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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8월 11일)
제목: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Do You Realy to Be Healed?)
말씀: 요한복음 5:9, 14-15
대표기도: 백승준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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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5:9, 14-15,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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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광복 79주년인데 오늘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 한 분도 예외 없이 신앙의 경이로움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생수의 강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광복 79년 주년인데 어제 우리 토요 새벽예배 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79가 뭐냐? 칠천 기도 용사가 구국기도 하는 거다. 이게 꼭 좀 감이 와 닿는지 모르겠어요. 예 칠천기도용사뿐만 아니라, 오늘 이 앱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모두의 마음속에 오늘 정말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찬송할 때 우리가 이런 광복절을 할 때, 자주 부르는 찬송 중의 하나가 ‘시온의 영광에 빛나는 아침’ 찬송하셨죠잉? 하는데 그게 뭔가 마음이 확 와 닿는 게 뭐냐면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시온의 영광에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묶이고, 매이고 억업 당하고 상처받은 수많은 종들이 자유 함을 얻는다는 것이에요. 저 북한의 포로 된 상황을 저 묶인 자유 함을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독문 할 때도 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 우리가 마치 꿈꾸는 것 같아 포로들이 돌아올 때에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같았도다. 마치 꿈꾸는 것 같이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오늘 저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시리즈 열여섯 번째를 하면서, “정말, 네낳고자 하느냐?” 오늘 본당, 별관 또 방송으로 들어오는 분들, 또 모든 분들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간절함이 있는가 오늘 본문을 보면 38년 된 병자가 이제는 해도 안 된다. 그야말로 패배주의 이제는 비관주의 완전히 낙심하고 이제는 끝났다. 그 마음속에 주님이 불을 지르시는 거예요.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오늘 시작할 때부터 마음속에 “정말 내가 낫고자 하느냐?” 오늘 그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오늘 15절을 보니까, 아 예수님은 나를 고치시는 분이시다.
 
*요한복음 5:15,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38년대 병자는 아주 고침 받고 난 다음에 추림이 나를 고쳐 주셨구나! 주님은 마이 힐러, 주님은 나를 고쳐주셨구나! 주님은 우리 민족을 고치시고, 또 오늘 이 사회를 고치시고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을 고치시는 분이세요. 이걸 위하여 본문을 좀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5:1-2,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명절에서 올라가시는데 왜 올라가시는가, 2절에 보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쉽게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타, 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행각이 다섯이 있는 거 보니까, 좀 큰 못이었어요. 그 이름이 뭐라고요? 베데스다, 뜻은 왜냐 벧이란 말은 ‘집’이라는 뜻이고, ‘에스다’ 이렇게 이게 본래 해세드, 이렇게 여러분 헤세드가 뭔지 아시죠? 자비롭다, 은혜다. 이래 하셨던데 그러니까 ‘자비의 집이다.’ 그런 뜻이에요. 거기에 이제 다섯이 있는데, 거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3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있냐면,
 
*요한복음 5:9, 14-15,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왜 기다렸는가? 4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5:9, 14-15,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물이 동할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이 동하고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리지 낫는다. 이런 것 때문에 3절을 다시 한 번 보면,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어떤 사람이 많은 병자 그다음에 맹인, 앞을 못 보는 자, 다리 저런 사람, 혈기 많은 사람, 중풍 쇼크 받아가지고 온몸의 정상 가동이 안 돼, 이런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누워 있는 거예요.
 
오늘 저는 이 본문을 통하여 병에 대한 ⓵증상을 말씀할 거고, 그다음에 ⓶그 병을 진단하는 거 말씀할 거고, ⓷세 번째 치유와 그다음 ⓸처방 이 4가지가 오늘 본문 속에 일어나는데, 어쨌든 간에 오늘 여러분들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민족적으로 우리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있는 수많은 38년 된 수많은 난제의 병들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그걸 믿는 것이 믿음이에요. 자, 그런데 이 병자들이 인제 누워 있는데, 이게 마치 뭐냐 하면요. 겉으로 볼 때는 멀리 행각이 다섯이 있고, 베데스다의 아름다운 물이 태양빛의 물결이 반짝이고, 겉으로 볼 때는 멋있어 보이지만 속, 그 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아픈 사람들이 질병에서 누워있는 거예요. 누가 그런 이야기 했죠. 인생은 겉으로 보면 희극 같지만 그 속에 들어간 비극이다. 아 증상들이에요. 그래서 그 아파 있고, 누워 있고, 눈 못보고, 다리 절고, 혈기 마른 자들을 주님이 오늘 심방 오신 것이에요. 앞에 4장에 보면,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을 주님이 심방(尋訪) 가셨잖아요? 거기서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남편 데리고 오라‘’, 아주 정곡을 찔렀는데 오늘 5장에서는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심방(尋訪) 오신 주님께서 우리 교회는 좀 이렇게 교회가 큰 규모가 돼 가지고 제가 여러분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신방을 못한다. 할지라도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을 신방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자, 우리가 겉으로 볼 때 육신족의 이런 아픈 병도 많이 있지만 사실 오늘 이 사회를 보세요. 수많은 마음의 병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서로 경쟁(競爭), 시기(猜忌), 질투(嫉妬), 고통(苦痛), 수많은 증상(症狀)들, 여러분 지금 많은 분들이 지금은 이 스마트폰 AI 알고리즘에 빠져가지고, 계속 여러분들 얘기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SNS에 여러분들 필요한 거 올리고, 그랬는데 사실 따져보면요. SNS에 집착하는 분일수록 연구 자료에 의하면 불안과 소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고, 소셜 미디어의 사용 빈도가 많을수록 사회적 불안과 외로움의 증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괴로움과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증상들이 있어요. 다 나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이 베드스타에도 모든 것이 다 나쁘진 않아요. 나름 거기에도 나름 인도주의가 있고 서로 좀 도우려는 마음도 있고 그다음 또 뭐 쫌 이렇게 배려도 좀 하고 어 이렇게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낫느냐, 안 났느냐, 하는 그 치열한 어떤 그 어떤 순간이 오면, 모멘트 순간이 오면요. 사람들이 인도주의 서로 배려하고 서로 관심 좀 있는 것 같고,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치열한 아귀다툼의 현장이 되는 것이에요. 치열하게, 소위 물이 동하는 그 순간만은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는 거예요. 먼저 뛰어 들어 갈려고, 먼저 나으려고, 서로 밀고 당기면서 싸우는 것이에요. 우리 인간이 가만히 있을 때는 나름대로 배려하고 인도주의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 가지고, 민낯이 드러나 가지고, 서로 살려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이 극심한 갈등들 마찬가지로 베데스타 비극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시고, 심방(尋訪)하시고 그리고 이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난 다음에 명실상부하게 이름 그대로 베데스타 은혜의 집이 된 줄로 믿습니다.
 
I. 인생 비극의 축소판 베데스다(3-4):증상(症狀).
 
-제가 오늘 우리 가운데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사실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는 사람처럼 이런저런 상처를 가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그런 성향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주의 음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첫 번째 제가 이제 증상(症狀) 문제를 말씀드렸고, 이제 주님께서 진단하시는 것입니다. 6절에 뭐라고 지금 말씀을 하냐면,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5:6,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러시되 네가 뭐예요? 낫고자 하느냐? 제가 오늘 “정말 내가 낫고자 하느냐?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서 나와 있습니다.
 
II.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6절):진단(診斷).
 
-네가 정말 낳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라고 그러셨는데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여러분, 이 질문은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입니다. 어떤 인간이 네가 낫고자 하는데, 내가 고쳐주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예수님은 자연계를 장악(掌握)하시고, 예수님은 질병 계를 장악하시고 예수님은 영계를 참가하셨어요. 예수님은 질병 계. 수많은 기적같이 수많은 아픈 사람들, 수많은 나병 환자들,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주님이 고쳐 질병계를 장악하시고, 이 누구이길래 이런 기적 같은 병을 치유(治癒)하시는가? 폭풍 이는 바다를 주님이 잠잠케 하실 때, 이 누구에게 이 폭풍이라는 바닷가를 잠잠케 하시는가, 소위 자연계를 주님께서는 통제하시고, 그다음에 악한사탄 마귀 귀신들을 쫓아내는 주님의 영계(靈界)를 장각하시고, 그러니까 이 소위 신성을 지니신 질병계를 장악하신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냥 주일 강단에서 설교 얘기하는 정도 들리는 말씀을 듣지 말고, 오늘 주님께서 한 분, 한 분, 심방 오셔가지고,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이 민족의 갈등이 치유되기를 원하느냐?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가지고, 참으로 마음속에 간절함을 갖고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적당히 원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일사각오로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오후에 청계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합니다. 거기에 올라가 가지고 뭐 바위에서도 기도할 것이고, 간절하게 시간 되면 미리 올라와서 기도를 하시는데, 여러분, 거기서 한번 결사적인 각오로 주님께서 주신 음성인 네가 오늘 정말 낫기를 원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여러분들 마음이 주님 앞에 마음이 열려 가지고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원함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그냥 결단하는 축복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치유 자 되시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인 줄로 믿습니다. 치유 자 되시는 주님께서 이 질문하실 때, 거기에는 내가 너를 고쳐주기를 원한다는 간절한 목자의 심정이 있는 것을 기억하셔야 되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는 교회라고는 처음 오신 분도 있을지 몰라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아프고 이런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서 살다 보면 수많은 문제가 치유되지 않아 가지고 큰 짐을 주고 있을 때에, 오늘 처음교회 오신 분들 가운데 주님을 잘 몰라도 오늘 마음의 소원을 하세요. ‘주여 내가 낫기를 원하나이다.’ 낫길 원하나이다. 그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들을 길을 주시고 마음이 열리기를 바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왜? 이 병자에게 이 말씀을 하셨느냐면 이 병자의 반응을 좀 들어보니까 이 병자의 마음속에 상처가 있고, 병자가 아 이제는 나도 끝났다. 하는 비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래요. 심방 오신 이유가 7절을 보세요. 뭐라고 나왔냐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6절에 물으니까 같이 보죠.
 
*요한복음 5:7,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 무슨 말입니까? 이 대답에는 그의 자기 연민(憐愍)과 불만(不滿)이 담겨 있어요. 나는 누워있기 때문에 움직임이 빠르지 못하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 나를 들어서 물에 넣어줘야 하는데 아무도 나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그냥 널브러져서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니까 그의 마음에 이 답답함과 안타까움으로 부정적인 생각과 상처받은 마음이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뭐라고 해요. 다시요.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이 말에는 자기 불만과 연민이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불평하면 자기연민에 빠지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 속에 주님이 허락하셨던 기쁨 자원이 고갈이 되고, 소망자본 희망자본이 다 없어지고, 나중에는 냉소주의, 부정적 의심만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께서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는 이 질문 안에는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단지 육체적인 치유에 관한 질문 정도가 아니라, 이 말씀 이 질문에는 그 병자(病者)를 전인적인 치유로 초대하시는 질문이 될 수가 있는 것이 그리고 이 질문에는 종합적으로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는 초대장(招待狀)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제대로 은혜를 받고 치유가 되면 몸도 따라오고 몸도 치유가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자,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38년도 병자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처음 병들어서 5년 10년 될 때까지는 사람들이 와서 너 낳을 수도 있어, 그래 나도 나을 수가 있을 거야. 그리고 너 낫기를 원한다고 이런 마음의 소원이 계속 나름대로 자리 잡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병이 만성이 돼 가지고 5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30년이 되고, 35년이 지나니까 자기도 모르게 오랜 병에 익숙해져 가지고 병에서 나을 것 같다고 생각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병자는 38년이니까. 예를 들어서 20살의 병자가 되었으면 58세가 된 겁니다. 거의 회갑 수준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사회의 평균 나이 평균 수명을 다 초과(超過)해버렸습니다. 그래갖고 뭐 이제 내 인생 끝났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는 그 베데스타 전각에 수많은 병자들, 맹인들 다리 저는 사람들, 혈기 마른 사람들, 이 사람들을 다 이래 지나셔 가지고 다, 다리 저는 사람도 지나고, 혈기 마른 사람도 지나시고, 맹인도 지나가지고, 이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와 가지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낫고자 하느냐?” 부드럽고 따뜻하게 질문하실 때, 갑자기 그 병자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되고 떨린 거예요.
 
오늘 우리 가운데 오랜 시간 병으로, 오랜 시간 큰 상처로, 마음이 굳어버린 채 자기 자신도 포기(抛棄)해 버린 어떤 고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주님은 지금 맹인들, 다리 저는 자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서 이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오신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주님은 여러분들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이 예배시간을 통하여 다가오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주님이 여러분들을 다가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셔서 질문하십니다.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죄들 좋지 못한 고질적인 습관 등이 있다고 해 보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끊기를 원하겠지요? 은밀한 죄나 고질적인 습관들 근데 실상은 38년 된 병자처럼, 만성적으로 반응해 가지고 그 죄에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원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원하기는 원하는데 만성적인 죄의 습성이 주는 즐거움에서 진심으로 벗어날 의지가 없는 거예요.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잠시 죄악의 낙이 있기 때문에 잠시 죄의 즐거움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 질문이 내게 능력으로 다가오지를 않는 것이에요. 여러분, 그냥 원하는 거 하고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다른 거예요.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이 희망과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일사각오의 결단을 하는 것은 다른 것이에요.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시편 145편 18절 제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145:18,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아멘 진실로 원하는 축복을 이 시간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도 공동체가 같이 기도하고, 같이 찬양하고, 같이 준 앞에 목 놓아 우리가 마음을 같이 할 때, 하나님이 이 자리에 기름 부음이 있게 되는 것이 소위 은혜의 불이 떨어지게 돼있는 것이에요.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남북문제 지난 79년 동안, 옛날에 어릴 때 저희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렇게 하면 뭔 가슴이 좀 찡한 게 있어요. 근데 지금 2030 시대 세대 또 4050 40대 50대도 보면 실질적으로 저희들 세대만큼 통일을 그만큼 원하는가?

 
작년에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에서 평화통일 연구소에서 통계가 나왔는데 지금 20대 30대에 있는 젊은이들은 별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 통일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 이런 분들이 76프로예요. 40대 50대도 뭐 57프로 이상, 그러니까 원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이게 지금 일반적인 생각이에요. 이제 만성이 돼버린 거예요. 정말 원하지를 않는 정말 그런 이게 그만큼 어떤 긴박성이 약해진 거예요. 절박성이 약해진 거예요. 그러니까 물어보십시다. 통일을 정말로 원하느냐의 차원을 뛰어넘어 가지고 여러분 북한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때 중국이 장악해야 되겠습니까? 다시요. 중국이 장악해야 되겠습니까? 누가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해야죠. 북한이 무너질 때 러시아가 장악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거는 90프로 이상 우리가 다 공감할 것이에요. 오늘의 이 마음속에 하나님 남북문제에서도 우리가 38년 된 병자와 같이 그냥 만성이 돼 가지고 적당히 원하는 거였다면 스님 정말로 원하는 것으로 내 마음을 바꾸어 주시옵소서. 북한의 문제는 예배의 문제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북한이 김일성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사상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여 북한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여 주십시오.
 
여기에 대해서 아 그렇지, 하고 적당히 겨우겨우 요나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에스겔처럼 다 희망이 없고, 다 마른 뼈가 되고, 다 희망이 없는데 마른 뼈가 살겠느냐? 그랬을 때의 에스겔의 마음속에 뿔이 붙어 가지고 수여 영이 마시면 마른 뼈가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그 대언이에요. 대언! 그리고 이 MZ 세대 젊은 세대는 이제는 해도 안 된다. 우리 선배 시대는 뭐 열심히 하면 집도 사고 다 아는데 이제는 우리 희망이 없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MZ세대는 그래도 세계로 나갈 수가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듣고, 네가 정말 제대로 살기를 원하느냐? 물었을 때 우리 젊은 세대도 그렇습니다. 하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로 임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자, 이제 저는 증상 파악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진단을 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치유가 있습니다. 세 번째 이제 팔절을 보니까 뭐라고 나와있는가,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5:8,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III.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치유(治癒).
 
-치유입니다. 38년 된 병자와 같이 불평할 가능성이 많은 우리 속성을 보시고 치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일어나 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담대한 믿음의 강철 신발을 신고 일어나라. 이것이 바로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인 줄로 확신합니다. 능력의 말씀이 사람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 병자의 입장에서는 몸 가누기도 힘들고, 앉기도 힘들고, 서는 것은 더 불가능한데 주님께서 갑자기 일어나 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거예요.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살아있고 능력 있는 주님의 음성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성령을 새바람이 불어야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령하시니까, 기적(奇蹟)이 일어난 게 된 거예요. 마치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그 무에서 빛이 유가 창조되고 나사로야 일어나라, 그러니까 주님께서 명령하시니까 시체가 벌떡 일어나 걸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레마의 말씀이 돼 가지고 일어나 걸어가라. 그랬을 때 ‘주님 그렇습니다.’ 하고 내 삶에 불평의, 어떤 내 삶의 불신에 모든 돗자리를 번쩍 들고 걸으라.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은 38년 된 병자가 뭉그적거리고 누워 있던 그런 것들을 그걸 들고 일어나는 거, 그것은 영적 자립심을 키워주시고 거룩한 홀로서기를 하라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오늘의 말씀이 우리 민족과 통일에 관해서도, 패배주의와 부정적 운명주의의 돗자리에 누워 있는 우리 민족을 일깨우는 주님의 천둥소리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겁니다.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들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진짜 원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제 지난 몇 주간에 이렇게 말씀 옥상도 하고 이렇게 있는 동안에 우리가 흔히 아는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의 모여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알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점쟁이 앞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 관심 그거 비교가 안 되게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기를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근데 그 하나님이 뜻 멀리 찾을 것이 아니에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자 이 말씀 여러분들에게 능력의 말씀이 돼야 되는데 여러분은 물어보십시다. 항상 기뻐하는 게 힘들어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게 힘들어요. 범사에 감사하는 게 힘들어요. 모든 사람들은 다 힘듭니다. 그래도 그 셋 중에 항상 기뻐하고, 고거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거,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거, 어느 게 제일 힘들어요. 뻔합니다. 게으르고 저기 뭡니까? 좀 부지런함이 약한 사람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게 약하고 그 다음에 또 완벽주의자들 우울증에 있는 사람들은 뭡니까? 항상 기뻐하는 게 힘들고, 너무 똑똑한 사람들은 또 범사에 감사하는 게 힘들고, 그런데 이게 권세 있는 주님의 능력의 말씀이거든요. 이게 오늘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을 때,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항상 기뻐하고 시집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되는데,,, 저는 제가 뭐가 제일 약할까요? 말씀 안 드려요 예 다 우리 약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한다는 이게 사실 어떻게 불가능인데 이거 어떻게 가능하게 될까? 제가 늘 암송하고 제가 좋아하는 구절,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찬성할지로다.’ 주님이 날마다 우리 짐을 져준다고 생각하면, 그게 치유 음성 되게 하셔서 그래도 감사할 수 있고, 그래도 기도 할 수 있고, 그래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니까 오늘 네가 정말 낫길 원하느냐 주여 정말 그 말씀 가운데 기쁨과 감사와 기도가 우리의 것으로 자리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마지막 이제 처방전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 제가 ⓵증상(症狀)을 말씀드렸고, 그다음에 ⓶진단(診斷)을 말씀을 드렸고, 제가 이제 ⓷치유(治癒)를 말씀드리는데, 권세는 주님의 말씀인데, 자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났을 때 나타난 2가지 현상이 있는데, 그게 처방(處方)이에요. 하나는 뭐냐 하면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에 권세가 말씀의 능력이 실제적으로 내게 와 닿으면요. 뭘 느끼는가 하면, 1)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 주님의 인재가 그렇게 리얼해져요. 그러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 하는 것이 그렇게 실체화가 된다는 것이네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내 삶의 환경 내 삶의 모든 처지를 2)주님이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 그걸 느끼게 되는 것이죠.
 
오늘 여러분의 여러분과 저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도 변개할 수 없는 최고의 확신이 뭐냐 하면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에요. 그거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시는 거예요. 물어보겠습니다. 내일 아침 해 뜹니까? 안 뜹니까? 자 다시요. 자리를 들고 일어나기 위해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건 처방전인데 다시오.
 
IV. 자리를 들고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14-15):처방(處方)전.
 
-내일 아침 해 뜹니까? 안 뜹니까? 이거는 변경할 수 없는 자연의 놀라운 법칙이에요. 내일 아침 해가 나 뜰지 모르겠다.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에요. 생명이 없으니까 모르는 거죠.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었어요. 내일 아침에 해가 뜨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이 나를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거예요. 예 놀라운 진리에요.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 노후대책(老後對策)이란 걸 합니다. 노후대책 1순위 건강이다. 2순위 돈이다. 3순위 또 뭐 있나요? 친구다. 이런 거 있지만 여러분, 노후대책의 최고의 노후대책이 뭐냐면요. 주님인 나와 함께하시는 이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 날마다 일마다 때마다 실체 있게 경험하는 것이에요.
 
오늘날 우리나라에 고독사(孤獨死)가 너무 많아요. 홀로 있다 보니까 너무 외로운 거예요. 근데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요. 고독사가 있을 수가 없어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너가 정말 낳고자 하느냐’ 질문하시는 그 주님 때문에, 나를 신망 오시는 그분 때문에, 내 삶을 처방하시고, 진단하시고, 보여주시는 그분 때문에 우리엔 고독사가 없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노후대책 0순위가 주님이 나와 함께 임재하시는 것을 깨닫는 것이에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독사가 없다는 것을 믿으십시다. 따라 하겠습니다. 신앙인에게는 고독사가 없다.
 
주님이 함께 계시는 한 우리에게는 고독사가 없는 줄로 믿는 것입니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에요. 손 내밀어 줄을 만져라. 주 지나가신다. 이런 마음의 손을 들면 주님이 남께 인지하시고 동행하는 것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최고의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노후 대책이 뭐냐, 정말 너가 낫고자 하느냐고 질문하시고, 심방하시는 예수님의 임재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니까 그러니까 우리 우리 교회는요. 고독사가 없는 공동체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유일한 이 시대의 사회적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깨닫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제 새벽에 제가 많이 강조했는데 인생은요, 2종류의 남에게 에너지를 빼앗는 사람이 있고, 남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주님이 너가 정말 낫고 자느냐, 이런 치유를 경험한 사람은요, 반드시 그 사람 만나면 용기가 얻어지는 거예요. 그 사람 만나면 영감을 받는 것이에요. 그 사람을 만나면 다시 한 번 기백(氣魄)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주신 이 은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영감과 용기와 기백을 주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거죠.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노후 대책이 되는지 몰라요. 그리고 또 하나 처방전 14절을 다시 한 번 크게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5:14,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아멘 다시는 뭐예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사람이 왜 38년 된 병자가 되어 가지고 38년 동안 그 병 때문에 신음(呻吟)하고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중의 하나, 아마 이 사람들 약점이 있고, 죄(罪)도 범(犯)하고 그래갖고 어려움이 있었을지 몰라요. 근데 주님께서는 이제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 다시는 그러지 말라. 예수님이 좋은 의미에서 거룩한 경고를 하시는 거에요. 이제 팔다리가 건강해져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게 됐으니 그거 갖고 옛날처럼 또 잘못된 버릇 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 팔다리 가지고 건강을 가지고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라.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회에 하나님 많은 치유를 주시고, 축복을 하시고, 선진국에 진입하게 하시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대한민국이 세상에 수많은 나라에 영감을 주고, 용기를 주고, 길을를 보여주고,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고 그래서 오늘 79년 된 광복절을 맞이하여 모든 묶인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신실한 남녀 종들, 성도들 주님의 심방을 받아 그렇습니다. 간절히 원해갖고 주님과 여러분만이 아는 놀라운 치유의 현장을 일마다 때마다 경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가 가운데 우리 시대 때 페스트 가스펠 송에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손 내밀어 줄을 만져라.’
 
♬나의 등 뒤에서~~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 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 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지난 79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고통의 상황이긴 하지만 만약에 피 흘림 없이 복음적으로 평화 통일만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이 고통의 과정도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정신 차리고 이것도 내 마음대로 살지 아니하고, 이것 때문에 주님 앞에 더 긴장해서 더 하나님을 집중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게 된다면 이 과정도 나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저 북한은 주님 불쌍히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약
주님은 질병계, 자연계, 영계의 주권자이시니,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와 같은 나를 심방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실 때, “네 주님, 낫기를 원합니다.” 일사각오로 대답하여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을 들려주실 때, 오래 묶여 있던 나의 자기연민과 불평과 패배주의에서 일어나 믿음의 강철 신발을 신고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 사랑의 교회의 7천 기도용사가 청계산 산상 기도회에서 ‘2033-50 비전’을 위해 구국 기도를 드릴 때, 대한민국이 79년 된 분단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평양에서 특새 하는 그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교회와 나라가 승리하는 체험을 기대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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