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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 주후 2021년 2월 6일)
제목: "지팡이의 반전과 역습"
말씀: (출애굽기 7:8-13절)
설교자:김성웅 부목사님
사회:김도훈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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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7:8-13절)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지팡이와 뱀으로 변하는 이적을 베풀게 하신다. 이 이적은 앞으로 벌어질 출애굽 사건의 성격과 내용을압죽해서 보여준다. 본문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무엇을 하시는지 발견함으로써 은혜를 나누기를 바란다.

첫째.  뱀을 만드신 이유.

-왜 하나님께서 애굽의 마술사들도 할 수 있는 이적을 행하시는가? 여기 9절에 나오는 뱀은 히브리 말로 '타님'이다. 창세기 1장 21절, 이사야 27장 1절에서도 같은 말이 쓰여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다. 이집트를 비롯해서 고대 근동 신화들은 하나같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서 혼란과 어둠과 죽음을 일으키는 큰 괴물이 있다고 봤다. 이 바다의 악한 신과 창조를 주도하는 창조의 신이 맞서서 싸우는 각축전이 세상이고 바로 인생이라고 보았다.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은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행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적은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는가?
신이라면서 벌벌떠는 그 큰 바다 생물, 그게 뱀이든 악어든, 고래든 용이든, 그것들은 신이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지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내가 참신이다. 내가 창조주 하나님이다. 오직 나만이 왕이다.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적이다. 이렇게 볼 때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로 살면서 임금도 못받아서 참 불쌍하니까 내가 해방해 준다는 무슨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다.

출애굽은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신 나를 너희가 받아서 살겠느냐? 무거운 짐진 자들 너희를 내가 건져 낼텐데 너희는 나만 붙잡고 나를 따르겠느냐고 이것을 결정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신앙적 사건이다. 눈을 우리에게로 돌려보자. 우리도 어떠한가?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유일신론자인가? 맞다. 하지만 우리는 점검해 봐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고 하면서도 거의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은 우리의 마음 속에 어떤 것들이 있지 않는가?? 우리가 우상 따위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대놓고 절은 하지는 않지만, 마치 라헬이 드라빔을 깔고 앉아 있었던 것처럼, 소중히 여기며 감추고 애지중지 하면서 깔고 있는 것들이 혹시 있지 않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나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를 당한다고 하면 용수철처럼 팅겨나와서 사람을 가맂 않고 대든다. 더 괴로운 것은 기도하자고 하면 그게 그렇게 어려운데 이렇게 제 권리가 침해되면 자동모드로 이렇게 되는 것이 참 괴롭다. 세상 사람은 어떠한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양 하면서도, 세상 즐거움을 다 버렸다고 하면서 기도하게 된다. 주여 세상 즐거움도 자랑도 어느정도를 주시면 주님이 가장 귀한 분이라며 고백하겠다고 이런 마음이 들때가 많이 있다. 다시 한 번 결단해야 한다. 나쁜 것이 아니지만 비록 좋은 것이라고 해도 내 마음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은근슬쩍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조차 이 시간에 직시하고, 치워버리기를 기도하자.  하나님이 정말 왕이시고, 창조주라고 한다면, 하나님 답게 바르게 섬기는 충성스러운 자가 되어야 한다는 기도를 해야 한다..

둘째.  뱀을 만드신 방법.

-모세는 지팡이만 쥐어주면, 물을 자꾸 내려치는 사람이었는데, 지팡이로 땅을 내려치라든지 아니면 지팡이를 창처럼 바로에게 쏘아라는 것이 아니고 왜 던지라고 하셨는가? 이 던지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1장 22절에서 바로의 명령을 받고 애굽사람들이 히브리 사내 아이들을 나일강에 집어 던졌다 할때, 던진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아론의 지파이는 히브리 사내 아기들이 나일강에 던져지는 것을 상기시키는 상태로 던져지고 있다.  무엇을 전하고 있는 행위인가? '애굽사람들아, 너희가 히브리 사내 아이들을 수장시켰지? 내가 그걸 다 보았고, 내가 그것을 보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흘린 눈물을 다 보셨고, 그들이 겪은 아픔을 다 알고 이제 갚아 주시기 위해서 일어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유일한 신이시고 창조주이시다. 위대하신 분이시다. 동시에 참 친절하고 성실하고 세밀하게 우리를 이끌어 나가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가장 절박하게 느껴지는 것 두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하나는 나는 무엇을 먹고 살까? 앞으로 어떻게 살까 하는 문제이다.
두번째는 나는 어떻게 해야 인정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이다.
사람들이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가 가장 절박한 문제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먹이시는가? 하나님은 광야의 만나와 같은 신비한 일용할 양식을 통해서 우리를 분명히 기필코 먹여 살리신다. 우리가 호의호식 못할때가 있다. 하지만 시편 37편 25절에 나온 것처럼 의인의 자식이 문전 걸식(門前 乞食)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라고 이 시인의 고백이 응하는 방법으로 바로 그런 모습으로 먹여 살려 주시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신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하실까? 오른 손을 까닥만 해도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느데, 만약에 오른 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은밀하게 인정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안알아주면 어쩌나 피곤하고 짜증나는 인정추구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남에게 나를 보여야 하니 내 내면보다 내 겉을 꾸며야 하고, 그리고 호세를 떨어야 하는 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안알아주면, 무섭게 돌변해서 공격하는 이런 삶에서 우리는 벗어난 사람들이다. 하도 작아서 숨어 있는 듯 있어도 이미 우리를 아신다. 우리가 흘렸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다 헤라시는 분이시다. 세상이 우리를 나일강에 던지는 듯한 두렵고 아픈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함께 우리 조금 더 견디기를 결심하자.

셋째.  뱀을 만드신 결과.
-지팡이가 뱀이 되었는데 바로가 놀라는 기색이 하나도 없다. 왜 놀라지 않는가? 그것은 자기들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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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사랑의교회 기드온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부활의 산증이 되기를 간구하며, 방향을 잃은 세대 앞에 의의 나침반으로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우리 교회 믿음의 4대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께 뿌리내린 일상 예배를 통해 9가지 조화된 열매를 맺는 신실한 가지 되어야 하며, 주인이 부르심에 달려나오는 신실한 종들이 되며, 가정과 교회, 민족과 열방을 위해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의 마음이 너무 강퍅하여 웬만한 표적과 이적으로는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모세를 준비시키기 위함이다. 악할 대로 악한 세상 사람들의 마음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의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도록 힘써 전도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때에 모세는 80살, 아론은 83살이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모세와 아론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이들이 구속 사역의 담당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는 인간의 시간표와 같지 않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술객들의 지팡이도 모세의 지팡이처럼 뱀으로 변했지만 모세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렸다. 이처럼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아무나 쉽게 흉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가 아무리 능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는 반드시 멸망당하고 만다. 지팡이 뱀과 물이 피로 변한 이적의 차이 -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이적은 징벌의 의미가 담기지 않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이적일 뿐이다.

그러나 물이 피로 변한 재앙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자에 대한 징벌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적을 믿지 못하고 불신앙에 머무를 때 더 큰 재앙을 자초하게 됨을 알 수 있다. 모세가 처음으로 바로를 대했을 때는 단지 하나님의 지시만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가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증명하는 기적을 행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1) 바로는 '이적을 보이라'고 말할 것이다(9절).
그는 확신을 얻고자 열망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아무 것도 행할 수 없으리라는 기대로 이 말을 할 것이다.
(2) 그러므로 4:3의 지시대로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아론이 그의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즉시 뱀이 되었다. 이것은 바로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다.
(3) 이 이적은 너무도 분명해서 부인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애굽 술객들의 속임수 이적에 의해 그 권위를 상실하고 신뢰성을 잃게 되었다.
모세는 본래 애굽의 학문으로 교육받았었다. 그래서 그는 오랜 은거 생활 동안에 마술을 익혔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그리하여 술객들이 불려나와 그와 대결하게 되었다. 애굽 술객들의 지팡이들도 뱀들이 되었다. 이 일에 대해 어떤 이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일을 그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악한 천사들의 능력에 의해 행하여졌다고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시기 위하여 미혹하는 영이 기적을 베풀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대결 팡이가 변하여 된 뱀이 다른 뱀들을 다 삼켜 버린 것이다. 그것은 바로가 어느 편이 참인가를 알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바로는 이것이 변화되지 않았다. 즉 그는 애굽의 술객들도 뱀을 만든 이상 그들과 모세 사이의 대결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성웅 부목사님 설교 토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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