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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6월 13일)
제목: ''행실의 온전함''
말씀: 고린도후서 5:8~10
기도: 안승훈 부목사님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찬양대: 영광 찬양대(오케스트라)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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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8~10,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오늘 주일 30분 전부터 성도들이 기대하면서 예배당에 차니 터질듯한 기대가 있게 된다. 한 명도 주님이 그냥 돌려보내지 말아달라고 소원한다. 복음의 깊은 신비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의 은혜가 가득하며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길 소망한다. 지금 16번째 ‘행실의 온전함’인데 실체가 나타나야 하는데, 텔레이오스, 가장 큰 관심사는 온전함 시리즈를 통해 before, afterrk 분명하게 달라지는 삶이 되길 바란다. 백신을 맞았는데 뭔가 달라졌다. 백신 맞기 전과 후의 변화가 있다. 질병관리청에서 코로나 19를 예방접종 인증서를 보내왔다. 그리고 조심하는 문자가 오기도 한다. 이것은 대한민국 좋은 나라이다. 차이는 우선 홀가분해졌다. 백신을 맞은 후에 이전과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첫째는 홀가분해졌다. 그 다음은 좀 자유함이 생겼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영적백신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그러면 우리 교우들이 영적인 자유함과 짐을 벗고 하는 이런 영적 백신이 무엇이며, 교우들이 무장하고 확보해야 할 영적백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지난 주간 제자훈련 지도자, 칼 세미나 230여명의 18개 교단, 전 세계 줌으로 들어온 분들과 참 뜻있게 잘했다. 반응을 보면 목회의 본질에 구체적으로 사역을 할 만한 무장을 할만한 반응들이 있었다. 그 제자훈련 세미나 때보다 마음 속에 확증하는 것 하나는 사역의 수많은 비바람과 폭우와 그리고 많은 과정들이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일에 우선순위를 하면 절망, 좌절 실망을 할 것도 없다. 그게 우리 교회는 함께 하는 분들은 영적백신이 된 것이다. 그러면 사랑의 성도들이 코로나 펜데믹 시기에 본당에서 이렇게 사모하면서 예배와 방송으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모두,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무장하게 하고 자유하게 하고, 자신을 추스르게 하는 영적 백신은 무엇인가? 그걸 오늘 온전함 시리즈를 통해서 이 말씀은 행실의 온전함은 시리즈 중에 클라이맥스 중에 하나다.

 
영적 백신이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 이 내용은 우리가 매주 토요일마다 암송을 하는데 마지막 72구절, 행실에 온전함에 나오는 본문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울의 일생의 간절함은 이만하면 됐으니 주님을 만나고 함께 있는 것이 소원이다. 이제 천국에 은혜를 누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오매불망 사모하는 것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영광의 궁전에 입성하는 것이다. 불 마차, 독수리의 날개, 천국의 황금 문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바울처럼 신실한 자들이 주님 만나는 것이 소원인데, 이 10절에 보면,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 구절을 우리가 암송하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소원이지만, 이 땅에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다 마치고 주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까지 바울의 마음의 소원이 뭐냐면, 어떻게 보면 상당히 우리를 긴장시키는 말씀이다. 우리가 천국 가는 소망이 있고 오매불망 사모하며 주님 함께 하는 것이 소원이지만, 주님이 주신 사명을 안고, 이 땅에서 주님 부르실 때까지 살아가야 하는데, 그 살아갈 때에 우리를 긴장케 하고 우리를 좀 표준을 정하고, 삶을 누수하지 아니하고 집중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 모두가 심판대 앞데 선다는 것이다. 행위의 심판, 선악 간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심판대는 헬라어로 베마이다(Bema).=심판대석이다.
 
이 심판은 신학적으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두 가지의 심판이 있다.
 
①백보자 심판(영원한 형벌).
-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는 것,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영원한 형벌, 지옥을 말한다.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없는 백보자 심판은 우리의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고 그 구원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예수님의 의의로 가는 것이다. 구원을 얻는 심판이기에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는 이미 통과한 줄로 확신한다. 통과했는데 문제는 우리의 님은 생애동안 감당할 몫이 있는데 우리 모두가 다 선악, 행한 행위, 우리가 살아온 여정, 모든 것들을 가지고 행함 심판이 따른다는 것이다. 행함의 심판.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교회와 우리 문제 중의 하나가 이 구원에 심판에 대해서 행위 론이 된다고 하고 그다음에 선악간의 심판에 관해서 상급 심판이다.

 
②구원의 심판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보혈로 구원 받는 것이다. 소위 구원 심판은 우리는 결정된 것이고, 그 모든 것들의 관해서는 이미 우리는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우리 앞에 남은 선악간에 심판대, 그 남은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위 행실의 온전함은, 세상에서 말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세상에서 말하는 윤리도덕,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이런 차원이 아니라 복음의 깊은 신비 안에서 우리가 선악 간에 우리의 삶이 행위의 심판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이다. 이것을 집중해야 한다. 9절에 참고 되어 있으니 보자.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에, 선악 간에 우리의 사명대로 삶의 모든 여정들을 하나님 앞에서 정리 할 때에, 그걸 위하여 우리가 거룩한 긴장을 하고 부르심에 상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데, 그 사이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면,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주님을 사랑할까? 어떻게 하면 주님께 순종을 할까? 오늘도 이 예배하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주님께 어떻게 하면 영광 돌릴까를 위해 사모한다. How can we gIory for him.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이것이 진정 예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좋은 시금석(試金石)이라고 말할 수 다. 내가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체크할 수 있는 하나의 테스트 용지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내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알려면, 내가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 증거가 된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천국의 소망을 갖고 있다 해도, 다 구원받은 증거 중에 증거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남은 생애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이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사랑할까? 어떻게 하면 주님께 순종을 할까? 이것이 신앙의 중요한 본질이다. 돌아온 탕자가, 허랑방탕하고 자기 맘대로 살다가 아버지 집에 가면 그래도 이 거지 생활보다는 낫겠다하며 마지막 삶에서 아버지 앞에 갔다. 아버지가 그 더러운 탕자를 아버지는 뭐라 하시지 않고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근사한 잔치를 했다. 나는 이런 아들의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부끄러워한다. 나를 일꾼으로 써 달라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시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아버지 마음을 너무 몰랐구나 하면서 깊이 각성을 했을 것이다.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마음에 잘 듣고 순종하고 사랑할까를 깨닫는다. 바울은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상급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것은 서로 은혜의 선순환이다.

 
I.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망.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과 상급에 대한 거룩한 동기’가 은혜의 선순환이 된다.
-이게 비포와 에프터의 중요한 것이며, 7월 11일 전교우가 성도 서임 식을 할 것이다.마치 취임을 하는 것처럼, 내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고백하는 날이 될 것이다.
 
 
전교인들 서임 식을 하겠다. 이것을 고백하게 하겠다. 다 세상 것은 우수마발(牛溲馬勃-소와 말의 배설물 하찮고 형편없는 것)인 것이다. 흡족한 자식도 다 소용없다. 인간과의 관계도 상처도 받는다. 그것은 다 기타 등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문제가 해결되면, 환경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독립할 수 있고, 비포와 에프터가 분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제는 천국의 소망에 살았다가 아닌 남은 생애에 사명 주신 대로 주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 것인가를 원해야 한다.

 
II. 신학적 동기(성경적 근거).

-이 고린도 교회에 말씀을 받는 성도들은 좀 복잡했다. 책망 받을 일등, 문제도 많았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 5장 뒷부분을 말씀을 하면서 중요한 말씀을 전한다. 이제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지만 너희들은 삶이 너무 복잡하고 문제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의 남은 생애가 중요한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면서. 중요한 테스트가 있다 한다. 사람에게는 공적(work), 업적이란 것이 있다며, 그 업적이 불로써 테스를 할 것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다 태워지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영원히 남는다고 한다. 너희들이 구원받은 자라고 하더라도 풀이나 짚같이 타서 없어지면 안 되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같이 영원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전 3:12-13,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고전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 예수님이 내 구주로 고백하는 자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의 공적, 업적, 그이 행한 삶의 모든 발자취가 불에 타 없어지지 않으면 상을 받고, 그의 삶의 발자취가 나무나 풀이나 불에 태우면 15절처럼 불에 태우면, 해를 받으며,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들은 이야기인데, 불가운데 받은 구원만 받지 말라고 했다. 불에 타서 없어질 것은 하지 말라했다. 천국의 개털 모자, 의로운 면류관이 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주님을 사랑할까? 이며, 우리가 남은 인생을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불에 타서 없어질 나무나, 풀이나 짚이나, 그런 것처럼 공적이 되지 말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실 것이다. 유치한 상급이 아니다.
 
자식이 칭찬 받으려고 하는 것은 잘하는 것인가 아닌가? 자식이 부모에게 기쁨 되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것은 잘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칭찬을 받아야 한다.

바울은 고전 3:8절에 보면,

*고전 3:8,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그래서 성경에 이 상급을 비유를 말씀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누가복음 19장에 보자. 열문화의 비유가 나온다. 이 문화의 비유를 위하여 정리하면, 선악 간에 심판은 유죄, 무죄의 심판이 없고, 소위 심판에 대한 것은 백보자 문제는 해결이 될 것이다. 이제는 남은 선악 간에 공적 심판을 받는 것이다. 한 문화를 가지고 열 문화를 남긴 사람에게 주님께서 네게 열 고을을 맡기신다고 하신다. 또 한 문화를 가지고 다섯 문화를 남긴 자에게는 다섯 고을을 맡긴다 하신다. 그런데 한 문화를 수건에 싸가지고 그대로 가지고 왔다. 그 사람은 책망 받고, 그것을 빼앗아 열 문화에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하신다. 이것은 달란트 비유와 좀 다르다. 오늘 우리의 삶에 우리의 재능, 우리의 시간, 하나님 앞에서 기쁘시게 준비되길 바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나? 이미 구원 받은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그것 때문에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다.
 
①창조의 원리 -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 유명한 목적 있는 삶, 이미 구원받은 목적 있는 삶이 무어냐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 우리가 구원 받은 자이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데 주님 안에서 선한 일을 할 때이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은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이다.
 
②영광의 원리.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영광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께 올려 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공적 사상과 다르다. 이것은 피의 복음의 은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께 영광 되는 것과 착한 행실의 영광의 대상이 사람이 아닌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③열매의 원리.
*골로새서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 구원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 우리의 삶에 행실을 통하여 선한 열매를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며, 상급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며 이것이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삼을 변개함이 없도록 영적 백신이 되길 소망한다.

 
III. 신앙의 동기.
- 청년시절부터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와 같은 믿음의 동지들과 함께 나누었던 마음에 간절함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해 왔는데, 상급에 대한 거룩한 동기가 있었다. 지금 상급을 이야기 하면 인문학, 지성적으로 대단한 인물들은 상급을 폄하하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어떤 신학자들이 상급을 희석시키는 분들이 있다.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이 상급은 도덕윤리나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을 뛰어넘는다고 했듯이,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소원하는 사람은 마음에 상급에 대한 갈망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상급에 대한 부르심에 대한 말씀을 보자.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 부모는 자녀가 상 받을 짓을 하면 좋은 것이다. 너무 마음이 기쁜 것이며 만족이 되고 감사가 되고 축복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최고의 상을 받으면 다른 자녀의 부모 앞에서 표정관리를 한다. 상상해보면 부모나 자녀도 좋은 것이다.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은 순전한 신앙으로서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다. 이것이 타종교의 공로사상과 비교되며, 복음의 사상, 창조사상, 열매사상인 줄 믿어야 한다. 주보를 보면 오늘 드린 주보에 보면 나머지 주님이 주실 상급을 요약을 해 놓았으니 참고하라.
 
 
Ⅳ. 주님 주신 면류관 상급.(주보)
 
①신앙의 경주자에게 주시는 썩지 않을 -승리의 면류관(고전 9:24-27)
-온전함의 고봉을 향한 신앙의 여정 가운데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추스르는 자가 받는 면류관.
 
②순교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계 2:10)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예수님께서 죽을 만큼 충성한 자, 순교자적 삶을 사는 자가 받는 면류관.
 
③목자에게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주님께서 맡기신 영혼을 목자의 심정으로 섬기는 자가 받는 면류관.
 
➃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딤후 4:6-8)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전심으로 사모하는 자,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진 자가 받는 면류관.
 
⑤복음 전도자에게 주시는 -자랑의 면류관(살전 2:19-20)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한 자가 받는 면류관.
 
 
요약
우리 인생 졸업식인 심판대에서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여야 하며, 주님을 사모하여 우리가 승리와 생명과 영광과 의와 자랑의 면류관을 부름 받는 상급으로 받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매 순간마다 ‘행실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창조의 원리, 영광의 원리, 열매의 원리를 깨달아서 비포와 에프터가 확증되는 삶으로 변화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실천 있는 자로서, 구원을 받고 행위에 따라 보상 받는 자가 되고, 영적으로 백신을 맞아야 한다. 승리자는 생명을 얻고, 영광 의자(자랑)에 앉게 될 것이다.
 
 
-이 장막을 벗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그들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더 기꺼이 원하게 된다.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 눈을 감고 영광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눈뜨게 하기 위해서이다. 믿음은 장차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변할 것이다. 바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의무를 수행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추론, 하늘나라에 기초를 둔 소망은 결코 나태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9절의 '우리는 힘쓰노라'가 그것을 보여 준다. 이렇게 사도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썼다. 즉 그것은 최선을 다해서 힘썼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다가올 심판에 대한 숙고로 더욱 격려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불신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고, 성도들은 구원을 얻고 자신의 행위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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