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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7월 9일)-(여름특별토비새-I)
제목: "예수님을 위한 아름다운 행함"(Doing Something Beautiful for Jesus)
말씀: 요한복음 14:8~14
대표기도: 김도훈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ㆍ김원준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폴 칠더스 목사님(하와이 열방대학 총장 )
통역 : 이성현 교수님(미국 주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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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8~14,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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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다. 정말 제가 이아침에 여러분과 다시 함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다시 한 번 우리 오 목사님께 새벽에 이렇게 오게 하심과 여러분과 함께 하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다시 한 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자 큰 영광이다. 제가 하와이에서의 인사를 드리기를 원한다. 하와이에서는 ‘알로하’ 라고 인사를 한다. 그래서 제가 알ㆍ로ㆍ하ㆍ라고 인사를 하면 여러분 모두가 똑 같이 인사해 주면 된다. 따라하라. 아침에 그렇게 하실 수 있나요? 알로하! 우리 모두 이렇게 하와이에 와 있는 거 같다. 정말 그 단어가 능력 있는 단어인데 '알로'라는 뜻은 '임재 안에 있다.'는 그런 뜻이 있고 '하'는 '생명의 숨결'이란 뜻이다. 정말 하나님의 숨결이며 이 말은 다양한 뜻이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또한 사랑을 표현할 때도 쓴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사랑으로 이렇게 인사한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여러 번 제가 이곳을 방문했지만 그런데 지금까지는 혼자만 왔었다. 정말 기쁜 것은 정말 저희 가족이 하와이로부터 함께 오늘 왔다. 제 아내 '수지' 제 아내 수지는 사진작가 선교사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들을 다니시는 그런 사진작가 선교사인데 그래서 사진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알로하’를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 사진을 통해서 기도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수지 사모님의 역할이다. 그리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행함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두 명의 하와이 소년을 데리고 왔다. 오늘 하와이의 축복을 여러분에게 전달하기 원한다. 그래서 훌라 댄스 –웨이크 업(Wake up), ‘깨어나라’의 제목이다. 뒤에 이제 사진이 나올 텐데 제 아들 리바이‘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에 ‘하와이’를 가져오겠다. 훌라춤,,,, 너무 잘했다. 아이들아.
 
여러분이 이아침 보신 것이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깨어나라.’ ‘알로아로 깨어나라.’ ‘하나님의 삶의 임재 가운데 깨어날지어다.’ 오늘 전할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나눌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깨우시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3장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 예수님께서 나누시는 것인데 13장 후반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아주 중요한 새로운 전환점 가운데 준비시키신다. 그 중요한 전환점은 이제 더 이상 제자들과 함께 하지 못하신다는 것이다. 3년간 제자들과 모든 것을 함께 했다. 정말 예수님이 정말 사랑을 베푸시는 것을 직접 보았다.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반응하는지도 보았다. 하지만 예수님이 곧 하나님 아버지께도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제자들과 기독교인들에게 내려질 때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사역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깨우시는 모습이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충격저인 방법을 사용하신다. 요한복음 13장에 테이블에 제자들이 둘러앉는다. 정말 그 테이블에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사역을 하시는데 저녁을 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일어나신다. 그래서 정말 그 유대인 예전에 있던 시절에는 그 식탁에 약간 비스듬히 앉아 있다. 왼손을 이렇게 하고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발은 뒤쪽으로 비스듬하게 눕는다. 그리고 식사를 하기 중간에 예수님께서 일어나신다. 그런데 제자들이 약간의 긴장을 했다. ‘랍비, 선생님이 일어나셨네, 그래서 우리도 같이 일어나야 되는 것은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다. 예수님이 그러셨을 것이다.. “너희는 일어설 필요 없어, 앉아 있어라.”
 
그다음에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으신다. 좀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여러분도 불편하지 않겠는가? 정말 선생님, 랍비가 겉옷을 벗으시는 것이다. 그리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가지고 오신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신다. 정말 충격적이고 너무 불편했을 것 같다. 여러분이 그 사람이라면 어떠실 것인가? 여러분한테 그 상황이 발생한다면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정말 불편한 일인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씻어주신다. 그래서 드디어 제자 베드로까지 오셨다. 베드로는 아주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소리친다. “예수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네가 내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언제가 알게 될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베드로가 다시 뭐라고 하는가? “주님 안 됩니다.” “주님 안 됩니다.”를 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주님한테는 순종을 해야 하는데, 주님 안 됩니다. 라고 말을 한다. “주님 절대로 제 발을 씻길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네 발을 씻지 않으면 내가 너와 상관이 없다.”라고, “주님 그러면 제 손과 머리와 다리 다 씻어주세요.”라고 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좀 침착하라. 괜찮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계신다.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고 계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실 말씀을 하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주목을 받고 계시는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실재에 대해서 깊이 나누고 계신다. 정말 예수님의 그 사역과 예수님의 미니스트리에 대한 실재를 설명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떠난 후에도 제자들이 그 사역을 지속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정말 제자들이 예수님이 떠난 후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신 것 중에 한 가지 나누고 싶은 것은 10절 말씀이다.

*요한복음 14:10,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래서 예수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너희한테 한 것을 너희도 똑 같이 해야 한다” “너는 내가 한 것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정말 우리를 부르심이고 우리가 해야 할 큰 사명이다. 정말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것보다 더 큰일을 할 거라고 말씀하신다. 정말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거하시는 그 능력을 보여 주셨고, 그 능력으로 인해서 예수님께서 정말 그 사역을 감당하셨다. 똑 같은 방식으로 성령님께서 그 예수님의 임재를 제자들의 삶으로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정말 제자들도 예수님과 똑 같은 그런 사역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실재로 제자들이 들어가게 인도하신다. 하나님을 위해서 제자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텔레사 수녀의 그 예가 저에게 최근에 감동을 준 것이 있다. 수녀가 종종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아름다운 일을 하고 싶지 않은가? 지난 세기의 사랑의 사도 같은 역할을 했다. 전쟁과 분쟁이 있는 지역의 사랑의 사도의 역할을 하신 분이다. 그래서 이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가 전류의 비유로 말씀을 한 것이 있다. 전선들, 얇은 전선, 두꺼운 전선을 볼 수 있다. 싼 것도 있고 비싼 것도 있을 텐데, 그런데 전류가 전선에 흐르기 전까지는 빛이 통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한다. 전선이 여러분과 제가 전선과 같은 존재이다. 전류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류가 흐를 수 있는 그런 전선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하시옵소서 우리를!“ “우리를 정말 하나님의 빛을 우리를 통해서 통과하시고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아멘으로 화답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이시다. 그리고 우리도 세상의 빛으로 살도록 부름 받았다. 그래서 그녀의 삶으로 우리가 따라가야 될 본을 보여 주셨는데,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다. 정말 제가 흥분되고 있다. 테레사 수녀였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살도록 부르셨다. 그래서 정말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가난하나 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주 비싸고 그런 것을 가져갈 필요도 없다.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할 때 아름다운 것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정말 살았다.
 
한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을 어떻게 돌봤는지에 대한 그런 예가 있다. 그래서 ‘카르마’라고 하는 힌두교의 종교 때문에 그 천민계층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 아프다면, 너의 과거의 죄 때문에 너는 고통을 받아야 된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캘커타에서, 길거리에서 병으로 고통 받다가 죽도록 그렇게 내버려 둔다. 그래서 정말 쥐가 와서 사람들을 파먹기도 하고 구더기도 덮여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하루는 캘커타에서 어떤 남성을 맞았다. 정말 구더기로 덮인 몸이었다. 그래서 그를 우리 집으로 들였다. 그 남자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욕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길거리에서 짐승처럼 살았다. 그런데 이제 천사처럼 죽을 수 있다. 사랑 받았고 돌봄을 받았다.”라고 했다.
 
그 사람을 씻기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 드디어 다 씻긴 다음에 저를 그 남자가 쳐다보면서 말했다. “수녀님, 저는 이제 하나님 곁으로 갑니다.”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저는 인간 중에서 그렇게 빛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집으로 간 것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여러분, 보시고 계시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역의 길로 가도록 준비시킨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정말 그렇게 급진적인 사랑에 한 예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정말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을 먼저 사랑하라고... 때때로 정말 멀리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정말 집에 같이 살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이다. 그래서 저 멀리 있는 길거리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데, 여러분의 아내와 남편을 다툴 때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말 그 사랑을 표현하는 것, 그런데 그 사랑은 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정말, 우리가 자녀를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우리 서로를 위해서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 부족함이 많은 고통을 초래한다. 정말 우리가 급진적으로 사랑하자. 우리가 서로 서로 섬기자.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섬기자. 그래서 정말 우리가 가족에게 예수님 같은 그런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말하는 것 보다는 행하는 것이 더 어렵다. 제 아내와 저도 하루는 다툼이 있었다.
 
제가 집에 있는 컴퓨터를 가지고 제가 모든 비번을 바꾸어버렸다. 아내의 패스워드는 ‘나를 폴을 사랑해.’이며 나는 ‘수지를 사랑해’ 였다. 제 아이들의 비번도 바꾸었다. 제가 제 아내와 제가 다투었을 때, “나 지금 지하로 가서 일을 좀 할 거야.” 라고 했다. 그런데 컴퓨터 로긴을 하기 위해서는 ‘나는 폴을 사랑해’라고 비번을 사용해야 한다. ‘비번을 바꾸어야지’,
 
정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가? 성 프란체스카의 기도는 능력이 있다. 위로를 받기보다 위로를 하라는 것이며, 우리가 줄 때, 받는다고 기도한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할 때, 용서를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죽을 때, 영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생각이다. 여러분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면 사랑을 먼저 주라. 그런 긍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먼저 긍휼함을 베풀라. 우리가 그렇게 줄 때, 우리가 받게 될 것이다. 너무나 많은 문제로 인해서 우리는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가 정말 고민들이 있다. 정말 스트레스도 있다. 이아침에 예수님의 길을 선택하자. 저는 그 예수님의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이 깨어진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을 펼치고 나가자. 그것은 우리 가족에서부터 시작이다. 정말 행함으로 우리의 사랑을 보여줄 때, 그 사랑은 놀라운 역사를 할 것이다. 이제 사랑은 그냥 감정이 아니라, 여러분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여러분의 행동 하나하나의 사랑을 담아라. 그렇게 할 때,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자녀들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이유이다.
 
북 나이지리아에서 했던 프로젝트가 기억이 난다. 그 북 나이지리아에서는 많은 그리스도 형제 재매들이 핍박을 받고 있다. 교회는 붍 태워서 없어지기도 해서 그래서 그곳에 제 아내와 제가 교회를 재건하자고 했다. 헌금을 받아서 그 헌금으로 나이지리아로 다시 보내서 교회를 지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 행동이 그 교회를 불 태워버린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게 했다. 그 사람들이 사랑의 행함을 본 것이다. 그 사람 중에서 ‘나도 예수님을 이제 따르기를 원한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사랑 때문이다. 우리도 이 새벽에 여러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아름다운 일을 하겠는가?
정말 예수님이 육신이 나타나신 것이다. 그 육신에 대해서 하나님의 실재를 성경에 살아내셨다.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셨다. 여러분에게 어떻게 도전을 주시는가? 정말 저에게 도전을 주셨던 것은 오래전이기도 하다. 그 신약 전체를 마음으로 암송을 하는 것이다. 목사님에게는 큰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시간이 많으면 그냥 성경을 압축해 버리면 된다. 그런데 주님이 이렇게 저에게 도전하게 해 주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기로 하고 그렇게 따랐다. 그래서 하나님께 “주님 이것을 주님께 선물로 드립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서 아름다운 일을 하기 원합니다.” 제가 이렇게 할 때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제 삶을 하나님께 선물로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모두 드립니다.” 이아침에 여러분도 저와 함께 하지 않으시나요? 주님, 함께 하겠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아름다운 일을 하는데 동참하겠습니다. 정말 그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같이 걷기를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여러분, 일어나 보라! 함께 기도하겠다. 제가 통역으로 기도한 것을 따라서 하시기 바란다.
“사랑하는 주 예수님, 주님의 임재 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께 네, 라고 순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의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제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는 이 세상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이 손과 발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를 사용하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세상의 빛이 되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합니다.”
 
오 목사님과 사랑의 교회 성도님을 다시 한 번 축복합니다. 여기에 있는 한 사람 한사람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창조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원한다. 주님을 정말 섬기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이 교회와 이 한국을 사용하여 주시길 기도한다.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길 기도한다. 여기 있는 한 사람 한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심에 오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들 드린다.
 
제 가족을 함께 왔는데 책도 소개를 하기 원한다. 지금 이 책은 제 아내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도록 여러분에게 도전을 줄 것이다. 이 책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그림을 넣은 책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게 알 수 있는 책이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정말 감사하다.
 
♣요약.
우리 교회가 이번 토비새에 강력한 말씀을 통하여 영감의 갑절을 구할 때, 삶의 현장마다 생명의 진동이 일어나 가정과 일터에 온전히 세워져야 한다. 우리 교회에 명하신 한국교회의 섬김을 통해 모든 영 가족이 단장지애 섬김으로 힘들고 지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을 진심으로 섬기게 하시며 방문하는 교회마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소망의 빛을 목도하길 소원한다.  바로 이곳에서 훌라춤을 하나님을 경험했듯이 특별한 시간이다. 앞으로 주실 기대를 여름 사역을 위해 모든 부서에 축복하시길 기도해야 한다.  9.26일 한국교회의 섬김을 준비하는데 부족함이 없이 사랑으로 섬기며 가장 아름다운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방학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원한다.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과 중직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많은 섬기는 사역에도 충만한 은혜가 있도록 기도하고 섬기자.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만이 우리 영혼은 만족을 누리는 것이다. 아버지의 모습은 지상에 있는 하늘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가 당신을 보는 것같이 우리의 육안으로 아버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족하겠나이다." 이와 같은 질문은 그의 믿음의 연약성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보여 주는 복음의 방법에 대한 그의 무지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제도와 방편을 주신다. 주님은 빌립에게 그가 본 것에 관해 말씀하신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주님은 빌립에게 두 가지 책망을 하고 계신다. 빌립이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에서도 그에 대한 분명하고도 뚜렷한 지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빌립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빌립은 처음 주님을 만나던 날 그가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이분이 바로 메시아라고 고백하였지만, 이때까지 주님 안에 계신 아버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있으나 그분에 대하여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보아야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그리스도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머물수록 점점 성장하기를 바라시지, 우리가 어린아이로 남아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주님은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부르짖는 빌립의 나약한 기도를 책망하신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나약함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서투른 요청을 청하는 것이다. 빌립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다. 육신으로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하나님을 본 것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들 본 모든 사람도 그들이 하나님을 본 것을 즉시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결국 그들도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본 것이다. 흠 없고 순결하신 그리스도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보이고,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다.
 
주님은 빌립에게 그가 믿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므로. 나를 보는 네가 아버지를 본 것임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것은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주께서 말씀하셨듯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봄으로써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어야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리는 주께서 하신 말씀으로 인해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 네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10절). 그는 자의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인도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행하신 일로 인해 믿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0절). "그러므로 그 일로 인하여 나를 믿어라."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님 안에 거하신다. 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므로 그는 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여호와를 찾되 그리스도 안에서 찾으라. 그러면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신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많은 권능의 사역과 은혜로운 사역들은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일들이다. 우리는 바로 그 사역 때문에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기적들은 그의 신적 사명에 대한 증거로서, 믿지 않는 자들을 뉘우치게 할 뿐 아니라 제자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주님과의 이별의 슬픔과 주님이 떠나가시면 그들을 누가 돌보아 줄 것인가 하는 염려로 가득 찼다. 주님이 그들을 떠나가시면 제자들은 목자 잃은 양같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어려운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확신 시켜 주시고 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 말씀은 그분의 능력을 다른 어떤 말씀보다는 더욱 확고하게 나타내신 말씀이며, 그리스도 자신만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기적의 능력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 주셨다는 말씀이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그런 일을 고치시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지 않으셨는가? 그들도 그렇게 행할 것이다. 주님께서 죄인들을 위로하시고 회개시키심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시지 않았던가? 제자들도 그렇게 행할 것이다. 주님은 비록 떠나시지만 주님의 사업은 시들지 않고 패배하지도 않을 것이며 지속될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들은 위대한 기적을 행하게 될 것이다. 물론 조금한 기적이란 없다. 단지 우리가 보기에 어떤 기적은 다른 기적보다 더 위대하게 보일 뿐이다. 그리스도 는 한 나라에서 2,3년 동안만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의 제자들은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러 시대에 걸쳐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베풀었다. 은혜의 시대에 제자들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실 때 거두신 승리보다 복음으로 더 큰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세계의 거대한 부분을 그리스도께서 소유할 수 있게 했다는 이 사실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런 것들을 주시는 이유: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12절). "내가 떠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그러한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 떠나기 때문에 나는 너희에게 그러한 능력으로 채워 줄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13절).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떠나가신 후 그리스도와 교제를 계속하고 그로부터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기도뿐이다. 정든 친구들이 먼 곳으로 떠나가게 되는 경우에 그들은 서로 서신을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마련해 두는 법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께로 떠나가시려고 할 때, 제자들이 모든 일을 당할 때 어떻게 주님께 연락을 취할 것인지 또 그들의 편지가 안전하고 확실히 전달되는 방법을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너희가 믿고 기도하면 너희는 성령을 통하여 응답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기도할 때에는 겸손히 요구된다. 제자들은 간청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제자들은 주님께 아무 것도 권리로 요구해서는 안 되며 겸손히 요청하고, 빌고 갈망하며 구하고 간구해야 되는 것이다.
 
기도할 때에 다음과 같은 자유가 허용된다. 즉 "무엇이든지 구하라.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하라. 너희가 알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질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그것들은 은혜와 보좌 앞에 상달되며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누구의 이름으로 청원할 것인가? 본문에 '나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기록되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의 중재와 공로에 의지하여 탄원한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면,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상달되기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죄인이고 하늘나라에 좋지 못한 이름으로 올라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귀한 이름이요 하늘나라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의 기도를 통하여 무엇이 이루어지는가?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그리고 14절에도 '내가 시행하리라'고 기록되었다. 즉 "내가 시행하리라는 것을 너희는 확신하라. 그것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내가 시행할 것이다." 그의 이름을 믿으면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들의 기도가 그토록 잘 이루어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13절). 주기도문에서 첫째 간구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이미 응답된 기도이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쳐진 기도는 이미 다른 모든 간구들을 거룩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도는 그리스도가 승인하시는 기도이며, 이렇게 기도드릴 때 무엇이든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은 그리스도의 제자와 목회자들이 위대한 사역을 행할 때 구속자를 통하여 찬양된다. 즉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은 위대한 사역으로 그들의 가르침이 입증되는 가운데, 그리고 이 가르침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는 가운데 찬양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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