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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부흥새벽기도회(주후 2022년 4월 20일)-셋째 날
제목: "기도의 용사들, 기도하라 하나님이 일 하신다"
말씀: 시편 108편, 출애굽기 17:8~16
인도사회: 오정현 담임목사님
 
설교자: 필립 라이켄 목사님(휘튼 칼리지대학 총장님),
최병락 목사님(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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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8편,-(필립 라이켄 목사님-(휘튼 칼리지대학 총장님))
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2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4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6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7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8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9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10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 할꼬.
1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2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3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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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라이켄 목사님-(휘튼 칼리지대학 총장님)-*시편 108편,
이는 이스라엘 후기 역사의 일들로 백성들이 고통 받던 일들로 인해 낙담해 있던 때에 기록되었다. 시편 108의 기도는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올려드릴 기도의 밀접에 있다. 아침 일어나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며 기도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온 여러분의 기도와 밀접함에 말이다. 또는, <기도의 용사들이 드리는 아침의 시편> 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시인은 해가 자신을 깨울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아침 일찍 스스로 일어나 오히려 자신이 해를 깨운다. 시인은 하루의 첫 시간부터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고 싶어 한다. 이 사실은 본문 서론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 안에서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찬양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를 위해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또는 영적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제5권의 시편들은 일반적으로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중에, 또한 그 이후에 기록되고 읽힌 시편이다. 비록 여러분이 수많은 기복을 겪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변함이 없으시다. 본문 5절에서 나타난 시인의 고백이 인상 깊다.
 
*시편 108:5,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자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창조물(피조물)을 떠올리는데, 시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가장 높은 데까지 이릅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서 5절에서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라고 고백한다. 이아침 기도의 자리로 오신 여러분, 기억하세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보좌에 좌정해 계시며 부활하신 구세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 앉아 계셔서 천사들과 모든 열방, 그리고 오늘 이 아침에 기도하러 나오신 여러분들로부터 높임을 받으시고, 예배를 받으신다. 그런 의미에서 본 시편은 하나님을 높여 경배하고 예배하는 ‘찬송 시’이다. 앞서 저는 본 시편의 두 개의 시편이 하나로 통합된 시편이라고 말씀드렸다. 두 음식물을 섭취해 하나의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을 비유로 들었지요. 이아침 기도의 자리로 오신 여러분 기억하길 바란다. 또 어쩌면 본 시편은 재봉사가 두 개의 담요에서 찬 조각을 가져와 꿰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과도 같다. 흥미로운 것 중에 하나는 시인이 57편 일부와 60편 일부를 가져와 하나로 통합해 본 시편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각 시편의 후반부 말씀을 따와 한 편의 시로 묶어냈다. 만약 시편에 대해 조금 아신다면 초반부는 대체로 질문들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차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것이다.
 
본 시편이 여러분을 믿음 안에서 더 굳건하게 하고 여러분에게 소망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두 개의 다른 시편의 의기양양한 결론들을 단일 시편의 결론으로 묶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시편 108편은 여러분이 더욱 담대하게 한다. 시편 57편의 경우, 당시 다윗은 위기의 시기에 있었고, 그의 원수인 사울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동굴 안으로 숨었고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피난처요 안전한 처소이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심지어 시편 60편의 경우, 당시 다윗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다윗은 그의 군대와 함께 전쟁을 치르려고 북쪽에 가 있었는데 에돔 군대가 이스라엘의 남쪽을 공격했다. 다윗과 그의 군대는 패배했고 이 일로 다윗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본 시편이 검증된 시편이기 때문이다. 시편 60편은 큰 어려움과 고난을 겪고 심지어 패배까지 경험한 남자와 한 민족이 올려드린 신앙과 기도이다. 탄원들이 담긴 시편 108편의 후반부를 살펴보면 얼마나 어려운 형편이 놓여 있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1절을 보면 다윗은 시편 60편을 기록할 때 가졌던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이 질문은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에 또, 그 이후에 시편 108편을 묶어내며 가졌던 질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일종의 수사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어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외면하시고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시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 적 있으신지 궁금하다. 시인이 지금 바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만연하다.
 
여러분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 저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형제자매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통일을 바라고 계실 것이다. 우리는 유럽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보며 어마어마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소식을 듣고 있다.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심지어 오늘날 전 세계 난민은 총 6-7,000 명으로 추산한다. 여러분이 이런 어려움을 몸소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오늘 이 아침에 기도의 자리로 나오기 어려우셨다면 스스로 낙담해 있거나 사랑하는 자녀들이 주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심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는 공동체 내에 갈등 문제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단이 여러분을 공격하고 있고, 침울하게 만들고 있으며 좌절시키려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잘 오셨다. 왜냐하면 이 자리는 여러분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간, 우리가 처한 시점과 형편에 솔직해질 수 있고 이를 기도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과 그분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인도 자신이 느끼고 있는 좌절감을 솔직히 드러낸다. 그러면서 그는 여전히 하나님과 주권을 확신한다. 여러분은 시편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다. 여러분이 고대 이스라엘 지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7-10절에는 다양한 지역이 언급되어 있다. 이 중에 일부는 이스라엘 내에 있다. 여기에서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과 관련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요단강 왼쪽부터 다른 왼쪽까지 이스라엘 전 지역에 자신의 주권을 선포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지역의 이름들은 무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중요하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모든 열방의 주님이심을 고백한다. 그리고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주님이심을 고백하실 줄로 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남과 북을 하나 되게 하시고 대한민국의 통일을 이루실 소망 안에 산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방을 통치하시고 계시며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손 안에 있다.
 
*시편 108편 8b,
8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절 하반 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 또한 자신의 것으로 선포하시면서 유다를 자신의 ‘규(통치 지팡이)’로 지칭하였다. ‘규’란 통치자가 그의 왕권과 그가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쥐고 있는 ‘왕의 지팡이’이다. 누구라도 ‘규’를 쥐고 있는 통치자를 보면 “저기 왕께서 계십니다! 왕께서 앉아 계시며, 그의 왕권을 상징하는 규를 쥐고 계십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왕께서 유다 족속으로부터 나오신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열방에 대한 그분의 통치를 예표 하는 예언의 말씀 중 하나이다. 그밖에 시편 108편을 비롯한 모든 시편과 관련해 말씀드리고자 하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시편을 읽을 때 시인이 누구인지를 떠올려야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떠올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려야 한다.
 
히브리서 2장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신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말씀하신다.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장에서 이와 비슷한 표현을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 사역하시면서 시편을 즐겨 부르셨다. 그는 회당에 가셨을 때도 부르셨고 제자들과 함께 부르기도 하셨다. 또한,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그 밤에도 시편을 부르셨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시편 말씀과 상당히 친밀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시편을 읽고 부를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는 일은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시편을 부르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편의 표현들을 인용하시면서 모든 열방에 대한 그분의 주권을 선포하시고 모든 열방의 백성들과 함께 주를 찬송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소원을 드러내신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열방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자 목적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종류의 찬양과 진심 어린 탄원을 올려드릴 수 있다면 시인이 시편 말미에서 그리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확신할 수 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오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원수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세계교회가 사단과 악을 대적해 승리를 거두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다. 우리는 본문 11절의 말씀을 통해 확신한다. 우리 스스로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면 우리는 귀한 일을 감당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의 대적들을 받으실 것이다.
 
여러분, 이아침에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시는 가운데 휘튼 칼리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길 바라며 오늘 시인처럼 승리의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소망하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올려드리는 찬양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요약
이른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라. 시인처럼 고통과 낙담될 때 전심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려 드린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면 들어응답하신다. 찬양하고 기도를 전적으로 집중하여 기도해서 주님과 친밀한 만나야 한다. 예수님도 찬양을 먼저 하셨듯이 찬양과 경배로 시작하고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이니 늘 찬양의 확신을 가지고 찬송하고 소망을 가지고 집중하여 기도를 올려드려라. 그리하면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정한 다윗의 태도는 자신의 온 인격을 하나님께 집중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한 심령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같은 마음가짐을 가진 자에게서 참된 기쁨과 감사의 찬양이 흘러나올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시인은 본문에서 주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권능과 도움을 믿고 용감히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수나 재물은 가변적이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따라서 성도는 재물이나 사람의 수를 가지고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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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7:8~16-(최병락 목사님-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님)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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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다시 와서 19차 말씀을 전하고 이번에 다시 불러 주셔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어 감사하다.
청년부 대학부 수련회 때,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저 혼자 와서 설교를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올 때마다 마음에 감동이 있고 박영선 목사님 말씀하셨던 것을 같이 시청하면서 말씀이 생각난다. 사랑의 교회의 부흥이 현재를 써내려가고 있다는 것처럼, 부흥이 현재형이고 이전에 없었던 놀라운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복한다. 코로나가 끝이 난다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이전에도 없었던 기도, 이 자리에 없었던 예배, 찬송으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는 사랑의 교회와 가정이 되길 바란다. 기도하면 일 하신다. 분명한 사실임을 기억하라.
 
내가 일하면 하나님은 멈추고 계시지만,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일하시기 시작하신다. 언젠가 기도하는 제 모습을 돌아보았다. 기도의 모습이 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은 이렇게 묘사를 한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데, 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할까? 봤더니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은 보좌에서 일어나 내 삶에 걸어오셔서 일을 행하시고, 내가 손을 모으면 하나님은 능력의 팔을 펼치셔서 일하시고 내가 눈을 감으면,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셔서 내 모든 삶을 감찰하시고 일하신다.
 
“주여, 내 두 발로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지 않겠나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많으나 내 두 발을 주님 앞으로 부복하고 엎드려 내 발을 스스로 결박할 테니, 주님이 나의 발이 되어 주여, 내 삶에 걸어 다니시고 주님, 일하시옵소서.” “하나님이 두 손 가지고 제 마음 대로 일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두 손 기도하려고 묶어 둘 테니 하나님이 내 손이 되어 주시옵소서. 마음껏 일하시옵소서. 하나님 보인다고 보이는 대로만 보지 않겠습니다. 주님 앞에 내 눈을 감겠습니다. 하나님이 내 눈이 되어주셔서 불꽃같은 눈동자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사 제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통찰하시고 보시면서 해결해 주시옵소서!”
 
그 마음에 모든 자세의 소원이 그 기도의 자세에 다 들어있었다. 오늘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발이 되시고, 기도하는 시간에 여러분의 손이 되시고, 기도하는 시간에 여러분의 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가 약 200만 명의 달하는 사람을 데리고 이 출애굽을 하고 광야로 나왔다. 얼마나 두렵겠는가? 또 이 출애굽을 한 이백만 명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목축을 하고 노동을 했기 때문에 전쟁을 해보지 않았다. 한 번도 전쟁을 해보지 않고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 출애굽을 했는데 갑자기 느비딤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에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와서 약 400년 만에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모세야 이집트의 왕자로 자라면서 많은 전쟁의 선봉에 서서 승리로 이끌었던 람세스 책들을 보면 모세의 전쟁이 나온다. 모세를 제외하고 누가 전쟁을 했겠는가? 아무도 400년 동안 전쟁이라고는 해보지 않았다. 이들 앞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것도 느비딤 골짜기에 아주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아말렉이라고 하는 신출귀몰하는 그러한 민족과 그렇게 전쟁을 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이 전쟁을 승리할 수 없었다. 한 번도 전쟁을 해보지 않은, 그리고 광야에 익숙하지 않은, 그리고 광야가 낯설기만 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태어나서부터 광야에서 잔뼈가 굳었고 느비딤은 자기들의 터전이었고,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것을 노략해서 자기의 생계를 이어가던 이 아말렉 군대에 있어서는 어쩌면 눈감고 전쟁을 해도 이 전쟁은 이길 수 있는, 누가 봐도 전세가 기울어지는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전쟁, 아무리 사람 숫자로 밀어붙여도 이길 수 없음을 누가 가장 잘 알고 있었느냐면 모세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칼을 들고, 창을 들고, 말을 타고 구호를 짜서 돌려가면서 바로 전쟁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잘 알다시피 그가 선택한 것은 전쟁에서 이길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산으로 올라 간 것이다. 산위로 올라가서 아론과 훌을 데리고 손을 들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고 손을 내리면 하나님이 지게 하신다는 것을 모세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전쟁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황스럽게 전쟁에 앞장 서야할 리더가 산위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함으로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인데 이기게 된 것이다. 여러분이 이 새벽이라는 산에 올라와 기도하는 동안에 세상에 이 코로나와 코로나의 직격탄과 코로나의 광풍에 여러분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때에 이 특별부흥회의 산에 새벽에 올라온 이상 하나님이 이루게 하실 줄 믿는다. 우리는 기도할 뿐이지만 기도하는 시간에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어차피 내 힘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는 전쟁, 기도하는 동안에 하나님이 발이 되시고, 내 손이 되시고, 눈이 되신다면 하나님이 싸워주시면 하나님하고 싸운다면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는 가정을 반드시 돌보시고 기도하는 삶을 반드시 이기게 하실 줄 믿는다.
 
모세는 산 위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저번에 왔을 때 간증을 했지만 미국에서 21년 살면서 목회를 개척을 하고 17년 목회를 하던 중에 강남중앙침례교회 저희 교단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교회 1번지 교회이다. 마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마음의 빚이 있는 교회인데 청빙을 받아서 1년 동안 기도하고 도망가고 또 기도하고 하다가 순종해서 오게 되었다. 이렇게 오면 3년 전인데 이렇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부르셨으니까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진짜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가 터졌다.
 
“하나님, 코로나가 끝나고 부르셔도 되는데 왜 코로나 직전에 부르셨나요?”라고 하면서 와서 1년 정도 열심히 목회를 하다가 보니까 정말 코로나 전 1년은 엄청난 교회로 몰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정말 즐겁게 잔칫집 같이 그렇게 목회를 하고 있는 중에 코로나가 생긴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예배당은 텅 비어버렸고 혼자 카메라 앞에서 설교를 해야 하고 최대한 배려를 해주어서 20명 나올 수 있다고 그러고, “아 하나님, 왜 이곳으로 보내셨나요? 하나님 이곳에서 또 이 시기에 부르셨나요?”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기도하는 중에 기도하라고 주신 시간이라고 들고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저희 교회는 양수리 수양관이 있는데 양수리 수양관이 부지가 굉장히 넓어서 뒤에 큰 산이 두 개가 있다. 그 산도 양수리 수양관 것이다. 그래서 마음껏 올라가서 기도할 수 있다. 모세가 산으로 올라갔다고 하면 나도 산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혼자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운전하고 저 양수리 수양관에서 차를 대놓고 30분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를 했다. 10시에 가면 새벽 1시 2시까지 깊은 바위틈에 혼자 앉아서 있으면 얼마나 기도가 안 나오는지 모른다. 여러분도 궁금하면 한 번 해보라. 혼자 산에 올라가서 기도가 나오나 안 나오나 시험을 해보아라. 절대로 안 나온다. 무서워서 기도를 할 수가 없다. 조그만 부스러기 소리만 나면, 멧돼지가 나오는가 싶어 눈이 번쩍 뜨인다. 후레쉬를 가지고 이리 비치고 저리 비쳤다고 한다. 신세가 처량하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던 사람을 불러놓고 목회를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 코로나가 왠 말입니까? 이 산에 혼자 앉아서 주여, 우리 성도들 코로나에서 구원해 주십시오!” 라고 했다. 어떨 때는 기도가 잘 안 되는 때에 자정이 내려가고 영하 20도가 내려가는 시간이면 제일 추울 때에 무조건 가는데 그때에 기도가 열린다. 왜냐하면 무서워가지고 이것은 막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 산이 쩡쩡 울릴 정도로 기도가 나온다. 그때 한 시간 집중해서 기도하고 내려온다. 혼자 다니다 보니 아내를 데리고 간다. 잘 따라온다. 둘이 기도를 한 참 하다가 혼자 하는 것 보니까 밤길도 업은 아이 한 명 데리고 가면 덜 무섭다고 그러는데 기도가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부목사님들을 다 데리고 올라갔다. 그리고 나서 좋으니까 장로님들 모시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호루라기 불기 전까지 내려오지 못하게 했더니 그렇게 해서 기도를 계속하게 되었고 권사님들과 중직 자님들도 그리하셨고, 모든 집사님들도 이렇게 해서 산에 다 올라가서 기도를 했다. 기도를 시키니까 무서워서 얼마나 소리가 엄청 크게 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산에 정말 많이 올라갔다. 목사님 따라 산에 올라간 사람과 못 간 분들이 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전교인 산 기도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몇 주 전에 산 기도를 했다. 양수리에서 야외 모여서 부르짖으면서 하나님, 펜데믹이 엔데믹이 되어도 부흥의 새 바람이 불어오게 하시고 코로나 광풍을 맞아 대한민국 교회가 한 교회도 문 닫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조국교회 골짝마다 성령의 새 바람이 불어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오월에는 전국에 있는 참여하기 원하는 교회들이 다 초청해서 다시 산 기도를 한다. 코로나 기간에 기도를 했더니 많은 일들을 행하셨고, 기도하다 보니 많은 것을 깨닫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역사의 새 판을 짜고 계신다는 것을 또 느끼게 되었다. 기도하지 않고 염려만 했더라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었고, 기도했기 때문에 저 같이 약한 심장이 빼고 강한 사자 같은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그러한 시간, 저에게는 새로운 시간을 주셨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 두었던 그 우물을 아비멜렉이 메꾸어 버렸을 때에 이삭이 아버지의 그 우물을 다시 파는 장면이 나온다. 마틴 루이스 목사님은 이삭이 메꿔진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파낸 것을 ‘부흥’이라고 이야기 했다. 메꾸어진 우물을 다시 파는 것, 이것이 부흥인데 우리 대한민국 12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우리 성도들과 교회들이 파 놓은 부흥의 우물들이 있다. 그런데 마귀가 이 우물들을 다 메꾸어버려서 이제는 다 메꾸어 되어져 버린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오늘날 교회들은 그 우물들을 다시 파내어서 부흥의 샘물이 솟아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그중에 하나가 제 목회가운데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면서 대한민국이 골짝마다 저 삼각산에서, 오산리에서, 저 양수리에서, 다 산에서 부르짖으면서 우리의 부흥의 우물을 팠던 그 선배들, 이제는 그 우물들이 메꾸어져 버린 것, 하나님이 파내는 맡겨진 저만의 사명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교회는 특새라고 하는 정말 미국과 전 세계에 한국교회들에 ‘특새’라고 용어를 쓰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로 사랑의교회가 만들어 낸, 오정현 목사님이 만들어 낸, 특별새벽기도회를 줄여서 특새, 라는 용어가 이션 하고 여러분의 특새와 정감 운동을 통해서 많은 교회들이 새벽에 일어나 깨우고,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이제 코로나가 끝나는 것을 준비하면서 특새를 하고 있다. 여러분의 교회가 앞장 서 가면서 이렇게 새벽에 이렇게 성도들이 많이 모여 이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기도하고 있는 이곳은 사랑의 회가 우리 대한민국 120년 역사 속에서 새벽마다 그 선배들이 깨웠던 그 새벽의 우물을 여러분이 지금 계속 파고 있는 것이다. 어느 교회는 여의도 광장에 모여서 매스컴퍼런스를 통해서 거기에서 많은 헌신 자들이 나오고 많은 주의 종들이 나왔다면 광장의 우물도 다시 파서 그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이 주 앞에 헌신하고 목회자로 헌신하는 우물이 다시 파내지고 산에서 메꾸어진 우물들은 산에서 기도소리가 울려야 되고 도시의 한 복판에 메꾸어진 우물을 사랑의교회가 계속해서 파내어서 교회들마다 새벽의 우물에서 생명수가 솟아나는 일을 감당해야 할 줄 믿는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개인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나온 것도 중요하지만, 모이는 이 자체만으로도 시대적으로도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인 줄 믿는다. 모여서 기도하더라. 20차 이번에 시작을 했는데 정말 새벽 2시 3시부터 성도들이 저 도로에 길게 줄로 서서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해서 줄을 섰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부흥은 언제나 소문을 통해서 전해지고, 그 소문은 그 교회에 현실로 나타나게 되면서 다시 부흥은 이 코로나 이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런 새벽기도로 많은 교회들이 막혔던 기도의 시간들이 회복될 줄 믿는다. 그래서 고맙고 그래서 감사하고 그래서 여러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를 바란다.
 
 
모세는 이 아말렉 전쟁 앞에서 산으로 올라갔는데 말씀을 묵상하다가 모세는 왜? 그 평지에서 기도하지 않고 그 전쟁 앞에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오!~저 산”!! 산에 올라간다. 왜 산에서 손을 들고 기도를 했을까?
 
오늘 여러분과 함께 정해진 시간에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를 드린 이유를 밝혀보고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기도를 산에 왜 찾아서 가야 하는지를, 여러분의 기도의 산은 무엇인지를 한 번 나누어보자.
 
1. 모세가 산으로 올라간 첫 번째 이유는 가장 간절하게 나오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평지에서 전쟁을 앞두고 기도할 수 있었지만, 그리고 리더가 모세는 이 전쟁이 신출귀몰하는 자기들이 어릴 적부터 이 이집트에서 받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리더가 산꼭대기로 올라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적군에서 특공대를 보내어 동서남북에서 쥐 잡듯이 올라오면 산꼭대기에 있는 리더는 포위되어 죽고 만다. 평지에서 진두지휘해야 한다. 앞에 서면 뒤로 도망가고 오른쪽에 서면 왼쪽으로 도망가는 퇴로가 있는 곳에서 리더가 진두지휘를 해야 하는데, 그 백성을 버려두고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것,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모세가 가장 위험한 곳을 왜 선택해서 올라갔는가? 모세는 알았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기도해야 가장 절실한 기도가 나온다는 것을 안다. 이 전쟁은 나의 진두지휘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된다고 모세는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어디에 서서 기도를 해야 가장 간절한 기도가 나올까를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오랜 기도에도 응답하시지만 기도의 양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퀄리티도 중요하다. 여러분 어차피 기도하는 시간, 몇 시간씩 앉아서 기도하는 것 양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한 번을 기도해도 간절하게 기도하는 그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잠언 8:17,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그냥 시간만 보내서는 안 된다 5년째 기도의 응답이 안 된다고 말한다. 5년을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냐가 중요하다. 모세는 내가 어디로 올라가야 가장 기도가 잘 나올까를 생각했다. 로링 커닝의 기도를 빌리자면 산꼭대기 벼랑 끝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과 평지의 한 복판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그 기도의 간절함이 평지에서 기도하는 사람과 같지 않다.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이다. 여러분이 저마다 간절한 기도가 되기를 원해서 이 새벽이 나온 줄 안다. 그렇다면 어차피 나온 이시간에 정말 간절해지기를 축복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되고 다른 사람의 기도는 몰라도 “너의 기도는 들어 주어야겠다.”고 하실 정도로 심쿵이 되시도록 하나님도 찡하는 감동이 올 정도의 기도를 가장 기뻐하실 줄 믿는다.
 
미국에서 목회하다가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사람은 절벽인 사람들이 많다. 실패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실패, 미국에서 기도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3일을 금식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자고 했다. 남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힘들다. 금식기도는 잘 나온다. 그 집사님은 배가 고파서 식사를 하면서 그냥 기도를 간절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잘 될 리가 없다. 그분은 금식을 안 하신 것이다. 이분이 힘들어졌다. 간절해야 한다. 정말 간절해야 한다.
 
야곱이 창세기 32장에서 야콥 강가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정도로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아는가? 초저녁 기도와 새벽녘 기도가 다르다. 야곱이 워낙 열정적인 사람이라서(Man of passion), 누가 보기에는 초저녁부터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했겠지만 성경을 보면 걸음이 느린 아내와 자녀들과 다 소와 양들은 일찍이 강 너머로 보내버렸다. 야곱은 달리기가 선수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두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 형이 따라오는데 나를 살려주세요. 굉장히 간절해 보인다. 하나님은 끝까지 안 도와주시고 형이 코앞에 오면 플랜 B가 본인에게 생각이 있었다. 그러면서 두 다리를 툭툭 쳤을 것이다. 다리가 선수이니까 일단은 기도해보고 안 해주시면 도망가고 이 기도를 한다. 플랜 B, 2차 기도가 있는 계획은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으신다. 주님도 지켜보신다. 야곱을 그래도 하나님이 사랑하셔가지고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싶은 것은 첫 번째의 응답은 달릴 수 없도록 환도 뼈를 치신다. 그 뼈가 끊어지는 순간 야곱의 기도의 톤이 높아진다. 아까 목사님께서 키 업 하라고 하신 것처럼, 야곱의 그 기도가 한 단계 높아지면서 하나님, 진짜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내 도망갈 두 다리가 끊어졌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안 된다고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그 기도가 천사와 겨루어 이길 때까지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응답되었던 것이다.
 
 
 
엘리야의 기도...
1:850으로 싸웠던 엘리야, 누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참 신인가를 대결하는 것이었다. 아무리해도 안 되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려면 제단에 짐승들을 놓고 땔감을 놓고 있던 습기도 없앤 후에야 그런 3년 동안 건조한 곳에서 불이라도 붙을 텐데, 불이 나게 하려면 있는 습기도 없애야 하는데 오히려 엘리야는 반대로 물을 12통이나 붓는다. 절대로 인간적으로 불이 붙을 수 없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 낸 것이다. 왜냐면, 여기에 물을 12통을 붓고 나면 내 기도는 간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불을 내릴 수 없나이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이 불이 붙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야 엘리야는 간절한 기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도가 절절히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고 그 간절함이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불을 내리시고 불이 아니라 무엇인들 안 내리셨겠는가?
 
여러분 이 새벽에 나와 기도하실 것이면 간절하게 기도하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큰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많은 분들은 잠잠한 기도를 하지만 믿음이 깊어지면 부르짖는 기도를 한다는데 반대이다. 가장 성경에 나오는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이다. 신앙이 성숙해지면 침묵기도까지 영성이 되지만 믿음이 적은 자들은 부르짖고 기도해야 응답이 된다.
 
아말렉 앞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이길까? 어디로 가야 내 기도가 가장 뜨겁게 나올까를 생각한 모세는 가장 위험한 장소로 간다.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장소로 가야겠다고 하면서 산꼭대기로 간다. 그래서 하나님, 동서남북에서 올라오면 나는 죽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이 전쟁을 이길 수 없아고 외치며 모세는 간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장소에 서니 하나님 앞에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응답해 주세요, 한다면 만약 응답을 안 하신다면 기다리라고 하신다. 내가 세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주여, 주밖에 없나이다.” “나는 주만 바라보나이다.” 아람군대 앞에서 기도했던 여호사밧 기도처럼, “나는 주만 바라봅니다.” 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산으로 올라갔던
 
2. 또 하나의 이유는 산은 모세가 늘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이다.

하나님은 그를 산에서 부르셨고 그에게 산에서 율법을 주셨고 산에서 오늘도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모세에게 있어서 기도하면 떠오르는 가장 첫 번째 장소가 산이었다. 산에서 응답 잘된 사람이 있고 저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고 여러분이 기도응답이 잘 되는 여러분만의 산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특별새벽기도라든지 기도가 잘 되는 사람, 내 평생 살아온 길, 새벽마다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고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벽에 나왔다가 갈 때까지 자고 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나는 금요일 철야기도 때는 하늘 문이 열리고 방언이 열리고 정말 하나님과 영적 깊은 기도를 해서 모든 내 삶에 응답이 철야기도회에서 일어났다면 그분에게 있어서 금요철야가 맞는다. 나는 3일 금식하고 일주일 금식을 했는데 그때마다문제가 풀어졌다면 그분의 산은 금식이 되는 것이고, 저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가장 만날 수 있고 가장 기도가 잘 응답되어 지는 여러분만의 산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산에서 내려오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주님 앞에 나와 기도했을 때가 있는데, 하나님이 복주시고 응답 주셔서 살만하게 되니까 이일도 해야 되고 저 일도 해야 되고 이제는 살만하니까 바빠서 새벽에 산에서 내려왔다면 문제는 그날부터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분은 다시 그 산에 올라야 한다. 내가 금요일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피곤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밤새도록 기도하고 부르짖었던 그 산에서 하나님이 불쌍해서 응답 주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놀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오라는 곳도 많아서 금요일 한두 번 산에서 내려오면서부터 그 문제는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면 그 산에 올라야 하고 금식으로 은혜를 받았다면 금식의 산에 올라가야 하는 그것이 바로 회복을 너머 부흥으로 가는 여러분의 길복이 되는 것이다. 어제 칩 잉그램 목사님이 아침에 영어공부 많이 되었을 텐데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모세는 산 위에서 산 밑을 바라보면서 그 문제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위해서 산으로 올라갔던 것처럼 우리가 기도를 해서 아무리해도 기도의 응답이 안 된다면 그걸 고집스럽게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어떤 선교사님의 간증이다. 그분이 중보기도 팀장을 하신 분이시다. 선교단체는 최전방의 영적 최 전방이다. 그걸 영적으로 책임지는 중보기도 팀장이니까 사령관이나 다름없다.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이 있었겠는가?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면서 제가 어떻게 중보기도 팀장이 됩니까를 하다가 궁여지책으로 하던 생각이 집에서 3년간 칩거를 하는데 방에다가 전 세계 대통령 사진을 붙여놓고 그 밑에 나라 정보를 붙여놓고 그 아래 기도제목을 붙여놓고 전 세계 대통령에게 안수를 하고 그렇게 3년이 되었다. 됐다고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도 옮길 만한 하다는 것이 믿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험해 보고 싶었다. 친구 두 명을 불러서 북한산을 옮기겠다고 했다. 증인으로 불러서 한강이 보이는데 저 산을 한강에 옮기겠다고 장담한다.
외친다.“북한산아!, 저 산이 한강에 빠질지어다.” 라고 했더니 가만히 있더란다. 그대로 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란다. 온 우주를 다 하는데 “나는 그 산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셨다고 한다.
 
기도는 예수의 팔을 붙들어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산을 옮기고 싶을 때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저 산을 옮기시기를 원하시나요?” 라고 묻는 것이 그를 향하여 담대함이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응답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있는 것인지, 마지막 한 가지 왜 그가 또 산에 올라갔을까?
3. 그 이유는 그는 모세가 이겼다는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을 듣지 않고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게 함으로 백성들이 모세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한다. 모세만 의지 했다면 그때부터 모세만 의지해야 하는데 백성들이 친히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던 말은 이것은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모세는 기도를 했고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다.

 
여러분, 여러분이 일하시면 하나님은 안 계신다. 그러나 우리가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일하신다. 한국에 오기위해 기도를 참 많이 했다. 하나님께 자녀를 맡겼다.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켜 달라고 기도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을 수 있다. 모세가 기도했더니 8절은 아말렉과 이스라엘이 싸웠는데 모세가 기도를 했더니 아말렉과 하나님이 싸우셨다. 나와 싸웠는데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셔서 싸워주l신다. 이 특새에 모든 기도의 응답이 되길 기도한다.
 
 
요약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이 아니면 안 되기에 우리의 성전의 산에 올라왔으니 오늘도 내가 열심히 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틈을 드려야 한다. 발을 묶고 손을 모으로 눈을 감아서 하나님이 나의 눈이 되시고 발이 되시고 손이 되셔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길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군을 인솔하였고,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했다. 그러다가 모세가 피곤하여 손을 내리자 아론과 훌이 양쪽 손을 받쳐 주어 그 손이 내려오지 않았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할 때 그 크신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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