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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부흥기도회(주후 2022년 4월 22일)-다섯째 날

제목: “1. 인생을 결정짓는 신앙, 2. 두려움 대면하기”
말씀: 마가복음 9:24, 여호수아 1:6-9
사회 인도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설교자: 슬라빅 페이지 목사님(우크라이나 침례신학교 총장),
설교자: 이용규 선교사님(인도네시아 자카르타-‘내려놓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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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빅 페이지 목사님(우크라이나 침례신학교 총장)-“인생을 결정짓는 신앙”

- 사랑의교회 형제 자매 여러분,
우크라이나에서 문안드린다. 오늘 제 마음에 있는 말씀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사랑의 교회가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고 들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함께 마음 아파해 주시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 성도님들께서 깊이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가 미국에서 수학할 때부터 개인적으로 교제해온 한국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저는 그들이 가진 기도에 대한 열정에 크게 감명 받았다. 사랑의 교회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중보해주시고 헌신해 주셨다고 들었다. 여러분과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몇 가지 나누고 싶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대로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다.
 
오늘은 전쟁 이면의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 영적인 면이다.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러시아군의 잔혹함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면이 있다. 이 전쟁은 단순히 두 국가 간의 분쟁이 아니다. 사실 이 전쟁은 영적 전쟁이다. 우리 마음속에서도 벌어지는 그 전쟁이다. 우리는 한 쪽에서 악을 발견할 수 있다. 파괴와 죽음을 가져오는 ‘악’ 말이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거대한 악의 세력이 유럽과 전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저와 여러분은 그 악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기도함으로 가까운 형제자매가 되었다. 한 교회로서 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로서 이런 상황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너지지만 동시에 이때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섬길 수 있는 기회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 바로 이 수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신 대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이웃을 수없이 섬길 수 있는 때인 것이다.
 
오늘 이 시간 정말 저에게 큰 위로의 도전이 되었던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전쟁을 겪으면서 저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 형제자매들이 생각하는 질문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믿음이 무엇인가?’이다. 어느 날 성경을 묵상하던 중에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있었던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수께서 몇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 산에 올라가셔서 변모하신 적이 있다. 예수께서 변화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이들을 데려온 한 나자를 보셨다. 산 아래에 있던 제자들이 귀신 들린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이 아버지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아이를 고쳐 달라고 요청한다. 이 아이는 귀신에 들려 엄청난 고통 중에 있었다.
 
*마가복음 9:23-24,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 그때 즉시 아이의 아버지가 부르짖는다. 믿지만 미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 말씀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그 어떤 것보다 정확히 대변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며 강한 분이신 줄 믿는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하나님 나라가 임할 줄도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 뉴스를 듣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다 보면 우리의 믿음은 때때로 산산(散散)조각(彫刻) 나기도 한다. 그래서
 
▷제가 첫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우리의 현실의 삶이 우리의 믿음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 말이다. 여러분의 삶의 방식이 여러분의 믿음을 정의한다. 모두 목숨을 부지하려고 피난길에 올랐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행동한 사람들도 있다. 마리우풀에 거주하던 카디스키라는 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그분은 마리우풀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시던 목사님이셨다. 아마 뉴스에서 마리우풀시에 대해 많이 듣고 보셨을 것이다. 그분은 전쟁이 터졌을 때, 본인이 섬기는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한 분 한 심방하는 일을 개인적인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차량으로 가가호호 심방하며 성도들에게 음식과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했다. 그런데 전쟁 통에 폭격으로 자동차를 잃게 되었다. 목사님은 자전거로 각 가정을 심방하며 도움을 주었다. 몇 몇 집이 폭격을 받아 파괴되었을 때 피해를 입은 성도들을 한 곳으로 모아 대피시키기도 했다. 모두가 안전한 상황을 원했지만 음식조차 없었다. 전기도 끊기고 식수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성도들이 무엇을 했는지 아시는가? 촛불 아래서 찬양하고 성경을 읽었다. 목사님도 그렇게 그들을 위로했다. 며칠 전에 이 목사님도 마리우풀을 떠나게 되었다. 자신이 섬기던 교회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떠나게 됐다. 교회 모든 성도들을 먼저 내보내고 그들의 안전이 확보된 후에야 마지막으로 마리우풀시를 떠난 것이다. 우리의 행실이 우이와 믿음을 정의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설교자로서, 믿는 자로서, 우리의 입술로 믿음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 성도들은 행실이 진정한 믿음을 드러내는 때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운데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행실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 가운데 어려움을 겪었던 독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분들은 다른 사람들을 구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도무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드러난다. 물론 한국에 있는 여러분은 조금 다른 상황이실 것이다. 그렇지만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가 하나 있다. 바로 위리의 믿음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정의되고 레사실이다.
 
▷오늘 본문 두 번째로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내용은 어린아이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는 영적전투 중에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아들이 건강하게 치유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 깨닫게 됐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기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구한다. 이곳 우크라이나에서 명확히 볼 수 있듯이 우리 믿음을 살펴보다 보면 과거에 모아둔 믿음을 미래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거에 무언가 믿음의 말을 했다고 해서 오늘 마주한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 매일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만나를 매일 새로게 받아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주일 치 심지어 먹을 만나조차 온전히 저장해 둘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매일 새롭게 만나를 주실 것을 전적으로 신뢰해야만 했다. 저의 상황을 돌아봐도 하루하루가 도전 그 자체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믿음으로 하루를 마치며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일어나 내일 필요한 믿음으로 새롭게 하루를 헤쳐 나가야 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가 하나 있다. 바로 다섯 명의 자녀를 둔 한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동쪽 도네스크시에 출신인데 지난 2014년 수도 카이우로 이주했다. 그때가 바로 우크라이나에서 처음 내전이 일어난 해였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과 5명의 자녀를 살리기 위해 카이우로 피난해야 했는데 자녀들 중 2명은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며칠 전에 카이우가 폭격당하자 그녀는 카이우에서 제가 사역하는 서쪽 르비우로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제가 그분의 사연을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은 자녀를 살리기 위해 그녀가 평생 피난을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남편 없이 생활해 왔다. 도네츠크에서 내전이 일어났을 당시 남편을 일었기 때문이다. 대화하는 가운데 저는 그분이 얼마나 강인한 여성인지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전으로 인해 자신의 고향을 처음으로 떠나게 되고 이번 전쟁으로 인해 안전했던 카이우를 떠나 또 다시 피난길에 올랐는데 오직 다섯 명의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한 것이다. 저희는 그분의 가족이 독일로 이주해서 정착할 수 잇도록 도왔다. 제가 가장 놀랐던 사실은 그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녀가 감당해아 할 역할들을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도 삶 가운데 큰 도전을 겪고 계시다면 특별히 믿음이 도전 받고 있다면 하루하루를 승리하며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매일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믿음에 대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매일 매일이 믿음이 필요하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믿음만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며 하나님께서 매일 어떻게 일하실지 이미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신뢰하게 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절망의 반대이다. 믿음↔절망


앞서 말씀드린 다섯 명의 자녀를 가진 엄마 이야기를 떠올려 보라. 그녀는 매일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다. 자녀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신앙인으로서 절망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그것을 우리 삶 가운데 고백하고 선포하고 알려야 한다. 소망을 찾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셋째로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내용은 믿음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제자들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왔던 그 아버지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스’라고 대답할 때, 마귀에게는 ‘노’라고 대답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반대편을 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스’라고 하는 것은 대적에게 ‘노’라고 하는 것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자신이 예수님을 신뢰하고 믿는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면 우리도 하나님께는 ‘예스’하고 마귀에게는 ‘노’라고 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도 이 원리는 동일하다. 물론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문화나 삶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영적인 원리는 동일하다. 우리가 함께 예수님을 따른다면 우리 모두가 대적을 함께 ‘노’라고 선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철저히 마귀와 싸워야 하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특별히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교회로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이들을 돌봐야 한다. 제가 우크라이나 마리우풀시 교인들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저에게 찾아오셨던 분이 들려준 이야기인데, 그 중 한 가족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고향 마리우풀을 떠나 카이우로 파난 가던 중에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선포하는 내용들이 얼마나 참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첫 번째 검문소에서 만난 러시아 군인들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마침 교회가 근처에 있었다. 러시아 군인들이 저쪽 교회로 가면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 받을 수 있다고 말해 귀 뜸해 주었다. 그래서 교회로 갔다. 그리고 계속된 피난길 가운데 만난 몇 몇 교인들이 그들에게 교통편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마침내 제가 있는 곳으로 왔을 때, 저희는 이분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드렸다. 그리고 유럽으로 넘어가도록 도왔다.
이 이야기의 백미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신뢰하고 악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유통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 가득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이들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여러 교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께 ‘예스’라고 반응하는 모습이 우리의 구체적인 행실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큰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다. 아마 여러분께서는 유럽이 복음에 매우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상황이라는 이야기는 거의 못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유럽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활짝 여셨다.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과 삶과 마음을 열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그리고 도움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셨고 대적으로부터 구해 내셨기 때문이다. 생각해보고 기도해보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제 전혀 다른 정말 믿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 가까이 나와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고향을 떠나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전한 말씀에 믿음으로 화답하시고 기도로 반응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될 줄로 믿는다. 감사합니다.
 

 
요약
지금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에 있고 상황이 좋지 않지만 주님의 선하신 능력을 믿고 아버지가 아들의 병을 믿음으로 고친 것처럼 승리를 위해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도 함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그 귀신들린 아이는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고침을 받았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을 고치지 못했던 제자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능력도 의심하여 ‘할 수 있거든 병을 고쳐달라’는 식의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그의 아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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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 선교사님(인도네시아 자카르타-‘내려놓음’의 저자)-“두려움 대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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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마무리되어 가면서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인도네시아는 거의 마무리 되었는데 아직 여기는 한국 상황을 잘 모르니까 그래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그동안은 2인자로 있다가 이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가야되는 상황 가운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제가 보니까 그 옆에서 돕는 것과 내가 모두 책임을 지고 가는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는 것 같다. 제가 몽골에서는 편하고 즐겁게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게 제가 궁극적으로 모든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게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는 모든 책임이 제 어깨위에 있다고 느낄 때, 저는 안 맞는 옷을 있다고 느껴졌고 처음에 이 옷을 벗고 싶은 충동이 너무너무 컸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실 때 강하고 담대하라고 여러 번에 걸쳐서 말씀하신다. 아 그렇구나. ‘우리 인생은 한 번 들어가지고는 안 되는 것 같다. 여러 번 새겨들어야 되는구나!’라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실은 말씀 안에 ‘강하고 담대(膽大) 하라’ 라는 내용을 계속해서 접하지만 삶의 위기 가운데 여전히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경우를 느낀다.
 
저희 아버지께서 얼마 전에 위암 수술을 하셨는데 지난번에 그 위암이 발견되고 나서 제가 한국에 몇 번 다니러 왔다. 그때 격리 기간 동안에 이제 아버지를 위해서 계속 같이 예배드리고, 기도해드리고 아버지가 회복되고 살아나시는 것 같고, 그래서 좀 마음에 안심을 하고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는데 이번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을 하시고 굉장히 두려워하시면서 다시 어린애 같은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게 됐다. 그때 그렇게 은혜를 받으시고 담대해 지셨지만 또다시 아픔이 찾아오고 죽음의 공포(恐怖)가 엄습(掩襲)을 하니까 무너지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최상의 결과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 같다. 처음에는 수술을 받으려고 했던 젊은 의사분이 코로나 양성이 발견이 되면서 수술이 지연되다가 그분의 은사이신 의사선생님께 트랜스퍼가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가장 좋은 환경에서 가장 좋은 의사샘의 의해서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 회복도 잘 진행되고 있는데 그 코로나 양성 동안에 대기 하는 기간에 아버지도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그때 그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아 그렇구나!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맞을 때 처음에 믿음이 있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때, 많이 무너지는구나.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 두려움을 쉽게 이기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는 죽음을 대면해야 된다. 그렇다. 그리고 인생의 많은 위기를 지나오게 된다. 그때마다.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두려워하고 낙담(落膽)하고 절망(絶望)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안심하다 안전하다 그런 마음을 인생을 산다면 우리는 인생의 끝으로 가면 갈수록 더 어린애가 되고 예전에 살아왔던 삶의 궤적(軌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두려움에 눌리면서 거기서 더 이상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오늘 믿음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반응하는 삶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삶에 마지막까지 갈 때 우리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드러나게 될 거라는 것을 생각한다.
 
오늘은 믿음과 관련하여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했던 삶의 여정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 어떻게 기적과 같은 도우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국교회에 와서 처음 이야기 한다. 그동안은 우리 사역이나 사역의 방향을 공개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가능한 한 한국교회에 와서는 말씀을 전할 때는 그 말씀을 주로 나누었지만 제 삶 가운데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좀 구체적으로 나눌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제가 이제 오래 첫 졸업생을 맞게 되고 그리고 대학교 첫 졸업생을 맞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종합대학 허가를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역자들을 위해서 이제 설교 준비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 그 어떤 뛰어난 사람이 와서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순간들을 대가 세어보니까 그냥 큰 것만 봐서 12개 정도이다. 오늘 그 열두 개를 다 말씀드릴 수가 없는 것 같은데 며 장면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인생 가운데 개입하셔서 당신이 오래전부터 이끌어 가시는가, 사람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겠다.

저는 몽골에서 잘 사역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땅을 떠나라고 하셨다. 저는 그 말씀에 대해서 순종하고 안식년을 갖는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는 인도네시아 땅을 보여 주셨고 그곳에 대해서의 교육 사업에 대해서 그 부담을 주셨고 그 땅 가운데로 들어가라고 말씀을 구체적으로 제 가운데 새겨 주셨다. 그런데 제가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잘 알았으면 아마 그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땅에 외국인으로서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세우고, 대학교를 세우고 선교적인 비전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을 쉽지 않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제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서 첫 번째로 불가능에 부딪힌 것은 제게 있었던 췌장의 혹이었다. 이것은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너무 좋은 의사를 만나서 일반적인 수술법으로는 비장도 들어내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선교지에서 풍토병에 취약해지고 오랫동안 머물면서 사역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우려하셔서 특별히 혹만 제거하는 어려운 수술을 채택을 했다. 수술이 잘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췌장액이 세는 것이 발견되었고 그것이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완전히 수술을 절제하는 수술을 하든지 아니면 평생 관을 달고 살아야 되는 그러면 선교지에는 갈 수 없는 상황가운데 있었다. 기도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 주를 지나가면서 이 췌장관이 저절로 아물었다. 보통은 췌장액이 산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상처를 계속해서 녹인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흘러나오는 췌장액을 멈추게 하셨고 그래서 다시 건강한 몸으로 인도네시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만약에 하나님께서
제 건강 상황에 대해서 개입하지 않으셨으면 오늘날의 사역은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게 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비자 문제였다. 대학을 세워야 비자를 해결하기가 쉬운데 또 대학을 세우려면 사람이 들어와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인도네시아의 많은 상황들이 A가 있어야 B가 있고 B가 있어야 A가 있는 그런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서 대학교 건축을 하려고 보니 학교 건축의 허가를 받으려면 학교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 허가를 받으려면 학교 건물이 있어야 했다. 있어야 B가 있고 B가 있어야 A가 있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비자 문제가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외부를 나가면서 집회를 해야 하는데 또 비자 기간에 잘 안 맞아서 어려웠고 한 번은 비자 연장 기간에 어쩔 수 없이 집회 차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이 금지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민국 데스크에 앞에 앉아서 불쌍한 모습으로 선처를 구하면서 그렇게 있다가 참 그 책임자가 저를 긍휼히 보고 없었던 것으로 넘어가 주면서 무사히 인도네시아로 들어가게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결국은 이 비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회사를 세워야 했다. 그런데 회사를 세우려면 인도네시아에서는 투자 금이 많이 필요로 했다. 그 투자 금을 만들려면 그런데 헌금을 가지고 투자를 하면 원칙적으로 하면 안 되듯이 투자를 위한 재정이 별도로 필요했다. 사역을 위한 것 외에 회사를 세울 수 있는 어떤 재정후원이나 투자 목적의 투자가 필요했는데 그 부분이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이 목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때 특별한 계기로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과정에서 합작회사를 세울 수 있게 해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결국 합작했던 그분들이 나중에는 다 빠져나가는 모습에서 우리학교가 그 사역을 이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선교사들이 사역도 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것을 가장 편안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학교에 부동산을 관리하는 것이 제일 좋겠고 그렇게 해야 학교가 편안하게 갈수 있고 또 회사는 회사대로 어떤 에너지를 쓰지 않고 갈 수 있겠는데 그런데 법적으로는 그게 불가능했다. 그런데 작년에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 옴니버스라는 법안이 만들어졌는데, 그 많은 항목 중에 외국인의 부동산 추가 항목이 있었다. 도대체 변호사들도 이 항목이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보통은 막아 놓는데 이 시점에서 이렇게 열어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것은 우리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것이라고 여겨졌다. 저희가 대학을 세우기 전에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을 해야 해서 초중고학교를 운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영어 커리큘럼에다가 그 미국식 교육과정에 더하기 기독교교육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의 허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라고 봤다. 그런데 그렇게 운영을 하려고 하니 다양한 어려움이 발생했다. 외국인으로서 거기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또 학생들의 졸업 후에 진로에도 문제가 있었다. 특히 제 아이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인가 받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안 그러면 검정고시를 보게 되어야만 하니까 외국에서 자라는 아이가 국사 공부하고 국어 공부하는 것들이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로 하고 있는데 정말 우연한 경우에 어느 교육 컴퍼런스에 갔다가 인도네시아 교장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법안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 법은 로비가 아니다. 대통령도 쉽게 법을 만들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법은 뭐냐면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의 학교가 있다. 그런데 그 절반 정도는 그곳에서 가르치고 그 절반 정도는 일반 교육과정을 같이 하는 학교인데 인도네시아는 5대 종교를 다 해주는데 왜 이슬람만 특별한 학교로 해주고 다른 종교는 허용해 주지 않느냐고 했더니 기독도 특별하게 기독교 교육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곳, 우리로 말하면 기독교 특목교이다. 일단 단순히 크리스천 학교가 아니라 어마한 성경을 가르치고 암송시켜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학교 제도가 허가가 나온 것이다. 저희 지역이 경기도 같은 곳인데 그 지역 자체의 딱 두 개의 중에 신설하게 되었다. 저희 학교가 신설학교로 선정이 된 것이다. 이 학교는 영어로 가르치고 내셔널 커리큘럼으로 인정을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제도가 미비 된 상황에서 어플라이를 했기 때문에 정부 공인이 되게 되었고 단 한 가지는 저희가 성경을 너무 많이 가르치는 학교로 되어서 저희가 정부에 성경 과목수를 줄이게 해달라고 하는 선교사가 이야기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어쨌든 초중고 학교의 허가가 되었고 참 많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특별히 만나고 체험하고 또 일본 아이들이 와서 성경을 배우고, 다양한 아이들이 와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그러한 특별한 은혜를 누리고 있다. 그때 하나님이 법을 인도하시지 않으셨으면 한 발도 못 움직였다. 또 저희 대학 허가 관련해서 저희가 인도네시아에 들어갔을 때 모라토리움이라는 것이 허용되었다. 신규 대학에 일체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십년 정도 계속되었는데 그 사이에 잠시 그 제도를 개편하기 위해서 열어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딱 그때 어플라이를 했다. 그 프로세스에 갔는데 허가가 나왔다. 그 국장님이 저희 학교에 시찰을 나왔다가 그런 이야기를 저에게 했다. ‘지난 십년 간 인도네시아에서 신규 대학허가를 받은 학교는 당신들 밖에 없다.’ 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가 당신들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 시책에 따라서 그 폐교 위기에 있었던 한 단과 대학을 인수한 적이 있었는데 그 두 개를 합치면 속히 종합대학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다른 학과를 설립을 열어주겠다고 해서 올해 또 허가를 목전에 두고 있다. 단과대학 허가를 받은 지 4년 만에 종합대학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특별한 케이스이다. 이것은 누가 개인이 잘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작정하고 일을 벌이시는 경우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또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 라고 하려고 보니까 ‘자카르트’라는 언어를 쓰기는 어렵고 ‘인터내셔널’이라는 언어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프로브가 된 것이다. 이게 쉽지 않은 게 저는 이게 필요하다고 보냐면 중동권 아이들을 위해서 그들을 섬기고 또 핍박 받는 지역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돌아가게 하려면 중립적인 이름이 필요했는데 그 이름을 사용하게 되도록 허가를 받은 것이다. 한 번은 어느 대학교, 인도네시아의 한 대학교의 총장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물었다. ‘우리는 20년간 이 땅에 분교를 세우려고 그렇게 애를 쓰다가 여기서는 안 된다고 해서 그만 두었는데, 이것이 되어가는 것을 보니 특별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같다.’라고 해주셨다.

건축을 할 때도 참 어려웠다. 제가 가진 것이 없었다. 그나마 은혜를 받았던 것은 그때는 하나님이 다 두고 오라고 하셨다. 그때는 아직 믿음으로 두고 왔는데 인도네시아 오니 좀 아쉬웠다. 씨드 머니가 필요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마음에 말씀을 주셨다. “괜찮아, 네가 알지 못하는 재정이 준비되어 있다.” 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때는 한국에 대한 것에 선교적인 열정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주시고 제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시고 또 그런가 하면 외부로 우리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 하거나 소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바라고 기다렸던 상황이었다. 공사를 시작하라는 강한 감동을 주셔서 시작은 했지만 계속해서의 사인의 인보이스를 보고 많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 앞에 저의 낙담을 올려 드리는 시기에 “하나님, 저 혼자 독박을 쓰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감옥을 가도 하나님이 가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간다고 했더니 “너 부담 가운데서라도 좀 웃으면서 가라.” 하셨다. 그런데 40억 빚지고 웃어지는가? 그런데 깨달아졌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이 부담을 주시는 이유가 나보고 너 좀 고생 좀 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호수아에게 짐을 지시게 하는 이유가 ‘너 한 번 좀 혼나봐’ 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다. 제가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받았다.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을 듣고 집을 팔아서 헌금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재정을 채워 가시고 건물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건물까지 이번 4월 4일에 완공 식을 하고 얼마 있다가 나왔다. 계속해서 지어야겠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공급을 기대하면서 가야한다. 이것은 무얼 쌓아놓고 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훈련의 여정이기 그렇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단단해 지는 것이 있다. 하나님 내일도 나와 함께 하실 것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믿어지는 것이다. 어제 함께 하셨던 하나님, 그분을 믿고 내가 반응했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해 주셨는지가 너무 생생하게 현실로 인식이 되기 때문에 내일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저희가 외진 곳에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어려웠다. 어떤 일이 생겼냐면 학교 앞으로 5km 떨어진 거리에 고속전철이 들어오기로 했다. 저희학교 근처에 동남아에서 가장 큰 일본 몰이 들어오기로 되어있고 학교 건너편 쪽으로 현대 자동차 전기차 공장이 들어왔고 그리고 LG베터리 공장이 곧 들어오고, 그리고 또 아마 다른 대기업들이 들어오기 위해서 스터디 중이라고 들었는데 저희는 외진 곳에서 학교를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좀 했는데 거기가 인도네시아의 최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것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이미 계획해 두셨구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저희는 영어로 교육을 하기 때문에 크리스천으로만 영어교사와 영어교수를 뽑아야 하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그게 불가능할거라고 보았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사람들이 있었다. 선교사를 통해서 오래전부터 훈련 받았던 사람들이다. 또 교육선교사로 사명을 받았던 사람들, 십년 십 오년 전부터 사명을 받았던 사람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양육하고 때로는 무슬림도 타종교도 있었는데 그들을 하나님이 크리스천으로 바꾸셔서 우리를 만나게 하시는 모든 과정들이 너무 섬세하셨다. 그런가 하면 우리 사역자들이 들어온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제가 이 분야에 이런 사람이 필요한데요. 하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3-4개월 이내에 연락이 온다.

이번에 IT학과를 세워야 해서 한국 사역자가 한 명 더 오면 좋겠다고 했는데 인도에서 선교사님이 연락이 왔다. 우리가 IT 세운 것을 모르고 거기 좀 IT대학에서 인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데 1년 정도 가 있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당신네 교회에서 인도사역을 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 좀 고쳐달라고 했더니 그러면서 저희가 IT학과 신설을 하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아예 함께 하시는 것으로 그렇게 결정해서 들어오시게 되었다. 제가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아뢰면 그것은 우리가 일반 회사가 월급 주는 회사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가 하면 저희가 건축을 담당했던 사역자가 나가게 되는 상황이어서 이 빈자리를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던 차에 삼성건설에서 해외 수주를 오랫동안 하셨던 리더분 한 분이 인도네시아에 골프를 치러 오셨다가 저희 사역 지를 보시고 마음이 움직여져서 그 즉시 3번째 건물을 맡아 주셔서 지금껏 잘 마무리 해주셨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타이밍 가운데 연결되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떤 사람들에게는 드라마틱하게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보게 된다. 어떤 경우는 잘 느껴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제가 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특별한 것들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 고백할 것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무것도 안 될 거라고 느껴져서 낙담하던 어느 날 예배 가운데 “주품에 품으소서.!!!” 그 찬양이 들렸다. 그래서 “하나님 저도 품어주시고 안아주시면 안돼요?” 했더니 하나님은 날개를 치시면서 저에게 다가와 주셨다. 그때 물으셨다. 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진 시간이 오래 계속되고 너에게 아무런 도움도 없는 것 같고 너의 소중한 기회들이 다 날려버린 것 같고 그렇게 지내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나를 만족할 수 있냐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 고백했다. “주님, 저 하나님 한 분이시면 됩니다. 주님의 안아주심으로 충분합니다.” 라고 했더니 하나님은 기다리신 것이다. 그렇기에 인도네시아에 있는 동안에 한 번도 성공을 위해서 달려간 적은 없다. 그냥 이것은 안 되는 일이니까,,, 제가 무슨 수로 인도네시아의 법을 바꾸는가? 그저 있으라 하는 자리에서 주님만 바라보니 일이 진행하게 되었다. 나를 찾아와서 나를 품어주시는 주님을 기대하고 “강하고 담대하라.” 고 하신 말씀에 “저도 그렇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라고 반응하시기를 바란다.

 
 
♣요약
여호수아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강하고 담대하라' 이다. '강하다'는 것은 '튼튼하다'는 의미보다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이방 문화에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기준을 말씀에 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에 너무나 쉽게 동화되는 우리의 연약한 특성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말씀에 순종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묵상이란 단순히 마음으로 그 의미를 음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말씀으로 분별하고 적용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와 치열한 영적전쟁을 의미한다. 우리의 할 일만 열심히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다 하시기 때문이다. 마음에 그 말씀을 품고 안아주심을 기대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헌신하고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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