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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4년 4월 04일)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넷째 날) 제목: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말씀: 에스켈 37:1-6 설교자: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호프교회) ----- *에스켈 37:1-6,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 ▶Dear Sarang church, I bring you greetings from hope Church of Oradia. It is such a great privilege for me to speak to you again. And if I close my eyes, I can picture your wonderful congregation and your wonderful faces. You are all very wonderful people. And I want to say thank you so much to pastor o for giving me again this wonderful opportunity. Speak to this great event today. I want to speak to you about the God of impossible. The God of impossible. At some point, in a very well known text in the Old Testament, in Ezekiel 37, God is calling Ezekiel, and he's giving him this vision of the valley of dry bones. -사랑의 교회 여러분, 저는 오라디아 호프교회로부터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과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제게 큰 특권입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여러분의 멋진 회중과 여러분의 멋진 얼굴들이 그려집니다. 여러분은 모두 매우 멋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런 멋진 기회를 주신 오 목사님께도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이 위대한 행사에 연설을 하소서. 저는 불가능의 하나님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불가능의 하나님 구약성경에 아주 잘 알려진 본문 어느 순간, 하나님은 에스겔을 부르시고, 그에게 마른 뼈의 골짜기에 대한 비전을 주신 것입니다. And I believe with all my heart that today the vision that God is giving Ezekiel and the hope that God is bringing to Ezekiel and to the people of Israel through this vision that God is giving him is a vision that God can use for us and for our churches today. And listen to the word of God. In Ezekiel 37, the hand of the Lord was on me, and he brought me out by the spirit of the Lord and set me in the middle of a valley. It was full of bones. He led me back and forth among them, and I saw a great many bones on the floor of the valley, bones that were very dry. This is a picture of deadness. It's a picture of hopelessness. -그리고 오늘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주시는 비전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비전을 통해 에스겔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져다주시는 희망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교회를 위해 사용하실 수 있는 비전임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에스겔 37장에서 주님의 손이 나에게 닿았는데, 주님의 영에 의해 나를 데리고 나와 골짜기 한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 안에는 뼈가 가득했습니다. 나를 그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나는 계곡 바닥에 아주 많은 뼈들, 매우 건조한 뼈들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죽음의 사진입니다. 절망의 사진입니다. It is a picture that we cannot escape. It's a picture that we cannot ignore. But God is actually bringing Ezekiel through the valley of dry bones. Actually, Ezekiel says that he led me back and forth among them. In other words, God wanted Ezekiel to hear the smell, to feel the smell, to hear the sound, to see them very close. And my question is why? Why is God giving his prophet this type of experience? Why? Because this was a picture of desperation, of the desperate condition in which the people of Israel was finding themselves at that time. -이것은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입니다. 무시할 수 없는 그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실제로 에스겔을 마른 뼈의 골짜기로 데려오고 계십니다. 사실 에스겔은 저를 그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시켰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에스겔이 냄새를 듣고, 냄새를 느끼고, 소리를 듣고, 그들을 매우 가까이에서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질문은 왜일까요? 하나님은 왜 자신의 예언자에게 이런 종류의 경험을 주시는 걸까요? 왜일까요? 왜냐하면 이 그림은 절망의 그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And God wanted Ezekiel to understand very well how desperate the spiritual condition of Israel is. And that's why God is giving Ezekiel this type of experience, because he wanted to see where the people of Israel is right now. This is a picture that talks about no hope, about death, about hopelessness. But let's stop for a minute and let's pause for a minute and let's think of the spiritual condition and of the desperate condition in which our churches and our ministry is today. Because so many times we feel like we are serving God in a place very similar with the valley of dry bones. -하나님은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잘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런 경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희망이 없다는 것, 죽음에 대한 것, 절망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오늘날 우리 교회와 사역이 처해 있는 영적 상태와 절망적인 상태를 생각해 봅시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경우 우리는 마른 뼈의 골짜기와 매우 비슷한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Friends, we are serving God here in this part of the world, and we are located here in eastern Europe, and we are on the continent where many years ago, revival started. We are serving God on the continent where hundreds of years ago reformed happened. But you know what we can find right now here in this part of the world? A lot of dryness, a lot of decay, a lot of hopelessness, a lot of a big belly of dry bones. So many churches are closing down. So many churches in Europe are being transformed into restaurants or even worse, some of them into nightclubs. -여러분, 우리는 여기 이 지역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 동유럽에 위치하고 있고, 수년 전 부활이 시작된 대륙에 있습니다. 우리는 수백 년 전 개혁이 일어났던 대륙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우리가 지금 이 지역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 알고 있나요? 건조함, 많은 부패, 많은 절망, 많은 뼈가 말라버린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식당이나 심지어 더 나쁜 것은 몇몇 교회들은 나이트클럽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But maybe today when you look at your life, you find that there is a lot of dryness in your life and a lot of hopelessness in your life. Or maybe there is a lot of decay in your own life. And maybe so many times you get discouraged and you think that there is no hope for us anymore, that the best times are gone and God cannot work anymore. And our ministry and what we do and what we preach and what we sing and everything is happening in a valley of dry bones. And there is no place for vision anymore. Is there hope? Why is God bringing his prophet Ezekiel there? To discourage him. Why is God doing this to him? Just to tell him, Ezekiel, I'm sorry. -하지만 어쩌면 오늘날 여러분의 삶을 보면 삶에 건조함과 절망감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여러분 자신의 삶에 많은 부패가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낙담하고, 아마도 너무 많이 우리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고의 시기는 가고, 하나님은 더 이상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과 우리가 하는 일과 설교하는 일과 노래하는 일과 모든 것이 마른 뼈의 골짜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비전이 있는 곳은 없습니다. 희망은 없을까요? 하나님은 왜 그의 예언자 에스겔을 그곳으로 데려오는 것일까요? 그를 단념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에스겔, 미안합니다. It is really, really bad, and there is nothing we can do anymore, friends, that's not the reason God is bringing him there. God wants to give him hope. And that is why in verse three, God asked me, says, ezekiel, son of man, can these bones live? Now, if you were Ezekiel, imagine for a moment you are Ezekiel, and God is asking you this question. Why would you answer, can these bones live? Ezekiel had a few options, didn't he? He could have gone into hypocrite mode and he could have said amen, of course, but this amen could have been just out of his lips, but not in his heart. Or he could have gone into a self pity mode. Ezekiel, can these bones live? Oh, Lord. I mean, look at this valley. Everything is so discouraging. -정말, 정말로,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를 그곳으로 데려오시는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희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3절에서, *에스켈 37:3,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이 저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 에스겔이 이 뼈들이 살 수 있을까요? 자, 만약 여러분이 에스겔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에스겔이라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하고 있다고 잠깐 상상해보세요. 왜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뼈들이 살 수 있을까요? 에스겔은 몇 가지 선택사항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는 위선적인 모드로 들어갔을 수도 있고, 물론 아멘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아멘은 그의 입 밖에 나왔을 수도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는 자기 연민의 모드로 들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에스겔, 이 뼈들이 살 수 있을까요? 오, 맙소사, 이 계곡을 보세요. 모든 것이 너무 기가 막힙니다. God, I don't think there is any hope for this valley. I'm here alone. I'm here by myself. I don't have any team here. I don't have any colleagues. There are no other christians alive in this valley. I feel overwhelmed. I'm in a burnout, Lord. I don't believe there is anything that can be done in this valley of dry bones. He could have gone in this self pity mode like you and I. We go into this self pity mode so many times. And look at this text. He asked me, son of man, can these bones live? And I said, and I love this sovereign lord, you alone know he doesn't go into hypocrite mode. He doesn't give God self pity and complains himself that it's too hard, it's too difficult, that I feel like I want to resign. But he is looking at a sovereign God. -하나님, 저는 이 계곡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 혼자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혼자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팀이 없습니다. 저는 동료가 없습니다. 이 계곡에는 다른 기독교인들이 살아있지 않습니다. 저는 압도당합니다. 주님, 저는 번 아웃 상태입니다. 그는 당신과 저처럼 자기 연민 모드로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자기 연민 모드로 여러 번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보세요. 그는 인간의 아들인 저에게 이 뼈들이 살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 주권적인 주님을 사랑합니다. 당신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 연민을 주지 않고 너무 힘들고 너무 어려워서 사임하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불평합니다. 하지만 그는 주권적인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And Ezekiel understands something, friends. Ezekiel understands that the valley of dry bones is God's valley of dry bones. And it is not Ezekiel's valley of dry bones. Ezekiel understands that even though the condition is desperate, even though there is no hope from a human perspective, he understands that God is sovereign. And he understands that our God is a powerful God. He's an almighty God, and he can do whatever he wants in that valley of dry bones. And that is why Ezekiel is looking at God in faith. And he knows that if God wants to bring these bones back to life, God can bring these bones back to life. -그리고 에스겔은 무언가를 이해합니다, 친구들아. 에스겔은 마른 뼈의 골짜기가 하나님의 마른 뼈의 골짜기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에스겔의 마른 뼈의 골짜기가 아닙니다. 에스겔은 그 상태가 절망적일지라도 인간의 관점에서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권자임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이 강력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마른 뼈의 골짜기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에스겔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뼈들을 되살리고 싶다면 하나님이 이 뼈들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He knows that God is not done. Even though he doesn't see any hope, he knows that God can do an amazing work right there in that valley of dry bones. And friends, this is where hope starts. This is where things are changing. This is where in the middle of dryness, God is doing, is beginning to do something amazing. And I know that so many times we have so many reasons to complain ourselves that it is too difficult, it is too much, it is too expensive, it cannot be done. It is impossible. But I want to remind you something very important today. That we serve a God of impossible. That's why he's not just giving any type of answer. -그는 하나님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그는 희망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바로 그 마른 뼈의 골짜기에서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 여기서 희망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상황이 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건조한 가운데 놀라운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그것이 너무 어렵고, 너무 비싸고, 할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불평할 이유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오늘 여러분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불가능의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지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That's why he doesn't look at himself, at what he can do, but he looks at what God can do. And friends, Sarang church, I know that God gave you a great vision until the year of 2033. And I believe with all my heart that God didn't just give you that vision by accident. I know that God, the God that you serve, is a God of impossible. And I know that God can help you to fulfill your vision. I know that God allowed this great church in South Korea for a very specific reason. Do you know what God can do through a congregation like Sarang Chuch? Do you know why God has blessed you so much?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할 수 있는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들 사랑교회 여러분, 2033년까지 하나님께서 큰 비전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연히 그 비전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이 불가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비전을 이루도록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에서 이 큰 교회를 허락하신 것은 아주 구체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와 같은 회중을 통해서 하나님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복을 주셨는지 알고 있나요? Do you know why God gave you so many wonderful people? And do you know what God can do through you? You can be a blessing for South Korea. And I believe that our God, even today, is a God that can do the impossible. And I believe that God can use your church. And I believe that through strong church there are hundreds and thousands of churches that can be planted everywhere. And I believe that God has blessed you for a reason. That one day you, Sarang church will go into North Korea and you will plant hundreds of churches over there. And I believe that through you, God will bless many nations. Friends, let's not give up. Let's not discourage.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멋진 사람들을 많이 주셨는지 아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아세요? 당신은 남한을 위한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이용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튼튼한 교회를 통해 곳곳에 심을 수 있는 교회가 수백, 수천 개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날 당신이 북한에 사랑의 교회가 들어가고 당신은 그 곳에 수백 개의 교회를 심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통해 하나님이 많은 나라를 축복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친구들아, 포기하지 말자. 낙담하지 말자. Let's not stop proclaiming the gospel because God wants to do something great, not just through Ezekiel, but God wants to do something great through our churches, in our generation, in our valley of dry bones. God is still sovereign. God is still powerful. God can still move many hearts and many people can come to salvation in Jesus Christ. Amen. Prophesy, son of man. So I prophesied as I was commanded. How is God bringing life through his word. Through his word. And there was a noise and a rattling sound, and the bones came together bone to bone. Then he said to me, prophesy to the breath. Prophesy, son of man, and say to it,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를 통해서, 우리 세대에, 마른 뼈로 이루어진 골짜기에서 위대한 일을 하시길 원하시니 복음 선포를 멈추지 맙시다.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많은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사람의 아들 프로피시입니다. 그래서 나는 명령받은 대로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을 통해 생명을 가져오십니까. 말씀을 통해 소음과 딸랑딸랑 소리가 나셨고, 뼈가 뼈와 뼈로 합쳐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 프로피시가 이렇게 말씀하시니 주권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Come, breath from the four winds and breathe into this slain, and they may live. So I prophesied as he commanded me, and breath entered them. They came to life and stood up on their feet. A vest army. Friends, let me be honest with you. So many times I felt like I am doing the ministry in the middle of the valley of dry bones. I remember when I started this ministry 15 years ago, and so many times I wondered, will anyone come? Will anyone come to life into this ministry? Will God do something significant through this church and through this ministry? And at times, I felt just like Ezekiel. I felt like I'm overwhelmed. I felt the smell of the decay. -이리 와서, 네 개의 바람으로 숨을 쉬고, 죽은 자에게 숨을 불어넣으면 그들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에게 명하는 대로 예언했고, 숨이 그들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살아나며, 일어섰습니다. 조끼 부대. 친구들이여,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뼈가 마르는 골짜기 한가운데에서 사역을 하는 것처럼 여러 번 느꼈습니다. 15년 전에 이 사역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나고, 누가 올까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사역으로 살아날까요?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또 이 사역을 통해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하실까요? 그리고 때로는 에스겔과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벅찬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부패하는 냄새를 느꼈습니다. I felt the hopelessness and all the other feelings and emotions that went through my heart. And I felt that there is nothing that can be done anymore. But, friends, I saw exactly what happened into this text. And I saw how God is raising up an army of people. And I saw how God is raising up an army of young people. And there were young people that came right here into this church, and they asked me, can we get involved? And I said, of course. Can we also be part of what God is doing here? And in the last 15 years, so many times in the middle of desperation, in the middle of hopelessness, I saw how God, through his word, can bring life. So many times when I come on Sunday morning to preach the word of God, I'm wondering myself, will anyone listen? -저는 절망감과 모든 감정들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 저는 이 본문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무리의 사람들을 기르시는지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기르시는지 보았습니다. 여기 이 교회에 바로 온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저에게 우리가 참여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여기서 하시는 일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지난 15년 동안, 절망의 가운데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생기를 가져오실 수 있는지 보았습니다. 주일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러 올 때면, 저는 정말 여러 번, 누가 들어주실까요? Will God touch anybody's life through this word of God? And so many times I picture in my mind that there will be so many young people that will come, and they will just scroll down on their phones and they will be not interested in the word of God or in what is happening here. But, friends, so many times I saw exactly what is happening right here in this text, how God is raising up an army. Why is God doing that? And God is doing that, my friends, because today God wants to work in our generation. He is still the God of possible. He can restore marriages. He can bring people from death to life. In Jesus Christ, God can give salvation today. God can use us. God can use our churches. God can use this generation. And God is not done yet. -하나님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건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앞으로 아주 많은 젊은이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저 핸드폰을 스크롤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들, 저는 이 본문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군대를 만드는지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러시는 걸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러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세대에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가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오늘날 구원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대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God can bring life in the valley of dry bones even today. This text is amazing. Because, friends, what starts with decay and hopelessness now ends in hope. What starts in deadness now is a great army. What starts with desperation now, it ends in an amazing hope. And God is bringing Ezekiel in the valley of dry bones, not to discourage him, but to give him hope, to tell him, I can still use you. I can still give you vision. I can still bring up many people from death to life. And this is our hope today. Our hope is not in ourselves, is not in our programs. It's not in our methods.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마른 뼈의 골짜기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여, 썩어가고 절망으로 시작하는 것은 이제 희망으로 끝납니다. 지금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것은 위대한 군대입니다. 절망으로 시작하는 것은 놀라운 희망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마른 뼈의 골짜기로 데려오시는 것입니다. 그를 낙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여전히 당신에게 비전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삶으로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희망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 자신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프로그램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방법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Our hope is in the sovereign God, in the God of impossible. I believe that God will continue to use Sarang church. I cannot wait until 2033 when I believe that God will help you fulfill your vision. But it's not just the destination that's important, but the journey there. So, Sarang church, continue to serve God, continue to pray, continue to worship, continue to proclaim the word of God. Because I believe that God can do something amazing and something great in South Korea, in North Korea, in Europe, and all over the world. May God bless. -우리의 희망은 주권자이신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를 계속 이용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전을 이루실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으로 믿는 2033년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목적지만이 아니라 그곳으로의 여정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계속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유럽에서도 전 세계에서도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약 -불가능한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에스겔의 비전과 에스겔이 본 마른 뼈의 계곡은 절망과 희망 없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이 비전은 우리와 우리 교회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유럽의 교회와 사명의 절망적인 상황 • 유럽 교회는 많은 고난과 희망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많은 교회가 폐쇄되거나 레스토랑, 나이트클럽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를 원한다. -마른 뼈의 계곡에서 희망을 찾다 • 고립된 계곡, 팀 없음, 에스겔의 믿음과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계곡에서 불가능한 일을 이루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비상함을 통한 교회의 사명 • 하나님이 사람들을 축복하고 통해서 많은 국가들에 축복을 베풀 수 있다. 사랑의 교회는 북한에 수백 개의 교회를 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아직도 강하게 작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죽은 뼈의 계곡에서 삶을 불어 넣을 수 있다. 하나님은 죽은 뼈의 계곡에서 삶을 불어 넣는다.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끌어낸다. 하나님은 우리 세대에서 일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랑교회에 대한 소망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도 이루실 것이다. 2033년까지 하나님이 비전을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
♣제22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4년 4월 04일)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넷째 날)
제목: “역전시키시는 은혜의 능력"
말씀: 룻기 1:19-2:3
설교자: 강준민 목사님(미국 새생명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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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19-2:3,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룻기 2:1-3,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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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가 끝나면 인제 피드백을 받게 되지요 그래서 어제 설교 끝나고 받은 피드백 중 하나가 설교가 짧아서 은혜스러웠다. 그래서 깨달은 게 아니었으면 내용이 부실하면 짧게라도 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됐습니다. 전 역전의 드라마를 많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이 정말 초라하게 출발해서 바늘집 아들로 성장하고 또 대학에 갈 수가 없어서 상업고등학교로 들어가고 그런 여러 가지 스토리들이 제 삶 속에 있기 때문에 또 어려움도 많이 겪고 그래서 아야 역전의 하나님을 늘 사모하고 살아갑니다. 어 하나는 룻기를 통해서 역전의 드라마를 보여주십니다. 룻기는 드라마예요. 4장으로 되어 있지만 문학적으로도 아주 탁월한 드라마고, 이스라에엘 민족들이 오순절에 읽었던 드라마입니다. 또 선교의 드라마, 선교의 드라마, 모압 여인 룻이 원래는 이스라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어요. 모압 사람들은 그런데 구원을 받고, 또 보아스를 만나고 또 그리고 보아스의 엄마가 기생 라합인데, 기생라합의 구원이 연결되는 그런 구속의 드라마 선교의 드라마입니다. 또 역전의 드라마죠 아들 둘과 남편을 잃은 여인 나오미와 남편을 잃은 룻이 나중에 다시 해보게 되는 역전의 드라마입니다. 또 특별히 사랑의 드라마예요. 사랑의 드라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랑 어려운 사랑이잖아요. 아주 어려운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며느리들한테 물어봤더니, 제일 좋아하는 여자가 하와래요. 왜냐면, 하와는 시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좋다고 그래요. 얼마 전에 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신에 메시지를 보냈어요. 어머니 오래 사세요. 그런데 그게 잘못 들어갔어요. 이게, 가끔 잘못 들어가잖아요. ‘어머니 오래 사시네요.’ 당장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 내가 오래 산다.’ 우리가 살다 오면 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너무 어렵잖아요. 네 이번에 유흥만 교수 책을 읽다가 이런 글을 읽었는데요. 조금 가슴이 와 닿았어요. ‘시어머니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고 친정엄마가 아프면 가슴이 아프다.’ 네, 뭐 물론 다 그럴 거는 아시겠지만, 굉장한 우리 생애 가운데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지금도 어렵고, 요즘은 또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뭐 며느리들은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시편도 읽지 않고 시체 들어간 거 다 싫어해요. 시편도 있지 않고 시금치도 안 먹고 뭐 그런 얘기도 많이 있죠. 센디에고에 가면 씨 월드가 있는데, 씨 월드를 제일 싫어한대요. 그런데 여기 보면 며느리와 그리고 시어머니가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나누는지 아름다운 사랑의 스토리가 기록돼 있습니다. 근데 출발은 좀 비극적으로 출발하죠. 흉년의 때가 됐는데, 1:1절에 보면,
*룻기 1:1,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흉년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흉년이 들 때가 있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밀물이 있고 썰물이 있는 것처럼, 그때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 사사들이 취잔 때니까 혼돈의 때, 그리고 어두운 때에, 놀라운 스토리가 전개가 되죠. 2절에 보니까
*룻기 1:2,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오 안에 이름은 나오며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요. 그런 뜻인데요. 아내의 이름 나오미는 찬송 환영이라는 뜻이에요.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이 두 아들의 이름이 별로 좋지 않아요. 말론는 연약함 기룐는 쇠약함.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몰라요. 그러니까 일찍 죽죠. 일단 베들레임 에브라임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합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다니 그들이 흉년을 피해서 모아보러 갔는데 그들이 떠난 곳이 베들레헴이죠.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날 땅이죠. 베들레헴이란 이름의 뜻은 떡집이에요. 떡집 예수님 생명의 떡으로 오셨잖아요. 베들레헴은 교회예요. 교회 그러니까 떡집을 따라 만든 거죠. 특별히 교회가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떡은 생명의 떡이거든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이요. 참된 음료, 참된 양식을 줄 수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많이 줄 수 있는 게 있어요. 세상에 어디어 될 수 없는 것은 뭐냐면, 예수님의 보혈과 예수님의 살 예수님의 성찬이죠. 성찬 생명이 떡, 생명 영생 구원은 세상에 죽지 못해요. 여러분 교회가 문제가 많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교회만 해줄 수 있는 놀라운 게 생명의 떡인데, 베들레헴을 떠나면 안 되죠. 교회를 떠나면 안 되죠. 모압지방에 사는데 엘리멜렉이 선택한 길이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요. 3-5절을 보게 되면,
*룻기 1:3-5,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오리바라는 이름의 뜻은 목이 곧다. 돌이키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구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룻은 우정이란 뜻을 가지죠. 우정,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10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비극이죠. 그러니까 이 드라마를 하나님이 처음 만드실 때 우리 인생에서 비극과 역경과 시련을 반드시 넣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드라마가 되지 않아요. 드라마 속에는 항상 위기와 갈등과 음모와 그리고 어 절망이 있는 것이죠. 여러분도 예외가 없어요. 하나님의 사람들 속에는 다 이런 스토리가 있는 거예요. 두 아들이 죽었어요. 두 아들이 며느리 남았죠. 남편이 죽은 것까지는 괜찮아요.
아닌가! 아니네 말 조심 해야 되는데, 네 남편이 준 것까지는 괜찮은데 두 아들이 준 건 진짜 힘든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는 문제 많으신데, 이 남편은 남이었다간 임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한 자만 떼면 그냥 이미 남이 되기도 하고 남이 임이 되기도 하는 거예요. 내 자식은 달라요. 자식은 달라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어요. 그러니까 나오미가 너무 고통스럽죠. 남편이 죽은 것도 힘들지만 물론 돼지 두 아들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절망이죠. 나오면 슬픈 여인이 된 거죠. 이름이 찬송가 환희라는 이름인데 슬픈 여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근데 거기서 인생이 끝나질 않아요. 잘 보셔야 돼요. 하나님이 여기서 잠시 쉼표를 찍은 건데 우리는 쉼표를 찍은 자리에 우리 마침표를 찍을 때가 많아요. 이제 끝났다 뭐 남편 죽고 도와도 죽었으니까 끝났다라고 생각하고 마침표를 찍어요. 이제 끝이야 아니에요. 하나님이 쉼표를 참신 건데 우리 마침표를 찍을 때가 많잖아요. 찰리 채플린이 그런 말을 했어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제 좀 더 전체를 봐야 돼요. 우리가 어떤 시장 관객을 만날 때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리죠. 망했다. 이제 끝이다. 절망이다. 근데 하나님은 아니래요. 어떻게 그러면 나오미와 룻의 인생이 이렇게 변화가 있게 되었는지 실제로 돌이킬 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돌이킬 때 회계죠 방향을 바꾸는 거죠. 다시 기회가 있어요.
I. 돌이킬 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아요. 여사람 보니까 인생은 즐겨요 그리고 사람도 즐겨요 웬만해 죽지 않아요. 여러분 새벽도 나와도 안 죽어요. 네 분명히 말씀드리면, 안 죽어요. 네 질겨요 사람이요. 인생은 쉽게 끝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돌이키는 것인데, 6절에 보니까,
*룻기 1:6,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들었어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걸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돌이키는 것입니다. 듣는 게 참 중요해요. 믿음은 들으면서 오잖아요. 예, 근데 유대인의 전승하면 천사가 나오미를 찾아와 가지고 소식을 전해줬다는 전승이 있어요. 돌이키는데 이것도 은혜입니다. 여러분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이 은혜예요. 그러면서 돌아오죠? 실제로서 그대로 오면 있던 곳으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이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돌아오려고,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내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느라. 하고 그때를 이렇게 마침에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와 두 며느리가 함께 울죠. 그리고 시어머니가 참 좋아요. 나 따라오지 말고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을 새로 만나 가지고 위로를 받아라. 참 좋은 시어머니죠. 며느리에 대한 관심 그다음에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리고 함께 울어요. 우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울어야 산다고 그러잖아요. 14절에,
*룻기 1:14,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여기서 오르바는 모압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룰은 시어머니를 붙쫓았더라. 네 돌이키는 게 중요하고 두 번째는 선택은 결과를 낳습니다. 아 출발은 비슷해요. 오르바하고 룻이 시어머니하고 헤어질 것인가? 안 따라 할 것인가? 근데 어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 같지만 결과는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룻의 선택은 영원한 선택이 되었고, 오르바(목이 곧다, 돌이키다)는 이름도 없잖아요. 아직까지 제가 미국 생활하면서 오르바라 이름 하는 여자를 본 사람이 없고, 만난 적이 없어요. 룻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나오미라는 이름도 많이 들어봤고요. 룻이 선택이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II. 선택은 결과를 낳습니다.
*룻기 1:16,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의 선택은 영원한 선택이 되었고 오르바는 이름도 없잖아요. 아직까지 제가 미국 생활하면서 오르바라 이름하는 여자를 본는 만난 적이 없어요. 룻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나오미라는 이름도 많이 들어봤고요. 룻이 선택이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16절-17절에 보면,
*룻기 1:16-17,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무엇이 굉장한 고백을 하면서 선택을 하는데 선택을 잘했어요. 인생은 선택인데요. 선택을 잘해야 되고 또 실수할 수 있어요. 그러나 좋은 모범을 따르고 또 실수를 통해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죠. 근데 룻의 선택은 세 가지 특징이 있어요. 첫째는 좁은 길을 선택했어요. 남이 안 가는 길 두 번째는 사랑의 길을 선택했어요. 시어머니를 공개하는데 아무런 조건이 없어요.
⓵좁은 길을 선택하십시오.
⓶사랑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⓷믿음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나중에 룻이 보아스를 만날 거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시어머니를 아주 순수하게 모시려고 간 거죠. 세 번째가 믿음의 길을 선택한 거죠. 하나님 여호와 시어머니의 하나님 시어머니의 백성을 선택했습니다. 그게 이제 우리가 배워야 될 아주 중요한 선택의 길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게 쉽지 않아요. 사도바울과 우리의 생애 마지막 편지 보면 하나를 떠났다 예 도마도 세상으로 떠나고 내가 복음과 함께 했던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몇 명 남았죠. 끝까지 남는 게 쉽지 않아요. 너무너무 쉽지 않은 일이죠. 사도바울 생이 마지막에 내가 믿음을 지켰다고 그래요. 내가 사랑을 지켰다도 아니에요. 내가 지갑을 지켰다도 아니에요. 내가 믿음을 지켰다 믿음이 정말 어려운 거예요. 예수로 난 믿음은 선물이에요. 그리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축복입니다.
III. 세 번째, 고통 중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오미가 이렇게 1장 20절에 보면,
*룻기 1:20,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그가 부른 이름이 놀라워요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번에 제가 이 두 보물을 선택한 게 마라라고 나온 게 두 군데예요. 마라, 쓰다 하는 뜻이잖아요. 쓰다. 내 인생이 쓰다.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습니다.
-그녀 인생이 쓴 인생이 된 거죠. 나오미이란 환희 기쁨, 그런 뜻 인생인데 네 쓴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근데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장 놀라운 소망은 뭐냐면 이 나오미가 부르고 있는 하나님 이름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라는 이름은 언약의 하나님이었어요. 언약을 지키시잖아요. 그다음에 나오는 이름이 뭐냐면 전능자라는 이름이에요. 전능자 ‘샤다이’ 전능자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엘샤다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99세에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게 아들을 주겠다. 사라에게 아들을 주겠다. 사라가 웃죠? 네 왜 우느냐? 그랬더니, 안 웃었습니다. 웃었다 하면 됩니다. 뭐야? 나중에 네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니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해라 이삭의 이름이 웃음이에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때리셨다는 거예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풍족하게 난 자기를 비웠다는 거예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괴롭혔다는 거죠. 내려가게 하신다.
제 인생에서 참 목회를 하다가 내려간 경험이 있어요. 2006년부터 9년까지 참 괴로웠어요.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어느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2009년도에 선교단교회를 내려왔는데, 내려오면서 많은 걸 깨달았어요. 그때 고은,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제 가슴에 와 닿았어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시 고은) 내려가면서 이제는 몰랐던 것들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리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으깨어지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 거죠. 지금 아무리 어려워도 여러분이 불러야 될 이름이 있어요. 하나님, 전능자, 엘사다이 하나님, 이름을 불러야 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자는 하나님이 구운하신다는 거죠.
지금 나오미는 절망의 언덕 위에 희망의 집을 짓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전능자라는 이름을 부르므로 이름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전능하신 하나님 엘사다이 하나님, 엘사다이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역전시킬 수도 있다는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네 번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거듭 새롭게 시작할까요? 22절의 말씀을 보면요,
*룻기 1:22,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여기 중요한 표현이 나오는데 시작할 때, 보리 추수 시작할 때, 이게 뭘 의미하냐면 이게 문학이나 또는 예술을 보면 암시를 하거든요. 암시 그러니까 보리추수 시작할 때 새로운 시작이 출발되고요. 그리고 보리추수 끝날 때, 또 다른 역사가 일어나요? 그때 인제 룻이 보리추수가 끝나면 그때, 먹을 게 없어요. 근데 그때 나오미가 며느리를 불러 가지고 작업의 정석을 가리킵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 먹고살 게 없으니까 보아스를 해야 된다. 이게 인제 드라마인데요. 보리추수 시작할 때 새로운 시작이 출발할 거고, 끝날 무렵에 또 다른 시작이 끝나요? 하나님의 역사는 쉼표지, 계속 마침표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인제 새로운 시작하는데, 2장이 1절에 가면 갑자기 또 한 번의 암시를 줘요 이게 인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암시가 참 재미있거든요.
*룻기 2:1,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요셉에 생긴 걸 보면 계속 옷이에요. 옷 그래서 계속 채색 옷에다가 또 죄수옷에다가 또 국무총리 옷에다가 나중에는 이제 형제들 오니까 옷을 한 번씩 나눠줘요. 그리고 왜냐하면, 베냐민에게 다섯 벌을 줘요. 예 수님의 옷 얘기죠. 예수님의 옷 그죠? 그런데 여기서는 갑자기 보아스라. 는 인물을 등장시켜요 2장 1절을 보시면 나우미 남편 엘리멜렉에게 친족으로 유력한 자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룻기를 기록한 기자가 아 지금 성급할 만큼 갑자기 보아스란 인물을 툭 던져 놓는 거죠. 툭 한 마디 던져 놓는데 친족으로 유력한 자, 당시에 기업 무를자라는 고멜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어떤 여인이 과부가 되면 동생이 과부와 결혼해서 씨를 이어주는 거죠. 대를 이어줘야 돼요. 근데 이제 말론과 기룐 둘 다 죽었잖아요. 그다음 친족 가운데 대려 이어질 만한 사람이 필요한데 바로 보아스가 그중에 하나라고 등장을 하는 거죠. 왜 보아스가 누굴까? 이 보아서라는 이름이 흥미로워요 우리가 역대하 3장 17절에 보게 되면,
IV.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거듭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보리추수 할 때, 추수를 마칠 때,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역대하 3:17,
17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야긴은 그가 세우다 보아스는 안에 힘이 있다. 성전은 하나님이 세우신다. 하나님께 힘이 있다. 이 보아스가 누구냐 하면 마태복음 1:5절에 보세요.
*마태복음 1:5,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그런데 정탐꾼 중에 한 사람이 살문이었을 거라고 그래요. 그게 라합이의 정탐(偵探)꾼을 살려줬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살문과 라함이 결혼한 거죠. 그런데 라합은 기생이었고 가나안 여자였어요. 그런데 보아스를 안 거죠. 이 보아스가 굉장히 훌륭한 인물이었다.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신앙식 훌륭한데 이 보아스가 늦게까지 결혼을 못 했어요. 왜냐하면, 동네 사람들이 그건 제 상상력인데요. 동네 사람들이 기생 라합의 아들이야, 기생라합의 아들이야, 그래서 딸을 안 주는 거예요. 성경 안 쓰였으니까요? 그냥 제 상상한 거니까, 네 그래서 나이가 들었어요. 사람은 정말 좋은데, 근데 보아스는 나중에 결혼해서 르세크스 오벳을 낳고 오벳을 낳고 이 스토리가 나오는 거죠. 그니까 보아스의 마음속에는 어머니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머니가 늘 외로운 기생 라합이면서 하나님 믿긴 믿지만 사람들의 지켜진 낙인이 뭐냐면 기생 이라는 게, 또 성경을 거듭 얘기를 해요. 기생 라합이라고 히브리서 보면 기생 라합을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만들 때, 대단한 인물들을 통해서 역사하신 게 아니라, 기생을 통해서 창녀를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아들이 바로 보아스였던 거죠. 그런데 룻기장에 가면 룻이 시어머니를 공궤하려고 먹을 게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시어머니를 공궤하려고 이삭을 주우러 나가는데 가장 놀라운 게 뭐냐면 룻기에 보면 이 모압에서 온 이 룻이 은혜라는 말을 자주 써요 2장 2절에 보면,
*룻기 2:10,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먹을 게 없으니까 은혜를 사모하면서 이삭을 주으러 가는 거죠. 십자를 보니까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얘기를 했는데 나는 이방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 저녁에 은혜를 베푸시며 날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에게 룻이한 얘기죠 내가 어떻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날 돌보십니까? 13절에 보시니까,
*룻기 2:13,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룻기 2:20,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여기 나온 은혜는 해세드,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 여러분 어디가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죠. 다시 시작할 때는 은혜를 붙잡고 시작하셨대요.
*은혜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 호의다.
-정말 지혜로워요 왜냐하면, 새롭게 시작할 때는 언제나 은혜와 함께 시작하고, 그리고 내게 아직도 남아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돼요.
※제가 2009년도에 교회를 떠나면서 아 너무 자세한 얘기는 할 수도 없고, 근데 이제 뭐 교회 떠나면서 없어요. 뭐가 그래서 제 아내하고 인제 앉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근데 없는 게 아니더라구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저를 힘들게 한 분들이 결코 빼앗아갈 수 없는 게 있는데, 내가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고, 하나님에 계신 지혜와 깨달음이 내 안인데 그건 빼앗아갈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빼앗아 갈 수 없고, 내가 그동안의 깨달은 말씀과 지혜와 지식을 빼앗아 생각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딸 둘을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로고스 교회를 개척한 경우이기 때문에 우리 작게 시작하자 아주 작게 시작하자 그래서 딸 둘에게 주일학교 교사를 맡아 달라. 그래서 이제 다시 작게 시작하기로 시작을 한 것입니다. 빈손으로 시작하는 거죠. 바닥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중요해요. 우리가 뭔가 새롭게 시작할 때,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항상 작게 그리고 하나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룻이라는 여인은 대단히 지혜로운 여인이죠. 왜냐면, 하나님과 함께 은혜와 함께 그리고 이삭 하나 주우러 나가는 거죠. 우리가 뭔가 새로 시작할 때 언제나 기억할 것은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게 무엇인지 우리는 그렇잖아요. 목사님에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가족이 있고, 건강이 있고, 경험이 있고, 교육이 있다면 아직도 남아있는 게 많은 것입니다. 다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우리가 없는 것을 물어보지 않아요. 모세에게 내 손에 있는 게 무엇이냐? 과부에게 내게 있는 게 무엇이냐? 마지막 떡 한 하나입니다. 네 생도의 아내에게 엘리스가 물어보죠. 내게 있는 게 무엇이냐 기름 한 병입니다. 네 거기서 출발하는 하나님 모습 오벙이어이에요. 여러분 손에 있는 것 손에 있는 그것 아론의 지팡이 손에 있는 그것 아브라 매 처음에 하나님께서 뭐든지, 첨 처음 주실 때 가장 가진 것, 내게 있는 것, 계속 가보라 하면 딴 얘기를 해요. 아니다. 사라에게 아들을 주겠다. 내게 있는 것이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직도 내게 있는 게 무엇인지 아직도 남아있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거죠.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죠. 없다고요. 아니에요. 있어요. 찾아보세요. 많아요.
그래서 인제 은혜를 사모하고 길을 떠나는데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세요. 은혜를 사모하고 길을 떠난 사람에게는 길을 열어주시죠. 2장 3절을 보니까,
*룻 2:3,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여기 우연이라고 써 있는데요. 이거는 섭리라고 그러니까 섭리, 그리스인에게는 우연은 없어요. 섭리에요. 섭리밖에 없어요. 오늘 제가 얘기한 것도 저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왔다고 생각해요. 누구 한 사람을 위해서 왔는데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우러 나가고 있는 이 룻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거죠. 어디로 보아스의 밭으로 놀라운 이런 거예요. 시작하세요. 가진 것 가지고 그냥 쉬이 시작하세요. 어떤 분은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니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이삭을 주우러 가죠. 여러분 기도하셔야죠. 네 어떤 분이 하나님 기도해서 주셔서 하나님 복권 한 장만 당첨되게 해달라고 하는 거에요. 복권 계속 기도하라는 거예요. 복권 한 장만 40일이도 응답이 없는 거죠. 하나님 찾아오셨어요. 하나님이 찾아 오셨어요. 하나님이 찾아와서 복권당첨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내가 하나 부탁이 있다. ‘복권 하나만 사다오!’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 분계신데요. 복권 한 장도 안사면서 복권 당첨하게 다루기도 하니까 하나님이 너무 그렇잖아요. 여러분 할 수가 없다고요. 염려만 하지 마세요. 염려해서는 아무것도 이러잖아요. 원망도 아무것도 이러잖아요.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일하는 것보다 하나님이라시면 훨씬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작은 것이라도 시작하는 거예요. 작은 것이라도 부탁하는 거죠. 4절에 보시니까,
*룻 2:4,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하나님의 은혜(Grace)를 받아 특별한 은총(Favor)를 누리도록 하세요.
-오 보아스가 참 좋은 사람이에요. 하인들에게 축복을 베풀고, 하인도 보아스 좋아해요. 거기서 인제 보아스의 눈에 룻이 들어와요. 이건 은총이라 은총 페이버, 네 눈에 들어오는 거죠. 하나님 은혜를 받아서 특별한 은총을 누리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구원은 은혜죠 그런데 사람을 통해서 주시는 것은 은총이죠. 은총, 그러니까 루시 보아스에게 받은 은총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해서 루시에게 은총을 사람을 무시하면 안 돼요.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시는 거죠. 사람을 우습게 여기면 안 돼요. 좋은 만남을 갖고 와야 돼요. 좋은 만남이 찾아오는 것은 은혜지만 좋은 만남을 가꾸는 것은 지혜예요. 그러니까 우정이라는 게 참 깊은 건데요. 우리 오 목사님 만나는 게, 벌써 한 40년대예요. 40년 여 목사님 이렇게 제가 이렇게 찾아오니까 이렇게 떡 국물이 떨어지는 거예요. 야 이거 놀라운 거예요. 진짜 아 이 인생은 간단해요. 이 복 받은 사람 같에요. 옆에만 딱 가도요. 이게 결국은 줄서기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눈치 눈치가 빨라야지, 제가 나이가 드니까 제가 나이만 들면 진짜 거룩일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니 이거 눈치가 늘어요. 아니 목사가 실력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죠. 목사님 내년에 또 좀,,, 우리 교인들이 들으면 좀 화날 것인지 몰라요. 목사님, 저도 먹을 만큼 살아요. 네 근데 은혜를 베풀어요. 보아서가 은혜를 사모하면 은혜를 받게 되죠. 보아스를 위로자고요. 참 멋있는 남자예요. 네 13절에 보니까,
*룻기 2:13,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여러분 제일 좋은 것은 뭐냐 하면, 작은 은혜를 받아서 큰 은혜를 키우는 게 지혜예요. 부스러기 은혜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이삭을 죽었는데 나중에 보아스가 소년들이 길러오는 물을 마셔라 그걸 키워요. 나중에는 보아스가 초청해 가지고 복은 곡식을 줘요 은혜를 점점 키우죠. 어떤 어떨 때 어떨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키우셨을까?
첫째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때 큰 은혜가 임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돼 작은 거지만 최선을 다해야 돼요. 우리는 전부 너무 큰 걸 생각하잖아요. 작은 게 중요한 거죠. 얼마 전에 오 목사님이 저한테 연락을 주셨는데 2001년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드렸던 수건을 지금도 샤워할 때, 쓰신다고 보내온 거예요. 혹시 사진 좀 올릴 수 있나 모르겠네요. 안 뜨나? 2001년도,,, 나도 없어요. 근데 그걸 지금 쓰시고 계시는 거 그래서 내가 이번 엄마 생각이 뭐냐면 내가 좀 사드릴까 아니면 장로님들하고 권사님들에게 좀 부탁을 할까? 2001년도, 23년 전에 타올을 지금도 쓰고 계시는 거죠. 아 이게 인제 여러분 엄 목사님 잘 모르시죠. 제가 잘 알아요. 왜냐하면, 지금 40년 지냈잖아요.
제가 이렇게 오늘 아침에 또 일찍 일어났어요. 시차 때문에, 일찍 일어났는데 오목사람에게 없는 게 있고 있는 게 몇 가지 있어요. 가르켜 드려요 예 네!!!~~ 이건 참 네 진짜 여러분 없는 것 세 가지 사심 없어요. 욕심 없어요. 욕망은 있어요. 거룩한 욕망은 있는데, 욕심은 없어요. 세 번째 탐심이 없어요. 여러분 탐심이 있으면 이렇게 큰 기회 할 수 없어요. 크게 쓰임 받지 못해요. 가지고 있는 거 몇 가지 첫째, ⓵초심 이 초심을 계속 가지고 계시는 거죠. 만날 때마다 감동을 받아요. 두 번째가 재밌어요. ⓶동심, 어린애 같에요. 세 번째가 ⓷성심, 찬양 인도 하나 볼 때마다 하, 정말 저렇게 안 해도 되는데 왜 저러시나 부목수도 많은데, 왜 저러시나!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성심, 또 하나 ⓸뚝심 곰 같에요. 곰, 어떨 때 보면요 다 받아내는 거죠. 마지막이 중요해요. 뒷심 여러분 뒷심 못 쓰면 이렇게 교회 못 해요. 성과를 만들려면 ⓹뒷심, 필요한데 대부분 초심이 있는데, 뒷심이 없어요. 뒷심이 없으면요. 끝까지 가려면 뒷심이 필요해요. 네 오 목사님 뒷심이 있어요. 너무 괜찮은 거죠. 그러니 묵상하는데 사랑의 귀에 부러운 교재가 있더라고요. 얘기해 드려요 아 진짜 부러운 게 있어요. 제가 사실은 뭐 LED 별로 안 부러워요 조금 부러워요 우리 교회도 하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어요. 네 너무너무 부러워 근데 부러워하면 진다는데 나는 마음껏 부러워하는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부러워하면 복을 받더라구요. 네 그래서 마음껏 부러워할려고 그래요. 내가 메모를 해 봤어요. 사랑에게 성도들을 향한 부러움 첫째, 대단해요. 어려울 때는 역시 경고에요.
⓵ 하나님을 향하는 갈망,
⓶찬양과 경배를 위한 갈망,
⓷은혜를 사모하는 갈망,
⓸말씀을 사모하는 갈망,
⓹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 세 가지만 더 해드릴게
⓺배움에 대한 갈망, 경과
⓻훈련에 대한 갈망, 훈련받은 교회가 어려울 때는요 역시 경고예요. 그리고
⓼변화와 성숙에 대한 갈망, 이게
⓽온전함에 대한 갈망, 마지막 하나 더
⓾섬김에 대한 갈망, 지난번에도 소식 들으니까
-이번엔 7000 교회를 섬겼다고 그러더라고요. 놀라운 것입니다.
작년에 제가 네 수건 좀 사드리세요.... 아이 정말 여러분 너무하세요. 안 돼요.
사실 작년에 인제 와가지고 천천히 교회라고 제주 열방제작교회하고 천천히 교회 얘기를 했죠. 근데 제주 열방교회는 차가 필요해서 차를 나중에 선물해 드렸고요. 그다음에 천천히는 또 연락 왔어요. 사랑의 교회 신자가 와서 또 격려도 해 주시고 나중에 연락이 왔는데 쌀 서른 포가 왔대요. 사람에게 오정의 목사님이 보낸 거래요. 혹시 좀 띄워줄 수 있나요? 없으시나? 아마 띄워줄 거예요. 나중에 띄워줄 거예요. 근데 감동적이었어요. 저한테 연락 왔어요. 쌀 30포가 왔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발신이 이제 사랑에게 오정현 목사, 너무너무 기뻐서 여러분 하나님이 감동을 주는 것은 한 영혼을 향한 관심이에요. 그리고 섬기는 관심 목사님께 제가 배운 것은 뭐 뚝심도 있지만 한 영혼을 향한 관심 관심이 기회가 크면 좀 사그러질 텐데 칼 세미나를 할 때 보면은 한 영혼을 향한 관심을 강조하는데, 그게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 겸손한 사람에게 더 큰일을 주시죠. 교만하면 다 빼앗겨요 겸손한 사람에게 배려를 주시죠. 제가 작년에 말씀드렸죠? 리거륜 목사님께서 받은 은혜를 보존하고 키우는 건 딱 세 가지밖에 없대요 영어로 세 가지 얘기인데 1.휴미리티 겸손 두 번째가 뭐 2.튜리티 성숙 세 번째가 3.유니티 하나가 되는 것 그중에 하나가 겸손이죠. 세 번째 감사를 표현할 때 더 은혜가 임하죠. 감사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둘째로, 겸손한 사람에게 더 은혜를 임합니다.
셋째로, 감사를 표현할 때, 더 큰 은혜가 임합니다.
나중에 시어머니께 갖다 나눠 드려요 볶은 곡식을 그다음에 이삭을 주운 걸 갖다 나눠 드리는데 룻기 1장 17-18절을 보게 되면,
*룻기 1:17-18,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시어머니에게 나눴잖아요. 물어보죠. 어느 밭에서 주웠느냐 룻이 참 착해요. 어머니 그냥 드시긴 하세요. 그런 게 아니라, 보아스의 집이에요. 밭이에요. 보아스는 친족 가운데 귀염 모르자다 얘기를 해주죠 하나님 먼저가 인생 역전을 가져야죠 결론을 맺겼어요. 이제 끝내야 돼요. 실력 없으면 일찍 끝내라기도 해야 돼요. 나중에 결혼해요. 그니까 3장은 정말 재밌는 장인데, 제가 오늘 기회를 안 좋아하지 못하는데요. 나오미가 룻에게 작업의 정서를 가리키는 거예요. 룻이 순종을 잘해요. 그래 가지고 룻이 보아스에게 프로포즈를 해요. 결국 결혼하고 오벳을 낳았는데 이렇게 이게 마지막 결론이에요.
*룻기 4:13-14,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놀라운 것이죠. 찬송할지어다. 회복이 됐어요. 마라 인생에서 찬송 인생, 기쁨의 인생, 회복이 됐어요. 절망 인생에서 소망이 넘치게 됐어요. 믿음이란 뭘까요? 네, 절망의 언덕에서 소망의 집을 짓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아직 끝났다고 말씀하지 않으면 끝난 게 아닙니다. 따라서 해봐서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역전의 드라마죠 결국은 오벳을 낳는데 오벳이 누구죠? 룻기 4:21-22에,
*룻기 4:21-22,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오벳의 이름의 뜻이 섬김이에요. 섬김, 그리고 스토리가 마태복음1:5절에 나오죠.
*마태복음 1:5,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결국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기생라합 모압 여인이 예수님 족보에 들어가고, 그리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인생을 역전시키는 거죠. 주님 오셔서 만난 여자가 누군지 아세요. 남편 다섯이나 있는 여자 그래서 성경에 보면요 십자가를 거리끼는 것이라고 거리끼는 것, 거리낀다는 말이 ‘스칸달론’ 거기서 스캔다이론 스캔들, 하나님이 스킨달 이렇게 했어요. 하나님께서 가장 추한 인생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신 겁니다. 여러분 인생에 역전의 드라마가 계속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역전에 드라마를 만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인생이 바닥치고, 내려가고, 비우고 빈손에 힘겨워하는 자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쉼표를 찍은 자리에 마침표로 찍지 않게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다시 시작하고, 역전의 꿈을 꾸고,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는 함께 간구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때 큰 은혜가 임하고, 겸손한 사람에게 더 은혜가 더해지니 더욱 감사를 표현해서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야 한다. 그리하여 역전의 드라마를 쓰는 인생이 되기를 간구하자.
-룻기의 주인공은 나오미, 룻, 그리고 보아스이다. 그리고 룻기의 주제는 가까운 친척이 죽은 자의 가족과 재산을 책임져야 한다는 율법을 통해 나오미와 룻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지만 보다 궁극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곧 보아스와 룻의 아름다운 신앙과 사랑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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