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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주후 2024년 1월 31일)
제목: 말씀 대로(大路)
말씀: 이사야 55:6~9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설성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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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6~9,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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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니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이 시간 드려지는 이 예배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아지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이 시간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온전히 깨닫게 하셔서 평생 주님과 동행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수요 저녁 기도회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수요 저녁 기도회를 통하여서 회복을 넘어 부흥의 르네상스를 경험하는 이 현장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55장 6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주신 말씀 이사야 55장 6절에서 9절 말씀을 저와 함께 교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55:6~9,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아멘,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서 또 저녁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우리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생각들도 있을 것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있는 퀸즈 대학 교회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사람은 하루에 6,200번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수요 저녁 기도회 현장에 참석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는 6,200번의 생각 중에 포함되는 여러 가지의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순간에 어떠한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살펴보게 되면 우리가 삶속에서 하게 되는 수많은 생각들이 때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영광이 되고 또 기쁜 그런 생각이 될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른 그런 생각들을 우리가 취할 때가 있다. 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을 함께 보면서 여러분들은 어떠한 생각이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일평생 살아가게 되면서 지금까지 경험한 대로 그리고 우리의 마음대로 정한 그러한 기준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평생 하나님 마음에 딱 맞는 그러한 생각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평생 내 이기적인 욕심과 그러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꽉 차 있는 그런 생각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가게 되는 것, 저와 여러분들이 이렇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그러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하는 마음이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머리 가운데 가득 채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을 하고 또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그러한 삶을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말씀 6절과 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또 하나님을 부르고 또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첫 단추가 깨어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전적으로 붙드는바 되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으며 날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 인생은 결단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을 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 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 그리고 그러한 삶을 우리가 살아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또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께로 날마다 돌아가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성도로서 경험하게 되는 영적인 유익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첫 번째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I. 첫 번째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이 온전하게 붙들려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주님을 간절히 부르는 사람, 하나님께로 늘 돌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또 그것이 시작되었다. 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 라는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떠한 변화들이 일어나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의 고백이 하나님의 선하신 고백을 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들 중에서 고난과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함께 섞여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신뢰한다. 라는 것은 우리에게 처해 있는 상황에 의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고백이 결코 바뀌는 삶이 아닌 줄로 믿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신뢰하는 그러한 행동은 옆집 이웃에게도 흔히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그런 행동과 태도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어떠한 상황이나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과의 그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서만이 가능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래된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재의 시간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두터운 신뢰 관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 두터운 신뢰 관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생기게 된다면 이전에는 오직 나 스스로만 믿고 나 자신만을 의지하는 생각으로 살았던 그런 사람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 의존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들을 그저 이해하며 넘어갈 때가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한다. 라는 것은요 내가 상황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일 때에만 내가 비로소 행동하겠다. 라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철저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상식 안에서 또 내 지식 안에서, 나의 경험 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이해관계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함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자녀와의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그 복음의 능력으로 깊은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 선하심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1장 17절의 말씀을 보게 되면,
*야고보서 1:17,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상황과 그리고 환경에 따라서 정말 수시로 변하는 그러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적으로 사람을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늘 한 결 같이 신실하게 변함없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의 상식에서 벗어난 그런 상황을 우리가 맞이하게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지만 또는 내가 생각했던 길과는 다르지만 저와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함으로 순종하며 뚜벅뚜벅 걸어가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길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시온의 대로(大路)였다. 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사람들은 내 지식과 내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의사는 환자를 진찰하고 또 진찰한 것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내리게 됩니다. 어떠한 약을 먹어야 할지 그 처방전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의사가 진찰한 것과 상관없이 약을 처방해 주지는 않는다. 라는 것이죠. 또한 처방된 이 약들을 만약 우리가 따로 사용한다면 그 한 알 한 알 우리가 따로 복용하고 따로 사용한다면 때로는 그 약의 성분이 우리의 몸에 해로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의사의 처방전에 의해서 이 약들이 조합되었을 때는 우리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까? 각각의 약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그 기능들이 섞여서 아픈 환자의 병이 잘 치료될 수 있게 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게 한다. 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겪은 일들을 하나씩 따로 떼어놓고 보면 때로는 우리의 인생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때로는 좋아 보이지 않는 그런 일들을 우리가 경험하게 될 때도 있겠지만, 그런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그 하나하나의 일들을 이어 붙이셔서 가장 선하게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의 눈으로 목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행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이것이 내 인생에서 선을 이룰 수 있겠느냐, 라고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신뢰하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그 하나하나의 일들을 놓고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이 때로는 고난이고 때로는 그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문제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던 그 사건들이 결국에는 우리들을 그리스도인답게 성장시키고 다듬어가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만드는 하나님의 숨겨진 축복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이사야서 55장 8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목소리로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이사야서 55:8,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하나님의 생각과 또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길과는 다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과 평생토록 우리가 교제하며 살기를 원한다면 유언하고 연약한 그러한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으로 날마다 바꿔가는 그러한 우리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가 믿고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한다. 라는 것은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따라가는 그러한 삶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우리가 따라간다. 라는 것은요 그분을 믿는다. 라는 것이고 또 그분을 신뢰한다. 라는 우리들의 신앙 고백이 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온전히 구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매 순간 결정할 때 그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생각을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내 생각과 내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과 그 생각으로 가득 채워가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찾는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부르고 하나님께로 날마다 우리가 돌아가게 될 때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경험하게 되는 영적인 유익
II. 두 번째는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붙들려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고 날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될 때, 우리를 향한 그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깨닫게 되고, 그 하나님의 위대한 여정에 함께 동참하게 되는 그러한 복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 여정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의 위대한 인도하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우리는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건을 우리가 생각해 본다면 가장 대표적으로 홍해가 갈라진 그 사건을 우리가 기억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해서 그 광야를 지나가게 될 때 뒤에는 수많은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는 그런 긴박한 상황입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 때문에 막히게 돼서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또 뒤에는 그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뒤로도 갈 수도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바다를 반으로 가르시고 그 길로 행하게 하신다. 라는 것을 우리의 머릿속으로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아무도 그러한 일들을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 홍해의 바다는 자신들이 애굽 군대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장소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어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과 분명하게 달랐다. 라는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상상하지 못한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이 거기에 숨겨져 있었다. 라는 겁니다. 우리들은 우리를 향한 높으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미 분명하게 예비 되어 있다. 라는 사실에 우리의 시선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허락하시는 그 문제들과 어려움들을 우리의 삶 가운데 지나게 하실 때 문제를 피할 길과 해결할 길을 이미 분명하게 예비해 두셨다. 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믿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신 그 하나님의 계획,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홍해 바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게 만드는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고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는 구원의 바다였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홍해 바다를 갈랐던 그 사건뿐만이 아니라 요셉의 인생을 다뤄가셨던 그 하나님을 보면 동일하게 하나님의 높으신 계획과 그 생각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됩니다.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라나게 됩니다. 아버지 야곱이 그 요셉을 특별히 차별하고 사랑해서 그 아끼는 모습에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또 질투하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이 점점 자라나게 돼서 결국에는 요셉을 죽이고자 하는 그런 마음까지 이 형들이 갖게 됐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유다의 제안으로 요셉은 요셉을 죽이지 않고 애굽의 노예로 팔리게 하는 그러한 일을 행하게 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이후에도 바로의 신하 보디발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던 그 과정들, 그리고 그 집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 억울한 일로 인하여서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또 그 감옥에서 있었던 일들 인간적인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암울한 현실을 경험하였었던 요셉이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그 인도하심 안에서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그런 요셉을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가운데서 요셉은 자신을 애굽으로 팔아넘긴 그 형들을 용서하고 창세기 50장 20절 말씀에서처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목소리로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창세기 50:20,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아멘 요셉의 고백은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꿔주셨다. 라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경험한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의 시간들이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의 일부였다. 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그러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라는 거예요. 우리들은 이러한 성경의 이야기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들의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다시금 분명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16장 21절의 말씀을 보게 되면,
*마태복음 16:21,
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서 많은 고난을 받게 되고 또한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되실 것을 말씀해 주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 말씀인데요. 우리 한목소리로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아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또 죽임 당하시고 다시 3일 만에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죄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한 일들을 예수님께서 감당할 것을 얘기해 주시는 장면이 이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2절의 말씀을 보게 되면,
*마태복음 16:22,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제자 베드로는 그 예수님의 말씀에 이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태복음 16장 23절의 말씀을 보면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6:23,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라고 강하게 질책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당장 우리의 눈에 좋아 보이는 그러한 길에 집중하고 있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을 늘 마음에 품고 행동하시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모든 고통과 고난도 다 당하시고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한 그러한 생각이셨지만, 베드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고난을 보고 인간적인 생각을 했던 그러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이 계획하고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아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온전하게 신뢰하기 때문이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완벽하게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나한테 이러한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들 만한 그런 수많은 일들이 계속 우리의 인생 가운데 끊임없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내 생각은, 내 계획은, 이렇게 하면 잘 돼야 되는데 왜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불평하고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그 사건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의 순간이었고, 그렇게 축복의 순간이었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시는 그 은혜의 순간을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원했던 문이 열리지 않아서, 차선책으로 다른 문으로 들어봤는데 뒤돌아보니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처음 가려고 했었던 그 길보다 오히려 훨씬 더 좋은 길이었다. 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을 우리의 기준과 경험과 생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라고 해서 하나님의 길이 틀렸다라고 속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선하신 그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실수가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온전히 굳건히 믿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 가장 신실하게 인도하고 계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께 날마다 붙들려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그 말씀의 대로를 기쁨으로 걸어가는 복된 매일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요약
오늘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함을 누리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늘 고백하며 일평생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을 경험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생각 생각보다 더 큰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씀대로 더 높은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당장 인간적인 관점으로 좋아 보이는 길에 집중하는 인생이 아니라, 실수가 없으신 그 하나님의 높은 뜻과 계획을 늘 신뢰하여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 늘 붙들린바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갈 수 있는 복된 평생이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신 때를 말한다. 또한 만날 만한 때란 죄인이 회개하고 죄에서 돌아서겠다고 하는 결단을 내리는 때를 의미한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찾는 이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청종하는 자를 가까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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