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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8월 17일)
제목: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
말씀: 열왕기상 13:11-18, 31-32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
설교자: 유성택 목사님(정윤교회)-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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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3:11-18, 31-32,
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의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하고 또 그가 왕에게 드린 말씀도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한지라.
12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의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 그가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그가 타고.
14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15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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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 우리가 같이 나눌 말씀은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 이라는 제목입니다. 신앙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절반은 신앙의 절반은 세상에 발을 담그고 있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죠. 한국 교회가 왜 힘을 잃었는가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경계선에서 애매모호(曖昧模糊)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바닷물을 짜게 하는 것은 3프로의 염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 오늘 설교는 나는 그 3프로이냐? 이거를 묻는 문제 제기입니다. 자 오늘 본문의 배경은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왕 시대입니다. 여로보암은 정치적인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희생을 했어요. 그 당시에 경계선에 있는 신앙인들을 많이 양산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어 신앙적이지 못했던 왕들에 대한 평가로 붙었던 불혹이 여로보암의 길을 갔더라 아니겠습니까? 그가 대표적으로 했던 신앙의 회유 정책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자막을 보시면, 열왕기상 12장 31절로 33절입니다.
 
*열왕기상 12:31-33,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몇 가지 말씀들이 나와요. 산당을 지었다라고 기록이 돼있습니다. 두 번째는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다는 거예요. 또 32절에 보시면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였다. 라는 것이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당을 지었다는 것은요, 왜 그렇게 했느냐 라면 나라가 북과 남으로 갈리고 난 다음에, 경건한 성도들이 남쪽으로 자꾸 내려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북쪽에 대표적으로 밷엘과 단에 산당을 지었죠. 또 경건한 제사장들이 남쪽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제사장의 숫자가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자격이 없던 무자격 제사장들을 세웠던 것이죠. 종교가 약해지겠죠. 또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했다.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초막절 가을절기가 되면 추수의 때와 장막절에 그 1주일의 절기가 겹칩니다. 생업으로 한참 추수를 해야 되는 때에 갑자기 1주일 절기를 지키기 위해 쉬어야 하니, 신앙이 약한 사람들의 원성이 있었죠.
 
여로보암은 이걸 파고들어서 절기의 날짜를 바꾼 거예요. 송아지 제사도 이때 드렸습니다. 자 이렇게 되다 보니 경건했던 성도들은 모두 북이스라엘을 떠나,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불신왕의 사건이 벧엘 사건인데요. 벧엘에 송아지 제사를 드리게 되었고, 그곳에 왕이 같이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은 이제 편의상 젊은 선지자로 호칭 하겠습니다.
 
젊은 선지자가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제단아, 제단아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 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내 위에 분양하는 산당 제사장을 내 위의 제물로 봤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제사 드리는 제사장들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審判)할 거라는 거죠. 왕이 한편에 있어요. 그런데 젊은 선지자가 와서는 이와 같이 왕이 집전하고 있는 제사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 거죠. 하나님의 뜻이죠. 그리고 또 징조(徵兆)를 말씀합니다. 징조로 여기 있는 제단이 갈라지게 될 거다 그리고 여기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왕이 기분이 나쁩니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더니, 손을 뻗어서 저놈을 잡아라. 한 거죠. 이때 왕의 손이 굳어버려 움직이질 않는 거죠.
 
너무 깜짝 놀라죠. 그리고 나자 곧 예언대로 제단이 갈라져 쏟아지게 됩니다. 아! 이건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리고 선지자에게 부탁합니다. 선지자 내 팔을 낫게 해주시오. 그리고 선지자는 그의 팔을 낫게 합니다. 자, 이제 여로보암 왕 때 있었던 대표적 불신왕의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젊은 선지자가 고마워서 왕은 집의 절반을 당신에게 줄 터이니, 우리 집에 와서 왕궁에 와서 쉬다 가시오. 그러나 선지자는 그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죠.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돌아가지 말아라. 네가 왔던 곳으로 곧장 와라.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 이 시대가 바로 여로보암 왕 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 우리가 살펴볼 인물은 늙은 선지자예요. 성경 상 표현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호칭을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건과는 조금은 연계성이 없어 보이는 인물인 늙은 선지자, 자 성경본문을 보죠. 열왕기상 13장 11절인데요. 한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3장 11절,
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의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하고 또 그가 왕에게 드린 말씀도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한지라.
-자 여기 색깔로 표시가 되어 있는데요. 몇 가지 정보가 나옵니다. 정보를 보시면서 자 오늘 이 늙은 선지자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 짐작하면서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요. 자 일단은 정보가 몇 가지 나오는데 첫째, 거주하는 곳이 벧엘입니다. 배달은 조금 전에 왕이 산당을 지었던 마을 가운데 하나입니다. 벧엘, 단, 자 이곳에 살고 있었고, 나이가 꽤 있습니다. 늙었다라고 되어있으니까요? 그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아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아들들, 우리 시대도 자녀 키우면 여러 명 있으면 돈 많이 들죠. 그죠 어 아들들 키우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을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조금 전 이야기 나눴던 베델에서의 산당제사, 왕이 있었던 그 자리 젊은 선지자가 벌였던 이 일들, 그 사건의 현장에 있었어요. 그걸 보고 아버지께 돌아와서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이런, 이런 일이 조금 전에 있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랍니다. ‘그래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그 사람은 어디로 갔어?’ 묻게 되죠. 그리고 그 사람이 간 장소를 듣게 되자 나귀에 안장을 지워서 젊은 선지자를 따라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사건이 벌어진 그 일 현장에 벌어졌던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영적 열망이 그 얘기 있었다는 거예요. 늙은 선지자, 자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여러분 한번 짐작해보라고 했죠. 자 어떤 사람일까요?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는 거죠. 자 그리고 쫓아가서 상수리나무에서 그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떡을 먹고 쉬다 가십시오. 저와 대화를 합시다. 당신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는지, 왕 앞에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지 한번 저에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라고 그에게 권하게 되는 것이죠. 자 그리고 드디어 3장 13장 18절 이 구절에 다다라서요.
 
*열왕기상 13:18,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자 여러분, 이 사람의 정체 아시겠습니까?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습니까? 단적으로 말하기는 좀 어렵겠지만, 노란 글씨 그죠? 노란 글씨를 보니 아 이 사람은 선지자긴 하는데 거짓말하는 선지자구나! 라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몰랐어요. 선지자인가부다 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젊은 선지자가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하니 영적인 일에 관심이 많고 그 사람을 따라가서 그에게 맞은 것도 좀 주고 싶고 이런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18절을 보니 그는요 선지자이긴 하지만 거짓말하는 선지자였다는 거예요. 영적인 일에 관심이 많지만 그는요 나쁜 일을 했어요. 그리고 젊은 선지자를 도우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돕기는커녕 뒤로 이어가보면 이 일로 인해서 젊은 선지자는 죽게 돼요. 그의 정체가 애매모호했다는 거죠. 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좀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요, 유성택입니다. 버들 류(柳)에, 거룩할 성(聖)에, 택할 택(擇)입니다. 거룩하게 택함 받았다. 이름 괜찮지 않습니까? 네 괜찮죠. 저희 이제 형제자매가 7명입니다. 위로는 이제 누나가 6, 예 제 아들은 네 저 하나입니다. 귀하게 자란 것 같습니까? 아버지가 이북분이신데, 어머님은 경남 분이시고요. 예 네 피난 내려오셔서 만나고 결혼하셨고, 자녀를 낳았는데 딸만 낳다 보니까 이제 여섯째를 낳고 난 다음엔 포기할 법한데요.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제 서원 기도를 하시게 됐습니다. 아들 낳으면 목사 시키겠다. 그리고 이제 제가 곧 태어나게 됐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너는 목사가 돼야 된다.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제 꿈도 어릴 때부터 목사였어요. 그래서 신학을 하게 되었고, 2007년도 어 12월 달에요. 사랑의 교회 부름을 받아서 여기서 이제 부목사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시키는 찬양 팀, 아까 찬양 너무 은혜롭게 잘 들었는데요. 또 부르기도 했고요. 1대 인도자입니다.
 
제가 그리고 예배 팀을 섬기고 목양을 섬기고 제자 훈련하고 특새를 섬기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섬겼어요. 예배팀장으로 있을 때였는데 주일 예배 6부, 그 당시에 드렸는데요. 그때 어 예배를 마치고 나면 우리 오정현 목사님께 주일 예배 보고를 드렸습니다. 어떤 때는 많이 성도들이 오기도 하지만 어떤 땐 적게 오는 날도 있잖아요. 주일 보고를 드리면, 여러 보고 가운데 인원보고도 드리는데요. 적게 온 날에는 목사님이 물어보십니다. 유목사, 오늘은 성도들이 다 어디 갔냐? 이렇게 저한테 이제 물어보세요. 그럼 뭐라도 대답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가 이렇게 대답해 목사님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요. 근데 비가 안 오고 날씨가 좋은 날도 적게 올 때가 있어요. 유목사 어디 갔냐? 그러면 제가 또 대답합니다. 목사님 오늘은 날이 너무 좋아서 다 나들이 갔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 그때는 답변하기가 급급했어요. 근데 이제 지금 담임 목사 나온 지 10년 차인데요. 담임 목사의 마음을 그 당시에 되고 보니, 우리 오정현 목사님의 마음을 이해 하겠더라구요. 한 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소중하며 또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배를 드리지 않고 신앙에서 떠나가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참 이해되더라는 거죠. 지금은 이제 하남에 있는 미사 지구에 있는 정윤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데, 제가 목회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다수가 제가 사랑의 교회에서 배웠던 것들이에요. 예배 그리고 제자훈련, 찬양과 기도 이 모든 것들이 여기에서 배웠던 것들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그런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목회자로서 많은 걸 배우게 한 우리 오정현 목사님 또 우리 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들, 머리 숙여서 감사의 인사를 1번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자 여러분들 제가 저의 소개를 하니 조금은 저에 대해서 좀 알게 되죠.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늙은 선지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어요. 그러나 선지자 그가 그렇게 모를 수밖에 없었던 건 선지자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죠. 젊은 늙은 선지자가요 그러니 모르죠. 선지자답게 살지도 않아요. 어떤 때는 선지자라고 하지만 어떤 때는 진리가 아닌 거짓을 말하는 변절자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어요. 아마 동네사람도 그가 선지자라고는 하지만 진짜 선지자 맞나? 그의 아들들도 우리 아버지가 선지자라고 하는데 선지자가 맞나? 자신도 혼돈스러웠을 거에요. 젊은 날에는 내가 선지자였지만 내가 너무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떠나 있었어요. 자신도 몰라서 혼돈스러웠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 부르느냐,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그렇죠.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 자신이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고 선지자답게 살지 않기 때문에 그는요 결국 경계선에 서게 된 거예요. 이름은 분명히 선지자이지만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많아서 젊은 선지자를 따라가기까지 했지만, 그러나 그는 선지자답게 살지 못해요. 그는 경계선에 서 있어요. 성경에 이런 인물들 많습니다. 롯,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약속해 땅을 고향 땅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갔지만 그는 몇 십 년이 흘러 소동과 고모라의 경계선에 서게 되죠.
 
니고데모, 예수님에 대한 감명을 받고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자신의 동료들이 내가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는 걸 드러내기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언제 찾아가요 예수님을 밤에 찾아가잖아요. 내가 제자다움을 내가 선지자 다움을, 내가 성도다움을 드러내지 않을 때, 그 맛을 내지 못할 때 소금 빛 그럴 때 우리는 어디에 거하게 돼요. 경계선에 거하게 되는 거예요. 오늘 늙은 선지자가 왜 그렇게 됐을까? 한번 묵상해 봤습니다. 어쩌면 시기를 놓쳤을 수 있어요. 다른 동료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으로 남하해서 난 신앙을 지키겠어. 마치 청교도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그때를 놓쳤던 거죠. 아 내년에 갈게 2년 후에 갈게, 5년 후에 갈게, 그러다가 시간을 놓친 거일 수 있어요. 자녀 교육이 문제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아들들이 많잖아.
 
아들 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하고 난 다음에 갈게, 이랬을 수 있다는 거죠. 경제적인 이유일 수도 있어요. 다시 말하면 여러분, 그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죠. 그랬기 때문에 결국 그는요. 선지자이긴 하지만 선지자답지 못하게 살아갔다는 거죠. 여러분, 그렇다면 세상 속의 성도는 모두 다 경계선에 서서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것에 눈감아 줘야 될까요? 아니에요. 아브라함, 노아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 사람들이 그의 믿음을 흔들려고 했지만, 아브라함, 노아 결코 경계선에 서지 않았다는 거예요.
 
성도 여러분,
우리 이야기를 한번 해 봅시다. 특별히 우리는 사랑의 교회 토비새 그리고 칠천 기도 용사로 부름 받았습니다. 맞습니까? 맞아요. 여러분 우리는 사랑의 교회 아닙니까? 맞습니까? 아멘, 맞아요.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기도의 용사다워야죠. 사랑의 교회다워야죠. 부르짖어 기도하고, 기도의 자리를 지켜내야죠. 경계선의 성도가 아니라 하늘의 성도로 우리가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내 자녀를 믿음으로 키워내고, 글로벌 영적 인재를 길러 내야 돼요. 그리고 한국 교회를 그리고 세계교회를 살려내는 제사장적 책임을 다 감당해 내야 되는 것이죠. ‘2033-50 비전’ 이뤄내야죠 여러분 제가 지난주에 사랑의 교육 검색을 했어요. 검색을 했더니, 청계산에 여러분들 기도하셨더라고요. 제가 참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루 종일 예배드리고 저녁에 올라가서 그 산에서 부르짖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아 그래 이게 사랑의 교회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이와 같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면서 복음의 깃발을 분명히 들고 나는 경계선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성도야. 이걸 보여주는 저와 여러분이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절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15,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복음으로 냉철해지고, 차가워져야죠. 그리고 우리가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 보면 두렵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인생의 중반과 후반을 향하여 살아가면서 경계선에 서서 내 인생을 허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땅의 일이 아닌 저 하늘의 일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골로새서 3장1절로 2절, 1번 더,
 
*골로새서 3:1-2,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할렐루야 여러분, 하늘의 것을 생각하며 하늘에 속한 성도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경계선에서 벗어나 사랑의 교회 믿음의 깃발을 흔듭시다.’ 확실하게 흔드는 믿음의 깃발을 흔드는 저와 여러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자 여러분, 우리가 이야기를 했으니 본문으로 다시 한 번 잠깐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자 늙은 선지자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 선지자가 젊은 선지자를 만나게 되죠. 그리고 그에게 거짓말을 해서 집으로 초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집으로 오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어디에도 들리지 말라 이야기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에 우리 집에 와도 된다. 라고 했기 때문에 믿고 그의 집에 들어가게 되죠. 그리고 그의 집에 돌아왔을 때, 상 앞에 앉아 떡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게 열왕기상 13장 22절 말씀인데요. 중간에 보면 내 시체가 내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죽게 되겠다는 거죠.
 
*열왕기상 13장 22,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얼마나 두려운 예언의 말씀입니까? 너무 두려워서 떡을 먹다가 떡 먹던 일을 중재합니다. 그리고 젊은 선지자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소. 이야기 했겠죠. 그리고 그 집을 떠나 자기가 가야할 길로 되돌아가고 있던 중, 예언대로 죽게 됩니다. 사자, 사자가 와서 그를 잡아먹게 되죠. 아 죽이게 되죠. 그런데 신기한 장면이 나타나는 게 사자가 사람이나 아니면 동물을 해할 때, 먹잇감으로 삼기 위해 먹지 않습니까? 죽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먹지를 않아요. 그냥 죽게만 숨만 끊어놓고 떠나가지도 않고 사자가 그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 곁을 지나가요 너무 신기한 장면이죠. 이게 메타포죠. 뭔가 상징적인 사건이니까요? 이 메타포를 보고서 몰래서 소문이 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늙은 선지자의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리고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곧장 그 자리로 출발하게 됩니다.
 
여전히 사자가 그 옆에 있어요. 무섭죠. 나도 잡아먹을 수 있으니,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에요. 옛날에는 나의 신앙 때문에 혹여 내가 해를 받을까 싶어 경계선에 살았는데요. 이제는 아랑곳하지 않아요. 내가 죽든 말든 사자한테 잡아먹히든 말든 상관치 않고, 그에게 다가가 그의 시체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13장 29절로 30절의 말씀을 보시면,
 
*열왕기상 13장 29-30절,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들어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30 곧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들어 나귀를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옵니다. 자기 성읍으로 돌아와서 슬피 울고 장사를 지냅니다. 정말 진심으로 애곡해요. 그리고 곧 그의 시체를 자기 묘실에 두고 부르짖습니다. ‘오호라 내 형제여.’ ‘오호라 내 형제여’ 다시 말하면 죽은 그를 향해 부르기를 나의 아버지여, 나의 어머니여, 나의 가족이여, 그렇게 부르는 것처럼 그렇게 부르면서 슬피 울며 진심으로 장례(葬禮)를 치르더라는 거예요. 자 여러분 설교 초대에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드렸죠. 이 사람의 정체는 뭐냐구요. 아까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나쁜 선지자라고 우리가 했죠. 자 여기서 한 번 더 묻겠습니다. 나쁩니까? 좋습니까? 그렇죠. 조금 혼란이 오지 않습니까? 여러분, 조금 전까지 그는 분명히 엉터리 거짓말의 선지자였어요.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젊은 선지자까지 죽게 됐죠. 그니까 나쁜 사람이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보니 진짜 진심으로 울고 있어요.
 
그리고 부르짖기를 ‘오호라 내 형제여,’ 라고 부르면서 슬퍼하고 있어요. 변했어요. 변했어요. 그죠? 경계선에 서 있던 그가 지금은 변했어요. 바뀌었어요. 왜 바뀌었을까요? 메타포, 사자가 그 곁에 서 있고 하나님이 보여준 그 싸인을 본 거예요. 싸인을, 열왕기상 11장부터 14장의 말씀 이 11장 14장 한번 집으로 가서 보십시오. 보면 여로보암 왕 시대 일들이 나오는데요. 그 시대에 여로보암 왕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범죄 했는가를 보여줘요.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런 신앙적 불신앙적인 왕 밑에 있던 평범한 백성들의 불신앙, 불신앙을 보여주는 단면에 사건이 오늘이 늙은 선지자의 사건이에요.
 
근데 그 늙은 선지자는 여로보암은 변하지 않았지만 늙은 선지자는 지금 바뀌었어요. 변했어요. 왜 변했는가? 그는 경고의 사인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싸인을 보지 못 했어요. 변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싸인을 보고 바뀌었다는 거예요. 엉터리요, 거짓말쟁이지만 늙은 선지자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 한 가지 그것은 죄에서 돌이켰다는 사실이요. 지난날의 잘못된 삶에서 그가 바뀌었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가롯유다와 사도바울이 있는데요. 분명히 다른 인물이죠. 그러나 그 둘을 똑같이 하나님 앞에 큰 죄인들입니다. 가론유다 예수님을 팔아넘겼죠. 사도바울 예수님의 사람들을 핍박했던 인물이에요. 근데 그 둘의 차이점은 뭐예요? 가롯 유다는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죠. 자살하고 끝냈죠. 그러나 사도바울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켰다는 사실이에요. 죄는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넌 너무 늦었어. 돌이키기가 너무 늦었어. 이게 죄가 우리 귀에 하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여러분 지금이 돌이키기의 가장 빠른 때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이에요. 지금 이 늙은 선지자가 그때를 잡은 거예요. 하나님의 싸인을 보고 그래. 이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싸인이구나! 내가 비록 나이 많고 늙었지만 지금이 가장 빠른 때야! 라고 돌이켰다는 사실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우리들도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세상과 신앙 사이예요. 주일날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예배당에 와서 말씀드리면, 말씀의 세상에 속해요. 하지만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이 우리를 가만둡니까? 아니죠. 세상이 우리를 막 흔들어 제끼지 않습니까? 믿음대로 살지 못하도록 우리를 마구 흔들지 않습니까? 사단은요, 우리를 경계선에 서도록 내몰아요. 어릴 때부터 한국사회가 그렇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입시에 살아남기 위해서 그래 고3만 지나면 내가 예배 나갈게 이러잖아요. 그죠? 우리 자녀들 교육시킬 때도 그럴 때 있잖아요. 그래 고3만 지나면 이런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부터 믿음의 경계선에 서는 연습을 한다는 거예요. 직장에 나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적응하기 위해서 경계선으로, 우리를 사단에 내몰죠. 가정을 이루고 나면 경제와 자녀와 건강의 문제로 사단은 우리를 자꾸 신앙의 구석과 경계선으로 몰아넣는다는 거예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요 제가 다니던 청년부입니다. 청년부의 형님들이 있었는데, 형님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이제 직장에 가요. 그러면 청년부 모임에 오지 않습니까? 오면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제 주위에서 성경 공부 하구요.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아 내가 힘들게 입사했는데, 입사하면 여러분 그거 하잖아요. 그 회식이요. 회식하잖아요. 요즘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막 술을 권했잖아요. 그죠? 어 회식에 나가요 그러면 선배님들 이야기한 다음에 술 한 잔 마셔. 그럼 이야기하는 거죠. ‘아휴 선배님, 저는 크리스찬이라서 술 안마십니다.’ 그렇게 얘길 하면, 선배님들이 꼭 이렇게 얘기한다. 괜찮아 마셔. 마셔. 마셔. 저기. 저기 김 부장님 있지 저분도 장로님이야. 저기 박 부장님이지 저기 안수 집사님 이렇게 얘기한다는 거예요.
 
그니까 여러분들 학창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직장생활 우리 가정생활 속에 사단이 우리를 얼마나 흔들어 놓냐는 거죠. 그리고 우리를 자꾸 경계선으로 밀어 넣는다는 거예요. 늙은 선지자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그에게도 돌이키기를 원하셨죠. 젊은 날을 허비했어요. 그러나 그는 나이 먹어서라도 하나님의 사인을 보고 돌이켰어요. 사단은요, 가롯 유다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를 향해서 이야기 해요. 너무 늦었어. 이제 그만해 뭘 신앙대로 이제서 할려고 그래 이렇게 한다는 거죠. 그러나 아니에요. 내게 싸인이 보인다는 것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며, 여전히 내가 돌이킬 기회가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바라기는요. 지금 돌이키기에 가장 빠른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경계선을 벗어나서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하늘의 사람,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산정원교회 주기철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아실 거예요. 주목사님, 1938년부터 44년까지 5차례나 일본에 압제하여서 투옥 당하셨습니다. 몽둥이찜질을 당하구요. 채찍질 말구요. 온갖 고초를 당하셨죠. 경계선에 설 법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 내가 예수 믿는다고 이렇게까지 어려워져야 돼? 생각들 법 하잖아요. 경계선에 그러나 서지 않았어요. 확고하게 하늘의 사람으로 살았어요. 다섯 번째 마지막 구속될 때입니다. 산정원 교우를 모았어요. 가족들을 모아서 한 20여 명 된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 모여 있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주님 나를 위해서 십자가 고초 당하셨는데 내가 어찌 무섭다고 피하겠습니까? 경계선에 서겠습니까? 오직 일사각오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주 멋있는 말을 하셨는데요. 이런 말을 하셨어요.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퍼런 빛을 간직하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기를 원할 뿐입니다.’ 이 말을 하고 감옥에 돌아가셨고 그리고 마지막 생을 마감했어요. 소나무 그렇잖아요. 죽고 난 다음에 찍으면 허얘요. 그냥 생기가 없구요. 그러나 죽기 전에 도끼로 찍으면 그 한 가운데가 시퍼런 빛이 살아 있잖아요. 청청하게요. 내가 파도 그렇잖아요.
 
여러분들 주고 난 다음에 이거 떨어지면 냄새 안 나요? 그러나 살아있을 때 털어지면 그 향기가 주변을 향기롭게 하죠. 주기철 목사님 ‘내가 그럴지라도 나는 경계선에 서지 않겠어.’ 신사참배가 행해졌지만 경계선에 서지 않았던 목사님, 오늘 본문 보면서요. 저는 제 마음에 확 남은 한 구절이 있어요. 13장 18절, 우리가 아까 한번 읽기도 했던 본문인데 보십시오. 어느 구절이 제 마음에 남았을까요? 어느 구절일까요?
 
*열왕기상 13:18,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충분한 힌트를 드렸는데, 노란 글씨, 노란 글씨, 네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사실 이 구절은 거짓말하려고 한 말 아닙니까? 그죠? 나쁜 선지자, 그죠? 거짓말 근데요. 이건 단순한 거짓말은 아니에요. 실제로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가 되고 싶었소. 라고 하는 회한이에요. 회한 13장 30절을 보면,
 
*열왕기상 13:30,
30 곧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
-저의 해석이 증명이 됩니다. 곧 그의 시체를 자기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요, 호칭이죠. 형제 내 형제 아까는 그대와 같은 선지자 나와 당신은 가족이고, 나와 당신은 같은 선지자야, 이 말은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었소. 라는 거예요. 이 젊은 선지자는 왕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이야기했죠. 그죠? 하나님의 징조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왕이 나에게 어떤 일을 벌일지라도 나는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라고 하면서요. 그 모습과 그 젊음과 패기를 본 거예요. 신앙의 패기 그리고 늙은 선지자는 그를 향해서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가 되고 싶었소. 말하는 거죠. 당신처럼 하나님을 더 사랑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라는 거죠. 무얼 러브 모어 러브(more love)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운데 찬송가 314장이 있습니다. 가사가 너무 좋아요.
 
♬ 1절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모아 러브(more love),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절 이 세상 떠날 때 늙은 선지자 이제 내가 언젠간 떠나겠지. 생각했겠죠.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무엇인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한 번 새벽이지만 한 번 찬양 하겠습니다.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3절로 한번 찬양합시다. 이 세상 떠날 때!~~~♪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폭풍 같은 유혹과 시험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고 경계선에 내모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의 방주, 교회당의 방주 속에 살지만 세상으로 나가면, 사사건건 늙은 선지자가 넘어진 것처럼,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사단을 시험하겠죠. 그렇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사인을 보고 돌이킨 늙은 선지자처럼, 그 믿음의 결단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주기철목사님 소나무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른빛이 난다고 백합화 떨어져야 향기가 난다고 한 것처럼 저 여러분들도 향기를 내며 살아갑시다. 네 그럽시다. 여러분 저는요. 대쪽같이 신앙의 대쪽같이, 여러분이 살면 좋겠어요. 흔들리지 말고 변함없이 믿음을 지켜내는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면 좋겠어요.
 
내가 뭘 누군지 모르는 세상을 향해 나는 사랑의 교회야! 나는 칠천기도 용사야, 이렇게 말하면서 믿음을 보여줘야죠. 오늘 이번 1주가 앞으로의 여러분의 인생이 우리 친정집 사랑의 교회가 그런 향기로운 백합화, 시퍼런 빛을 가진 소나무 성도들로 가득 찬 사랑의 교회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요약
사단은 우리를 향해 ‘너는 너무 늦었어.’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인을 보여주시며 지금도 우리가 돌이키기를 원하신다. 그러니 우리 모든 성도들은 칠천 기도 용사로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과 소명을 붙들면서 이 땅 가운데 소나무로, 향기로운 백합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경계선이 아닌 하늘에 속한 성도들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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