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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8월 21일)

제목: "믿음 보고"
말씀: 민수기 13:25~14:10
대표기도: 이윤기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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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3:25~14:10,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 14:10,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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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목사님
-오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생수의 강이 되길 소망한다. ‘은혜 게시판’에 장애인 사랑부에 아들과 함께 청계산 산상기도회 참석한 후에 어떤 한 어머니의 기도가 올려 져 있었다. “더위도 잊어버리고 산에 올라 아들의 손을 들고 같이 기도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비가 안 오다가 목사님의 마지막 축도와 함께 비가 떨어졌다.”고 게시판에 썼다.
 
지난주일 날 청계산 기도를 하는데 그 같은 시간에 효자동에는 천둥과 폭우가 쏟아지고 분당과 청계 역에도 비가 오는데 그 위에는 비가 안 왔다. 뭐 어쩌다 그렇겠지 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관한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 “내려올 때, 안전 팀 남 순장반의 에스코트로 내려왔는데, 20년 가까이 사랑의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대접 받기도 처음인 것 같다. 같은 시간 다른 곳은 비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이 불 말과 불 병거로 청계산 기도회를 지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청계산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으로 내년도 산상 기도회가 벌써 기대가 된다. 나무다리, 화장실, 벤치의자, 돗자리 강단 등을 마련하느라고 섬긴 분들은 어떤 분들은 하루에 20회 정도 산을 오르내렸다고 하니 그 수고의 결실을 하나님이 보여 주게 하신 것 같다.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썼다. 이런 믿음의 보고를 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저는 저의 사역을 돌아보면, 저의 사역은 이 믿음 보고의 간절함을 먹고 사는 것 같다. 돌이켜보니까 불신의 보고냐, 인면 믿음의 보고냐, 아니면 확신의 보고냐, 아니면 눈에 보이는 어떤 사실만의 보고냐, 믿음의 해석을 가진 보고냐, 이걸로 사역을 쭈욱 보니까 그렇게 나눠진 것 같다.
 
오늘 여러분들이 잘 아는 민수기 13장에 열 두 정탐꾼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호수아 갈렙과 열 정탐꾼의 보고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 교회는 이 열 정탐꾼은 눈에 보이는 보고, 사실 보고, 팩트 리포트 보고만 하고 여호수아, 갈렙은 그 눈으로 보았지만 거기에다 주님과 함께 믿음의 보고인 소위 페이스(faith) 쓰리 리포트를 한 것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내용들을 본문 배경들을 조금 더 말씀드리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가데스바네아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출애굽한 지 2개월 만에 시내 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1여년을 머물렀다. 그 시내 산꼭대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율법을 받았다. 그 율법을 받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떤 정체성이 바뀌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애굽의 노예였는데, 이제는 노예가 아니라 내 말씀의 자녀 언약의 자녀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된 것이다. 이제는 노예가 아니라 친 백성이 된 것이다. 그리고 친 백성의 대한 하나의 증거는 성막을 만들고 그 성막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기둥으로 빽빽하고 쉐키나의 영광으로 증거를 보여주셨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제는 너희들을 과거에 어떤 애굽의 통치자가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씀과 하나님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너희를 통치하느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백성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출애굽 한지 2년쯤 지난 다음에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해서 본문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본문의 사건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어떤 사람마다 그 성향 가운데서 불신앙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불신앙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포텐셜, 보이지 않는 불신앙의 성향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열 정탐꾼을 통하여 숨겨진 우리가 불신앙 성향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I. 숨겨진 분신앙의 성향을 조심해서.

-이것은 열 정탐꾼을 통하여 숨겨진 우리가 불신앙 성향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배들 드리면서, 우리 속에 있는 불신앙의 성향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시길 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열 정탐꾼도 제대로 보고는 했다. 27절에 보면,
 
*민수기 13:27,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가지고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라고 그림도 보아서 잘 알겠지만, 큰 포도송이를 가지고 그런 가나안에 있는 것, 풍요한 것을 가지고 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나름 보고를 잘 했다. 그때는 어떤 성향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28절에 보면,
 
*민수기 13:28,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좋기는 좋은데 그러나 그러나가 문제이다. 불신이 나온 것이다. 열 정탐꾼이 가나안 땅이 심히 견고하고 크다고 했다. 사실은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건축을 하는데 국고성, 비돔과 라함셋을 건축을 하는데 그 당시 피라미드를 본 사람들이 그러니까 피라미드의 그 큰 규모를 본 사람들이 볼 때 가나안이 물론 성읍이 크지만 별거 아닌데 생각의 틀이 불신이 되니까 그런 보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 제국 이집트를 경험한 눈에는 가나안의 성읍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세계관으로 바라보느냐이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참 큰일 났다. 이야기 하니까 열 명이 아니라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이 말한다. 30절에 이렇게 나온다.
 
*민수기 13:30,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래 겁먹을 것 아니야, 우리가 올라가면 이길 수 있다고 한다. 그 다음에 그 말이 나오자마자 31절에 열 정탐꾼이 뭐라고 하냐면
 
*민수기 13:31,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그렇게 하면서 불신의 보고를 하면서 그렇게 하게 되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32절에 이런 내용의 말을 하게 된다.
 
*민수기 13:32,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시각이 불신의 보고가 되면 오판을 하게 되고 과장을 하게 되고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고 거기는 젖과 꿀이 흐르는 딸이라고 말했는데 판단이 틀리니까 믿음 보고를 못하게 되니까, 거주민을 삼키는 저주받은 땅이라 한다. 그리고 아낙자손이 있다고 말했는데 과장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네피림의 후손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 식으로 오버하고, 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기들의 불신 보고 정도가 아니라 14장 11절을 보면,
 
*민수기 14:11,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불신과 믿지 않는 불신과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 하나님에 대한 의심하는 것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는 이것이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멸시하는 것과 불신앙이 그대로 같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열 정탐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백성들의 마음을 이제 흔들어놓기 시작한다.
 
*민수기 13:33,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불신의 표현을 뭐라고 말하느냐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그들 앞에서 메뚜기와 같다고 한다. 이 불신앙의 이 내용이 나중에 집단으로 가는데, 지금 우리는 이런 내용의 전지적 시점을 가지고 열 정탐꾼이 잘못했다고 나름대로 평가를 하고 그러지만 막상 그 상황에 그 장소에 있다면 우리들도 우리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이 잠복적인 불신앙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불신앙의 크레바스이다. 빙하가 있는데 크레바스는 갭이 벌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틈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은혜의 차원이 있고 내 삶의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gap갭이 너무 큰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해서 불신앙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열 정탐꾼의 크레바스에 있는 것이다.
 
*민수기 13:33,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 33절에 다시 한 번.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우리 속에 이런 잠복된 불신앙의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예배와 말씀을 통한 이 잠복된 불신앙의 성향이 있다면 이것을 주님이 처리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그러고 그렇게 얘기하고 난 다음에 32절 보니깐 그 주변을 삼키는 땅이다. 같은 땅을 이렇게 다르게 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거 영상을 보았는데 80년 복음화 대상에 대한 거 저거를 보여준 이유는 아마 그날 금요일 전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 분들 특징으로 비가 오는데 미국 분들이 와가지고 보았더니 사람들이 다 도망갈 줄 알았는데, 미국 사람들은 밤 새워서 기도를 못 한다. 왜냐하면 밤 새워서 기도하다가 감기 걸리면 주최 측을 고소하는 것이다. 그것이 suit의 나라 미국인데. 한국은 어떻게 하냐면 80년대 미국에 있는 선교사님이 와서 보니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밤새워 수십 만 명이 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 폭우 때문에 아마 그런 비교를 한 것 같은데 사실은 한국교회 부흥의 새로운 전환점, 역사 흐름의 전환점이 된 것이 73년도, 지금으로부터 49년 전에 빌리그램 전도대회였다. 이 가운데 아마 빌리그램 전도대회를 기억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년도 50주년 희년인데 그 때 73년도 빌리그램 전도 대회를 하는데, 100만 명이 모인다고 그랬을 때, 사람들이 다 기쁘고 감사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음 보고를 하지 못하고 불신의 보고를 한 분들이 많다. 100만 명이 모여 밥은 어떻게 먹을 거야? 또 백만 명이 모여가지고 잠은 어떻게 잘 거야? 심지어 백만 명이 모이면 화장실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리고 극단적인 사람들은 백만 명이 모이는데 한꺼번에 모이면 이북에서 미사일 쏘면 한꺼번에 다 죽을 텐데, 그러니까 백만 명이 모여서 그 빌리그램 집회를 못할만한 70가지 80가지가 되는 것이다. 많은 내용들을 가지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신앙의 선배들 가운데서 이 믿음보고를 한 분들 때문에 그 빌리그램 전도 집회 이후에 74년도 78년도 복음화 대성회에서 대해서 한국교회가 대상이 당시로 우리나라가 인프라도 제대로 돼있지 않은 그런 상태인데 100만 명이 모여가지고 밥은 어떻게 먹을 거며, 100만 명이 모여 가지고 잠은 어떻게 잘 거야, 심지어 100만 명이 화장실은 어떻게 되는데? 그리고 극단적인 사람들은 100만 명이 모여 있는데 이북에서 미사일 쏘면 한꺼번에 다 죽을 텐데 그러니깐 100만 명이 모여서 빌리그래엄 그 집회를 못할 만한 이유가 70가지 80가지가 되는 것이다. 많은 내용들을 가지고 준비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근데 그 가운데서도 우리 신앙의 선배들 가운데 이 믿음 보고를 한 분들 때문에 그 빌리그래엄 전도 집회 이후에 그 다음 74년도 엑스플러 80년도 복음화 대성회, 이런 식으로 해서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새로운 비상을 하게 된 것이다. 참 특별한 일이다.
 
문제는 이제 이런 내재된 불신앙이 내 혼자만의 불신앙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게 악성 바이러스가 되는 것이다. 치명 율 높은 이 악성 바이러스가 되는 것이다. 이 악성 바이러슨 모든 것을 의심의 안경을 가지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악성 바이러스가 되니깐 집단적으로 막 퍼져 나가는데, 그래가지고 오늘 14장 여러분들이 읽은 말씀 어떤 악성 바이러스로 번지느냐하면, 14장 1절에 이렇게 나와 있다. 의심이 퍼지니까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는 것이다.
 
*민수기 14:1~2,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의심이 퍼지니까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는 것이다.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의심의 악성바이러스가 퍼지니깐 백성들이 이 말 듣고 밤새도록 통곡을 하는 거 밤새도록.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그 다음을 다 모두가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되었다. 모두가 다 예외 없다. 다 원망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차라리 애굽에서 안 나왔으면 좋아할 광야에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까? 그러니까 이 10명의 어떻게 보면 소수의 부정적인 사실 보고가 자기들 나름대로는 fact report라고 그러지만 사실보고가 단순한 보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룩처럼 공동체에 퍼져가지고 전체의 불평보고 불평이 커지고 있다. 순식간에 부정적이 여론이 형성되어 가지고 공동체를 병들게 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전쟁을 앞에 놓고 지도자들은 영적 전쟁이나 특별히 성경의 전쟁을 앞에 놓고 지도자들은 무엇을 조심했냐면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의 바이러스를 먼저 물리쳐야겠다. 이 불신의 바이러스를 먼저 척결시키는 것이 잘 아시는 대로 사사시대 때 기도온의 300용사가 나오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미디안 연합군 13만 5천 명이 쳐들어 왔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랬을 때 제일 먼저 기도온이 신경을 썼던 것이 무엇인가 하면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 했다. 두려워 떠는 자는 많아봐야 소용없다. 이것은 사기를 다 망치게 하고 오염시켜 이렇게 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신명기 모세 오경에도 20장 8절에도 뭐라고 나오느냐 이런 말씀, 다시 또 보겠다.
 
*신명기 20:8,
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오늘 이 말씀을 기도온이 그대로 적용한 것이 너 두려우냐? 마음이 이렇게 두려우냐? 마음에 불평이 되는 마음의 짐이 있느냐? 그럼 집으로 돌아가라.
오늘 예배는 집으로 가는 자가 없기를 바란다. 다 집으로 돌아가라. 이게 바이러스가 막 전체를 여러분 그리고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더 재밌는 것은 이 믿은 보고라든지 감사한 거라든지, 이런 것들보다도 일어났던 것들의 부정적 생각들의 전파 속도가 믿음의 생각들의 전파 속도 보다도 더 빠르다. 안 빠르다. 어떻게 아는가?. 다시 믿음의 생각보다도, 부정적인 생각의 전파속도가 더 빠르다. 남들에게 칭찬 들은 것들은 여러분 금방 잊어버리는데, 남들에게 흉본 것은 오래 기억한다. 그러니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은혜 안 주시면 우리가 믿음 보고 살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여러분, 왜 우리가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가? 우리 왜 신앙의 선배들처럼 그런 능력이 없는가? 단순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3:58절에 무어라고 말씀하시는가? 단순한 것이다.
 
*마태복음 13:58,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귀한 예배드리러 오셨는데 여러분 모두가 다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능력 있는 신앙생활이 중요한 원천이 무엇이냐면 여러분들과 저의 믿음의 문제이다. 다시 한 번 믿음의 순도를 새롭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믿음의 순도, 그걸 위해 도전을 받아야 한다. 그걸 우리가 도전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열 명의 이 믿음 없는 사람들의 보고가 불평 보고가 되니까 온 백성들에게 확산 되니까 14장 1-2절 다음에 3절 4절에 뭐라고 나오는가?
 
*민수가 14:3~4,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애굽으로 돌아가자 한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출애굽한지 2년이 되었는데 이제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에 쓰러지게 하는 하나님이시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말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다. 기가 막힌 내용이다. 좋은 기가 막힌 말이 아니고 나쁜 기가 막힌 말이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땅으로 데려와서 우리를 칼에 맞아 죽게 한다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2년도 되기 전에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신 그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해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그렇게 한 그 입을 가지고 그 입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하고 원망하는 입이 된 것이다. 우리도 비슷한 때가 많다. 1-2년 전에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정말 눈물을 흘리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던 자가 하나님을 흘겨보고 말이지 하나님 은혜에 두 손 모아 기도하던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삿대질 하는 그런 형편도 있을 수가 있는 것이 되는가?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14장 뒤에를 보니까 결말이 무슨일이 벌어지는가?
 
*민수기14:28,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좀 겁나는 말씀이다. 너희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한 말 대로 29-30절에
 
*민수기14:29-30,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 뒷부분은 무섭다. 20세 이상 된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그 약속의 땅 가나안에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다. 오늘 우리가 대부분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이 내 것으로 확인되고 체화되어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내 속에 있는 불신앙을 극복하고 잠복된 악성 바이러스 처리하고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완전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줄로 믿는 것이다.
 
*민수기 14:34,
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 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38년 동안 더 광야를 헤매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는 믿음 보고를 위하여 우리 속에 잠재 되어 있는 불신앙의 바리러스들이 오늘 강력한 믿음 보고의 백신을 통하여 다 섬멸되고, 정리되고, 치유되기를 소망한다. 오늘 이 자리가 믿음보고 자리가 되기를 원한다. 아니 이 안아주심의 본당이 믿음 보고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믿음 보고를 하고, 사도행전 29장 28장 뒤에 우리가 믿음 보고의 행적을 우리가 써 나가야 할 일이고, 오늘 다시 한 번 본당 자체가 믿음 보고의 현장인 줄 믿는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이런 사실을 놓고 우리가 정리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는 믿음보고를 제대로 하려면 비교의 대상을 올바르게 정리를 해야 한다.
 
II. 믿음의 보고는 비교의 대상을 올바르게 정리하는 것이다.

-여호수아 갈렙은 하나님과 환경을 비교한 것이다. 그러니까 환경과 자기를 비교하니까 아낙자손을 보고 대단하다고 하고 큰 거인들을 보니까 우리가 주눅 들어서 힘들다고 그러는데 여호수와, 갈렙은 하나님과 비교하는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한다. 그러면서 여호수아 갈렙이 그러면 어떻게 말하는가 하면,

*민수기14:8,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그러면서 여호수아 갈렙이 어떻게 말을 하냐면, 하나님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위 Faith report를 하는 것이다. 발음을 잘하라. 진짜 믿음의 보고여야 한다. 불신의 보고가 아니라,
 
*민수기14:9,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그러면서 하나님과 그들을 비교하니까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 우리의 먹이라, 밥, 문제 핵심은 먹이 사슬이 달라지는 것이다. 영적인 먹이 사슬이 달라지는 것이다. 딱 보면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과 그들을 비교하면 그들이 우리의 먹이라 한다. 여러분 가나안 사람들이 기골이 장대 한가 아닌가? 그것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가나안 성벽이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비교하니까 가나안 성벽이 높낮이, 튼튼한 것이 아닌, 이런 것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안하시는가? 이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제가 영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데 투명한 상태가 되어가지고 믿음의 눈을 열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신다. 이것이 신앙이다. 오늘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온 성도가 믿음 보고를 하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게 되겠나?’ 하면 안 된다. 여러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열왕기하 6장 7절에 보면, 아람나라 사람들이 사마리아 성을 둘러쌌다. 그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가 사마리아였기 때문에 사마리아 둘러싸서 포위를 하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이렇게 보고 품이 없으니 사람들이 굶어죽기 시작한다. 심지어 엄마들이 자기 아들을 잡아먹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그 때 엘리사 선지자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매매되리라.” 그러니까 왕의 장관이 있다가 말도 아니라고 우습게 여긴다. 열왕기하 7장 2절을 보면,
 
*열왕기하 7:2
,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불신이다. 어찌 일이 있겠냐 한다. 당신이 장관인데,,, 그러고 포위하던 아람 군대에 하나님께서 병거의 마병소리와 큰 군대 소리가 들리게 하셔서 아람군대가 놀라서 급하게 도망을 가버렸다. 다 도망가면서 그들이 병참 보고품을 그대로 두고 도망을 가버렸다. 그러고 그 의심하던 그 장관이 밀가루와 그 보리가 매매되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보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인파에 밟혀서 죽고 말았다. 조금 섬뜩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믿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환경을 비교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환경을 비교해야 한다. 못 믿다가 밟혀죽는 경우가 우리 가운데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열 정탐꾼들은 의심은 죽음을 가져온다.
 
*민수기 14:37,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즉각 처리가 되고 다 죽었다. 오늘 이제 긴장된 말씀을 해드렸다. 그러하지 말고 믿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두 달 전에 강원도 정선에서 우리교단 장로님들이 3천명이 모였다. 제가 밤 집회를 했는데 지방에 있는 어떤 장로님이 연락을 했는데 “목사님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셨다. 무슨 은혜를 받았느냐고 하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기를 못 먹는다고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하겠다. 그런데 모세가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쉽지 않은 일인데, 땅에 있는 모든 육축을 다 모아도 그게 가능하겠냐고, 바다의 모든 고기를 다 잡아도 그게 가능하겠냐고,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반응을 하니까, 하나님은 대답하셨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못하겠느냐? 하신다. 서울에서 30킬로 사방을 1미터 높이로 메추라기 떼를 보내서 떼거리로 상상도 못한 일을 보여주셨다는 말씀을 듣고, 본인들이 그것을 알지만 그 장로님들과 모여서 그 말씀을 강력하게 들을 때, 하나님이 마음속에 믿음의 눈을 열어주셨다는 것이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끝났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교회가 패배하고 끝났다고 영적으로 비관주의적인 분들이 있다. 우리의 부족함이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부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 비관주의를 극복하고 영적인 쾌거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에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두 가지를 이야기 했다. 우리 속에 있는 잠재해 있는 악성 바이러스를 은혜의 백신으로 믿음의 백신으로 극복하자. 또 하나는 비교의 대상을 새롭게 해야 되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실천이 있어야 한다. 담론, 총론에만 그치지 말고 이것을 내가 실천을 해야 한다.
 
III. 믿음 보고를 하는 믿음의 모험가가 필요하다.

-온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에 갈렙과 여호수아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민수기 14:6,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그 엉터리 같은 불신보고에서 너무 가슴이 아파서 자기들의 옷을 찢었다. 라고 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시대를 향하여 우리의 가슴을 찢고 통곡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불신앙과 의심의 옷을 찢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믿음의 용기를 믿음의 모험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한 번 샘솟듯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난주에 제가 아달랴 사건을 이야기 했다. 아달랴는 악한 여왕이었다. 그가 남쪽 왕국을 완전히 그냥 악한 이세벨의 우상을 그대로 가져와가지고 온 나라를 오염하고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럴 때, 여호야다 라는 대 제사장이 이러면 안 된다고 했다. 그 악한 아달랴가 왕족들을 씨를 말리고 다 죽일 때, 딱 한 사람, 여호야다가 한 사람, 요아스를 보호해가지고 6-7년을 길렀다. 일곱 살 때 그를 왕으로 등극 시켰다. 만약에 여호야다라는 대제사장의 용기가 없었다면 안 되었다. 그걸 역대하의 기자가 말하고 있다.
 
*역대하 23:1,
1 제 칠년에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백부장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와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과 오벳의 아들 아사랴와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와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 등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
-용기가 필요하다 아달랴의 용기가 없었으면 8년이 가고 9년이 갔을 것이다. 10년이 되가지고 남유다 왕국은 거덜이 났을 것이다. 그냥 시간만 지난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데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여호야다가 용기는 안 냈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야다 자체는 어영부영 하다가 끝났을 것이다. 용기를 낸 여호야다를 하나님은 어떻게 대우하셨는가? 이렇게 나와 있다.
 
*역대하 24:16,
16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놀라운 일이다. 용기를 낸 제사장이 왕의 묘실에 장사된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요아스는 왕의 묘실에 못 들어갔지만 여호야다는 왕의 묘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용기를 낸 주의 백성들을 통하여 21세기의 왕 같은 제사장의 은혜를 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왕 같은 대제사장, 왕처럼 대접함,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 앞에 두려움과 의심을 가질만한 의심의 환경이 주어지고 우리 앞에 어려움의 파도가 덮치면, 우리도 약해질 수 있지만 오늘 하나님과 환경을 비교하고 다시 한 번 말씀 앞에서 믿음의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라는 것은 모든 것이 잘되는데 용기가 왜 필요한가? 모든 것이 평탄한데 무슨 용기가 필요한가? 그냥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과제들이 있고 믿음으로 헤쳐 나가야 할 역할들이 있고 우리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사명들이 있을 때, 우리 앞에 쉽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사랑의교회와 한국교회 성도들이 다시 한 번 믿음의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불신앙의 다시 한 번 불신앙의 크레바스를 극복해야 한다. 자 이제 말씀을 정리하십시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신앙의 역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할 것인가? 당신의 신앙의 역사를 말해 달라 했을 때, 여러분은 무슨 말씀을 하기를 원하는가? 우리의 신앙의 역사는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우리는 신앙의 연대기이다. 역사를 쓸 때 소위 연대기라 한다. 여기서 연대기는 역대상 역대하 하듯이, 크로니칼하다. 우리는 신앙의 연대기가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모태신앙이다.’ 또 나는 내 신앙의 연대기는 직분의 역할을 쓸 수 있듯이 나름대로 그것도 신앙이 연대기라고 할 수 있지만, 진짜 신앙의 모험을 들어가면 우리는 신앙의 연대기를 쓸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내가 믿음 보고를 하는 내가 신앙의 믿음보고의 신대기를 써야 할 것이다. 제가 이런 용어를 만들어 보았다. 우리는
 
▷신앙의 역사가 연대기(年代記)가 아니라 신대기(信代記)이다.
그런 역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믿을 신(信) 자를 말한다.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 신앙의 역사의 두께는 믿음보고의 두께와 비례하는 것이다. 신앙의 역사의 두께는 믿음의 역사의 두께와 비례한다는 것이다. 의심의 담쟁이 넝쿨이 여러분들의 삶의 나무를 타로 올라가서 나무를 고사 키시려고 할 때에 불신앙의 바이러스가 내 삶을 타고 올라와 삶 전체를 덮으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감정과 환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반석 위에 자신을 올려놓고 믿음의 보고를 하는 그런 축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믿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이 시편 107편
 
*시편 107:20,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무얼 보내셔서 위험한 지경에 구원하시는 것인가? 말씀의 의인화, 말씀의 인격화, 말씀이 인격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니까, 오늘도 우리가 말씀을 읽은 민수기 13장과 14장 이런 말씀들이 우리에게 인격화 되어가지고, 이 말씀이 우리를 건져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믿고, 믿음보고 할 때, 우리의 신앙의 역사는 우리가 예수님을 몇 년 믿었다 오래되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역사는 내가 어떻게 믿음으로 보고하는가이다. 태산 같은 장애물이 우리 앞에 있을 수 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도 있고, 집채만 한 파도가 우리를 압도할 수 있지만 아니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가슴도 쪼이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무섭고 두려울 때도 있지만, 결국은 우리의 이 믿음보고를 통하여 말씀을 중심으로 한 믿음보고를 통하여, 인생의 산과 바다와 골짜기를 넘어가게 하실 하나님이신 줄을 믿는다.
 
그러니까 예수님 믿은 지 20년, 30년, 40년, 50년, 이것도 소중하지만, 더 중요하한 것은 예수님 오년 믿었더라도 불신앙의 크레바스를 극복하고 의심의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믿음의 역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신앙의 연대기가 신대기가 된다. 거룩한 믿음의 보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결론을 내리면 이런 여호수아 갈렙은 믿음 보고를 통하여 자기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 그 다음 세대를 일으켰다. 20세 이상은 다 죽었지만 20세 이하는 성경에 나타나는 유일한 믿음의 보고 세대, 유일한 순종의 세대, 그래서 가나안을 정복하는 7년 14년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 보고가 전쟁에 승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특별한 것은 나중에 가나안 정복할 때, 약간 힘이 빠졌을 때, 갈렙은 “제가 이 산지를 얻기를 원합니다.” 헤브론 산지 그 어려운 곳을 믿음으로 눈을 열고 “내가 이 산지를 얻기를 원합니다.” 갈렙 다시 한 번 그 가나안 전쟁 중에 다시 한 번 믿음 보고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그러니까 젊을 때, 믿음보고를 한 것이 그것이 믿음 보고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믿음 보고도 습관이 되는 것이다.
 
따라 하겠다. “믿음 보고도 거룩한 습관이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 모든 주의 권속들은 믿음 보고에 관한한 거룩한 습관 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러분, 거룩한 습관이 되면 남들을 살리는 것이다. 자기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살리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보고를 우리가 기대하고 기도하지만 남들 생각하지 말고,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만이라도 지금 주님 앞에 믿음보고를 하고 살도록 하자. 믿음보고도 거룩한 습관이 된다면 불평보고도 습관이다. 의심보고도 습관이다. 하여튼 의심보고의 은사 받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 그런 것이 습관화 되지 말고, 믿음보고의 습관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언제 믿음보고 해보았는가? 아니 질문한다. 언데 믿음의 모험을 해보았는가? 언제 해보았는가? 오늘 이 말씀 듣고 주님이 내게 무엇을 가지고 믿음보고 하기를 원하시는가? 깨닫게 하는 것이 있으면, 주님 앞에서, 환경을 비교하지 아니하고 말씀과 이 상황을 앞에 놓고, 오늘 이 영적으로 투명한 상태에서 믿음보고를 하므로 말미암아 모두가 다 연대기가 아니라, 신대기를 쓰는 주의 권속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기에는 사업가, 주부, 여러 종류에 형편에 있지만,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가? 믿음보고를 하는 사람과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 주위에도 많은 믿음보고 하는 사람들을 주시길 소망한다. 손을 펼치고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요약
우리가 부정적이고 숨겨진 불신앙을 믿음보고의 백신으로 깨끗이 치유 받아서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의 보고를 하여서 영 가족 모두가 연대기가 아닌 신대기의 인생을 써 가도록 하여 영적인 쾌거를 이루어가며, 9월 26일 한국교회의 섬김에 앞장서 지혜롭게 섬기고 실천하여 하나님의 기쁜 자녀가 되어야 한다.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확인했다고 보고하고, 거기서 따온 실과를 그 증거로 보였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실제로 보고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정탐꾼들은 그 땅 거민들이 너무 강하고 성읍도 견고하여 그들과 싸워봐야 질 것이 뻔하다고 주장하였다. 정탐꾼들은 하나님께서 그동안 보여주신 권능을 간과한 채 인간적인 관점에서 양쪽의 힘을 비교하고 판단을 내렸다. 백성들은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밤새도록 곡을 하면서 애굽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고 지도자를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꾼들의 불신앙적인 관점에서 내린 판단에 근거하여 좌절감에 빠져 이런 반역적인 행동을 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소란해진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며, 하나님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니,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했다. 열 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신앙에 입각한 보고를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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