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4월 10일)

제목: "성령의 열매"
말씀: 갈라디아서 5:22-26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홍진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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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22-26,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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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배를 통하여서 주님께 소리로 온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열매로 시작해서 열매로 끝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경에는 많은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가장 처음 나오는 책인 창세기에도 창세기 2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에 동산에 많은 각종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그중에 또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라는 특별한 하나님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첫 사건이 바로 열매로 시작하는 것을 우리는 창세기 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의 제일 마지막 요한계시록 2장에 봐도 열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하시는 말씀으로 이 땅에서 많은 고난을 견디고 주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온 성도들과 교회에게 너희가 끝까지 지키고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서 생명의 열매를 주시겠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창세기와 그리고 계시록 사이에 있는 서신서 그리고 복음서, 예언서 그리고 역사서에도 수없이 많은 열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알고 또 흔히 듣 흔히 들었던 의의 열매 그리고 마음의 열매, 손의 열매, 회개의 열매, 좋은 열매, 나쁜 열매, 성경에는 많은 열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고, 오늘 우리가 살펴본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 성도의 삶에 이 열매라는 거 의미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열매는 풍성함에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듯이 열매는 풍성한 열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열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열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열매라는 단어를 읽었을 때, 열매라는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우리 머릿속에는 늘 풍성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갈라디아서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우리가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서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목자의 심정으로 원하시는 풍성한 삶이 경험되고 또 말씀에서 말씀하시는 풍성함을 우리만 우리 가슴 가득히 담고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익은 성령의 아마 아홉 가지 열매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 외우시죠? 사,희,화,오,자,양,충,온,절.
 
처음부터 시작 네 그럴 줄 알고 제가 준비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의 자존심을 세워드리려고 한 글자씩만 띄웠습니다. 처음부터 한번 하나씩 떠올려 보겠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잘하셨습니다. 네, 72구절 암송한 것 같죠 이렇게 아홉 가지 열매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맺기를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근데 이 아홉 가지 열매를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내 삶과 이 아홉 가지 열매를 기억할 때, 열매의 이미지처럼 부요하고 풍성하고 아름답고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그러한 뜨거움이 느껴지십니까? 사실 그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지 않습니까? 이 성령의 아홉 가지의 열매를 볼 때, 또 내 삶을 비교해 볼 때, 내 삶에서 이 아홉 가지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어지지 못한 내 삶을 보면서, 아 그래 내 삶 가운데 이 아홉까지 열매가 풍성히 맺어져야 되는데, 그래 내가 이 아홉 가지 열매 중에 뭐 아홉 가지는 아니더라도 반절이라도 좀 맺으면 살아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먼저 하게 될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너 삶에 있는 아홉 가지 열매를 나에게 내 놓으라 라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내어놓을 만한 열매가 없는 것임을 저도 고백합니다. 내어놓을 수 있는 열매라고는 풍성하지도 않고, 다 자라지도 않고, 시장인 시장에다 내다 팔수도 없는 그런 열매들밖에 우리 속에 있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지 살펴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서 좀 깊이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 전체 주제의 흐름을 흐름과 함께 이 본문을 집중하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가 누구의 열매냐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누가 맺느냐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누구에게 속한 열매냐? 라는 것입니다. 이 열매는 분명히 성령의 열매 다른 말로 성령님이 소유하시고 계시는 열매 성령님이 맺으시고 성령님이 주인이신 열매, 라는 의미로 분명하게 성경에서는 성령의 열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원어에도 프뉴마토스 라고 말하고 있는데, 프뉴마, 성령에다가 아토스라는 소유격을 붙여서 성령님께 속한, 성령님이 소유한 열매, 라는 의미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열매를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맺는 열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맺는 열매, 혹시 이렇게 성도인 내가 맺는 열매로 혹시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님의 열매 그리고 나의 열매 우리에게 성령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데 있어서 아홉 가지의 이 열매가 우리를 우리 아홉 가지 열매를 우리의 삶에 맺음에 있어서 이 열매를 성령님의 소유로 성령님의 열매라고 우리가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성령님은 도와주시는 분이고, 나의 저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고, 은혜를 주시는 분이고, 그래서 은혜로 내가 맺는 열매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물론 현상적으로 이 열매는 내 삶 가운데 내 삶의 모든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열매의 주체를 성령께 두느냐, 아니면 이 열매 맺는 사람 열매 맺는 주체를 내가 가지고 있느냐, 에 따라서 아주 다른 결과들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 성령의 열매를 예수님께서 유아 모금 15장에서 비유로 말씀해 주신 포도나무 비유를 가지고 한 번 더 조금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과 함께 살펴보면 우리가 맺어 우리가 맺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성령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1,-5,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네 아버지는 농부라.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여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라. 아멘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무를 돌보시는 농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열매가 달리는 가지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고, 이 나무에서 나쁜 좋지 않은 열매가 맺는 중심의 핵심은 바로 가지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 가지가 얼마나 열심히 열매를 위해 노력하고 왜 쓰느냐 거기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비유의 핵심은 가지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고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 있느냐 나무가 나무에 이 가지가 온전히 붙어있느냐, 거기에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의 기준이 있다. 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져갈 일은 무엇입니까? 가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오직 나무에 온전히 붙어있는 것입니다.
 
다시 성령의 열매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맺어지는 아홉 가지의 열매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내가 열매를 맺을 가지로 우리의 생명나무인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붙어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 가지에 같이 가지인 우리의 초점이 열매 있습니까? 아니면 나무에 붙어 있음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로마서의 주제와 동일합니다. 너희는 더 이상 율법에 속하지 아니하고 성령에 속하였다. 너희는 더 이상 조 종에 영예 악한 영들의 종에 있지 아니하고 율법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영을 그리고 성령의 종이 되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갈라디아서의 주제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래 나무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래 나무가 율법이고 세상이고 육체 나무에 붙어 있으면 가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힘을 써도 아무리 자기를 절제해도 그 가지는 육체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러나 갈라디아서 그리고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무에 접붙인 바 되었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접붙인 바 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이후에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열매 맺는데 누가 그것을 금지할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열매 맺으시는데 누가 그것을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우리가 율법 안에 내가 열매 맺으려고 했습니다. 26절 말씀에 보면, 헛된 영광을 구하며 우리가 살아왔다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23,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6,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내가 열매를 맺어서 내가 영광을 얻고 내가 열매 맺어서 내가 열매에 좋음을 먹으며 살려고 하는 그러한 헛된 영광을 구하며 우리가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영광의 끝은 다툼과 시기와 투기만 남는다. 라고 합니다. 그랬던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24절 말씀에,
 
 *갈라디아서 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바 되었습니다. 내 영광을 구하며 나 스스로의 나의 힘으로 내 능력으로 영광을 얻어서 열매 맺어서 내가 영광이 내가 스스로 영광 받고자 하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 나가에 못 박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25절 말씀에, 우리는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5,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나는 교회 다닌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신앙이 있으니까 당연히 포도나무 가지에 내가 붙어있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십니까 혹시 떨어진 줄도 모르고 열매 맺기에 초점을 맞추고 힘쓴 내 모습은 없습니까? 사도마을은 오늘 이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를 이전에 묻고 있던 모든 율법은 다 벗어버리고 너희가 이제 율법이 요구하던 열매들은 다 내려놓고, 너희가 은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무에 붙어 있게 되면 너희의 힘과 너희의 능력과 너희의 노력과 지금까지 너희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던 그러한 모든 노력은 비교도 되지 않는 성령님이 그분이 직접 맺으시는 그분의 열매를 맛보게 될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성령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 안에 온전히 거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무에 내가 붙어 있기만 하다면 성령께서 성령인 주관자 되시고, 성령인 주체가 되셔서 성령이 소유하신 열매를 우리에게 맺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아홉 가지의 석류의 열매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지금까지 율법은 열매를 우리의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고 맺으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열매들을 우리의 힘으로 맺으며 살아오러 살아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애써도 조금의 열매가 맺어질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드리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열매들뿐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9가지의 열매를 너희가 힘써서 맺으라. 내가 도와줄 테니까. 너희가 애써서 맺어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성령께서 내가 이 열매를 맺겠다. 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애쓰고 힘써서 얼마나 사랑해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고 참고 참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그러한 열매가 되겠습니까?
 
구약에 많은 유대인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고 애를 쓰고 애를 썼습니까? 하지만 모든 열매들은 다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시대에는 이 열매를 우리에게 맺을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신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이 성령의 시대에는 성령께서 이 열매를 맺으시겠다. 라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할 일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할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같이 한번 있도록 하겠습니다.
 
2. 전신전략을 다해 생명나무의 신 예수 글씨도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가진 나를 통해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십니다.
-아멘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으로 맺으려고 했었던 율법의 조문처럼 사랑하려고 율법의 명령처럼 참으려고 율법의 명령처럼 인내하려고 애썼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우리의 초점을 우리가 맺으려고 하는 열매에 두지 아니하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무에 얼마만큼 잘 붙어있는지에 대한 초점을 맞출 때에, 성령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열매 맺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가정에서 예수님께 온전히 붙어 있으십시오. 성령께서 열매 맺으실 것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사업장에서 다른 것 말고 예수님께 붙어 있으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열매 맺으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다 나빠하고 제자훈련하고 사약훈련하고 모든 우리의 신앙생활 생월에서도 이 훈련을 받아서 내가 어떤 열매를 맺고, 내가 이 봉사를 해서 얼마만큼의 성숙해 가고, 내가 이것을 하여서 어떤 것을 하고, 하고가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붙어있는지에 대하여서 초점을 맞추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의 생명나무에 붙어 있을 때 성령께서는 가진 저와 여러분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단수형으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인데 성령의 열매들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 단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인데, 단수형을 쓴 이유는 이 아홉 가지가 결국 모두 하나라는 그러한 의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열매는 각각이 맺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열매는 내가 열심히 맺어서 이것도 맺고 저것도 맺고 하는 그러한 나의 열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홉 가지의 열매 중에서 아홉 가지 다는 아니어도 적어도 몇 가지만이라도 맺어보자 몇 가지만이라도 맺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보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나는 충성은 잘 안 되는데, 사랑은 좀 되는 거 같애. 나는 화평은 안 되는데 절제는 조금 되는 거 같애. 석류의 열매는 이 아홉 가지의 열매는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은 맺어지고 무엇은 맺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 분명히 성경의 이 열매는 하나의 열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저와 여러분의 힘으로 이 성령의 열매를 하나의 열매처럼 이 성령의 열매를 하나도 빠짐없이 맺을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열매는 나에게 속한 열매가 아니라, 성령께서 맺으시는 성령의 열매기 때문에 온전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아홉 가지의 열매는 한 번에 맺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요 우리가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기만 하면 그래서 우리는 삶 가운데서 이 열매들을 하나하나 떼어놓고 이것을 어떻게 맺을까?
 
이것은 좀 부족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혹시 이런 질문도 하시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혹시 당신의 이 성형의 9가지 열매 중에 혹시 부족한 게 있다고 어떤 것이 있는지 혹시 생각이 드시나요? 아니면 이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이 열매는 나는 참 풍성하다 자신 있다. 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은 없나요? 오늘 성경에서 성령의 이 아홉 가지 열매는 단 하나도 떼어 놓지 아니하고 하나의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전능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맺으시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농부 되어 주시고, 농부 되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 되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육신의 율법에 죄악에 젖 붙인 바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의 나무로 접붙인 바 되어 주셔서, 우리의 힘이 우리의 능력이 아닌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열매 맺는 삶을 이제는 성령 하나님께서 아홉 가지의 열매를 동시에 풍성하게 맺어주시는 은혜를 우리 모든 성도인 들이 삶 가운데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그러면 우리가 생명나무이신 예수님께 온전히 붙어 있을 수 있습니까?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만남 가운데서도 심지어 우리의 24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생명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을 수 있습니까? 여러 가지 경건 생활의 방법으로 주님 앞에 붙을 수 있지만 저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한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장 실제적이며 확실한 방법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붙잡는 것입니다. 아멘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붙잡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붙잡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읽고 배우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있습니까? 아침에 큐티 할 때, 읽고 중에 말씀 설교 들을 때 읽고, 다락방 할 때 읽고 또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통독할 때 읽고, 또 우리 훈련생들은 훈련 큐티 하고 IBS 하면서 읽고 그것이면 충분합니까? 그 정도면 우리가 24시간 주님과 함께 붙어 있다. 라고 생각할 만큼 충분하십니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모든 것이 능력이 나온다. 라는 사실을 믿고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얼마나 밀접하게 붙어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그지없음을 보게 됩니다. 방송인 조혜련 씨를 아직 하실 겁니다. 그분이 예전에 했던 간증을 들으면서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예전에 핸드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해서 어찌할 줄을 몰랐는데 지금은 손에 성경이 없으면 불안해서 어찌할 줄 모른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의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과 같이 그분은 일상의 성경을 들고 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시간 동안에 손에서 성경을 놓지 않고 성경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짬이 날 때마다 성경을 읽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매년 성경을 6번 읽고, 올해는 8번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그냥 한강 한가한 분입니까? 참 바쁘게 살고 계시더라구요. 저는 감정을 듣는 순간에 어디 숨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실 제 손에 성경은 없어도 되는데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하거든요. 저도 이 한정을 들으면서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나는 나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의 생명의 나무에 얼마나 붙어있는가, 나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내 모든 시간 깨어있는 시간 동안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로 생명나무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말씀을 듣고자 하는가? 겨우 가지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 붙어있는 내 모습은 아닌지,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경을 통독하는 시간에는 순서대로 열심히 읽으십시오. 큐티 하는 시간에도 말씀을 속상하며 읽으십시오. 성경을 배우고 연구할 때는 성경을 깊이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내 손에 잡히는 대로, 시간이 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 읽으시고 말씀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은혜를 능력을 경험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주님께 붙어 있을 때,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내 안에 성령께서 그분의 열매를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풍성히 맺어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게 속한 내심으로 맺는 열매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나무에 우리가 온전히 붙어 있을 때에 그분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축복으로 맺어주시는 열매입니다. 내 힘과 능력의 열매가 아니라, 농부이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열매인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내가 맺은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겠습니까? 내 노력으로 맺는 열매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는 요구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초점을 내가 어떤 열매를 맺냐, 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얼마나 붙어 있느냐,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얼마나 밀접하게 붙어서 성령과 동행하며 그분과 함께 살고 있느냐 이것이 열매 맺는 삶의 능력이고 비밀이고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선물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붙잡으시고 읽을 수 있으면 읽으시고 읽을 수 없으시면 들으시고 들으실 수 없으면 암송하시고 그리해서 내가 예수군 시도의 생명나무에 늘 붙어 있어서 아버지가 궁금해 주시고, 예수님께서 붙잡아 주시는 능력과 성령이 나와 성도들을 통해서 맺으시는 성령의 아홉 가지의 풍성에 의한 풍성한 열매를 우리 삶 가운데 다 맺고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약
내 힘으로 맺으려던 모든 시도를 내려놓고 성령하나님께 온전히 나를 내어 드려 이제는 결실을 위해 농부이신 성부하나님의 열매 맺으시는 실력과 신실하심을 믿고, 사는 날 동안 참 포도나무이신 성자 예수님께 끝까지 붙어있어야 한다. 우리가 휴대폰을 붙들고 사는 내 삶의 모든 영역이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도록 성경을 더욱 더 가까이 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는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처럼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 성령의 열매조차 마치 율법을 지키듯이 내가 맺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던 내 모습은 아닌지,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붙어 있으면 내 능력과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성령의 풍성한 아홉 가지의 열매를 내 삶 가운데서 온전히 맺게 해 주시는 줄 믿어야 한다. 제는 우리의 초점이 열매에 있지 아니하고, 내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에 붙어있는지에 대한 초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내가 맺는 보잘 것 없는 나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맺으시는 풍성한 아홉가지 열매를 통하여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간구하며, 오늘도 우리에게 함께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기를 간절히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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