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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2월 13일)
제목: "성탄 새벽송의 축복"
말씀: 누가복음 2:11~14
대표기도: 최유강 안수집사님(목양7팀 남자대교구장)
찬양인도: 목양7팀, 유치부 교사 연합찬양팀
말씀읽기: 김지현자매(청년1국), 김두현형제(대학부5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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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1~14,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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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구세주이시다. 그 하나가 승리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엎드려 엎드려라 할 때 Christ is the Lord! 그것이 1세기 교회를 붙잡아준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사람이 말하면 알 만한 사람인데 당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으니까 가만히 있다가, 내 자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랬어요. 왜 자신이 그렇게 존중합니까? 그러니까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랬어요. 근데 우리는 누가 제일 중요합니까? 내가 제일 중요합니까? 내가 제일 중요하면 그때부터 인생이 고달파지는 거에요. 제가 축도할 때마다 내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고, 내 인생의 전부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 우리의 삶의 전부가 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서도 체험할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우리 온 교회에 같이 선포하는 이번 교회가 정말 잔치가 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함께 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2장 11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제 새벽 송을 모든 것들을 우리가 보았고, 또 확인을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귀로 들었으니까 우리가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새벽송이 현재 진행형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랜만에 제가 오늘 이 3구절 때문에 그랬는데 오늘 성탄의 기쁨이 여러분들 마음속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음에 일어나십시다. 일어나셔서 새벽송도, 오늘 이 시간 때문에 우크라이나에도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라고, 여기에 평강이 오기를 바랍니다. 뭐든지 그냥 되는 건 없어요. 작년 3월 6일 날 이 팬데믹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난 다음에 아마 한국에서 처음으로 우리 본당 6천명, 7천 명이 모여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3월 6일날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어요. 그 이후에 우리 한국교회도 쭉 다시 더 간절히 기도하고 이렇게 되었는데 오늘 그 은혜가 오늘 이 자리까지 연결된 줄로 믿습니다. 콘스탄틴 우리 형제, 전도사님, 진짜 트럼펫 잘 부르는데요.... 오늘 그 곡만 하고 내가 좀 섭섭했어요. 더 불러야 했는데요.. 아쉽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오늘 시작할 때 우리 고등 1 2부부터 왔는데, 고등 1 2부 찬양이 귀하기 어땠어요? 박력 있었죠. 그렇죠? 박력 있었는데 너무 감사하므로 어제 내가 소식을 들었어요. 뭐든지 그대로 된 건 없고 이런 우리 교회 기약 또 고등 일부 유스콰이얼, 유스 오케스트라, 이런 건 있고 또 우리 저희 교회 1 2 3 4부 찬양대가 있고, 1 2 3 4부 각 예배마다, 오케스트라가 있고 이런 은혜가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 해서 뭐로 우리 발전했어요? 다시오, 1 2 3 4번 오케스트라가 뭘로 발전했어요? 크리스천 필하모닉,KCP입니다. 이것도 아셔야 되는데 KCP라고 해서 ‘코리안 크리스천 필하모닉’ 그렇게 해서 저는 이 KCP가 작년 우리가 7월에 창단 예배를 드리고 ‘롯데 시어터’에서 했는데, 그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니고, 이런 우리 기본과 또 이런 마음이 이렇게 또 이런 은혜가 모아져가지고 KCP가 창단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 그다음에 KCP가 한국의 3대 교향악단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근데 내가 이 말을 왜 이렇게 장확하게 말씀드리는가 하면 어제 국회 예산이 통과됐는데 KCP를 위해서 3억이 결정되었습니다. 박수!!~~ 그거는 너무나 놀라운 거예요. 문화체육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제 후원을 해가지고 통과가 됐는데 앞으로 KCP에는 밑에다가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이라고 하십시다. 우리가 크레딧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그냥 되는 거 아니고 우리가 기도하고 마음먹고 하니까 그런 축복이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마음을 모으게 되면 얼마나 기적같이 1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하는 게 정부에서 우리 KCP를 구원한다는 것은 귀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오랜만에 정부가 정부다운 일을 하네!!! 이런 생각 진짜 오랜만에 그런 마음을 갖고 뭐 이것뿐만 아니라 감사할 일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다른 어떤 해보다도 2023년도 한 해를 우리가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한자로 어려운 말로 진충갈력盡忠竭力!, 충성을 다하고 마음을 진흙을 쏟았다는 뜻으로, 진충갈력의 한 해를 감당했습니다. 하나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새벽 송을 우리 우리 교우들 오늘 방송으로 들어온 분도 있고 또 몸이 아파서 지금 SNS로 이렇게 들어온 분들 많이 계시고 또 목양 우리 7팀도 오늘 열심히, 목양 7팀이 어디에 내가 보니까, 목양 7팀 보니까 목양 7팀이 광진, 그다음에 송파 그다음에 양평 그다음에 구리 또 또 빠진 거 어디 있나요? 하여튼 해가지고 남양주까지 해야 되고 송파부터 시작해가지고, 이에 광진, 잠실, 송파, 강동, 하남, 위례, 가평, 구리, 남양주, 양평, 중랑구까지 하나님께서 이곳에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 교회는 목양양 몇 팀까지 있어요? 목양 9팀까지 있는데, 오늘 이 목양 7팀이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세워 찬양도 하고 아까 ‘행복’ 노래하는데 내 가슴에 눈물이 쫙 나오더라고요. 진짜 여러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양하면서 오늘 제가 막 긴 메시지는 안 전할 거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뭐라고 그랬어요? 땅에서 기뻐하심을 사람들 중에 뭐예요?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수님 하나님의 영광, 예수님의 영광, 교회의 영광 이 세 가지만 영원한 것이에요. 아멘 그러니까 다른 거 추구하다 보면 다 남는 것이 없어요. 여러분 모두가 다 우리가 헛된 영광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 예수님께 영광, 교회의 영광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여러분 집중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 영생을 복되게 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동방박사처럼, 그렇게 하나님 은혜 주시고, 그래서 오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 찬송이 모든 우리 모든 우리 교우들,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한 모든 주위에 특별히 우크라나 형제들, 그 무엇보다도 북한의 지하 교회 성도들에게 마음을 다해가지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양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주님이 왕 되시면 다 정리가 되는 것이에요. 주님이 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구주가 되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3절 4절하면서 저도 지금 온 교우들, 우리 교회 10만여 명의 모든 성도들 가정 가정마다 제가 마음으로 심방(尋訪)할 테니까, 오늘 새벽 송 여러분 심방하는 그런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200여 년 전에 영국에서는 집집마다 성탄 새벽에 케롤을 부르며 방문하는 귀한 전통이 있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어린이들은 11월 말부터 시작해가지고 각 집을 돌아다니며 케롤을 불러 성탄의 기쁨을 함께 했습니다. 이러한 캐롤은 예수님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천사들이 찬양했던 것처럼, 크리스마스 새벽 그때 될 때마다 구주 탄생과 기쁜 소식을 집집마다 전한다는 축복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오늘 진짜 한국 사회에 지금 교회들 여러 이제 새벽송 돌지만 우리가 오늘 23일 내일은 며칠이에요?.
24일 그다음 며칠이에요. 아마 이런 시기가 잘 없는데 23일 새벽 송, 24일 내일 성탄 주일, 25일 성탄 축하 예배, 성탄 축하 예배는 우리 130명의 우리 아이들 유아세례까지 봤는데 너무나 한국교회 또 우리 사랑의 교회도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3일 동안 성탄의 잔치와 기쁨이 여러분 가정마다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왕이라 하셨도다 할 때 주님이 우리 제가 불러드린 모든 호명하는 곳곳마다 목양 팀들마다 또 어려운 분들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북한의 왕이 주님이 왕이 되어 주시옵소서 왕되시옵소서. 이 진영 논리 가운데 답답한 모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주님이 이 민족의 왕이 되어 주시옵소서 저 평양에도 주님이 왕이 되어 주시옵소서. 그것이 바로 1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Christ is the Lord! 주님이 구세주이시다. 주님이 왕이시다. 이거 하나 가지고 버틴거에요. 1세기에는 이런 교회도 없었고 성경도 없었고 교리도 제대로 정리도 안 돼 있고 다 안정되어 있었지만 주님이 구세주이시다. 그러니까 오늘 이 마음을 가지고 주여 평양의 주님이 왕이 되어 주시옵소서! 오늘 대검찰청 대법원 주님이 왕이 되셔서, 우리 국회와 정부의 주님이 왕이 되셔서 인도하시옵소서.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이 왕이 되셨도다. 두 번 더 선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우리 세계에 주님이 왕 되어 주옵소서!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이 내 개인과 가정과 우리 인생에 평생 동안 왕과 주님이 되어 주옵소서!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북한에도 주님이 왕이 되어 주시고 주님의 평강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평생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왕이 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왕의 영광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기대하는 주의 백성들을 주님은 기뻐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약
우리 사랑의 교회 4세대가 성탄의 기쁨을 전하며 한국교회의 전통, 새벽 송을 다음 세대에게 계승하고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 나라와 민족 가운데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길 간구하며, 7천기도의 용사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기도할 때, 태초 진행형 생명을 체화하는 충만한 기쁨을 가지고 2033-50 비전을 이루어가며, 이 나라와 세계에 이 성탄의 기쁨과 구령의 열정이 구원의 종소리를 울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복음이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행하신 사역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고치실 때 행한 일을 직접 보면 우리도 그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했다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 영광을 받으신다. 육체의 병을 고칠 때는 의례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좇았으나 영적인 병들을 치료할 때는 그를 좇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적인 병인 죄의 병은 매우 악하고 위험하다. 그 이유는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그 병을 고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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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8월 19일)
제목: "그 큰 사랑의 생수로"
말씀: 에베소서 2:1-7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백신종 목사님-초빙(메릴랜드 벧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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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1-7,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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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종 목사님-초빙(메릴랜드 벧엘교회)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2013년도에 출간된 행복의 비밀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부재가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75년에 걸친 하버드의 인생 관찰 보고서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268명의 학생들을 75년에 걸쳐서 거의 전 인생을 관찰 조사한 보고서 중에 한 권이 바로 이 행복의 비밀이라고 하는 책입니다.
 
여러분, 이 책의 저자인 조지 베일런트라고 하는 분이 행복의 비결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면서 그중에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가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행복의 요인이 된다고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선한 동역 자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사랑의 교회가 정말 만나면 행복한 교회 여러분 이 교회 많은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죠. 누군가 나와 만나면 행복해지고 즐거워지고, 인생의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고, 함께 기도하며, 인생의 고비 고비들을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믿음의 동역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의아했던 것이요. 10장의 제목이 ‘예상치 못한 발견’이라고 하는 챕터입니다. 여러분, 10장에서 저자인 조지 베일런는 인생을 그냥 일평생으로 두고 보지 아니하고 인류의 전 역사, 또 인생을 죽음 이후까지 바라보면서 정말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 하는 중요한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행복을 좌지우지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 만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행복과 또 정말 우리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유일한 길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함께 잠시 살펴볼 에베소서는 바울이 이미 2천 년 전에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 인생의 행복의 비결이야말로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베소서 1장에 보면 1절부터 14절까지 사도바울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타락한 인류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어떤 신령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그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가 하면 바로 이어지는 15절부터 마지막 23절까지는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서 그들이 마음의 눈을 떠서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중보 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그런가 하면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2장 1절 말씀부터 1절에 보면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원인에 관해서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1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에베소서 2:1,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러분, 사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서술문처럼 기록이 되어 있지만, 원래 헬라어 성경, 원어 성경을 보면 그 은이라고 하는 주어와 살리셨도다. 라고 하는 서술어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킹 제임스 버전이라고 하는 성경의 번역 전통을 따라서 5절에 있는 주어와 서술어를 가져다가 번역한 것인데, 원래 사도바울이 이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에는 주어와 서술어를 생략한 채 마치 법원의 판결문처럼 “너희는 죄와 허물로 죽었느니라.” 선언하고 있는 그런 구절입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아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럼 그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우리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세상 사람들, 불신자들만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너희도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3절에 가서 보면
 
*에베소서 2:3,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행하여, 여러분 에베소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평생 그 복음을 위해서 살아갔던 사도바울 자신과 함께 동역했던 모든 동역 자들도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서 죽은 자라고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영적인 실상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 그 은혜의 크기를 우리가 헤아릴 수 있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결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평생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유혹과 또 육신의 정욕과 탐심으로 말미암아서 실패하고 무너질 때가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 한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젊은 목사님이 목회를 하면서 너무 육신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참 고통스러우니까, 은퇴하신 한 80대 되시는 은퇴 목사님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목사님! 제가 정말 이런 정욕 때문에 목회하면서 많은 유혹에 시달리고 언제쯤 되어야 이런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이 주보 한 장을 드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래요. 이 주보 한 장 들 수 없을 때까지야! 그렇게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생 씨름해야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인간의 본성은 타락한 죄와 허물로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면서 끊임없이 본성을 거스려서 하나님을 향한 경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우리 죄와 욕망으로 죽은 우리의 자아를 인식하고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선하신 뜻을 이루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 바울은 우리도 다 그 안에서 행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 21절 이하에 죄로 인해서 갈등하고 그 안에 살아있는 정말 육신의 정욕과 욕망을 씨름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 7:21-24,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세상에 속한 죄인들만 죽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과거의 삶만 죽은 존재가 아니라 여러분 그리스도인들도 살아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니라, 살아있다고 착각하지만 어쩌면 우리 자신도 영적으로는 여전히 죄와 허물 가운데 죽은 존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이 디모데서 디모데전서 5장 6절 말씀에 디모데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디모데전서 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그럼 세상의 향락을 좋아하는 자 자기 탐욕과 욕심에 이끌려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럼 그 영적인 실상은 죽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럼 자기 향락을 추구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돈이나 소유나 운동이나 관계나 세상 것에 집착해서 우리가 영원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한 사람들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여러분 감사와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서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충만한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이어지는 2절 말씀에서 우리가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2절 말씀에 보면 반복되는 두 단어가 있는데요.
 
*에베소서 2:2,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 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따르다. 라고 하는 표현이 헬라어로는 페리파테오라고 하는 단어인데 여러분 페리는 주변 혹은 옆에서 함께, 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테오는 걷다. 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인데 여러분 주변에서 함께 걷는다는 것이죠. 동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동행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입니까? 에녹이라고 하는 인물이죠. 여러분 구약 성경에 보면 에녹이 65세의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무드셀라라고 부른 후에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더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는 자녀를 낳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사는 사람이었지만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서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 성경에 보면 정말 그런 삶을 갈구했던 인물 중에 하나가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빌립보서 3:12,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러분 사도바울은 그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잡기 위해서 달려가는데, 그것이 물질이든 관계이든 성공이든 승진이든 여러분 이 땅에서 무언가를 잡기 위해서 달려가는데 그럼 바울이 잡고자 한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하나님의 손이 닿아 있는 그곳, 하나님의 마음이 닿아 있는 그곳에 바울이 먼저 달려가서 주님께 사로잡혀서 쓰임받기를 원했던 그런 간절한 기도의 어떤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 손에 잡힌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그런 이야기가 있죠. 한 신사가 고속도로를 차를 타고 달려가는데 보니까 옆에 갑자기 닭 한 마리가 슝 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너무 신기해서 그 닭을, 닭을 따라잡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먼저 가다가 갑자기 한 농가로 쑥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농가에 들어갔습니다. 주인을 만나서 혹시 빠르게 달리는 닭을 봤는데 당신 닭이요? 그랬더니 제 닭입니다. 이 주인에게 그럼 제가 천불을 드릴 테니까 이 닭을 파십시오. 그랬더니 안팝니다. 그러는 것입니다. 조금 어수룩하게 본 농부가 뭔가 물정을 아나 보다 생각을 하고 그러면 2천불 드릴 테니까 파십시오. 아니 안 판다니까요. 이 농부가 보통 대단한 농부가 아니다 생각을 하고 그럼 제가 만 불을 드릴 테니까 천만 원 드릴 테니까 그 닭 한 마리 파십시오.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농부가 버럭 화를 내면서 아니 안파는 게 아니라 못 판다니까요 도대체 잡혀야 팔지요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닭을 뭐라 그러는지 아십니까? ‘무용지닭’ 아무 쓸모없는 닭이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부르심 받았는데 여러분 정말 주님의 손에 붙잡혀서 사도바울이 간절하게 고백했던 것처럼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럼 주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서지 아니하면 여러분 어떻게 보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영적으로는 정말 우리 삶의 본질적인 모습은 어쩌면 허물과 죄로 죽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부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던 이유는요. 그는 악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세상과 편리해서 그냥 세상에 휩쓸려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죄를 거스려서 살아갔습니다. 유다서 14절, 15절 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다서 1:14-15,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악한 세대를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을 성경은 선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제가 구약 성경을 통해서 에녹이 도대체 어떤 예언을 했을까 좀 찾아보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것 중에 하나는 여러분 에녹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무드셀라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무드셀라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 무투, 창이라고 하는 단어와 셀라 던지다라고 하는 히브리어의 합성어 던져진 창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기의 전쟁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고대 사회의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 신들의 전쟁이고 신의 심판인데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창을 던져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아들의 이름으로 부른 거예요. 여러분 사랑하는 아들을 낳고 자녀를 낳고 아무 이름이나 붙여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 자녀가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기로 소원하면서 그 이름을 지어주는데 여러분 예를 들어서 제가 아들을 낳고 백시니까 제 아들 이름을 핵폭탄 이렇게 지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여러분 성경에 가장 오래 산 인물이 누구입니까? 무드셀라예요. 몇 년 살았습니까?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거의 천년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천년 동안 그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이 악한세대를 거스려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여러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간절히 초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 년 동안 기다려주신 거예요. 여러분 그 무드셀라가 죽는 그 해에 바로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심판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의 메시지가 아니라 인류가 정말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부르시는 간절한 사랑의 메시지, 천년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바로 오늘 4절 말씀이죠. 여러분 4절 말씀이 원래 헬라어 성경에는 대라고 하는 그러나라고 하는 접속사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글 성경에는 누락이 되었는데 혹시 여러분 성경과 펜이 있으시면 4절 앞에다 그러나라고 기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에베소서 2:4,
4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글 성경에는 누락이 되었는데 혹시 여러분 성경과 펜이 있으시면 4절 앞에다 그러나 라고 기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4절 말씀을 그런 나를 넣어서 우리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본문 4절 말씀 시작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죽은 존재이지만 죄와 허물로 인하여서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러나 여러분이 그러나, 의 위대한 반전을 바울이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베푸신 그 위대한 사랑 오늘도 정말 성령의 거룩한 생수와 같이 우리의 삶을 채워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그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상속자로 세워주신 여러분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저는 모태 신앙으로 자라서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하는 목회자였지만 그럼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그 깊이를 경험한 것은 선교 현장에서 정말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사실 오늘은 제가 베델교회, 이민교회 목회자로 설교하기보다 제가 사랑의 교회, 또 후원받는 선교사로서, 캄보디아에서 사역했던 이야기를 간단하게 드리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희는 2014년도에 캄보디아의 선교사로 가서 저희가 2007년부터 캄보디아에 있는 cus라고 하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과는 좀 사뭇 다른 모습이죠 우리 캄보디아에 있는 한 50만 명 정도 되는 무슬림 공동체 소수 민족이 있는데, 저희는 그 민족을 전도하기 위해서 선교사로 들어가서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 이외에 저희가 이제 처음 들어가서 공용어를 배우면서 캄보디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강의하던 캄보디아, 유니버스 스페셜티스라고 하는 현지의 대학인데요. 이 대학의 문화 교수로 제가 학생들을 가리키게 되면서 이것은 우리 학생들에게 대학생들에게 복음 전하라는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학장님이 그렇게 경고하시는 거예요. 백 선생님 제가 크리스찬인 거 아는데 우리 학교에 와서 함부로 복음 전하지 마십시오. 우리 클라스에 들어가시면 매 클라스마다 우리 불교 승려들이 한 교실마다 있는데, 복음 전하다가 그들이 가서 이렇게 신고라도 하게 되면 학교도 불이익 당하고 당신도 쫓겨날 수 있으니까 전도하지 마십시오. 이런 경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수업시간에 전도하려고 하면은 이 스님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거예요. 제가 이 스님들 때문에 전도 못해서 되겠나 하루는 저희 문화하기 전도하기 아주 좋은 과목입니다. 문화의 근본이 종교이고 그 종교 중에서 기독교에 관해서 강의할 수 있는 한 줄을 할당해서 내가 정말 복음에 관해서, 기독교 2천년 역사와 한국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는지 좀 전하면서 예수님을 전해야 되겠다. 마음을 먹고 저희 아내에게 제가 기도 부탁했습니다. 오늘 좀 전도하려고 하니까 함께 기도해 주세요. 이렇게 부탁하고 학교에 갔는데 그럼 그날따라 우리 스님들이 다 보통은 이렇게 흩어져서 뒤쪽 자리에 앉는데 제가 교실 문을 열었는데 보니까, 전부 다 앞쪽으로 전진 배치를 하셨더라고요. 귀신같이 알아듣고 오늘 또 전도하는데 영적인 방해가 심하구나. 제가 마음껏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참 전도할 기회를 얻지 못해서 마음에 너무 불편한 마음이 있었어요. 하나님 이 불교 성도들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제가 2007년도였는데 그해 12월이 캄보디아가 굉장히 좀 시원했습니다. 날씨가 굉장히 저온이 내려가는데 2007년도 12월 17일, 날짜도 기억해 제가 그 몇 주 전에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불교 승려들 다 지금 날씨도 기온이 많이 내려가고 추워지는데 다 감기 걸려서 못 오시게 하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복음 전하겠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에게 복음 전하겠습니다. 근데 정말 2007년도 12월 17일에 새벽에 눈을 떴는데 몸이 상쾌한 거예요. 날씨가 굉장히 기온이 내려간 것입니다. 제가 그 며칠 뒤에 이렇게 신문을 보니까 캄보디아 사람들이 얼어 죽었다. 이런 기사가 신문에 났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기온이 17도였습니다. 제가 학교 가서 물어봤어요. 교수님들이 아니 이게 얼어 죽었다는데 무슨 얘기냐 그랬더니 그런 게 아니고 아마 심장마비로 죽었을 거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니까 늘 열대 30도 이상의 기온이었다가 하루 이틀 아주 내려간 적이 있는데 제가 그 17일 아침에 눈을 뜨는데 갑자기 마음이 상쾌해지고 아침에 큐티를 하면서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오늘이다. 이런 음성이 들리는 하나님이 오늘 정말 이 불교 승려들 다 감기 걸려서 못 오겠구나. 오늘 복음 전해야 되겠구나. 제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저희 아내랑 아침 식사하면서 묵상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정말 전도해야 되니까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제가 평소보다 좀 일찍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여러분 교실 문을 딱 열었는데 충격 받은 것이 아무도 와 있지 않고 불교 승려 7명만 딱 와서 앉아 있더라고 그럼 제가 마음속에 하나님 이게 뭡니까? 도대체 오늘 새벽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오늘이다. 음성을 주셨는데 그게 제 생각일 수 없는데 하나님 이게 뭡니까? 너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제가 모교회가 저 혜화동에 해성교회가 제모교회인데 해성교회에서 우리 청년들이 와서 단기 선교하겠다. 무슨 사역을 할까 고민하다가 우리 대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리키는 사역을 합시다. 우리 케이팝 K문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래서 한글 반을 시작하기로 학장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글반을 오픈하려고 하는데 스페셜 코스로 우리가 오픈을 하면 학교와 교수가 이렇게 등록비를 조금 나눠서 받는데 내가 그거 필요 없으니까 50명만 딱 한 클래스 만들어 주십시오.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대신 불교 승려는 등록받지 마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드렸는데 저희 학장님이 전과에 전 학년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너희들 훌륭한 사람 되려면 한국어 배워야 된다. 그래가지고 55명 짜리 클라스를 세 클라스를 만들어 주셨어요. 등록비를 꽤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첫 시간에 수업을 들어가 봤더니 불교 승려들이 또 와서 앉아 있는 제가 달려가 가지고 아니 학장님 제가 승려들은 등록받지 말라고 부탁드리지 않았냐, 그랬더니 이분들은 그냥 와서 등록하기 때문에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 그냥 가르쳐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단기 선교 팀들이 와서 일주일 동안 한국어 가르치는데 여러분 일주일 한 이틀만 가르치면 한국어를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국어 자모음이 몇 개입니까? 모음 10개 자음 합하여 24개죠 10개, 자음과 14개의 모음 갑자기 생각도 잘 안 나네요. 24개의 자모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캄보디아어는 자음이 33개, 거기에 받침 자음까지 외우려면 66개를 외워야 됩니다. 모음이 또 23개가 있어요. 그럼 독립 첨자라 그래서 11개가 있어 12 132자를 외워야 그 글을 읽을 수 있는데 이 캄보디아 형제들에게 24개의 알파벳으로 된 한글을 가르치면은요. 불과 한 하루 이틀이면 다 읽을 줄 압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한글 가르치면서 케이팝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케이팝을 어떻게 가르치냐면 이런 노래 가르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한국어면 다 케이팝이니까, 열심히 외워서 막 우리 캄보디아 친구들이 부르고요. 금요일 날 초청해서 캄보디아어로 번역된 찬양을 가르쳐주고 우리가 왜 왔는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신앙 간증을 하면서 우리가 복음 전하자 계획을 가지고 제가 목요일 오후에 이 한글 반 클라스에 갔더니 가장 오른쪽에 얼굴을 들고 있는 친구가 라다나라고 하는 친구인데요. 이 친구가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로쿠로 선생님, 본 프로크너 아이나 제 형 어디 있어요? 내가 니 형을 어떻게 아니? 니 형이 누군데? 그랬더니 이 단기 선교 팀을 인솔해온 성중기 전도사님 지금은 목사님이신데요. 더 웨이츠를 개척한 목사님이신데 그 성중기 전도사님을 자기 형이라 그러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참 신비한 얘기 한국어로나 영어로나 캄보디아어로 서로 소통이 안 되는 두 분이 불과 나흘 만에 호형호제하면서 전도사님과 스님이 이렇게 형제라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라다나를 좀 꼭 초청해서 우리가 금요일 날 전도 만찬하면서 좋은 식사 고기와 이렇게 식사를 많이 준비해서 대접하는데 이 라다나 좀 먹였으면 좋겠어요. 선교사님 정말 불쌍하고 이렇게 사랑에 굶주린 것 같은 친구인데 좀 초청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첫날부터 승려들은 올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자꾸 오 초청하자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전도사님 생각해 보세요. 이게 다 불교 학생들인데 승려가 뒤에 와서 앉아 있으면 우리가 예수님 전하고 결신하자고 손들라 그럴 때 누가 손들겠습니까? 전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랬더니 알았다. 나는 그런 승려가 아니라고 그러시면서 자꾸 이야기하시니까 제가 선교사로 어쩔 수도 없고 그 대신 와서 전도할 때는 위층에 따로 가서 앉아 계십시오. 식사는 같이 하는데, 그래서 저희가 한 38명 정도가 전도 만찬에 오겠다고 이렇게 같이 참석을 했고요. 여러분 그중에서 18명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개척이 되어버렸어요. 마지막에 이 승녀 라따나와 우리 성중기 오른쪽에 계시는 분이 성중기 전도사님이신데 그 당시에 전도사님 지금 목사님이십니다. 이분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제가 중간에 통역하면서 상당히 좀 곤란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마지막에 우리 송중기 전도사님이 라따나에게 그러는 거야. 라따나 내가 소원이 하나 있어. 우리 백 선생님 원래 성경 잘 가르키는 성경 선생님인데 난 니가 좀 우리 백 선생님이랑 성경 공부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가슴이 철컹했습니다. 아니 스님이랑 성경 공부를 하라니 내가 이렇게 번역해야 되겠다. 라따나 나에겐 소원이 하나 있는데 성경은 좋은 책이야. 나는 니가 성경 열심히 읽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통역을 하려고 생각을 했는데 저도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이미 벌써 통역을 다 해버린 겁니다.
 
그러고 나서 더 놀라운 것이 이 친구가 내 형 그러는 거예요. 내 형!!, 성경 공부할게요. 그럼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기 팀들을 보내놓고 그날 저녁에 밤에 올라가서 제 방에서 이게 도대체 뭔가?? 아니 스님이 성경 공부하겠다니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앉아 있는데 마치 하나님이 저를 막 책망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백 목사야 백 목사야 그날 그 아침에 오늘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 다른 대학생들이 있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는 그 불교 승려들 7명을 하나님이 모아주셨는데, 여러분 저는 불교 승려들이 제 전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선교사로서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분 늘 미워하면서 저분들만 없으면 내가 전도할 텐데 저분들만 없으면 내가 잘 정말 사역을 할 수 있을 텐데 여러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러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럼 하나님의 그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는 거죠. 하나님은 그 승려들도 사랑하고 변화되기를 원하셨다는 그래서 그날 그 아침에 모아주시고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불순종했더라고요. 그럼 그때 밤에 정말 펑펑 울면서 하나님 내가 다시는 인생의 선을 긋고 담장을 쌓고 누군가를 그 담 밖으로 밀어내지 않겠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사랑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헌신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그 누구도 우리 인생에 그어진 선 밖으로 밀어내어서 여러분 우리가 미워해도 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을 사랑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용서는 감정이 풀어진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여전히 분노하고 미워하지만 우리 마음에 분노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위하여 독생 하신 아들을 내어주시고, 그 피로 죄를 사하셨기에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이 용서예요. 여러분 이 아침에 용서를 선포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풍성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다음 사진에 보시면 그래서 제가 우리 불교 승녀랑 캄보디아에서 1대 1 제자 양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대일 제자 양육을 하면서 보니까 어느 날은 우리가 몰래 나랑 너랑 몰래 성경 공부하는 거다 분명히 얘기했는데 누군가를 또 데려왔어요. 그래서 누구냐 그랬더니 아니 저래서 지금 승려가 되려고 제 밑에서 훈련받는 제자인데 제가 선생님이랑 제자 훈련받으니까 얘도 좀 제자 훈련 받아야 되지 않겠냐고 데려와 가지고 저희 교회로 데려오고요. 전도도 많이 해왔습니다. 제가 어느 날은 보니까 저를 초청장을 가져왔어요. 뭔가 봤더니, 깜뽕 잠에서 가장 큰 절을 짓고 봉헌 예배를 하는데, 저보고 오라는 것이 주지 스님이 보낸 초청장인데 그냥 가는 게 아니라 50불을 봉헌을 해야 돼요. 절에다가 돈을 줘야 됩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보낸 선교 헌금으로 살아가는 선교사가 그 돈을 절에다 50불 헌금한다.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안 가야 되겠다. 이야기를 했더니 저희 아내가 듣더니 여보 그러지 말고 캄보디아 목사님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제가 전화를 걸어서 여쭤봤더니 교수님, 교수님 그 꼭 하셔야 됩니다. 우리 깜뽕잠에서 교회를 등록하거나 개척하려면 종교성에 종교국의 허가를 받아야 되는데 그 주지 스님이 종교계 사인해 주는 국장이기 때문에 꼭 가서 좀 인사하시고 선교사님 후원금으로 가지 마시고 제가 우리 깜뽕짬 교회협의회 회비로 드릴 테니까 꼭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가서 그 공원 예배에 참석을 했어요. 가서 보니까 우리 라타나라고 하는 승려가 저를 이렇게 쭉 데리고 다니면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친구가 나타나는데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소개하는데 이렇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 로우 그룹의 프리아산 노사스마크겠습니다. 우리 백 선생님은 기독교의 스님이셔” 이렇게 소개를 하는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나중에 알아봤더니 뿌리 꽁빌 목사라고 하는 단어를 모르고 성경을 읽다 보니까 프리아 성 스님이라는 단어를 캄보디아 성경에서는 제사장으로 번역을 했는데 구약 성경을 읽다가 같은 어떤 스님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또 이렇게 보니까 단기 선교팀들이랑 얘기하면서 너는 불교의 스님이고 우리 성중기 전도사님은 전도사님 쎄임이고 우리 백 목사님은 그거보다 조금 높은 목사님이야.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까 저를 무슨 주지스님 정도로 생각을 하고 제가 얘기했어요. 라따나 니가 나보고, 기독교의 스님이라고 얘기했는데 너도 불교 스님 그만하고 기독교 스님 나랑 같이 하자. 이렇게 초청했더니 이 친구가 25살이 되기 전까지 그전에 파괴를 하면 귀신이 자기를 죽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25살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게 23살 초 무렵이었는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가지고 갑자기 어느 날, 파괴를 하고 나타났어요. 그리고 하는 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정말 변화될 그 승려들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죠.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거의 사찰 집사님처럼 일도 하시고 저희가 이제 안식년으로 들어오면서 운전을 가르쳐서 또 필리핀에서 오신 선교사님, 학교를 하고 계시는 그 학교 운전기사로 취직했다가 나중에 신학 공부까지 하고 전도사로 학교에서 사역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대로
 
*로마서 5:8,
8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온전하고 깨끗해져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여전히 무너지고 죄 가운데 정말 우리의 삶이 그렇게 더럽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또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 사랑을 기억하시고 정말 경계가 없는 사랑, 주인을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을 품고 사랑하는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약
사도바울의 고백과 권면대로 하나님 에베소 성도들이 그 처한 상황 속에서 우상과 물질과 향락으로 타락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셨으니 진정으로 감사하며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우리도 그 위대한 사랑으로 살며, 우리 주변에 용서해야 될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으로 넉넉하게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남은 삶이 정말 시대와 이 사회를 품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간구하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신다는 의미는, 먼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인간들이 새 생명을 얻는데, 이 새 생명은 어떤 인간의 공로나 행위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셨고(made us alive), 일으키셨으며(raised us up), 앉히셨다.(made us sit). 하나님은 이렇게 구원을 단계적으로 이루시며 끝까지 보전하고 완성하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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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 주후 2023년 8월 5일)
제목: "그 한마디"
말씀: 요한복음 21:1~4, 15~17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강도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류호근 목사님(순회군선교사, 전 해군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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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4, 15~17,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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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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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먼저 슬픔을 당하신 우리 담임 목사님, 또 저와 신학교 입학 동빈 우리 오정호 목사님과 또 두 형제님, 또 모든 우리 유가족 분들께 마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모든 장례 절차가 죄 은혜 가운데 잘 마쳐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씁니다. 세 번째 사게 됐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부족한 사람을 세워주신 담임 목사님 감사드리고, 또 이 자리에 저희 사관학교 선배님 또 해병대 후배님 등 또 여러분들이 계시고 낯설지 않은 이곳인데, 어제 숙소에서 무릎 꿇고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던 것은 이렇게 어려움을 또 겪으시고, 2년 전에 어머니에 이어서 또 아버님 떠나보내시는 저도 물론 부모님 안 계십니다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성령님께 의지하고 준비된 말씀을 잘 전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6월에 대한민국 최 서북단을 지키는 백령도와 소청도를 다녀왔습니다. 화면에 나올 텐데요. 그 백령도와 소청도에서 정말 엄청난 우리 해병대 여러분들의 수고를 받습니다.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그 외의 섬들을 지키는 우리 해군 해병대, 육군, 공군 정말 여러분들이 오늘 그러한 주제는 아니지만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군대는 국민의 사랑 속에 큽니다. 사람에게 실수할 수 있고, 넘어지지만 여전히 격려해 주시는 그 사랑에 힘입어서 우리 군대는 열심히 나라를 지킬 것입니다.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말합니다. 잘 모르는 이야기라고,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라고, 그러나 그날 우리 서해 바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에게도, 소중한 어머니, 아버지, 가족, 그리고 동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국을 택했습니다. -끝났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을 많이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라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교회가 있고요. 교회가 바로 서야 날아가 있고, 그래서 기도 중에 오늘 짧은 35분 정도의 설교지만은 반드시, 나라 이야기는 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미국서 목회할 때 스탠포드 대학교 근처에 어느 교회에서 ‘레노바레’ 라고 하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기도라는 책을 쓰신 ‘리차드 포스터’ 목사님이셨는데 저번에 첫 강의의 첫 마디가 “나는 10대에 하나님으로 정말 배고팠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도 귓전에 맴돕니다. 나는 10대에 하나님으로 배고팠다.
 
저는 목마름의 근원이 사랑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신앙과 영성의 근원을 사랑이라고 봐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목마르게 그 사람이 보고 싶지 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면 더 그 사람이 보고 싶어요. 저는 성령 충만 혹은 목마름의 뿌리가 사랑이다 확신하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닭이 울고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심히 통곡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돌이켜 보셨다는 말씀은 누가복음만 나옵니다. 영어 성경의 NIV는 루트 스트레이트 에트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끌려가는 그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왜 베드로를 보셨을까 NIV 번역대로 똑바로 무섭게 즉시하신 것일까? 그렇게 믿은 내가 나를 배신해서 날카롭게 쳐다보신 것일까? 보시니라고 하는 에네 블레센, 그 원형은 엠블레포 입니다. 안으로 주의하여 보다 눈여겨 살핀다. 기도 중에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를 주의 깊게 바라보신 것은 저 연약한 베드로가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고, 미안해하고 아파할까? 혹 자신을 너무나 미워해서 회복의 기회마저 놓치지 않을까?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눈빛을 주셨다. 그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하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고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그 순간에도 베드로가 완전히 무너질까 봐, 염려하신 예수님께서 네 배신도 있지만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너를 향한 기대는 여전하단다. 하는 눈길을 보내주신 거예요. ‘사랑하는 베드로야!’ 나는 지금 끌려가기 때문에 노래를 볼 수가 없다. 가까이 할 수가 없다. 큰 소리 지를 수 없다. 그러니 Look at me, 나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 눈빛을 보고 나의 사랑을 느껴라. “베드로야 사랑한다.” 저는 이 장면을 제가 상상해 보면 눈물이 자주 나옵니다.
 
어제도 혼자 울면서 설교를 봤습니다. 아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구나. 베드로가 난데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에 먼저 와 계신 장면이죠.
 
본문에서 세 번째, 또 숯불이라는 말에 주목을 해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세 번째라는 서수가 두 번 나온다. 먼저 14절에 벌어진 주님께서 세 번째로 나타나셨다 그랬습니다. 또 한 번 15절 이하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냐, 고 물으십니다. 이 세 번이라는 숫자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또 주목할 단어가 있으니 ‘숯불’, 입니다. 숯불 숯불은 요한복음에만 두 번 나오죠. 안나스 대 제상의 때에 숯불을 쬐다가 부인하게 됩니다. 다른 한 곳은 디베라 호숫가입니다. 숯불이 있는 뜻에서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를 디베라 호숫가 촛불 곁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고 계시죠. 이름 하여 숯불 대 숯불이다. 이렇게 만들어봤습니다. 베드로가 숯불 옆에서 첫사랑을 놓쳤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장소, 곧 숯불 옆에서, 주님 첫사랑을 회복시켜주시고, 재기의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 장소 그때가 어디일까요? 신앙생활은 리턴 하는 곳입니다. 날마다 돌아가는 것이에요. 뜨거운 장소로 기도 중에 깨닫게 됩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장소도 중요하지만, 뜨거웠던 그 때가 더 소중했다. 왜?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에요. 다시 한 번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그 자리가 어디였을까? 예수님께서 사도 연안을 통해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죠.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저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한 번에 기회를 더 주셔서 거꾸로 하게 하신다면 나는 그때 하고 싶다. 바로 저는 저희 생도 시절입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던 순수했던 그때로 하고 싶어요. 그래서 교회만 가면 노래를 하고 지나가다가 시골교회에서 특성을 하고 그랬던 시절이 가장 그리워요. 주님이 저를 다시 그 옛날 그 교회당으로 이끌어주신다면 저는 그저 울 것 같아요. 저 교회는 제가 나중에 담임 목사가 돼서 생도들 목회했던 곳입니다. 제가 은혜 받았던 작은 교회당에서 조금 더 커진 저 교회당에서, 제가 목사가 돼서 목회를 했어요. 여러분들은 그때 그 자리가 어디일까요? 지금 해사 교회는 저렇게 아름답게 배 한척에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름다운 교회는 진해의 해군사관학교 교회당입니다. 이제 조반을 준비하신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니? 아이 그럼요. 그래 내 양을 먹여라. 요한의 아들 시모나 본래의 이름을 부르셨어요. 주님을 등졌던 세상으로 향했던, 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그의 약함을 긍휼의 가슴으로 안아 주고 계시지요. 그런데 하나 붙자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두 번째 또 같은 질문하시죠.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똑같이 말을 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계속 아시지 않습니까? 세 번째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을 받고 베드로의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무거워져요. 베드로가 근심하면서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제가 약해서 우리처럼 너무나 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는 맘이 제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비우기, 채우기 나누기, 로 나눠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더러운 죄를 씻고, 그 빈자리에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 채웁니다. 성령 충만 이죠. 그리고 그 예수님을 세상에 나누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가 바로 충만의 다음 단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우연히 발견한 영상이에요. 2년 전에 이 청년이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전도하는 장면을 제가 보여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유튜브를 뒤졌어요. 암흑의 이름을 치면서 보니까 저 영상이 나왔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이 청년이 자기가 만난 예수를 증거 하는 모습이에요. 여러분 보세요. 옆에 흑인 친구는 스피커를 들고, 이 친구는 열심히 좁은 길을 걸으라고 예수를 만나라고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나누는 것이죠. 비우고, 채우고,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잠깐 간증을 해요. 저는 고일 때 교회를 처음 나갔습니다. 그래도 그래서 그때 교회를 처음 나가서 가장 부러웠던 가정은 목사님 가정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그저께 세상을 떠나시고, 천국에 가셨지만 우리 오 목사님 가정을 전 부러워하죠. 장로님 가정, 권사님 가정, 집사님 가정을 참 부러워했어요. 혼자 교회 나갔기 때문에 제 친구가 저를 전도합니다. 교회 나가서 열심히 다녔어요. 그리고 제가 일곱 명을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서 한 명도 안 나와요.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전도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 원인을 제가 분석해 보니까 두 가지입니다. 저는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기도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6개월 뒤에 교회를 다 안 다니더라고요. 수십 년이 지나서 저를 전도한 친구를 만났더니 그 친구도 교회를 안 다녀요. 그 제가 물었어요. 아무개야 네가 날 전도해서 목사 하는데 넌 교회 안다니냐? 잘 들으세요. ‘우리 와이프가 교회 하지 말래’ 왜? 다른 데 다니거든 교회가 아니라는 얘기죠. 딴 종교를 다닌다는 거예요. 어느 종교란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마는 간단인데요. 제가 그 친구 말하고 가슴이 아파서 지금도 기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7명 전도한 친구 중에 한 명이 교회를 다닌 것을 제가 발견하게 됐습니다. 인제대 모 교수인데, ‘최 교수 자네 교회 다닌다면서? 야 내가 그때 전도한 게 효력이 있었네.’ 아니야, 난 그대로 쭉 안 다녔어. 그러다가 와이프를 잘 만났어. 누구인데? 전도사님이야. 전사님 만난 거예요. 그게 교회를 다닌 거에요. 이 짧은 말 속에 결혼의 의미도 있는 거죠. 영혼 구원이 이양되는 것이 아니다 말이죠. 한 사람은 저를 전도하러 안 다니고, 한 사람은 전사님 만나서 결혼해서 교회 잘 다니고 말이죠.
 
여러분, 실패하고 낙망한 우리에게도 주님은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아가 파스메?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이 가장 원하신 것은? 충성, 물질, 헌신, 봉사, 글쎄요 저는 ‘사랑’이라고 봐요. 사랑이다. 주님 제가 넘어지지만 그러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 한마디를 주님이 듣기를 원하세요. 그런데 보세요. 주님이 얼마나 세밀하십니까? 예수님의 레벨은 아가페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두 번씩이나 아가페의 질문 앞에 필리어로 답을 하죠.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맡길 영혼을 사랑하려면 아가페의 사랑까지 가야 한다. 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계속 필리어로 우정의 사랑 정도로 그렇게 답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수준으로 주님을 사랑하시고 이웃을 사랑하실까요? 보십시오. 세 번째로 이제 예수님께서 아가페의 수준에 아가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베드로에게 눈높이를 맞춰주세요. 필레오에 저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다. 필레오를 물으시면서 필레오로 답을 얻으시고, 이쪽 오케이 하시면서 그를 격려하시는 그의 눈높이 사랑 때문에 제가 지금 서 있는 거예요. 필로데, 그렇게 답을 하고 ‘됐다’.
 
여러분 눈높이가 뭘까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인카네이션 그 성육신이 눈높이입니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 때문에 죽으신 그 십자가의 죽음이 눈높이에 클라이맥스입니다. 저 같이 못난 사람을 이 귀한 단에 세우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눈높이 사랑이에요. 베드로에게 아가페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낮추시고, 품으시고, 필레오를 들으시고 그리고 오케이, 하시면서 아임 센딩 유(I’m sending you). 보내시는 그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마치 옛날 죤 레논의 ‘러브’란 노래의 가사처럼 사랑은 느낌이에요. 필링입니다. 그분의 터치를 느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특별히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리고 디베라 호숫가로 찾아가신 그 목적도 베드로에게 남아 있는 그 첫사랑을 길어 올리셔서 “됐다”. 하시면서 어떠한 사랑의 단어조차 내놓지 못할 부끄러운 그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비록 작은 단어지만 필레오를 집어넣으셔서 사랑하는 고백을 듣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고 됐다. 아임 센딩 유(I’m sending you). 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만일 제가 그때 베드로였다면, 저는 저의 죄 때문에 저의 수만 가지의 배신 때문에, 그냥 울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 변할지 모르는 저의 모습 사랑합니다. 는 어떤 상투어도 더 이상 말 못하고, 은혜로만 들어가네. 은혜로만 선다네. 은혜의 찬양을 할 것 같아요. 저는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 수년 전부터 대한민국 최초로 ‘순회군 선교사’의 길을 걷습니다. 부족하지만 대한민국 최초 회사 출신으로서, 6년간 위탁 교육을 하고 목사가 된 제가 주의 은혜로 군정감이 되었고,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순회군 선교사가 되어, 한번 보실까요? -동영상 보기-...
 
여러분, 저는 신명준이라는 형제가 기억이 나요. 눈물이 납니다. 제가 주는 작은 핫도그 하나에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를 받는데 말이죠. 제가 더 울었습니다. 작은 사랑에 녹아내리는 육해공군 해병대, 여러분들의 기도의 대상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나눌까요? 만남으로써 하고, 그들을 터치해 줌으로써 우리가 받은 사랑을 말하는 것이죠. 저 앞에 앉아 있는 우리 해병대 소령 출신 안집사님 계신데요. 저와 함께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 대한민국 순회군선교 같이 열심히 하자. “예 제가 돈 많이 벌어서 가이오가 되겠습니다.” 제 신세계에 곧도 납품하시고, 큰 화원을 하시는데 꽃으로 사랑으로 나누겠습니다. 설교를 맺겠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속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원했던 것이 사랑 고백일까요?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그 고백을 듣길 원했을까요? 기도 중에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신 그 한마디는 I love you Lord!, 그것이 아니라 ‘I love you Peter!를 베드로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낙망하고 쓰러지고 사탄이 너를 정지하고 넌 못한다. 너 같은 죄인이, 너 같은 배신자가, 낙망한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세 번씩 유도하시면서 원했던 것은 I love you Lord!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베드로야!” 그 사랑을 꼭 알기 바란다는 그 한마디가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목적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벌하신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 영원히 변치 않은 사랑을 경험하고 치유 받았던 베드로가 이제 예수님 부활하시고 40일이 지나고 승천하신 지 열흘 이 된 오순절 다락방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어떻게 변했는지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 성령 충만 이전에는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그 뜨거운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사랑을 깨닫고 가슴이 무너지고 너무나 감격해서, 주께 남은 인생을 드리겠나이다. 하고 다짐했던 그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뜨거운 마음이었어요.
 
저는 2001년 해군 군정관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5년이 채 안 돼서 서울 바로 여기서 멀지 않은 강남 모 교회에서 저를 청빙하고자 급히 오라고 해서 아무런 서류도 없이 그냥 달려왔습니다. 일 년이 채 안돼서, 저는 다시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분이 저를 다시 보낸 거죠.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롱 스토리를 길게 말하잖아요. 제가 부족하니까 1년 뒤에 전 돌아가요. 저는 비전인 줄 알고 왔지만 저의 야심이 컸었습니다. 돌아가서 제 목회지가 없습니다. 이미 제 목회자를 다른 분에게 인계하고 왔기 때문에 교회가 없었어요. 그때 제 큰아들이, 오 목사님의 둘째 아들 이제 닥터 오의 3년 후배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요. 둘째 아들은 중학생이었습니다. 교회가 없습니다. 기도원에 없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목회자를 주십시오. 제가 꿈을 가지고 한국에 나갔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고 저희 야망이었고, 저의 부족으로 좀 돌아왔습니다. 근데 주님, 목회 지를 주세요. 기도 안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첫 시간에 주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바로 저거였습니다. “효근아, 효근아 나를 먼저 구하면 안 되겠니? 나를 구할 수 없겠니?” 여러분 저는 그 응답을 받고 엄청 올라왔습니다. 주님 원하신 것은 주님 그 한 분이구나. 주님에 대한 사랑이구나. 저거 나 나를 사랑할 수 없니? 목회자보다 너의 자녀들보다 어떤 세상의 명예보다, 너희 비전의 크기보다, 나를 구할 수 없겠니? 그 응답을 받고 그냥 내려왔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구하십니까? 성령 충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파스킬은는 말하죠. ‘인간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 사람이 세울 수 없고 세상이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을 하나님으로 채우고, 예수님의 영으로 채우고, 예수님 한 분으로 채울 때, 드디어 인생은 만족하고 행복하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시작점이 되는 거죠. 무엇을 구하십니까? 하나님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빈 공간을 그분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세요. 지금 여러분 곁에 오셔서 속삭이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세요. ‘내가 너를 너무나 많이 사랑한다.’ 너무나 많이 사랑한단다. 너의 어떠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너의 허물과 불순종까지도 나의 십자가의 피로 다 닦았다. 우리 주님이 꼭 들려주고 싶은 그 한마디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생수를 마시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이고 예수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충만으로 가는 길이고, 그리고 성령 충만의 도화선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눈을 감으십시다. 다 같이 조수아 씨의 찬양을 들으시면서 저의 사랑을 한번 마음껏 깨달아보십시다. 다 같이 눈을 감고 조용히 한번 기도해 보세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너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나로 인한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없어 너희의 모습 때문이 아니오 너희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하시죠. 하나님은 그 사랑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세요. 그 불변의 사랑 그 한없으신 용서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 사랑에 힘입어서 나는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 에너지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예수님만이 주시는 시원한 생명수를 목마른 내가 먼저 마시고 목마른 이웃들에게 마시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약
우리의 연약함에도 끝까지 돌봐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보며 우리의 더 깊고 넓은 연약함과 부족함과 죄악 된 심령과 행동을 다시 돌아보며, 회개의 마음으로 주 앞에 회개하고 회복되어서 그 첫사랑의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오직 주님 한 분만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영 가족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 믿음의 4세대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여전한 그 사랑 때문에 오늘도 힘을 얻고 세상으로 향함에 감사드려야 한다. 우리 목마름의 근원이 바로 나를 향한 주의 사랑을 깨닫는 것 그 사실을 알았기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무더위 속에 특별히 우리 오정현 목사님 은혜롭고 하늘의 소망 넘치는 장례 절차가 되게 하시며 위로를 드려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생과 졸 사이의 인생의 모습, 도전받게 하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도전 속에서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그 간 눈길을 마주하며 질타의 눈길이 아니라 극렬과 염려와 또 끝까지 책임지시는 그 눈길을 우리를 향하여 지금도 돌리심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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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7월 15일)-여름 토요성령집회.
제목: “생수의 강을 체험하라”
말씀: 요한복음 7:37-39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강도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이강일 목사님(구립서초요양센터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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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37-39,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아멘. 이 시간은 사랑의 교회 협동목사이시고 구립서초요양병원 원목으로 섬기시는 이강일 목사님께서 “생수의 강을 체험하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선포해 주실 텐데요 우리 이강일 목사님 보내주신
 
▶이강일 목사님-“생수의 강을 체험하라.”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사모하는 우리에게 폭우를 일시 멈추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처럼 인생의 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완전히 포고를 멈춰주시고 사막과 강을 걷는 자가 있다면 생수의 강을 체험하는 이아침 되기를 소원합니다. 3년 6개월 전인 2020년 1월에 ‘구립서초 요양센터’를 우리 사람에 의해서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200여 분의 어르신들이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협력하고 있고요.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의 배려 그걸 오정현 담임 목사님의 말씀으로 저는 원목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매일 아침 200여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기도해 드리고, 같이 울어드리고, 웃어드리고, 필요한 것 급해 드리고, 그리고 함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생수의 강을 체험하라 7장 38절에 보면 우리가 조금 몇 가지 질문해야 될 본문이 나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여기서 한글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좀 어렵다. 그 배가 어느 배일까? 우리 세 가지 배가 있습니다. 타는 배가 있고, 먹는 배가 있고 이 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학자는 저 배를 좀 불편하게 해석했더라고요. 그리스도의 배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스도의 배, 제가 동의를 쉽게 하기는 힘들 것 같고요.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그 마음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 오늘 이 아침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인 줄 믿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이아침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저기 성경의 말씀대로 도대체 성경 어디서 저런 말씀을 하셨냐는 거죠. 이사야 43장 20절에 보니까
 
노란색을 좀 집중해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사야 43:20,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들짐승 곧 승냥이와 여기 있는 우리 초등학생들에게 승냥이 물어보면 저게 승냥인가 성량인가 잘 모를 겁니다. 승냥이는 이리와 늑대의 중간인데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1위로 번역을 합니다. 타조와 나를 존경할 것은 광야의 물 사막에 강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입니다. 이게 성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44장 3절에는
 
*이사야 44:3,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노란색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광야의 물 그다음에 목마른 지역의 물 사막의 감 마른 땅의 신해 오늘 이 내용들이 나옵니다. 이걸 한마디로 말하면 불이라는 이야기로 정의가 되겠죠. 성경에는 두 가지 물이 있습니다.
▷사람이 손 된 물-우물 웅덩이
▷사람이 손대지 않는 물-비, 이슬, 시내, 강, 샘.
-사람이 손댄 물은 우물과 웅덩이를 두고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운물 그러면은 일단 좀 불편합니다. 성경에서 우물이 많이 언급되는 이삭인데요. 이삭은 우물을 파고 또 옮기고 또 옮깁니다. 당시의 우물은 역사학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200m 정도까지 깊었답니다. 어느 정도 깊은지는 이삭이 우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큰 우물을 나았는데 옮겼던 것 그래서 물웅덩이 이 단어가 나오면 좀 불편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에레미야 2장 13절에 나온 말씀인데요.
 
*예레미야 2:13,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내 백성이 이 두 가지 악을 행했다. 두 가지 악이 뭡니까?
첫 번째는 생수에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
두 번째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저 웅덩이 웅덩이가 터진 웅덩이랍니다.
 
여러분,
웅덩이 웅덩이가 뭐냐 하면 우물은 물을 모으는 곳이고요. 물을 구하는 것이고 웅덩이는 물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웅덩이는 이 당시에 보면 돌을 깎아서 돌을 파서 만드는 것이 운동입니다. 근데 돌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천간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시멘트를 발랐답니다. 지금도 시멘트가 그 당시도 그런 게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 웅덩이가 있었는데, 이 터진 웅덩이 즉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악이 뭐냐 그들은 생수의 거인 나를 버린 것, 그리고 터진 운동이 오늘 이 본문은 뭘 이야기하느냐 그들이 고난과 수고를 의미합니다. 고난과 수고 여러분 웅덩이 우물 고난과 수고입니다. 여기까지 한 번 정리해 보십시다. 성경에 물이 있습니다. 물이 있는데, 이 물은 물 오면 곧 물은 생명과 같았습니다. 물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사람이 손댄 우물과 웅덩이가 있었고요. 그리고 사람이 손대지 않은 물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비와 이슬과 신의 강, 샘. 이런 물들은 사람이 손대지 않은 물들입니다. 사람이 손댄 이 우물과 웅덩이에 놓을 때는 반드시 따라 나오는 이야기가 하나가 뭐냐? 고난과 수고입니다. 고난과 수고 그리고 비, 이슬, 시내, 강, 샘. 그것을 따라 나오는 이야기는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를 두고 이야기도 합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물은 곧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금기 때, 물을 잘 마시기 위해서는 우기 때, 흐르는 물 지금으로 말하면 10월부터 한 3월이 우기인데요. 우리나라 말로 하면은 그때 물을 잘 보관해서 금기 때, 이 웅덩이에서 물을 마셔야 했었습니다. 웅덩이는 바위를 깨서 만드는 것이 웅덩이인데요. 이 당시에도 비는 굉장히 중요했었습니다. 그러므로 비, 강물 이슬, 샘, 이런 이야기들은 내가 고생과 수고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유지하도록 주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물 이꼴(=)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서 습니다. 이 본문을 잘 설명하는 것이 요한복음 4장에 우리가 아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한복음 4장 11절에
 
*요한복음 4:11,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습니까? 두 단어가 나오네요. 우물 그리고 생수, 이 여인 함부로 돌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다섯이 아니고 지금까지 말하면 여섯 명이죠. 이 여인을 부도덕한 여인으로 안 몰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요즘은 이 여인에 대한 해석이 좀 달라지는 면도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알리시겠지만 계대의 결혼법이라고 좀 이 문화를 보면 좀 달리 해석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여인에게는 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그는 우물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얻기를 했는데 우물에서 물을 얻는 것보다는 생수를 원했습니다. 말씀 한번 정리해 볼까요? 이 여인은 그냥 오늘 우물과 생수가 나오는데 이 우물 인생의 고난이었습니다. 생수는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이 아침에 여기 나으신 여러분, 인생의 고난 가운데 인생의 폭우 가운데, 인생의 어려운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 이 여인, 이 여인이 인생의 고난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옵니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 여인은 남편이 지금까지 여섯이나 바뀌었으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아침 누구에게도 내 사정을 내어놓지 못하고 고민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 인생을 고난 가운데, 이 여인처럼 고난 가운데 어려움이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 은혜가 뭐냐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 여러 정의를 할 수 있지만 저는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고통과 고난 가운데 있는 인생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생수라 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생수 즉 살아있는 물입니다. 생수 즉 살릴 수 있는 물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고통이 있죠. 우리 가운데 고난이 있죠. 여러분 성경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물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하박국 2장 14절에 보면요 이는
 
*하박국 2:14
1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하박국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바국에 처음 나온 말씀이 아니라 이사야 11장에 먼저 와 있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잘 보십시오. 이는 무리를 바라는 분과 똑같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할 것이니라. 여러분 한 번 정도 혹시 고민해보지 않으셨습니까? 물이 바다를 덮은 같이 도대체 물이 바다를 덮는다는 의미가 뭔지 물은 뭐고, 바다는 뭡니까? 아 바다, 그래 바다는 짠 게 바다지! 물은요? 여러분 물과 바다를 덮는다는 것 여러분 고민 한번 해보셨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서는 갈릴리 호수를 바다라고 그랬습니까? 호수라고 그랬습니까? 갈릴리 바다는 분명히 호수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호수라는 단어를 한 번 썼고요. 바다를 일곱 번 쓰셨습니다. 마태복음은 바다를 6번 썼고 똑같은 곳을 호수를 두 번, 누가 복음에서 호수를 3번 바다를 10번, 누가복음에서는 호수를 5번 바다를 7번 썼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는다. 어느 학자는 책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갈릴리 사람들이 워낙 시골 사람들이라서 바다를 구경하지 못해가지고 워낙 넓어서 바다로 했다. 쉽게 동의를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조금 자주 방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너무 놀랐던 게 제가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이 틀리더라고요. 그래서 이스라엘 성지 학습을 좀 많이 했는데 그때 설명해 준 것 듣고 너무너무 감동스러워서 여러분께 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정말 그 갈릴리가 호수인 줄 모르고 바다를 그랬다고요? 아닙니다. 성경에서 바다, 그러면 나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바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굉장히 두려웠었습니다. 그래서 성인에서 바다, 고난, 두려움, 공포로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물은 뭡니까? 물은 은혜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이 뜻은 우리의 인생 고난 우리 인생 어려움 그 바다를 하나님의 은혜가 덮어주시는 것처럼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한다. 오늘 이 아침인생의 바다 위에 계신 여러분 인생의 공포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십니까? 생수의 강, 은혜의 물이 공포의 바다를 덮어주시는 이아침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렇게 질문하겠죠? 당신이 무슨 근거에서 그런 말씀을 하냐? 그래요. 근거를 대드리겠습니다. 욥기 7장 12절에
 
*욥기 7:12,
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욥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 내가 바다입니까? 내가 바다 괴물입니까? 주님께서 나를 왜 이렇게 괴롭게 하십니까? 지난 간밤에 한숨도 못 주무시고 오신 분이 계실 줄 압니다. 자녀 때문에, 사업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마음 아파 계실 줄 압니다. 성경에서 바다, 그러면 일단은 불편하고 공포스러운 것 입니다. 하박국 3장 15절은
 
*하박국 3:15,
15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큰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주께서 성경에서 말 그러면 전쟁 또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해결하시는 그런 은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말은 전쟁을 두고도 이야기합니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오늘 이 바다 이 건물의 파도는 누가 해결할 수 있느냐? 우리 주님께서 말을 타시고 우리 앞에 있는 큰 파도 우리 앞에 있는 큰 물결 해결해 줄 때만 이것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26절에
 
*마태복음 8:26,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그때 이 사실을 본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왜 깜짝 놀라느냐? 그 사람들이 27절 놀랍게 여겨 이르되 네가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여러분 바람과 바다를 순종했다. 공포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샬롬!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 인생에 우리의 앞날에 샬롬의 은혜가 넘치는 이아침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바다를 이기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불안과 사람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 결과가 샬롬입니다. 여러분, 내 앞에 불안이 있어요. 내 앞에 두려움이 있어요. 내 앞에 부러움 내 앞에 두려움. 내 앞에 있는 불안. 어떻게 할 수 없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뇌출혈로 내출혈이 뭔지 아시죠? 3급 장애자 된 목사 사모님이 계십니다. 아버님이 사모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에요. 오빠 내가 이 있는데 3명이 목사예요. 목사 집안이 그래도 뭐 큰 죄는 안 지었겠다. 그렇죠? 그런데 이 목사 사무가 이민교회 유학생 중심의 목회를 하다 보니까,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았나 봅니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내 출혈이 와서 의식 불명의 상태로 옵니다.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의사는 오늘을 넘지 못하겠다. 오늘을 넘지 못했다. 그게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모는 지금 살아서 매주 이곳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사모가 제 아내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사인 저에게도 아버지가 목사인 그 사람에게도, 오빠가 4명인데 3명이 목사인 그 사모에게도 불안이 있고, 공포가 있고, 의사가 2주 동안 늘 하루하루 하루를 못 넘기겠다고 그랬었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있어요. 어려움이 있어요. 좌절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불안 바다를 덮는 것이 뭐냐 그게 바로 물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저는 ‘성령 충만’ 이라고 정의를 하고 싶습니다. 성령 충만을 정의를 내리라 그러면 여러 가지 정의를 내릴 겁니다. 저는 성령 충만을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성령의 시대를 받는 삶, 오늘 이 새벽에 놓으신 여러분 대단하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나오시든 안 나으시든 그만이지만, 저는 꼭 나와야 되지 않습니까? 오늘 설교니까 어젯밤부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실 수만 있다면 잠시만 폭우를 멈춰주시고 잠시만 비가 와야죠. 농사를 위해서 여러분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바다가 있어요. 그런데 성경에는 바다가 없어진다는 단어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
 
*요한계시록 21:1,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다른 사람을 모르겠어요.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대요. 옛것은 다 지나갔대요. 그런데 받아도 다시 잊지 않더라. 고통이 다시없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 고난과 고통과 자존심이 있습니다. 받아도 다시 잊지 않는데 성경에 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바다가 하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5장 2절에 보니까
 
*요한계시록 15:2,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보니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예수를 이기고 벗어난 지는 유리 바닷가에 섰다. 유리 바다 도대체 유리 바다는 또 뭡니까? 그래요 우리 아이들 수족관에 갑니다. 상어가 옵니다. 하나도 놀라지 않아요. 왜요? 거기 유리가 있으니까요. 여러분 고난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좌절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 게 우리의 유리 바다가 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유리 바다입니다. 유리를 투명하여 저기 다 다 보입니다. 그래요 오늘 예배 마치고 집에 가면 그 고난 여전히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 존재, 성령이 충만할 때요 성령이 지배를 받을 때, 바다가 유리 바다가 되는 그 역사를 체험하는 이아침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참 모진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사야 41장 9절 보니까,
 
*이사야 41:9,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었다. 땅 모퉁이에서 너 부른다. 이걸 잘 이해를 못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는 100% 이해합니다.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늘 놀릴 때 저를 놀릴 때입니다. 제가 남자주 사랑의 교회에서부터 목사님 모셨으니까요. 이 강이 너 부산 촌놈이 본인은 고향이 어디라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부산 촌놈이 그런데 저는 부산에서도 진짜 땅 끝에 살았습니다. 부산의 땅 끝이 경계선에 저는 철거민의 아들입니다. 땅 끝인데 아마 오 목사님이 그걸 아시나 봐요. 땅 끝이라는 땅 목털이라는 것, 본인의 고향을 여러분 더 잘 아실 겁니다. 땅 끝, 땅 못 중에서 나를 불렀다. 저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요. 한마디로 너 출세했다 이야기입니다. 그다음 이야기는 안 해도 되겠죠. 그래요 저 출세했습니다. 정말 출세했습니다. 땅 끝, 딱 모퉁이, 이야기는 뭡니까? 인생의 끝자락에서 여러분, 아마 젊은이들은 잘 모를 거예요. 어르신들은 철거민이라는 단어를 아실 겁니다. 옛날에 철거할 때는요 군인 차 군대 차가 집을 다 실어가지고 철거를 했어요. 제가 그 차를 타고 간 게 7살인데 아직도 제 머리에 아주 진하게 남아 있어요. 그 땅 목통이, 그 가난한 데에서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셔서 이 자리에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41장 9절에 배경은 그들이 이렇게 나와 있죠 내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땅 모통에 계신 분이 계십니까 땅 끝에 계신 분이 계십니까? 인생에 자주 중에 계신 분 계십니까?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종이야, 내가 너를 택하고 실어버리지 아니하여 너 이게 이사야 41장 9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를 잘 기억 안 하고 그다음 구절만 우리는 기억하려고 그럽니다. 10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사야 41:10,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 땅 모통이에 계신 분 계십니까? 지금 땅 끝에 계신 분이 계십니까?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평안한 사람에게 있는 소리 아니에요 10절 내가 너를 굳세게 할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어른 오른손이 너를 붙들어주시리라.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의 배경은 원래 이 말씀에도 보면 안 돼요. 40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0:1,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오늘 말씀을 오 목사님한테 부탁을 받고 어떤 말씀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목사님께서 네가 최고 잘하는 설교를 해라. 그런데 최고 잘하는 설교를 하려고 보니까, 제가 요양센터에 있다 보니까 어르신들 손 한번 잡아드리는 게 그렇게 그분들이 좋아하세요. 제가 아침마다 어르신들 찾아뵙거든요. 제 손 잡고 우셔요. 아들도 이런 아들이 없대요. 왜요? 어떤 아들이 매일 찾아갑니까? 저는 매일 찾아가잖아요. 저는 이아침 여러분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지금 고난의 바다 위에 있습니까? 땅 모퉁이에 서 계십니까? 자녀 때문에 눈물 흘리고 계십니까? 40장 1절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 문제 있지?
 
*이사야 40:15,17,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여러분 성경에서 열방 그러면 뭡니까? 우리를 괴롭히는 게 열방입니다. 그것 맞아 문제 있어 그러나 독이 한 방울이야 그러면서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구절 같이 한번 나누기 시작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17절입니다. 17절 같이 있습니다.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 아무것도 아니래요 아무것도, 문제가 있다니깐요. 어려움이 있어요. 그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언제요? 문제를 집중하면 문제의 시스 맞추면 우울증 걸려요. 문제에게 포커스 하면, 여러분 밤잠 못 자요. 저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 여러분에게 말씀해달라고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 신앙은 고개 돌리기입니다. 고개 돌리기, 문제의 문제를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고개 돌려서 주님께 우리 포커스를 맞추는 겁니다. 여러분 고개 돌리시오. 문제에 포크 하시면 밤잠 못 주무십니다. 문제 포커스 하면 인생이 괴롭습니다. 여기 장애자 가족 두신 분 계시죠? 저도 평생의 기도 제목 하나가 뭔지 아십니까? 제가 우리 아내보다 하루 더 사는 것 3급 장애자를 둔 남편의 마음 여러분 아십니까? 아이들은 미국에 다 살고요. 제 꿈 중에 하나가 제가 아내보다 하루 더 사는 거예요. 우리 아내 장례 치르고 내가 가는 거에요.
 
오늘 이 아침 개로 분이 시고 계십니까? 우리 주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러분 위로해드립니다. 저는 부잣집 아들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밥 먹으러 가도 거의 제가 밥값을 냅니다. 그렇게 생겼나 봐요. 좋아요 뭐 그거 근데 저는 너무 가난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어느 날 제가 부잣집에 입양을 받았습니다. 입양을 받아가지고 우리 아버지가 제게 부잣집에 입양이 돼서 네 마음대로 돈을 쓸 수는 없으나 필요할 때만 도와줄게. 필요할 때는 한 거 썼습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일을 못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굉장히 부자신데 참 굉장히 인격적이라서 제 성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가고 우리 아버님 잘 아실 텐데요 성령 하씨, 를 쓰십니다. 존함은 나 자를 쓰시고 님자를 쓰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거는 제 이야기가 아니라 로마서 8장 1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8:16,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저희 엄마는 저를 국수를 안 주고 밥도 줬다 하는데, 저는 밥 먹은 기억이 없어요. 어머님 밥 줬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중학교 1학년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돈 없어서 고민하지는 못했어요. 안 했습니다. 왜요? 하나님 아버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마다 고민될 때마다 저는 이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의 앞에는 이사야 4장 17절에,
 
*이사야 4:17,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다. 이아침 고민 있지요 고민 있지요 요한 계시록 15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죠
 
*요한 계시록 15:2,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금고를 가졌다. 어디 있었어요? 유리 바닷가에 서서 누가요? 이기고 벗은 자들이요. 오늘 이 아침 생명의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서 이기고 벗어나서 유리 바닷가에 있어서 찬송하는 이야 집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게 그냥 있는 이야기가 실제 이런 분이 계세요. 사도행전 16장 26절에
 
*사도행전 16:26,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에서 옥토가 움직였다. 물이 고다 열렸다. 사람의 맹인 것이 부서졌다. 여러분 오늘 바울과 신라는 억울하게,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언제요? 이에 갑자기, 이에 갑자기 움직였대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자녀들의 마음,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우리 남편의 마음이 이 아침 움직이는 이아침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혹시 이아침 결혼하시고 아직 태가 열리지 않는 자민이 계십니까? 결혼시켜서 기쁨의 시간을 오랫동안 누렸는데, 내 딸이 태가에 열리지 않는 가정이 있습니까? 우리 시어머님들 눈물로 잡을 수 있기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말씀 그대로 여러분에게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열려지는 은혜가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말씀 보니까 다 ‘벗어진지라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저희 아내가 가장 힘들 때는 링거만 한 열 뎃 개를 매고 있었어요. 매인 건 다 풀어지는 이 집에 여러분 묻고 있는, 맹인 것들이 풀어지는 이아침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제요? 오늘 25절에 ‘한밤중에’ 저 한밤중은 영어로 미드나이트(midnight)입니다. 밤 12시입니다. 여러분 한밤중에는 잘 됩니다. 오늘 자지 않고 이아침에 오신 여러분, 이 아침 여러분 기도할 때 움직이는 이아침 되기를 소원합니다. 뭐가 움직입니까? 뭐가 움직입니까? 우리 아들, 우리 자녀의 마음이 움직이는 이아침, 우리 남편의 마음이 움직이는 이아침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열려지기를 소원합니다. 뭘 열려집니까? 여기 우리 젊은 우리 청년들 계십니까? 직장의 문이 열리고, 학업의 문이 열리고, 막혔던 탐이 열리는 이아침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랑 여러분, 벗어지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빚 때문에 힘든 분 계십니까? 제 친구 목사님들 만나면 그래요 우리는 빚의 자녀라고, 제가 경상도 사람이라서 알아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빚의 자녀 무슨 말인지 아시죠? 빚의 자녀, 빛이 아니고, 빚의 자녀, 이아침 대출의 문제로 정말 무척 힘든 분, 제가 많이 봅니다. “하나님 이 아침 부채로부터, 빚으로부터 그리고 링거로부터 벗어지는 이아침 되는 그런 아침 되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찬송을 참 좋아합니다.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왜 두 손을 들어야 됩니까? 왜 두 손을 들어야 됩니까? 그래요 두 손 들면 내 손에 있는 건 내려놔야 됩니다. 손에 무엇을 잡고 있으면 새로운 걸 잡을 수가 없어요.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그 다시 오실 왕이 아침 저와 여러분이 오셔서 우리의 묵은 짐을 맡아주신 이아침, 우리 바다를 덮은 같이 우리의 권한을 덮어주는 이아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직 저만이 나를 낮추어주셔서 바다가 유리 바다가 되어 움직이고 열리고 벗으시는 거 같이, 이제 우리도 다 같이 두 손 들고 하면 찬양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요약
고난과 고통의 바다가 유리바다가 되어서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우리 고난을 엄히 물로 덮어주시며, 우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 떠나가고 메인 것이 풀어지고 막힌 것이 열려지는 기적을 맛보며,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 움직이고 열려지고 벗어지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적의 구경꾼이 아니라,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를 소원하며 한나 처럼 기도를 드리는 자녀들의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며 내 앞에 있는 고난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믿음으로 선포하고 샬롬의 은혜로 살아가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생수의 강을 체험하며 기쁨의 자녀로 나아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은 주님의 은혜를 받기를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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