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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8월 28일) 제목: "믿음 보고의 근거" 말씀: 로마서 8:26~29 대표기도: 손문수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 *로마서 8:26~29,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오늘 찬양대 찬양 어떠했는가? 제가 가을 사역을 앞에 두고 특별히 기도했다. 이 찬송은 제가 어릴 때, 자주 들었던 찬송이다. “이 육신 쇠하여!!”~~♪ 이 찬송은 귀한 일 있을 때 부른 찬송이다. 오늘 저도 믿음 보고를 드리는 것이다. 오늘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주님의 진심이 여러분에게 전달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란다. 제가 지금 믿음 보고에 근거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드릴 텐데, 지난주일 날에 신앙의 역사는 우리 삶의 흐름이 연대기처럼 그것만이 신앙의 역사가 아니고, 믿음 보고가 있는 소위 신대기, 믿음 보고의 역사가 되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삶의 역사는 믿음보고의 두께와 신앙의 역사는 비례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다보면 태산 같은 장애물들이 많다. 고난의 골짜기도 있다. 어떤 때는 집채만 한 파도가 우리를 휩쓸어가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럴 때 어떤 식으로 신앙의 방향을 받아야 할 것인가? 오늘 주님이 제게 깨닫게 하신 것을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지난 주간에 저희 교회는 가을 사역을 앞에 놓고 교역자 수양회를 했다. 교역자 수양회에서 나눈 것 중의 하나가 앞으로 이 미래의 시대는 데이터의 대항해 시대가 올 것이다. 데이터의 대항해 시대, 우리가 데이터의 대항해 시대에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의 삶에 항로를 열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열어가야 할 것인가? 사랑의 교회는 44주년이 지나고 이제 앞으로 5년 동안 사랑의 교회 희년을 맞이한다. 희년 맞이할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나? 를 놓고 기도를 했다. 앞으로 50년, 희년을 향한 믿음 보고 대 항해를 해야 할 때, 믿음 보고가 믿음의 대로가 될 줄 믿는다. 대로(大路)는 큰 길이라는 뜻도 된다. ▷희년을 향한 믿음 보고의 대항해, ‘믿음 보고 믿음 대로’. -그러니까 믿음의 큰 길을 내는 것이다. 대신 믿음 보고를 하면 이 내용은 대로가 그냥 큰 길도 있지만 믿음대로, 의존 명사가 되어서 믿음 보고는 믿음대로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믿음의 항로를 통해서 믿음의 보고를 하면 우리 삶이 새로워지고 거룩한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오늘 그래서 로마서 8장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믿음으로 반드시 인생의 여정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는 줄 믿는다. 주중에서 수양회가 있는데 미래 학자들과 함께 했는데 앞으로의 사회는 대 항로를 걸어갈 것이다. 데이터 대항의 시대가 올 것이다. 오늘 로마서 8장 26부터 29절의 말씀, 우리 인생 가운데 믿음의 항로를 개척해서 우리 앞에 골짜기와 장애물과 큰 파도가 있다할지라도 이것을 한 결 같이 항로를 개척하고 살아가야 하는 근거가 무엇일까? *로마서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다 알듯이, 이 구절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베스트 성경구절 5, 안에 들어간다. 로마서 8장은 얼마나 귀한지, 성경의 노른자위 중에 노른자위이다. 얼마나 중요한지 ▷마르틴 루터 킹은 ‘성경이 불타더라도 로마서 8장만 불타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다. 8장 가운데서도 28절은 빛나는 노른자위, 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제가 묵상하면서 지난 오랜 제자훈련과 접목이 되는 것 중에 생각이 나는 것이 무엇이냐면, ‘아, 내가 주님 앞에 믿음 보고 없이는 살아올 수도 없었고, 믿음보고 하지 않고는 사역을 할 수 없었는데, 또 우리 성도들과 함께 믿음 보고 없이는 신앙생활 못했을 것인데, 우리 신앙의 역사는 믿음보고 신대기가 되는데, 이 로마서 8장을 통하여 저는 우리의 삶에 믿음보고를 할 만큼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동원 되셔서 우리의 인생이 가치가 있는구나!’라고 묵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단 먼저 본분의 기초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의 항로를 개척하고 우리의 항해를 해야 하는데 여러분과 제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로마서 8:26,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6절에 알지 못하나,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그러니까 우선 기본으로 저와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 것과 아는 것 사이를 걸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알지 못하는 것 아홉 개와 아는 것 하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우리가 얼마나 알지 못하는 존재인가? 바로 앞의 일을 알지 못한다. 바로 앞의 일을 안다면, 우리가 사고를 당할 이유가 없다. 1분 뒤를 안다면 교통사고가 날 이유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인생이다. 저는 그 요즘 성도님들이 “목사님, 이게 좋습니다.” 등등 하시지만, 제가 요즘 눈이 좀 안 좋다. 눈에 좋은 것이 무언지 모르겠다. 여러분 속에 있는 장기 등을 잘 알 수 없다. 모두 좋다고 먹는데 사실은 우리가 내장에 좋은지 안 좋은지를 잘 모른다. 그 미국의 농구 선수 가운데 유명한 커비 브라이언트가 있는데, 최근에 그가 헬리콥터 타고 가다고 딸과 죽었다. 너무 안타깝지만 그가 일 분 뒤를 알았다면 안 죽었을 것이다. 여러분, 아내인 여러분 남편이 결혼 전에 비교하면 남편이 이렇게 달라질 줄 알았는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고 하더니 결혼 후에는 손에 물 안 묻게 고무장갑 끼라고 한다. 남편 여러분 아내가 결혼 전에는 단정하게 꾸미고 다녀서 결혼 후에도 단정할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나니 집안이 청소가 안 되었고 ‘어떻게 이렇게 청소를 안 할까?’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아는 것이 있다. 우리가 무얼 아는가? 우리가 알거니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우리가 안다. All things, All together. 분리함이 없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어떤 정점 중에 하나가 우리는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력과 능력으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덮어가지고, 예수님의 의로 그걸 믿는 믿음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벽이 아니라, 문이 되는 것이다. 죄 형벌이 아니라, 영광의 궁전에 육신의 장막을 벗고 입성하는 것이다. 이걸 안다. 모세는 이것을 알고, 히브리서에 보면, *히브리서 11:26,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 앞에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도 이겨내는 것은 상 주심을 바라본다고 한다. The day of the Word! 마지막 그날, 우리는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다. 우리는 아는 것,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모른 것에 비하면 많이 모른다. 아는 것이 모른 것에 비하면 적다. 그런데 이런 삶에 여정 가운데 우리가 끝까지 소위 믿음 보고의 두께를 가지고 인생의 항해를 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동원 되셔서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를 붙잡으시고 인도하시는 은혜가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보고를 갖는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 보고의 근거를 갖는가? *로마서 8:26a,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태산 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믿음보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령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이다. l.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다.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다. 우리는 감기하나, 코로나도 제대로 못 이기는 연약한 존재이다. 아니 우리는 바울이 고백한 대로 영적으로 너무 연약한 존재이다. 로마서 앞부분 7장으로 보면, *로마서 7:24,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것은 예수 믿는 바울 같은 사람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왜 연약한가? 말씀을 받았는데도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연약함이 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좌절도 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어떤 스트레스도 있다. 동시에 비겁한 존재이다. 베드로가 얼마나 대단했는가? 수석 사도로서 그가 무얼 아는 것 같이 큰소리도 쳤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큰 소리를 쳤다. 모두가 주님을 버리더라도 내가 결코 버리지 않고 내가 죽을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는다고 해놓고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죽음의 공포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비겁한 존재이다. 그런데 연약하고 비겁한 존재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무지한 존재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무지한 존재이다. 잘 모른다. 특별히 기도가 중요한지 모르지만 무슨 기도가 좋을지, 어떤 기도를 해야 될지, 그걸 잘 모르는 무지한 존재이다. 우리가 다 바라는 대로 다 응답해 주셨으면 여러분 큰 일 날 일이 많지 않은가? ‘저분과 결혼하게 하옵소서!’ 만약 그랬다면?~~엘리야 같은 능력의 선지자도 자기가 번 아웃 되고 싶다고 하니까 열왕기상 15장에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한다. 생명을 거두어 가면, 그게 올바른 기도도 아니고, 최선의 기도도 아니다. 만약 엘리야가 그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면 엘리사도 못 키웠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기도하면 불 말과 불 병거의 기적도 체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존재이다. 무엇이 최선의 기도인지, 무엇이 우선순위의 기도인지, 어떻게 하면 가장 응답받을지를 잘 모른다. 히스기야 같은 왕은 좋은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너 이제 와라, 하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저 더 있고 싶습니다.” 라고 열심히 기도해서 15년을 더 허락 받았다. 그런데 그게 자기는 최선의 기도인 줄 알았는데 히스기야도 그 15년 사이에 사고치고, 특별히 그 히스기야 죽고 난 다음에 열두 살 므낫세가 왕이 등극했는데, 성경 기자는 므낫세 때문에 남쪽 유다왕국이 다 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열왕기하 23장에 보니까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해서 그것 때문에 남쪽 유다왕국이 망했다고 한다. 차라리 15년 더 안 살고 그냥 하나님 부르실 때, 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무지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연약할 때에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보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로마서 8:26c,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7,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때, 우리는 무지하고 비겁하고 연약한 존재인데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올바른 기도를 하게 하시고 특별히 성령의 생각을 하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다. *로마서 8:5,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여러분들의 생각이 성령께 집중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성령께 생각을 의탁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생각을 성령이 장악해 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보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이 저에게는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 되었던 것이 영적을 깊이 있는 찬양들이었다. 이 찬양들이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공간이동을 하게 성령을 생각하게 하는 놀라운 축복이 있게 되었다. 우리가 9월 26일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하겠다고 했듯이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데 우리 한국교회는 어려운 교회에 빚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성령께서 기도하는 중에 주신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믿음보고 하도록 성령 하나님의 역할이 무엇인가? 어떻게 도우시는가? 올바른 기도하게 하실 때, 성령을 통하여 올바른 기도를 하게 하시는데, 성령 충만한 찬양을 통하여 공간 이동을 통하여 육신의 차원에서 성령의 차원으로 올라감으로 믿음의 보고를 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게 한다. *로마서 8:28(NASB),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바로 여기에 주어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인이 되어 God causes all things to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who love God... -성부 하나님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주어가 되신다. 하나님이 주어가 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되시기에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다. 우리 모든 것을 다 아신다. 전지적 하나님에 대해서, *로마서 11:33,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의 지식은 완벽하시고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시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주어가 되셔서 성부하나님이 전지적 능력이 되셔서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에 대해서 *요한복음 2:24-25,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사도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심지어 우리의 맘속에 모든 것들을 다 아신다. 모든 것, 주님은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입고 오셔서 백 프로 우리를 다 아시는 것이다. ‘오늘은 주님이 모르겠지’ 하는 그 모든 것도 주님이 다 알고 계시는 것이다. 성부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상태, 마음에 아픔, 관계, 원인, 경험, 모든 마음의 욕망, 모든 삶의 수수께끼, 모든 감추어진 것과 미지의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신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 보고를 할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시고, 다 아신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다 아시는 것에 대한 자기 인생이 아픔과 슬픔과 모든 것들을 토로하는 내용이 얼마나 많이 나와 있는가? 다윗의 인생을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는 인생의 무명의 설움을 알았다. 저 베들레헴 골짜기에 목동으로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목동이었다. 골리앗 같은 자와 전쟁을 해야 했을 때, 담대하게 나갔지만 속은 어떠했겠는가? 속이 얼마나 떨렸겠는가? 다윗은 잘 나간다고 했지만 다윗을 죽이려고 장인어른이 3천 명의 살인 특공대를 조직해가지고, 킬링 특공대를 조직해서 다윗을 끝까지 추적해서 죽이겠다고 하는 기가 찬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윗에게는 아히도벨 같은 모략 가들이 그리고 그 잘난 아들이 반역을 하는데 이름도 압살롬이다. 놈, 그 놈이 아히도벨 같은 못 된 인간들과 같이 다윗을 죽이려고 온갖 모략을 다 짜는데, 시편 곳곳마다 토로를 하는데 창자가 터져 죽을 것 같다고 한다. 창자가 터져 안 죽은 게 다행이다. 뼈가 쇠골이 상하는데 잠을 못 이루는 것이다. ‘마치 나는 밤에 부엉이와 같은, 저 외로운 참새와 같다’고 한다. 그래도 다윗은 어떻게 이겼다. 창자가 터져 죽을 만한 상황 가운데서도 당시 믿음 보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시편 23편에 다윗의 그 아름다운 시가 있지만 정말 멋진 시는 139편이다. 거기에는 이렇게 *시편 139:1-3,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그러니까 완전히 뒤집어지는, 완전히 드러누워야 할 만 한 하고 완전히 뒤집어쓰고 고통 해야 할 그 상황 가운데서도 다윗이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이 다 아시니, 주님이 다 아시니’, 이다. 진짜 고난당하면 만날 사람이 없다. 진짜 고난당하면 갈 때가 없다. 대단히 유명한 분들이라도 갈 때가 없고, 그 순간 어려운 가운데서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이 다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 아시게 되면 우리의 삶을 전적 위탁할 수 있다. 놀라운 일이다. 내 삶의 실오라기 하나라도 주님께 다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죽자 사자는 가까운 사람, 남편, 아내, 자식, 가까운 사람들과 영적으로 독립하는 것이다. 죽자 사자 하는 그런 사람들과 하나님께 전적위탁 되고 영적으로 독립하면 여러분은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다. 대신 하나님께로는 독립하고 죽자 사자 가까워지면 어마 무시한 상처를 받는다. 인간은 그렇게 되어 우리는 주님이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경거망동 하지 않고 자기 주제파악이 확실하고 주님이 다 아시는 것 이것 때문에 우리는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 줄로 믿는다. 주님이 다 아심을 바울이 이것을 깨닫고, 바울의 독특한 언어습관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울은 곳곳마다 ‘내 주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은’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이렇게 하나님 다 아시는 것을 인정한 가운데서 고백한 그 자기 표현은 그 중의적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 여러분, 종이란, 원래 과거에 벤허 영화에서 종들이 난파 배에서 노예가 노를 젓듯이 진중하고 고생하고 노예처럼 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서 벌레와 노예와 같다고 하는 종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 아시면 구약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아무나 하나님은 종이라고 말을 하시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하나님의 종,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는다. 누구에게 주시는가? 모세 같은 사람이다. 구약에도 ‘하나님의 종, 모세’ 종이라는 말을 붙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세, 여호수아, 갈렙, 다니엘, 이 정도이다. 그러니까 우리를 하나님이 다 아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노예이지만, 하나님의 순종해야 할 서번트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런 사역을 맡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영광스런 사역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잘 조합이 되고 잘 이렇게 서로 연계가 되면 자기 주제파악이 확실하고 이 주제파악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 보고할 수 있다. 우리가 믿음 보고 할 수 있는 근거들을 우리가 확인 하는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모든 과정 과정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다. 선이 무엇인가? 평온하고 안정되고 축복되고 그것도 물론 선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오늘 29절에 나와 있다. III.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된다. *로마서 8:29a,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성부 하나님이 다 아시는 것을 기초로 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믿음 보고를 하게 되는데, 그 믿음 보고의 목표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최고의 선인줄 믿는다. 이게 key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환경들을 통하여 그 환경들을 가지고 주님을 더 닮아가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선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로 안 좋다. 아니네,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주님을 더 깊어지고, 주님을 더 신뢰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면 그것은 선한 것이다. 반대로 세상 적으로 잘 나가면 멋있어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신앙생활을 우습게 알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좋다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선한 것이 아니다. 죄송하지만 돈이 억수로 많아가지고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좋지만 돈이 억수로 많아가지고 주님을 닮아가지 아니면 그것은 선한 것이 아니다. 돈이 억수로 많아지면 주님을 닮아가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일수록 조심하다.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인간은 할 수 없다. 인간은 주님을 못 닮아간다. 그런데 태산 같은 장애물과 집채만 한 파도가 있어도 우리가 그런 가운데서도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셉이나 다니엘을 보라, 그 고난의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왕 같은 사람은 무명의 사람이 이스라엘의 초대 통일 왕이 되어서 왕이 되고나서 초심을 잃었다. 왕이 되고나서 자기 명예만 지키려고 하거나 주님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버린 것이다. 왕이 된 게 결국 안 좋다. 우리는 신앙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 받은 믿음은 주님을 닮아가는 믿음으로 승화가 되어야 한다. 이걸 신학적으로 승화는 쉽게 말하면 우리가 구원 얻는 믿음은 반드시 주님을 닮아가는 믿음과 연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 얻는 믿음은 내 운명이 바뀌는 것이지만,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내 인격과 삶이 바뀌는 것이다. -운명과 삶이 해결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깨닫게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신앙의 여정은 주님을 닮아가는 것. *로마서1:17,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8:29b,-우리의 신앙은 믿음으로 믿음이 이루어진다. (From faith to faith) -구원 얻는 믿음이 주님을 닮아가는 믿음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모든 주의 권속들, 구원 얻는 믿음으로 승화되길 바란다. 너무 중요한 것이다.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부류가 있고, 또 하나는 닮아가기 보다는 그리스도께 감탄만하고 구경만 하는 사람이 있다. 주님을 닮아가려고 하는 찐 믿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밖에서 구경만 하고, 우리는 감탄만 하지 않고 주님을 닮아가려고 하는 찐 믿음 보고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 결과 29절 뒤에를 보면, *로마서 8:29b,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게 되면, 우리 주님이 제일 맏아들이 되시고, 우리는 나중에 성화 될 때, 가족이 되는 것이다. 우리 같이 연약하고, 비겁하고, 무지한 자들이 너무나 영광스럽게 나중에 주님의 가족이 되는, 너무나 놀라운, 예수님처럼 꿈을 갖고 살도록, 그렇게 만드신 이 귀한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지, 오늘 이 은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넘치기를 원한다. 이것을 바울이 알아가지고 갈라디아 성도들이 뭐라고 애야기 하냐면, *갈라디아서 4:19,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히브리서 7:25,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저는 제가 목회자로서의 꿈이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주님을 닮은 권속들이 이 본당을 가득차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럴 때 우리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정리하겠다. 우리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를 걸어간다. 그런데 그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이지만 우리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전지전능 하신 것과 성자 예수님을 닮아가는 이 참 삼위일체 총동원 되는 하나님을 믿어서 우리의 삶의 나침반을 가지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어제 안수 집사님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믿음보고에 대해서 대화를 하다가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본인은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일기를 쓴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일기가 아니라, “믿음보고 일기를 쓰겠습니다.” 라고 했다. 또 다른 안수 집사님은 칭찬릴레이, 요즘 첼린지 릴레이를 하자고 하신다. 우리는 믿음 보고 감사 릴레이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니까, 우리 교회 게시판을 ‘믿음 보고 게시판’으로 바꿀까 싶다. 9월 26일 섬김의 날 한국교회 섬김의 날 이렇게 그 우리교회 ‘기드온’이라고 있는데 나이가 좀 들어도 계속 청년이다. 이 분들은 믿음보고를 하신 것이다. 특별히 이번에 산간벽지의 목사님이 오시면 우리 기드온에서 롯데 타워에 올려 보내드리겠다고 하셨으며, 어제 아침에 시골에 있는 목사님 중 심방 잘하시고 목양 잘 하실 수 있도록, 우리 교회가 이벤트로 ‘스타리아’ 한 대를 드리겠다고 하셨다. 계획이었고 원래 한 대였다. 새벽예배 마치고 그 차는 두 대는 되면 좋겠다고 했더니, 어제 오후에 40대 젊은 집사님 부부가 우리 시골 교회를 생각하면서 ‘스타리아’ 한 대를 기증하신다고 했다. 이제 제 믿음보고이다. 이왕 주님 섬기는 것 주님 기뻐하시는 성령님이 도우시는 믿음 보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부 하나님께, 성 삼위 하나님께 믿음 보고할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90년대 중반에 저는 처음 평양을 갔는데, 저보고 나와서 간단히 미국에서 나왔으니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그 봉수교회 목사님이 이 성봉 목사이신데 나름 제가 볼 때는 신앙인이었다. 모두들 가짜라고 하는데 우리는 들어보면 안다. 왜 진짜인지는 우리끼리 통하는 뭐가 있다. 그것을 말하면 북한에서 알면 안 되니까,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을 하는데 우리 언젠가 이런 찬송을 할 날이 오리라는 그런 뜨거운 마음이 생겼다. 여러분들에게 믿음보고 하는 것이다. 모든 형제, 태산 같은 장애물,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온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이 소원은 무엇이냐면, 성삼위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성부 하나님은 다 아시고, 성자 예수님을 닮아가는 목표가 되면 우리는 반드시 믿음보고 할 줄로 믿는다. ♣요약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하고 비겁하고 무지한 우리를 도와주실 때, 믿음보고의 축복이 됨을 믿으며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확신할 때, 하나님을 절대주어로 전적으로 의탁하고 우리 교회 섬김의 날 9월 26일을 민족의 항로로 인도하여 주시길 간구하며,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따라 온전히 섬겨서 믿음 보고의 근거가 되기를 소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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