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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4년 4월 05일)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 제목: "세상을 압도하는 거룩한 백성"(오스 기니스 교수님) 말씀: 출애굽기 19:6 설교자: 오스 기니스 교수님( 소명 저자) ----- *출애굽기 19:6,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Intro-오정현 담임목사님. -할렐루야!!! 금요일 새벽입니다. 땡큐 God, 이스 프라이데이!!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이 금요일 아침 우리 오늘 모두가 다 새로워지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되는 영광스러운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맞춤형 은혜를 주시는데 이번 특새에 보니까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너무 많이 와요. 그러니까 내가 보니까 이 젊은이들이 한국교회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런 말이 있어요. 젊음은 현존하는 미래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미래는 이 특세에 나온 젊은이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이 청년 시절에 대학 가가지고 첫 채플에 찬양을 하는데 그때 찬송을 하는데,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의 젊은이 할 일 많은 이 나라에 우리 태어났으니 복음들과 앞장서서 충성되게 일하자.’ 새벽이니까. 말도 잘 안 나오는데 다시 ‘할 일 많은 이 나라에 우리 태어났으니 복음들과 앞장서서 충성되게 일하자’ 어떻습니까? 젊은이들은 이 말 들으면 가슴이 막 뛰어대요 그러니까 그게 그리고 또 ‘십자가를 높이 들고 노래하며 나가자. 하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들은 죄의 자녀 부름 받은 형제니 몸과 마음 다 바쳐서 주 뜻대로 살리라.’ 어제 제가 우리 찬양 팀 리더 목사님께 물어봤어요. 이 찬송 안 하니까 몰라요. 그러는 거예요. 그러나 세상이 마이 달라졌구나? 다시 ‘할 일 많은 이 나라에 우리 태어났으니 복음 들고 앞장서서 충성되게 일하자. 아마 이런 마음들이 모아져서 이번에 우리나라를 위한 기도도 또 총선을 위한 기도도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맞습니까? 이 강단 위에는 지금 젊은이들 우리 자녀들이 올라와 있어요. 이야 이 젊은이들이 복음의 영광 어제 내가 우리가 유튜브 저기 뭐야? 특새 유통으로 내가 배꼽을 잡았어요. 왜냐하면, 거기에 대한일 중등부 애들은 물어봤어요. 1904년도에 러시아어하고 저기 뭐야? 우리나라에서 러시아하고 우리나라하고 전쟁이 있었는데, ,무슨 전쟁이냐 물으니까, 한일전? 러일전쟁, 그다음 또 1894년도에 세워진 평양의 장로교회(장대현 교회), 이름이 뭐냐 1894년이니까, 사랑의 교회?,,, 그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데도 그걸 보면서 내가 참 마음이 기쁘더라고요. 왜냐하면, 사실 답은 틀렸지만 그러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 내가 일부러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할 일 많은 이 나라에 우리 태어났으니 복음 들고 앞장서서 충성되게 일하자‘ 이 새벽에 이 자체가 기도의 제목이 되게 하셔서 여러분들의 가슴이 뛰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찬송을 가슴이 뛰어야 젊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이런 찬송을 하면 가슴에 뛰면 그것이 젊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이 화석화된 어떤 딱딱한 신앙이 있다면, 오늘 기도를 통하여 찬양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 오늘 은혜의 새살이 돕는 시간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있는 시간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오늘 새벽 세 시부터 와가지고 서너 시간을 이렇게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드린 거 이거 자체가 은혜요 기적이요. 여기가 부문 현장이 되는 거예요. 아 뿜어져 나가야 되는 것이에요. 누가 시켜서 해도 하겠습니까? 우리가 자발적으로 사모하며 나온 것 하나님이 기뻐하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영접하고 은혜 주신 자에게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며 생수의 강이라고 했을 때 강이 단수가 아니고 플로를 복수예요. 생수의 강들 위 월스, 강 들이 흘러다가요 들이라 그러니까 얼마나 충만한 가면 낙동강 영산강 압록강 두만강 미시피강 뭐 인더스강 그다음에 뭐 또 없어요. 나일강 모든 것들 쌓아놓은 고등 훨씬 더 큰 영광스러운 생수의 강이 터진다는 거지요. 4월 10일 총선 그것도 그냥 우리 속 안에 다 들어오는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어떻게 할 고민하는 거 있어 우리 속에 다 들어와야 되는 거예요. 알겠죠. 우리 속에 들어오면 역사를 7000명이 역사하면 4900만이 만 명이 역사하면 1억이 바뀌게 되는 것이 아시겠죠. 이대로 될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막 어떤 문제 밑에서 막 신음해 갖고는 해결이 안 돼요. 헬리콥터 타고 올라가고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 오늘 주님의 강이 나팔 불 때, 그다음에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우리들은 주의 자녀 정말 복음 들고 앞장서서 충성되기 일하자 할 만한 이 나라에 우리가 태어났으니 이런 찬송을 하는 순간에 위에 올라가 전체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그래서 우리나라의 장례도 주님이 그렇게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오스 기니스 박사님과 그다음에 우리 최병락 목사님, 우리가 사랑하는 최 목사님 말씀도 들을 텐데 오늘 이 자리가 정말 은혜의 진원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아시겠죠?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에도, 한국 교회도 이번 총선에도, 이게 압도적인 기도가 되어서 모든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또한 생수의 강이 충만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조금 이따 말씀을 전할 오스 기네스 박사는 지금 현존하는 전 세계 최고의 석학 중의 하나예요. 최고의 크리스천 스칼라이자 옥스퍼드 박사이시고 소명에 대한 책뿐만 아니라 놀라운 인사이트가 있는 분이에요. 그리고 조금 어려워요 어려운데 여기 젊은이들이 많이 계시니까 젊음의 특징은 학습 능력이에요.이 새벽에 오스기니스 박사가 우리 교회 우리 교회 우리 동재의 동지 나이는 많으시지만 저한테 하는 얘기가 이제 한국 교회는 전 세계 교회 리더십을 한국 교회와 같이 나누어져야 한다고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치성과 그다음에 4명과 그다음에 하나님이 준 통찰력으로 무장이 돼야 되는 것이 이 시간 오스 기니스 박사의 월드클래스의 지적인 강의를 듣겠습니다. --------------- ▶설교자: 오스 기니스 박사님(영국 소명 저자) -Good. Very, very early morning. My beloved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we welcome all of you to Sarang's Chuch special down revival worship. I'm so glad that you are joining us live from all around the world. This week is going to be an amazing week of God's blessing. He will provide his strengths equal our days. Thank you, God. It's Friday. -좋아요. 아주, 아주 이른 아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사랑이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사랑의 교회의 특별한 다운 부활 예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 세계에서 생방송으로 우리와 함께 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번 주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놀라운 한 주가 될 것입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날들을 자신의 장점들을 제공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금요일입니다. What a privilege to be with you, my sisters and brothers in Korea. It's a real joy. My hope, speaking from the west, is to try and bring you encouragement, but also a warning not to do what we in the west have done, because we have let the Lord down so often. It's often said that the western church is weak because it's worldly. The idea that the western church created the modern world, but it has become captive to the world it helped to create. And so it's become its own gravedigger. Now why is that? Many people think that the western church has given in to secularism. -한국에 계신 제 형제자매들,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정말 기쁜 일입니다. 서방세계로부터 말씀드리는 제 희망은 여러분에게 격려와 동시에, 우리가 주님을 너무 자주 실망시켰기 때문에 서방세계가 한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흔히 서방세계는 세속적이기 때문에 약하다고 말합니다. 서방세계가 현대세계를 창조했지만 그것이 창조하는 데 도움을 준 세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서방세계는 스스로의 중력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이 서방세계가 세속주의에 굴복했다고 생각합니다. Secularism is a philosophy, the idea there's no God or gods or the supernatural, but its a philosophy put forward by atheists. But whats done us in is not so much secularism, the philosophy, but secularization, which is a process. A process through which faith becomes more marginal and less meaningful. So that many people think they can just live without God. They can do very well. Thank you. Without God. And of course, behind that are the brilliant contributions and developments and advances,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modernization. What's the biblical answer to that? I think the answer is the biblical notion of holiness. -세속주의는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는 없다는 철학이지만 무신론자들이 제시한 철학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행해진 것은 세속주의가 아니라 세속화, 즉 과정입니다. 믿음이 점점 더 주변적이 되고 덜 의미 있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주 잘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말이죠. 물론 그 이면에는 과학기술과 현대화의 눈부신 공헌과 발전, 발전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답은 무엇일까요? 저는 거룩함에 대한 성경적 개념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In the west, holiness has a bad reputation, as if it's a kind of super virtue or a higher form of being goody, goody, something off putting and impossible. But what is described in the Bible as holy? In the Old Testament, in the hebrew scriptures, three things are described as holy. The first is a day, Shabbat, the Sabbath, or Sunday. As we learn from Genesis, creation takes seven days, and yet the entire universe, time and space only take six days. And the 7th day is a day of rest. -서양에서 거룩함은 마치 일종의 미덕(super virtuy)이나 선함의 상위 형태인 것처럼, 뒤로 미루고 불가능한 것처럼 나쁜 평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거룩함으로 묘사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구약성경에서는 세 가지를 거룩함으로 묘사합니다. 첫 번째는 하루, 안식일, 혹은 일요일입니다. 창세기에서 배운 것처럼, 창조에는 7일이 걸리지만, 우주 전체와 공간은 6일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7일은 휴식의 날입니다. But not a day of rest because of exhaustion, but a day for us human beings of stopping, of cessation, so that we're free to create and to work hard in those six days. But on the 7th to remember that we are only creatures and the Lord is the creator, so we remember him and remember our small place on earth. So Sunday, Shabbat Sunday for christians is like a window in time that allows us to remember the Lord and to remember his place as primary our life. So the first thing in the Bible that's holy is a day. -그러나 지쳐서 쉬는 날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멈춰 서는 날, 멈춰서는 날, 멈춰서는 날, 그래서 우리는 그 6일 동안 자유롭게 창조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7일에는 우리가 오직 피조물이고 주님은 창조주임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지구상의 우리의 작은 자리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일요일, 기독교인들에게 안식일 일요일은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고 그의 자리를 우리의 삶의 일차적인 자리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의 창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먼저 거룩한 것은 하루입니다. And that comes from Genesis, exaggerated even more so in Exodus, and then right through the scripture. The second thing is not a day, but a place, the tabernacle. And if Shabbat is a window in times the tabernacle or later the temple. And for us, the church is a window in space, where we make room for the Lord and give time for the Lord to remind ourselves that we are creatures, we are only creatures, and he is the creator and master of it all. But what's the third one? The third one is the hard one. A day, a place and a nation. -그리고 그것은 제네시스, 과장된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출애굽기에서 더욱 과장되게 표현되고, 그 다음에 경전을 통해서 바로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번째는 하루가 아니라 장소, 곧 성막입니다. 그리고 샤브밧이 성막이나 그 이후의 성전에서 창이라면 말입니다. 우리에게 교회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창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공간을 만들어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가 피조물이고, 우리는 피조물일 뿐이며, 그는 이 모든 것을 창조하고 주인임을 상기시킬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 번째는 무엇일까요? 세 번째는 어려운 것입니다. 하루, 장소와 국가입니다. Israel in Exodus 19 is called to be a holy nation, the people of God. Now the Lord cares for humanity. Take, say the covenant with Noah after the flood. The Lord cares for individuals and for families. Take the stories in Genesis of the call of Abraham and of Isaac and Jacob and their wives and their many children. But in Exodus, the Lord calls a people a nation. And the hebrew word is related to the word for body, so that as a people a nation, we are like limbs in a body, and all dependent and independent on each other. Now, what is it that we are called to recognize as a holy nation? -출애굽기 19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민족,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주님은 인류를 돌보십니다. 홍수 이후에 나오는 노아와의 언약을 들어보세요. 주님은 개인과 가족을 돌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들의 아내와 많은 자녀들의 소명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어보세요. 그런데 출애굽기에서 주님은 한 민족을 민족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는 육체를 뜻하는 말과 연관이 있어서 한 민족으로서 우리는 한 민족의 팔다리와 같고,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고 독립합니다. 이제 우리를 거룩한 민족으로 인정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는 것은 무엇일까요? The day Sunday is a window in time. The tabernacle, the church, the temple is a window in space. And I think a holy nation is a window in authority. All other human beings have their kings and their rulers and their emperors Xi Jinping in China and King Jong un in North Korea. And nations have their leaders and presidents and bosses and celebrities, but no, we have no God but God. And we are under his authority under God. And so we become a holy nation. --일요일은 시간의 창입니다. 성막, 교회, 성전은 공간의 창입니다. 그리고 저는 세 번째, 거룩한 국가는 권위의 창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인간들은 그들의 왕과 통치자, 그리고 중국에는 그들의 황제 시진핑과 북한에는 김정은이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에는 그들의 지도자와 대통령, 그리고 상사와 유명인사가 있지만, 아니, 우리에게는 하나님 외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아래 그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국가가 됩니다. Now, without these three things of holiness, the day, the place and the people, life would be overrun by human self assertion. And as we know from the scripture, that never ends well. It ends in disaster. And we can know that the modern world, with its brilliant communication, its brilliant transport, its brilliant everything, can pretend to be a world that has no need of the Lord at all. We can do it all ourselves now with modern technology, science. But if that's the case, we know that it won't end well. So in the midst of that, we are the holy people who keep alive a witness to the Lord. -이제 거룩함, 낮과 장소와 백성의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삶은 인간의 자기주장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우리가 경전에서 알고 있듯이, 그것은 결코 좋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재앙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대 세상이, 그것의 찬란한 소통과, 그것의 찬란한 운송, 그것의 모든 것이, 주님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인 척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현대 기술과 과학으로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이 잘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와중에서, 우리는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있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And the Lord says, beginning with Isaiah, you are my witnesses. Now, it's easy to see with worship on Sunday that you're keeping alive a window to eternity. It's easy to see that with your wonderful rallies for revival and prayer, you're keeping a window open to the supernatural. But the really hard part, and especially in our modern world, is that in our ordinary day to day lives, our lifestyle, our behavior, we are a holy nation, a people of God.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사야를 시작으로 여러분이 나의 증인이 되심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면 여러분이 영원을 향한 창을 살려두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활과 기도를 위한 멋진 집회와 함께, 여러분이 초자연적인 것을 향한 창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히 현대 세계에서 정말 어려운 부분은, 우리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삶의 방식과 행동, 우리는 거룩한 국가이며, 하나님의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We are opening a window, pointing beyond ourselves so that the way we live by the supernatural power of the Holy Spirit cannot be explained by purely human reason and by purely human causation. I love the fact that again and again when the early church demonstrated the way of Jesus, as followers of Jesus, we read that the pagans cried out, great is the God of the Christians. Their love went beyond explanation. Their giving to the poor and the sick and the needy and others went beyond human explanation. And that's our challenge. -성령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순수한 인간의 이성과 순수한 인간의 인과로 설명될 수 없도록 우리 자신 너머로 창문을 열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가 예수님의 방식을 보여주었을 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서 이교도들이 부르짖고 위대하신 것이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읽었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마음에 듭니다. 그들의 사랑은 설명을 넘어섰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베푸는 것이 인간의 설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도전입니다. The modern world can do so much, so well and so wonderfully, but it all falls short and we are witnesses to something higher. May it be said that you wonderful korean sisters and brothers so pray. Yes, so worship, yes, but also so live that the rest of the people around you in Korea and Asia, and I hope eventually in the west too, will say, great is the God of the korean Christians. They are a holy nation who point beyond themselves to something that witnesses to our lord. God be with you, and the Lord bless you. Thank you for the privilege of being with you. -현대 세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고 훌륭하며 경이롭지만, 모든 것이 부족하고 우리는 더 높은 것의 증인입니다. 여러분의 멋진 한국 자매들과 형제들이 기도해 달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요, 예배해 주세요, 그래요, 하지만 여러분 주변에 있는 한국과 아시아 사람들이 위대한 것이 한국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을 증인으로 삼는 것을 스스로를 넘어서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바라며,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는 특권에 감사드립니다. Amen. ♣요약 서양 교회의 세속화와 성경적 거룩함
• 서양 교회는 세속화에 빠졌다.
• 세속화는 믿음을 사라지게 만든다.
• 성경적 거룩함이 해답이다.
거룩성을 유지하는 세 가지 요소
• 시간의 창, 안식일
• 공간의 창, 교회
• 권한의 창, 성민족
한국 크리스천들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
• 주일 예배로 영원에 대한 창을 유지한다
• 현대 세상에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건 어렵다
• 한국 크리스천들이 자신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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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4년 4월 05일)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다섯 번째)
제목: "산을 평지처럼 걸어라"
말씀: 하박국 3:17, 스가랴 4:6-7
설교자: 최병락 목사님-초빙(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
* 하박국 3:17,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스가랴 4:6-7,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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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병락 목사님-초빙(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할렐루야! 제가 미국에서 목회를 할 때 큰 바위 얼굴 두 분이 계셨는데, 남가주 그때 사랑의 교회에 목회하시던 오정현 목사님, 그리고 새생명비전교회 강준민 목사님, 두 분이 목회하는 저에게는 참 이미 목회해서 큰 바라봄과 또 모델이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제가 미국에 잠시 있을 때 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최 목사 어디야 미국에 잠시 들어와 있습니다. 4월 5일 빨리 칼랠드 한번 열어봐! 아침 시간 비어있나? “저희 교회 새벽기도가 있기는 한데 비어있습니다.” “우리 특새인데 와야 돼! 목사님 제가 여러 번 갔었는데요. 그러니까 그러면 시간 있으니까, 끊어!” 하고 끊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박수... 예 우리 오정현 목사님은 저보다 위에 세대신데, 목사님 여기 특새 와서 보거나 목사님 가까이서 뵐 때마다 느끼는 마음은 저한테 기도가 자꾸 생겨요 목사님을 뵈면 제가 훨씬 젊거든요. 근데 이런 기도가 나와요. “주여, 저 젊음을 주시옵소서.” 주여 저 젊음을 제게 주시옵소서. 오늘도 아침에 기도가 그냥 나오는 거예요. 어 4시 20분부터 올라오셔 찬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렇지 못하고 있는데, ‘주여, 저 젊음을 주시옵소서.’ 정말 젊게 목회하시는 모습에 참 다시 한 번 도전을 받고요. 또 제가 너무나도 감사한 분이 또 강준민 목사님이십니다.
미국에 목회할 때 저를 살뜰하게 챙겨주시고, 멘토링을 해주신 분이신데, 어제와 그저께 오셔서 또 말씀을 전했던 영적 거인 뒤를 이어 가지고 오늘 말씀을 전한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인데, 저는 세 번째 지금 특세를 초청받아서 오게 되었구요. 강준민 목사님 작년과 이번에 오시면서 어제 그저께 아침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잠원 25장 17절 “너는 이웃 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일단 자주 와서 죄송하고 또 자주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로 준비한 말씀 여러분하고 전하겠습니다. 전화는 전화 받는 여러분 모두 조안에 큰 은혜 있기를 축복합니다.
“산을 평지처럼 걸어라.” 에서 오늘 산 이야기를 많이 할 거고요. 산은 눈에 보이는 산이 아니라, 우리가 살다가 만나는 고난의 산, 역경의 산, 문제의 산, 재정이고 우리의 건강이고, 가정의 문제고, 앞이 보이지 않아 그런 여러 열악한 환경들이 바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입니다. 오늘 혹시나 이 특새 기간에 정말 산을 만나서 어쩔 수 없이 이 특세기간에 산을 평지로 만들고 또는 산을 넘어가야 할 분이 있다면 이 중에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있다면 이 설교는 그분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금요일 이제 1주일 동안 쌓아온 특색 가운데 오늘과 내일 가운데 응답 있기를 축복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을 우리는 에베레스트산이라고 그럽니다. 애버(ever)레스트입니다. 영원히 존재한다고 그래서 에버레스트라 그랬고, 신이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울타리를 쳐놓은 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8,849 메타 호흡이 가빠 올라갈 수도 없는 그곳에, 최초로 등장한 사람은 1953년 5월 29일 영국의 원정대인 에드만드 힐러리(Edmund Persival Hillary)와 셀파로 함께 참여했던 텐징 노르과이(Tenzing Norgay)가 온 세상을 경악시킬 첫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1953년 그가 등정하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 그로부터 이 년 전 그는 한번 등정에 거의 성공하다가 실패를 하게 됩니다. 실패를 하고 낙심하여 에베레스트를 눈앞에 두고 뒤를 돌아서다가 이 에드먼트 힐러리가 다시 고개를 돌려 에베레스트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이른 외침을 외칩니다.
‘산아! 내가 반드시 다시 와서 너를 정복하리라. 왠 줄 아니? 산인 너는 그대로이지만 나는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했고 2년 뒤에 그는 더 자란 모습으로 와서 세상을 놀래키는 에베레스트 등장에 성공합니다. 아무튼 ‘I will come back and conquer you!-내가 다시 와서 너를 정복하리라.’ 산아, 왠 줄 아느냐? 산으로서 너는 잘할 수 없지만, 1cm도 잘할 수 없지만, 에서 휴맨 아이킹 그로우 사람으로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As a mountain, do you know why? Because as a mountain, you cannot do well, but you cannot do well even 1cm, but you are growing up as a human eyeing grower in).
여러분 우리 앞에를 가로막고 있는 산들이 많지만 산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목사님도 계속 말씀하신 것처럼 하이 프레이즈(High phrase!)! 헬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여러분 맨하탄 꼭대기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면 어느 게 100층짜리인지 1층짜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높은 곳에서는 다 평지일 뿐인 겁니다. 문제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내 믿음의 크기가 커지면 문제는 평지처럼 보여 지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특사에 나오신 이유도 그겁니다. 문제 앞에서 문제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는 내 믿음을 키우기 위해 나왔던 것이고.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월요일부터 예배드리는 시간 여러분의 믿음의 그릇은 커져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나와야 되는 거고, 그래서 기도해야 되는 거고, 그래야 찬양하는 거고,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에 내게 보이지 않는 믿음의 그릇이 점점 커지게 되면 그렇게 커 보이던 문제도 믿음의 사이즈가 커지고 나면 우스워집니다. 내가 저것 가지고 떨었던가, 저것 가지고 염려했던가, 저거 가지고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던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저희 아내도 목회를 하면서 같이 동력을 저와 동력해 주는데 아내가 기도해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기도의 사람입니다.
교회 앞에 자녀 문제 여러 가지로 목회를 저를 23년 동안 지금 도와오면서 큰 문제를 교회 문제를 닥칠 때도 저희 아내는 습관이 있어요. 큰 문제가 우리가 넘을 수 없잖아요. 미국에는 조그만 한 집이라도 클라짓(Clasit) 옷장이 공간이 좀 있게 만든 워킹 클라짓입니다. 항상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가지고 클라짓으로 들어갑니다. 두 시간 세 시간 길게는 네 시간 동안 나오지를 않아요. 안에서 간절하게 기도 소리가 집안 전체를 울립니다. 그리고는 나오는 시간이 언제 나오냐면 꼭 이럴 때 나옵니다. 그렇게 컸던 문제가 한 시간 기도하면 요만큼 작아지고 두 시간 기도하면 요만큼 작아지고 세 시간 기도하면 손에 딱 잡힐 만큼 크기가 되면은 응답된 줄 알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이 곧 응답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크기와 믿음의 영 권을 가지고 계속 우리의 믿음이 커지면 아무리 커졌던 문제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이 커지면 문제가 작아 보이는 것이고. 문제가 손에 들어오고 작아지면 응답되는 줄 믿습니다. 어릴 적에 여러분이 뛰어놀던 초등학교 운동장 그렇게 한도 끝도 없이 넓었던 운동장을 어른이 되어서 여러분이 방문해 봤을 때 깜짝 놀라게 만들지 않습니까? 야 운동장이 이렇게 좁았어. 이렇게 작았어. 근데 왜 어릴 적은 그렇게 넓어 보였지 그리고 놀이터로 가보지요. 철봉에 내 이마가 퉁 하고 닿는 걸 보고 야 어릴 적은 까치발로 뛰어도 닿지 않던 철봉이 이렇게 낮았던 거야. 뛰놀던 동네 앞산을 바라보면서, 아니 왜 이러지 그때는 그렇게 높아 보이던 앞산이 동산이었던 거야! 동산도 그대로고 철봉의 높이도 그대로고 운동장의 넓이도 그대로이지만 여러분의 나이와 키가 컸기 때문에 어른이 되고 보니 높은 것도 없고, 넓은 것도 없고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를 위협하면서 마치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나를 다 오늘 끝장낼 것처럼 무서운 발톱을 하고 파도처럼 우리를 스치고 습격(襲擊)하고 있지만 여러분의 믿음이 커지고 믿음의 담력(膽力)이 커지고 믿음에 정말 여러분의 그릇이 커지면 그 모든 것들이 야 이렇게 작은 문제였던 거야. 이런 문제 가지고 내가 떨었던 거야. 여러분의 문제가 작아 보이기 시작하고 이길 만한 담력이 생기면 하나님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다 높아 보일 뿐이지,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습니다. 믿음을 키우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 특새 정말 잘 나오셨어요. 믿음을 키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무한대로 키워주시길 축원합니다. 10편 121편에 보면은 시편 기자가 큰 문제가 있었던지 도움이 필요했던지 높은 산을 바라보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쉽니다.
*시편 121편 1-2,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그 산을 보면서 한숨을 쉬지요 도대체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저 산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데, 산이 날 도와줄까 내 힘으로 산을 어떻게 이길까 태산 같은 문제 앞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어보니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고 한숨을 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방긋 웃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이렇게 연이어 고백을 하지요 내가 산을 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다가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산 뒤의 산보다 크게 서 있는 하나님에게 시선이 고정되자 한숨이 찬송으로 바뀌고 한숨이 기쁨으로 바뀌게 되면서 나의 도움은 산보다 높은 여호와에게 서로다 오늘 하나님이 보이며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산이 보이면 절망하지만 하나님이 보이면 소망이 되는 것이고, 산이 보이면 눈물이지만 하나님이 보이면 찬송이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믿음에도 눈이 있어요. 우리 육신에만 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도 눈이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는 산이 보이지만 믿음의 눈을 들고 보면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 새벽에 나오신 이유는 육신의 눈을 시력을 더 좋게 하기 위해 라식 수술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오늘 여러분이 어두워져 버린 영적인 눈을 다시 라식 수술하고 마땅히 봐야 할 하나님을 보는 시간되길 축원합니다. 믿음에도 눈이 있어서 믿음의 눈은 물어보면 하나님은 여전히 거기에 계시는 거예요. 모든 게 끝난 것 같아도 자신감이 생기지요. 소망이 생기지요 이 또 또한 지나가리라 믿음의 눈이 안 열렸을 때는 오늘이 끝인 것처럼 내가 한숨을 쉬었는데 믿음에 눈 들어 주를 보니 아 괜찮다 조금만 견디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나님이 새 나라를 주시리라. 더 좋은 것을 주시리라. 산이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 준비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한 산을 넘어도 다른 산 살아보셔서 아시잖아요. 사실만큼 살았잖아요. 한 산 넘으니까 끝납니까? 첩첩산중이 인생 아닙니까? 자녀 키워놓으면 건강의 문제 건강을 해결되고 나면은 부부간의 문제 부부가 좀 살만하면 이제 주님 오라 그러시고 뭐 여러 가지 우리의 산이 산 넘다가 끝나는 인생 아니겠습니까?
※어마어마한 산을 만났던 한 사람을 소개할까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유명한 고 강영우 박사님 그분이 경기도 양평 문오리에서 태어났습니다. 4남매에 둘째로, 태어났고요. 14살 되던 날 축구를 하다가 날아오는 공에 눈을 맞았는데, 한쪽이 실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한쪽도 실명이 되고 맙니다. 14살 소년이, 후천성 시각 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엄청난 산을 만난 거지요 한 인생으로서 앞을 못 본다는 것 그러나 강영우 박사는 일이 있기 2년 전에 자기의 든든한 산이었던 자기의 빽 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겁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만 해도 12살 당시로 나이로 참 큰 산을 만난 것인데 14살에 시각장애인이 되었으니, 또 하나의 넘기 힘든 산을 만난 거죠. 아들이 앞을 못 보게 되었다는 소식을 의사에게 듣자마자 충격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됩니다. 14살 때 천혜의 고아가 되지요 바로 위에 있었던 한 명의 누나가 세 명의 동생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누나도 어린데 동생을 어떻게 키웁니까? 이 일 일하면서 동생들을 키우려고 하다가 고마운 누나도 과로사로 죽게 됩니다. 이제 밑으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 남동생은 철공서로 그리고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흩어지고 이 앞을 못 보는 강영우 학생은 맹인학교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중학교 입학해서 맹인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모두 직업학교 가라고 직업 훈련을 시킵니다. 왠지 모르게 직업훈련도 해야 되지만 누구보다도 점자 연습을 열심히 해서 나는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그분의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이 준비된 학교가 없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직업을 잡아야지 대학 갈 수 없다는 이야기만 했지만, 왠지 모르게 꺾이지 않는 꿈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했고, 당시 이화여대에서 여학생들이 내려와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석은옥이라고 하는 여대생이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되지요. 고등학교 3학년 마치고 난 뒤에 대학에 입학 원서를 넣지만 시각장애인을 받아줄 수 있는 학교는 대한민국에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하고 또 시도한 끝에 연세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졸업을 할 때는 보통 사람도 하지 못했던 전체 차석으로 졸업을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최초 시각장애인으로 외국 유학을 가게 되고, 거기에서 공부를 하여 피시버그대학교의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되며 최초의 한국인 시각장애인 박사가 됩니다.
그러고 난 뒤에 바로 죠지부시 대통령시절에 국무분과 국가장애위원 정책분과위원장 지금으로 말하면 차관보 자리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이민자 중에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신 분입니다. 장애인의 인권을 담당하면서 한 멋진 크리스천으로, 워싱턴 중앙 장로교의 성도로, 교회와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섬기다가 지금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분이 만난 많은 산들 중에 우리가 하나만 만나도 넘기 힘들었을 텐데, 그분은 모든 산들을 다 넘고 넘어 보통 사람도 할 수 없는 위기한 일을 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기 전에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의 자서전 하나를 쓰게 됩니다. 그분이 쓴 자서전의 책 제목이 뭐냐면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그 많은 산들이 없었던 게 아니라, 하나하나 넘기 쉬웠던 산 하나도 없었지만 다 지나고 보니 우리가 넘지 못할 산은 없었다고 그분은 이야기합니다. 그분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써두었습니다.
‘어느 날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다 하나님이 부르신 거지요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가까이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셨다. 나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너무나도 두려웠던 절벽에 하나님 나 좀 살려달라고 외쳤는데, 살려주기는커녕 하나님 야속하게도 날 절벽으로 밀어버리셔서 도대체 하나님 왜 이렇게 나에게 잔인하시냐고 외치려고 했더니, 절벽에서 떨어지고야 비로소 내 몸에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은 두려움의 절벽이 아닌 어디든지 날아다닐 수 있는 창공이 되었다고 그분이 얘기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날개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고 아까 목사님 말씀처럼 우리가 헬리콥터를 타고 하이프레이즈로 위에 올라가서 창공을 날아다니면 넘지 못할 산이 어딨겠습니까? 나 혼자 힘으로야 넘을 수 없겠지만, 하나님이 나의 날개가 되어 주시면 넘지 못할 산이 없는 줄 믿습니다. 여기 성지순례 다녀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성지순례 가서 예루살렘에서 사해로 내려갔다가 사해를 구경하고 난 뒤에, 차를 타고 최후의 로마의 항전 지 마사다 지역으로 내려가다 보면 엔게디 광야를 지나게 됩니다.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엔게디 광야 좌우에는 풀 한 폭이 나지 않는 광야고 흰 돌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깊은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높은 산인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찾기 힘듭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성지순례하는 사람이 뭘 발견했는지 한 사람이 소리를 지릅니다. 어머, 저것 봐! 그럼 사람들이 창문에 붙어가지고 야 신기하다. 야 신기하다. 외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앤게디 광양이 펼쳐지는 사람을 놀래는 장면은 뭘까요? 그 깎아지른 듯한 돌산에 사람이 서 있으면 한 발만 움직여도 떼구르르 굴러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절벽인데, 거기에 평안한 모습으로 서서 있는 산양들을 보기 때문에 ‘개디’가 ‘산양’이라는 뜻입니다. 개디의 땅이라고 해서 앤게디 게디의 샘물이라고 해서 앤 게디라고 부르는데, 사람은 거기 한 발도 걸을 수 없는데 그 양은 그곳에서 힘줄 때문에 비탈에 서도 평지처럼 서서 우리를 비웃듯이 보다가 식 한 번 웃고는 훌쩍 풀척 풀쩍 뛰어서 다른 산으로 평지처럼 뛰어다니는 걸 보면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읽었던 하박국 선지자는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던 시대지만 내적으로는 영적인 부 폐가 하늘을 찌를 듯한 내적 부패의 상황이었고, 국제 정세는 아수르가 멸망하게 되고 바벨론의 말발굽에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 예언자 하박국은 이미 바벨론이 남 유다로 쳐들어 내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듣고 놀라게 됩니다. 야, 이제 영적으로 부패했으나, 나라가 부강하니까 부패한 줄도 모르는 이 100성을 하나님이 바벨론의 말발굽으로 우리를 심판하시겠구나! 너무 놀랍니다. 이제 그들이 와서 모든 것을 짓밟을 것이고. 우리의 무화과나무를 다 열매를 떼 갈 것이고, 포도나 부모의 소추를 훔쳐갈 것이고. 우리마다 털어서 양도 소도 다 훔쳐갈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것이 하박국 선지자 하박국서의 내용입니다.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질 것 같고, 우리에게 다칠 어마어마한 고난의 산이 이스라엘 이 남 유다에게 닥쳐올 때에, 하박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나님이요. 바벨론을 하나님 물리쳐 주시고 우리에게 얼씬도 못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할까, 아니면 그러한 일이 맞춰도 우리 한 사람 믿음 포기하지 않고 바벨론의 말발굽보다도 더 힘센 믿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이 하박국은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기도했던 내용이 하박국 오늘 읽었던 3장 마지막 절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나님이여, 바벨론이 쳐들어와 우리에게 모든 악행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나님이여 비탈에 서 있는 산양 게디의 발목의 힘줄처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나님 어떠한 고난과 어떤 문제가 우리를 엄습해 오고 우리를 쳐들어와도 하나님은 그것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오. 저 사슴에 힘줄을 주옵소서.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발을 오늘 사슴의 발과 같이 하사 비탈도 비탈인 줄 모르고 산도 산인 줄 모르고, 평지도 평지인 줄 알아 평지도 평지처럼 산도 평지처럼 비탈도 평지처럼 달리는 사슴에 발을 주옵소서. 오늘 이 아침에 이 사슬의 사슴의 발에 힘줄을 취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는 나의 힘이시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에 힘줄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산이 와도 남들은 힘줄이 없으니까 높은 산이라고 울고 있지만 내게는 주 여호와가 나의 힘줄이 되어 주신이 산을 평지처럼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새벽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없애는 기도도 해야 되지만, 문제가 문제로 안 보이는 믿음을 달라는 것, 그래서 앞으로 한산을 넘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산이 우리를 엄습해 올 때에 이제는 떠는 것이 아니라, 비웃을 수 있는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내 눈에 평지도 평지로 보이고, 선보 평지로 보이는 눈 사슴에 힘줄을 가진 주 여호와를 나의 힘으로 삼는 사람이 고백할 수 있는 고백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평지만 찾아서 달리기 해달라고 하박국은 기도한 것이 아니라, 산을 평지처럼 달리는 힘줄을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산을 피해 다니는 믿음이 되지 마시구요. 산을 뛰어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사슴의 다리를 가진 믿음의 사람들을 한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하다가 한국에 잠시 방문을 해서 한국에 계신 목사님들과 한 20여 분의 목사님들하고 남도에 증도도 다녀오고 요양원도 다녀오고 하는 방문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코스 중의 하나가 소록도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소록도는 나병 환자 한센 병 환자들의 집성촌이었죠. 거기에 가면 소록도 중앙교회가 있습니다. 소록도 중앙교회 20여 명의 목사님들이 앉으니까 그 당시에 돋보기안경을 두껍게 낀 경상도 70대 중반 되시는 남자 전도사님이 교회 전체를 관리하고 계시더라구요. 그분도 눈썹도 없고 입술도 없는 그건 나병 한센스병 환자셨습니다. 그분이 소록도 중학교에 대한 역사를 알려주시는데 너무 감동이 되더라고요. 그분이 경상도 짙은 사투리로 우리 20명의 목사님들에게 이야기하셨는데 제가 한번 흉내를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사님들 오늘 여기 잘 오셨습니다. 이 소록도는 그분의 표현이니까. 그냥 문둥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제가 옮기겠습니다. 여기는 문디 들이 오는 데입니다. 문등 병 참 고약하지요 집에서 암 환자 한 명만 생겨도 전부 직장까지 그만두고 좋은 의사 찾아 댕기면서 어쨌든 낫게 할려고 그러는데, 이 문동 병은 지랄병이라서 한 명만 걸려도 부모도 자식을 버리는 게 문둥병입니다. 우리 교회 여기 여 집사님은 처녀 때 20살 때 몸에 문둥병이 생겨가지고 저 경상도 아가씨인데 눈물, 눈물 방에서 울고 있는데,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인가 하고 부엌으로 나가봤더니, 아버지가 딸 죽인다고 칼 가는 소리입니다. 놀라가지고 뒤 산으로 도망을 갔는데 쌀 한 대박을 보자기에 싸서 엄마가 와서 딸 품에 안겨주고는 엄마도 하는 말이 ’멀리 가레이. 멀리멀리 가레이. 아버지 눈에 안 띄는 대로 가레이‘ 엄마한테도 버림받고, 아버지한테도 버림받아 울며 찾아온 게 이 전라도 소록도까지 온 거 아닙니까? 여기 인생 막장들 오는 데입니다. 막장들이 오는데 소록도 왔다가 요 소록도 옆에 섬이 하나 더 있는데, 이 섬만 갔다 오면 다 변하는 거라요. 소록도 중앙교회가 일단 문디 들이 지은 건데 이거 아십니까? 이거 지을 때에 대한민국의 영락교회 본당 다음으로, 큰 본당입니다. 이건 문디 들이 남자들은 산에 올라가 가지고 나무를 베는데 손이 어디 있습니까? 손에다 손이 없으니까 손에다가 톱을 꺼내 묶어 가지고 그렇게 잘라 가지고 몸으로 굴려서 내린 거 아닙니까? 여자들은 백사장에서 모래를 퍼오는데 손이 없어가지고 손목에다 숟가락을 끈으로 담아가지고, 그래 퍼가지고 그때 소록도 앞바다가 피로 낭자했다. 그랬습니다. 문디들이 와가지고 이걸 지어 가지고, 지금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이렇게 하나님 섬기는지 희한하지요? 소록도 와서 울다가 고 옆에 있는 섬만 갔다 오면 다 웃고 오는 거라 그 섬이 참 ’찌라도‘ 라는 섬인데 요상한 섬입니다. ’찌라도‘만 갔다 오면 안 변하는 사람이 없어요. 목사님들도 어렵게 왔으니까 오늘 찌라도 한번 주소 알려드릴 테니까. 다녀 오실랍니까? 그럼 주소 받아 적으소! 하고 꺼내서 받아 적는데 잘 적으이소? 하박국 가 봐! 3장, 3장 17절, 17절 거기 찌라도 나옵니다. 3장 17절 한번 찌라도 나오는지 한번 봅시다 같이 읽읍니다.
*하박국 3:17,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찌라도 여기에 찌라도! 여기에 섭이 나오더라고요. 이분들이 소록도에 와서 울며 우리 아버지 왜 날 버렸나, 우리 엄마 왜 난 안 찾아오나, 나는 언제 우리 집에 한번 성한 몸으로 가나 울다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난 거예요. 그러다가 예수님 만나고 보니 야 내가 여기까지 안 왔으면 예수님 못 만날 텐데 이 세상에는 이렇게 살아도 영원한 천국 가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그때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내 사는 날 동안 하나님 내 병 안 고쳐 주실지라도, 내 눈 뜬 날 동안 우리 엄마 얼굴 다시 못 볼지라도, 나 다시는 우리 고향 근처에도 못 갈지라도, 난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여기 와서 주님 만났으니 괜찮다. 찌라도, 믿음이 들어오니까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환경을 이겨버리는 믿음을 가지는 거예요. 지금도 소록도 중학교에는 지라도가 아니고 ‘찌라도’라는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불 만들어 가지고 믿음 없이 어떻게 그분이 삽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언제까지 평지를 주실 때만 찬양하고 산이 생기면 원망하겠습니까?
평지에서도 찬양하고 산을 만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산을 넘게 하실 것이니 믿음 가지고 또 찬양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길가에 장미꽃도 감사해야 되지만, 어머 장미꽃하고 다가갔다가 톡하고 찌르는 가시를 보고 원망할 게 아니라, 장미꽃에 돋아난 가시도 감사, 지나온 그날 밀어주셨던 순풍도 감사, 가는 길에 역풍도 하나님 뜻이 있어 감사, 문제 닫히면은요, 사람이 두 종류로 나뉘더라고요. 예수 잘 믿다가도 문제를 다치니까 대본의 믿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예수 믿는데 왜 이런 문제를 만났어. 하나님 원망부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문제를 만나니까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런 큰 문제 만났는데 하나님 안 계셨더라면 어떡할 뻔했어. 똑같은 문제 앞에서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 원망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시고 믿음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보면은 육신의 눈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저래! 라고 하겠지만,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극렬하게 보고 예수를 믿으니까 그래도 저나마 사는 거야.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세상이 왜 썩어서라고 말하겠지만, 믿으면 사람들은 교회가 이렇게 많으니까, 이 세상이 이나마 이렇게 있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예수 믿는데 내가 왜 요 모양 요 꼴로 사냐고 말하겠지만, 믿음에 눈이 있으면 예수 믿으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거야.! 믿음의 눈으로 보면 다 은혜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말 있어요. 여러분 호수의 깊이는 홍수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뭄 때 하는 것이라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되고, 기도 안 해도 자녀가 잘 되고, 손대는 것마다 사업이 잘 되는데 누가 예수 잘 안 믿어요. 누가 하나님 찬양 안 해요. 그렇게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풍성한데 누가 찬양을 안 해요. 진짜 믿으면 무화과 나머지 소출이 많을 때 찬양하다가 어느 날 소출이 하나도 없을 때도 추던 춤을 멈추지 않는 게 여러분 사실 우리가 이 찬양을 부를 때 정말 이 찬양 슬픈 찬양이거든요.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근데 우리 부를 때 어떻게 불러요 무화과나무 잎이 정신 나간 찬양이거든요.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 소출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 없고 이거 없고 망했다는 찬양인데 우리는 춤추면서 찬양해요. 무화과나무 잎이 마 왜 그래요. 그거는 세상 사람은 못 불러요 믿음의 사람만 부르는 겁니다. 알고 보면은 세상에서 제일 슬픈 가사가 가사지만 우리는 찌라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야 사탄아 너는 나를 어떻게 봤냐,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주렁주렁할 때만 찬양하는 사람으로 나를 오해했냐 무화과나무 열매를 다 가져가 봐라 나는 추던 춤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삶에 막 구워지는 홍수의 호수 깊이를 몰라요. 호수가 물이 가득 찼는데 얼마나 깊은지 어떻게 알아요. 가뭄이 오고 가뭄이 오고, 가뭄이 오고 가뭄이 오고, 물이 빠졌는데도 저렇게 깊었어, 저렇게 깊었어, 고난이 오고 정말 힘든 삶이 와도 정도면 하나님 떠날 거야,. 정도면 사람 하나님 원망할 거야. 그렇게 요 뱀 믿음이 충만한 것 같아서 축복 주니까 그러죠. 라고 해서 하나님이 그럼 한번 시험해보라고 다 가져가니까 다 가져가니까 마귀도 원망할 것 같았는데 요배 입에서 나오는 고백이 뭡니까?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이도 여호와시니, 내가 부모에게 나올 때에 적신으로 나왔으니 내가 가진 것이 원래 없었는데, 무엇이 아깝단 말이냐 난 오직 여우와의 이름만이 찬송 받으리로다. 그는 바로 ‘찌라도’ 의 믿음을 가진 거예요.
어떤 산도 평지로 보는 눈을 가졌다 이 말이지요. 하박국은 왜 그렇게 자기 인생을 걸어가지고 키워 놓았던 무화과의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에 소출이 없고, 그렇게 모아두었던 모든 양과 소가 없을 때에 너무나도 당황했을 텐데, 조금은 당황했겠죠. 조금 당황하다가 금방 정신 차리면서 ‘찌라도’ 라고 말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그다음 구절 때문에 그래요. 18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여전히 찬양할 수 있는 이유 한 가지는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에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 순간에 하박국은 선택을 한 거예요. 없어진 것을 볼 것이냐, 여전히 내게 있는 것을 볼 것이냐, 무화과는 없어졌으나 당황하다가 괜찮아 내게 하나님 이어졌네. 어디 계시구나.
*하박국 3:18,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러분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없어진 것을 바라보면 절망이 나오고 한숨이 나오지만 상황에도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 믿음의 눈으로 있는 것을 봐야 되는데 있는 것을 볼 때에 언제나 절대로 죽을 때까지 여러분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되는 겁니다. 아 무화가 열매가 없지 내 인생 다 드렸던 것이 실패로 돌아갔구나, 하고 절망하려다가 아참 잠시 뭐가 있나 보자 하나님 계시네 하나님 나와 함께 계시네! 여러분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이 나에게 계시면 하나도 안 잃어버린 것입니다. 세상 것 다 가지느라 하나님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계셔야 다 가진 것이고., 하나님 없이 세상 다 가져도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인하여 구원의 하나님이 내게 계시다는 것 때문에 사실 하나만 분명하다면 오늘 힘든 상황 가운데 나오신 여러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좋을 때만 찬양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려면 어려울 때 찬양해 보세요. 좋을 때 찬양은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지만 어려울 때 찬양을 멈추지 않으면 감동으로 받으십니다. 하 너는 어떻게 어려운데도 찬양을 멈추지 않느냐, 내가 어찌 너 어려울 때 눈물의 찬양을 내가 외면하겠네. 하나님 눈물의 기도 눈물 속에 드리는 찬양 받으시고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전천우의 믿음이 돼야 됩니다. 바울도 산을 평지처럼 걷는 믿음을 가졌으니까 끝까지 승리했는데 그가 빌립보서 4장 11절에 13절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4:11-13,
11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13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러분 일체의 비결을 배우십시오. 있을 때도 찬양하고 없을 때도 찬양하고 잘 될 때도 찬양하고 잘 안 될 때도 찬양하고 뜻이 있어 그러시겠지. 하나님이 잠시 쉬어라고 하는 쉼표를 내 인생 마지막 최종 점수처럼 마침표로 착각하지 말자. 중간고사를 기말고사 점수라고 착각하지 말자.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니까 나는 하나님 지금 일어난 이 상황 때문에 하나님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빈부에 처할 때도 풍부에 처할 때도 하나님의 일을 멈추지 않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가 뭐라고 고백합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 형편과 상관없이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이 말이지요. 하나님이 아시는 줄 믿습니다.
이번에 주제가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주제가 너무 멋있어요.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 오늘 압도하는 우리 오스기니스 목사님의 압도하는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낮은 산만 찾아다니지 말고, 어떤 산도 넘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제가 좋아하는 찬양가사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내 앞에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주가 나로 바다 위 걷게 하리라.’ 처음에는 바다 갈라지게 해달라고 기도 해야지요 이 문제 해결해 달라고 기도해야지요. 이 문제 산성 같은 문제 하나님 평지가 되게 해달라 기도 해야죠 넘실거리는 바다를 갈라달라고 기도해야죠. 아무리 기도했는데 응답 안 해 주시면은 응답 안 해줬다고 원망하지 말고 감 잡아야죠. 아 요단강처럼 발 디디라는 것이구나. 내 앞에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추가 이 바다 위를 걷게 하시는 것이구나! 담력으로 가다 보면 산이 평지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바다가 갈라지는 것만 기적이라고 하는데, 바다 위를 걷는 건 더 큰 기적인 것입니다.
-스가랴편,
-오늘 두 번째 본문으로 가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스루바벨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하박국이 봤던 바벨론의 말발굽에 짓밟혀서 70년 동안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 당시에 부모의 손을 잡고 갔던 10살 소년들은 70년이 지나자 80세 노인이 되고, 대부분 70년 포로 기간 동안에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바벨론 2세 ,3세들입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스룹바벨입니다. 아주 능했고 뭐 히브리 정신과 이 바벨론 정신 모든 것을 가진 국제적 감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라의 바벨론에 그 인정을 받던 관료였습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고 메데바사 지역을 지나서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첫 번째 왕이 고레스 왕입니다. 대제국을 이루었던 페르시아 왕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첫 번째 대통령 취임 연설과 같은 곳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마디를 하지요 얼마나 제국을 다스려야 되는데 할 일이 많겠습니까? 그러나 70년 전에 페르시아 제국에 비하면 새끼손가락 손톱만큼도 안 되는 한 나라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부터 70년 전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민족은 다 일어나 고토로 돌아가라.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라’는 말을 합니다. 고레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의 섭리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난 뒤에 그들에게 필요한 은금을 주워 보내오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자란 바벨론 이 스루바벨을 총독으로 세워 너는 일어나 백성들을 모아 모이는 사람마다 다 데리고 가라고 그럽니다. 자,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을 데리고 1500킬로미터를 걸어가야 됩니다. 몇 명이 나설지도 몰라요. 태어나서 자랐으니 그곳이 자기들의 고향인데 진짜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어릴 적 10살 때, 왔던 10살짜리 소년이었으나 지금은 80 노인이 된 사람들일 테고 90세, 백 세 된 사람은 내가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묻히고 싶은 사람들 대부분이에요. 길을 따라 나서지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젊은 사람들이 따라 나설 일은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스룹바벨이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 앞에 이야기합니다.
‘1500킬로미터의 거리를 내가 깃발을 들어도 나이 많은 사람들 어릴 적 예루살렘을 본 사람들만 갈 텐데 내가 그들을 데리고 가서 그분들과 함께 어떻게 성제를 세웁니까? 못합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스룹바벨을 바라보고 스룹바벨의 귀를 붙잡고 얘기합니다. ‘스룹바벨 잘 들어라. 잘 들어라 귀를 흔들면 잘 들으라고 예수님 그리고 하신 말씀이 6절입니다.
*스가랴 4:6,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네 능력으로 안 된다. 야, 내가 니 힘보고 부른 줄 아냐? 니 능보고 부른 줄 아냐? 이런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내가 너에게 한다고 내가 너에게 능력 준다고, 내가 성령 부어서 한다고, 너는 니 앞에 가로막고 있는 수백 개에서 한 수십 개 강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니가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한다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합니다. 그러고 난 하나님이 너 잠시 있어봐. 하고는 스루바벨로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수백 개의 산을 향해 하나님이 외치십니다.
*스가랴 4:7,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면서 스룹바벨의 깃발을 들었을 때, 5만 명이 따라 나섭니다. 은금을 가지고 간다는 소식 때문에 처처의 바위 뒤에 산 뒤에 그걸 뺏는 도적 떼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넘어야 할 산은 수백 개고 건너열강은 수십 개지만 스룹바벨은 그때부터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내 앞에 걸어가고 계신다는 거 하나님은 약속대로 산들을 꾸짖어서 산을 평지로 만들어 강을 메꾸어 산도 평지로 강도 평지로 건너게 되었고, 하나님은 숨어 있는 화살들을 다 꺾어 5만 명은 무사히 예루살렘에 기적처럼 도착했고 성전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이 3분 남아서 이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여러분이 산을 넘는 방법 한 가지만 소개할게요. 큰 산이 평지가 된다고 이 설교를 듣고 탁 여러분 산을 가보세요. 평지가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를 반드시 들으셔야 돼요. 되는구나! 하고 갔는데 산 중턱에서 여러분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고, 생각보다 산이 높아 산에 고립될 때도 있습니다.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고, 이제 산을 넘어갈 수도 없고 왔던 길 돌아갈 수도 없어서 갈 길 몰라 헤맬 때, 기도해도 안 되던데요. 이거 걸었는데 산이 평지가 안 되던데요. 그분들 산을 벗어나는 방법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대학교 때 저는 지리산을 혼자 많이 올랐습니다. 처음에 올랐던 때를 기억합니다. 울적하던 어늘 어느 대학교 신학교 이 학년 때에 갑자기 기숙사에 있는 가방 하나를 메고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뱀사골 산장으로 해서 지리산 종주를 했습니다.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래서 장터목산장이라고 지리산 천왕봉 밑에 장터목산장, 마지막 산장에 거의 죽을 것처럼 살아가지고, 도착을 하니까 산장지기가 저에게 이야기합니다. 야 이 젊은 사람 죽으려고 여기 이렇게 왔냐고 이 소지품 다 꺼내보라고 꺼내보니 아무것도 없어요. 책 두 권밖에 없었어요. 사는 게 기적이라고 하면서, 지리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래요. 지리산에서 어떤 곳에서 고립이 되어도,,,
두 가지 첫째, 어떤 일이 있어도 올라올 때 꼭 초코파이를 가지고 와야 된다. 허기가 지면 죽는 거다 그래서 초콜렛 초코파이를 꼭 소지해야 된다. 아무것도 없구만 둘째, 꼭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녀야 된다. 지리산은 어디에서 고립이 되었던지 내리막 방향으로 8시간만 걸어가면 인가가 나오기 때문에 초코파이 하나 먹고 걸어가면 산다. 두 번째 힘이 없거들랑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앉아서 호루라기를 불어라. 그러면은 호루라기가 꼭 산장, 산장마다 들리게 되어 반드시 기다리면 구조대가 온다. 얘기를 하더라고요. 여러분 우리 인생의 길을 잃어버렸을 때에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분, 여러분에게 걸어갈 힘이 되는 분은 누굽니까? 믿음의 주요 원정 기하신 예수만 바라보고 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산이 고립되어도 믿음 버리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방향으로만 걸어가면 언제 살아도 살게 될 줄 몰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오 예수, 초코파이 같은 게 있지만 이건 저기 지리산 오를 때지만 인생의 산을 넘어갈 때는 오 예수! 가지고 안 되고 오 오 예수! 목사님 제가 특별히 만들어 왔습니다. 오 예수, 오 예수!! 목사님께 드리겠습니다. 오 예수만 바라보고 가시면 됩니다. 그래도 힘없거들랑 호루라기를 불어라 그랬지요? 호루라기 불면 구조대가 반드시 온다. 우리의 호루라기가 뭡니까? 기도의 호루라기죠 하나네 대만 아님 주를 불어라. 주를 불어라. 산의 한가운데 어둠의 한가운데 잃어버린 곳에 주를 부르라, 주를 부르라. 이 호루라기 소리를 기억하십시오. 살다가 지쳐 힘들어 한 걸음도 못 가겠거든. 내 힘으로 못 갈 때, 가려고 하지 말고 자리에 추를 부르십시오. 기도의 호루라기로 나 좀 살려달라고 주여, 나를 살려달라고 반드시 주님 오셔서 여러분 살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 앞에 나왔습니다.
♣요약
우리 앞에 산이 가로막고 있다고 이제 한숨 쉴 것이 아니라, 산보다 큰 믿음을 가져서. 평지도 평지처럼 산도 평지처럼 넘어갈 믿음을 주실 것을 확신하며, 산양의 힘줄을 가진 주 여호와를 나의 힘으로 삼는 사람이 고백할 수 있는 자로, 믿음의 크기와 담력에 대한 생각을 기도와 찬양으로 키우고 채워서 커진 문제에 봉착했을 찌라도, 변화를 받아, 주님을 바라보면 그 문제를 작아 보이게 만들어 주시니, 잠겨 있던 믿음의 눈이 열리고 앞 서 행하시는 주님께서 산을 꾸짖어 평지로 만드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면, 길 잃어버렸을 때, 우리의 영적인 호루라기를, 소리를 높일 때, 하나님 반드시 오셔서 역사하시고 응답하실 줄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인생길을 잃어버렸을 때 예수님만 바라보자. 그래서 산을 평지처럼 걸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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