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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8월 18일)
제목: "시대정신이 아니라 신앙정신입니다"
말씀: 다니엘 3:13-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외, 영광찬양대 외.
대표기도: 전승현 부목사님 외.
사회: 임병영(1부), 문진호(2부), 이기호(3부) 임상규(4부)부목사님.
설교자: 류응렬 목사님-초빙(와싱톤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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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3:13-18,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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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말 중에 Zeitgeist라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시대정신’이라는 단어입니다 시대정신 어느 시대이든지 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 철학, 생각을 지배하는 주도하고 있는 것을 두고 시대정신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시대정신에 휩쓸려서 그들의 삶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되는 것이 우리의 이성과 맞지 아니하고 우리의 판단에 옳지 않다 하더라도 대항하기보다는 시대정신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시대정신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정신, 하나님 말씀에 뿌리내리는 신앙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님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는 일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과감하게 시대 물결을 거슬러서 신앙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오스기니스가 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 ‘선지자적 반시대성’(prophetic untimeliness) 타임리니스, 시대에 맞도록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untimeliness-언타임리니스, 반시대적으로 살아가는 순지자적 사고를 가지고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청중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향해서 살아가는 기독교가 아니라, 메시지가 주권을 쥐고 있는 교회다. -오스기니스-
-이 시대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되는 것은 사람들의 목소리,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진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에드비 토저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강력한 책으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충돌하라. 부제목이 이러합니다. 세상과 동행하는가? 성령과 동행하는가? 적당히 타협하며 편하게 살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의 그 편안한 길을 철저히 반대하신다. 세상과 분노하라. 겁먹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 그리스도인들이여 무릎을 꿇고 세상을 흉내 내지 말라 세상과 충돌하라.
-에드비 토저-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내용은 보시겠습니까? 사람들은 가능하면 세상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되지 않은가? 세상도 하나님이 주신 세상인데 가능하다면 기독교인이라고 등을 지면서 살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세상을 흉내 내지 말라. 때로는 세상과 분노하고 충돌할 각오로 싸워가라.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진리, 주의 뜻을 따르는 성경정신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파리올림픽을 보면서 너무 가슴 아픈 일이 하나 있었죠? 드레킨 사건,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여장을 한 남자가 배우로 나오고 트랜스젠더들이 나와서 함께 공연하고 있는 모습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고 조롱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만일 불교였다면, 이슬람교였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이런 일을 기독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렇게 기독교가 조롱을 당하고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인가? 그냥 예술의 한 행위니까 문화의 한 행사이니까 그냥 보고 넘겨야 될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인은 세상 이미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러하니까 세상은 멀리하고 우리는 따로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잘못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신앙에 근거해서 과감하게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의 진리가 무엇인지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최근에 이 상황을 보면서 참 감사한 것은 미국의 CS 파이어라는 한 커뮤니케이션 회사에서 올림픽에 광고하기로 한 것을 취소를 한 일입니다. 엄청나게 그 광고비를 들여야 되고, 올림픽과 월드컵은 가장 광고하기에 좋은 시기인데 기업이 이윤을 감소하고서라도 이윤을 포기하고서라도 광고를 내린 이유를 CS 파이어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 우리는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However, 그럼에도 불구하고, We will not be part of the, 우리는 절대로 이 사람들의 offensive, 너무나 공격적이고 unacceptable, 우리가 허용할 수 없는 mockery of the Last Supper, 예수 그리스의 최후의 만찬을 조롱하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고를 내립니다.”
-미국의 CS 파이어라는 한 커뮤니케이션 회사-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것인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정신인데 저렇게 기업의 이미지를 먹칠을 하고 이윤을 포기하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 것인가? 이 본사가 미시시피에 있는데, 미시시피의 가문을 주지사 테이트 리브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논평을 내었습니다.
 
“I’m proud of, 나 너무나 이 사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조롱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God will not be mocked.” -미시시피의 가문을 주지사 테이트 리브스-
-하나님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그 때문에 우리는 광고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시대에 이윤을 무시하고 때로는 자신 얼굴에 먹칠을 당하면서까지 이렇게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지금 이 시대는 너무나 거센 세속의 물결이 우리를 잠식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동성애자들 그리고 인테 기독교 세력들 너무나 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침잠하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이런 시대, 이런 잘못된 시대정신이 우리 자녀들 가슴 속에 마치 DNA처럼 먹물처럼 파고 들어오는 이 시대 아닙니까? 안방에까지 침투하고 있는 잘못된 이런 사상들, 이런 시대정신이 우리를 끌고 가고 있는 이런 상황에 우리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설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시대를 이해할 것이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한 번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어서 이 시대의 물길을 거스르고 하나님 앞에 살아갈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 말씀을 통해서 그 옛날 시대정신을 거부하고 오직 신앙으로 살아낸 하나님의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부터 약 2천 600년 전에 바벨론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벨론이 인도의 북부, 에티오피아 그리고 중동 전체 지방 또 동양의 인도까지 점령했던 대제국이었습니다. 이 대제국을 완성한 왕이 느브갓네살 왕입니다. 하나님 나라 유다까지 침공을 해서 세 번에 걸쳐서 포로로 잡아갑니다. bc 605년에 먼저 친국에서 무너뜨리고 그때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갈 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신세였지만 그들의 삶은 평탄했어요. 왕이 그들에게 궁중 교육을 다 시켰고 관리로 삼아서 평탄한 삶을 살게 했습니다. 평탄하게 살았던 이들의 삶의 어느 날 고난의 바람이 불기를 시작을 합니다. 3장 말씀에 보면 느브갓네살 왕이 어느 날 거대한 신상 우상을 세웁니다. 높이가 30m나 되고 높이가 3M나 되는 거대한 우상 왜 왕이 갑자기 이렇게 우상을 세웠을까요? 2장 말씀을 보면 잘 이해가 됩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어느 날 귀한 꿈을 꿉니다.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해 주지 못했을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나아가서 꿈 풀이를 해줍니다. ‘왕이여, 지금 왕의 왕권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그러나 언젠가 세상의 왕권은 다 사라질 날이 오고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왕은 듣고 너무나 귀하게 여겼습니다. 다니엘과 새 친구들에게 높은 관직을 주었습니다.왕이 그 꿈을 꾼 지는 왕 직에 있은 지 2년째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이후로 16년 지난 이후에 왕 직에서 인제 18년째 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왕권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왕권이 더 강성해져 갔습니다. 왕의 마음도 점점 더 교만해져 간 겁니다. 왕은 자신의 왕권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상 우상을 세우고 바벨론의 도를 다스리는 수천 명의 관리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수천 명의 관리들이 줄을 서 있고, 궁중에 음악을 켜는 수백 명의 악사들을 다 불러 모읍니다. 왕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모든 사람들은 누구든지 엎드려서 금 신상 앞에 절하라. 절하지 아니하면 저기 맹렬(猛烈)이 타는 풀무 불에 집어던져 죽이리라.’ 사람들 앞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천지를 울리는 음악 소리, 수천 명의 관리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금 신상 앞에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8절에 보면, 그 때에 라고 말을 해요.
 
*다니엘 3:8,
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그때에 천하 모든 사람들이 다 무릎을 꿇고 우상 앞에 절하는 그 때에 우상 앞에 절하지 아니했던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있었어요.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절하지 않겠노라고 오직 유일한 죽은 대신은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겠다. 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절개를 지키려고 하면 찾아오는 것이 핍박이죠. 사람들이 사람들을 참사하기 시작합니다. 12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다니엘 3:12,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왕은 분노했습니다. 포로 잡혀온 주제에 높은 관직을 주어서 평탄한 삶을 살게 했는데, 왕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은 것은 마치 왕권에게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왕은 평소 때 이 세 사람의 충정을 잘 아는 왕이었습니다. 왕이 그들을 불러 모읍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너희가 정말 절하지 아니했느냐?’ 기회를 줘요 이제라도 준비했다가 음악이 울리거든 절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들이 내 손에서 너희들 구해줄 신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세 사람, 왕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답은 짧고도 즉각적이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절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대정신을 따라서 거대한 물결을 따라 휩쓸려 걸어갈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신앙 정신에 비추어서 아니오! 하고 꿋꿋하게 무릎을 펴고 서 있는 세 사람,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시대 물결이 우리를 휩쓸려오고, 우리 자녀들 가슴 속에 세속화의 바람을 DNA처럼 심어놓고 이런 시대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이런 시대를 거스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며, 인생 그리고 세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일까요? 우리 부모님들이 어떻게 살아내는 것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리고 한 번 사는 세상에 하나님께 가장 영광을 올릴 수 있는 길일까요?
 
오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삶을 통해서 두 가지의 승리의 비결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입니다.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Q.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I. 첫째, 하나님 앞에 타협 없는 자세로 서라.
 
-타협 없는 자세로 서라.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담대하고도 당당하게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써라. 오늘 세 친구들은 왕의 명령을 들어야 될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포로 잡혀온 사람들입니다. 왕이 높은 관직을 주어서 평등한 삶을 약속한 왕 아닙니까? 이 정도 되면 왕에게 한 번 정도 절해야 될 사람 아니겠어요? 왕의 명령은 고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왕이 세 사람에게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준비했다가 어찌하든지 살려주려고 애를 쓰고 있는 왕 아닙니까? 이 정도 되면 한 번 정도 우상 앞에 저라는 것이 왕에 대한 예의요.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이요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납득할 만한 이런 타협 앞에 그들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왕이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절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살아야 됩니까? 이 세상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인데 한 번 정도 절한다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몰라주실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 해서 그 젊은 날 청년 시의 삶을 들여야 한단 말입니까? 이 타입이라는 컴프로마이즈("컴프로마이즈(compromise) 타입"은 한국어 보안 용어로, 시스템이나 네트워크가 보안 위협에 의해 손상되거나 침해된 상태를 의미함))라는 이 타입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름답게 안전한 기독교를 만들어내어요.
 
여러분, 기독교가 비난을 당하는 조롱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고 후 이즈 지어스, 라고 했는데 The only way to salvation,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거, 온리(Only) 라는 단어를 빼버리면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웃을 사랑하라. 사람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타인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얼마나 좋은 종교입니까?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기독교가 될 수 있는데 왜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죠
 
Who is JESUS? 누가 예수인가? The only way to GOD! 유일한 하나님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주님이라는 것 Only 라는 이 단어 하나 때문에 모든 문제가 일어나는 것 아니겠어요?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 천국에 이르는 길은 Only JESUS! 분일 줄 믿습니다. 불교도 이슬람교도 착하게 살아도 다 구원의 길이 있다면 싸울 이유 하나도 없죠. 기독교는 최고의 종교가 될 것이에요.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피 묻은 십자가 부활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를 살려내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최근에 엘버트 몰로 총장님이 쓰던 베스트 총장님이 쓴 책이 한 권이 있습니다.


“세속화의 폭풍우가 몰려온다.”(The Gathering Storm), -엘버트 몰로 총장-
-폭풍우가 몰려서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거대한 시대정신으로 광풍처럼 몰려오는 세속화가 어떤 것인지, 우리를 잠식해 들어가고 젊은이들 가슴 속에 잘못된 사고를 심어주고 있는 이런 사상들,
 
여러분 세속화라는 것이 결국에 어떤 것입니까? 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행복, 나의 만족 ,자기 성취 모든 자기 행복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세속화의 물결, 이 물결 속에서 몰로 총장은 강력하게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물결에 대항하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담대하게 당당하게 세속화에 맞서야 합니다. 지금 세속화가 중에서 가장 우리를 잠식해 들어오는 것 중의 하나가 동성애 문제 아니겠어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판하면 차갑게 여기고 그렇게 동성애 이 시대 동성애를 가지고 사람들이 소리를 높이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변개치 말아야 될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⓵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성경의 진리의 말씀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⓶다른 하나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고결한 사람이에요.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진 그걸 무너뜨리면 하나님이 마지막 무너뜨리는 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도 소리를 내고 있는 이런 시대가 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라는 단어 유동하는 오늘 내일 따라서 달라지는 성이라고 오늘은 내가 남자가 되었다가, 내일은 원하면 여자가 되기도 하고 모래는 원한다면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성을 자기가 선택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뉴욕에서는 공식적으로 31가지 성을 인정을 하고 있어요. 지금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에는 우리 어린 자녀들이 성 정체성을 겪으면서 내가 성 전환 수술을 해야 되는가, 바꿔야 되는가를 고민할 때 부모님들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부모님들이 조언하고 권면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드는 법을 통과를 시켰어요.
 
이게 지금 상상이 안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캘리포니아 그리고 미국뿐이겠습니까? 한국에도 들어와서 언제 우리 앞에 펼쳐질지 모를, 눈앞에 펼쳐질 미래를 내일이 그날이 올 수 있는 겁니다. 왜 우리는 이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소리를 쳐야 될까요?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아닌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하나님 우리를 소중하게 만드시고 고결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인간에게도 가장 행복한 길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삶 속에 이런 타입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이 없습니까? 우리 사랑의 교회 모토가 무엇입니까? 제자 훈련 잘 해서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부름 받은 제자들일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 보내 받은 제자라고, 우리는 그렇게 외치고 있지만 여러분 세상에 보내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변화시키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너무나 멋진 훈련의 모터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말이에요. 우리는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당신들이 누구 길래 나를 변화시키냐고, 왜 그들이 변화가 필요하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를 향해서 나아가는데 세상의 목소리에 잠식되어서 우리의 사명을 잃어버린다면 그보다 더 큰 컴프로마이즈는 타입은 없게 될 것입니다.
 
※두 주 전에 저희 교회를 설립하셨던 우리 1대 목사님께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셨어요. 95년 동안 참 멋진 생에 너무너무 아름다운 인생을 마치고 주님 품 안에 안 계셨는데, 제가 하루 전날 뉴저지로 찾아뵙고 인사를 나누는데 하루 전날 돌아가시기 전에도 얼마나 왕성한 목소리로 또록또록하게 말씀을 나누시는지 그렇게 한 시간을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렇게 유언을 하세요. ‘내가 주님께 가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군천사와 함께 두 손을 들고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박수로 찬송으로 나를 보내 주십시오.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야 이 멋진 유언을 남기고 가시는 목사님 그리고 목사님께서 예배를 제가 말씀을 인도하고 마지막 축도를 할 때, 목사님께서 계속 손에 들고 계셨던 십자가가 하나 있어요. 평생을 간직하셨던 저 십자가 저 십자가를 헤어질 때 저의 손에 맡기시면서 하셨던 부탁입니다. “류 목사, 내가 평생 간직한 십자가 안에 이제 자네에게 맡긴다네.” 정말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저 조그만 나무 십자가가 거대한 바위 덩어리처럼 제 어깨에 부담으로 책임으로 내려왔습니다. ‘세상이 변한다 하더라도 자네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게나. 그 목소리 아니겠습니까? 온 세상이 바뀐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외에 수많은 길이 있다고 동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그렇게 외칠 때, 자네는 강단에 설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주님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것 외치게나.’
 
그 음성 아니겠습니까?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를 개척하시게 된 그 스토리를 듣고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50년 전에 교회를 세우셨는데 한 교회를 같이 몇 목사님이 섬기셨던 때입니다. 주일에 당시 한인 사회 한인 회장 투표하는 날인데, 그 교회 집사님이 회장 후보가 되신 거예요. 그러니 목사님께서 우리 모두 빨리 예배를 마치고 투표하러 같이 갑시다. 우리 집사님 되시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주일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자로 나아가야 될 그 날에, 이렇게 관광하는 목사님을 보고는 도저히 같이 참게 할 수 없다고 나오셔서 세운 교회가 저희 교회였습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냐고 묻겠죠. 그러나 주일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날이기에 거룩하게 주님 앞에 영광을 위해서 드린 날이기에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살아내신 겁니다. 그 믿음의 선조들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이렇게 주님 앞에 서 있는 거예요.
 
우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휴가철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님이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서 참 감격적으로 예배하는 것 주님이 바라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신 일인 줄 믿습니다. 오늘 한 분이라도 영상으로 예배하고 있는 우리 성도님 계십니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렇게라도 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병약해서 일어나지 못하시거나 연로하셔서 마음이 원하지만 차마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이슬람 국가에서 때로 예배할 수 없는 상황, 아마 다양한 상황이 있겠죠. 주님도 이해하실 수 있는 상황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 우리 성도님들 온라인으로 하시는 분들 중에 지금 일어나 걸으실 수 있다면 정말 온라인 예배가 누구를 위한 예배인지 한번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내 편의를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 지금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가장 하나님께 욕망이 되는 일이라고 그렇게 예배를 하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세요. 목사님 요즘은 하이브리드 시대입니다. 집에서 재택근무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예배를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사람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신약이라는 것은,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개인적으로 주님을 믿음으로 얻는 것이 구원이에요. 신앙은 목사의 부모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는 달라요. 예배라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영적인 모든 가족이 한 몸이 되어서 주님 앞에 드리는 게 이게 예배예요. 우리가 언젠가 천국에 이르게 되면 그날은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주님의 모든 몸 된 지체된, 오고 가는 모든 세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영적인 가족을 이루어서 주님을 예배할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 날을 미리 맛보는 것이 지상의 예배예요. 예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특권이 예배인 줄 믿습니다.
 
오늘 예배 예배를 댁에서 예배하시는 분들 중에 일어나실 수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여러분 나오셔야 될 예배는 3부 예배예요.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꼭 미리 준비하셔서 현장 예배 오셔서 함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예배 자리에 함께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은 이런 부모님의 예배를 통해서 어려운 시기에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예배하는 부모님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을 격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대정신이 아니라, 성경 정신으로 일어나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가 무엇일까요? 타협하지 아니하고 일어날 수 있는 두 번째 비결이 무엇일까요?
 
Q.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II. 둘째,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서라.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을 믿대 확실하게 믿는 믿음, 사랑의 여러분, 제가 한번 묻고 싶어요. 우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시장을 믿으십니까?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피를 쏟으시고 나를 구원하신 구원자라는 것을 정말 믿으십니까? 정말 그것을 믿고 있다면 이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머릿속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손과 발을 움직이고 내 삶을 움직이는 거 그것도 우리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 풀무뿌리에 집어던지겠다고 말하는 왕에게 이들이 하는 말씀이 뭐죠? 우리 17절 말씀 한번 보시겠습니까?
 
*다니엘 3:17,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 시리이다.
-아멘. 우리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를 능이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 건져 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왕은 천하를 재패 도망입니다. 풀무불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피어오르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그들의 믿음은 관념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삶을 움직이는 그들의 생각을 움직이고, 가치관을 움직이고, 죽음 앞에서 기꺼이 죽음을 결단하게 만든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어요.
 
사랑의 여러분한테 한번 다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정말 그분이 나의 죽은 유일하신 내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께 집중하고, 몰입하고 내 모든 삶을 살아내고 있나요? 이 믿음을 가지게 되면 직장의 문을 열 때 자세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 터가 되는 겁니다. 자녀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요. 내 꿈을 성취해 줄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청지기로서 자녀들을 말씀으로 훈련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게 달라지게 되는 거예요. 물질간이 달라지고 인생의 행복관이 달라지는 겁니다. 남들보다 비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그런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소 지을 때 그것이 최고의 행복인 줄 믿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섬길 때 주로 섬겼던 지역이 두만강 상류부터 하류까지 많은 곳에 다니면서 지하교회를 숨겼던 청년 시절이었습니다. 주로 섬겼던 지역이 남평 그리고 왕청, 도문 이런 지역이었어요. 제가 한 도문에서 우리 지하교회 청년들을 섬기러 갔을 때였습니다. 연길에 며칠간 머물다가 가는데 그 집 주인이 저에게 그렇게 말씀을 해요. ‘목사님, 그 도문에 가면 그 지하교회 리더가 여성입니다. 우리 교회에 사흘 동안 머물다가 갔는데 우리 집에서 사흘 동안 머물다가 갔는데 21살짜리 그 앳된 처녀가 시골로 간다고 하니까 걱정이 돼서 물었어요. 너 정말 가려고 하느냐? 갑니다. 겁나지 않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두렵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사실 신앙에서 그렇게 깊은 성도님들이 아니셨어요.그런데 이 말이 너무나 그들 가슴 속에 새겨진 겁니다. 4시간, 5시간 가까이 걸려서 그 도문으로 갔어요. 두만강 하류입니다. 바로 저 넘어 북한 초소가 여기저기 보이는 곳이에요. 제가 갔을 때는 그 자매가 온 지 1년 지났을 때고, 이미 7명의 청년들이 모여서 예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5시부터 8시까지 예배하고 말씀 나누고, 식사 후에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경제 활동을 위해서 술을 놓고 그리고 다시 예배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몇 명 아이들은 강 건너에 넘어온 북한 청년들이었고, 함께 이렇게 교회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 자매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역사도 행하시나 싶었어요. 처음에 그 마을에 왔을 때 젊은 처녀가 시골 마을로 들어오니까, 모든 마을 사람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경계하면서 말 한마디 걸지 않더래요. 여러분 중국에도 요즘 젊은이들 시골이 없죠? 다 도회지(都會地)로 떠나갑니다. 그 멀쩡한 처녀가 시골에 왔으니 혹시 북한에서 보낸 스파이는 아닌가, 통무다는 아닌가, 그렇게 했다가 1년 동안 이 자매가 아무 말 하지 아니하고 그 어르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한 정성으로 숨겼어요. 1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마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감동해서 우리 마음에 우리에게 저 천사를 보내줬다고, 그때부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하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줬어요. 제가 얼마 후에 그 자매를 그 시골에 보낸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선교사님 지금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을에 가서 교회를 세우라는 마음을 주셔서 누가 가겠냐고 했더니 자매가 자원을 했어요. 제가 한 달 생활비와 종이 한 장을 쥐어서 보내었습니다. 주소가 나와 있는 종이 한 장, 아무것 없이 그 시골 마을이 쓰여 져 있는 주소 한 장 들고 들어가는 한 자매, 두렵지 않는가?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사랑의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 절대적으로 믿는 그 하나님 그 믿음이 우리를 움직이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3명의 친구들, 그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들을 움직였던 유일한 한 가지는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절대적인 믿음이었어요. 그러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줄 믿었지만 세 친구는 하나님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지를 않았습니다. 뭐라고 말하죠?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설령 하나님이 우리를 저 풀무 불에 집어던져 그냥 쉽게 내버려 둔다 할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겠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왕이여.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 아니하신다 할지라도 왕이요 우리는 우상 앞에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딘가에 소중한 것을 들이기 마련이에요. 그리 아니 하신다 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들이려는 사람들 우리가 어떻게 타협하지 아니하고 시대의 정신을 거슬러 성경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내 생명이라도 드릴 수 있는, 정말 주님을 위해서 내 시간 물질 내 모든 것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 라는 이 마음 하나 있으면 그때 가능한 겁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헌신하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내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에는 다 내 자신 아니겠어요? 내 생명, 내 미래, 내 계획, 내 가정, 내 자녀들 우리가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그 33살의 그 젊은이가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당신의 피를 쏟으시고 당신의 온몸에 물을 다 쏟으시고 하신 그 일이 뭐죠? 주님은 조롱 받으시고 채찍질 맞으실 때,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보라고 조롱을 당하면서 우리 예수님 묵묵하게 하신 기도를 기억합니까?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주님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었어.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 그 33살의 젊은이 앞에 우리가 아낄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단 말입니까?
 
제 생에 너무나 부끄러운 고백이 하나 있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들어가서 저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서 심장이 뛰었던 그 대학교 1학년 때, 저희 대학교에 여러분 통일교 교주가 누구죠? 문선명죠. 문선명의 오른팔이 누군지 아시나요? 박보희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학교를 찾아오는데 대통령 만나는 사진 또 수상 만나는 사진 온 학교가 도배를 했어요. 아 제가 그때 예수님을 위해서 심장이 뛰었던 그 20대 어떻게 사탄의 종교, 거짓 종교 사이비 종교의 괴수가 우리 학교를 오는지 제가 맨 앞자리에 가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주님 제가 오늘 강의를 듣는 중에 영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내가 오늘 통일교회의 허를 찌르리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데 아 그 박보희 씨 제가 그 강연을 듣고 너무 은혜를 받아버린 거예요. 뛰어나가서 사인을 받았어요. 그분의 한 마디가 정말 제 심장을 찔렀습니다.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문선명 선생은 이 진리를 위해서 일곱 번이나 감옥을 다녀왔습니다. 나는 내 스승을 위해서 아직까지 한 번도 감옥을 다녀오지 못한 부끄러운 제자입니다.
 
여러분, 그 거짓 종교의 우두머리도 거짓 진리를 위해서 감옥 한 번 다녀오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정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자 하나님이 맞으십니까? 정말 그분이 유일하신 우리의 주님이 맞으십니까? 정말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그 청년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쏟으시고, 당신이 하나밖에 없는 심장을 죽어 있는 내 심장을 위해서 대신 주시고, 내 심장의 피가 그분을 통해서 뛰고 있다면, 33살보다 더 살아가는 날에 주님 앞에 죄송함을 여러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나를 위해서 피를 다 쏟으신 그 주님 앞에 내가 주를 위해서 피 한 방울 흘려보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본 적이 있으십니까?
 
사랑의 여러분, 이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그 주님을 믿는 믿음이 내 삶을 움직이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시대정신을 압도하는 신앙 정신으로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써서 시대 앞에 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세 사람의 고백 앞에 느브갓네살 왕은 분노했습니다. 풀무 불을 당장 일곱 배나 뜨겁게 달구었어요. 당장 세 사람을 풀무 불에 집어 던졌습니다. 얼마나 풀무불이 뜨거웠던지 이 세 사람을 던지는 그 군인들을 불태워 죽였어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서 오직 한 분 죽은 대신 한 분을 위해서 그들의 삶을 불꽃처럼 던진 세 사람의 마지막 최후 순간을 보고 있습니다. 연기처럼 바람처럼 한 줌의 죄로 사라져야 될 세 사람, 느브갓네살이 풀무 불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세 사람과 함께 또 한 사람이 그 안에서 걸어가고 있어요. 그 모습이 신의 아들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믿음으로 살아낸 세 사람을 예수님을 보내셔서 구원해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일들, 느브갓네살이 세 사람을 불러냅니다. 불탄 냄새 하나 없이 머리틀 거슬린 것 하나 없이 살아서 걸어 나왔어요. 느브갓네살이 내 사랑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라 천지를 호령했던 왕, 우상을 세우고 무릎 꿇고 절하라고 했던 그 왕의 입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라 천사를 보내어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와 이방 왕에서 나오는 높임을 받으신 우리 하나님, 우리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서서 믿음으로 써서 나갈 세상 왕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줄 믿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마지막 30절에,
 
*다니엘 3:30,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왕이 그들을 바벨론 도에서 높이 들어 사용을 했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 앞에서도 존귀 받았던 사람,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감사하지만 우리 하나님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올해가 2024년 파리 올림픽 있는 날이죠 있었죠. 100년 전에 1924년에도 역시 파리 올림픽이 있었어요. 그때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한 사람의 이름 기억납니까? 에릭 리들, 100미터에 세계 최고 금메달 유망주였습니다. 체레토 파이어, ‘불의 전차’라는 그 이름으로 잘 알려진 한 사람입니다. 영국을 대표해서 100미터를 뛰는데 100미터 하는 날이 주일이었어요.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나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거절했습니다. 본래 월요일이 뛰는 날이었는데 프랑스 혁명 기념일 때문에 주일로 바뀐 겁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뛰어야 되지 않냐고, 옹졸한 기독교 내라고 조롱할 때, 나는 주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입니다. 뛰지 않았습니다. 다니 그의 친구 에이브람이 뛰어서 영국에 금메달을 선사했어요. 200m에 에릭 리들이 나갔습니다. 주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동메달을 땄습니다. 400m는 전혀 주 종목이 아니었어요. 그의 친구 앤드로 린지가 그를 위해서 양보를 했습니다. 뛰었고 예선전에서 꼴찌로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제일 안 좋은 맨 가장 자리에 배정을 받았어요. 그리고 결승전 총성과 함께 뛰었고 47 06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불의 전차로 달려간 사람, 기자가 물었습니다. 주 종목이 아닌데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뛸 수 있었습니까? ‘200m터는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나머지 200m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뛰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명예, 모든 부위를 다 내려놓고 다음 해 중국의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순교사로 20년 동안 있다가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고, 외시앙 수용소에 잡혀 있다가 결국에는 그곳에서 순교를 당했어요. 그의 나이 44살에 젊은이었습니다. 400m를 뛸 때 믿으면 좋았던 그의 코치가 그의 손에 종이 한 장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무엘 말씀이었어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
 
*사무엘상 2:30b,
30b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 사람 인생입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인생, 여러분 무엇을 위해서 살다가 누구를 위해서 살다가 주님 앞에 서시겠습니까? 다 지나갈 일들입니다. 세속화가 우리를 엄습해 오고, 시대 물결이 우리를 엄습해 오는 이런 순간에 그냥 그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신앙 양심에 근거해서, 아니요. 라고 말하면서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주님 앞에, 우선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당당하게 살아갈 때 우리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도 주님을 알 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그렇게 살아갔어요. 이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사람들 시대를 거슬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하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약
시대정신을 거부하고 신앙정신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살아야 한다. 우리들의 말, 행동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 살아계신 하나님 영광을 받으셔야 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셔야 하며, 우리 모두 시대정신이 아니라 신앙정신으로 살기를 소망하고,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 타협 없는 자세로 서며,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서야 한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우상에게 절을 하면 이제라도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고 위협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말로 시작한 느부갓네살은 그들이 계속적으로 우상 숭배를 거절하자 태도를 바꾸어 생명을 담보로 협박했다. 그렇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끝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그들은 육체만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분께만 순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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