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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8월 19일)
제목: "그 큰 사랑의 생수로"
말씀: 에베소서 2:1-7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백신종 목사님-초빙(메릴랜드 벧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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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1-7,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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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종 목사님-초빙(메릴랜드 벧엘교회)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2013년도에 출간된 행복의 비밀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부재가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75년에 걸친 하버드의 인생 관찰 보고서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268명의 학생들을 75년에 걸쳐서 거의 전 인생을 관찰 조사한 보고서 중에 한 권이 바로 이 행복의 비밀이라고 하는 책입니다.
 
여러분, 이 책의 저자인 조지 베일런트라고 하는 분이 행복의 비결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면서 그중에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가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행복의 요인이 된다고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선한 동역 자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사랑의 교회가 정말 만나면 행복한 교회 여러분 이 교회 많은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죠. 누군가 나와 만나면 행복해지고 즐거워지고, 인생의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고, 함께 기도하며, 인생의 고비 고비들을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믿음의 동역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의아했던 것이요. 10장의 제목이 ‘예상치 못한 발견’이라고 하는 챕터입니다. 여러분, 10장에서 저자인 조지 베일런는 인생을 그냥 일평생으로 두고 보지 아니하고 인류의 전 역사, 또 인생을 죽음 이후까지 바라보면서 정말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 하는 중요한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행복을 좌지우지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 만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행복과 또 정말 우리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유일한 길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함께 잠시 살펴볼 에베소서는 바울이 이미 2천 년 전에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 인생의 행복의 비결이야말로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베소서 1장에 보면 1절부터 14절까지 사도바울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타락한 인류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어떤 신령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그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가 하면 바로 이어지는 15절부터 마지막 23절까지는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서 그들이 마음의 눈을 떠서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중보 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그런가 하면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2장 1절 말씀부터 1절에 보면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원인에 관해서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1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에베소서 2:1,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러분, 사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서술문처럼 기록이 되어 있지만, 원래 헬라어 성경, 원어 성경을 보면 그 은이라고 하는 주어와 살리셨도다. 라고 하는 서술어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킹 제임스 버전이라고 하는 성경의 번역 전통을 따라서 5절에 있는 주어와 서술어를 가져다가 번역한 것인데, 원래 사도바울이 이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에는 주어와 서술어를 생략한 채 마치 법원의 판결문처럼 “너희는 죄와 허물로 죽었느니라.” 선언하고 있는 그런 구절입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아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럼 그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우리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세상 사람들, 불신자들만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너희도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3절에 가서 보면
 
*에베소서 2:3,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행하여, 여러분 에베소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평생 그 복음을 위해서 살아갔던 사도바울 자신과 함께 동역했던 모든 동역 자들도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서 죽은 자라고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영적인 실상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 그 은혜의 크기를 우리가 헤아릴 수 있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결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평생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유혹과 또 육신의 정욕과 탐심으로 말미암아서 실패하고 무너질 때가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 한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젊은 목사님이 목회를 하면서 너무 육신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참 고통스러우니까, 은퇴하신 한 80대 되시는 은퇴 목사님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목사님! 제가 정말 이런 정욕 때문에 목회하면서 많은 유혹에 시달리고 언제쯤 되어야 이런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이 주보 한 장을 드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래요. 이 주보 한 장 들 수 없을 때까지야! 그렇게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생 씨름해야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인간의 본성은 타락한 죄와 허물로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면서 끊임없이 본성을 거스려서 하나님을 향한 경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우리 죄와 욕망으로 죽은 우리의 자아를 인식하고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선하신 뜻을 이루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 바울은 우리도 다 그 안에서 행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 21절 이하에 죄로 인해서 갈등하고 그 안에 살아있는 정말 육신의 정욕과 욕망을 씨름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 7:21-24,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세상에 속한 죄인들만 죽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과거의 삶만 죽은 존재가 아니라 여러분 그리스도인들도 살아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니라, 살아있다고 착각하지만 어쩌면 우리 자신도 영적으로는 여전히 죄와 허물 가운데 죽은 존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이 디모데서 디모데전서 5장 6절 말씀에 디모데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디모데전서 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그럼 세상의 향락을 좋아하는 자 자기 탐욕과 욕심에 이끌려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럼 그 영적인 실상은 죽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럼 자기 향락을 추구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돈이나 소유나 운동이나 관계나 세상 것에 집착해서 우리가 영원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한 사람들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여러분 감사와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서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충만한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이어지는 2절 말씀에서 우리가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2절 말씀에 보면 반복되는 두 단어가 있는데요.
 
*에베소서 2:2,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 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따르다. 라고 하는 표현이 헬라어로는 페리파테오라고 하는 단어인데 여러분 페리는 주변 혹은 옆에서 함께, 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테오는 걷다. 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인데 여러분 주변에서 함께 걷는다는 것이죠. 동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동행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입니까? 에녹이라고 하는 인물이죠. 여러분 구약 성경에 보면 에녹이 65세의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무드셀라라고 부른 후에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더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는 자녀를 낳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사는 사람이었지만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서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 성경에 보면 정말 그런 삶을 갈구했던 인물 중에 하나가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빌립보서 3:12,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러분 사도바울은 그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잡기 위해서 달려가는데, 그것이 물질이든 관계이든 성공이든 승진이든 여러분 이 땅에서 무언가를 잡기 위해서 달려가는데 그럼 바울이 잡고자 한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하나님의 손이 닿아 있는 그곳, 하나님의 마음이 닿아 있는 그곳에 바울이 먼저 달려가서 주님께 사로잡혀서 쓰임받기를 원했던 그런 간절한 기도의 어떤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 손에 잡힌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그런 이야기가 있죠. 한 신사가 고속도로를 차를 타고 달려가는데 보니까 옆에 갑자기 닭 한 마리가 슝 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너무 신기해서 그 닭을, 닭을 따라잡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먼저 가다가 갑자기 한 농가로 쑥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농가에 들어갔습니다. 주인을 만나서 혹시 빠르게 달리는 닭을 봤는데 당신 닭이요? 그랬더니 제 닭입니다. 이 주인에게 그럼 제가 천불을 드릴 테니까 이 닭을 파십시오. 그랬더니 안팝니다. 그러는 것입니다. 조금 어수룩하게 본 농부가 뭔가 물정을 아나 보다 생각을 하고 그러면 2천불 드릴 테니까 파십시오. 아니 안 판다니까요. 이 농부가 보통 대단한 농부가 아니다 생각을 하고 그럼 제가 만 불을 드릴 테니까 천만 원 드릴 테니까 그 닭 한 마리 파십시오.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농부가 버럭 화를 내면서 아니 안파는 게 아니라 못 판다니까요 도대체 잡혀야 팔지요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닭을 뭐라 그러는지 아십니까? ‘무용지닭’ 아무 쓸모없는 닭이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부르심 받았는데 여러분 정말 주님의 손에 붙잡혀서 사도바울이 간절하게 고백했던 것처럼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럼 주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서지 아니하면 여러분 어떻게 보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영적으로는 정말 우리 삶의 본질적인 모습은 어쩌면 허물과 죄로 죽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부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던 이유는요. 그는 악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세상과 편리해서 그냥 세상에 휩쓸려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죄를 거스려서 살아갔습니다. 유다서 14절, 15절 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다서 1:14-15,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악한 세대를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을 성경은 선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제가 구약 성경을 통해서 에녹이 도대체 어떤 예언을 했을까 좀 찾아보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것 중에 하나는 여러분 에녹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무드셀라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무드셀라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 무투, 창이라고 하는 단어와 셀라 던지다라고 하는 히브리어의 합성어 던져진 창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기의 전쟁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고대 사회의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 신들의 전쟁이고 신의 심판인데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창을 던져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아들의 이름으로 부른 거예요. 여러분 사랑하는 아들을 낳고 자녀를 낳고 아무 이름이나 붙여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 자녀가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기로 소원하면서 그 이름을 지어주는데 여러분 예를 들어서 제가 아들을 낳고 백시니까 제 아들 이름을 핵폭탄 이렇게 지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여러분 성경에 가장 오래 산 인물이 누구입니까? 무드셀라예요. 몇 년 살았습니까?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거의 천년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천년 동안 그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이 악한세대를 거스려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여러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간절히 초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 년 동안 기다려주신 거예요. 여러분 그 무드셀라가 죽는 그 해에 바로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심판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의 메시지가 아니라 인류가 정말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부르시는 간절한 사랑의 메시지, 천년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바로 오늘 4절 말씀이죠. 여러분 4절 말씀이 원래 헬라어 성경에는 대라고 하는 그러나라고 하는 접속사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글 성경에는 누락이 되었는데 혹시 여러분 성경과 펜이 있으시면 4절 앞에다 그러나라고 기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에베소서 2:4,
4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글 성경에는 누락이 되었는데 혹시 여러분 성경과 펜이 있으시면 4절 앞에다 그러나 라고 기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4절 말씀을 그런 나를 넣어서 우리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본문 4절 말씀 시작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죽은 존재이지만 죄와 허물로 인하여서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러나 여러분이 그러나, 의 위대한 반전을 바울이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베푸신 그 위대한 사랑 오늘도 정말 성령의 거룩한 생수와 같이 우리의 삶을 채워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그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상속자로 세워주신 여러분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저는 모태 신앙으로 자라서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하는 목회자였지만 그럼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그 깊이를 경험한 것은 선교 현장에서 정말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사실 오늘은 제가 베델교회, 이민교회 목회자로 설교하기보다 제가 사랑의 교회, 또 후원받는 선교사로서, 캄보디아에서 사역했던 이야기를 간단하게 드리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희는 2014년도에 캄보디아의 선교사로 가서 저희가 2007년부터 캄보디아에 있는 cus라고 하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과는 좀 사뭇 다른 모습이죠 우리 캄보디아에 있는 한 50만 명 정도 되는 무슬림 공동체 소수 민족이 있는데, 저희는 그 민족을 전도하기 위해서 선교사로 들어가서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 이외에 저희가 이제 처음 들어가서 공용어를 배우면서 캄보디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강의하던 캄보디아, 유니버스 스페셜티스라고 하는 현지의 대학인데요. 이 대학의 문화 교수로 제가 학생들을 가리키게 되면서 이것은 우리 학생들에게 대학생들에게 복음 전하라는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학장님이 그렇게 경고하시는 거예요. 백 선생님 제가 크리스찬인 거 아는데 우리 학교에 와서 함부로 복음 전하지 마십시오. 우리 클라스에 들어가시면 매 클라스마다 우리 불교 승려들이 한 교실마다 있는데, 복음 전하다가 그들이 가서 이렇게 신고라도 하게 되면 학교도 불이익 당하고 당신도 쫓겨날 수 있으니까 전도하지 마십시오. 이런 경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수업시간에 전도하려고 하면은 이 스님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거예요. 제가 이 스님들 때문에 전도 못해서 되겠나 하루는 저희 문화하기 전도하기 아주 좋은 과목입니다. 문화의 근본이 종교이고 그 종교 중에서 기독교에 관해서 강의할 수 있는 한 줄을 할당해서 내가 정말 복음에 관해서, 기독교 2천년 역사와 한국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는지 좀 전하면서 예수님을 전해야 되겠다. 마음을 먹고 저희 아내에게 제가 기도 부탁했습니다. 오늘 좀 전도하려고 하니까 함께 기도해 주세요. 이렇게 부탁하고 학교에 갔는데 그럼 그날따라 우리 스님들이 다 보통은 이렇게 흩어져서 뒤쪽 자리에 앉는데 제가 교실 문을 열었는데 보니까, 전부 다 앞쪽으로 전진 배치를 하셨더라고요. 귀신같이 알아듣고 오늘 또 전도하는데 영적인 방해가 심하구나. 제가 마음껏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참 전도할 기회를 얻지 못해서 마음에 너무 불편한 마음이 있었어요. 하나님 이 불교 성도들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제가 2007년도였는데 그해 12월이 캄보디아가 굉장히 좀 시원했습니다. 날씨가 굉장히 저온이 내려가는데 2007년도 12월 17일, 날짜도 기억해 제가 그 몇 주 전에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불교 승려들 다 지금 날씨도 기온이 많이 내려가고 추워지는데 다 감기 걸려서 못 오시게 하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복음 전하겠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에게 복음 전하겠습니다. 근데 정말 2007년도 12월 17일에 새벽에 눈을 떴는데 몸이 상쾌한 거예요. 날씨가 굉장히 기온이 내려간 것입니다. 제가 그 며칠 뒤에 이렇게 신문을 보니까 캄보디아 사람들이 얼어 죽었다. 이런 기사가 신문에 났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기온이 17도였습니다. 제가 학교 가서 물어봤어요. 교수님들이 아니 이게 얼어 죽었다는데 무슨 얘기냐 그랬더니 그런 게 아니고 아마 심장마비로 죽었을 거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니까 늘 열대 30도 이상의 기온이었다가 하루 이틀 아주 내려간 적이 있는데 제가 그 17일 아침에 눈을 뜨는데 갑자기 마음이 상쾌해지고 아침에 큐티를 하면서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오늘이다. 이런 음성이 들리는 하나님이 오늘 정말 이 불교 승려들 다 감기 걸려서 못 오겠구나. 오늘 복음 전해야 되겠구나. 제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저희 아내랑 아침 식사하면서 묵상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정말 전도해야 되니까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제가 평소보다 좀 일찍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여러분 교실 문을 딱 열었는데 충격 받은 것이 아무도 와 있지 않고 불교 승려 7명만 딱 와서 앉아 있더라고 그럼 제가 마음속에 하나님 이게 뭡니까? 도대체 오늘 새벽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오늘이다. 음성을 주셨는데 그게 제 생각일 수 없는데 하나님 이게 뭡니까? 너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제가 모교회가 저 혜화동에 해성교회가 제모교회인데 해성교회에서 우리 청년들이 와서 단기 선교하겠다. 무슨 사역을 할까 고민하다가 우리 대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리키는 사역을 합시다. 우리 케이팝 K문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래서 한글 반을 시작하기로 학장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글반을 오픈하려고 하는데 스페셜 코스로 우리가 오픈을 하면 학교와 교수가 이렇게 등록비를 조금 나눠서 받는데 내가 그거 필요 없으니까 50명만 딱 한 클래스 만들어 주십시오.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대신 불교 승려는 등록받지 마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드렸는데 저희 학장님이 전과에 전 학년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너희들 훌륭한 사람 되려면 한국어 배워야 된다. 그래가지고 55명 짜리 클라스를 세 클라스를 만들어 주셨어요. 등록비를 꽤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첫 시간에 수업을 들어가 봤더니 불교 승려들이 또 와서 앉아 있는 제가 달려가 가지고 아니 학장님 제가 승려들은 등록받지 말라고 부탁드리지 않았냐, 그랬더니 이분들은 그냥 와서 등록하기 때문에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 그냥 가르쳐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단기 선교 팀들이 와서 일주일 동안 한국어 가르치는데 여러분 일주일 한 이틀만 가르치면 한국어를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국어 자모음이 몇 개입니까? 모음 10개 자음 합하여 24개죠 10개, 자음과 14개의 모음 갑자기 생각도 잘 안 나네요. 24개의 자모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캄보디아어는 자음이 33개, 거기에 받침 자음까지 외우려면 66개를 외워야 됩니다. 모음이 또 23개가 있어요. 그럼 독립 첨자라 그래서 11개가 있어 12 132자를 외워야 그 글을 읽을 수 있는데 이 캄보디아 형제들에게 24개의 알파벳으로 된 한글을 가르치면은요. 불과 한 하루 이틀이면 다 읽을 줄 압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한글 가르치면서 케이팝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케이팝을 어떻게 가르치냐면 이런 노래 가르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한국어면 다 케이팝이니까, 열심히 외워서 막 우리 캄보디아 친구들이 부르고요. 금요일 날 초청해서 캄보디아어로 번역된 찬양을 가르쳐주고 우리가 왜 왔는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신앙 간증을 하면서 우리가 복음 전하자 계획을 가지고 제가 목요일 오후에 이 한글 반 클라스에 갔더니 가장 오른쪽에 얼굴을 들고 있는 친구가 라다나라고 하는 친구인데요. 이 친구가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로쿠로 선생님, 본 프로크너 아이나 제 형 어디 있어요? 내가 니 형을 어떻게 아니? 니 형이 누군데? 그랬더니 이 단기 선교 팀을 인솔해온 성중기 전도사님 지금은 목사님이신데요. 더 웨이츠를 개척한 목사님이신데 그 성중기 전도사님을 자기 형이라 그러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참 신비한 얘기 한국어로나 영어로나 캄보디아어로 서로 소통이 안 되는 두 분이 불과 나흘 만에 호형호제하면서 전도사님과 스님이 이렇게 형제라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라다나를 좀 꼭 초청해서 우리가 금요일 날 전도 만찬하면서 좋은 식사 고기와 이렇게 식사를 많이 준비해서 대접하는데 이 라다나 좀 먹였으면 좋겠어요. 선교사님 정말 불쌍하고 이렇게 사랑에 굶주린 것 같은 친구인데 좀 초청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첫날부터 승려들은 올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자꾸 오 초청하자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전도사님 생각해 보세요. 이게 다 불교 학생들인데 승려가 뒤에 와서 앉아 있으면 우리가 예수님 전하고 결신하자고 손들라 그럴 때 누가 손들겠습니까? 전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랬더니 알았다. 나는 그런 승려가 아니라고 그러시면서 자꾸 이야기하시니까 제가 선교사로 어쩔 수도 없고 그 대신 와서 전도할 때는 위층에 따로 가서 앉아 계십시오. 식사는 같이 하는데, 그래서 저희가 한 38명 정도가 전도 만찬에 오겠다고 이렇게 같이 참석을 했고요. 여러분 그중에서 18명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개척이 되어버렸어요. 마지막에 이 승녀 라따나와 우리 성중기 오른쪽에 계시는 분이 성중기 전도사님이신데 그 당시에 전도사님 지금 목사님이십니다. 이분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제가 중간에 통역하면서 상당히 좀 곤란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마지막에 우리 송중기 전도사님이 라따나에게 그러는 거야. 라따나 내가 소원이 하나 있어. 우리 백 선생님 원래 성경 잘 가르키는 성경 선생님인데 난 니가 좀 우리 백 선생님이랑 성경 공부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가슴이 철컹했습니다. 아니 스님이랑 성경 공부를 하라니 내가 이렇게 번역해야 되겠다. 라따나 나에겐 소원이 하나 있는데 성경은 좋은 책이야. 나는 니가 성경 열심히 읽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통역을 하려고 생각을 했는데 저도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이미 벌써 통역을 다 해버린 겁니다.
 
그러고 나서 더 놀라운 것이 이 친구가 내 형 그러는 거예요. 내 형!!, 성경 공부할게요. 그럼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기 팀들을 보내놓고 그날 저녁에 밤에 올라가서 제 방에서 이게 도대체 뭔가?? 아니 스님이 성경 공부하겠다니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앉아 있는데 마치 하나님이 저를 막 책망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백 목사야 백 목사야 그날 그 아침에 오늘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 다른 대학생들이 있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는 그 불교 승려들 7명을 하나님이 모아주셨는데, 여러분 저는 불교 승려들이 제 전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선교사로서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분 늘 미워하면서 저분들만 없으면 내가 전도할 텐데 저분들만 없으면 내가 잘 정말 사역을 할 수 있을 텐데 여러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러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럼 하나님의 그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는 거죠. 하나님은 그 승려들도 사랑하고 변화되기를 원하셨다는 그래서 그날 그 아침에 모아주시고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불순종했더라고요. 그럼 그때 밤에 정말 펑펑 울면서 하나님 내가 다시는 인생의 선을 긋고 담장을 쌓고 누군가를 그 담 밖으로 밀어내지 않겠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사랑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헌신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그 누구도 우리 인생에 그어진 선 밖으로 밀어내어서 여러분 우리가 미워해도 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을 사랑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용서는 감정이 풀어진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여전히 분노하고 미워하지만 우리 마음에 분노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위하여 독생 하신 아들을 내어주시고, 그 피로 죄를 사하셨기에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이 용서예요. 여러분 이 아침에 용서를 선포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풍성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다음 사진에 보시면 그래서 제가 우리 불교 승녀랑 캄보디아에서 1대 1 제자 양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대일 제자 양육을 하면서 보니까 어느 날은 우리가 몰래 나랑 너랑 몰래 성경 공부하는 거다 분명히 얘기했는데 누군가를 또 데려왔어요. 그래서 누구냐 그랬더니 아니 저래서 지금 승려가 되려고 제 밑에서 훈련받는 제자인데 제가 선생님이랑 제자 훈련받으니까 얘도 좀 제자 훈련 받아야 되지 않겠냐고 데려와 가지고 저희 교회로 데려오고요. 전도도 많이 해왔습니다. 제가 어느 날은 보니까 저를 초청장을 가져왔어요. 뭔가 봤더니, 깜뽕 잠에서 가장 큰 절을 짓고 봉헌 예배를 하는데, 저보고 오라는 것이 주지 스님이 보낸 초청장인데 그냥 가는 게 아니라 50불을 봉헌을 해야 돼요. 절에다가 돈을 줘야 됩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보낸 선교 헌금으로 살아가는 선교사가 그 돈을 절에다 50불 헌금한다.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안 가야 되겠다. 이야기를 했더니 저희 아내가 듣더니 여보 그러지 말고 캄보디아 목사님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제가 전화를 걸어서 여쭤봤더니 교수님, 교수님 그 꼭 하셔야 됩니다. 우리 깜뽕잠에서 교회를 등록하거나 개척하려면 종교성에 종교국의 허가를 받아야 되는데 그 주지 스님이 종교계 사인해 주는 국장이기 때문에 꼭 가서 좀 인사하시고 선교사님 후원금으로 가지 마시고 제가 우리 깜뽕짬 교회협의회 회비로 드릴 테니까 꼭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가서 그 공원 예배에 참석을 했어요. 가서 보니까 우리 라타나라고 하는 승려가 저를 이렇게 쭉 데리고 다니면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친구가 나타나는데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소개하는데 이렇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 로우 그룹의 프리아산 노사스마크겠습니다. 우리 백 선생님은 기독교의 스님이셔” 이렇게 소개를 하는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나중에 알아봤더니 뿌리 꽁빌 목사라고 하는 단어를 모르고 성경을 읽다 보니까 프리아 성 스님이라는 단어를 캄보디아 성경에서는 제사장으로 번역을 했는데 구약 성경을 읽다가 같은 어떤 스님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또 이렇게 보니까 단기 선교팀들이랑 얘기하면서 너는 불교의 스님이고 우리 성중기 전도사님은 전도사님 쎄임이고 우리 백 목사님은 그거보다 조금 높은 목사님이야.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까 저를 무슨 주지스님 정도로 생각을 하고 제가 얘기했어요. 라따나 니가 나보고, 기독교의 스님이라고 얘기했는데 너도 불교 스님 그만하고 기독교 스님 나랑 같이 하자. 이렇게 초청했더니 이 친구가 25살이 되기 전까지 그전에 파괴를 하면 귀신이 자기를 죽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25살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게 23살 초 무렵이었는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가지고 갑자기 어느 날, 파괴를 하고 나타났어요. 그리고 하는 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정말 변화될 그 승려들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죠.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거의 사찰 집사님처럼 일도 하시고 저희가 이제 안식년으로 들어오면서 운전을 가르쳐서 또 필리핀에서 오신 선교사님, 학교를 하고 계시는 그 학교 운전기사로 취직했다가 나중에 신학 공부까지 하고 전도사로 학교에서 사역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대로
 
*로마서 5:8,
8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온전하고 깨끗해져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여전히 무너지고 죄 가운데 정말 우리의 삶이 그렇게 더럽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또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 사랑을 기억하시고 정말 경계가 없는 사랑, 주인을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을 품고 사랑하는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약
사도바울의 고백과 권면대로 하나님 에베소 성도들이 그 처한 상황 속에서 우상과 물질과 향락으로 타락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셨으니 진정으로 감사하며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우리도 그 위대한 사랑으로 살며, 우리 주변에 용서해야 될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으로 넉넉하게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남은 삶이 정말 시대와 이 사회를 품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간구하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신다는 의미는, 먼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인간들이 새 생명을 얻는데, 이 새 생명은 어떤 인간의 공로나 행위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셨고(made us alive), 일으키셨으며(raised us up), 앉히셨다.(made us sit). 하나님은 이렇게 구원을 단계적으로 이루시며 끝까지 보전하고 완성하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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