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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8일)
제목: "진흙에서 소금으로"-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⑱
말씀: 마태복음 5:1-2,13-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정상익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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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5:1-2,13-16,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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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찬양대가 ‘예수님 이름 높이세!‘ 하는데 주님이 높임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일주일이 여러분 몇 시간인지 아십니까? 어렵습니까? 일주일이 168 시간이죠? 168 시간 가운데 저는 이 주일 아침 이 예배가 저와 여러분의 영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또 육신적으로 핑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나머지 6일 동안 승리를 하는 겁니다. 제가 지난주 우리 교회 은혜 게시판에 나온 어떤 형제의 글을 읽고 마음이 진했어요.
 
어떤 형제가 지금 내 현실에 큰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천국 잔치인 주일 예배를 드리므로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주일 현장 예배에 사 오르는 기쁨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가 없는 참된 기쁨이다. 이 힘을 가지고 나머지 6일을 최선을 다하여 살아낸다. 그 그대로 있는 삶의 간증이에요. 오늘 예배가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지금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를 하고 있는 오늘 18 번째, 오늘은 위대한 산상수훈을 통하여 천국 시민의 헌장을 가르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아멘. 그리고 부제 오늘 제목은 제가 그래서 ‘진흙에서 소금으로’ 진흙에서 소금으로, 주님은 이 땅에 오셔가지고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 1절에 보니까, 산에 올라서 제자들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 마태복음 5:1,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나올 때에 앞에 4장 23절에 예수님 세 가지를 하셨어요.
 
*마태복음 4:23,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다니사 그들에게 해당해서 첫째 뭐예요? 가르치시고, 두 번째는 복음을 전파하시고, 세 번째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예수님은 티칭, 가르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프레칭, 복음을 전파하시고, 예수님 힐링 고치시는 분, 그래서 오늘은 가르치시는 예수님, 뭘 가르치셨는가? 지난 주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름 받은 제자로서 일을 하려면 천국에 대한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그래 천국은 에세나파나 사두계파나 또 바르세파 같은 그런 경직되고 하여튼 경도된 그런 천국에 대한 개념이 아니고, 천국은 마치 혼인 잔치 집과 같다. 그런 혼인 잔치과 같은 그런 은혜를 받았다면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소위 십계명처럼 천국 시민으로서 매일매일 살아내야 하는 삶의 현장에 대해서 주님이 오늘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오늘 말씀하시는가? 오늘 여러분들 13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5:13,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너희는 세상이 뭐예요 속음이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라는 것은 소금이 왜 필요합니까? 부패하고 또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래서 세상이 부패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비기독교적입니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교회를 대항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도록 공격(攻擊)하고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아니하고 미혹(迷惑)하는 것입니다. 소위 그래서 이 세상은 미혹케 하는 마귀의 영향을 받는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트렌드가 그리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가지고 절로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되어가는 것 시대의 흐름을 보니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고 어떨 때는 마음이 가슴이 아프기도 해서 참 마음에 큰 짐을 지고 기도가 되는 거예요. 제가 말씀을 다 안 드려도 이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등이 신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말 문제가 커 가지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혼미(昏迷)하고 비기독교적이 되었을까요? 다시오. 그 이유는 사탄이 미혹의 영으로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못차리냐는 겁니다. 요즘 마음 지키기가 참 힘들어요. 마음, 그 이유는 이 세상이 너무 복잡하게 되어 버렸어요. 그걸 좀 전문적인 용어로 복잡계라고 그러는데 복잡한 세계가 되어 버렸어요. 특별히 SNS를 통해 가지고 여러분 몰라도 되는 걸 너무 많이 알게 됐어요. 안 알아도 되는 걸 너무 많이 알게 됐어요. 어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그리고 알고리즘을 가지고 막 융단 폭격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밀려오고 그래서 요새는요. 이 정신이 마음을 못 지켜가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요. AI나 알고리즘의 내용 가운데 또 뭐냐 하면 가짜가 또 너무 많아요. 그걸 뭐라고 그런다고요 딥페이크(Deepfake)라고 그럽니다. 깊은 가짜, 아니 뭐 지 이런 조커도 못 알아들으면 제가 여러분 못 살아요. 깊은 가짜, deep 페이크, 페이크 가짜라고 deep이라고 깊다 말이죠. 깊은 가짜. 그래서 우리는 이 깊은 가짜 가운데 우리는 가짜의 이 시대가 우리는 딥솔트(deepsolt), 진짜 소금이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은 혼미해져 가지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마음을 지키지 못해 갖고 사람들이 엉뚱한 짓을 하는 거예요. 내면세계의 질서가 엉망이 돼 버렸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사야가 말한 대로 병들었어요.
 
우리 내면세계가, 그리고 우리 국가까지도 이 사회나 국가까지도 복합 중증이 걸려버렸어요. 저 북한 때문에 우리 사우스 코리아, 한국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머리에는 북한 때문에 핵무기를 이고 있고, 등에는 가계 빚 또 이렇게 수천 조의 빚을 지고 있고, 허리에는 지금 0 5%, 후손이 끊어지고 있어요. 지난 주간에 우리 어떤 장로님 청문회를 하는데, 세상에 창조론을 믿는다고 그렇게 아니 창조론을 믿는다고 그걸 그렇게 모욕을 하고 조롱을 하고 정신이 나갔어요. 정말 대한민국을 존경받아야 할 분들이 존경받아야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고, 실제로는 이게 다 영적인 문제들이에요. 영적으로 궁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의 공격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나 여러분이나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마음을 못 지키고 우리의 생각을 조정 당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는 이 말씀을 가지고 왜냐하면 그 시대에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짙은 안개와 어둠 가운데서 암흑에 사로잡혀 가지고 그 시대에 그 당시에도 부패, 붕괴 뭐 온갖 불화, 온갖 약탈, 이런 것들이 다 많았어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저나 여러분이나 한 번 새 마음 새 영, 또 우리가 얼마나 뉴 크리에이션, 우리가 어떤 새 창조물이 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확인하고 감사하고 우리가 딱 무장하는 그런 시간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래서 미혹케 하는 영이 트렌드에 가 있는 이 시대 가운데, 마음 지키기가 힘든 시대 가운데, 우리가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복잡계, 혼미한 세계 혼미계의 어려움을 딱 두 가지로 두 가지로 하나는 소금으로, 하나는 빛으로, 여러분 소금이 먼저 나왔어요? 빛이 먼저 나왔어요. 13절에 보니까 소금이 먼저 나왔어요. 그다음에 14절에 보니까 그다음 뭐예요? 빛이 나왔어요. 소금이 먼저 나왔어요. 두 가지로 딱 두 가지로 여러분 제가 저나 여러분이 오늘 소금과 빛의 이것만 확실해 가지고 이걸 가지고 우리 기도 제목으로 삼고 집중하면, 이 혼미한 세상에서 마음 지키기 힘든 세상에서 내면세계의 질서가 뒤죽박죽이 된 분들이 있다면 오늘 이것을 정리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먼저 빛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다시 뭘 먼저 말씀하셨다고요? 소금을, 그런데 이 소금의 문제는 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실제적으로 깊이 와 닿았어요. 그 당시에도 로마의 어떤 제국의 김나지움, 로마 제국의 교육 시스템이 있었어요. 그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그 소위 ‘김나지움 교육’이라고 그 그걸 전혀 받지 않는 이게 그냥 어부들이었어요. 그냥 대단하지 않은 어부들이었어요. 근데 그 어부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베드로야 너는 세상의 소금이야. 안드레야 너는 세상의 소금이야. 요한아, 너는 세상의 소금이야. 이게 뭔지 이 사람들은 바로 눈치를 탁 쳐버렸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어부였고,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으니까 당시에는 뭐 지금처럼 어묵을 만들고 그런 게 없으니까, 이 잡은 생선을 잡은 고기를 오래 보존하려면 소금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획(漁獲)한 물고기가 부패(腐敗)되지 아니하고, 장기간 보존되는 데는 소금이 절대적이었어요. 이거 없으면 다 썩어버리는 거야.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소금은 부패하지 않는 역할을 합니다. 당시 소금의 용도는 음식의 맛을 내고, 희생 제물 제사 드릴 때 희생 제물을 부패하지 않게 하고, 갓 출생한 영어를 깨끗하게 하고 음식을 보존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그러고 난 다음, 그다음 13절 14절에,
 
*마태복음 5:13,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이 소금과 빛을 선포하시는데 여기에 이제 제가 한 번씩 강조했지만, 너는 너희는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너는 소금이다. 너는 빛이다. 일방적인 선포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소금도 아니고, 빛도 아니고 소금의 자격도 없고, 빛의 자격도 없는데 소금으로 살지도 못하고, 빛으로 살지도 못하는데 주님은 일방적으로 너희는 소금이다. 그리고 여기는 너희라는 이 말은 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예요 복수, 그리고 이 말씀을 듣는 모두들 오늘 우리 시간 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예수 믿는 모든 분들 저와 여러분들, 주님은 소금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소금이 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좀 잘 해 가지고 수고하고 애써서 고생하고 도 닦고 세상들에게 사람들에게 좀 어떻게 윤리적으로 성숙해 가지고 어떻게 잘 되어 보라. 그렇게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일방적으로 이유를 모르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소금이다. 하면 너희는 그 당시에 바리새인이나 권세가나 로마 지식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보통 사람들이 나와요.
 
너희는 세상에 어부, 그냥 일반 어부들이 나와요. 그리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 말을 할 때 당시에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역사적인 기록을 볼 때 당시에 세상의 빚, 라잇 어브 월드-right of the world. 세상의 빛이라는 호칭은 신분이 높은 유대교 선생이나 랍비들에게만 수여한 명예 명예로운 선포였어요. 그런데 오늘 빛이라고 호칭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구리빛 얼굴에 껍질이 벗겨진 손을 가진 시골뜨기 어부들, 평범한 사람들 그들을 향하여 그들은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안드레나, 나다니엘이나 이런 사람들은 랍비도 아니고 율법학자도 아니고 산헤드린 공회 존경만의 회원도 아니었어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격 없는 무지 랭이 들어 있어요.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이들을 3년 동안 훈련시키시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셔가지고 어느 정도 성숙한 수준에 올라갔을 때, 성숙한 다음에 야 너희들은 이제 훈련 받았으니까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야 빛이야, 이렇게 말씀한 게 아니고 이제 갓 시작도 제대로 안 했는데, 제자로서 이제 함께한 시간이 이제부터 시작인데, 그 초보자들, 어린아이처럼 갓 예수님을 따른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야. 주님이 믿어주신 선포에요. 그러니까 정체성과 기능성이 있는데 우리가 기능이라는 말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잘하면 주님이 너 빛이야 소금이야. 그렇게 할 게 아니고 정체성부터 먼저 선포하는 것이에요. 너희는 소금이야. 너희는 빛이야. 이렇게 하니까 우리가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그런 역할과 기능들이 따라가도록 만들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정체성이 먼저예요? 기능이 먼저예요? 정체성이 제자로서 선포되었기 때문에 제자의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자의 삶을 잘 살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잘 하기 때문에 제자가 된 것이 아니에요. 이거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 나타난 복음이에요. 전후가 바뀌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소금과 빛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주님은 일방적으로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주는 것이에요. 이게 하나님 나라의 천국 시민 헌장의 독특성이에요. 우리의 실력을 보고, 여러분들과 저의 자격을 보고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너희는 소금이야. 너희는 빛이야. 라고 선포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 중의 복음 가운데 돌아온 탕자 생각해 보세요. 돌아온 탕자는 둘째 아들은 소금이 아니었어요. 밑이 아니었어요. 허랑방탕하고 아버지의 유산을 다 날려버린 인간이에요.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히게 하고, 아버지의 가슴에 날마다 눈물샘을 고이게 하는 인간이에요. 소금이 아닙니다. 빛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돌아와 가지고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 내가 소금이라 내가 빛이라 칭함을 받지를 내가 못합니다. 아니야, 너는 내 아들이야. 너는 이미 소금이고, 너는 이미 빛이야. 그러니까 아들이야. 내가 왜 소금인가? 내가 부끄러운 내가 무슨 내가 빛인가? 그러면서 각성하고, 고민하고, 그 자격이 없고 없는 부족한 나를 믿음으로 소금으로, 빛으로 불러주신 그 아버지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 가지고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이 오니까, 아! 나도 그러면 아버지의 자녀답게 나도 소금답게, 나도 빚답게, 살아봐야지.
 
오늘 예배 참석하신 차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확고한 믿음의 방향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의 일방적인 선포고, 두 번째로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가 세상에 소금이라는 이 정체성에는요. 우리가 진흙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여러분과 저는 소금이지 진흙이 아닌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진흙으로 지어진 존재예요. 창세기 아담을 지을 때 진흙을 가지고 지으셨어요. 하지만 제2의 아담 되시는 예수님의 피로 새로 거듭난 복음의 생목의 생명의 역사에 접목된 저와 여러분들은 이제 진흙이 아니라 소금이 된 줄로 확신합니다. 아담 시대의 진흙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이 시대의 소금이 된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진흙이 간에 소금이 진흙이 아니라 소금이 되게 우리의 속성을 바꾸시는 거예요. 에베소서 4장 23절에 보니까,
 
*에베소서 4:22~23,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소금 되게 하시고, 오직 너의 심령이 새롭게 소금 되게 해가지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로운 소금이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존재인 것이다.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거예요. 내가 남보다 멋있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 이 생명과 피의 복음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이 진흙에서 소금으로 바뀐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어떤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능력과 공부를 많이 해서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학교를 나와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부족할 수 있지만, 우리가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의 주름이 잡혀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또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유는 다 모르지만 주님의 일방적인 선포, 너희는 진흙이 아니라 나는 소금이야. 어떻게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맹렬하고도 강력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이 어떻게 보면 이 절실하고도 맹렬한 이 사랑 때문에 우리가 소금으로 받아들여진 존재가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걸 베드로가 받아들인 거예요.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평생 이 말씀을 이렇게 그는 본래 진흙 같은 사람이었어요. 건축자의 버려진 돌과 같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을 통하여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그에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런 버린 돌 같은 그런 행위도 있었지만 그 시대의 산돌이 되게 하시고, 모퉁이 돌 코너 스톤이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가 베드로나 가롯 유다는 문제가 많았어요. 그런데 가롯 유다는 그냥 그 잘못하다 예수님 팔아먹고 난 다음에 그 끝이었지만 베드로와의 차이가 있다면 베드로는 마음속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야 빛이라는 이 각성과 감격의 정도가 가롯유다와 달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는 소금이야.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아 나는 진흙 같지만 하나님이 나를 소금으로 만드셨으니, 거칠고 황폐하고 의미 없던, 별 의미 없던 돌이 하나님 나라의 산돌이 된 줄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소금이 되기를 힘쓰라가 아니라, 소금이라는 이 말씀에 대한 여러분 감격과 센스와 느낌의 정도가 여러분들의 남은 생일을 결정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감격이 있는 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명으로 하나님께서 무장시켜 주실 것이에요. 이걸 깨닫는 순간 흙먼지가 진흙이 소금된 이 감격 된 이것이 있는 순간 에베소서 2장 10절에,
 
*에베소서 2:10,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 받은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거룩한 목표를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 다 너무 중요하니까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인 줄로 믿습니다. 너무 중요하니까 오늘 저는 잘 안 하지만 오늘은 한번 하십시다. 우리 두 명 이상, 늘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크게 한번 합시다.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크게 합시다. 우리는 진흙이 아멘!! 예배 세상이 다 놀라 들릴 정도 크게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크게 한 번 해칩시다. 시작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번 더 할까요? 여러분, 이게 평생 남을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자꾸 시작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피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걸 깨닫는 이게 이제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진흙에서 속으로 변한 우리들의 존재 방식과 사고방식을 이해를 못합니다. 소금으로서 갖는 감격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시대의 소금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진흙이었지만 75세에 부름 받아 가지고 사명을 갖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그런 소금의 은혜를 받은 거예요. 다윗도 소금 왕이었어요. 다윗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에요. 그냥 그런 가장 강력한 정복 왕이었지만 그는 자기가 왕이라고 생각 안하고, 하나님이 나의 왕이라고 생각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그의 소금 고백을 하는 거예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이것이 다윗의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바울도 소금이었어요. 소금 사도였어요. 뭐라고? 내 겉 사람은 후퇴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너무 막 안 죽으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다 막 그냥 막 그 주름 안 지려고 너무 그러지 말고 우리 그 사람은 후퇴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리고 바울은 또 이 예수님께서는 또 뭐라고 빛이 있다. 라고 말씀하시고 아니시고 뭐라고 그랬어요? 빛이다. 본래 우리는 어둠이었어요. 볼래? 우리는 어둠에 익숙하고 어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제 얘기가 아니고 에베소서 5장 8절에 보니까,
 
*에베소서 5:8,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주님 모르는 우리 다 어둠이고 다 그랬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뭐해요? 빛이 돼 빛이에요. 주님이 우리가 빛이라고 선포하니 우리는 어둠 자체는 어둠의 일을 좋아하고 마음 새기기 힘든 사람들이고, 그럼 우리를 너희는 빛이라.
 
♬빛의 사자들이요.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빛의 사자들이여 빛의 사자들이요. 그다음 가사가 뭡니까? 복음의 빛이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치는 빛의 사자들이여....
 
진흙에서 소금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바뀌는 존재가 정체성이 바뀌니까, 그렇게 우리의 역할 이런 것들이 이제 테크놀로지는 따라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럼 우리는 소금으로 빛으로 어떻게 합니까? 16절에,
*마태복음 5:16,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구태여 나눈다면 소금은 내면적인 거예요. 소금은 녹아져서 소금이 역할 하는 것이에요. 빛은 등대처럼 비추는 거예요. 빛은 외면적인 거예요. 하나는 내면적인 것이고, 하나는 외부적인 것이에요. 하나는 소극적인 거죠. 하나는 적극적인 역할이에요. 소금의 내면이 무장이 되면 자연스럽게 빛으로써 행동이 발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제가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수많은 진흙을 소금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에요. 수많은 어두움을 빛으로 밝게 하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어두운 부엌에 바퀴벌레가 왔다 갔다 하는데, 라이트를 딱 켜는 순간 바퀴벌레가 할렐루야!~~ 이 오겠습니까? 타 도망가 빛이 오면 물러가게 돼 있고, 수많은 지능을 소금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우리는 이 땅의 삶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역할 모델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어요. 기독교를 욕도 많이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안 보는 것 같이 우리의 삶을 다 보고 있어요. 오늘 이 자리에는 한국 사회의 리더의 역할을 하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직장이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계에서 책임을 지고 위치에 있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요 제가 용어를 만들었어요. ‘굉장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 현장을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할 때 정직하고, 순전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에요. 빛으로서, 이 조심스러운 얘기인데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 이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는 제 이메일 주소가 JHOHOH에 뜨거운 메일 닷컴, 또 외워놨다가 또 너무 막에 보내지 마세요. 아니면 또 패스터 오@,,, 에 사랑 닷컴 골베이 닷컴, 여러분 김씨는 만약에 바이블 킴@, 여러분 그런 이름 붙이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조심스럽고 얼마나 애를 많이 쓰겠어요. 여러분들의 이메일 주소에다가 바이블을 한번 넣어보세요.
 
제가 연관된 분이 있기 때문에 더 말을 말씀을 안 드리겠어요.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그래서 산다는 게 힘든 거예요. 미국 같은 데는 자동차 뒤에다가 익투스, 물고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거예요. 그러면 그 물고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동안에 주차 위반도 못 하고, 속도위반도 못하고, 그래서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의 스티커를 앞에 창문에 붙이고 있습니다. 앞 유리의 부착하라고 했어요. 리더들이 가져야 할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을 주목해야 됩니다.
 
또 우리가 직원으로서, 손 위 사람을 섬겨야 할 입장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소금으로 섬기는 사람, 빛으로 섬기는 사람,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고, 일하는 회사나 정부 기관이나 학교나 일터에서 불평하거나, 부정적하거나 그렇게 하면 안 되겠죠 신뢰감을 줘야 되겠죠. 자 이제 제가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하시고 난 다음에 제가 다 읽지 않았습니다. 5장 20절에,,
 
*마태복음 5:20,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뭐라고 나와 있죠? 이렇게 나와 있어요. 시작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르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이 빛으로 소금으로, 소금으로 빛으로 이 선포, 저녁에 소금으로 이 은혜는 우리를 더 의로 더 큰 의로움으로 불러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서기관과 바르새인 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기가 막혀요. 다시오.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르세인보다 더 낫지만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거는 대단한 도전 아닙니까? 왜냐하면 그 시대에 가장 의로운 사람들이 서기학과 바리새인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보다 더 의로워져야 된다.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나를 빛으로 나를 소금으로 선포해 주신 내가 지을게 아니라, 소금이라고 해 주신, 그 은혜에 감격하며 그들이 가지는 의로움과 다르게 그들은 자기 의죠? 우리는 자기 의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의가 우리는 자기 부인을 통해야 자아 시련이 아니라, 자기 부인을 통하여 바리세인과 서기관이 가진 의가 아니라 그럼 우리가 어떻게 자아 시련이 아니라 자기 부인을 할 수 있습니까?
 
돌아온 탕자처럼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주님이 나를 빛으로 소금으로 일방적으로 선포하신 그 은혜에 너무 감격하여 날마다 눈물 콧물 흘리며 그렇게 해야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에요. 복음적 삶의 태도가 기능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또 하나 주님은 우리를 이 소금으로 빛으로, 이걸 말씀하시는 우리를 더 넓은 사랑으로 부르시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본문 뒤를 보면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에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 그 안에 원수도 포함된다고 그 진리를 선한 사마리아의 교회 비유를 설명하셨어요.
 
서한 사마리아의 비유의 요점이 무엇입니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는 정도 그건 누구나 다 하는 겁니다. 유대인의 꿈도 꿔보지 못했던 아주 그냥 생각들을 확 집어넣는 사마리아 사람, 사마리아 그 인들이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일종의 문화적인 장벽을 넘어서는 충격을 준 그런 삶, 그러니까 우리가 소금으로 빛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런 생각을 뛰어넘는 더 큰 하나님의 의의, 더 넓은 사랑을 붙잡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결론 내리겠습니다. 13절 뒷부분에,
 
*마태복음 5:13,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히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과 제가 이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지 아니하고 숨기고 살면, 우리는 밟혀 사는 거에요. 숨기고 살면 결국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짓밟히고 사는 거에요. 하나님이 소금이라고 부르시고, 빛이라고 선포하셨는데 이 사명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고 살면 숨기고 살면 결국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짓밟히고 살 거예요. 네 가만히 계십니까?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은 우리가 짓밟히고 사는 거예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오늘 우리는 기도하는 게 있습니다. 소음과 빛도 타이밍이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저 러시아가 옛날에 소비에트 연방이, 발트 3국 중에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를 다시 점령해 가지고 그 러시아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그랬을 때,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부활절을 즈음해 가지고 한 달 동안 광장에 20만 명이 모여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찬양 그걸 ‘싱 레볼루션’이라고 그랬어요.
 
우리는 그래서 그 나라를 건졌어요. 찬양하면서 제가 오래 전부터 이 말씀을 드렸고, 그런데 우리 이 시대에도 소금과 빛으로서 밟히지 않고 하나님 앞에 소금과 빛으로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의 지금 저 돌레랑스를 통한 지금 차별 금지법, 동성애, 이 소수 인권법이라는 미명하에 이제 성경의 가치를 다 부정하고, 가정의 가치를 다 무너뜨리고, 성경의 절대 권위를 믿지 아니하고, 잘못된 딥 페이크를 가지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고 어떻게 창조론을 믿는다고 그렇게 조롱을 하고, 그리고 어제 저 말씀 청주 지역의 영동지원에서는 그냥 성전환 수술도 안 했는데 사람 이제 우리 성별을 바꿔주고, 대법원에서는 이 피보험자 이것도 말이죠. 동성끼리 사는 사람들은 보험을 하고 이게 이제 동성의 차별법, 그다음에 이거 이제 통과는 이제 지름길이 이제 길이 열린 거예요.
 
우리가 지금 빛으로 소금으로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살아가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이요,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과 한국 교회 성도들은 소금과 빛으로의 사명을 감당하십시다. 타이밍 맞게 일어나 우리가 함께 일어나서 길가로 가가지고 제가 적어놨습니다. 오라 우리가 길갈로 올라가서 우리나라를 새롭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10월 27일 날, 종교 개혁 주일날, 한국 교회 성도들 성경 사랑하는 사람은 다 모여라. 가정을 지키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 모여라. 소금으로 빛으로, 소금으로 밟히지 정체성 숨기지 않을 사람들은 다 모여라. 마지막 마지노선인데 이거 지켜야 우리 다음 세대가 지켜지는 것이에요. 3만 5천 불 이상, 5천만 이상 되는 나라치고 이것 통과 안 된 나라가 우리가 유일한데, 마지막 이 선을 지키게 하여 주십시오.
 
오라! 우리가 빛으로 소금으로 모여 가지고 기적의 나라를 만드는 그런 일에 저와 여러분이 쓰임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는 역사가 있는 것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천 조의 빚을 지고, 후손이 끊어지는 이런 답답한 시대 가운데, 주님 우리를 빛으로, 소금으로 한국교회가 10월 27일 저 경복궁 광화문 시청 앞 서울역까지 저 오프라인으로 100만 명이 모여요. 온라인으로 천만 가운데 이 300만 명이 함께 마음을 모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 민족을 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되겠나? 말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셨으니까 우리가 그걸 믿음으로 받아들여 가지고 헌신할 때 우리는 물도 떠 온 하인처럼, 이 시대를 키는 하나님의 귀한 선봉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마음을 축복해 주시고, 우리에게 주신 이 사명을 가지고 그래서 소금과 빛은 사명이 될 때 우리는 세상 앞에 빛의 사명을 다 감당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요약
자격 없고 진흙 같은 나에게 ‘너는 세상의 소금이야!’ 일방적으로 믿어주고 선포해 주실 때, 날마다 눈물 젖은 감사와 확신에 찬 소금 고백으로 살아가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현정에서 주님의 정직과 투명함과 순전함으로 살아내서 주님을 빛나게 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소금과 빛으로 천국시민의 사명을 감당할 때,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기적의 나라를 만들어 가게 해달라고 온전한 믿음과 확신으로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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