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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22일)
제목: "전심의 마음을 주소서((1부)"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2부),
"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3부),
"돌아서지 않으리"(4부)
말씀: 시편 86:1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외
대표기도: 장단희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외

설교자:초빙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총재)-1부("전심의 마음을 주소서"-시편86:11)-통역:정상익 부목사님 
(피터 릴백 목사님-웨스터민스터 신학교 총장)-2부("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시편 3:8)통역:김인기 부목사님
(칩 일그램 목사님-리빙 온 더 엣지 대표)-3부("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잠언 10:9)
(줄리어스 김 목사님-한국어사역부대표)-4부("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창세기 11:2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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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6:11,(1부)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 시편 3:8,(2부)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잠언 10:9,(3부)
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창세기 11:27-12:9,(4부)
27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12:1-9,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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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총재)-1부("전심의 마음을 주소서"-시편86:11)-통역:정상익 부목사님

-사랑하는 우리 사랑의 괴성도 여러분 이 아침에 다시 이곳에 돌아와서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저에게 참 큰 기쁨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한국 교회 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 중의 하나가 오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전체 세계 교회 역사 가운데서도 아주 중요한 날이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일단 이렇게 GNR에 함께 모이기 때문에 그렇고요. 그리고 특별히 로잔 운동 제4차 대회에 5천여 명에 달하는 전 세계의 목사님들과 신학자들과 사역자들이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로잔대회에 참여하시는 제 동료들도 여기에 이 자리에 많이 와 계신데요. 그리고 오늘 2부 예배, 3부 예배, 4부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들도 모두 로잔 대회에 참여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아는 분들과 함께 함인데요. 여러분들에게 하나 권면드리고 싶어요. 여러분, 2부 예배도 기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3부 예배도 드리시면서 또 4부 예배도 기대하며 보시면 어떨까요? 제가 오늘 2, 3, 4부에서 말씀 전하신 목사님들을 보니까요? 제가 우리 담임목사님한테 이런 말씀드렸어요. 매 예배마다 더 좋은 분이 오시네요. 라구요. 그래서 저는 제가 제일 먼저 그 길을 닦는 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이 로잔 4차 대회를 생각하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2010년에 있었던 그 남아공의 또 케이프타운에서 열렸었던 그 로잔 3차 대회였어요. 제가 왜 이 아침에 여기 있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간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게 당연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이지만, 동시에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이신 오정현 목사님께서 저를 초대해 주셔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2010년 4월 달에 있었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그 시간에 런던에 있었는데요. 모든 비행기들이 이륙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화산재 때문에 이륙하지 못하던 그때의 오정현 목사님도 런던에 계셨어요. 그리고 오정현 목사님 타시려고 했던 비행기도 역시 이륙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도 4월에 있었던 그 주일 날, 저희가 런던 시 한복판에 있었던 택시 승강장에서 만나게 됐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그 자리에서 만나서 오정현 목사님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만남 이후에 사랑의 교회에서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헌신을 해주시게 됐어요. 그 당시에 로잔대회를 할 때, 200명이 넘는 전 세계의 아주 저명한 사역자들께서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요. 굉장히 큰 그룹으로 모이기도 하고, 작은 그룹으로 모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 아시는 그런 목사님이셨어요. 정말 유명한 신학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용감한 우리 선교사님들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 로잔 3차대회 10일간에 전해졌던 말씀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7살 되었던 북한에서 탈 북한 소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그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이 시편 기자가 그리고 지혜 설을 담당했던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죠. 인간이 계획할지라도 하나님이 운행하신다고요.

저는 여러분과 이 자리에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가 어떤지 잘 잘 모르지만, 물론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오겠죠. 근데 그때에 우리는 아마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공헌하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여러분을 통해 또 여러분 안에서 일하셨는지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집중하고자 하는데요. 여러분에게 이 다윗 왕이 하나님께 올려드렸던 기도 내용을 좀 나눠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 시편 기자가 이야기하는 그 기도를 함께 올려 드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 송도와 서울에서 열리는 로잔 4차 대회에 함께하시는 5천여 명의 사역자들을 위해서 여러분이 이 기도를 함께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 안에서 형제 이제 자매된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이 그 기도를 함께 나눠드립니다. 아, 그리고 이렇게 정말 아름다운 우리 영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근데 저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을 나눠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 여기 계신 남성분들 그리고 자녀분들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에 귀 기울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삶의 영역 가운데서 3가지 부분에 대해서 이 부분을 보시고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 깊이를 더 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해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이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그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로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이 3가지 이유가 바로 오늘 아침 우리가 모인 이유입니다. 오늘 아침에 모인 이유입니다. 이 오늘 아침에 성도로서 가져야 되는 마음,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우리가 의사를 만나서 우리의 몸 상태를 체크할 때요. 이 의사가 여러 부분, 여러 영역들을 보통 보시잖아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영역을 의사처럼 살펴보실 때, 3가지 이 싸인을 정확히 이 몸의 신호를 보시려고 해요. 첫 번째로, 우리 뇌파를 보시려고 할 겁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심장 파동을 또 보실 겁니다. 맥박을 보실 거예요. 맥박이 정말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실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걸어가는 그 걸음걸이를 보실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의 생각이 다시금 재조정 되고 정교하게 만들어지죠.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기쁨으로 모든 것을 다 뒤로 한 채 예수님을 따라가기로 작정합니다. 이런 이 그림이 제가 그려드렸던 그림이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바와 아마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막 만들어 드렸던 이 그림이 여러분의 삶과 일치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하구요. 여러분의 이 가슴이 움직이고요. 그리고 여러분이 모시는 그 예수님 그 발자국 뒤를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 끄덕거리는 것 같아요. 이것이 여러분이 추구하는 바, 이잖아요? 이것이 여러분이 가진 그리고 제가 가진 열정이지 않습니까?

저는 71세예요. 저는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5살 때 예수님이 제 마음 가운데 오시기를 여쭤봤고 영접했어요. 제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겠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있어서 때때로는 나의 열정과 나의 삶의 실제 모습이 다른 걸 볼 때가 있어요. 시편 86편의 말씀을 다시금 보시면 좋겠습니다. 1절부터 11절까지 함께 보겠습니다.

*시편 86:1-11,
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 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 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아멘, 특별히 이 1절부터 11절 말씀 중에 11절의 강조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윗왕이 이렇게 찬양합니다. 여워요 쥐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그렇게 하여서 내가 쥐의 진리에 행하게 해 주시기 원합니다. 저에게 전심 1심을 주셔서 쥐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다윗 왕은 나눠지지 않은 온전히 하나가 된 그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길 바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죠.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키라구요. 예수님께서 대 계명을 또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을 때 그렇게 이야기하십니다. 가서 내 법도를 계명을 알려주라고요. 우리가 이 다윗 왕이 가졌던 일심에 대한 열정을 살펴볼 때, 전심과 일심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때,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 말씀에,

*마태복음 22:37,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예수님이 주신 말씀과 비슷하게 다윗 왕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일심을 주셔서 죄를 경외하게 하소서.” 솔로몬 왕도 그런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했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 이라구요.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 내용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다윗 왕을 기름 부으시고, 왕으로 삼으셨을 때, ‘내 마음을 아는 자’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근데 특별히 그 다윗 왕이 그런 칭찬을 들었던 다윗 왕이, 시편 86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여호와여, 일심 전심을 주옵소서.” 왜? 다윗 왕이 전심을 달라고, 일심을 달라고 그렇게 노래했을까요? 왜냐하면, 다윗 왕은 언제든지 자신의 마음이 나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적인 그 사탄이 다윗의 적인 사탄이, 찾아와서 마음을 나눠서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이 전쟁사에 있어서 적군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누게 되면 정쟁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만약 그 병사들이 나누어지게 되면, 흩어지고 또 장군들이 서로 일치하지 못하게 되면, 그 부대안에 공통된 목표가 사라지게 되면, 그럼 그 부대는 훨씬 쉽게 패배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병사들은 결국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적인 사탄은 매우 똑똑하죠. 정말 영리해서 아주 작은 일들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 앞에 내어놓고 난 이후에, 아 사탄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너 너무 많은 것을 주인께 드린 거 아니야? 네가 사실 원하는 건 이거잖아? 너 이런 이거 보는 거 좋아하잖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도 잘 아는 것처럼 다윗 왕은 정말 많은 유혹을 받았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정말 큰 죄를 지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말 큰 은혜를 받았던 사람이죠. 정말 큰 많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 왕이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를 사용하소서. 우리를 사용하소소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나에게 전심, 일심을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나눠질 때에, 우리의 가슴도, 우리의 심장도 나눠지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나눠지고 나눠지게 되면 교회가 약하게 되죠. 그리고 이 5천 명의 로잔 운동으로 모였던 분들이 나눠지게 되면 전 세계교회가 나눠져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통해, 마음이 나누어지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당시 자신이 살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간음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모든 백성의 마음이 약해졌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3가지 예를 특별하게 들면서 그 상황을 이야기 하는데요. 그때 호세아가 이런 예를 듭니다. ‘반만 구워진 빵과 같다’고요.

제가 어제 도쿄에 있었는데요. 제 친구가 저를 빵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막 갓 구워진 그 빵에서 나오는 냄새만 맡아도 막 배가 고파지는 그런 곳이었어요. 여러분 빵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은 반쯤 구워진 빵을 한번 드셔보셨습니까? 먹으면 정말 맛이 없죠. 그렇게 반쯤 구워진 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빵이 아닙니다. 그리고 심지어 우상조차도 원하지 않는 모습일 거예요.

호세아서에서는 또 이 백성의 마음이 나눠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자기 자신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한 노인이 자기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근데 제가 그 말씀 보니까 나한테 하는 말씀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제가 나이가 들었어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제 몸이 약해지는 걸 보면 어 나에게 한 말씀인가 싶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가 훨씬 잘생겼었는데 좀 못생겨지니까 저한테 하는 말씀인가? 싶긴 했어요. 농담이기는 합니다만 제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마음을 지켜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호세아에 말씀처럼 마음이 남은 약해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호세와 선지자가 이 새가 정말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것에 대한 것도 언급을 합니다. 이쪽 우상으로, 저쪽 우상으로, 막 날아다니면서 계속 이곳에서 도움을 구할까, 저곳에서 도움을 구할까, 하는 새처럼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우리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도 동일한 모습 보여 때가 있습니다. 우리 마치 마음이 나눠진 신드롬을 겪는 것처럼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시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의 삶의 전부를 주님께 드렸습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원하는 모든 그것들 열정을 주님께 올려드렸나요? 예수님의 주재 권을 인정 하셨나요?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또 찬양을 올려드리고, 실실하게 교회나 신앙생활 하지만 그런데 남은 6일은 마치 세상의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구별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우리가 능력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기쁨도 사라진 걸 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에베소서 말씀이 그것에 대한 답을 줍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상황들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거죠. 우리가 이 다이드 왕이 준 시편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이야기를 해요. 응답해 달라고 이야기하는데 왜 응답해 달라고 하느냐, 가난하고 궁핍하기 때문에요.

여러분, 시편을 굉장히 아름답게 시작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시지 않으세요. 정말 아름답고 수려한 그 말들로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게, 나 자신이 이런 상태여. 라고 인정하는 걸로 시작하죠. ‘하나님 들으소서. 저는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그런데 또 다윗 왕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한번 살펴볼까요? 5절 말씀에,

*시편 86:5,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하나님 당신은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십니다. 주여, 신들 중에 주화 같은 자가 없사오며. 라고 8절에서도 이야기해요. 10절에 무릇 주는 위대 하사 기이한일을 들 행하시오니 주 만이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15절 말씀에,

*시편 86:15,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임자와 진실을 풍성하게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죠. 얼마나 아름다운 주님을 우리가 모시고 있습니까? 여러분 다윗 왕이 찬양했던 것처럼, 오늘 아침 찬양하실 수 있으신가요? 하나님 저는 정말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저에게 일심, 전심을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우리 마음의 열정을 살펴볼 때, 우리의 열정에 상응하는 유혹이 늘 따라온다는 것을 봅니다. 제가 일본에서 20여 년간 선교사로 사역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저의 모국에 이 신앙의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정말 이 물질적인 세상에서 거기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동시에 점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어가는 궁핍해져가는 걸 봅니다. 우리의 능력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우리의 약점이 되는 것을 봐요. 우리의 이 자유가 방종으로 치닫고요. 우리가 정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축적한 그 부(富)가 이제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죠. 그리고 결국 우리는 파괴되고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서 너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구요. 세상에 유혹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건 더더욱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시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를 사랑하고, 하나를 미워하는 거 할 수밖에 없다.

제가 여기 그 예배에 참석하신 우리 젊은이들을 보게 되는데요. 그리고 또 중년에 계신 분들도 보구요. 그리고 노년의 삶을 이루고 계신 분들도 봅니다. 저는 특별히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특별히, 손주를 막 볼 나이 대에 계신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지난 6월에 13살 된 제 손주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요. 막 갔던 캠프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때 저한테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할아버지 제가 뭐 하나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슨 일이 혹시 있었니? “할아버지 저 예수님 보고 제 마음 가운데 와 달라고 고백했어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제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정말 똑똑한 손녀였거든요. 그리고 굉장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였어요. 아, 그러다 보니까 또 부모하고의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기도 했죠.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권위에 대한 도전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드리던 기도를 멈추 멈췄던 손녀였어요. 그리고 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부르지 않게 됐던 그런 손녀였어요. 하나님 앞에서 계속 불순종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손녀가 저에게 얘기한 거예요. ‘예수님이 내 마음 가운데 찾아오시기를 저는 기도했어요.’ 라고요. 교수님 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주재 권은 인정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여름 내내 계속 전화를 해서 상태로 물어봤어요. 근데 계속해서 기쁨의 그 대답을 듣게 됐습니다. 이제 학교가 시작했어요. 2학기가 시작이 됐죠. 그래서 제가 학기 중에 있는 소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이제 손녀가 그러는 거예요.

제가 처음 예수님 만났을 땐 정말 기뻤는데 이젠 좀 힘드네요. 라고 우리 가족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리고 교회 친구들하고 계속 있는 게 아니라서, 이제는 학교에 있는 친구들하고 너무 시간을 보내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대부분의 친구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이라서, 나는 그분 그 친구들과도 함께 하고 싶고, 우리 예수님과도 함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손녀가 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소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렴.’ 그 말씀을 매일매일 새롭게 만들렴. 그리고 그 하루 종일 그 말씀을 계속해서 너의 것으로 만들렴.

저도 제 인생 가운데 17살 때,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대부분도 다 인생 가운데 그런 순간이 1번쯤은 있으셨을 거예요.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을 쫓아야 하는가? 선택하는 그 선택의 기로 말이죠. 제가 17살 때, 함께 했었던 그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이 한 번도 지지 않고 계속 승리했던 아주 유명한 팀이었어요. 여러분 이제 학창 시절에 혹시 그런 축구팀이나 운동 팀이나 또는 밴드나 또 이렇게 함께 하는 합창단 같은 걸 해보셨으면 얼마나 친구들끼리 아주 가까웠는지 아실 거예요. 그리고 그 친구들과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하고 싶어 하죠. 그런데 제 친구가 저녁식사 이후에 우리 파티할 건데 거기 올래? 라고 얘기할 때, 굉장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내 부모님은 그걸 절대 기뻐하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부모님이 나를 너무나 신뢰하시기 때문에, 내가 만약 거길 간다면 너무 힘들어 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신뢰하시기 때문에 갔다 와도 모르실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내가 갈까, 말까 되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마음이 나눠지게 됐습니다. 저는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믿는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했었어요. 그런데 비밀스럽게 제 개인적인 삶 가운데서는 죄를 짓는 기쁨도 함께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주일 아침에 예배를 드리다가 17살 청소년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는 것, 하나님께 모든 걸 다 드린 것에 대한 설교를 듣게 됐어요.

그때 바로 예수님께 순종하겠다. 라는 마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파티를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파티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굉장히 문란했더라고요. 예수님을 이 예수님께 영광으로 올려드리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파티였습니다. 제가 결국 그 파티를 안 가게 됐는데요. 20주년으로 그때 같은 팀에 있었던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됐을 때, 그날 그 파티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근데 20년이 지나서 제 친구가 얘기해 주는 내용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 너가 오길 참 바라긴 했는데, 오지 않았던 것 우리 존중한다.


세상은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진실 되게 사는 걸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기쁘게 사는 걸 바랍니다. 정말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살길 원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보이는 그 삶을 살길 원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마음이 일심이 되어 전심이 되어 예수님께 향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젠가 한번쯤 예수님을 영접하셨을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찾아오시기로 초대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 내 마음은 예수님의 집입니다. 라고 고백했죠. 그래서 우리집, 이 예수님의 집인 내 마음 가운데 예수님이 편안하게 거시길 바랍니다.

정말 아름답고 순수한 이 마음을 주님께 드리길 원하죠. 제가 며칠 전에 계속해서 도쿄에 있었는데요. 일본 도쿄에서 제 누나와 함께 친구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친구가 그 집을 굉장히 아름답게 꾸며놓고 있었어요. 여러 이제 방들을 또 소개를 해줘서 이제 보고 아 참 잘 꾸며 놨다. 했는데요. 어 근데 제 누나가 작은 문 하나가 잠겨있는 걸 발견을 했어요. 그래서 어 이 방엔 또 뭐가 있어? 라고 자연스럽게 묻게 됐죠. 그런데 제 누나가 그렇게 묻자마자 제 친구 어 그 문은 열지 마. 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절대 보지 마. 라고 그러면서 네 그 방 정말 최악이야 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제 누나가 그 문을 또 열더라고요. 단순히 최악이 아니라 정말 심각하게 최악이었던 방이었습니다. 정말 방 안에 모든 게 폭탄이 터진 것처럼 어지럽혀져 있었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시는 것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정말 아름다운 방을 찾으세요. 어 여기도 아름다운 방이 있구나.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데 문이 잠겨있는 방도 예수님이 발견하십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그 잘 잠겨있는 방을 보시면서 물으세요. 여기에는 뭐가 있니 예수님이 만약 그 잠겨있는 문을 여신다면 무엇을 보실까요? 죄악으로 오염되고 가득 찬 그런 방을 보시지 않을까요? 숨겨놨던 죄들마저 있는 그 방 아니면 그 문을 열었을 때, 오히려 예수님 보시기에 정말 아름답고 예수님을 위해 준비된 방일 수도 있겠죠. 주님 나에게 일심전심을 주옵소서.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영광 올려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기도: 하나님 성령 님을 통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기쁨을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정 가운데 걸어갈 때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더욱 빛이 나고 사용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요약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에는 전심으로, 가정과 일터에서 이웃에게는 진심으로, 유혹을 이기고 진리를 행하는 ‘주님의 집’으로 살아가야 한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사랑으로 맥박치는 심장을 주님께 드려서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평생이 되며, 우리 교회의 ‘2033-50 비전’의 원년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금식하며 섬길 때, 10,27일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가 복음통일의 마중물로 쓰임받기를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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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예배.
제목: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말씀: 시편 3:8
설교자: 피터 릴백 목사님-웨스터민스터 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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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3:8,(2부)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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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릴백 목사님-웨스터민스터 신학교 총장-초빙)-2부-"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시편 3:8)통역;김인기 부목사님

-너무나 멋진 사랑의 교회 선도님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이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특별히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초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이 오늘 여러분과 나눌 은혜의 말씀은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편을 가지고 은혜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3장의 주제입니다. 사무엘상 2장에서도 찾을 수 있는 내용이고요. 시편 3장 1절입니다.

*시편 3:1-2,
1 여호와의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그러나 지금 이 상황 가운데서 다윗은 자기 아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압살롬이 반란 일으켰고 이제 다윗을 죽이러 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다윗 왕이 두려움에 휩싸였을까요? 자기 아들이 자기를 죽인다는 게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된 상황이었을까요? 그러나 5절 이렇게 다윗이 고백을 합니다.

*시편 3:5,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다윗 왕의 일생 가운데 가장 어두운 상황 가운데서 그는 주님께서 그를 붙드시고 일으키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의 압살롬에 대해서도 그가 알았지만 오히려 그는 압살롬보다 하나님에 대해 그는 더 알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3:6,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이다.
-다윗이 이렇게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이렇게 평안과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왜냐하면, 바로 8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시편 3:8,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에게 구원은 여호와께 있 싸움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구원이라는 의미에 대해 우리가 살펴보길 원합니다. 히브리어로 구원은 ‘이샤’라고 합니다. 이 히브리어 단어 이샤는 예수님의 이름에도 포함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의 이름에도 포함되어 있고 이것은 ①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기독교의 근간은 바로 사우베이션, 우리 구원이라는 구원론에 우리가 모든 것을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이라는 뜻은 우선 먼저 구원을 받는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에 담긴 4가지 뜻 중 하나는 ⓶경제적 손실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음식이나 돈을 저축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가뭄 가운데서 요셉이 이집트에서 한 일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구원의 두 번째 의미는 위험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국제적인 구조 신호인 SOS는 배나 비행기가 위험에 처했을 때 사용하는 신호입니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신호입니다. 세 번째 ⓷구원의 뜻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뜨거운 풀무불과 사자 굴에서 구원받는 다니엘서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다니엘과 새 친구들 주님께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네 번째 구원입니다. 바로 ⓸죄로 인한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의 예수님의 목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10,
10 임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특별히 이 시각 우리 서울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든 살아있는 성도님들이 글로벌 복음주의와 그리고 선교를 향해서 나아갈 때,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오신 이 목적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이 복음주의 운동이 함께하고 있는데,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바로 이 복음을 모든 만민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는 우리가 종교 개혁의 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종교개혁의 모토들, 신조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솔라 스크립처럼 ‘오직 성경’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가르칠 수 이때 오직 그리스도라는 솔라 스크리스도, 솔라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배우면 배울수록 솔라피대,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권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소울라 그레티아 오직 은혜로만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복음을 깨달을 때, 솔리데오 고로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우리가 돌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복음을 이해한 모든 사람들을 뒤늦게 우리가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예전 제사상들이 스스로 책을 읽고 성경을 읽고서 자기네들이 열고 읽은 것 같이, 이제는 우리가 제사장이 되어 우리 스스로 성경책을 읽고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하나님께 있다. 라고 말할 때 정말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우리가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 온 정말로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 특별히 시편 3장 8절, 가지고 은혜를 나눌 텐데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시편 3:8,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이 구절은 사실 성경구약부터 신약까지의 모든 전반위로는 근간이 되는 말씀입니다. 원시 복음인 창세기 3장 15절에 따르면 구원은 처음부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었으며, 우리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할 것을 말씀해 줍니다.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마무리될 것을 확신합니다. 네가 이것을 이루겠노라. 구원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여호와께만 속한 것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리라. 이 진리를 깨달은 다윗은 그렇기 때문에 그가 담대함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 라는 이 진리를 우리가 처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오늘 살펴보게 될 텐데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오늘 제대로 인지하고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시편 37편 39절,

*시편 37:39,
39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시편 62:7,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다윗의 신학은 바로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 그의 이름인 주님께서 구원하신 나라, 이사야도 주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사야 43장 11절입니다.

*이사야 43:11.
11 나 곧 나는 여호하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5장 21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5:21,
21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오늘 이 시간 성도님들 중에 혹시 내가 이만큼 잘했으니까, 내가 이만큼 선을 쌓았으니까 주늦게 나아갈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이 진리를 증거합니다. 3장 23절입니다. 예레미아 3장 23절,

*예레미야 3:23,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예레미야인의 당시에 있던 모든 우상들을 보았습니다. 바알, 정말로 풍요를 가져다주자는 바알을 많은 사람들이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교가, 난교가 정말로 이 공동체 가운데 만연하였고 그것이야말로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난교가 하는 눈을 연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것은 우상숭배일 뿐이라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많은 방법이 아니라 한 방법밖에 없다. 바로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호세 선지자도 말합니다. 13장 4절입니다.

*호세아 13:4,
4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라 나밖에 내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요나 2장 9절입니다.

*요나 2:9,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죽게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요나 이야기 잘 아시죠. 요나는 잠수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주 큰 물고기였습니다. 정말 배 위에서 던져져서 이제 물고기의 삼켜줘 버렸습니다. 폭풍이 부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라이프 재킷도 없었고 바닷가까지 수영할 수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오직 할 수 있는 단 하나는 바로 바다에 바라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요나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매일의 삶 가운데 사실 삶 속에서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앉고 있는 우리를 주님께서 구원의 손으로 우리를 건져내시며 주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노라.’ 만일 다른 곳에서 구원을 찾으신다면 여러분 틀린 곳을 찾고 계실 겁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우리의 모든 자만을 주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 인간적인 모든 의는 주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에 절대 다다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근데 그거 구약의 이야기 아닌가요? 저는 신약을 믿는 사람입니다. 근데 여러분 신약 성경도 이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을 아시나요?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정말로 아주 작은 러셀에 담겨있는 복음이라고,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살아가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보다 멸망치 않고 갖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왜 하나님께서 만일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주님의 독생자를 주셨을까요? 만일 예수님께서 많은 길들이 구원으로 이루는 많은 길들이 있다면 어 아무 데나 가도 돼 근데 나에게 오는 게 가장 편한 길일 수도 있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도 이것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에 사도행견 4장 12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견 4:12,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들이 가르칠 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주의를 보십시오. 많은 우상들 있으면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우상도 우리 주님께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께로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라고 사도들이 가르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디모데전서 2장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디모데전서 2:5,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5장 11절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일서 5:11-12,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이 아들 안에 있기 때문에 아들이 있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요한도 똑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지구의 역사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 모두는 정말로 주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모든 복음의 열매들과 믿었던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찬양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라는 가사를 찬양할 것입니다. 바로 요한계시록 7장 9절에서 10절입니다.

*요한계시록 7:9-10,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민족이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혹시 살아있는 선도님들 이렇게 함께 고백해 볼까요?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약간 작은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할렐루야, 천국에서 한 번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절입니다.

*요한계시록 19:1,
1 이후의 내가 들으니 하늘의 허다한 무리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루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바로 천국의 찬양인 이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시간 이 진리가 우리 신앙생활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몇 가지 포인트들을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모든 신앙 이 신앙에 있는 이 모든 우리 아 말씀들은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구원엔 우리의 공로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착하려고 노력을 해도 구원받을 만한 우리 가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면은 우리가 그때 깨닫게 됩니다. 아 구원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선물이구나. 라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케 하며 우리를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의 우리의 공로는 조금 더 없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글씨 통해 주신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해 깨닫게 되면 우린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은혜의 감격에 반응은 바로 감사입니다. 혹시 오늘 기분이 좀 언짢으신가요? 오늘 불평하며 이 자리에 나오셨나요? 오늘 혹시 이 자리에 나오셔서 하나님 세상을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되죠? 라고 컴플레인하고 계십니까? 아 하나님 제가 한 일이 이만큼 많은데 저 더 주셔야죠. 라고 컴플레인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겁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자세와 우리의 반응을 주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저희에게 거저 주셨고 구원의 영광까지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 가지 의도로 인해 병원으로 다니고 몸이 안 좋아서 아니면, 회사 가운데서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는 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걱정이 되고 염려가 돼서 혈압이 올라가는 분도 계실 겁니다. 계속 걱정하고 불평하면 나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가운데 괴로워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오늘 시편 3장 8절 말씀 기억하고 계신가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왕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아멘. 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의 삶을 살아나갈 때 감사뿐만이 아니라, 주님께 전적 위탁으로 매일의 삶을 살아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큰 약속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한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염려를 주님의 약속으로 바꾸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막고 끊을 자가 능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죽게 맡기라 왜냐면, 여러분을 주니께서는 여러분도, 여러분도, 여러분도 사랑하시고 이 시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을 우리가 확실하게 볼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나갈 동안 우리에겐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목적은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것입니다. 혹시 그 말씀 기억하시나요? 여러분들의 머리털 하나도 주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질 수 없다. 라는 말씀, 우리의 삶에 모든 날들을 주님께서 기록하고 계신다는 말씀 주님께서는 성령님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은 우리가 주님과 같이 주님을 마주 보게 되고 우리가 주님과 같이 온전하여 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우리의 공로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께 전적위탁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하나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고백해 볼까요?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신약이 전 세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신학을 거부하는 모든 것들도 이 말씀으로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카톨릭 교회는 우리 교황이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카톨릭 교황을 엄청난 신학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그를 보고서 어떤 부분은 동의하지만 어떤 부분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시간 우리가 교황이 말했던 이 한 가지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거절하고 거부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황이 말했던 이 발언은 절대로 우리가 복음주의를 위하여 복음 확산을 위하여 동의할 수 없는 말을 교황이 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교황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종교는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모든 종교 중에 하나님께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길들이 하나님으로 인도할 수 있다. 라고 교황이 말했습니다.

심지어 모든 종교는 결국엔 다 같은 거기 때문에 다 같은 예수님을 찬양하는 거기 때문에 어떤 종교도 믿어도 괜찮다고 교황이 얘기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로마 교회를 내가 제가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제가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만 입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 고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 말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보편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경과 위배되는 말이라면 절대로 거짓입니다. 창세기와 다윗과 모든 선지자들과 그리고 사도들 결과 요한계슈로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는 한 믿음 아래 살아야 됩니다. 바로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교회를 개척해 나가고 우리가 교회를 세워나갈 때 우리는 이 믿음 위에 서 있어야 됩니다. 바로 구원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온다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말 종교 개혁을 이뤘던 우리 선조들의 믿음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만 믿을 것이라고 그들은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을 열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손을 내밀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성경을 우리가 읽을 때 아 성경 속에는 예수님 한 분만이 계시고 예수님 1분을 통하여 우리가 은혜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뻐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기뻐하며 자랑하겠습니다. 구원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요약
우리의 신령을 주님이 깨뜨려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치유하여 주시길 원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쇄골에 새겨지는 시대가 되게 하여 주시길 간구하며, 주님을 모르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면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생기는 시간되기를 소망하며, 특별히 사랑의 교회가 이 국제적인 복음주의에 사역을 감당하고 모든 세상을 전도하며 나아갈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의 교회를 붙들어 주실 것을 믿고, 모든 감사와 주님께 전적의탁 올려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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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예배
제목: "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
말씀: 잠언 10:9
설교자: 칩 일 그램 목사님(리빙 온 더 엣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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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0:9,
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칩 일그램 목사님-리빙 온 더 엣지 대표)-3부("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잠언 10:9)
-정말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 특별히 이런 기회를 주심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자라나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요. 그리고 제가 15살, 아마 16살쯤에 교회를 떠났습니다. 정말 저의 삶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게 됐어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거와 또 다르게 삶을 살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믿는다고 하는 성도님들을 볼 때마다 항상 의심의 눈으로 봤습니다. 아 그리고 또 예수님을 정말 따른다는 사람들의 모습도 제가 보게 됐어요.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삶이 이렇게 겹치는 모습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제가 18살이 돼서야 성경책을 처음 펼쳐보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저의 제 입장에서는 성경에 있는 말씀을 믿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제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겠는데, 그리고 아침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거 익숙해져 가긴 하구요. 그런데 예전에 옛 모습들이 저에게 너무 많이 남아 있었고, 그리고 제 생각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언어는 여전히 변화하지 않아서 욕도 참 많이 했어요. 제가 학교에 이 농구 장학생으로 가게 됐는데요.
 
그래서 저도 팀 안에서 굉장히 아주 터프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곤 했습니다. 제가 저희 팀에서 가장 키 큰 선수 우리 친구를 대할 때, 섹스텐 섹스 라든 한 190, 2미터가 넘는 그런 선수들이요. 그런 친구들이 제 룸메이트였습니다. 마이클 프랜드, 저의 좋은 친구였고요. 그러면 내 친구하고 싸워! 이렇게요.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할 때 정말 맞는 것 정말 옳은 것을 행하기 참 어렵다고 느끼는 분계신가요?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다 좀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정말 저 더 나은 엄마가 되길 바라고요. 그리고 더 나은 아빠가 되기를 바랍니다. 맞습니다. 더 나은 목사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더 나은 성도가 되길 바라시잖아요. 그죠?
 
근데 여러분과 제 사이에 다른 사람들 안 듣는다고 우리 생각 한번 해볼까요? 우리가 같이 이렇게 모이게 되면 그리고 커피 한 잔 하게 되면 그리고 굉장히 가까워지게 되면요. 여러분들이 실제로 살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됐는지 아마 얘기를 해주실 것 같아요. 제가 제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저도 아마 얘기를 안 되겠죠. 우리 모두가 다 어려움을 겪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삶에 대한 사실 1가지가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아마 동일하게 느낄 거예요.
 
우리 대부분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해서 말하는 건 훨씬 쉬워 하면서도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건 어려워요. 모든 사람이 아마 동일한 마음일 겁니다. 오늘 반갑습니다. 근데 이 오늘 이 하루가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날일 겁니다. 제가 딱 한 단어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하는데요. 딱 한 단어, 여러분의 인생에 그 일상 일생을 다 바꿀 수 있는 딱 한 단어를 나눠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할 때 자꾸 다른 데로 가는 걸 느끼죠? 우리 앞에 그림을 하나 보여주시겠어요.
 
세모로 된 그림으로 어 마치 이렇게 생긴 얼음덩어리 있다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 힘을 통해서 일을 통해서 우리의 관계를 그리고 언어를 막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저 위에 있는 것처럼 좋은 것들이죠. 그런데 우리가 바꾸려고 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기초가 있습니다. 딱 그 한 단어 ‘인테그리티’라고 되어있는 온전함이란 단어예요. 인테그리티(진실성-integrity)라고 보통 얘기할 때 정직함을 얘기를 많이 하는데, 단순히 정직함, 단순히 순결함만을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이거야말로 새로운 기적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단어예요. 이거는 사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통합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함으로 걷는다는 거는 우리가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함께, 여러분의 실제 모습이 똑같은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요. 정말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그 사람들이 우리가 이런 모습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이렇게 다 맞지 않게끔 행동할 때가 있죠. 크리스천스 우리 모두가 성도들이잖아요. 그런데 성도들처럼 살진 않아요. 미국에서는요. 한 70% 정도 되는 우리 젊은이들이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5년 지난 그 사람일 때, 이런 사랑의 교회와 같은 교회에서 자라난 그 젊은이들이 완전히 신앙의 길을 버려버리곤 합니다.
 
그렇게 70%나 떠난다고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근데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보이는 어 겉과 속이 다른 모습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릴게요. 여러분들이 작은 스텝 스텝을 밟으면서, 정말 온전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도록 알려드릴게요.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말씀 한 구절을 함께 외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정말 100% 늘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에요. 여러분의 읽으셨던 자문 말씀의 첫 번째 부분은 굉장히 긍정적이지만 반대편은 부정적이죠.
 
*잠언 10:9,
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거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오늘 뭘 할 거냐면요.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이 앞쪽에 있는 분들부터 북측 끝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 우리 성도님들께서 먼저 앞에 있는 부분을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요?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다시 한 번 더 읽겠습니다. 시작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뒷부분을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한 번 더 시작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베히흑 응원자로 행한 자는 드러나리라.” 잘 하셨어요. 네 좋습니다. 잘 하셨어요.
 
오정현 목사님 정말 뛰어난 우리 성도님들이시네요.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 안에 이렇게 쭉 들어오게끔 생각해 보세요. 제가 이 말씀 처음 받았을 때가 20살 때였습니다. 뭐 목사가 될 생각이나 그런 목사님께 받은 것도 아니었어요.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3가지라고 저에게 전해 주더라구요.
 
제가 들었던 그 3가지 이유 지금까지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3가지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같이 살펴볼게요. 여러분이 바른길, 온전함을 추구한다면, 물론 완벽하게 할 수는 없어도, 완벽하게는 할 수 없어도, 여러분이 바깥으로 보여 지는 이 모습이 아니더라도, 이 옷 안에 있는 진정한 여러분의 모습을 가지고요.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도, 여러분의 생각도, 여러분의 동기도, 여러분이 온전한 바른 길을 걸으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삶을 살면서 무언가 나에게 다시 와서 나를 힘들게 할 거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이 교회에 온 것처럼 많은 것들을 경험하잖아요.
 
제가 미국에서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는 목사님 한 분이 계신데, 근데 그 목사님은 30년 전에 정말 나쁜 일을 하셨던 분이었어요. 근데 그분이 목사가 돼서 굉장히 큰 교회를 세우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축복하신 거예요. 근데 온전함, 바른 길로 걷는 게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시던 분이었어요. 근데 몇 달 전에 그분의 삶이 완전히 드러나게 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완전히 눈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셨던 말씀이 다 사시게 됐습니다. 이런 일들이 온 세계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단순히 목사님들만 그런 건 아닙니다.
 
여러분, 제가 왜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온전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교회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삶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저는 싫었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그래서 오늘 3가지 이유, 3가지 제가 꼭 붙들게 된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바른 길로 걷기 위해 온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말 힘을 많이 들여서 거기에 집중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필요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함께 하는 성도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도와주는 연합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네 앞에 한번 띄워주시겠어요? “온전함이 없으면 관계도 없습니다.” 무슨 얘기지라고 하실 것 같아요. 어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아마 정직하게 솔직하게 예수님 만났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시간 지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라는데, 우물가에 여인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이야기하셨습니까? 어떤 특정 예배 자를 바라신다고 얘기하셨잖아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자, 우리가 만약 진리로 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마치 믿는 사람처럼은 얘기할 수 있지만 그러나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진 않겠죠. 그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정말 중요해요. 제가 그 대학교 다닐 때 아주 젊은 어 그런 기독교인 중의 한 명, 이제 예수님을 믿게 된 그런 젊은 기록교인이었습니다. 제가 이제 막 성경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게 됐어요. 제가 목요일 저녁에 성경 공부를 하게 됐는데요. 성경 공부하면서 이제 기도하게 됐습니다. 제가 남들 앞에서 큰소리로 기도하기에는 너무 챙피 하더라고요. 그리고 같이 함께 찬양도 좀 했어요.
 
그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는 거가 참 새롭게 느껴졌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죠. 그래서 모임 이후에 대학교의 언덕을 조금씩 걸어내려오면서, 정말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께 찬양을 올렸어요. 근데 그게 목요일 저녁이었어요. 그다음에 제가 이제 농구 선수였으니까 농구 연습을 갔어요. 연습 끝나고 나서 같이 놀자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죠. 우리 술집에 가서 같이 놀까? 그런 얘기를 했던 친구들과 함께했었어요.
 
아빠가 알코올중독 너는 술을 안마시니까, 너는 운전을 우리를 위해서 해줄 수 있잖아. 그래서 제가 금요일 밤, 토요일 밤에 친구들과 도시에 있는 많은 술집들을 다녔습니다. 제가 많은 일들을 했어요. 네,,, 그리고 똑같이 행동을 했습니다. 어 그리고 굉장히 죄스러운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제 안은 너무나 더러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아침에 돌아와서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고 너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너무 마음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 다시 또 그다음 주 목요일이 돼서 성경보고 하러 가는 거죠. 네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또 금요일에 와요. 저만 그런 건 아니죠? 이 전 세계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예수님과 정말 관계를 맺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인데, 한쪽 발만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다른 발을 세상에 두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래서 이 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하는 겁니다. 온전함, 바른 길로 걷는 자는 평안합니다. 그런데 굽은 길로 돌아간다면, 주님께서 그 길을 아시게 될 거예요. 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주 큰 약속이 있습니다. 시편 145편 18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45:18,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주님을 찾는 자에게 주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말씀이에요. 근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찾는 자를 주님이 찾아오신다고 이야기를 해요. 제가 말씀드렸던 그런 목요일의 일 그리고 금요일에 일 그리고 나서 제가 가서 아! 하나님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기도드리는 그 저의 그 가운데 성령님께서 제 귀에 속삭이시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나랑 솔직해지자. 너 죄짓는 거 좋아하는 거 맞지? 너 변화하고 싶지 않잖아. 더 이상 기도 하지 마.’ 그 말씀이 사실 어 사실이었어요.
 
여러분 정말 변화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바꿔달라고 그 마음을 바꿔달라고 기도하셔야 돼요. 그래서 제가 그 사실을 깨닫고, 화요일에 먼저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앞두고 이 잠언 말씀을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지혜로운 길을 걷는 자야말로 지혜롭다구요. 그런데 어리석은 자의 친구들은 고통을 당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계속 같이 걷는다면 그 사람들처럼 될 수밖에 없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게 제 삶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여전히 힘들긴 했어요. 그런데 제가 한 가지 깨닫게 된 게 뭔지 아십니까? 뭐 1주, 2주에 걸쳐서 계속 힘들어하고 슬퍼할 필요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하나님과 독대하면서 가장 정직해진 그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그리고 회개(悔改)의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갈 때, 그리고 이 다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갈 때,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두 팔을 벌리시고 안아주시는 아주 선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고자 하십니다. 이 세상은 돈과 권력과 그리고 성을 약속하지만 그리고 거기에 안전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요. 근데 우리 모두가 압니다. 거짓말이라는 걸, 저 캘리포니아에서 왔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예쁜 사람들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곳일 거예요. 근데 왜?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기 파트너들을 바꿔갈까요? 왜 결혼생활을 자꾸 이어가지 못할까요? 그런데 왜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면서 그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싶어 하고, 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하고, 그 사람들처럼 가지고 싶어 하십니까? 네 한 가지 알려드릴게요. 그들의 삶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어요. 저는 북가주에 있습니다. 구글과 애플사가 있는데요. 정말 큰 IT 기업들이 있는데요. 정말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 이 회사들의 자금을 지원하는 그런 일들을 하는 친구들이 저한테 좀 있는데요. 정말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산다고 제가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제가 정말 개인적인 질문 여러분에게 드려도 될까요? 여러분, 교회에 오실 때, 성경 좀 이때 저때 읽으시면서 해야 돼서 하시고 계시지는 않으세요? 아니면 죄책감을 느끼기 싫어서 성경을 읽거나 여기 오시는 건 아니세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초자연적인 삶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앞에서 정직한 솔직한 모습으로 나아갈 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도 그런 정직함, 온전함이 없으면 가질 수 없어요. 여러분, 다윗 왕이 범죄 했던 것 성경 말씀 있잖아요. 그리고 시편 51편에서 자기 죄를 고백을 합니다. 여러분 간음했다고 본인은 이야기를 해요. 실제로 계획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선지자가 찾아서 이야기하기 전에 거의 1년 가까이 자기의 죄를 숨겼습니다. 시편 32편을 보면 얼마나 그 다윗이 우울해져 있고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근데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서 찬양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 오직 당시 신에 대하여 제가 범죄 하였나이다. 근데 5절, 6절에 이어서 다윗이 그 시편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하나님은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진리를 진정함을 원하신다고요.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에 대해서도 솔직해지셔야 돼요. 그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싫어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싫어하는 게 한 가지 있죠. 우리 위선자(僞善者)들 정말 싫어해요. 어떤 사람이 실수한다고 기분 나쁘죠. 정말 잘못된 일을 했다고 기분 나쁘진 않습니다.
 
제가 정말 실수했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 아 정말 저 실패했어요. 이런 말 하지 말았어야 됐는데 너 너 정말 미안해요. 그렇게 말한 사람들 괜찮아요. 왜요 우리 모두 다 실수하니까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비밀스럽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그런 거 굉장히 기분 나쁘고 화나지 않으세요? 그런데 거울에 비친 그 위선자까지도 우리가 싫어하고 있어요. 이 여러분 우리가 굉장히 영원히 피폐해질 때, 냉장고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열 때를 많이 발견해요.
 
아니면 인터넷에 들어가서, 인터넷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또 방 안에 들어가서 티비를 막 켜서 해야 되겠죠. 뭔가 어떤 소리가 들리기를 원합니다. 마음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면서 잊어버릴려 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잠시 멈춰서 조용히 하나님을 한 시간이라도 만나면, 여러분 그 영혼을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이제 더 불편하게 돼서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많은 문제들은 우리 대부분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평생을 다 살아도 우리는 완벽해질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여러분, 시편 15편 첫째, 구절에서 다윗이 질문을 던지는데, 마지막 구절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나님의 그 이 성소 안에서 사람이 거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던졌던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합니다. 이 바른 길로 걷는 자는 그리고 진실 되게 말하는 자는 그리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고 이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내놓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보다는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주님 앞으로 갈 때, 주님 이런 말씀하신다는 거죠.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 말씀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사랑의 말을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나서 함께해야 된다고 이야기하죠.
 
여러분, 모든 관계가 온전해지기 위해서 딱 필요한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가 없다면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죠. 아 근데 제가 한 가지 고백할게요.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하곤 해요. 이게 제 진정한 모습이라면 제가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은 하지만 그리고 정말 더 염려하는 것처럼 행동은 하지만, 그리고 더 거룩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더 신실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 사랑하고 더 좋아할 만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그거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저 포즈를 취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이미지를 만든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 굉장히 이런 모습처럼 아주 좋은 시계를 차고, 그리고 아주 좋은 차를 타고, 아주 좋은 가방을 메고, 네 이런 것 저런 거 좋아하고, 우리가 정말 좋은 사람, 많은 걸 가진 사람인 것처럼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상처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이 죄로 인해서 생겨났던 것들은 감추려고 하죠. 저는 이 부분의 전문가니까, 정말 많은 것들로 우리를 가릴려고 합니다. 아 제가 정말 많은 점수 올릴 수 있어요. 그리고 정말 예뻤던 여자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정말 많은 성공을 막 이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누구도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죠.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거절받기 싫어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를 치장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홀로그램의 모습을 보는 거지 여러분 진정한 그 모습을 보지는 못하는 거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거절 받기 싫어서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를 치장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홀로그램을 보는 것이지, 여러분들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못하는 거죠. 근데, 여러분이 온전해지고, 또 진실 되게 바뀌면, 여러분이 신뢰할 수 있는 그 사람들에게 정말 여러분이 누군지를 보여준다면,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고통,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 그리고 여러분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들, 그리고 여러분이 얻고 싶어 하는 것들,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욕망,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함께 경험한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항상 이게 사실이 아닌 것처럼 행동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솔직하게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을 때, 그리고 서로를 더 사랑해서 서로를 더 세워줄 때, 온전함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울을 보면서, ‘그래 나는 완벽하지 않아.’ 라고 이야기하면서 아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거죠. 왜냐면, 하나님의 그 형상을 닮은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담이 범죄하고 숨어 있었던 그 에덴동산에서 성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갈 때랑 똑같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에, 바른 길을 걷고 온전함을 추구하는 자는 안전하고 평안할 것입니다. 그런데 굽은 길로 가는 사람은 드러나게 될 겁니다.
 
제가 20살 때, 이 말씀을 외우게 됐어요. 정말 사랑하는 아내, 장성한 4명의 자녀들, 그리고 12명의 손주들, 정말 목회자로서 오랜 시간을 지금 사역해 왔는데, 여러분들처럼 저도 계속해서 유혹받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근데 그때 제가 깨달았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생각을 계속 새롭게 하지 않으면, 온전함을 추구하는 바른 길을 걷지 못하겠구나. 저에게 한 3~4명의 정말 제가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 앞에서, 제가 절대로 온전하게 될 수 없겠다고 바른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없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읽었던 잠언 10장 9절 말씀 그다음에 뒷부분을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저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던 말씀인데요. 굉장히 비극적인 실수를 저질렀던 거를 제가 떠올려 봅니다. 왜냐하면, 다윗 왕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저 약했던 순간이 있었던 거죠. 어떤 사람도 이런 도덕적인 또는 재정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제가 마치 카메라로 쳐다보듯이 그 장면이 하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제 아내가 여기 같이 함께 앉아있을 때, 바로 옆에 이제 50세가 된 제 장성한 자녀 2명이 있고요. 그리고 43세의 자녀 하나, 그리고 마지막 막내 막내딸인 37살의 딸, 그리고 그렇게 쭈르륵 서 있는 바로 앞에 12명의 손주들이 다 앉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이렇게 쳐다보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요. 제가 지금까지 사역해 오면서 했던 수많은 말들을 다 지키지 못하고 어겼다고 나는 여러분의 용서를 구한다고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제가 그 영화 같은 동영상을 매번 돌려봐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잘 모르신다면, 여러분들이 지은 죄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날 것이구요. 제가 짓는 죄가 제가 누군지를 드러내게 될 겁니다. 정말 온전함을 추구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있죠. “나에게 오렴, 너희 모두 나에게 오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정말 힘들고 어렵고 낙망하고 있을 때, 내가 너에게 평안을 주노라. 나를 따르렴, 종교가 아니라, 같이 살자. 정말 따뜻하게 너를 돌봐주면, 내가 너에게 힘들게 하지 않아, 네가 정말 진실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어떤 죄도 용서할 수 있어. 너를 회복시켜 줄게. 그럴 때, 너에게 평안을 주고 그리고 쉼을 허락해 줄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 함께 조용히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요약
만약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신다면, 이 자리에서 보여주신다면 여러분을 구원해주셨던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야 한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만약 너의 죄를 자백하면 내가 너를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로 우리를 깨끗이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취해야 할 첫 번째 스텝이고, 우리가 정말 믿을 수 있는 신앙이 있는 친구에게 전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스텝이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를 쫓아올 때, 그때 기도에 동역 자가 필요하며, 정말 어려운 일들 있을 때, 주님은 그 일이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실 것이다. 우리를 말씀으로 지켜주실 것이니, 그렇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고, 온전함을 추구하며, 지혜로운 삶의 열쇠를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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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4부 예배.
제목: "온전함, 지혜로운 삶의 열쇠“
말씀: 창세기 11:27-12:9
설교자: -줄리어스 김 목사님(미국 웨스터민스터신학교 한국어사역부대표, 글로벌사역부 석좌교수 초빙)-통역: 김예성 강도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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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27-12:9,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12:1-9,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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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 김 목사님(미국 웨스터민스터신학교 한국어사역부대표, 글로벌사역부 석좌교수 초빙)-통역: 김예성 강도사님.
-저는 한국말 잘 못하니깐 영어를 설교하겠습니다. 저는 원래 미국에서 태어나고선 한국말 조금 할머니하고 같이 살면서 할머니에서 좀 많이 사랑도 받고 한국말을 좀 쪼끔 배웠습니다. 요즘에는 지금 뭐 한국 드라마 같은 거도 보고, 더 좀 배우고 그런데 저기 설교는 아직도 좀 힘들어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지금 영어로도 하고 저기 아주 좋은 통역자 있으니깐 너무 감사하죠. 저 영어를 좀 통역해 주세요. 아니요. 시간 없어서 제가 지금 시작했습니다. 저기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이 시간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불러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 시간 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의 영으로 함께 하심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지금 듣고 있사오니, 우리를 찾아와 말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저 특별히 오 목사님한테 좀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말씀을 좀 전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예 진짜 저를 동생과처럼 왜 이렇게 한국말만 나오지 여기 올라오니까 한국말 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나오네요. 목사님 너무 감사하죠. 그래서 저를 많이 사랑하고 너무너무 챙기고 이렇게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땡큐. 부르심을 기억하면 우리의 소명은 우리의 확신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이 명제는 우리의 삶이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중요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 시간 모인 영 가족 가운데 이러한 시간을 통과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복음은 여러분들은 결코 혼자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순례자를 가리켜서 격려하고 응원하는 말씀 속에 많은 순례자들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속의 아브라함이 그러한 순례자 중의 한 명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이 세상과 인생길을 걸어갈 때, 이 믿음의 길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영 가족 여러분들을 위로하시고 견고히 붙잡아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창세기 12장은 창세기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써 아브라함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라고 불리는 그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저 구약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축복하실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새 언약 백성인 여러분과 저까지도 축복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또한 약속하신 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를 향하여 그저 보이는 것을 따르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영 가족 여러분 절대 ‘돌아서지 마시고 앞으로 전진’ 하십시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함께 나눌 3가지의 진리가 있습니다. ①부르심, ⓶약속, ⓷반응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이 문맥과 상황 속에서 부르심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본문에서 우리가 살펴볼 첫 번째 진리는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든 것을 등지고 그를 따르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버리고 따르는 것 1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2:1,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단순한 서술 한 문장이지만 결코 평범한 부르심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떠나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떠나라. 는 이 히브리어 단어는 자신을 불리하다. 라는 표현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이 표현을 가리켜서 ‘눈을 감고 떠나는 것’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저 고향을 떠나라. 하나님께서 그를 본토와 가족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고향을 떠나라, 아버지 친척을 떠나라. 편안함을 떠나라. 이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내가 만약 이 아브라함, 내가 만약 아브라함이었다면 하나님께 아마 여쭈었을 겁니다. 하나님 조금의 힌트를 주실 수 없으십니까 어떤 일반적인 방향을 보여주실 수 없으십니까 제가 거기에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려주실 수 없으십니까? 그 새로운 땅에 가면 저를 도와줄 사람은 있는 겁니까? 근데 응답은 없습니다.
 
그렇죠. 이 생각과 질문의 끝에 하나님은 답을 주시지 않았고, 그저 믿음으로 순종하라는 단순한 부르심만 있었습니다. 뒤에 고향을 두고 떠나가라. 너의 가족을 떠나가라. 너의 안전했던 그곳을 떠나가라. 버리고 줄을 따르라. 버리고 주를 따르라.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보면 매우 독특한 상황이 펼쳐져 있습니다. 멤버들 다 나와요. 이렇게 그렇죠. 11장 보면요 그렇죠. 11장 보믄 2천년 동안 노아부터 샘까지, 에이브람까지 브라잇 제너레이션 마다 제너레이션 나오죠. 영어도 좀 하죠? 그렇죠? 그 제너레이션마다, 제너레이션까지 이렇게 가족마다 가족 이렇게 다 나죠. 2천년까지,,, 그런데 27장을 보면 뭐가 나와요. 보세요. 보세요. 성경 보세요. 27장 보면은 그 이야기가 변해야 되잖아요. 또 스토리 체인지 와이? 27절을 보면 말씀이 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모든 아브라함의 족보가 나열된 다음에 이제는 데라의 첫째, 아들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아내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임입니다. 버리고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에, 아브라함의 상황은 아내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2천 년의 족보들을 나열하신 후에 왜 이러한 상황 가운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 가운데, 그렇게 아브라함을 부르셨을까요? 첫 번째로, 우리가 주목할 점은 2천 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가문이 끊어질 현실적인 어려움을 아브라함이 마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없이는 가문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불명예와 수치와 절망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그저 불명예와 수치와 절망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본문에는 사실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현실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고통과 불안의 근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부르심의 맥락과 상황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많은 종들과 지도자들은 그들의 모든 상황을 척박한 광야라는 표현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성경을 보면 다양한 곳에서 그렇게 광야와 같은 장면을 연출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의 산, 네게브 그리고 바란, 광야와 유다와 광야 같은 것들이 그러한 예입니다. 이 혹독하고 척박한 땅에서는 오직 죽음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척박(瘠薄)한 광야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지도자들과 종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했던 배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어야 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곳에서는 오직 하나님만 신뢰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과 광야에서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 위탁하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그곳에서는 전적 위탁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모세는 노예로 살던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 노예들을 불러서 자유케 하는 그 부르심을 받은 곳이 광야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 혹시 광야에서 40일 동안 유혹을 받으셨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잘 들어보십시오.
 
이곳은 바로 우리가 전적 위탁하는 법을 배우는 광야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광야에서 헤매고 있을 때, 마치 순례자와 같은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내가 다 뒤로 내버려 둘 때에, 온전히 하나님만 붙잡기를 우리 주님은 원하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종종 방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방해하는 것들을 제가 제거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이 문맥과 상황 안에 또 다른 구체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그러한 내용은 정확히 나와 있진 않습니다. 이 내용 안에서 우리는 에브라함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린 사실 여기서 고향과 가족 외에는 많은 정보를 알 수는 없습니다. 이상하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이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잖아요. 그렇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될 사람입니다. 이제는 복의 근원이 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나아가 온 세상을 축복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가 복을 받을 만한 어떤 좋은 성격이나 어떠한 대단한 이력이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왜 아브라함이였을까요? 왜 믿음으로 걸어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까요? 결론적으로 보면 그것은 아브라함 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마주하시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축복에 대한 약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 자신에게는 축복을 받을 만한 어떤 선 자격이 있지 않습니다. 그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순례의 길, 여러분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를 놀랍게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하나님이 창세기 3장 15절에서 말씀하셨듯이, 결국 죄와 죽음과 사탄을 여자의 후손에 의해 정복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 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이 창세기 3장의 약속을, 이제 창세기 12장으로 넘기시면서 아담과 아브라함의 궁극적인 후손 주 예수 그리스도에 오실 길을 우리에게 준비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입니다. 이제는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함께 살펴봅니다. 2절과 3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2:2-3,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는 이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그의 자격이나 그런 것들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걸어온 길이나 의로움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는 자손과 후손들이 많을 거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가족과는 구별되는 분명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의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민족에 걸쳐 유명해질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땅에 모든 족속이 심지어 우리 대한민국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브라함이 선택받은 이야기에 우리를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나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라고 하는 이 말씀을 아브라함은 어떻게 받았을까요? 그 아내는 임신이 어려운 상태인데 이제 이 민족을 이루려면 여러 세대가 지나가야 하는데, 내가 생전에 절대 그 장면은 볼 수 없을 텐데, 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둘째로, 나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새로운 땅을 찾아온 이방인으로서 어떻게 빠르게 내가 그렇게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나의 적들을 축복하실 것인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민족적인 갈등이 있었는데, 원수를 축복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내가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라고 이러한 솔직한 감정과 의심 속에서 아브라함은 그럼에도 이렇게 반응합니다. 부르심을 듣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좌우되지 않고 믿음으로 달려갑니다. 그의 믿음의 반응 세 번째로, 살펴봅니다. 4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2:4,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언제 어떻게 축복이 올지 몰랐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그저 희망사항이 아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약속에 기초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후손을 주신다. 라는 그리고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말씀과 약속에 그의 믿음은 기초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히브리서 11장에서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8절로 12절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8-12,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보이는 것을 따르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했습니다. 한 가지 더 7절과 8절에서 8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7절과 8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2:7-8,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들었어요. 제단, 왜 제단이 두 번 나오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그가 보인 모습은 그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얼마나 예배가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이 말씀이 정말 참으로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서 신앙과 인생길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 우리의 표대와 같은 말씀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매주 안아 주심의 본당에 들어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일 같지만 이것은 엄청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 들어와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예배하며 이 안에서 서로 영 가족과 교제하는 이 아름답고도 정기적인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본인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축복을 받을지도 모르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이것은 우리 역시 배워야 할 점입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며 불확실한 세상길에서, 이 시간들 속에서 믿음으로 예배하는 법을 우리는 배워야 하는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믿음, 예배는 믿음의 행동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심이라는 독을 해독하는 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여러분 하나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몇 년 뒤에 사라는 아이를 기적같이 임신하며 이삭을 낳게 됩니다. 이제 드디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며 떠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10장을 넘기고 보면 창세기 22장에서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산에서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물론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찼지만, 아브라함은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을 따라 걸어갑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찌르려 할 때, 주님께서는 놀라운 신적 개입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마침내 창세기 12장과 창세기 22장의 말씀은 구약성경 전체와 함께 아브라함과 이삭보다 더 크신 분을 우리에게 소개하며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과 하늘 보좌를 버리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대속 제물로 바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라는 부르심을 봤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의 은총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이제 우리에게 죄 사함과 부활의 능력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제 여러분과 저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분을 따라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그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따라가라고 믿음으로 걸어가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과 인재를 통해 결코 우리를 그저 내버려 두시거나 절대로 떠나지 않으신다. 라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신뢰하고 또한 순종하며 하나님만을 예배할 수 있도록 이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든 영 가족들을 언제나 인도하시고 붙잡아주실 것입니다. 버림받으셨던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여러분들을 믿음으로 걷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며 모든 민족을 축복하라고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의 열매인 줄 믿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모든 무릎을 예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의 열매인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은 오직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온전히 따르십시오. 그 길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십시오.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랑의 교회의 모든 영 가족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약(4부)
고통과 불안이 가득한 척박한 삶의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 붙잡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자격 없는 나를 사랑으로 부르신 하나님께 전적위탁하며 전진해야 한다. 매주 이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예배할 때,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사 놀라운 신적개입의 은혜로 순례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힘과 능력을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을 믿고, 우리 사랑의 교회가 2033-50 비전의 원년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금식하며 섬길 때,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와 큰 기도가 복음통일의 마중물로 쓰임 받기를 간절히 간구하자.







*헌금송:남사역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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