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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5월 16일)
제목:''의지(依支)의 온전( 穩全)함''
말씀: 룻기 1:15~18
찬양인도: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기도: 박단열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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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15~18,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찬양 감사하다. 이 찬양을 1,2,3,4부 영광, 찬양대 연합이 되어 15시간 준비하고, 녹음을 하는 시간 9시간 소요했는데, 한국교회에 좋은 격려가 될 것이며, 이 찬양 듣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일어나고 회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찬양으로 또 하나의 틀을 만들어 줄 것 같다.


장애인들이 만들어준 카네이션 모형을 달아 주었다. 우리교회와 가정과 선생들을 위해서 이것을 대표하여 달았다.


-오늘은 생각의 온전함, 감정의 온전함, 의지의 온전함 중에 의지의 온전함을 말씀한다.
의지의 온전함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보자. 우리는 의지를 이야기를 하면 의지의 연약함으로 많이 실패한다. 우리는 작심 3일도 하고 공부와 가족이 술 담배를 끊지 못하거나 다이어트 실패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의지는 잠깐이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죽하면 순수 한국말이 ‘내일부터’라는 말을 사용한다. ‘Today diet tomorrow’라고 하겠는가! 매일 실천하겠다는 성경 통독의 실패도 그렇다. 매번 창세기만 10번, 마태복음만 20번, 앞에만 읽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의지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람이 인격을 말할 때에 지, 정, 의, 세 분야는 인문학, 신학에서 일반화 된 정설이나 다름없다.
생각과 감정과 의지이다.


*신명기6:5에 보면,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에 마음을 다하는 것-감정의 문제, 뜻을 다하는 것-지성의 문제, 힘을 다하는 것-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감정문제 지성(생각)문제 의지(힘) 문제이다). 우리가 온전함을 사모한다면, 지성과 감정,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온전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의지의 온전함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의지를 말할때는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일이나 자발적으로 일을 실현하기 위한 의식적인 행동을 말한다. -Will,


▷오늘 의지의 온전함이란
-이런 어떤 일을 이루고자가 아닌 하나님께 의존하고 의뢰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지의 온전함’은 하나님께 의지(依支)할 때 주어지는 온전함이다.
따라서 의지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만 가능하다. 우리가 의지의 온전함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생각은 가치관의 문제이고 감정은 상처가 치유되는 문제인데, 의지의 온전함은 자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지으실 때에, 하나님이 형상대로 지으실 때, 우리를 인격으로 대하셔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ex) “인간은 무죄한 상태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것을 원하고 행할 자유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9장2절-


-죄는 불순종으로 들어오고, 예수님의 절대 순종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다. 이 순종은 우리를 위한 길이요, 우리가 사는 길이다. -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참된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력이 상실되었다. 즉 ‘타락한 자유의지’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과 일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불순종을 통해 우리의 의지가 타락이 된 것이다. 감사하게도 예수그리스도의 절대 순종을 통하여 불순종을 통해 들어온 이 타락한 자유의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순종(순종의복음)으로 인해 다시 이 의지가 온전한 의지로 회복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분이 주님이시다.






▷의지의 온전함은

죄가 불순종으로 들어오면, 그런데 예수님의 절대 순종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 타락한 의지가 온전한 의지의 길이 열렸다. 이것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다. 이 순종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길인 것이다. 자유주의 신앙이란, 한마디로 불순종ㅡ불순종을 낳고, 순종은 참 신앙을 낳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어 타락하게 되었고, 그런데 예수님의 절대 순종을 통하여 우리의 타락한 의지가, 순종할 수 있는 온전한 의지로 바뀔 수 있도록 우리의 의지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절대순종으로 우리는 모두가 감사가 되어야 한다.


*누가복음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시편 37:5절,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첫째는,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야 한다. -온전한 의지의 모범이다.
*누가복음 23:46절,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둘째는,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맡기는 것-
순종과 전적의탁이다.



I. 예수님이 보이신 절대 순종은 우리가 주님께 전적위탁이 되어야 한다.


-순종을 통한 전적위탁이다.
-예수님의 절대적 순종으로 인해 우리의 모두의 의지의 온전함의 길이 열려서 절대 순종으로 전적위탁이 동일하다. 이것이 온전한 모델이 예수님이시다.


전적위탁은 순종과 동일한 것이다. 선순환관계,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전적위탁에는 전략과 표준이 필요하다. 전적위탁은 여기서 룻이라는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나오미의 며느리이다. 좀 베들레헴(떡집)에 기근이 왔다. 그래서 마침 모압에 좋은 땅이 있음을 듣고 아들 둘과 며드리 둘을 데리고 함께 갔다. 모압은 이방이고, 모험인 것이다. 불신앙일 수도 있지만, 도하(渡河)를 한 것이다. 10년쯤 지나는 사이에 남편과 아들도 다 죽었다. 우환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자부(오르바, 룻)와 함께 나오미가 며느리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게 되었다. 맏며느리는 본인 고향으로 보내고, 룻은 함께 고향에 있게 된다.


*룻 1: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은 나오미가 섬겼던 하나님의 신을 따르겠다고 한다. 대단한 고백이 된다. 서로 고백을 주고받을 때에 나중에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상호축복이다.




*룻 1:16-17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우리가 지금 순종이 전적위탁이 온전하게 될 때에, 우리의 의지의 온전함이 전적위탁이 되는 것이다.
○○○이 이르되 내게 예수님을 떠나며 예수는 따르지 말고 돌아가 강권하지 마옵소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예수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예수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온 성도가 가슴이 뭉클하고 이렇게 찌릿한 마음이 생겨야 전적위탁이다. 새로운 전적위탁의 길이다.
이러한 고백으로 인해 나오미와 룻이 가정이 엄청난 역사가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혈통이 된 것이다. 세상과는 비교가 안 되는 축복이 받는다. 이런 전적위탁으로 축복을 받는 것이다. 가정, 교회, 민족이
무엇보다도 우리의 타락한 의지가 해결될 것이다. 오늘 룻이 전적위탁으로 인해 타락하고 불순종의 강을 건넜다. 도하의 축복이 되었다. 의지의 온전함의 회복이다. 우리도 모두가 다 불신앙의 강을 건너자. 생명의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비포 에프터를 보아야하며 강도가 더 쎄져야 한다.
이것이 구체적인 믿음이다


-전적위탁을 통한 온전함은 반드시 우선순위라는 전투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II. 우선순의의 훈련을 바로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코로나 이후에 많이 헝클어져 있다. 그래서 인간적의지가 아니라 오염된 의지를 버리고 의지의 온전함을 갖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0:37-38절,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
- 정말 너의 의지와 순종의 의지가 되길 원하냐고 묻는 것이다. 전적위탁이라면 너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하라고 하신다. 인생에 있어서 부모와 자식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과 더 전적위탁의 관계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과의 관계가 쉽지 않지만, 부모, 자식보다 주님을 더 의지해야 한다.


*누가복음 14:26절에,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공동체 제자훈련, 집단 제자훈련이다. 여기서 밉다는 것이 ‘I hate you’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관계에 있어서 전적위탁이 우선이라는 말씀이다. 전적위탁이다. 여러 가지로 어렵겠지만, 순종이란 자기부인이다. 누구나 짐이 있다. 이것이 생명이 길이기에 그렇다. 이것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기에 그렇다. 주님을 온전히 닮아가기 위한 길은 이 길 외엔 다른 길이 없다. 순종과 우선순위와 전적위탁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우선순위의 전투적 과정을 통해야 전적 위탁을 해야만이 우리의 의지가 온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신앙의 종을 울릴 것인가??그렇다면


왜 주님이 우리에게 전적을 위탁을 통해 우선순위를 전투적 과정을 거치라고 하시는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자기와 가족보다 우선순위가 되지 아니하면, 사랑, 신뢰 등이 다 가짜가 되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전적위탁, 순종, 주님을 향한 생명의 길이 우리에게 없으면, 우리가 받는 신뢰와 우리의 교제는 다 제한되어 있고, 오래가지 못하고 우리가 빌게이츠가 되는 것이다. 이 간절함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사랑과 신뢰를 진짜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불타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세상에는 자기 결정권을 강화하는데, 우리는 전적위탁, 절대순종을 강화한다. 그래야 우리의 사랑과 신뢰가 진짜가 되고 모든 찬양이 가슴이 울리는 것이다. 모든 것은 주님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찐 사랑, 참된 사랑, 참된 가정이 회복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위로(慰勞)가 아니라 위탁(委託)이다.


ex) 엄마가 기도하고 QT하고 책상에 앉아서 매일 한다면 남편이 보고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전적위탁이 있으면 가족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확신이 된다. 하나님을 향한 우선순위를 가져야 가족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를 살리는 것이다. 사랑과 의지는


*신명기 30:20절에,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이렇게 하나님을 의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가만 계시겠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없던 복도 만들어서 다 주고 싶을 것이다.


-Empowerer-
'능력을 덧입혀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모든 귀한 것들을 우리에게 능력의 대이동시켜 주시며 우리 앞에는 상상 못하는 새로운 차원 창조력 역사가 생각을 못할 만큼의 힘이 펼쳐질 것이다. 인격이 온전해져서 주님을 닮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부요함이 대이동되어서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이 자리에 전적위탁으로 하나님의 모든 부요함이 우리에게 대이동이 되기를 소망한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의지로 가기를 소망하며, 윤리적 실천도 복음의 순종, 전적위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독교 바리새인이 되지 말라. 개미 떼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착한 개미를 알 수 있겠나? 하나님은 보시기에 우리도 다 그보다 못하다고 하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전적위탁이 되면 매일이 교만하지 않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역사를 집필하게 될 것이다. 매일 전적위탁으로 샤워하고, 전적위탁으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인간의 어떤 자기의가 아닌 주님이 주신 전적위탁의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매일이 새롭게 하라. 그래야 사람에게 매이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다. 사람들 때문에 왔다 갔다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무 남편과 아내, 자녀로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를 의탁하는 자녀를 보면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다 포부어 줄 것이며 다 주고 싶을 것이다. 아이가 어버이날 종이꽃을 만들어서 부모에게 달아주고 어버이날 일찍 일어나서 먹을 것을 주면 어떠한가? 정말 이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도 우리도 전적 위탁을 하면 모든 것을 자녀를 사항하는 것 이상으로 해결해주시고 영적인 공간이동을 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 이렇게 전적위탁하고 순종하면 순도 높은 사랑가 은혜를 물 붓듯 부어주실 것이다. 이 하나님의 부요함이 우리에게 대이동 되면,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오르바를 룻은 비교하지 않는다. 오르바의 결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은 주님을 의지하여 지적하지 않고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온다. 남을 정죄 말고 가쉽에 치우치지 말고, 사람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품격과 품위를 지켜라. 전적위탁으로 자신을 점검하면, 공동체와 가정을 사랑을 하게 되며 살리는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왕노릇하게 하실 것이다. 위그노에서 화살을 쏘았다.


전적위탁이신 하나님이 왕이 되게 하라. 룻은 모압여인이었다. 하나님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지만 다윗왕국을 열었다. 모압 백성의 저주를 그녀가 끊었다. 우리도 주님을 닮아서 가정, 공동체, 민족의 수많은 저주가 끊어질 것이다.




♣요약
오늘 주님만 전적위탁과 순종으로 하늘에서 주시는 의지의 온전함을 회복하여 우리의 의지가 온전해져서 가족과 공동체에서 복음의 신비를 깨달아 찐 사랑을 누리며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까지 가도록 은혜의 종합선물이 되어야 한다. 이 코로나 시대에서 새 역사를 쓰는 신실한 전적위탁 자로서 품격 있는 실천적 삶이 절대적 순종과 전적위탁이신 왕을 믿고, 의지의 온전함으로 거듭나야 한다. 날마다 우선순위를 내어드리며, 전적위탁의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이방 남자는 할례를 통해서, 그리고 이방 여자는 신앙 고백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다. 이것으로 볼 때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폐쇄적이 아닌 개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룻은 이방 여자였지만 여호와께 대한 신앙 고백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었다. 룻은 죽음만이 시모로부터 자신을 떠나게 되는 유일한 조건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룻은 이것을 ‘여호와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당시 근동의 이방인들은 ‘엘로힘’으로 신을 호칭하였고 ‘여호와’는 히브리인들만 사용했는데, 여기서 룻이 이방 여인으로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윗왕국을 세우게 되는 전적위탁으로 말미암아 축복의 여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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