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a

주일예배(주후 2021년 6월 20일)
제목: ''증인(證人)의 사명(使命)을 통한 온전함''
말씀: 사도행전 1:6~8
기도: 박요셉 부목사님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
 
사도행전 1:6~8,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세상을 향한 모든 마음의 창문들을 닫아 내리고, 모든 시선을 주님께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삶과 생애 가운데, 우리 현장가운데 일하심을 확신한다. 오늘은 288의 형제, 자매들이 학습과 입교와 세례를 받게 된다. 코로나 펜데믹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귀한 세례식을 하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오늘 증인의 사명을 통한 온전함은 선교 적 삶을 통한 온전함이다. 세례식 때에 설교가 좀 어렵겠지만 헌신된 내용의 설교이니 제대로 된 메시지를 받게 되심을 축하한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역사관을 갖고 하나님 앞에 서길 바란다. 예수님 처음 믿을 때부터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처음 믿을 때부터 성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미리 보고할 영적 안목과 전투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미리 준비하는 영적 안목과 전투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그 역사관과 내 삶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대부분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의 교육받은 이런 강남 같은 지역 출신이 아닌 갈릴리 촌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시각과 프레임이 무엇이냐면,

*사도행전 2:7절을 보면,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지역주의 대한 역사관이 있었다. 지역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사도행전 4:13,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인 제자들이 강력히 말씀을 전하니까 저들은 학문 없는 범인이 아니였다고 한다. .소위 엘리트 주의의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시자 비포와 에프터가 완전히 달라졌다. 특별히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졌으며 지역주의 편견이 뛰어 넘고, 그 출신지역으로 귀 죽지 않았다. 엘리트주의의 편견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대단한 사람들 앞에서도 귀 죽지 않았다. 그래서 그 귀 죽지 않는 증거가 무엇이냐면,

*사도행전 2:32절에 나와 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이 모든 일에 증인이로다. 한다. 증인이라는 단어는 법정용어이며, 여기에는 자기 삶을 거는 것이다.
편견이나 엘리트주의라든지, 지역, 출신 등을 뛰어 넘는 것이다.
 

I. 모든 온전한 성도는 증인(證人)의 사명(使命)을 받은 역사관(歷史觀)을 가지고 있다.
 
-온전한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프레임, 편견 등을 처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사도행전 전체 주제 핵심인 우리가 이 모든 일에 증인이다. 그리고 누가복음을 쓴 사람은 누가이다. 사도행전 1장, 2장은 누가복음 24장은 사도행전의 연속이다. 마지막 부분에 보면,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말하고 있다. 주님의 그 소명을 받아서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24:48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3년 동안 예수님께 훈련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성령의 인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편견과 지역을 그리고 엘리트주의를 다 뛰어 넘는 하나의 어떤 의식의 혁명이다. 사람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사고가 바뀌면 사고의 체계가 바뀌어야 되는데 사고 체계의 새판을 까는 패러다임 시트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 패러다임 시트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한 번 내가 새로운 꿈을 꾸고자 한 번 해보자는 것은 사치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증인의 사명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이다. 이런 역사관을 갖게 되면 우리는 모든 잘못된 것으로부터 뛰어 넘을 수 있다. 복음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전체를 위해 다 부족해도 젊을 때부터, 한 가지 이 세상 끝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의 증인들이다. 이것만 잘 되면 지혜와 통찰력, 사람관계, 다 물질도 채우시고 모두가 형통인 것이다.
 
오늘 온전함 시리즈로 간절함으로 은혜를 받아야 한다. 처음부터 세례받는 형제 자매들이 증인의 사명을 하나님이 주시면,,, 그럼 예수님의 증인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증인(말투스)-헬라어 => 순교자(martyr))-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면 죽음도 무릎 써야 한다는 말이다.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바울이 그의 한 생에 사명을 하나님의 복음을 증언할 증인됨을 마치려면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생명을 걸었다. 우리는 부끄럽다. 가지 중심으로 다들 어리버리하다. 생명은커녕 이익 왔다갔 다 한다.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의 증인은 같은 말이다. 순교의 축복이 엄청난 축복이다. 순교는 특별한 축복이며 복락이다. 그런 증인에는 삶의 증거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짐 엘리엇이라는 청년은 에콰도르 출신의 순교자였다.
 
▷“하나님, 마른 막대기 같은 제 삶에 불을 붙이사 주님을 위해 온전히 소명하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 제 삶은 주님의 것이 오니 다 태워주소서. 저를 주의 연료 삼아, 하나님의 불꽃이 되게 하소서.”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침된 영광을 가져다주시는 영광의 왕이여, 어떤 고난과 치욕과 손실 앞에서도 우리가 뒤로 물러나지 말게 하옵소서.” - 짐 엘리엇-

-사역을 위해 목숨을 거는가? 이런 고백이 삶 가운데 뿜어져 나오길 바란다. 증인된다는 것은 선교사, 목사, 어떤 특별한 전도자만이 아닌, 평범한 우리도 매일의 삶에서 나타나야 한다. 증인의 삶이 나타나야 한다. 이런 삶에 비포와 에프터가 나타나야 한다. 오늘 세례자들은 서약을 할 것이다. 증인이라는 말은 법정용어이다. 서약에서 있듯이 세레, 입교, 학습자는 그래서 성도는 안목과 전투력이 있어야 한다.
 
▷증인의 삶의 범위는 무엇인가?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우리는 지역적으로 이것을 무엇 때문에 증인이 되어야 하고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예루살렘- 예수님을 못 박고 가시관을 씌우고 핍박한 곳이다. 새 역사.
*유대- 왜 증인이 되어야 하는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곳이다. 로마 식민지여서 힘든 곳이었다.
*사마리아-서로 상종도 하지 않던 곳이다. 그 땅도 밟기 싫어서 일부러 멀리 우회하여 다녔다. 민족적 인종의 편견을 뛰어 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단순한 지역이 아닌 마음의 지경이 포함된다.
*이방인- 이것은 종교적인 편견을 뛰어 넘는 것이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단순한 지역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마음의 지경이 포함된다.
가이사의 집안까지 복음의 능력이 일어난 것이다. 선포했다. 대부분 노예들이 크리스쳔이었다. 모든 것을 뛰어넘은 것이다. 지역적 한계와 계층을 뛰어 넘었다. 사회적 계층을 넘고, 글로벌 역사관을 갖는 것이다.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나에게 상처주고 힘들게 한 사람들.
-유대인-마음에 안 드는 사람,
-사마리아인-내가 무시하는 사람.
-땅 끝까지- 나와 상관없는 사람.
지역, 사회계층 한계를 넘어 그래서 가이사의 집안까지 복음의 능력이 임했다.
노예들의 복음 증거는 모든 것을 뛰어 넘은 것이다.
 첫 번째로 증인 된다는 것은 모든 한계를 뛰어 넘고 복음의 능력 안에서 증인의 사명이 선교적 사명의 삶으로 연결되어 있다.
 
 
II. 그러면, 온전한 선교란 무엇인가?
 
*신명기 10:14,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모든 인류의 창조에 다 하나님 것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시편 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신명기와 시편의 이 말씀을 재해석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오늘 우리가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이 사도행전 1;8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다시 하나님께 되돌리는 역사라고 말한다. 우리는 단순히 가는 선교만이 아니고, 땅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선교는 반드시 가는 선교 보내는 선교가 있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다시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께 되돌리는 것이다. 6.25때에 서울을 수복하듯이, 하나님의 창조를 수복하는 것이다. 선교는 지역이나 계층을 다 뛰어 넘는 것이다.
우리 교회 주일학교 교육정책을 선교정책을 포함한다는 것은 세상 가치관이나 문화를 하나님께 되돌리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가는 선교만이 아니라 사는 선교이다. 방탄소년단(BTS)-‘봄날’을 들어보니 괜찮았다. 그런데 그런 노래를 부른다고 봄날이 오는가? 너무 오염된 우리가 정말 집중해서 사고체계를 바꾸어서 복음의 증인으로 사용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쁜 자녀로 사는 것이다.

 
▷선교 ㅡ창조의 질서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가는 선교만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절반만 수용하는 것이다.
 
아프리카도 다 가라고 하더니 본인들은 안가더라. 우리가 실제로 갈 수가 없듯이 우리가 살아내야 한다. 사도행전 성령을 받을 때에, 그래서 증인의 삶을 위해 수복시키기 위해서 사는 선교를 하니 하나님 나라가 회복된다.
 
※로잔 선교회 오천 명이 모인 곳이다. 케이프타운 ㅡ세계선교회에서 첫 시간에 한국교회가 모두 함께 헌신을 했더니 첫 시간에 인도하라고 했다. 우리교회 손경주라는 학생을 데리고 갔다. 북한의 고위층 딸이었다. 탈북 했는데 그녀는 사명을 받은 뒤에 순교했다. 네덜란드 로잔대회는 17년만에 케이프타운에서 했다. 케이프타운에서 순교자 딸을 위해 그녀의 아버지가 간증했다.
 
우리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공간적, 시간적, 초자연적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이제는 전천후 선교가 되어야 한다. 때를 얻든지 안 얻든지, 온 오프라인의 경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온전한 선교로 하나님 역사하길 기도한다. 영적인 전 방위적으로 증인의 사명을 가지고 우리 교회에 역사하시길 소망한다.
 
 
지역적, 영적한계를 깨뜨리고, 슬픔을 당한 사람도 이 가운데 많겠지만, 어떤 분들은 상처로 힘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만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는가?
내 생각, 내가정, 내 자신, 내 이기주의를 원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1:6~7,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내가 언제 잘 되냐고 묻기 전에 네 삶을 위해서 살지 말라고, 증인된 사명을 감당 하냐고 하신다. 내 것만이 아닌 온전함의 고봉으로 가야한다. 성령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지역의 한계, 영적인 한계, 계층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내가 능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에게 기름 부어주시길 소원해야 한다. 오늘 이 능력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길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기를 간구한다.
 
우리는 세익스피어처럼 글을 쓰지 못하지만, 세익스피어의 천재성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도 글을 쓸 수 있다. 음악인 모차르트처럼 그 음악이 식물도 살리는데 그 천재성이 없지만, 우리에게 주시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증인의 사명은 내 자신의 의지적인 것이 아니라, 증인의 사명 자는 내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명이 나를 이끌어 주는 삶을 바라는 것이다. 이 사명이 우리를 끌고 나가길 기도해야 한다. 사명의 말이 마차를 끌어야 한다. Why not now!! 왜 지금이 아닌가? 라고 묻는다. 증인의 삶을 실천하고자 500명이 전력투구하여 120명만 남았다. 오늘 이 자리가 아니면 어디로 가야하는가?
 
♣요약
우리는 증인의 사명을 가지고 지역, 계층의 편견을 뛰어넘어 생명을 거는 복음의 헌신을 실천해야 한다. 선교는 내 자신이 의지적으로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고상한 윤리가 아니며 증인의 사명자는 내가 사명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명이 나를 이끌어 주는 대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가는 선교와 사는 선교를 위해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시길 기도하며, 전천후 증인으로 사용되어야 함을 깨달아서 이 땅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헌신하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신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