 예수님께서 바리세인들과 함께 나눌 넘으신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바리세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바로 그 질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바리세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물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수많은 비유들은 바로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산상설교 말씀의 핵심 부분 6장을 보면요.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근데 그 기도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왜 주셨느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바로 기도조차도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한 수단이란 것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마 바리세인들도 예수님께 관심이 많았고요. 또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많았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궁금했던 내용을 질문하였습니다.
 
근데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바로 그 언제 있었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수 없다.' 바리세인들은 뭔가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고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시대의 어떤 배경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한 민족은 지금 로마의 식민 통치국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뿐만 아니라 참 오랜 기간 동안 나라를 빼앗기고 이제는 그 서러움 많은 민족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들 마음속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시금 보내시는 그 메시아, 다윗과 같은 왕이 이 땅에 와서 우리를 이 모든 식민 통치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이제는 다윗왕국과 같이 열방을 다스리는 그런 뽐나는 나라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변화시켜 주시길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희망을 두었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이 그러한 다윗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메시아가 아닌가? 아마 그와 같은 질문을 던졌던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은 바리새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동기를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 몇 군데 있는데요. 특별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직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의 친척이었기도 했고 세베대 아들들의 어머니였던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와서 이렇게 간청을 합니다. 나의 두 아들 중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그렇게 로비를 펼칩니다. 바로 거기서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하나의 나라를 회복시키실 것이고. 다윗과 같은 왕국의 왕이 되실 것인데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예수님의 제자들 특별히 수제자라면 좌의정 우의정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걸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조차도 예수님께 나와 제자들이 물었던 질문이 이렇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끝까지 예수님이 다윗과 같은 그런 나라를 세워주시고자 하는 그런 열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력한 나라에 대한 소망은 참 나라를 잃어보고 그 나라가 흔들리는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갈 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최근에 선교지를 좀 방문하며 선교사님들을 만나 뵙고 왔는데요. 그중 한 나라가 미얀마였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코로나 터지자마자 또 미얀마 안에서 내전이 일어났구요. 지금은 상당히 좀 어려운 시기가 되었습니다. 군부의 세력이 그렇게 강하지 못해서 몇몇 도시만 장악하고 나머지 지역들은 또 반란군에 의해서 계속해서 중요 시설이 파괴되고, 전쟁이 좀 계속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나라의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뽑아가는 징집령이 내려졌고요.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군대로 가서 또 전쟁터로 가서 죽는 것을 피해서 미얀마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주변 국가로 흩어져서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라도 매우 힘듭니다. 지금 동남아 그때 방문했을 때가 한 40도가 넘는 더위였는데요. 서로 주요 시설 파괴함으로 말미암아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8시간 누르면 잘 들어오는데요.
 
그 40도가 넘는 찜통 더위를 전기도 없이 선풍기도 안 돌아가는 상황에서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참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잠시 경험하다 왔습니다. 그리고선 그 다음 나라로 옮겨갔던 곳이 라오스였는데요. 사실 라오스도 독재 국가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많이 없는 나라였지만 그래도 치안이라도 잘 지켜주는 나라가 얼마나 나라다운 나라인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한국이 축복받은 나라인지 다시 1번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마 오랫동안 나라 없는 슬픔을 겪었던 바리세인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셔서 다윗 왕국과 같은 그런 나라를 세워주시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대답 20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7:20-21,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 말씀을 좀 저희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인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과연 바리새인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바리세인을 보시고 참 많이 책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행동 겉으로 보여주는 그 모든 것은 의롭게 보이고 아무 문제없는 거 같지만 그 마음으로는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세인을 보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에는 하얀 회칠을 했기 때문에 깨끗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시체가 썩어 하고 가고 있는 것처럼 냄새가 나고 부패한 바로 그런 사람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리세인의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 거 같구요. 이 헬라어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서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서있다 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바리세인들과 함께 대화하고 있는 이 가운데 서있으신 분이 바로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신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서 계시고, 예수님이 통치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이 많은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보혈은 복음이 선포되고, 죄악과 사망의 권세가 물러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 말씀을 좀 깊이 있게 더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니면 국가의 3요소라는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지요?
 
한 나라가 국가답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⓵영토가 있어야 되고요. 그 영토를 살아가고 있는 ⓶백성이 있어야 되고 국민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그 나라를 다룰 수 있는 ⓷주권 이 3가지가 있을 때 하나의 나라를 제대로 된 나라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예전엔 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잘 몰랐을 때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회복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가운데 다시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사단의 권세가 물러나고 사단과의 싸움을 이겨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나님의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깊이 있게 하는 말씀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그것은 제가 잘못된 또 생각이 짧았다는 것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치는 어제나 얻은 이나 똑같이, 하늘을 다스리고 계신 거지 이 땅을 여전히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여전히 천하 만물은 다 통치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백성에게 있는 것입니다.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다운 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호세야 말씀이 있습니다. 호세야서 1장 9절의 말씀인데요.
 
*호세야서 1:9,
9 여호와께서 이러시되 그의 이름을 루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루암미란 뜻은 백성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앞에 로 자가 붙으면 부정의 의미를 뜻하는데요. 이 루 암미가 암미가 되기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성경 전체에서 막아주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의 핵심이었습니다. 근데 이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과연 어떠한 일을 펼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 백성다운 자격을 회복시키기 위하여서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격(資格) 조건(條件)을 따지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비자(VASA)를 받는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 비자 받는 것이 어렵지 않구요. 온라인을 통해서 몇 가지 자료만 내면은 금방 되지만, 제가 처음 미국 방문했을 때 광화문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런데 방문하러 가서 여러 가지 자료(資料)들을 내야 됩니다. 재정이 얼마만큼 있고, 가는 목적과 거기에 묵을 것인지, 어떻게 돌아올 건지에 대한 여러 가지 증빙 자료를 내고 뭐 그렇게 인터뷰를 하더라도 조마조마합니다. 왜냐하면, 탈락(脫落)률(率)이 제일 높았던 것이목회자자였습니다.
 
선배님들이 미국 가셔서 잘 안 돌아오셨던 그런 케이스들이 있다 보니까, 아주 직업이 목회 자였으면 더 꼼꼼하게 아주 깐깐하게 그래서 때로는 자료가 좀 부족하면은 비자를 리젝트(rejected) 당하는 그런 일까지 있었습니다. 참 기분이 상하더라구요. 돈 내고 지나라 간다는데 뭐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심사를 하는가? 여러분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심사 자격을 따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되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거룩함이라는 자격조건, 의로움이란 자격조건을 따지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눈에 봤을 때, 하나님의 자격에 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대(審判臺) 앞에 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는커녕 이제는 우리의 죄 값을 쥐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罪人)이 바로 우리의 신분(身分)이었고 우리의 자격(資格)이었습니다. 그랬던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우리를 백성으로 만드셨습니까? 바로 우리의 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불(支拂)해야 될 모든 형벌(刑罰)을 이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신(代身)지고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담당해야 될 모든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대신 지불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서는 예수님이 갖고 계셨던 그 하나님 아들로서의 당당한 자격, 의로우신 바로 죄 없으신 거룩한 자격을 하나님 우리 가운데 부여하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노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의 같이 못 박았노라고 고백했던 사람을 이제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얘기했던 것들을 취소하시고, 이제는 너는 나의 백성이라고 말씀해 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 피묻은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宣布)되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臨)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회복(回復)하고 하나님의 통치(統治)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시작하였고요. 그리고 나라는 점점점 확장(擴張)돼 가고 서무장해 가고 있다. 그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사모해야 될 바로 하루가 있다. 라는 것을 22절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에요. 22절을 제가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7:22,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인자의 날 하루’가 바로 무엇일까요? ‘인자의 날 하루’라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 시작되는 영광스러운 시대의 첫날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 땅 가운데 이제는 재림의 왕으로 임하실 것이다. 그 재림의 왕으로 임하시는 바로 한날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요,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활(復活)하시고 승천(昇天)하신 이후 초대 교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을 또 박해(迫害)를 이기면서 주의 복음(福音)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이날, 예수님의 승리(勝利)가 완전히 성취(成就)되는 그날을 보지 못한 채 제자들은 순교(殉敎)하고 또 제자들의 복음을 받아들였던 수많은 사람도 그날을 보지 못한 채 먼저 주님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바라본 한 순간(瞬間)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으로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자의 날이 성취되고 인자의 날 하루에 시작되는 놀라운 영광의 광경들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생생히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부터 11절까지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2:9-11,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바로 이것이 인자의 날 시작하는 바로 하루에 이 세상에서 벌어질 놀라운 예배의 광경인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계시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서 11절을 보면요.
 
*요한계시록 7:9-12,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다시 오실 날, 바로 인자의 날이 이 땅 가운데 온전히 성취되는 그날 벌어지게 될 놀라운 장면(場面)인 것입니다. 바로 예배의 순간 예수님의 완전한 통치가 시작된 순간, 여러분은 과연 예배의 자리에 함께 서 있을 광경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단지 또 한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 족속(族屬), 백성, 방언(謗言)이 예수 빚을 높이는 바로 놀라운 영광의 잔치가 벌어지며 이제는 예수님의 통치가 온 땅을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죄악과 어두움과 모든 눈물은 사라지고 죽음과 질병(疾病)은 사라지고 즐거움과 기쁨의 잔치가 벌어지는 예배(禮拜)를 여러분 상상해 보셨습니까? 이 예배를 상상하고 이 예배를 꿈꾸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나라 끝 날을 위해서 살아가는 힘이 생깁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이렇게 기록하셨습니다. 그의 유명한 책 “열방을 향해 가라.”라는 한 장면인데요.
 
“선교는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배이다. 선교는 예배가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 선교가 아니라 예배가 궁극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궁극적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가 끝나고 셀 수 없는 많은 구속된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릴 때, 선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선교는 일시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예배는 영원히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가 선교의 연료이자 목적이다.” -존 파이퍼 목사님-
-참 이 말씀은 선교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교의 본질을 붙잡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왜 선교를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온전한 예배의 그날을 우리가 상상하면서,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를 심고, 그리고 온전한 예배 가운데 우리 모두가 들어가기 위한 바로 목적으로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인자의 그날'을 사모하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 땅 가운데 그런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가 드려지는 그날, 나도 이 예배의 한 무리에 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또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복음을 알게 되는 사람들과 함께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가슴 벅찰 그날, 그날이 올 때 얼마나 우리가 과연 기쁘고 감격(感激)스럽고 행복할 것인지, 우리가 그날을 사모함이 우리 가운데 충만 있기를 원합니다.
 
이 계시록 말씀을 가지고, 고용원 전도사님이 한 곡을 만드셨습니다. 7년 정도 같이 기도회를 저희 부흥을 위한 기도회, 그리고 또 쥬빌리 기도회 운동을 하면서, 고용원 전도사님과 깊이 교제(交際)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이 계시록 7장의 말씀,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이 있도다.’ 라는 찬양을 만드시면서 그 찬양의 제목을 ‘비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처음에는 왜 이것이 비전일까? 몰랐는데요.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본인의 비전이기도 하고, 모든 성도들의 궁극적인 비전이기도 해야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꿈꾸는 가장 최고의 비전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께서 이 땅 가운데 온전한 마음으로 이 땅을 통치하실 때, 그곳에 드려지는 그 예배의 한 순간이 우리의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요. 비전이요. 우리의 꿈과 모든 삶에 희망이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또한 우리의 목적이며 그러기에 우리는 선교(宣敎)를 해야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렇다면 인자의 그 하루를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우리가 살아야겠습니까? 예수님이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절 14절의 말씀입니다. 한번 같이 읽을까요?
 
*마태복음 24:14,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세상에 인자의 그 온전한 하루가 임하기 위하여, 그 끝이 오기 위하여서 분명히 전제 조건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언(證言)되어 온 세상에 전파(傳播)되는 날이 모든 민족에게 죄 복음이 전파되고 온 민족이 주님의 이름을 듣고 구원(救援)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바로 무릎 꿇게 되는 날이 이를 때에, 그제야 끝이 올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날을 꿈꾸시며 하나님은 쉬지 않고 지금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이 하나님의 위대한 과업 앞에 하나님의 위대한 우선순위(優先順位)에 동참(同參)하여 함께 일하기를 소망하고 계십니다. 근데 최근 들어 하나님께서 새롭게 일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인 되신 하나님이 새롭게 일 하시는 것들에 상당히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온 세상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전파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땅 끝까지 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를 선교 보내고, 그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가든지, 보내든지 하는 것이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략(戰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의 끝을 바라보시면서 새로운 전략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로 땅 끝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바로 우리 가운데 보내셨어요. 우리가 가야지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이제는 그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만나게 하시고 계시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입니까?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250만 명이 넘는 이주민들입니다. 한국 선교사님들이 사역하고 있는 140개국에서 150개국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만 명이 넘는 선교사님들이 140개국에서 지금 사역하고 계신데요. 점점 비자 받기 힘들고 또 사역하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근데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의 국적을 살펴보니깐요. 190개국이 넘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선교사님들이 들어가지 못했던 나라, 선교사님들이 들어가기 힘든 지역의 나라 사람들이 우리 가까이에 와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이제 땅 끝에 사람들을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는 그런 새로운 전략(戰略)을 펼치고 계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이 일하심에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에 대해서 가끔 잘못 착각할 때 어떤 착각이 있냐 하면은요, 그저 예수님을, 하나님을 나의 구세주, 구원자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구원(救援)자이신 하나님을 또한 주로 고백(告白)하는 것이 온(穩全)한 믿음이라고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 10:9,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우리 죄를 위하여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구원의 주, 구원을 위해서 속죄의 구원을 위해서 속죄의 죽음을 하신 것만 믿는 것, 그것만을 성경이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서 대속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의 속죄 죄이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를 또한 속죄하신 주님은 우리의 주인 되길 원하십니다. 주인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것은요, 내가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 되고 아니 나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던 악한 이해의 지배받던 우리가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끊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서, 그 주인 대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주인이 나라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고 못 박히고 죽임을 당하사, 모든 것을 아낌없이 퍼부어주신 사랑의 주님이시라는 것들을 참된 고백입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갖고 계신 우선순위가 있다면 그 우선순위가 나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갖고 계신 우선순위는 다른 것이 아니듯 모든 민족과 백성과 방언과 모든 족속들이 주님께 나아오고 주님의 이 귀한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 선교인 것입니다. 선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러기에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 선교는 하나님의 우선순위가 나의 우선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선순위가 나의 우선순위가 되는 것, 바로 그러한 삶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영광 받으시고, 우리의 삶의 이유, 삶의 목적, 삶의 주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봐야 될 바로 그날, 우리가 꿈꿔야 될 바로 그날을 우리가 마음에 소망하기 원합니다. 바로 그것은 이 땅 가운데 하나님께서 묻고 계신 바로 하나님의 미션, 하나님의 위대한 선교,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회복하여서, 모든 민족 가운데 찬양을 받으시고, 또한 높임을 받으시는 그날을 하나님께선 기다리시며 지금도 쉬지 않고 열방을 구원하기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또한 구원의 방법으로 이제는 땅 끝에 사람들을 우리 가운데 가까이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끔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을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먼 곳에 나가서 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제는 땅 끝의 사람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 보면요. 우리가 쪽으로 섬기고, 환대하고, 그들의 필요를 돌보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지에서 할 수 있는 위대한 영광스러운 선교를 내 삶의 자리에서도 펼칠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분명히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런 시대의 하나님의 물음 앞에 모두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주께서 허락하신 인자의 날 하루에 모두가 다 또한 우리뿐만 아니라,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그 사람들과 함께 주님을 높이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가 진정으로 꿈꾸고 소망해야 될 그 하루를 이 말씀을 통해서 ‘인자의 날 하루’ 보기를 소망해야 한다. 욕심과 정욕을 우선순위 삼았던 나를 돌이켜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는 예수님의 참 제자 삼아야 한다. 가든지, 보내든지 동참하여 모든 민족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세계선교에 쓰임 받는 자가 되어서, 대한민국에 보내주신 250만 명이 이주민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섬겨 세계선교 마무리하는 그날을 든든히 세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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