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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7월 3일) 제목: “왕의 잔치에 환영합니다.” 말씀: 마태복음 22:1-14 대표기도: 윤현수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 *마태복음 22:1-14,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 이어 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저는 이 이 예배를 통하여 사랑의 교회, 교회가 팬더믹 이후에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갈 뿐만이 아니라, 한 분 한 분 여러분 개인도 부흥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교회 부흥과 개인 부흥이 같이 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며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상당히 무게감이 있는 특별한 비유라고 말씀할 수 있다. *마태복음 22:2,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바로 이것이다.’ 라고 바로 정의해 주지 아니하고 우리가 영의 눈을 떠서 깨달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나라와 마치 is like,,,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푸는 어떤 임금과 같다. 라고 한다. 그러니까 왕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위해 잔치를 베푼 것이다. 고대 근동 그 당시에 예를 들어서 이스라엘이라든지 페르시아, 바벨론은 그 당시에 최고의 잔치는 왕의 잔치였다. 그리고 그냥 보통 잔치가 아니라 왕의 잔치였다. 특징 중에 하나는 잔치 집에 4절에 보면 *마태복음 22:4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 입장하고, 그 당시의 왕의 잔치와는 좀 다르다. 어느 정도가 되었는가 하면, 잔치에 음식은 당연한 것이고 예복을 입혔는데 잔치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예복을 준다. 미국 같은 경우는 지금도 들러리를 많이 서는 것처럼 들러리들의 옷을 주로 혼주 측에서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복을 준비하는 데 예수님 당시 로마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호라티우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시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떤 로마의 큰 귀족들은 잔치 집을 위하여 예복을 오천 벌을 준비했다고 한다. 별로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오천 벌을 준비했다. 완벽하게, 대단하게 준비를 한 것이다. 오늘 이런 말씀과 비슷한 맥락으로 되어 있던 누가복음 14장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누가복음 14:17, 17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다. 이것은 구원 역사를 살펴보면 혼인잔치집의 비유가 이 정도가 아니고 잔치 집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정말 복된 사람들이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계시록 19:9,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크게 보면 이 자리가 주님이 우리를 초대하시고 우리를 붙잡으신 자리인 줄 믿는다. 그게 얼마ㄴ나 귀한 것인지, 복음의 신비가 담긴 이 혼인 집의 특징 중에 하나는 100퍼센트 주인을 위하여, 동시에 100퍼센트 초대받는 사람을 위해 이게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독특한 신비한 것이다. 아주 비밀이다. 마치 혼인잔치 집에 100% 신성을 가지시고, 100% 인성을 가지신 것처럼 세상의 어느 잔치도 100% 초대 받은 사람을 위한 잔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잔치는 100% 왕 되신 하나님을 위함뿐만이 아니라 그리고 100% 초대 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열린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 문제가 잘 해결되면 오늘 초대 받은 사람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독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생각해보면, 1-7절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ㅣ. 초대를 거절한 사람 *마태복음 22:3, 3 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완벽하게 초대를 하고 보니까 오기를 싫어했다. 초대를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왕의 초대장을 들고 갔던 왕의 하인들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지금이야 결혼식 초대를 하면 어떠한가? 우리가 e 메일이나 문자나, 요즘은 다 그렇게 한다. 당시는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이 왕의 혼인잔치를 만들어 놓고 하인들이 전부가 다 일일이 초대장을 다 전달하고 구두로 전달하는 일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인들이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다 거절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하인들을 보냈다. *마태복음 22:5,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초대해줘도 감사하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으로 자기 사업으로 갔다. 그리고 이제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를 말할 수 있고 또 일차로 보낸 받은 사람은 구약의 선지자로 이야기 한다. 2차로 보냄 받은 사람들은 신약에 복음 전하는 자로 말할 수 있는 특별한 해석이다. 그래서 초대를 했는데 자기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거절을 했지만 심지어 6절을 보면, *마태복음 22:6,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아주 무리하기 짝이 없은 악당 같은 그런 역할을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왕이 7절에 너무나 화가 난 것이다. *마태복음 22:7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저는 이 비유를 보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초대한 것을 거절했다고 이렇게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 동네를 다 불 사른다는 것이 너무 과격 하는 것이 아닌가를 어릴 적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분 단순한 잔치가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 나라 혼인잔치이고 복음의 잔치이다. 그리고 복음을 거부하면 영원한 진노와 형벌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잔치에 밥 먹으로 오라고 이정도가 아니고 왕이 노하였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우리가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진노한 왕이 초청 대상자를 복음의 신비가 담겨 있어가지고 그래서 초청을 만들어 놓고 오라고 하는데 안 오니까 이제 플랜a와 플랜b가 발표된 것이다. *마태복음 22:8,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성경 전체 구원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우선 선택을 해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려고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하니까, 그 왕의 아들을 이렇게 하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냐면, 복음 전도자들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의 소식을 이 잔치의 초대가 간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플랜a가 플랜b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초청을 거절하게 되면 이것이 오히려 평소에 초대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기회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부하니까 이방 사람들에게 이 초대장의 기회가 넘어 간 것이다. 마치 구약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는 것에 불구하고 계속 거절하고 계속 팅기고 그러니까 민주기에 이렇게 말한다. *민수기 14:30,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광야 길을 통과해서 가나안에 다 들어가야 되는데 사람들이 그 초대를 거부하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외에는 못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플랜b를 보냈다. *마태복음 22:9,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마태복음 22:10,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 한 마디로 플랜a로 볼 때는 무자격자들인데? 누구나 아무나 되는가? 하는 사람들을 다 모아서 드디어 잔치 집이 가득 찬 것이다. 오늘 날 차별 없이 허락하시는 주님의 복음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들이다. 그런데 멋진 잔치가 시작되었는데 오늘 중요한 주제가 하나 있다. 왕이 드디어 잔치를 들어왔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 한 사람이 자신만의 자기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12절을 보면, *마태복음 22:10,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예복을 안 입었다고 자기 옷을 입었다고 어떻게 손발을 묶어 바깥에 내어 던지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모두가 다 말씀의 깊이에 들어가겠다. 그리고 평소에 신앙관이 잘못되어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신앙관을 눈을 교정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 판짜기를 하는 것이다. 무얼 이야기 하는 것인가? 첫째는 초청을 거절한 사람, 이야기를 했다. 두 번 째로 중요한 것은 예복을 입되 올바른 예복을 입어야 한다. II. 준비된 예복을 입어야. *이사야 64:6,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자기의의 멋진 옷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하신 올바른 의의 옷, 어린양에게 씻겨 진 예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 *마태복음 22:13,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잘못된 옷을 입은 사람은 영원한 형벌을 받고 예수님이 주시 의의 옷을 입은 사람은 영원한 잔치에 들어가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의 의로움과 나의 힘, 나의 정당함으로 서는 것이 아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제조하시고 직접 직조하시고 만드시고 수놓으신 예복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한 것이다. 믿음으로 이 잔치 초청을 하고 이 옷을 입고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보면 오늘 이 혼인 예복은 우리에게 전가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의가 전가되었다는 것, 트랜스퍼 되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 그 의의 옷이 우리에게 전가된 은혜를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혹시 우리에게 더러워진 예복이 있으면 *요한계시록 7:14,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저는 이렇게 한복을 입었다. 이거는 서너 번 입고 나면 더러워질 것이다. 특별히 한국 동정은 쉽게 더러워진다. 그런데 깨끗이 씻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입은 옷이 더러워진 것들이라도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의 우리가 목욕하게 되면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줄로 확신한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더러워진 누더기 옷과 같은 오염된 옷을 입고 있다면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다시 한 번 더러워진 예복을 주 앞에 벗어서 샘물과 같이 솟아나는 보혈로 깨끗하게 씻김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예복을 입고 새로워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제가 최근에 한국교회 중견 남자 탤런트가 계시는데 자신의 어머님이 타종교를 믿다가 아주 예수님을 잘 믿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분이 새벽기도도 나가시고 열심히 믿었다. 아들 탤런트에게 “자네 말이야, 나 요즘 예수 믿고 큰 은혜를 받았다.” 라고 하셔서 무슨 은혜를 받으셨냐고 했더니 “나 이제 교회에서 집사 되었다.” 집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천국에 집을 사 놓는 것이란다.” 라고 이야기 하셨다고 한다. 얼마나 순전한가!! 사랑의교회 집사님들 천국에 집을 사놓기를 바란다. 아직까지 사랑의교회 집사님 안 되신 분들은 집사님 되시길 바란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소망한다. 그런데 왜 초대를 거부하고 잔치에 와서도 왜 예복을 입지 않는가? 결국은 예복을 안 입고 거절한 이유는 왕권을 인정하기 싫어서이다. 왕 되심을 인정하기 싫어서이다. 그 아들 대신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기 싫어서이다. 이 비유에는 복음의 신비가 들어있다. 심지어 왕의 다스림을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임금에게 권위를 표현하지 않고 왕좌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것, 계속 자기의 독립권을 주장하기 위하여 밭과 사업을 핑계로 사실 그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왕권도 왕조도 인정하지 않는 패역의 마음, 반역의 마음, 정말 싫어하는 배신의 마음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하려고 할 때에 아도니아라는 다른 왕자가 거부하고 그 유명한 요압과 아비아달이 합세를 해가지고 쿠테타를 일으켰다. 왜 그랬을까? 아도니아는 나도 왕자인데 솔로몬의 왕좌됨과 왕의 등극을 싫어하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여압 같은 사람은 내가 다윗 왕자에 개국 공신인데 또 그 공로의식이 충만해서 솔로몬의 왕의 등극을 반대하고 쿠테타를 일으킨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뭐냐면 여디디야, 하나님은 아예 처음부터 ‘다윗 왕 다음에 솔로몬이다.’ 영적인 눈으로 보면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초청을 응하지 아니하고 예복을 입지 아니하고 근처에는 하나님의 왕 되심과 주인 되심을 거부하고 그런 생각들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당시에 바리새인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결국은 응하지 않겠다면 것, 더 심각한 것은 왕국을 내가 지키고 내가 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새로운 신앙관, 새로운 시판짜기를 해야 할 줄로 믿는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모든 분들, 자기의 옷이 아니라 내가 준비한 옷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하신 흰 세마포 옷을 입고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귀한 백성들이 되어서 주인뿐만이 아니라 초대받은 여러문의 운명이 바뀌는 축복을 하나님이 허락해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해주신 줄로 확신한다. 찬송가에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3절에 보면 주님 예수 다시 올 대 영접할 예복이 있는가? 그대 몸은 거룩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모든 죄, 더러워진 예복을 주 앞에 지금 다 벗어서 샘물 같이 솟아나는 보혈로 흰 눈 보다 더 희게 씻으라.~♪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더할 터인데 의의 옷과 예복을 제대로 입고 잔치에 참여하면 잔치의 기쁨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니까 의의 옷을 입고 주님이 예비하신 예복을 입고 의의 옷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무어냐면 잔치의 기쁨이다. 여러분 보이지 않은 무형교회, 우리 자신도 그러고 눈에 보이는 사랑의교회 근본적으로는 교회는 잔치집이다. III. 교회는 잔치집이다 교회는 잔치집의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쁜 소식을, 여러분, 복음이라는 거은 기쁜 소식이며 굿 뉴스이다. 복음이란 갓스플 기쁜 소식이 담겨있다. 아주 그냥 기쁜 소식을 하인들이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 복음의 현장, 교회와 무형교회인 우리 자신은 기본적으로 잔치와 희락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교회오신 여러분들은 기본적으로 이 잔치의 기쁨이 있어야 되고 교회는 혼인잔치의 설렘임이 가득해야 한다. 인생은 여러분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다. 어제 저녁만 하더라도 죽고 싶고 우울하고 기가 막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오늘 이 복음의 신비와 능력을 깨달으면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예비하신 기쁨과 잔치의 희락 성을 다시 한 번 장착하고 나아갈 수 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말씀 하셨을 때에 천국이 마치 무엇 무엇과 같다고 했는가? 자주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냐면 “천국은 마치 혼인 잔치 집과 같다.”라고 하셨다. -Feast Home(잔치 집) 그리고 예수님이 첫 기적을 베푸실 때도 가나 혼인 잔치집을 사용하시고 왜냐면 그 당시 사람들이 마음이 지옥이었다. 우울하고 어둡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바리새인의 율법주의와 기적과 부활도 안 믿는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자유주의와 당시의 에센에파의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팽배해가지고 잔치는커녕 우울증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올바른 잔치 집에 초대를 받고 올바른 의의 예복,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진 예복을 제대로 입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혼인 잔치집의 기쁨이 다가오는 것이다. “천국은 마치 혼인 잔치 집과 같다.”라고 하셨다. “천국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라.” -바울이 이걸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니라.” 바울이 고백한 것이다. 주님은 완벽한 음식, 완벽한 예복, 완벽한 잔치를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매주일 교회는 완벽한 주님의 잔치집이고 교회는 목마른 자들이 와서 잔치집의 생수를 마시는 것이며 배고픈 자들이 생명의 떡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피곤한 자들이 잔치 집에 와서 힘을 얻는 것이다. 교회는 잔치하는 곳이고 쉼과 생명의 떡과 생수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옛날 교회는 항상 잔치하는 주일마다 교회에서 잔치국수도 먹고 교회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었다. 교회는 잔치하는 곳이다. 기뻐하는 곳이다. 문제는 팬데믹 이후에 많은 교회들이 잔치집의 기쁨이 상실이 되고 있다. 심지어 대면 예배를 많이 드리지 못하니까 이 안아주심 본당에서 오늘 이 시간 체험할 수 있는 생수와 생명의 떡과 쉼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온라인 예배가 감사하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 자리에 참여해서 여러분들이 받을 수 있는 기쁨과 설레임과 잔치의 희락성은 질과 수준과 깊이가 차이가 있다. 먹 방보는 것 하고 직접 드시는 것과의 차이이다. 여행을 TV로 보는 것과 직접 여행에 참여하는 것과의 차이다. 오늘 온라인 생중계로 들어오신 분들이 한국교회 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두 명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무자격자가 없어야 되고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자들은 다 참여할 수가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 13장에 이런 내용의 말씀하고 있다. *누가복음 13:29, 29사람들이 동서 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 잘 믿으면 처량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십자가 지고 고난도 겪지만 제가 분명히 외칠 수 있는 것은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이다. 그리고 잔치가 있는 곳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경건은 ‘차갑고 무거운 경건’이 아니라 순전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양하는 ‘잔치 성을 지닌 경건’이다. -오늘 우리 교회 올해 교회를 섬긴 우리 중직 자분들, 여러 성도님들 생각을 해보라. 교회가 이런 잔치성도 없고 이런 잔치 집에 기뻐하지도 않고 교회가 초상집 같다면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안 되는 것이다. 여러분과 저는 초상집의 하인이 아니고 잔치 집의 하인인 것이다. 교회 오면 생명이 거듭남, 삶이 거듭남, 잔치의 거듭남, 생명의 떡의 거듭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옥에서 출장 나온 사람처럼 얼굴을 하지 말고, 잔치 집의 기쁜 순전한 얼굴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기독교인의 잔치 성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성품, 새 판짜기를 만들어 주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새로운 기질을, 새로운 캐릭터를 주님이 주시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잔치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크게 합독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 잔치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여러분들 마음속에 평생 우리는 결심하고 얼굴이 우울하고 마스크 속이 여러분이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오늘 환한 은혜의 잔치의 눈빛으로 반짝반짝하면서 이 예배당을 나가야 할 줄로 믿는다. 그리고 이 잔치가 될 때까지 예수님은 계속 우리를 이렇게 추적하신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 제자들을 통해서 추적하신다. 야고보가 죽으면 베드로를 보내시고 스테반이 죽으면 나중에 또 바울을 보내신다.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보내신다. 토마스선교사가 죽으면 언더우드 선교사를 보내시는 것이다. 윌리암 케리가 죽으면 허드슨 테러를 보내신다. 잔치가 될 때까지, 그 집이 다 찰 때까지, 저는 오늘 제 생애가 될 때까지 언제가 가장 큰 잔치였나? 1978년 7월에 옥한흠 목사님을 모시고 우리 대학부 청년들이 수련회를 했다. 40여명이 참여했다.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다. 그 수양회를 정리하면서 교제와 기쁨이 충만했다. *요한일서 1: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생명의 능력과 기쁨의 능력을 실제로 입체적인 능력과 부흥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주님과의 올바른 교제와 사귐이 있게 하셨다. 소위 의의 예복을 입은 것이다.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생명과 교제와 기쁨의 능력을 실제로 체험했다. 소위 의의 예복을 입은 것이다. 사랑의교회 그 당시 8월 달 그 당시 가만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9월에 생명 교제 기쁨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영적인 비상사태를 8월 한 달 동안 9월 25일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에 캠퍼스에 가서 그 다음에 아침에 못 가면 오후에 가서 하루도 안 빠지고 대학 전체 집회에서 비상벨을 한 번 울리고 그다음에는 우리가 영적인 기쁨을 우리가 나누자고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우리는 돈 받고 하지 말고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잔치하자고 했다. 그래서 생명의 시간, 기쁨의 시간, 교제의 시간을 만들었다. 먼저 생명의 시간을 위해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친구들을 초대해서 복음을 나누고 교제하고 다 같이 밥 먹고 저녁을 다 같이 준비하자고 했다. 저녁 먹고 7시부터 9시까지 집회를 했다. 기쁨의 시간, 생명의 시간을 가졌다. 대학생들이 돈이 없는데도 기쁨으로 헌금을 했다. 우리식으로 300만원이나 모았다. 그 당시 서민 아파트 한 채가 천만 원이었다. 50명이 모은 것인데 많이 모은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500명을 초대했다. 열 배를 초대했다. 그때부터 폭발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 시대에는 안 될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 사랑의 교회가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갖게 되었다. 우리 교회가 지방에 있는 교회들과 미 자립교회를 5천명의 교회 목사님들과 함께 우리가 받은 생명과 기쁨과 교제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사랑의교회 다락방과 순장반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꿈과 기쁨을 어린아이부터 포에버까지 영적 재생산의 기본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여러분 어떠한가? 50명이 500명이 초대하는 것보다도 5천명을 초대하는 것이 더 훨씬 쉽다. 지금 우리가 오천 명을 초대하는 것이 훨씬 쉽다. ♣요약 왕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갖추시고 초대하실 때에 핑계와 거절을 회개하며 준비된 보혈의 예복을 입고 영원한 왕의 잔치에 참여하자. 우리 공동체가 모든 죄에 더러워진 세속의 옷을 벗어놓고 샘물같이 솟아나는 보혈로 씻음 받게 하여 주시길 간구하고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인생의 새 판짜기를 경험해야 한다. 9월 26일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맞아서 26일과 27일을 위해 기도하고 가정의 스테이 홈으로 잔치를 창조할 때 한국교회가 혼인 잔치집의 기쁨이 가득한 부흥으로 비상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 왕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사람은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신다. 이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를 받고도 오지 않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는 상당히 완강하시다. 하나님은 복음을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 그리고 하나님을 버린 자들에게는 분노를 발하시며 가차 없이 벌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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