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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 주후 2023년 8월 5일)
제목: "그 한마디"
말씀: 요한복음 21:1~4, 15~17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강도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류호근 목사님(순회군선교사, 전 해군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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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4, 15~17,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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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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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먼저 슬픔을 당하신 우리 담임 목사님, 또 저와 신학교 입학 동빈 우리 오정호 목사님과 또 두 형제님, 또 모든 우리 유가족 분들께 마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모든 장례 절차가 죄 은혜 가운데 잘 마쳐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씁니다. 세 번째 사게 됐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부족한 사람을 세워주신 담임 목사님 감사드리고, 또 이 자리에 저희 사관학교 선배님 또 해병대 후배님 등 또 여러분들이 계시고 낯설지 않은 이곳인데, 어제 숙소에서 무릎 꿇고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던 것은 이렇게 어려움을 또 겪으시고, 2년 전에 어머니에 이어서 또 아버님 떠나보내시는 저도 물론 부모님 안 계십니다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성령님께 의지하고 준비된 말씀을 잘 전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6월에 대한민국 최 서북단을 지키는 백령도와 소청도를 다녀왔습니다. 화면에 나올 텐데요. 그 백령도와 소청도에서 정말 엄청난 우리 해병대 여러분들의 수고를 받습니다.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그 외의 섬들을 지키는 우리 해군 해병대, 육군, 공군 정말 여러분들이 오늘 그러한 주제는 아니지만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군대는 국민의 사랑 속에 큽니다. 사람에게 실수할 수 있고, 넘어지지만 여전히 격려해 주시는 그 사랑에 힘입어서 우리 군대는 열심히 나라를 지킬 것입니다.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말합니다. 잘 모르는 이야기라고,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라고, 그러나 그날 우리 서해 바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에게도, 소중한 어머니, 아버지, 가족, 그리고 동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국을 택했습니다. -끝났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을 많이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라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교회가 있고요. 교회가 바로 서야 날아가 있고, 그래서 기도 중에 오늘 짧은 35분 정도의 설교지만은 반드시, 나라 이야기는 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미국서 목회할 때 스탠포드 대학교 근처에 어느 교회에서 ‘레노바레’ 라고 하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기도라는 책을 쓰신 ‘리차드 포스터’ 목사님이셨는데 저번에 첫 강의의 첫 마디가 “나는 10대에 하나님으로 정말 배고팠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도 귓전에 맴돕니다. 나는 10대에 하나님으로 배고팠다.
 
저는 목마름의 근원이 사랑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신앙과 영성의 근원을 사랑이라고 봐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목마르게 그 사람이 보고 싶지 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면 더 그 사람이 보고 싶어요. 저는 성령 충만 혹은 목마름의 뿌리가 사랑이다 확신하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닭이 울고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심히 통곡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돌이켜 보셨다는 말씀은 누가복음만 나옵니다. 영어 성경의 NIV는 루트 스트레이트 에트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끌려가는 그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왜 베드로를 보셨을까 NIV 번역대로 똑바로 무섭게 즉시하신 것일까? 그렇게 믿은 내가 나를 배신해서 날카롭게 쳐다보신 것일까? 보시니라고 하는 에네 블레센, 그 원형은 엠블레포 입니다. 안으로 주의하여 보다 눈여겨 살핀다. 기도 중에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를 주의 깊게 바라보신 것은 저 연약한 베드로가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고, 미안해하고 아파할까? 혹 자신을 너무나 미워해서 회복의 기회마저 놓치지 않을까?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눈빛을 주셨다. 그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하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고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그 순간에도 베드로가 완전히 무너질까 봐, 염려하신 예수님께서 네 배신도 있지만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너를 향한 기대는 여전하단다. 하는 눈길을 보내주신 거예요. ‘사랑하는 베드로야!’ 나는 지금 끌려가기 때문에 노래를 볼 수가 없다. 가까이 할 수가 없다. 큰 소리 지를 수 없다. 그러니 Look at me, 나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 눈빛을 보고 나의 사랑을 느껴라. “베드로야 사랑한다.” 저는 이 장면을 제가 상상해 보면 눈물이 자주 나옵니다.
 
어제도 혼자 울면서 설교를 봤습니다. 아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구나. 베드로가 난데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에 먼저 와 계신 장면이죠.
 
본문에서 세 번째, 또 숯불이라는 말에 주목을 해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세 번째라는 서수가 두 번 나온다. 먼저 14절에 벌어진 주님께서 세 번째로 나타나셨다 그랬습니다. 또 한 번 15절 이하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냐, 고 물으십니다. 이 세 번이라는 숫자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또 주목할 단어가 있으니 ‘숯불’, 입니다. 숯불 숯불은 요한복음에만 두 번 나오죠. 안나스 대 제상의 때에 숯불을 쬐다가 부인하게 됩니다. 다른 한 곳은 디베라 호숫가입니다. 숯불이 있는 뜻에서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를 디베라 호숫가 촛불 곁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고 계시죠. 이름 하여 숯불 대 숯불이다. 이렇게 만들어봤습니다. 베드로가 숯불 옆에서 첫사랑을 놓쳤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장소, 곧 숯불 옆에서, 주님 첫사랑을 회복시켜주시고, 재기의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 장소 그때가 어디일까요? 신앙생활은 리턴 하는 곳입니다. 날마다 돌아가는 것이에요. 뜨거운 장소로 기도 중에 깨닫게 됩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장소도 중요하지만, 뜨거웠던 그 때가 더 소중했다. 왜?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에요. 다시 한 번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그 자리가 어디였을까? 예수님께서 사도 연안을 통해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죠.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저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한 번에 기회를 더 주셔서 거꾸로 하게 하신다면 나는 그때 하고 싶다. 바로 저는 저희 생도 시절입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던 순수했던 그때로 하고 싶어요. 그래서 교회만 가면 노래를 하고 지나가다가 시골교회에서 특성을 하고 그랬던 시절이 가장 그리워요. 주님이 저를 다시 그 옛날 그 교회당으로 이끌어주신다면 저는 그저 울 것 같아요. 저 교회는 제가 나중에 담임 목사가 돼서 생도들 목회했던 곳입니다. 제가 은혜 받았던 작은 교회당에서 조금 더 커진 저 교회당에서, 제가 목사가 돼서 목회를 했어요. 여러분들은 그때 그 자리가 어디일까요? 지금 해사 교회는 저렇게 아름답게 배 한척에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름다운 교회는 진해의 해군사관학교 교회당입니다. 이제 조반을 준비하신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니? 아이 그럼요. 그래 내 양을 먹여라. 요한의 아들 시모나 본래의 이름을 부르셨어요. 주님을 등졌던 세상으로 향했던, 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그의 약함을 긍휼의 가슴으로 안아 주고 계시지요. 그런데 하나 붙자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두 번째 또 같은 질문하시죠.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똑같이 말을 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계속 아시지 않습니까? 세 번째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을 받고 베드로의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무거워져요. 베드로가 근심하면서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제가 약해서 우리처럼 너무나 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는 맘이 제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비우기, 채우기 나누기, 로 나눠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더러운 죄를 씻고, 그 빈자리에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 채웁니다. 성령 충만 이죠. 그리고 그 예수님을 세상에 나누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가 바로 충만의 다음 단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우연히 발견한 영상이에요. 2년 전에 이 청년이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전도하는 장면을 제가 보여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유튜브를 뒤졌어요. 암흑의 이름을 치면서 보니까 저 영상이 나왔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이 청년이 자기가 만난 예수를 증거 하는 모습이에요. 여러분 보세요. 옆에 흑인 친구는 스피커를 들고, 이 친구는 열심히 좁은 길을 걸으라고 예수를 만나라고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나누는 것이죠. 비우고, 채우고,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잠깐 간증을 해요. 저는 고일 때 교회를 처음 나갔습니다. 그래도 그래서 그때 교회를 처음 나가서 가장 부러웠던 가정은 목사님 가정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그저께 세상을 떠나시고, 천국에 가셨지만 우리 오 목사님 가정을 전 부러워하죠. 장로님 가정, 권사님 가정, 집사님 가정을 참 부러워했어요. 혼자 교회 나갔기 때문에 제 친구가 저를 전도합니다. 교회 나가서 열심히 다녔어요. 그리고 제가 일곱 명을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서 한 명도 안 나와요.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전도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 원인을 제가 분석해 보니까 두 가지입니다. 저는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기도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6개월 뒤에 교회를 다 안 다니더라고요. 수십 년이 지나서 저를 전도한 친구를 만났더니 그 친구도 교회를 안 다녀요. 그 제가 물었어요. 아무개야 네가 날 전도해서 목사 하는데 넌 교회 안다니냐? 잘 들으세요. ‘우리 와이프가 교회 하지 말래’ 왜? 다른 데 다니거든 교회가 아니라는 얘기죠. 딴 종교를 다닌다는 거예요. 어느 종교란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마는 간단인데요. 제가 그 친구 말하고 가슴이 아파서 지금도 기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7명 전도한 친구 중에 한 명이 교회를 다닌 것을 제가 발견하게 됐습니다. 인제대 모 교수인데, ‘최 교수 자네 교회 다닌다면서? 야 내가 그때 전도한 게 효력이 있었네.’ 아니야, 난 그대로 쭉 안 다녔어. 그러다가 와이프를 잘 만났어. 누구인데? 전도사님이야. 전사님 만난 거예요. 그게 교회를 다닌 거에요. 이 짧은 말 속에 결혼의 의미도 있는 거죠. 영혼 구원이 이양되는 것이 아니다 말이죠. 한 사람은 저를 전도하러 안 다니고, 한 사람은 전사님 만나서 결혼해서 교회 잘 다니고 말이죠.
 
여러분, 실패하고 낙망한 우리에게도 주님은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아가 파스메?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이 가장 원하신 것은? 충성, 물질, 헌신, 봉사, 글쎄요 저는 ‘사랑’이라고 봐요. 사랑이다. 주님 제가 넘어지지만 그러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 한마디를 주님이 듣기를 원하세요. 그런데 보세요. 주님이 얼마나 세밀하십니까? 예수님의 레벨은 아가페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두 번씩이나 아가페의 질문 앞에 필리어로 답을 하죠.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맡길 영혼을 사랑하려면 아가페의 사랑까지 가야 한다. 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계속 필리어로 우정의 사랑 정도로 그렇게 답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수준으로 주님을 사랑하시고 이웃을 사랑하실까요? 보십시오. 세 번째로 이제 예수님께서 아가페의 수준에 아가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베드로에게 눈높이를 맞춰주세요. 필레오에 저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다. 필레오를 물으시면서 필레오로 답을 얻으시고, 이쪽 오케이 하시면서 그를 격려하시는 그의 눈높이 사랑 때문에 제가 지금 서 있는 거예요. 필로데, 그렇게 답을 하고 ‘됐다’.
 
여러분 눈높이가 뭘까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인카네이션 그 성육신이 눈높이입니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 때문에 죽으신 그 십자가의 죽음이 눈높이에 클라이맥스입니다. 저 같이 못난 사람을 이 귀한 단에 세우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눈높이 사랑이에요. 베드로에게 아가페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낮추시고, 품으시고, 필레오를 들으시고 그리고 오케이, 하시면서 아임 센딩 유(I’m sending you). 보내시는 그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마치 옛날 죤 레논의 ‘러브’란 노래의 가사처럼 사랑은 느낌이에요. 필링입니다. 그분의 터치를 느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특별히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리고 디베라 호숫가로 찾아가신 그 목적도 베드로에게 남아 있는 그 첫사랑을 길어 올리셔서 “됐다”. 하시면서 어떠한 사랑의 단어조차 내놓지 못할 부끄러운 그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비록 작은 단어지만 필레오를 집어넣으셔서 사랑하는 고백을 듣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고 됐다. 아임 센딩 유(I’m sending you). 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만일 제가 그때 베드로였다면, 저는 저의 죄 때문에 저의 수만 가지의 배신 때문에, 그냥 울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 변할지 모르는 저의 모습 사랑합니다. 는 어떤 상투어도 더 이상 말 못하고, 은혜로만 들어가네. 은혜로만 선다네. 은혜의 찬양을 할 것 같아요. 저는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 수년 전부터 대한민국 최초로 ‘순회군 선교사’의 길을 걷습니다. 부족하지만 대한민국 최초 회사 출신으로서, 6년간 위탁 교육을 하고 목사가 된 제가 주의 은혜로 군정감이 되었고,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순회군 선교사가 되어, 한번 보실까요? -동영상 보기-...
 
여러분, 저는 신명준이라는 형제가 기억이 나요. 눈물이 납니다. 제가 주는 작은 핫도그 하나에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를 받는데 말이죠. 제가 더 울었습니다. 작은 사랑에 녹아내리는 육해공군 해병대, 여러분들의 기도의 대상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나눌까요? 만남으로써 하고, 그들을 터치해 줌으로써 우리가 받은 사랑을 말하는 것이죠. 저 앞에 앉아 있는 우리 해병대 소령 출신 안집사님 계신데요. 저와 함께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 대한민국 순회군선교 같이 열심히 하자. “예 제가 돈 많이 벌어서 가이오가 되겠습니다.” 제 신세계에 곧도 납품하시고, 큰 화원을 하시는데 꽃으로 사랑으로 나누겠습니다. 설교를 맺겠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속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원했던 것이 사랑 고백일까요?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그 고백을 듣길 원했을까요? 기도 중에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신 그 한마디는 I love you Lord!, 그것이 아니라 ‘I love you Peter!를 베드로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낙망하고 쓰러지고 사탄이 너를 정지하고 넌 못한다. 너 같은 죄인이, 너 같은 배신자가, 낙망한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세 번씩 유도하시면서 원했던 것은 I love you Lord!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베드로야!” 그 사랑을 꼭 알기 바란다는 그 한마디가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목적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벌하신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 영원히 변치 않은 사랑을 경험하고 치유 받았던 베드로가 이제 예수님 부활하시고 40일이 지나고 승천하신 지 열흘 이 된 오순절 다락방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어떻게 변했는지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 성령 충만 이전에는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그 뜨거운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사랑을 깨닫고 가슴이 무너지고 너무나 감격해서, 주께 남은 인생을 드리겠나이다. 하고 다짐했던 그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뜨거운 마음이었어요.
 
저는 2001년 해군 군정관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5년이 채 안 돼서 서울 바로 여기서 멀지 않은 강남 모 교회에서 저를 청빙하고자 급히 오라고 해서 아무런 서류도 없이 그냥 달려왔습니다. 일 년이 채 안돼서, 저는 다시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분이 저를 다시 보낸 거죠.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롱 스토리를 길게 말하잖아요. 제가 부족하니까 1년 뒤에 전 돌아가요. 저는 비전인 줄 알고 왔지만 저의 야심이 컸었습니다. 돌아가서 제 목회지가 없습니다. 이미 제 목회자를 다른 분에게 인계하고 왔기 때문에 교회가 없었어요. 그때 제 큰아들이, 오 목사님의 둘째 아들 이제 닥터 오의 3년 후배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요. 둘째 아들은 중학생이었습니다. 교회가 없습니다. 기도원에 없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목회자를 주십시오. 제가 꿈을 가지고 한국에 나갔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고 저희 야망이었고, 저의 부족으로 좀 돌아왔습니다. 근데 주님, 목회 지를 주세요. 기도 안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첫 시간에 주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바로 저거였습니다. “효근아, 효근아 나를 먼저 구하면 안 되겠니? 나를 구할 수 없겠니?” 여러분 저는 그 응답을 받고 엄청 올라왔습니다. 주님 원하신 것은 주님 그 한 분이구나. 주님에 대한 사랑이구나. 저거 나 나를 사랑할 수 없니? 목회자보다 너의 자녀들보다 어떤 세상의 명예보다, 너희 비전의 크기보다, 나를 구할 수 없겠니? 그 응답을 받고 그냥 내려왔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구하십니까? 성령 충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파스킬은는 말하죠. ‘인간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 사람이 세울 수 없고 세상이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을 하나님으로 채우고, 예수님의 영으로 채우고, 예수님 한 분으로 채울 때, 드디어 인생은 만족하고 행복하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시작점이 되는 거죠. 무엇을 구하십니까? 하나님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빈 공간을 그분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세요. 지금 여러분 곁에 오셔서 속삭이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세요. ‘내가 너를 너무나 많이 사랑한다.’ 너무나 많이 사랑한단다. 너의 어떠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너의 허물과 불순종까지도 나의 십자가의 피로 다 닦았다. 우리 주님이 꼭 들려주고 싶은 그 한마디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생수를 마시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이고 예수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충만으로 가는 길이고, 그리고 성령 충만의 도화선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눈을 감으십시다. 다 같이 조수아 씨의 찬양을 들으시면서 저의 사랑을 한번 마음껏 깨달아보십시다. 다 같이 눈을 감고 조용히 한번 기도해 보세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너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나로 인한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없어 너희의 모습 때문이 아니오 너희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하시죠. 하나님은 그 사랑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세요. 그 불변의 사랑 그 한없으신 용서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 사랑에 힘입어서 나는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 에너지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예수님만이 주시는 시원한 생명수를 목마른 내가 먼저 마시고 목마른 이웃들에게 마시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약
우리의 연약함에도 끝까지 돌봐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보며 우리의 더 깊고 넓은 연약함과 부족함과 죄악 된 심령과 행동을 다시 돌아보며, 회개의 마음으로 주 앞에 회개하고 회복되어서 그 첫사랑의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오직 주님 한 분만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영 가족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 믿음의 4세대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여전한 그 사랑 때문에 오늘도 힘을 얻고 세상으로 향함에 감사드려야 한다. 우리 목마름의 근원이 바로 나를 향한 주의 사랑을 깨닫는 것 그 사실을 알았기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무더위 속에 특별히 우리 오정현 목사님 은혜롭고 하늘의 소망 넘치는 장례 절차가 되게 하시며 위로를 드려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생과 졸 사이의 인생의 모습, 도전받게 하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도전 속에서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그 간 눈길을 마주하며 질타의 눈길이 아니라 극렬과 염려와 또 끝까지 책임지시는 그 눈길을 우리를 향하여 지금도 돌리심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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