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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4월 9일)
제목: "기품(氣品) 있는 인생"
말씀: 요한계시록 1:9~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박삼열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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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18,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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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많이 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일 년 중에 가장 은혜 가장 많이 받는 날이 부활절이다. 매주일이 작은 부활절이 아닌 큰 부활절이 되는 영적인 피크인 이 날에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 생각만 해도 존귀함과 품위가 생기는 말이다. 모두가 품위 있는 인생, 거품이 있는 인생이 아니라, 기품(氣品)이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보니 강단에 ‘카라’라는 꽃을 보니 좋다. 영적인 영광의 대관식이다. 오늘 그야말로 큰 부활절이다. 기품이란,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기품을 유지하고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고, 하나님나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자, 남에게 영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며 어두움을 밝히는 인생이고 믿음 보고 하는 인생이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기품이 있으면 영적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자이다. 여성으로 말하면, 에스더 같이 현숙한 여인이며, 룻과 같은 여성이 기품 있는 자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기품이 있는가?
*에베소서 4:24,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주님의 형상을 따라가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주님은 완벽하시니 완벽한 진리, 완벽한 거룩이 있을 때, 이것을 사모하고 우리도 되기를 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분적이라도 기품을 주실 줄 믿는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부활주일 날, 오늘 이 자리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여러분의 삶의 기준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첫 번째 –어떻게 기품이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I. 영광에 압도되어.. 죽은 자 같이 되매.
*요한계시록 1:17b,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하나님의 영광, 그의 영광이 너무 압도되어서 바짝 엎드렸다. 오늘 이게 무슨 말씀인지, 일 년의 영적인 피크 이 시간에 내가 하나님 앞에 죽은 자 같이 되는 것은 어떤 뜻인가? 본문을 다시 읽어보자.
*요한계시록 1:9~18,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너무나 강렬한 표현이다. 특별히 말씀 중에 내가 죽은 자 같이 되었다. 것은 호스네크로스(Horsenecros)이다. 와 같이 죽음 같이 라는 뜻이다. 생명이 없는 것 같이 죽음과 같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 앞에 죽은 자, 세상의 왕 앞에 죽은 자가 아니고 영광스런 주님 앞에서 죽은 자 같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못 구하고 그 앞에 죽은 자 같이 되면 기품이 있는 인생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요한은 주님의 영광의 광채가 너무 찬란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되었다. 너무나 큰 소리 맑은 물소리 같은 우렁찬 소리를 듣고 귀가 멀어져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의식을 잃고 죽을 때처럼 되었다. 주님의 임재와 영광의 무게에 눌려서 숨이 끊어지는 것 같이 되었다. 죽은 자 같이 된 것이다.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떤 거룩한 충격을 받았다. 요한의 입장이 되면, 우리 모두가 다 이 시간 좀 더 마음이 와 닿는 것이다. 잘 아시는 대로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듯이 사도요한 주님의 심장에 몸을 기대어서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주님의 따뜻한 심장소리를 듣고, 주님의 뜻을 제일 잘 아는 자이며, 너무 가까운 사람이고 오죽하면 주님이 사랑하는 자라고 했고, 오죽하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마지막 남은 인생을 요한에게 부탁할 정도로 예수님과 가까웠다. 아주 가까웠다. 그리고 부활하신 빈 무덤에 제일 먼저 베드로와 함께 달려간 사람이 요한이었다. 아주 한 식구 같이 친밀한 관계였다. 오늘은 이렇게 요한이 고백한다. 그 친밀함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면 요한계시록 1장 17절을 다시 보면,
요한계시록 1:17a,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호스네크로스, 부활하신 주님을 요한이 처음 볼 때, 너무나 기뻐하고 황홀해가지고 초자연적인 느낌을 받았다.
*누가복음 24:41,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런 기쁨이 있다. 요한이 주님을 만났을 때, 이런 기쁨과 놀라움과 황홀함이 있었는데, 오늘 이 상황에서는 너무나 거룩함이 커서 완전히 죽은 자처럼 엎어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그 신성과 영광이 놀라웠다. 예수님의 모습에 얼마나 놀라웠는지 그의 얼굴이 해가 비추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이 났다. 그의 얼굴은 불꽃으로 이글이글거렸다. 풀무 불에 단련한 주석 같고, 목소리는 맑은 물소리처럼 강력하고 우렁차셨다. 예수님의 드러난 신성, 너무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다시, 요한이 그의 앞에서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한다. 요한은 본래 웬만한 것 가지고 끄떡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요한은 그 새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볼 때도 그거 봤다고 죽은 자처럼 엎드리지 않았다. 일곱 영과 일곱 군대를 보고도 보좌의 타는 불을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요한은 두려워 떨었다는 말이 없다. 세일 산에 무지개를 바라보고, 수정 같은 파도와 타는 불을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요한계시록에서 수많은 특별한 계시와 다와 엎드렸다는 말은 없다. 그 정도로 엎드리지 않았다. 요한계시록에 수많은 계시와 지옥으로 가는 문을 보았어도 겁먹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밤모섬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고 부활하신 주님 앞에 죽은 자 같이 된 것이다. 여러분 죽은 자 같이 된 것은 거룩한 엎드림인 줄로 확신한다. 거룩한 엎드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때, 기품 있는 인생이 된 것이다.
제가 말하는 이 기품이라는 것은 세상 적으로 무슨 자기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혼자 지키고자 하는 어떤 체면이나 윤리나 도덕 정도가 아니라, 영광스런 주님을 대면함으로 죽을듯한 거룩한 긴장감에서 형성된 영적인 기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目睹)하고, 반사하고, 체험한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흔적(痕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룩한 흔적, 여러분, 죽은 자 같이 된 것이, 어떤 게 죽은 자 같이 된 것인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에 우리는 죄로 가득한 인간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하는 것이 온통 죄 밖에 없는데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이 완전히 순전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의식을 잃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죽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 무슨 말을 하는가?
*이사야 6:5,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여러분,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납작 엎드릴 때, 죽은 듯이 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품이 되고 체화되고 우리의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본당에 들어오기 전에 세상의 거품을 뒤집어쓰고 지친 얼굴로 들어오면 이 영광스런 부활주일 날,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그 앞에 마음을 납작 엎드려서 마치 죽은 자처럼 되어서, 호스네크로스, 그럴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기품이 인생이 될 줄 믿는다.
주일 날 아침에 7시에 교역자들과 모여서 기도한다. 이 예배를 위해서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고귀함이 그 말씀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가 살아갈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자. 아멘, 구할 때마다, 예배들 드릴 때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부족함, 연약함 우리의 뻣뻣함 모든 것들이 마치 죽은 자 같이 이런 고백을 드릴 때,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II. 오른손을 내밀며 두려워하지 말라.
*요한계시록 1:17b,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 영광스런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 부활하신 신성이 있지만 이 땅에 신성을 감추시고 주님의 겸손하시고도 말씀처럼 오른 손을 내밀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우리를 이렇게 대우하셨다. 마음이 상처 받고 병든 자들에게 손을 내밀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만나서 말씀의 손을 내밀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 예수님은 너무나 찬란한 영광의 주님이신 동시에 오늘 오른손을 내밀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심을 믿는다. 아멘.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오른 손을 내 미셨는가? 그 오른 손을 내 미실 때마다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손을 내미니까 어린 아이들이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저는 주님께서 아주 드라마틱하게 오른 손을 내 미신 그런 내용을 잘 알고 있다.
*마태복음 8:3,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당시에는 나병환자가 주님 앞에 나올 수가 없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얼굴을 감싸고 덮어야 했고, 길을 갈 때도 나는 부정하다고 소리쳐야 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피할 수 있도록 나병환자를 경계할 수 있도록 율법은 그렇게 정했다. 스스로 자신이 부정한 자라고 외치며 일생을 저주 받은 자로 살아야 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너무나 놀랍다. 이 나병환자가 처음으로 따스함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 동정의 눈빛과 눈물 콧물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오늘 이 요한에게도 내가 영원히 사모할 그 주님의 이 따뜻한 손길, 오른 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셔서 납작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된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오늘 이 자리에 나병환자처럼 그냥 얼굴을 가리운 자, 기가 막힌 환경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지금 손을 내밀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그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한다. 이럴 때에 여러분 얼마나 강력한 양면성인가? 일곱별을 잡으신 예수님의 능력의 거룩한 그 영광의, 영광의 영광의 손이 있고, 또 주님이 갈보리에서 못 박히신 사랑의 손이 불꽃러럼 타오르는 예수님의 손이 있고, 동시에 나사로의 무덤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신 눈이 있으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철저한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시는 강력한 그 음성이 있고 동시에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음성이다. 이 양면성을 주님은 가지고 계신다. 이것만 우리가 깨달아도 기품이 있는 인생이 될 수가 있다.
*마태복음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한 없이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신 그 주님을 생각만 해도 얼마나 좋은가? 강력한 기품이 있고 강력한 영광이 있는 주님께서 오늘도 오른 손을 내밀어 주셨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마다 매 순간, 평생 우리 가운데,,, 우리는 인생이 무장될 수가 있다. 주님은 뭐라고 또 말씀하시는가?
III. 주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고 세세토록 살아있는 분.
*요한계시록 1:17-18,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오늘 본문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내가 전에 죽었지만 살아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고 하신다. 그래서 마치 죽은 자 같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또 주님의 그 오른손을 통하여 따뜻함을 느낀 것이다. 세세토록 살아계신 것으로 믿는다. 요한복음 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평생 거하심을 찬양한다.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이 처음이요 마지막이 무슨 뜻인가? 세상의 왕들이 사라지고 세상의 권력자들이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가 쇠하여 없어진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라는 것이다. 땅이 없어지고 지구 전체가 사라진다 해도 모두가 사라진다 해도 온갖 전염병과 지진과 쓰나미가 덮친다 하더라도 주님은 영원히 계시고 처음과 마지막이요, 세세토록 살아계신 줄로 믿는다. 히브리서 1장에 보면,
*히브리서 1:10,
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땅에 기초가 무너지고 이 세상이 없어진다고 잊혀진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 이것을 생각만 해도 거룩한 기품이 생기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이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계신다고 했는가? 모든 시대를 통 털어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항상(恒常)에서 항상까지 살아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고 하신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세토록 살아계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그분이 지금 이 시간 살아계심을 깨달으면 우리의 삶에 온전하게 영적 기품이 되는 것이다. 세세토록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의 삶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 가운데 계심을 믿는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영원히 주님이 동행하시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무슨 뜻인가? 2천 년 전 유대 땅을 걸으셨던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다. 아멘. 이천 년 전 이 마을에서 저 마을에 다니시면서 가난한 사람, 병자, 거지 애통하는 자를 만나주신 그 주님이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낮과 밤에도 함께 계시며 그분과 함께 걷는 자에게 세심하게 귀 기울여 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이다. 때로는 벅찬 영혼을 가지시지만 우리에게 참으로 관대하신 주님이시다. 이천 년 전에 가난한 사람, 병자, 거지 애통하는 자를 만나주신 그분이 오늘도 우리를 만나주신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세세토록 함께 하시는 증거가 무엇인가? 오늘 이 예배가 증거이다. 지난 이천 년 동안 한 결 같이 한 주일도 빠지지 아니하고 전 세계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이것은 헛것이다. 이런 이천 년 동안 하시는 예배가 가짜인가? 엉터리인가? 모조인가? 주님은 세세토록 살아계신다. 우리가 이 예배에 참석하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한 결 같이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지난주일 날 어떤 분이 LA에서 왔는데 자기 생애에서 이런 큰 예배당에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하는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크든 작든 상관없이 2천 년을 한 결 같이 예배하는 것이 이것은 주님이 살아계시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것이다. 살아계신 주님을 예배할 때 이 예배를 통하여 살아계신 주님의 은혜가 임할 때, 지금도 아픈 자를 고치시고 마음 상한 자를 만져주시고 오늘도 고통 가운데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눈물을 닦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 주님이 살아 계시는 것이다. 나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 주일은 우리가 태신자 작정 카드를 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일 년의 한 번이라도 살아계신 주님을 여러분들이 체험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치유하신다.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처럼 지금도 구원하신다. 수많은 사람들을, 저 그 때에 마상에서 떨어뜨린 그 주님께서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구원하시고, 어거스틴을 그 더러운 삶을 깨끗하게 하시고, 요한켈빈과 요한에슬리, 무디와 스펄전 손양원 목사님 등등,,, 모두를 살려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는 것이다. 한 결 같이 오늘도 역사하시고 통치하고 계신다.
우리가 완전한 영적인 진정한 참된 기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여러분 세대에 이 부활절이 최고의 행복한 부활절이 되어야 한다. 참 된 부활절이 되려면 영적인 기품이 있어야 한다. 이 기품이 있을 때, 알파와 오메가로 세세토록 살아계신 그 주님과 동행한다고 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라. 아브라함이 평안할 때에 그의 생의 기품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고귀함이 남 달랐다. 든든한 성벽에 있는 것처럼 평온했다. 적절한 삶을 유지했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서툴거나 서두르거나 게으르거나 그러한 적이 없었다. 항상 기품을 유지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살아계신 안에서 거룩한 기품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에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신다고 했다. 무슨 말씀인가?
*요한계시록 1:12,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지금도 일곱 금 촛대인 교회를 보고 계시며 하나님의 교회와 공동체에 임재 하셔서 살펴주신다. 오늘도 예배하는 이 자리에 계신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은 받아주신다. 성령의 갑절을 느끼게 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기품을 회복할 수가 있다. 이 교회에 교역자와 중직 자와 모든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존귀한 기품이 닮아서 넘치는 기품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주 찬양은 어린양의 피로이다. 주보에 있다. 늘 찬양하는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I entered holy of holies.
I enter through the blood of the Lamb
!!~~~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과 주님의 오른손으로 만져주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놀라운 주님의 임재를 느끼기를 바란다. 부활절에 어린 양의 피로를 원수들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우리의 기품이 있어야 한다. 예수 믿는 자들이 기품이 있어야 한다. 한 결 같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다윗도 한 결 같이 아임 리턴 했다.
♧요약
찬란한 주님의 영광 앞에 죽은 자와 같이 납작 엎드릴 때, 성령에 감동되어 거룩한 영적 기품을 가진 자로 변화되어야 하며, 예수님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심을 깊이 깨달아서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주님과 동행하여 흔들림 없는 삶 가운데, 세상 가운데 영적 기품을 유지해야 한다. 주위에 믿지 않는 자를 태신 자로 작정하여서 주님의 나라를 진정으로 함께 들어가는 자가 되어 주님의 자녀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 환상을 허락받은 요한의 현재 형편과 상태는 그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랐기 때문에 핍박당하고 추방되어 아마도 수감되었을 것이다. 그는 사도였지만 이들의 '형제'였다. 그는 환란에 이들과 동참하는 자였다. 핍박을 받는 하나님의 종들은 혼자 당하지 않았다. 그가 이들과 인내에 동참했다. 여러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은혜를 입는 데서도 이들과 함께한 것이다. 이런 말로써 그는 이들과 공감하고 이들에게 조언과 위로를 주도록 애쓰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가 이 환상을 허락받을 때 있던 곳: 그는 밧모섬에 있었다. 이러한 감금 상태 하에서도 이 사도에게 위안이 된 것은, 자기가 악행자로서가 아니라 예수를 증거 한 때문에 고난을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고통을 감수할 만한 명분이었다. 그리고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이 이 핍박받는 사도에게 임해 있었다. 그가 이 환상을 받은 날과 시간: 그때는 주의 날이었다. 그는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다. 그는 환상을 받을 때 뿐 아니라 받기 전에도 그러한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성령의 조생력으로써, 흔치 않은 자기 현현을 위해 그 백성들의 영혼을 평소에 준비시키신다. 그가 들은 것은 마치 나팔 소리가 나듯이 경종을 들었다. 그것은 이제 그에게 계시될 것들을 써서 즉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사도에게 명령하시는, 처음이요 나중 되신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그가 본 것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가 몸을 돌이켜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자, 놀라운 환상의 한 장면이 그에게 전개되었다. 그는 교회가 일곱 금 촛대라는 상징으로 표현된 것을 보았다. 교회가 촛대에 비유되는 것은 그것이 복음의 빛을 훌륭히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금 촛대 사이에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전에 그처럼 그리스도와 친숙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찬란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자 그 위대함에 압도되어 버렸다. 주님은 그를 일으켜 세우셨으며 그에게 힘을 불어 넣으시고 친절한 말씀을 해 주셨다. 곧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두려워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특히 이렇게 그에게 나타난 자가 누구인가를 말씀해 주셨다.
첫째, 주님은 그에게 자신의 거룩한 본성을 알려 주신다. 처음이요 나중이니.
둘째, 전에 받은 고난을 알려 주신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셋째, 자신의 부활과 살아있음을 알려 주신다. 나는 산 자라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을 이겼고 끝없는 삶을 누리는 자다.
넷째, 자신의 직무와 권위를 알려 주신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즉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스리는 주권을 가졌노니.
다섯째, 자신의 뜻과 바라는 바를 알려 주신다.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여섯째, 일곱별과 일곱 촛대의 의미를 알려 주신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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