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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8일)
제목: "45년을 한결같이"(부제: 믿음보고 2.0)
말씀: 민수기 14:22~26,여호수아 14:8~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오규현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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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22~26,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수아 14:8~12,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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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 귀한 찬양, 하나님께 영광 돌린 줄로 믿는다. 올해도 찬양대 한 주일도 빠지지 말고 기름부음 충만한 찬양되기를 바란다. 사랑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새초부터 새말까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보혈의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셔서 모든 마음의 소원하는 계획이 응답되기를 바란다. 저는 오늘 45주년을 한 결 같이, 부제 믿음 보고 2.0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다. 창세기 29장 20절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고 말하고 있다. 
 
*창세기29:20,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사람이 7년이란 세월이 길지 않은가? 사랑하니까 7년이 마치 하루 같이, 45년의 사랑의 교회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 결 같이, 우리는 어떻게 45년을 한결 같을 수 있는가? 이 갈렙은 아시는대로 오늘 민수기 14장 여호수아 14장에도 그렇다. 45년 전에 그 나이 40세 때에 그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갔다. 거기서 열 정탐꾼은 다 안 된다고 했다. 아낙자손들 때문에 우리는 안 된다고 우리는 그들의 밥이라고, 우리가 그들 보기에는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했다. 다 그 펙트 리포트를 했지만 있는 그대로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메뚜기 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한다. 왜? 그 열 정탐꾼은 자기들과 환경을 비교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환경을 비교했다. 여러분 BAB,,, 그러니까 믿음보고 펙트 리포트를 Faith report를 했다. 우리 교회가 수년 전부터 믿음 보고를 하지 않은가!! 그래서 얘기 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우리는 그렇게 어려운 것 보다는 믿음 보고를 하자. 그 사람들은 다 우리 교회 교인들이다. 이렇게 할 정도로 우리가 믿음 보고를 한 것이다. 올해 45주년을 맞이하면서 믿음보고 2.0을 하겠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에 8절을 보면, 
 
*여호수아 14:8,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니까, 충성, 9절에도 나온다. 충성하였은즉, 충성한다는 말은 나중에 민수기 14장 24절에 보면 
 
*민수기 14:24,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에 대해서 나는 온전히 따랐다. 내 종이고 충성스런 종이다. 우리가 충성한다는 것은 21세기 어떤 뜻인가? “우리 중에 아무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죽는 자도 없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맞는가? 사람들은 다 자기를 위해 산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 살아도 안 된다고 바울은 고백하지만 대게 세 종류이다. 자기를 위해 살고, 아니면 조금 더 고상해서 남을 위해 살고, 아니면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그래서 주를 위해서 살 때에 충성이라고 한다. 이것은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것인데 온전히 주님을 따를 때, 사실 45년을 한 결 같이 하게 되는데 여러분 사람을 위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 정도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되면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으니까 한 결 같은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한 결 같은 축복을 주시길 원한다. 
 
저는 늘 기도한다. ‘하룻밤도 꿈 없이 잠들지 말고, 하룻밤도 꿈 없이 깨지 않게 하옵소서.’ 한다. 살아서는 충성, 죽어서는 영광, 목숨보다 중요하다. 한 결 같이, 그런데 오늘은 갈렙이 역할 모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여러분의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과거보다는 사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 왜냐면 미래가 없는 현재는 그것은 현재가 아니다. 미래를 우리가 기약할 수 없는 현재는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현재에 산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스도인은 진짜 이런 45년을 한 결 같이 이러한 은혜가 있고, 주를 위해 산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이력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이력서를 쓰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과거의 이력서를 왔다 갔다 한다. 과거가 어떻다 한다. 그러나 미래의 이력서를 써야 한다. 이미 결정되어서 한 결 같이,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오늘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해서 광야의 길을 갔다. 가는 동안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중에 두 가지 어려움의 적이 있었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이 있었다. 외부의 적은 아말렉 같은 전쟁이며, 또 광야의 환경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내부의 적은 최측근이 반기를 일으킬 때이다. 그럴 때 정말 힘든 것이다.
 
여러분,
미리암과 아론을 알 것이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였고,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다. 그런데 모세가 잘 나가는 것을 보니까 누나와 형이라도 이것은 안 되나보다. 누나와 형이라도 지도력과 리더쉽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나와 형이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이 모세하고만 말씀했냐? 우리 하고도 말씀했다고 반역을 했다. 사실은 모세를 향하여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께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죽이려고 했다. 그러니까 모세가 아니라고 한다. 모세의 특기는 뭐냐면, 죽이려고 하는 것을 못 죽이게 하는 은사가 있다. 우리누나 살려 달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암을 일주일 동안 나병(癩病)이 걸리게 하시고 격리(隔離)를 시키신다. 그 격리 때문에 모든 회중들이 일주일 동안 광야에 행진을 못하고 모든 회중들이 멈추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거의 200만이나 1400만 날이 날아가 버렸다. 회중들이 일주일 동안 멈추니까 미리암과 아론의 반기로 일주일 동안 멈추니까 난리가 난 것이다. 그러니까 모세가 허탈했고, 너무나 절망했다. 힘들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 때에 모세에게 터닝 포인트를 주셨다. 그것은 민수기 12장과 13장에 나오고 있다. 13장에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냐면,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라고 하신다. 정탐꾼을 12명을 보내게 하신다. 열 정탐꾼은 환경과 자기를 비교해서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면서 믿음 보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이런 배경을 앞에 놓고 어떻게 갈렙은 끝까지 믿음보고를 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믿음보고의 요체는 무엇이며 믿음보고를 우리가 이런 45년을 한 결 같이 할 수 있도록 적용할 것이 무엇인가?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여라분, 갈렙은 오늘 본문 여호수아 14:6절을 보면
 
*여호수아 14:6,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그니스 사람은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데, 가나안 족속이다. 이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굉장히 비방하고 멸시하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열주의자이고, 차별주의자들이다. 이방인을 진짜 우습게 여긴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에 나오는 기생 라합도 이방인이다. 나중에 이스라엘 족보에도 올릴 정도로 그런 축복을 받았는데, 갈렙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다. 자기 선조와 자기 그니스 족속 여분네 아들 갈렙이다. 그 어떻게 보면 자기는 이방 출신이다. 그런데 순열주의자들 앞에서 그가 견디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참 놀랍다. 우리식으로 하면 소위 수저주의자들이다. 흙 수저, 나는 금 수저다. 등등, 정말 저는 수저주의자를 정말 싫어한다. 우리는 금수저도 아니고 흙 수저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저이다. 정말 오늘 갈렙이 한결 같은 것은 출신, 배경, 스펙, 출신 배경을 극복했다.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라고 한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했다. 자기는 이방 출신이지만 하나님의 종(從)이라고 한다. 
 
*민수기 14:24,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구약의 종이니까 뭐 서번트 라고 생각되지만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네가 내 종이라고 이렇게 호칭한 것 별로 없다. 모세에게 종이라고 했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종이라고 했다. 다윗에게 다니엘에게 엘리야에게 종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것을 알고 나중에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종의섬김을 가져야 하지만 주님이 나를 종이라고 부를 때는 이것은 사도 적 특권이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다. 우리가 한 결 같기 위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서 어벤다운이 없게 진지하게 한 결 같게 하기 위해서 마음의 소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그니스 족속 여분네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입니다.” 출생, 성별, 배경, 수저 다 극복하는 축복을 주시기를 이 한 해 동안 주시기를 소망한다.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중맘꺾- 중요한 것은 마음이 꺾이지 않는 것, 중요한 것은 마음이 꺾이지 않아야 한다. 내 수저가 어떻다.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출신성분, 두 번째로는 비교의식 가지고 질투하지 않았다. 갈렙은 대단했다. 민수기 14장에서 여호수아 보다 더 갈렙이 더 우선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쓰셔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삼았다. 그래서 40세 이 믿음 보고를 한다. 45년 동안 그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웬만하면 ‘하나님은 여호수아만 쓰시고 나는 안 쓰시나?’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 텐데,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과 비교하지 않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데 배경 때문에 약해지지 않고, 동료하고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 섭섭해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열 번이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망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낀 적도 없고 모세를 비난하는 무리들에게 낀 적도 없다. 애굽의 고기와 부추를 사모하는 그것 때문에 그들이 불평하는 그것들에 가담한 적도 없고, 금송아지 섬기는 무리들에게 속하지도 않고, 한 결 같이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붙잡고 갔다. 
 
지난 45년을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를 인도하셨다. 강남 예배당, 서초 예배당 주의 종들을 통하여 사랑의 교회를 오늘까지 붙잡아 주셨다. 45주년을 고 선대 옥한흠 목사님,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워야 한다는 목적으로 25년 동안 사역을 하시게 하시고 부족한 종이 이어받아서 그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로 온전한 사람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지난 20년을 붙잡고 왔다. 저는 놀랍다. 그리고 우리 교회 초창기부터 성도님들이 45년 동안 한 결 같이 주님을 섬겼다. 이제 45주년을 맞이하는 이 한 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갈렙의 자세로 보면, 
 
*여호수아 14:10-11,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I am still strong. still the same.~~
-85세가 되었어도 가슴이 뛰었다는 것이다. 비교의식 안 하고 불평의식 안 하고 배경 보지 않으니까 그 마음에 한 결 같이, 그때나 지금이나 강건하다는 것이며 육신은 좀 쇠할 수 있지만 마음은 늘 이러하니까 여러분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고 설레고 마음이 한 결 같으면 몸도 따라온다. 몸이 지배를 받는 것이다. 갑자기 괴로운 소리 듣고 고통당하면 마음이 캄캄해서 소화가 되는가? 마음이 괴롭고 어려울 때 소화가 잘 되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고 늘 설레이니까 몸도 마음도 같이 건강해 지는 것이다. 삼국지에 황충 장군처럼 한 결 같이, 벨런스와 균형 잡힌 건강, 그의 지성, 그의 의지, 그의 감성, 그의 행실, 그의 관계가 온전하게 균형 잡혀서 온전한 인격이 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갈렙의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가지고 이제 45주년을 우리가 믿음 보고 2.0을 보고하는 것이다. 뭐라고 고백하느냐면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이것이 믿음 보고의 2.0이다.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 믿음보고의 2.0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시리즈 주제처럼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하여 주십시오.’와 동일하다.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할 때 이것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가 막히다. 참 어려운 어떤 상황이었다. 지금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과 7년 전쟁을 하는데, 이제 막바지에 도달했는데 마지막 무얼 못했냐면, 지금 갈렙이 요구하는 이 산지를 아직까지 점령을 못했다. 그 산지는 바로 헤브론 산지였다. 이 헤브론은 아주 구원역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직접적으로 말씀한 것은 창세기 13장 14-15절이다. 
 
*창세기 13:14-15,
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저기에서 크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땅을 주시고 하는 마음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헤브론 산지이다. 이 헤브론 산지는 예루살렘, 베들레헴, 그 다음은 갈보리 , 감란 산, 베다니가 포함되어 있다. 소위 구원역사를 이루는 핵심 지역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난 곳이고 아마 갈렙에게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주셔서 구원 역사에 무언가 아낙 자손들 때문에 이 땅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갈렙은 여호수아를 끝까지 돕는다. 한결 같으니까. 45년을 한 결 같으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갈렙을 통하여 산지를 주시게 된 것이다. 믿음보고 2.0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85세가 되어가지고 우리가 이런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다면 우리 생애가 2.0 생애가 될 줄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신앙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야 한다. 믿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야 할 줄로 믿는다. 
 
신앙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야 한다.
믿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야 한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기를 바란다. 갈렙처럼 영적으로 더 강해져야 하고 더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이 더 생겨야 한다. 더 신앙이 깊어져야 한다. 육신적으로 어쩔 수 없지만 영적으로는 더 강해져야 한다. 어느 단체든지 그렇다. 처음에는 믿음의 모험을 한다. 30-40년이 지나면 대부분이 약해진다. 서서히 관료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굳어지면 화석화가 되어서 어느 날 다 깨지고 장례식이 된다. 그러나 갈렙은 그러지 않았다. 지난 45년 전에 가졌던 믿음 보고 1.0을 지금 믿음보고 2.0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이다. 주님 이 어려운 ‘이 헤브론 산지를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한다. 어떤 갈렙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개인 가정에도 이 말씀이 접목되기를 바란다. 이 말씀이 그대로 녹아지기를 바란다. 
 
적용
공동회 때문에 좀 일찍 마치겠다. 갈렙은 45년 동안 한 결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충성된 종이라고 두 번이나 불리고 갈렙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배경을 비관하지 않고 또 여호수아와 비교하지 아니하고 한 결 같이 그리고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떤 식으로 적용하면 되는가? 갈렙은 남들이 불평 불만할 때, 아까 수많은 과정에서 불평 불만할 때 그런 환경들, 그런 사건이 많았지만 불평불만이 없이 믿음으로 충성되게 일관되게 사니까 믿음보고 2.0을 주님 앞에 올려드린 줄 믿는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도 불평불만하지 않겠다. 누가 이렇게 말했다.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것을 걸리는 것은 60년이 걸렸다고 남들의 말을 경청하고 침묵하는 데 6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평불만을 하지 않으려면 몇 년이 걸려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셔서 불평불만은 지금부터 안 할 수도 있게 된다. 연말에 글을 받았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 
 
“목사님, 제 남은 인생은 절대로 반드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겠습니다.”라고 해서 그 글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젊을 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지면 평생 얼마나 복될까? 믿음보고 2.0. 3.0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 제 남은 인생을 절대로 반드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젊을 때부터 이런 마음으로 살면 여러분 믿음 보고 2.0, 3.0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인제 선택을 해야 한다. 불평하는 할매, 할배가 되지 말고 죽지 말고 피니쉬 웰(finishing well)이 아닌 피니쉬 페일이다. 다시 말하면 폭망이 된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나와 함께 하셔서 불평불만 보고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의 보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약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우리 세대가 평생 믿음보고 2.0이 되어서 배경도 뛰어 넘고 비교도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극복하고 에너지를 주는 인생이 되어서 어둠을 밝히고 아무리 힘들어도 귀한 21세기의 갈렙이 되어 이 산지를 달라고 믿음의 보고를 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45년을 맞이하면서 갈렙처럼 믿음보고를 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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