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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예배(주후 2021년 5월 19일) 제목: "바른 관계의 성공" 말씀: 학개 2:10-19 설교자: 강경식 부목사님 ------------------------------------------------- 학개 2:10~19, 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은혜를 사모하며 안아주심의 본당에서와 온라인 생중계로 수요저녁기도회로 참여한 모든 성도들을 주 안에서 환영하고 축복한다. 이 기도회에 풍성한 기쁨과 은혜를 주시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대한 전적 의탁으로 하나님의 부요함을 누리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많은 사건들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보면 사건과 사고가 많음에 우리 사회가 많은 문제가 있음을 보게 되는데 그중에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가 참 많음을 보게 된다. 인간성 상실에 대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목적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도구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돈 때문에 친구나 친지들, 심지어는 부모, 친척, 형제, 여러 관계들 속에서도 서로 의를 상해서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있다. 돈 때문에 그런 경우가 거의 그렇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서 해외의 어떤 나라에서는 슈퍼마켓에서 휴지를 두고 싸움으로 칼부림도 나고 있다. 이렇게 소유 때문에 많은 사람이 비인간화 되고 있다. 참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마음이 참 착잡하다. ◈19후반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철학자 '마틴부버'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쓴 책에 현대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나와 너’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는 관계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져 있다. 그 내용은 세상에는 두 가지의 관계만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나와 너, 하나는 나와 그것의 관계이다. *나와 너=> 나와 너 사이에 상호 인격관계이다. 인격으로서 자신을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기 때문에 이 관계는 참다운 대화가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 공동체를 ‘인격 공동체’라고 한다. 반면에 *나와 그것=> 다른 사람을 그것, 비인격적 관계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다른 사람을 나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다. 오늘날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인간성의 상실 때문이다. 바로 인격과 인격의 관계 속에서 서로 사귐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비인격화해서 그것으로 전락’을 해버리기 때문에 온전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온전히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기 때문에 그것은 오직 독백만 이루어지는 집단적 타협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는 참으로 인간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 사회를 보면 나와 그것에 관계와, 나와 너의 관계가 전체적으로 떨어져있지 않다. 이 사회를 보면, 다 존재한다. 모든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그것의 관계가 전 관계를 지배를 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와 너의 관계였는데 이제는 점점 나와 그것의 관계로 변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는 것을 정말 슬플 밖에 없다. -우리는 어떠한가? 나와 가족과의 관계, 또한 나와 친구, 나와 성도들과의 관계, 그들과의 관계가 어떠한가? 우리들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와 그것의 관계인가? 아니면 나와 영원한 너의 관계인가? 예를 들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내가 바라고 생각하는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그 기도만 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또한 평소에 하나님을 안 찾다가 내 문제가 생기고 다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을 때,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떤 관계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스스로 해보라. 성경에서 나와 너의 관계를 가장 잘 실천한 분이 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그 어떠한 자를 구별이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죄인의 친구, 약자의 친구, 연약한 자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예수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약강, 그 어떠한 형편과 사정에도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고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 모두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다. 이런 관계의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 볼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결단하기를 소망한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19절 하반부에 나와 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한다. 좋은 의미인데 유다 백성이 그 전에는 어떠했기에 오늘부터는 복을 받겠다 라고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인가? ▷본분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살펴보자. 배경은 성경에서 바사, 즉 페르시아라고 하는데, 그 일대, 원년 그 초대 왕인 고레스 왕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칙령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한다. 그래서 이듬해에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해서 유다의 제 1차 귀향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때에 귀환하는 그룹에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기록한 학개 선지자가 포함되어 있다. 성전재건은 BC 538년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때에 이 유대의 귀환이 시작되었고, 진행되다가, 이 고레스 왕이 죽은 이후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모함으로 인해서 그 성전 건축(재건)이 멈추게 된다. 그것이 16년간이나 멈추었다. BC520년까지 그대로 방치가 된 것이다. 그 후 페르시아 4대왕인 다리오 왕이 2년에 선지자 학개, 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해서 성전재건이 다시 시작된다. 그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가 다시 시작이 된다. 심지어는 백성들 가운데서도 아직도 하나님께서 짓게 하는 것에 대해서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핑계를 대든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지 못한 사람들은 방해를 한 것이었다. 아직 성전을 재건할 때가 아니었다라고 핑계를 대면서 성전을 내버려둔 백성들을 향하여 학개 선지자는 책망하며 말한다. *학개 1:4-5절에 보면,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여기서 판벽한 집은 벽에다 판자나 나무를 덧대어 꾸민 집을 말한다. 이렇게 자신의 집을 꾸민다는 것은 그만큼의 여유는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하였는데 자기들 집은 화려하게 꾸몄다는 것을 말한다. 당시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지 못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건축을 못할 만큼 어려웠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때가 아직 아닌 것도 아니다. 또한 주변 정치적 여건이 그것을 막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결국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하였다는 것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관계가 소홀(召忽)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침 마틴구고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다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가 ‘나와 그것’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일을 하셨다. *학개 1:1절을 보면,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어떻게 일을 하셨는가? 씨앗을 부렸어도 그 수확이 너무 적다. 먹었는데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만족이 없다.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일을 하고 돈 모았는데도, 그 돈이 쌓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놓이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 그 자신을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셨는데, 자기 자신을 살피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학개 1:7절에 보면,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유다 백성들이 땅에서 곡물과 포도주의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한 모든 수고에서 한재(旱災)가 들었다는 것이다. 이 한재는 가뭄을 이야기 한다. 결국은 모든 수확(收穫)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가뭄을 들게 하는 것은 누구냐고 성경에서 묻는다. 11절을 보면 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학개 1:9절에 보면,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와 그것의 관계로 생각을 했기에 그들은 자기 죄를 부르는 데에만 집중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교훈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원하시지만, 그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지 않고 비인격적인 관계를 이루게 되면 하나님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런 우리의 참 신인 하나님을 일깨우시기 위해 나와 ‘그것의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로 나아가 ‘나와 영원한 관계’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삶에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교훈을 통해서 그들이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고자 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은 개입하신다. 하나님은 나와 그것의 관계로 삼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면, 또한 하나님을 자아실현의 대상자로만 생각하고, 그러한 필요로만 채워주시는 분으로만 내가 대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올바르게 맺도록 우리의 삶의 개입하시고, 우리를 주님의 따뜻한 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나와 너의 관계’를 위해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다. 지금은 스룹바벨 성전이 터를 닦고, 막 성전을 짓기 시작하는 보잘 것 없고 이전의 성전에 비해서 초라할 것이다. 비록 인간적인 눈으로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성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함께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영광스럽다고 말씀을 하셨다. *학개 2:3-4절에 보면,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 2:9절에 보면,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보다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성전은 본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는 곳이 영광스러운 성전이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우리의 삶이 스룹바벨 성전처럼 겉으로 보기에 초라해 보이고 현실적인 여건이 아무리 암담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더 이상 염려하거나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을 누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복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보문은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4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오늘 본문은 3번째 받은 말씀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아직 성전이 완공되려면 4년 6개월 정도가 남아있을 시점이었다. 그동안 성전 건축을 중단한 채, 방치했던 유다 백성들의 죄, 그 성격을 설명하고 있고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그 이후에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이전에 성전 재건을 시작했기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예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성전재건의 관심을 갖고 성전재건을 시작한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신앙을 점검하고 목자의 심정으로 유다 백성을 격려하고 계신다.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의 목자의 심정을 느끼는 그런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두 가지를 질문하고 그 대답을 들으시면서 백성들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두 가지 질문, 첫째는 거룩한 것, 둘째는 부정한 것에 대한 질문이다. 첫째의 질문은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기름이나 다른 식물에 닿았다고 해서 그 음식들이 거룩해 지는가? -성경에는 대답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 12절에 보면,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한한 후에 종교적 의식을 중요시하여 그것을 열심히 행했지만, 그것만으론 그것만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여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배의식을 거룩하게 여기는 자세는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를 때에 가능하다. 그것도 하나님의 바른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한데,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질문은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게 된 자가 다른 것들을 만지면 어떻게 되겠느냐? -성경에는 그 대답을 부정하여 진다고 대답하고 있다. *13절에 보면,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어린 아이가 밖에서 진흙탕에서 손을 담그고 손에다가 잔뜩 그 진흙을 묻힌 다음에 그 손을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다 손으로 만지고 다닌다면 그 집은 어떠하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학개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같다고 말하고 있다. *14절 보면,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유다 백성이 더러워진 손으로 아무리 많은 재물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 제단에 와서 예배에 참여한다고 해도 그것은 소용도 없고 가증스럽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계실까? 본문 15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5절에 보면,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유다 백성은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놓이지 아니할 때에, 아직 터만 닦아 놓았고, 또 하나님의 성전보다 자신의 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평안과 안녕을 추구할 때에 그 때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아직 터는 닦여 있기만 한데 아직도 공사는 이제 막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것은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의 평안과 안녕, 집을 닦고 또 자기의 배를 채우는 데에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의 자아실현을 하기 위한 데에만 신경을 써서 하나님의 관계가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닌 ‘나와 그것에 관계’로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런 관계가 어땠을까를 본다. *16절에 보면, 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자신들이 한 모든 수고에 대한 열매들이 제대로 얻지 못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곡식을 기대했는데, 실제적로 수확을 해보니 절반 밖에 되지 안 되었다는 것이다. 포도주도 절반도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겠는가? 그것은 유다 백성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유다 백성들이 복을 받고 열매가 풍성한 삶이되기를 바라셨는데,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닌 나와 그것의 관계로 변질되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직접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유다 백성의 수고에 대한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게 하셨던 것이다. 유다 백서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위하는 길이 자기 배를 채우고 자신의 집을 챙기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위하는 것과는 점점 멀어져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수고했던 열매가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를 원하셨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개입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고에 대한 열매가 없게 함으로써 그들 자신들 돌아보게 하셨다. 하나님의 관계에 회복을 생각하게 하셨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에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좋은 성과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못할 때가 있다. 그 이유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까닭 없이 잘 안될 때, 왜 이렇게 안 되는 것인가? 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지 믿어야 한다. ▷우리가 안 좋은 일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먼저 우리는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열심히 하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개입을 생각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관계를 친밀하게 하고자 하심을 생각을 해봐야 한다. 현재 상황은 이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도적으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내용이 바로 있다. *18-19절에 보면,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이제는 여호와의 성전지대를 쌓던 날부터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그날부터, 이제는 수고에 대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삶을 돌아보면, 정말 많이 바쁘고 많은 삶을 살아나기 위해서 애쓰고 있고, 그런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한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 아무리 정신없이 힘든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관계에서 만큼은 성공을 해야 한다. '마틴부버'가 그랬듯이 점점 사회가 비인격화되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시대에 나와 그것에 관계가 온 사회를 덮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나와 너의 관계를 이루기를 소망한다. 또한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와 주변사람과의 관계에서 성공하기를 소망한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와 영원한 너, 영원한 너의 관계를 회복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관계를 통해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힘을 실어주시고 선한 복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와 그것의 관계로 있었다면, 나와 너의 관계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인간성이 회복되고, 공동체가 인격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이런 부분을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선하신 뜻임을 알 수 있게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 영원한 너, 나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나와 너의 관계인 인격적인 관계로, 우리가 성공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오늘부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처럼, 이 시간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관계로, 결단하고, 그 내용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하며, 이 시간부터 구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요약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교훈을 주심을 진정으로 깨달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통해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 하나님을 찾고 교제하며, 예배하는 자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비인격화 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격적인 관계에서 성공으로 회복하고 우리의 하나님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최우선 영역을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오늘부터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지금부터 당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인격적이 되고 주변 공동체와 이웃에게도 나와 너의 관계가 되어서 주님이 주시는 복된 약속을 받야야 한다. -성전 건축의 영적 의미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한다. 만일 근면하지 못하여 영적 나태함에 빠진다면 더 큰 역경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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