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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2월 07일) 제목: "물 위를 걸으려면 배에서 나오라"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말씀: 마태복음 14:25-33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이윤기 부목사님 ----------- *마태복음 14:25-33,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 ▶오늘 이 자리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은혜가 생수의 강과 같이 성도님께 넘쳐나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와 함께 말씀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5절부터 33절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14장 25절에서 33절입니다. 제가 한 절 읽고 여러분께서 한 절 읽고 마지막 합독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 대학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사역 가운데에 청년들과 많은 대화를 하게 되는데요. 우리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크게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먼저는 “목사님, 제가 무엇을 하며 살면 좋겠습니까?”, “무엇을 공부하면 좋겠습니까?” 사실 이 질문도 굉장히 어려운데요. 그다음 질문이 더 어렵습니다. “목사님, 제가 누구와 함께 살아야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계신 우리 많은 기혼 성도님께서는 주님 제가 누구와 함께 살아야 합니까? 이 질문 앞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대로 결혼하신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어쨌든 제가 이런 질문들을 마주할 때에 참 우리 청년들의 인생이 바다 위에 머무는 것 같다. 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바다라는 곳이 어떤 곳일까요? 물론 우리가 여름 휴가철에 마주하는 바다는 낭만적인 곳이지만 캄캄한 어두운 밤에 마주하는 바다는 굉장히 무섭습니다. 파도가 어디까지 몰아닥칠지, 그리고 이 바다가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또 만약 배를 타고 나가서 바다 위에 있을 때는 어떨까요?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었을 때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 배에 있었던 그 수많은 선장과 선원들이 얼마나 베테랑이었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의 모든 경험과 능력은 그 바다 앞에서 무기력해질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바다란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내가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나타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께서는 내 인생이 바다 위에 있다. 라고 느낀 적이 있으십니까? 예측하지 못할 불확실성의 연속 가운데서 또는 내가 그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는 무기력함 속에서 인생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오늘 본문은 그러한 인생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인생의 바다 위에 있다고 느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손 위에 내가 놓여 있음을 믿는 그 믿음이 우리 성도님들의 가슴 가슴마다 온전히 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바다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오늘 본문 배경을 먼저 살펴보면 지금 제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조금 더 분명하게 볼 수가 있는데요. 사실 오늘 본문 바로 앞부분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냐 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로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열 두 광주리가 남은 바로 그 사건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 사람들이 이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기적 이후에 예수님을 억지로 붙잡아 임금으로 모시자고 하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제자들도 얼마나 기세등등했을까요? 그동안 우리 예수님께서 인정받지 못하셨다고 생각했었을 터인데 드디어 우리 예수님께서 온 백성에게 인정받는 분이 되셨다. 이제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때이다. 라는 마음으로 굉장히 어깨가 한껏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굉장히 뜻밖입니다. 마태복음 14장 22절 23절인데요. 함께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4:22-23,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어쩌면 제자들은 지금 이 좋은 분위기를 더 누리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예수님께서 서두르시며 자리를 뜨게 만드십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인지 좀 그려지시나요? 예수님께서 그 좋은 분위기에서 제자들의 등을 떠밀면서 빨리 돌아가자 빨리 배로 가자! 하고 밀어대고 계십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벳세다에서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바로 그 바다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는 게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본문을 동일하게 다루는 마가복음 6장 47절에 보면 이렇게 나오네요.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라고 나옵니다. 지금 제자들이 해가 저무는 시간부터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마태복음 14:25-33,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밤 사경까지라고 나오는데요.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밤 사경은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를 읽었습니다. 즉 9시간에서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에 계속 거센 풍랑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나아갔냐 하면 대략 10리 정도 한 4kg 정도라고 하는데요. 제가 지도에서 찾아보니까 동작대교에서 동호대교, 영동대교 정도까지 그 거리를 겨우 나갔다고 말을 합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당황스럽지 않았을까요? 오병이어의 그 좋던 분위기에서 누가 가라고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빨리 넘어가자고 재촉하셨습니다. 자기들도 아쉬운 마음을 이내 꾹꾹 눌러가면서 주님께 순종하여 배에 올라탔는데 지금 결과가 어떻습니까? 밤새도록 9시간 10시간 넘는 시간 동안 죽을 고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을 향해서 얼마나 따지고 싶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셨다면 순풍을 만났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지금 이 제자들이 어려움 당하는 모습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모습과 삶의 고민과 굉장히 닮아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여기 수요기도회에 나오신 성도님이시라면 내 삶에 대한 모든 부분들을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이시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나오신 분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도 참 힘든 사실은 내가 순종하며 사는 그 삶 가운데서도 여전히 내 삶 속에 어려움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반드시 응답해 주셔야 하는 기도 제목이 내 삶 가운데 있다. 라는 것이 어려운 사실입니다. 이제 곧 설날 연휴가 다가옵니다. 우리 담임 목사님의 말씀처럼 각 가정마다 한 꺼플만 벗겨보면 누구에게도 말하지도 못하는 각 가정의 어려움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 저는 청년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청년들도 입시와 각종 고시와 또 취업하는 문제와 진로의 문제와 무엇보다 결혼하는 이런 문제 앞에서 결코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의 문제는 비단 청년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청년들의 부모님들의 기도 제목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님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내가 그렇게 주님께 불순종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토록 예배의 자리도 온전히 지키며 섬김 가운데 나아가고 내 자녀도 내 남편도 우리 가정이 하나님께 온전하게 말씀에 엎드려 살며 노력하였는데, 왜 여전히 밤새도록 새벽 3시까지 우리의 인생은 풍랑을 만난 것 같은가라는 이 고민과 이 질문이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삶 삶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 기도 제목들로 여전히 눈물 흘리며 주님 앞에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 이 성경 본문을 통해서 그러한 우리 삶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도전이 각 성도님의 마음마다 온전하게 전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순종의 여정 속에서 풍랑을 마주할 때에, 어떻게 이 풍랑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오늘 두 가지만 살펴보고자 하는데요. 첫째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까지 낙심하지 않으시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라는 이 고백이 필요합니다. 한번 저를 따라 해보실까요? I. 첫 번째로-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오늘 본문과 병행 본문인 마가복음 6장 47절과 48절을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6:47-48,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지금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죠? 산에서 기도하고 계시는데요.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는 걸 모르시는 분이 아니세요?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라고 말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날 것과 만나고 있는 것을 알고, 보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들지 않습니까? 왜 처음부터 같이 배에 올라타시고 풍랑이 불기 시작하면 잠잠 하라. 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을까? 오늘 이 사건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했죠? 오병이어가 있었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을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들은 풍랑 앞에서 주님을 찾기보다 나름대로 자기들이 갖고 있는 온갖 배 기술과 노 젓는 경험을 실현합니다. 심지어 불과 몇 개월 전에도 이미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다가 풍랑을 잠잠케 하신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찾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가 않습니다. 사실 이 배에 타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최소한 이들은 전문 프로 어부가 아닙니까? 얼마나 이런 상황을 갈릴리 바다에서 경험했겠습니까?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들이 가장 익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을 의지해서 풍랑을 돌파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자들은 바다 위에서 자기들의 실력도 경험도 전혀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인생의 어려움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식은 모두가 다릅니다.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자기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배의 키를 잡고 노를 젓는 게 바로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인생의 풍랑을 극복하고 계십니까? 믿을 만한 지인을 먼저 찾아가시나요? 통장의 계좌 잔고를 확인하십니까? 내가 세워놓은 타임라인에서 혹시라도 내가 실수한 것은 없었나, 내 계획이 틀리지 않았나, 돌아보고 계십니까? 혹은 경력이 부족해서 혹은 공부가 부족해서 혹은 노력이 부족해서 내가 이 어려움을 마주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시며 그 방식들을 의지하고 계십니까? 오늘 바다 위에서의 이 위기는 제자들이 진짜 무엇을 믿고 있는 자리인 줄로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풍랑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먼저 신뢰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쩌면 제자들이 노를 젓다가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셨을 수도 있어요. 우리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 할 때 그 빠져 있는 사람이 힘이 팔팔 넘치면 그때 가서 구하면 어떻게 되죠? 자칫하면 둘 다 죽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구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의 손이 내 머리를 덮치고, 나도 그 사람의 머리를 덮치고 함께 물속으로 잠수하게 돼요. 그래서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이 어느 정도 힘이 빠져야 더 편하게 구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데요. 성도의 삶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인간적인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이 빠진 바로 그때 제자들은 자기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던 그때에 예수님께서 저 멀리서부터 물 위로 차벅차벅 걸어오기 시작하십니다. 지금 배 안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캄캄한데 정말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인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니까 유령이다 귀신이다 소리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27절인데요. 큰 목소리로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4:27,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 안심하라. 부터만 다시 한 번 크게 읽어볼까요?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아멘. 그리고 오늘 이 사건이 다 마무리될 때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입술에서 어떤 고백을 받으셨냐면 33절입니다. *마태복음 14:33,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잠재우실 수 있는 분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의 입술 가운데서 이 고백을 원하세요. 주님만이 내 삶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 고백이 우리의 입술과 마음 가운데에 온전히 새겨지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로 어떻게 우리가 순종의 여정 속에서 마주하는 이 풍랑 가운데서 끝까지 포기하지도 낙심하지도 않을 수 있을까 바로 우리에게는 이것이 필요한데요. 저를 따라 하시겠습니까? 배에서 나오는 믿음, 배에서 나오는 믿음, 배에서 나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II. 두 번째로, 배에서 나오는 믿음이 필요하다. 오늘 본문은 다른 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도 동일하게 다릅니다. 이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서 다루는데요. 사실 마태복음에만 특별하게 나타나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다른 본문에는 없습니다. 마태는 분명히 물 위를 걸으려다 빠지는 그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이 베드로를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베드로의 모습이 투영되고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기를 분명히 바랐을 거예요. 물에 빠진 이 베드로, 과연 그 믿음이 실패한 믿음이었을까요? 한번 28절부터 살펴볼 텐데요.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14:28,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여러분이 지금 배 안에 있는 제자들이라면 주님께서 오신다면 상식적으로 합리적으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저 같으면 주여 풍랑을 잠잠케 하소서 혹은 주요 이 풍랑에서 속히 벗어나게 하소서 이게 정상적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베드로의 반응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아마 마태도 이 베드로의 반응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겨놨을 것 같아요. 주여, ‘나는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지금 바람과 파도가 배를 집어삼키고자 합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배 밖으로 나가면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뱃사람이었던 베드로일지라도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분명히 베드로는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이 베드로가 누구를 바라보고서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라고 말합니까? 예수님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서 주님께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고 싶어 합니다. 비록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이 베드로조차도 자신의 배 기술과 노 젓는 것에 그 경험에 의지하여서 이 풍랑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모습을 보고서는 주님께서 그동안 나에게 베풀어주셨던 은혜가 무엇이었는가, 기적이 어떠했는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서 일하셨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나아가길 원합니다. 베드로의 입술 가운데서는 과연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외침이 그 내면 가운데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주님께서 계신 물 위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 속에서요 질문인데요. 배 안이 안전합니까? 배 밖이 안전합니까? 어려운 질문이죠? 배 안이 안전합니까? 배 밖이 안전합니까? 여기서 만약 물 위를 걷게 하는 게 안전합니다. 라고 하신다면 주변을 잘 돌봐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지금 다른 제자들은 배 안이 안전하다. 라고 말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배 밖으로 나오질 않거든요. 아무도 배 밖으로 몸을 던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베드로만큼은 배에서 나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게 가장 안전한 길인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말합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의 질문보다 요청보다 더 놀라운 것은 사실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29절에서 단 우리말 성경 가운데서 두 글자로 말씀하신대요. 짧으니까 함께 힘 있게 읽어볼까요? 시작, 마태복음 14:29,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오라 거기까지는 아닙니다. 두 글자입니다. 시작 오라, 오라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밤새도록 제자들이 뭐 하느라 노력하고 있었을까요? 죽을 고생하고 있었을까요? 배 밖으로 안 빠지려고, 물에 안 빠지려고 죽기까지 노를 젓고 고생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정반대의 말씀으로 오라. “너의 배에서 나와서 나에게 오라”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다른 제자들이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는 드디어 우리 형 베드로가 미쳤구나. 9시간 10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더니 드디어 이상해진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서 이 제자들도 굉장히 놀라기 시작했을 거예요.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배 밖이 안전합니까? 아니면 배 안이 안전합니까? 사실 배 밖이던 배 안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배 밖으로 예수님께서 계신 물 위로 초청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인생의 풍랑을 마주할 때에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배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배에서 나와 예수님을 붙잡는 우리의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배에서 나가면 우리가 뭐 할까 두려워 못 나갑니까? 물에 빠져 죽을까 두려워 못 나가는 거 아닙니까? 이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5,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미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많은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 한 평생 내어 종노릇하며 살아간다. 라고 말을 합니다. 세상 권세의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그 이유와 그 원인이 죽기를 두려워한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배에서 나가면 나 죽는 거 아니야 우리 청년들이라면 이 입시에서 떨어지면, 이 고시에서 떨어지면 내가 이직하지 못하면 죽는 거 아니야. 내 자녀들의 삶의 문제가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는 것은 아니야 내 건강에 문제가 이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내 가정의 문제가 이번 설 연휴 가운데서 해결되지 않으면 내가 배 밖으로 나가면 나는 죽는 것 아니야 이 마음이 우리들 안에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가 타고 있는 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배에서 나오면 물에 빠져 죽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러한 우리를 향하여서 30절에서 말씀을 하시는데요. 30절, 31절, 31절인데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14:30-31,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맞습니다.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여서 물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리칩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여 나를 살려주옵소서.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십니다. 31절 32절인데요. 함께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4:32-33,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울음에 바람이 그치는지라 베드로가 물에 빠지며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자 주님은 결코 베드로가 익사하도록 물에 빠져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즉시 손을 내미시고 그 베드로가 더 이상 물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꽉 붙잡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있는 배로 데려가십니다. 물론 우리가 이때 저도 궁금하긴 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속에 있는 채로 데리고 가셨을까 물 위로 꺼내셨을까 그건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죽지 아니하도록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잡아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내가 믿음을 갖고 물 위를 걷다가 혹여 두려움으로 물에 다시 빠질 때에도 반드시 다시 잡아주시는 구원자이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세요. 비록 물에 내 인생이 빠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절대 배에서 자기의 자녀가 나와서 빠져 죽도록 내버려두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 주님을 향한 시선을 놓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성도 여러분 지금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두려워하여 물에 빠졌는데요.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믿음이 작은 자여!” 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두려움과 이 대척점에 있는 것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통해 보았을 때에 믿음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반대로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믿음이 없기도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청하신 것처럼 2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사랑하는 나의 딸들아 나의 아들아 너희에게 믿음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음성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성도 여러분께 우리가 순종의 여정 속에서 풍랑을 마주할 때에 어떻게 하면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가 먼저는 오직 예수님만이 내 삶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풍랑을 멈춰주시거나 내가 이 풍랑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즉시 나를 붙잡아주실 예수님을 믿고 배에서 나오는 그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배에서 나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했죠? 믿음입니다. 우리가 순종의 여정 가운데 머물 때에도 내가 계획했던 바와 다르게 내 삶이 내 가정이, 내 자녀가 내 인생이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우리는 내가 원래 원했던 항로로 인생이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타고 있는 이 배가 파손되지 아니하고 안전하게 나아가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풍랑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배 안이냐, 밖이냐, 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시선이 배도 아니요, 풍랑도 아니요. 오직 예수님께로만 향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매듭짓겠습니다. 11장 6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히브리서 11:6,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벼랑 끝에 내몰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으십니까? 내 삶 가운데에 풍랑이 불어 닥쳐서 이 배가 언제 파손되는 것은 아닌가, 두려우신 상황 가운데 놓일 때가 있습니까?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가정 가운데서도 억울한 관계로 인하여서,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낙망하실 때가 있으십니까?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서 자녀의 문제로 인하여서, 배우자로 인하여서, 건강으로 인하여서 주님께 눈물로 기도하실 때가 있으십니까? 우리 삶 가운데 풍랑이 밀려온다면 그 풍랑 저편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 아들아 너희 믿음의 눈이 열리기를 원하노라.’ ♣요약, 어떠한 풍랑이 찾아올지라도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주님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니, 내 믿음이 연약해질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라 하시는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여 즉시 배에서 나와서 물 위를 걸어가야 한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과 인생의 벼랑 끝에 내몰리는 순간 가운데서도 즉시 손을 내밀어 구원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모든 풍랑의 상황을 다스리시고 구원하실 줄로 믿고, 내가 붙잡고 있던 나의 능력, 실력, 경력이 있다면 이제는 오직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내려놓고, 내가 안전한 울타리로 믿고 있던 이 배에서 나가 주님께로 향하는 인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신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씀을 기억하여, 우리는 주님으로 문제를 해결하실 줄 믿어야 한다. ※ 배 안→배 밖→주님 곁으로.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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