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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2월 27일)
제목: "말씀의 능력, 피어나는 소망"
말씀: 디모데후서 3:14~17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장단희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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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14~17,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ㅡㅡㅡㅡㅡ
 
장단희 부목사님.
태초 진행형 역사와 우리를 살리시는 피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 주간 가운데 태초 진행형 생명이 역사하게 하심을 믿습니다. 2023년에 마지막 주가 이 시간 흘러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번 주는 새롭게 시작할 2024년을 소망으로 기대하며 나아가는 주이기도 합니다. 2023년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교회를 통해 한국교회와 이 나라 이민족, 온 세계 열방 위에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시작되는 2024년을 통하여 비교할 수 없는 충천하는 은혜로 날마다 함께하시고 새로운 역사로 이루실 것을 간절히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제가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된 지 어느덧 이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계속적으로 현재 진행형으로, 아주 큰 감격으로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잠시 나누자면 사랑의 교회에서 제가 지난 1년 동안 경험했던 모든 사역들, 모든 예배들, 그리고 모든 영 가족들과의 나눔과 교재들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기초로 하고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서 그 안에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실체가 되는 것을 제가 생생히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입니다. 소망이 없다고 하는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서 이 나라가 소망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서 우리의 삶이 소망이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말씀의 능력, 능력의 말씀에 대하여 적극적이면서도 강력한 가르침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올바른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한 신앙의 자세를 겸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신앙의 자세와 사명이 있습니다. 부르심의 소명 따라 사명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하는 지금 이 시대 가운데에서 얻은 죄악 세상 가운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환히 밝혀야 하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살아가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의 특징을 이 시간 잠깐 살펴보고 나아가자면, 바울 서신은 구원론과 종말론이 함께 갑니다. 곧 이 마지막 때에 구원받은 언약 백성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며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계속해서 구원론과 종말론이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삶의 실제가 그러하였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이 삶을 겸비하였고 견제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요한과도 같은 이 편지에서 이 마지막 편지에서 온 마음을 다하여 간절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살아갈 것을 강권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만이 소망 없는 죄악 된 어둔 세상 속에 생명의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말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지막 때라고도 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절을 통하여서 말세 고통 하는 때가 이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성경 역사를 돌아보자면 창세기에서 아담의 탈락 이후에 이 세상이 오염되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완전히 탈락하였고, 전적으로 오염되고, 부패하여서 탈락 이후의 모든 것은 정상적인 삶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세상이고 비정상적인 인생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죄악으로 가득 찼고, 구원이 없으면 오직 죽음뿐인 그러한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고 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18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에베소서 4:18,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아멘 죄악 된 세상 속에서, 죄인 된 인간에게 참된 지혜와 참선은 절대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음의 완고함과 무지함으로 가득 찬 인간은 결국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망각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곧 빛보다는 어둠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죠. 한마디로 허물과 죽음뿐인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일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사랑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6,
6 어두운 데 빛이 빛이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아멘 우리 민족이 그랬습니다. 이 대한민국 땅이 그랬습니다. 변방의 나라 미개한 족속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처음 기도의 말을 빌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땅이 바로 이 나라의 민족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셨습니다. 택함 받은 주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있는 그 기념물 입구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님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외국인 선교사님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는 소위 선교하기 전부터 기가 막힌 나라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어 성경을 보면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소위 구원받은 백성이 영어로 추슨 피플(chosen people)입니다. 추슨 피플인데 이 나라의 이름이 이미 초선이었습니다. 번역하면 택함 받은 이였죠. 세계 어느 나라가 이럴까요? 예를 들면 선교사님들이 선교를 하는데 조선이니 ‘나 조선 사람이요.’ 이것이 선교사님들에게는 어떤 말로 들리냐면 ‘나 택함 받은 백성이요’, ‘나 구원받은 백성이요’ 라는 말로 들렸다는 사실입니다. 선교사님들에게 우리나라의 별명은 이미 하나님의 택함 받은 나라,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이 자신감, 이 믿음으로 선교사님들이 그렇게 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시고 그 사랑으로 복음을 전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뿐이었던 이 나라 가운데 복음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1892년 레이놀즈 선교사님은 이 땅 가운데 선교를 하러 오셨습니다. 그는 한국 성경 번역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듬해인 1893년 그의 맏아들이 태어난 그 해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러한 아픔과 슬픔 가운데에도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비전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이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1910년 4월 2일 오후 5시에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번역 ‘다 됐소.’ 구약 성경이 드디어 완역된 것입니다. 이 나라의 민족 가운데 드디어 성경이, 신약, 구약이 완전히 번역되었던 것입니다. 어둠뿐이었던 이 나라 위에 능력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이 나라가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영광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 ‘2033-50 비전’ 또한 기적의 실체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어둠을 물리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이든지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 마음으로 오늘 함께 읽으셨던 본문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4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4,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아멘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면 능력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바꿔 말하면 이 시대가 아무리 소망이 없다고 하고, 이 시대가 아무리 어둠뿐이라 할지라도, 내 삶을 뒤흔드는 폭풍과도 같은 이 현실을 마주하는 나의 이 삶 속에서 나의 상황, 환경, 어쩌면 육신의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를 흔드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복음 그 안에 거하라. 부활, 소망 안에 거하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참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이 편지를 받는 때는 AD 약 66년경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초대교의 역사는 부흥과 함께 고난이 따랐습니다. 현실이 어떠하였습니까? 영적 아비였던 디모데의 선생님은 지금 죽음의 위기 가운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 감옥 가운데 소위 거적 대기 하나 걸치고, 그렇게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 같은 그 현실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가정들은 어떠하였습니까?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자신의 친애하는 제자들이 자신을 떠났고, 모두가 나를 버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배교를 하였습니다. 더욱이 피해 황제 네로의 핍박과 박해로 인하여서 로마 통치 하에 있는 온 저녁에 그 곳에 거하는 그리스인들에게 피바람이 불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속에서 디모데의 영적 아비인 바울은 피하라 도망쳐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외쳤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외침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언제든 어느 때이든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날마다 오늘 말씀처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 안에서 능력의 말씀이 승리하는 것을 경험케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영가족 여러분,
냉소주의와 비관주의와 패배주의로 물든 세상의 소리들이 넘쳐나는 격변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불변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위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변함없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붙들며 살아가야 됩니다. 지금의 때가 어떠하십니까? 지금의 상황이 어떠하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신실하신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확신한 일,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 안에 거하시며 날마다 능력의 삶을 실제로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어서 오늘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가 누구에게서 이것을 배웠는지 알지 않느냐?” 묻습니다. 디모데는 그의 영적 아비 사도 바울에게서 배웠습니다. 이미 바울의 모든 삶을 보았고, 그는 삶으로써 배웠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의 어머니 유니게, 그의 할머니 루이스를 통하여서 신앙이 무엇인지 신앙의 또한 믿음의 말씀의 세대 계승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에 이 세대 계승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대로 이어지는 신앙의 세대 계승에 이 축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디모데가 말씀의 신앙을 물려받고 이 말씀을 가르쳐 전파하는 사명을 준행하였듯이,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말씀 위에 거하고 또 이 말씀을 가르치며 지키며, 후대에게 전파하며, 행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말세의 모든 상황 속에서도 주의 말씀은 멈추지 않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이 신앙이 전파되고 흘러가며 하나님의 복음은 소망으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 사명을 감당케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사명을 감당하는 힘을 주시기 위하여서 하나님의 말씀 특별 계시, 성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서 일하십니다. 말씀의 능력을 힘입을 때 모든 상황 속에서 소망이 변하는 줄로 믿습니다. 함께 디모데후서 3장 15절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5,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이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아멘, 그렇다면 왜 말씀이 능력입니까? 왜 말씀이 내 삶 가운데 실제적인 능력이라고 우리는 외칠 수 있는 것입니까?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알았던 오직 성경만이, 오직 말씀만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그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직 말씀만이 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믿음을 주는 유일한 방법이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잘나 보이는 지도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도, 그 어떠한 지식도, 지금 서점에 가보면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이 있습니다. 여러 책들이 있고 또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 내 지혜가 아닌 오직 유일한 참 지혜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은 삶입니다. 믿음은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삶이 믿음이고, 우리가 경건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삶의 경건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가 이 경건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과 삶의 명확한 목표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함께 디모데후서 3장 16절 아주 잘 아시는 구절입니다.
 
*디모데후서 3:16,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아멘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을 하나님의 영감 또는 하나님의 호흡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습니다. 비록 사람이 썼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완전히 신적으로 개입하셔서 완전한 영감으로서 완전 축자영감(逐字靈感-성서의 한 자 한 자가 모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음)으로, 모든 성경을 우리에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고도 무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호흡으로 되었다. 하는 것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역동케 하는 내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하는 살아 역사하시며 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하나님의 호흡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가족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나아가고 계십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거닐고 계십니까? 말씀을 읽으시며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의 벅찬 숨결을 느끼며 나아가야 됩니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66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거룩하시고 그 인자하시며 날마다 목자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신실하신 숨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에는 하나님의 신적 호흡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돌이키는 참된 교사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가르치시며,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시며 교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서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주셨다면 회개(悔改)도 동시에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서 이 가르침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당연으로 나오는 것이 참된 회개인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합니다.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떠한 방법이 필요하십니까? 삶의 갈피를 못 잡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먼저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말씀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합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서, 참된 삶의 목적을 참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돌이키게 하며 참된 회개를 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도록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적 호흡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나를 사랑으로 가르쳐 주시며 인도하심을 믿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구원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유익하다. 지금 내 삶에 가장 큰 유익을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영 가족 여러분은 무엇을 통하여서 가장 큰 유익을 누리고 계시고 얻고 계십니까? 우리는 삶에 진정한 유익을 주는 것은 오직 단 하나,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음을 믿으며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무익한 세상 지혜에 매달리는 미련함을 이제는 모두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익함을 깨달아, 날마다 우리의 진정한 믿음의 삶의 방향, 참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삶을 살아갈 때 어둔 세상 속에서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소망의 백합화가 찬란하게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함께 디모데후서 3장 17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7,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아멘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참된 지혜를 주시고 참된 가르침을 주시는 가운데 이제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살아가게 해줍니다. 오늘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서부터 17절 말씀은 이처럼 구원과 믿음과 삶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신앙의 올바른 자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으셨던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는 사실 말씀 자체에 모순이 있고 또 더 나아가서 반전이 있습니다. 어떠한 것이냐면 본래 사람은 온전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본래 사람은 절대로 선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아무리 선하게 보인다 하는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어떠한 봉사로서 어떠한 도덕적이나 예의적인 측면이 가장 최상으로 올바로 서 있다고 하는 존재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 인생은 절대로 선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비록 온전할 수 없는 존재이고, 선할 수 없는 존재이나 말씀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날마다 믿으며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통해 십자가 대속의 고열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나의 죽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 생명이 나의 영원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는 부족하나 내가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그리스도께서 강하시기에 날마다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힘 있게 하시며 다시 살리시는 그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십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선이시고, 그분은 완전한 선이시기에 우리는 연약하나 이 선을 행할 능력을 우리가 갖추게 된 것입니다.
 
2023년을 마무리하고 2024년을 기다리시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시며 또한 앞으로 나아가야 될 방향을 바라보시며 어떠한 마음으로 나아가고 계십니까? 내 아내 연약함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나의 부족함과 나의 온전하지 못함과 나의 선하지 못함 때문에 그저 무너지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비교할 수 없을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들며 날마다 말씀의 능력 안에서 온전함으로 나아가시며, 선한 능력으로 나아가시는 모든 영가족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 삶을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디모데에게 편지를 하면서 마지막에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잘 아시는 고백입니다. 너무나도 멋진 고백입니다. “나는 이제 나의 달려갈 길과 모든 사명을 마쳤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도 동일합니다. 비록 지금 이 시대가 너무나도 흔들리는 시대이고 너무나도 어둠뿐인 죄악 된 세상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이 무너지는 삶의 현실이고 어려운 삶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시길 우리의 삶에 소망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한국 초기 여성 의료 선교사님이셨던 로제타 홀 선교사님은 선교지인 조선 땅에서 남편인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님과 조선 최초의 서양 결혼을 하신 그러한 선교사님이십니다. 미국에서 조선에 대한 그 소명을 품고 준비하실 때 사실 윌리엄 제임스 홀, 남편 선교사님은 다른 나라를 지망하고 계셨는데, 이 아내 분에게 한눈에 반해서 이 사역 지까지 변경하여서 조선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두 분이 조선 땅에서 결혼하셔서 이제 아들 샤오도 홀을 갖게 되었고, 또 뱃속에는 에디스 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결혼한 지 3년쯤 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제임스 홀 선교사님께서는 이 사명을 마다하지 않고 그 자리로 나아가 의료 선교로 봉사하시다가 결국 이질에 걸려서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로제타 홀 선교사님의 일기에 보면, 하나님 제발 우리 남편을 살려주세요. 라는 눈물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기에 남편을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미국 땅으로 잠시 건너가서 이제 그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조선 땅으로 와서 의료 사역에 조선 여성 의료 사역에 힘쓰시는 가운데, 7개월 만에 또 딸 이디스가 풍토병에 걸려서 이질에 걸려서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양화진 선교사 기념공원 로제타 홀 선교사님 그 기념관에 가면 이 일기가 실제로 있습니다. 그 딸에 머리카락이 있고 하루하루 체온을 쟀던 그 기록이 있습니다. 맥박이 하루하루 느려지고 또 그 체온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던 그런 것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 딸마저 데려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님은 이 사명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양화진에 가보면 로제타 홀 선교사님 이 제임스 선교사님 홀 가족 묘비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로다.”
-아멘, 말씀의 능력 위에 하나님 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조선 선교를 위하여서 선교사님은 모든 사명과 그 삶을 바치며 살아 가셨습ㄴ다.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나라 이 민족, 이 땅 가운데 복음이 꽃피고 이 한국 땅이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힘입을 때, 상황이 믿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능력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믿음이 상황과 환경을 지배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연가족 여러분,
이 마지막 때에 오직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피어나게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 소명자의 삶을 살아가야 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사랑의 교회가 이런 교회이기에 한국 교회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 믿음 안에서 능력의 말씀 위에서, 이 확신 가운데 날마다 말씀 위에 거하시며, 가르치고 전파하시며, 다음 세대에게 이 신앙을 물려주시고,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실 때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기쁨을 누리시는 연말연시의 모든 시간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하나님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피어나서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하며,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소망함을 두어야 한다. 오직 성경만이 구원에 이르는 참된 진리이자 지혜임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서 삶의 명확한 방향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참된 선을 누리며, 말씀을 의지하고 배우고 확신하는 신앙의 축복된 자로 세상 사람들 앞에 본이 되어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표가 되며 가르치고 배워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단순히 배우고 암기하는 교과서가 아니며 시대적 상황에 제약되는 역사서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우리의 삶에 적용되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 살아있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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