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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9월 9일) 제목: "하나님을 위한 빈 자리" 말씀: 마태복음 27:3~5 열왕기상 3:7 대표기도: 박경희집사 목양4팀(여직장인대교구장) 찬양인도: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말씀읽기: 김성훈 형제(청년4국), 김선호 자매(대학4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박지웅 목사님(내수동 교회) 마무리 기도: 오정현 담임목사님 -------- *마태복음 27:3~5 열왕기상 3:7, *마태복음 27:3~5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열왕기상 3:7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 ▶박지웅 목사님(내수동 교회) 대단히 반갑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장 위대한 인생이 어떤 인생일까요? 반대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별 볼 일 없는 인생 이게 어떤 인생일까요? 여러분, 오늘 새벽에 우리가 함께 모인 것도 우리가 위대한 인생을 살기 원하는 그런 우리의 소원 때문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 그것도 아니고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위대한 인생, 그리고 영광스러운 인생, 이 말은 우리가 하는 판단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죠. 사실은 다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위대한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 우리가 함께 읽는 게 본문 말씀인데 먼저 우리 요한복음 17장 12절을 잠깐 보시면은 예수님 기도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7:12,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렇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 멸망의 자식을 누구를 가르치신 말씀인지 여러분 잘 아시죠? 이 멸망의 자식은 가롯 유다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가롯 유다의 인생을 가리켜서 멸망의 인생, 멸망의 자식 때, 왜 가롯유다의 인생을 망할 인생 멸망의 인생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여러분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바랐기 때문에, 틀린 것은 아닌데 사실 그렇게 따져보면 베드로도 별반 사실은 차이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냥 부인하지 않고 성경에는 뭐라고 돼 있는 저주하며 부인했다. 그렇게 돼 있거든요. 가롯 유다를 향해서 멸망의 인생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우리가 오늘 읽은 이 본문 속에 아주 중요한 힌트가 있습니다. 읽은 본문 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면 뭐라고 읽는가 하면요. *마태복음 27:3-5,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5절 말씀을 한번 보시면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놓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여 죽은 자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스스로라는 말을 우리가 유인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말 그대로 말 그대로 스스로입니다. 자기의 마음대로, 여러분, 뉘우쳤으면 회개하고 돌아오면 되는데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이 스스로라는 말은 좋게 말하면 소신대로, 나쁘게 말하면 지 마음대로, 이제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스스로라는 말 속에 가려 유다의 인생의 특징 아주 중요한 그 특징을 이 말씀이 우리 가운데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롯 유다의 인생은 어떤 인생이냐?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죽을 때도 자기의 마음대로 소신대로 자기 마음대로 죽어버려요. 하나님께서 이 가롯 유다의 인생 가운데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자기의 생각 자기의 마음으로 그의 인생은 막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 예를 하나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마리아가 황유복합을 깨뜨리는 그 순간에 가리유다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절 5절에 보면, *요한복음 12:4~5,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가롯 유다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이 향유를 예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좋겠다. 근데 여러분 저 말씀을 하고 난 그다음에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는가? 입니다. 그는 도적이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부정적이죠. 여러분, 가난한 사람들에게 300데나리온을 팔아주는 이게 뭐가 잘못됐습니까? 그렇게 하면 좋죠. 근데 성령은 이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왜? 그건 가롯 유다에게 자기 생각이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도 아니고, 하나님과 의논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나님과는 아무 무관한 그것으로 300개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하는 것이 이게 나쁜 것은 아닌데, 문제는 이게 전부 그냥 자기 생각인 거예요. 자기 생각.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가정 유다 말하자면 멸망의 인생, 망할 인생, 이 망할 인생의 특징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고요. 오늘 설교 제목처럼 빈자리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빈자리라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게 망할 인생입니다. 반대로 여러분 열왕기상 우리가 읽은 본문에 대표적으로 솔로몬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솔로몬이 하나님한테 믿음이 제일 좋았을 때, 그때 뭐라고 말하는가? *열왕기상 3:7 ,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이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출입을 할 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나는 못합니다. 나는 기본적인 건 아무것도 못합니다. 나는 숨 쉬지도 못합니다. 여러분, 솔로몬은 바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장 위대한 천재죠. 천재, 근데 어떻게 이 사람이 출입을 못한다는 말을 한 것일까요? 솔로몬의 인생 위대한 인생 적어도 말년에 탈락을 하기 전까지 그가 위대한 인생을 사는 그 순간에 그의 인생의 단적인 특징,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빈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을 빌기 위한 빈자리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위대한 해 책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이 책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위대한 인생이 이게 다릅니다. 많이 많이 다릅니다. 여러분 성경은 어떤 인생이 위대한 인생이냐?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을 위한 존재니까 가면 갈수록 더 많아지는 인생, 그래서 하나님 백성의 특징을 설명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 백성의 특징 8가지로 설명을 하실 때, 그때 처음 나오는 첫 번째 내 백성은 이런 백성이 내 백성이다. 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첫 번째 말씀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잘 아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이게 위대한 인생입니다. 여러분 기도원을 한번 생각해 봐 주십시오. 기드온 왜 하나님께서 기도원을 찾아오셨을까요? 왜 기도원이 하나님의 대안이냐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찾아오실 때 미디안의 압제를 위해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서 기드온을 찾아오실 때 왜 기드온이었느냐? 그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하는 이 첫마디 그가 하는 이 한마디 말이 그 이유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사사기 6장 13절 앞에 한번 보시면 기도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사기 6:13,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모든 기적이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의 사자 앞에 기드온이 마치 옆에까지 꽉 눌러 있던 그 무언가를 그냥 쏟아내는 것 같은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른 보면 좋은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이게 바로 기드온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이유였습니다. 왜 기드온이냐? 여러분, 기드온은 하나님을 향해서 오늘 본문에 우리가 읽은 이 말씀처럼 말이죠. 실망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적은 도대체 어디가 가느냐 이거죠. 그럼 여러분 이 실망이 많다는 것은 뭘 말씀하는지 뒤집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실망이 많다는 것은 뭘 말씀하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기대가 많이 할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가 왜 싸웁니까? 기대하다 여러분 기대 안 하는 사람이 싸우는 거 봤습니까? 기대하지 않으면 절대로 싸우는 일이 없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향해서 실망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서 여태까지 너무너무 기대를 많이 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기대를 많이 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빈자리가 많다는 뜻입니다. 기드온이 인생의 특징은 다른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을 위한 빈자리가 너무너무 많았던 인생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찾아오신 이유는 너무너무 간단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을 위한 빈자리가 많았기 때문이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오랜 세월 미리안의 악재 속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이유도 대단히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여태까지 찾아오지 못했던 이유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오실 수 있는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죠 여러분 우리가 식당을 들어가도 빈자리가 있어야 들어갈 거 아니에요 근데 이스라엘에는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는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근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빈자리를 딱 하나를 발견하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발견하신 그 빈자리가 어디냐? 기드온이 있어요. 기드온의 마음속에 실망이 많았던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와서 하시는 첫마디가 뭔가 하니까 큰 용사여!. 니가 큰 용사다. 왜? 네가 빈자리니까, 이 빈자리 속에 내가 함께하면 너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 것이니까, 너는 큰 용사가 맞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믿는 이 성경 진리의 말씀을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원리를 우리가 정리를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인 타락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요? 여러분 영적인 타락이라고 하는 것은 술 먹고 방탕한 것, 그게 영적인 타락의 본질이 아니죠. 물론 술 먹고 방탕하면 안 되겠지만 술 먹고 방탕한 이게 영적인 타락의 본질이 아니고, 오늘 이 말씀 대로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을 위하여 빈자리가 점점 점점 없어지는 것 이게 영적인 타락입니다. 얼마 전에 승천하신 조용기 목사님께서 후배 목사님들을 향해서 강의를 하실 때 참 제가 잊을 수 없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분이 살아계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한 평생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치마 자락을 붙잡고 징징대고 늘어지는 것처럼 본인은 매일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나도 못해요. 하나님 나 못해요. 하나님, 성령 충만 주세요. 하나님 성령 충만 주세요. 성령 충만, 성령 충만, 매일매일, 그 심정으로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았다. 그 이야기로 기억을 하고 있다. 빈자리가 가면 갈수록 원하지만 인생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 100년 전, 20세기 초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국의 부흥이 오기 전에 영국 웨일리스에 큰 부흥이 왔습니다. 정말 그 시대의 기록들을 이렇게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영국에서 왔던 그 큰 부흥이 한국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인도의 부흥 그리고 호주의 부흥, 그리고 더 크게는 미국의 아디사스트릿 미국의 부흥으로 이렇게 이제 전 세계 부흥의 역사가 이렇게 확장이 되는 웨일스의 영국 웨일스의 부흥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영국 웨일스의 부흥의 기록들을 이렇게 보면은 뭔가 이렇게 우리에게 느껴지는 기록들이 있는데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기도회를 한 번 열었더니 이 기도회가 8시간이 지나도 기도회가 끝나지 않겠다. 이런 이야기가 있고요. 술집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술을 마시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강했는지 술잔을 들어 올리는데 팔이 갑자기 한순간에 그냥 마비가 되었다.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제 이 광부들, 광산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이 은혜를 받고 났더니 제일 먼저 나타났던 현상이 자기가 하는 말이 바뀌었다. 이게 말이 말이 바뀌고 났더니, 석탄 생산량의 차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왜? 석탄 생산량에 차질이 생겼을까요? 이 석탄을 이거 이제 이걸 실어 나르는, 그 당시는 철도가 아니고 이제 노새들 말들, 노새들이 이 석탄을 이렇게 이동을 하는데, 주인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를 못해요. 이전에는 계속 욕을 듣다가 처음 보는 건 아니지, 이게 저는 진짜인지 아닌지 하여튼 역사 경력은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이 모세를 다시 훈련을 시켜야 돼요. 다시 훈련을 놀라운 이야기죠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예배의 임재가 왜 하나님의 예배 속에 인재가 강했던지 설교자가 설교를 못했다.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 물러서 있어야 될 정도,,, 어떤 기록에는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여호수아 새 조수아라고 하는 목사님이 1904년 9월 20일 그의 일기에 보면 낮에 예배가 시작이 됐는데 이 예배가 밤 12시 시작되어도 끝나지를 않는 상황 집에 돌아가라고 아무리 광고를 해도 이게 통제가 안 되고 밤 1시가 넘어가고 그래도 통제가 안 되고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 영국 웨일스에 있었던 이 강력한 영적인 부호 이 부흥에 가장 성공해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던 유명한 한 청년이 있죠. 한번 이름을 들어 보셨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에반 로버츠” 그 당시 26살 27살 26살, 이 에반 로버츠라는 청년은 그의 나이 13살 때부터 무려 13년간 이 부흥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돼 있습니다. 자기가 골방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결정적으로 그를 붙들어서 그 기도가 끝난 이후에 에반 로버츠는 이전의 에반 로버츠와 전혀 다른 사람이 돼가지고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이 에반 로버츠를 그야말로 마음껏, 마음껏 사용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이 에반 로버츠가 하나님 앞에 씨름하면서 기도를 했던 그 기도인데요. 그 기도가 무슨 기도였는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굴복시켜 주십시오. 나를 굴복시켜 주십시오!!” 이게 에반 로버츠의 기도의 제목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짧은 기도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에반 로버츠가 지금 뭘 기도하고 있는지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 나를 굴복시키십시오.” 뒤집어 말하면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굴복이 안 된다 그 말이죠. 굴복이 안 된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 속에서 자기가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들어와야 할 빈자리가 있어야 되는데, 그 빈자리도 없고 오늘 가벼운 유대와 같이 그냥 말 그대로 스스로 우리가 스스로 제 마음대로 살다가 죽을 때도 자기 마음대로 죽어버려요. 하나님을 몰아내려고 하는 자아죠. 자아, 이걸 에반 로버츠가 발견을 하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위한 빈자리를 만들기를 원하는데 굴복되지 않는 자기의 자아다. 이걸 가로막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씨름 씨름하면서 기도를 했던 그 기도가 바로 에반 로버츠의 결정적인 기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굴복시키십시오.” “나를 굴복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에반 로버츠스가 하나님의 손에 쓰임을 받을 때에는 이 에바 로버츠가 자기의 인생에 찾아오신 이 하나님을 위한 빈자리 이걸 얼마나 강력하게 생각했던지 얼마나 귀하게 생각했던지 그의 기록에 보면은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자기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느껴지지 못할 때에는 회중들을 앞에 두고 무려 3시간 동안 설교를 하지 않고 중단을 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성령께서 지금 내 속에서 쭉 충만하게 말씀하시는 그때까지 3시간을 기다렸다가 15분 설교하고 내려와야 했대요. 교인들 집에 안 갔는지 몰라요. 놀라운 게 아니죠. 여러분 위대한 인생입니다. 위대한 인생 하나님을 위한 빈자리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여러분 우리의 빈자리가 커지는 인생 하나님께서는 그 인생을 위기는 인생이 말씀을 좀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2016년도 제가 내수동교회에서 허락을 받아서 1년은 좀 귀한 안식년을 보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제 호주에서 마지막 몇 달을 이렇게 보낼 기회가 있는데 그때 이제 저희 아이들하고 제가 좀 특별한 대화를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지금은 이제 아이들이 다 갔지만 그때는 이제 중, 고등학교 아이들 학생들이었죠. 아이들이 저한테 인생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무슨 진지한 이렇게 질문을 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지 뭐 이렇게 진지하게 근데 그날 손을 잡고 저한테 와가지고 정말 진지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무슨 질문을 하느냐 우리가 아빠를 볼 때에 아빠는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너희들 이제 그다음 이야기인데요. 아무리 봐도 아빠는 그렇게 능력은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근데 참 쉽게 그렇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인생이 그냥 이렇게 그냥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분명히 우리가 볼 때는 별로 이렇게 능력이 없는데 그러면 이게 이제 인생이 자꾸 이렇게 막히고 그래야 될 것 같은데 근데 뭔가 이렇게 그런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정말 한 가지 묻고 싶다 이거죠. 없는 능력으로 이 땅을 사는 비결이 뭐야? 그래서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애들이 저런 질문을 하는 것도 놀랐고 애들 눈에 비친 아빠의 모습도 갖고 굉장히 제가 연구를 받았어요. 근데 여러분 제가 처음 질문인데 한 번도 제가 의도적으로 제 입에서 하지 않았던 말이 제 입에서 나왔습니다. 근데 그걸 일부러 이야기를 안 했던 것이 아니고 그리고 또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깊은 곳에 묻어 있는 묻어 있는 묻혀놓은 생각인데 이걸 일부러 굳이 꺼내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능력 없는 사람이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아빠가 있기는 있는데, 이거는 여태까지 아빠가 한 번도 입 밖에 베어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너희들이 그냥 적당히 들을 것 같으면 아빠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정말 진지하게 이 아빠의 말을 듣고 싶으면 아빠가 이야기를 한다. 처음 하는 이야기 실제로 그렇습니다. 처음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이 땅을 살아가는 구경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해야 될지, 하나님께서 나를 봤을 때 좀 불쌍하게 보여라 불쌍하게, 저거는 내가 버린 게 아니겠지. 저는 인생을 도저히 살 수 없는 인생이라, 그래서 기도할 때도 그냥 기도하지 말고 조금 이렇게 불쌍한 모습이라고 뭐 이렇게 좀 이렇게 없는 티를 좀 내면서 사실 일부러 제가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부러 사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고 났더니 제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이런 생각이 내가 했었구나 하는 그 생각이 그제서야 이제 생각이 납니다. 나와 그 아이들한테 진지하게 제가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빠가 볼 때 이 땅을 살아가는 가장 위대한 비결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어떻게 하든지 내가 저기 도와줘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야 돼. 여러분 제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도대체 뭘까? 이렇게 한번 정리가 되는 거죠. 능력의 근원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의 임재에 있습니다. 아멘. 그래서 위대한 인생은 여러분 시간이 갈수록 빈자리가 늘어나는 인생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젊을 때보다는 들었을 때 가면 갈수록 솔로몬의 고백처럼, 솔로몬, 근데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힘이 큰 것이 심이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사람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하니라.”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대한 인생을 살기 원하신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그러한 인생을 살지 못함을 깨달아서 오늘 이 세상에 방법과 이 세상의 삶이 너무나도 다른 세상을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오늘도 찾아오기를 원해야 한다. 우리의 빈자리를 찾기 원하시고 그러므로 우리의 남은 인생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을 위한 빈자리가 많아지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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