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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7월 8일)
제목: "목마름, 채움, 흘러넘침"
말씀: 요한복음 4:13-14, 27-30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박영은 목사님(시드니 중앙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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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4:13-14, 27-30,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27~30,
27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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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훈 목사님(시드니 중앙장로교회 담임)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로 만나게 하시고 또한 말씀의 교재로 함께하도록 우리 박영은 목사님,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로 올려드리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강단이 다 하나님 앞에서 두렵게 떠는 강단인데 오늘 아난 주심의 본당에 오랜만에 이렇게 서다 보니까 떨립니다. 우리 주님께서 참 부족한 거 세워주셔서 하나님 말씀 기억케 하실 때, 우리 여름 토요비전새벽예배에, 성령집회 첫날 아버지 하나님께서 베풀만한 은혜와 자비를 충만히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인생의 완전하고 완벽한 순간은 없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살만하다고, 완전하다고 말하는 순간에 우리는 새털같이 가벼운 인생임을 깨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이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어쩌면 영적인 목마름이 항상 있습니다. 영혼의 목마름 갈증의 현상은 예수님 잘 믿으려 하면 할수록 더 깊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2023년 여름 토요 성령 집회의 첫째 날에 어쩌면 이 갈증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또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께 폭포수와 같은 생수의 강의 은혜를 부어주실 주님을 믿고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미 저는 오정현 목사님 주일 강단을 통해서 선포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받은 은혜를 사실 제가 좀 반복하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 받은바 은혜를 한번 되짚어보면서 또 망각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 생수 강의 3 단계에 대해서 한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수의 강을 어떻게 체험하느냐? 하나님 주시는 처음의 단계는 목마름 즉 비움의 단계인 것 같아요. 성도님들 중에는 그렇게 풍성하고 좋았던 과거의 은혜에 비해 현재 쪼그라들어버리는 이 내 영적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도 참 이거 의아하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 분들이 혹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 은혜 받아서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사역에 더욱 힘을 쓰고 있는 성도님들의 삶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극도의 피로 현상을 겪는 성도님의 하소연을 가끔씩 들을 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믿습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복음의 선포의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그 마음에 영접한 이후에도 하나님을 계속 바라보고 하나님을 계속 기대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데도 하나님은 그 기대와 응답에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임재하지도 않으시고, 그렇게 그 마음에 저 상황, 그 마음의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현상을 오래도록 지속하면서 힘들어하시는 성도님들을 또 보게 됩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은 하나님은 이 어려운 시간을 통해서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 진정한 송도, 우리 자신들의 자아를 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있는 줄 믿습니다. 껍질을 한 겹씩 한 겹씩 벗겨내는 그런 작업은 상당히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이렇게 이런 작업을 통하여 우리 안에 진짜 있는 우리의 리얼 팩트, 우리의 리얼 셀프, 우리의 진짜 중심을 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가 있더라고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통해서 성도로 하여금 십자가가 아니면 소망 없는 우리의 삶을 직접 목도하게 하여 주시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자신에게는 심이 절망하는 마음을 주시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11-12,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아의 모습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스나 바람 가운데 여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이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아는 그전의 사역을 통하여 익숙하던 하나님의 임재의 현상을 이미 체험했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익숙했던 여호와의 모습, 강한 바람이셨습니다. 땅이 흔들리는 지축을 흔드는 지진의 능력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거룩한 불의 놀라운 능력으로, 놀라운 임자로 그의 사역 가운데, 세상 가운데 나타나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오랜 기간 동안 나타나지 않으셨던 거예요.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시며, 하나님은 이 엘리아에게 그러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목마르게 하시는 줄 모르겠습니다. 세밀한 음성으로 나타나시며 우리를 갈망하게 하십니다. 길을 세워야만 들릴 듯 말 듯 한 그런 메시지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순간 우리 안에 채워야 할 빈 공간을 정확하게 보게 하시는 은혜가 있는 것 같아요.

소천하신 이어령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하셨던 거 기억합니다. 생명의 노래는 생명이 풍성할 때는 나오지 않습니다. 생명이 구발되어 갈 때 생명의 노래가 나옵니다. 아마 그분이 직접 경험했던 말을 옮겨 놓은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런 의미에서 꼭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해 보면 이 인생에 비워지는 듯한 순간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까? 그때는 정말 하나님을 갈망하게 돼요.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 갈망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욱 가깝게 되는 은혜를 받는 줄 믿습니다. 힘들면 하나님과 멀어질 것 같고, 하나님과 더 거리가 멀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운 물리적으로 눈에 보일 때는 어렵게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심령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통하여 우리의 영안이 열려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하나님은 그 은혜의 기회를 통하여 생수의 강을 우리 모두에게 쏟아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때 더 큰 생명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을 주님은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갈망하게 하시는 이 순간이 계시다고 하면, 이 순간이 우리에게 가장 복된 우리 인생의 한 순간이 될 수도 있음을 주님 앞에서 고백하고 믿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찾아왔다가 이 토요, 이 성령 집회를 통하여, 이 첫날의 말씀의 은혜를 통하여, 이 은혜를 새롭게 주님 갈망하는 은혜로 지원하는 그런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비워지게 하시는 그런 순간을 통해서도 하나님만을 갈망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내려주시기로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는 주님은 비우시기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채우시는 주님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마름의 현상을 우리는 보통 잘못 대처하는 경우들이 혹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실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실수 정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큰 죄악에 빠지는 경우도 있어요. 예레미야 2장 13절의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예레미야 2:18,
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입니다. 첫째, 생수에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렸다. 암묵의 상황에서, 비움의 상황에서, 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는 상황까지 시험에 드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둘째로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스스로 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 버린 대신에 항상 보면 무엇이든지 비워진 자리를 채우려고 하는 우리의 제약된 습성이 있거든요. 그런 습성 때문에 가두지도 못할 엉덩이를 스스로의 힘을 써가면서 파는 그런 죄악을 범하게 됐던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버리고 이건 안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거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였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을 갈망하면서 보내다가 시험에 빠지게 되고 스스로 엉덩이를 파고 하나님을 버리는 자리에까지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자기 안에 눈에 보이는 생명의 생수의 그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담아보려고 이거라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웅덩이를 자기의 힘을 다하여 파서 이 정도 준비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 없이 살아도 되는 삶을 그렇게 유지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웅덩이는 결국 터져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힘으로 억지로 파서 만든 불 신앙적 운동이론은 절대 생명의 광수를 자기 뜻대로 보관할 수 없습니다. 저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보고 계세요 우리가 어떤지, 우리 중심을 알고 계세요. 겉으로 아무리 엉덩이 그렇게 파도 잘 될 것 같아서 이 정도 하면 저장될 것 같아요.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만휼히 여김을 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 엉덩이는 결국 터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힘으로 열심히 억지로 퍼서 만든 그 불신앙적인 운동이론은 절대 하나님의 생수의 강수를 보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웅덩이에 둑을 터트려 버리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이기려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보면 아무리 해본다고 열심히 해보고 난리를 치고 저도 왜 이 단어를 쓰는지 모르겠는데요. 아무리 열심히 하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해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이상한 방향으로 상황들이 흘러가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 나 망가져 버릴 거예요. 정말 이렇게 하실 거예요. 정말 이러실 거면 저 할 수 없어요. 주님 나 망가져 버릴 거예요. 예 그런 말 안 하고 망가지면 되는데 얘를 그냥 망가져버릴 거예요. 주님께 이렇게 하소연하는 것인지 하나님께 경망스러운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속으로, 마음속으로 하나님 정말 방법이 없네요. 은근슬쩍 하나님 이기려 들려는 거예요. 모든 것의 주권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이 말로는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 안 하고 행동으로 그렇게 그토록 보이지 않을지라도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들을 그렇게 표현하면서 하나님을 이기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살길을 위해서 하나님 상관없이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 들어주시지 않았잖아요. 하나님 그러니까 내가 웅덩이 팔 거예요. 그 뒤에 보시지만 웅덩이도 내가 팔뿐만 아니라 그 정도까지는 안 돼도 물을 담을 수 있는 물동이라도 나는 준비할 거예요. 이렇게 자기 스스로를 매진하여서 자기 스스로를 이렇게 자꾸 몰아붙입니다. 열심히 해보았지만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 더 멀어지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훨씬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일이 얼마나 잃고 얼마나 고된지 모릅니다. 꼭 경험한 것처럼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듣는 이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보면,

*요한복음 4:14,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아멘. 생수의 권원이신 예수님께 소망이 있다는 이 말씀, 예수님이 이 선포하신 말씀을 믿는 믿음이 오늘 선물로 주어지는 이 새벽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수의 생수의 권인이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전심으로 신뢰하게 되면은 어떤 현상이 우리 삶 가운데 생기기 시작합니까?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요한복음 앞에 4장의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8절의 말씀에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요한복음 4:28,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이르렀다 사람들에게 도달했다 이런 식의 말씀이 있습니다. 생수를 확보하는 유일한 길, 더 웨이(The way)를 여자가 발견하게 됐던 거예요. 남편을 여섯이나 갈아치웠던 그 여자 다섯이나 갈아치웠던 이 여자가 마지막 여섯째 남편을 데리고 사는 이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생수를 확보하는 도우의 유일한 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들을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그 유일한 길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생수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삶의 문제를 덮어버릴 수 있는 생명의 물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오는지 그 유일한 길을 알게 되니까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까 유일한 생명에 덧붙여주니까 그 유일한 생명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로 비우게 하시고, 여러 번 목마르게 하시는 것도 우리의 이 목마름에 빈 공간, 우리의 진짜 셀프, 우리의 진짜 존재를 발견하게 하시고 예수님으로만 채우실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길, 유일한 진리의 기를 다시 발견하게 하는 은혜가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나쁜 게 아니더라고요. 해결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으면요? 초이스들이 여러 가지가 있으면 오히려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리고 일시적인 해결 방식은 나중에는 조금 지금 낫다가도 나중에는 문제가 더 크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유일한 해결책 이외에 유사 해결책, 물동이 같은 거, 물을 우선 담을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준비한 물똥이 이거라도 내가 붙들고 있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유일한 더 웨이를 만나면 유일한 끊임없이 흐르는 생수를 만나면 우리 주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주 예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를 발견하면 이 물동이와 같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은혜를 동시에 허락하여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힘들지만 이게 승리하는 길이 들어가요. 우선 편한 방법에 마음 뺏기지 않아야 되겠더라고요. 우선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지 않아야 되겠더라고요. 우선 살 길 찾는 것보다 하나님 백 앞에서 우리가 실제로 지는 위에서 해야 할 일들을 집중해야 되겠더라고요. 보이는 대로 믿지 않고 믿음대로 보는 그런 연습을 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폭탄이 떨어지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합창하여 사람들에게 평안의 은혜를 전하는 일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물동이를 버리는 일과 같은 것인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나를 살리는 유일한 길 예수님 생수에 근원되시는 예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알아야 될 것 오늘 한번 결단해야 될 것 오늘 결심해야 될 것 무엇입니까? 물동이 가져가면 안 된다 혹시 내가 물동이 의지하고 있는 거 있는가? 그거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최고의 길, 유일한 생수의 강의 그런 생수의 그런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영원토록 그리시는 생수의 방에 풍덩 빠지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끊임없이 체험 받는 신비한 은혜를 오늘 이 아침에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물덩이를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동시에 선포되는 복음의 현장으로 달려나가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물동이를 버릴 때, 완전히 새롭게 열리는 그 세계를 그 사마리아 여인이 체험했던 것처럼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여름 토요 새벽 이 성령 부흥에 참여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정말로 우리가 부여잡았던 물동이의 작은 은혜에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쏟아부어주시는 생수의 강들을 통하여 쏟아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은혜로만 이 모든 체험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믿고 혹시 내 가운데 있었던 붙들었던 부여잡았던 물동이들 생각나게 하시고 버리고 과감하게 주님께로 나아가는 이 아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이 체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 단순히 치워지는 은혜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채워질 뿐만 아니라 흘러넘치는 은혜를 받습니다. 지구에서 제일 큰 강은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지구에서 제일 큰 강은 사실 보이지 않는 땅속에 있다 그러더라고요. 이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지하수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담수 99%가 지하수다. 이 숨겨진 거대한 강의 수에 이 놀라운 우리가 눈에 보지 못해서 그렇지 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99%의 담수를 이렇게 가지고 있는 지하수 이걸 찾기 위해서 우리는 아프리카 같은 데 가면 이렇게 수맥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게 사역하는 분들이 많습니까? 이 수맥을 이 지하수의 강을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찾아야 합니까? 물이 터져 나오는 바로 직전까지 예 1m 전까지 파가지고도 수맥은 발견 못하는 거예요. 물이 있는 그 자리에까지 파고 들어가야 되는 것이 지하수 개발이었습니다. 그 바로 직전까지 땅을 파야 그 지하수의 생수의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 찾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그 근원까지 찾아 들어가야 되는 작업이 이 이미지를 우리 신앙에 적용한다고 하면 우리 영혼의 중심 정말 양파처럼 이렇게 껍질이 여러 개 쌓여져 있는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도 이 코와 제 중심에 있는 이 중심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오늘 이 생수에 그놈까지 찾아가야 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 영혼의 이 껍질에 쌓여 있는 가장 중심된 부 분이 예수님의 생수의 은혜로 덮여야 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이 우리의 가장 영혼의 중심을 장악하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보면,

*요한복음 7:28,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배가 무엇입니까? 배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가장 중심된 부분을 의미합니다. 우리 존재의 중심에서부터 예수님 만난 사람은 은혜의 강수 생명의 강수가 흘러 넘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 생수의 강은 절대 마르지 않습니다. 성령은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절대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안 마른 것 같은데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말씀 들으면서도 아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요. 오늘 선포하시는 말씀이 우리를 장악하시는 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가장 중심에 있는 부분이 거부하고 있는 그 순간 있을 수 있어요. 그 가장 중심된 부분이 예수님의 성령님의 생수의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로 덮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거는 절대 마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믿으시길 바래요. 성령은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쉬지 않고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 짓고 있는 그 순간에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 축복이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낙망하여 절망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내 안에서 흘러넘쳐서 이 부족한 거 사용하시기 위해서라도 말씀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내 안에 이 생수 강이 흘러넘쳐서 열망으로까지 생수강이 흐르는데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이 다시 임재하시게 된 예루살렘 성전의 환상을 여러분 다시 한 번 보십시다. 에스엘 47장 말씀을 크게 한 번 저와 여러분 크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에스겔 47:8,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그리 하겠습니다. 되살아나리라. 되살아나리라. 되살아나리라. 흘러내리는 물이 무엇입니까? 흘러내리는 물이 무엇입니까? 성전에서 성적 그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는 물 성령의 물 생수의 강을 신약시대 오늘 예수님 말씀하신 생수의 강 말씀합니다. 이 생수의 강 성전의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이 생수의 강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 생수의 강의 합장 성을 우리가 이해해야 됩니다.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 물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깊어지고, 점점 더 넓어집니다. 아멘 안 할 줄 알았습니다.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깊어지고 점점 더 넓어집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헤엄쳐야만 하는 넓고 깊은 강이 된다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예언이 성취된 줄로 믿습니다. 성전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물인데도 점점 멀어져 가는 멀어져가는 물인데도 수심이 더 깊어져 간다는 거예요. 그렇게 성전에서 멀리 물이 흘러갔는데도 물이 그냥 땅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 대를 삼킬 만한 강으로 넓어져 깊어져 간다고 말씀합니다. 먼 해외에서도 6월 3일 빌리그래함전도대회 인터넷으로 저도 참여했습니다. 토요일 날 오후 시간 저희 내가 있는 날과 1시간밖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저는 거의 실시간으로 참여했습니다.

오정현 목사님 인도하시는 합심 기도에 저도 시키시는 대로 책상 밑에 무릎 꿇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혼자 있는 자리였지만 함께 그 자리에 동참하며 기도했습니다. 디아스포라 교회들을 위한 기도의 제목을 말씀하셨습니다. 더 마음에 사무치는 기도의 제목 말씀하실 때 한국 교회의 초대를 옮기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탄원의 기도의 장면에서 저의 심령도 그 문 곳에서도 뜨거워졌습니다. 열방을 향해 흐르는 생수의 강의 확장이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를 통해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이 생수강의 두 번째 특징이 있습니다. 은혜 역투합의 능력이 있다는 거. 역 투합 이 말이 좀 어렵습니다. 원래 농도가 높은 쪽에서 농도가 낮은 액체가 영향을 받는다. 농도가 높은 곳의 액체의 농도가 낮은 곳의 액체가 영향을 받는 이게 삼투학 현상이라 그러는데, 그런데 역 삼투압 역 투합이라는 게 있다는 거예요. 그 반대 현상을 말합니다. 자연계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인위적인 기술을 위력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막 노력을 해야만 일어나는 게 이게 역 투합 변상이라 그러더라고요. 오염된 물이 보통 농도가 이렇게 오염돼 가지고 탁한 물이 깨끗한 물을 오염시키는 게 맞는데 역 투압 현상이 무엇입니까? 오염된 물이 오히려 깨끗한 물에 합류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그 물이 그렇습니다. 주님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생수의 강이 그렇습니다. 그 물이 흘러서 어디까지 흘러가느냐 아라바를 지나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사의 바다로까지 그 바다잖아요. 강이 아니에요. 죽음의 바다 사회로까지 그 생수의 강에 물이 흘러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다시 한 번 따라 합시다.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제사는 아니라 제사는 아니라, 생수의 강이 소금으로 죽은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 강이 바다를 삼킬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강이 바다를 삼킬 수 있습니까? 강이 바다에 형제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강이 바다에 들어가면 바다에 그냥 녹아버리는 것이지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이후에 예수님을 만난 성도들의 삶, 예수님이 머리 되신 교회 가운데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주님 선포하시는 이 아침, 이 말씀이 믿어지는 이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 생명의 강수가 최악의 바다를 덮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생수의 강수가 흘러내리는 성도의 그 존재하는 삶의 현장 자체가 그 소금기만은 최악의 바다와 같은 변할 것 같지 않는 그 어려운 바다의 상황을 생수에가 깨끗한 물로 변화시키는 은혜의 시점이 될 줄로 믿습니다. 물리 생명의 강수가 재악의 바다를 덮게 하고 죽은 바다를 살아나게 하듯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주님이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이 오늘 이 아침에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당신의 입을 벌려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또 믿게 하시는 성령을 의지합시다.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의 중심에 가장 중심 부분이 변화되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전성기를 지나서 쪼그라든다. 이 쪼그라드는 게 표준화인지는 모르겠어요. 전성기를 따라서 지나가지고 내 모습을 보니까 자꾸 쪼그라더라고요. 사람이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그 시각이잖아요. 그게 끝이잖아요. 전성기를 지나서 쪼그라들어서 사망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은 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되던 일이 지금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쪼그라드는 것 같은 그런 물리적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져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을 다시 생수의 강의 역투합의 능력으로 오늘 새롭게 하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믿습니다. 성령의 역투합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강수가 죽은 바다로 흘러들어가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것이 성령 하나님의 은혜요 오늘 수십 년간 내가 예수를 믿어 와도 오늘 이 아침에 다시 회복할 은혜인 줄 믿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이루실 리을 믿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실 주님의 은혜를 믿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강수의 능력을 체험하는 이 토요, 성령 은혜의 집회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하나님의 물방울이 되어 생수의 강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흘러 내시는 생수의 강에 한 일원 되어서 그 흘러내리는 생수의 강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과 같은 사해의 바다도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심을 깨달아서 이 목마른 영혼들을 해갈하는 강력한 진원지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서 우크라이나 소녀 합창단에게도 은혜가 충만하여 주님의 손길 가운데 찬양이 그 나라의 전쟁이 그치고 평화로 살려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기쁜 자녀로, 귀하게 서로 쓰임 받는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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