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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1월 30일) 제목: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말씀: 시편 116:12~17 기도: 이의수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시편 116:12~17,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감사 제목을 매일 3가지씩 적는다. 진정한 감사가 없다면 불행하다. 대한민국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나는 순국선열들에게 묵념한다.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께 감사하고. 선배 어른들께도 감사하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열정과 좋은 점과 교육열, 우리 한국 사람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 부지런함에 감사하다. 밤 열한 시, 열두 시에 골목을 걸을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세계에서 유일하다. 우리 교회 어떤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나라 2030이 가장 똑똑한 세대라고 한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 명절 찬양 예배가 감사의 예배로 승화되길 원한다. 우리 모두가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오늘 근본적인 감사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면 시편 116편의 저자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히스기야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기도로 수면연장을 받고 나서 쓴 시라고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윗이 압살롬의 손에서 벗어나서 쓴 것으로 보인다. 제가 볼 때는 다윗이 더 낫지 않나 생각한다. 핵심은 뭐냐면 시편 116편은 갑작스런 삶의 난관, 위기, 죽음, 병 앞에서 고백하는 시이다. 얼마나 심각한가? *시편 116:3-4,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과 위기가 많다. 얼마나 심각한지 11절에 보면 알 수 있다. *시편 116:11, 11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사람들이 정죄하고 압제와 비방하고 이 시인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세상에 믿을 놈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배신당하고, 그럴 때 8절에 다시 보면, *시편 116:8,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사망에서 배신과 배척과 흑암가운데서도 영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이다. 감사하다는 것이다. 무얼 감사하다는 것인가? 오늘 12절의 요절을 보자. *시편 116:12,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나는 만 가지 은혜를 받았는데 내 평생 슬프나 기쁘나 즐거우나 이 몸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여야 할까? 그이유가 무얼까? *시편 116:13,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I. 참된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하면 영적으로 성공한다. -복받쳐 오르는 감사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의 난관을 극복하게 하는 최고의 것은 내가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하면 영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이 감사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총칭한다. 구원에 대한 감사는 한 마디로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 주셨다. ※구원에 대한 감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미칠 정도로 깨달아야 한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인데 정말 주님을 찬양하게 하는가!! 이 정도가 아닌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 주셨다는 사실은 생애 최고의 석학도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제 아무리 훌륭해도 수준이 높고 지식이 높다하더라도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받지 못한 것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을 확신한다. 이유를 모르지만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만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어떤 낙심과 병중에도 하나님 앞에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하는 것이다. 이 감사를 하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면 주님의 주님 되심을 믿게 되는 것이다. 감사를 통해 믿게 되면 환경이나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며, 나는 나를 구원의 잔을 높이 들게 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마음속에 그래서 확증이 되는 것이다. 구원의 잔을 높이 든다는 것은 잔속에 넣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물을 넣으면 물 잔이 되고, 포도주를 넣으면 포도주 잔이 되고 구원을 넣으면 구원의 잔이 되고 불평을 넣으면 불평의 잔이 되고 불씨를 넣으면 불씨의 잔이 되고 감사를 넣으면 감사의 잔이 된 줄로 믿는다. ※ 제가 존경하는 신학자는 제임스 패커는 기독교의 감사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 세상의 여러 종교 중에 기독교만큼 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믿는 자들에게 끈질길 정도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요청하는 종교가 또 있을까? 아마 없으리라. 성경에서는 왜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라고 강조하는가?” -제임스 패커- -아마 없을 것이다.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말씀대로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찬양할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준 구원의 선물이 너무도 값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리의 구원 사역을 통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이 지옥에 갈 우리를 구원하였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줄로 믿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 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나라로 들어가게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해야 한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내가 가진 구원이 진짜라면 여러분과 우리의 죄가 참으로 용서 되었다면 내가 지금 죽어도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면 지금 우리의 형편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받는 구원이 진짜라면 내가 어떤 지위나 신분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받은 구원이 진짜라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문제 될 것은 없다. 내가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구원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한다. 남을 판단해서 찾지 말라. 근본적인 감사가 필요하다. 내 인생의 최고의 사건은 무엇인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구원의 감사에 대해서 김동영 목사님과 안이숙 사모님이 계셨다. 13살 많은 사모님과 결혼했다. 안 사모님의 구원이 너무 좋아서 안 사모님만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책을 쓴 사람이다. 두 분의 관계가 하나님의 구원의 감사가 가장 큰 분이다. ※“주여 나 같은 것에게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주셨으니 어찌 가슴이 끓어 오르고 불타고 폭발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구언에 감사하여 옳고 꿇어 엎드리고, 이 몸을 드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정열을 다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것입니다.” -김동명 목사님, 안이숙 사모님- -구원에 감사가 참된 감사이다. 목이매이는 것이다. 이 고백을 하시는 두 분을 잊을 수가 없다. 안 사모님이 우리 교회에 와서 그 간증을 들었던 분들도 계신다. 허락 되면 우리 교회 영상 팀에서 다시 보기를 권한다. 훈련에서 다시 보여 주고 판매하기를 바란다. II. 참된 감사는 우리를 ‘영원한 시간’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우리는 많이 살면 백 살이다. *시편 116:15,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정말 은혜를 주시고 더 깊은 뜻은 우리에게 영원한 세계를 보장하시고 진입하게 하신다. 모두가 시간의 노예이고 시간 속에 갇혀있다. 서로 밀당하고 끌려가기도 하고 온갖 일을 겪으면서 산다. 그런데 가장 가치 있는 참된 감사로 구원의 잔을 높이 들면 육신의 시간이 영혼의 시간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고통과 상처가 감사로 바뀌는 것이다. 불평의 감옥이 감사와 찬양이 된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게 하신다. 여러분은 ‘미즈노 겐조’라는 사람을 아는가? 그 시인은 ‘감사는 밥’이라는 책을 썼다. 미야오 목사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시인이다. 지금은 천국에 갔지만 그가 쓴 책에서 자신의 생각을 눈으로 표현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애로 살았다. 말을 못해도 감사하며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았다고 한다. 비록 육신은 안 들었지만 영혼의 시간을 만들며 살았다. 겐조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글귀가 있다. “밤마다 격하게 괴롭히는 고민도 아픔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을 수가 없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시끄러운 두려움도 불안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을 수가 없다. 라고 말하고 있다. 육신적으로 참으로 불행했지만 일평생 침상에서만 살았지만 그의 침상은 원망과 불평 대신에 감사가 넘쳤다.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졌고 구원 받은 것에 감사하며 미소 짓고 살았다면 건강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겐조에 비하면 얼마나 감사한 이야기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감사하는 자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의 시각으로 살지 않고 영혼의 시각으로 살아야 하고 영혼의 렌즈로 살면 우리는 감사의 렌즈로 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감사의 렌즈로 보면 다섯 가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혼의 눈으로, 영혼의 시각으로 보면, 예전에 지나친 것을 깨닫게 된다. -첫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과거의 상처나 슬픔에 집착하지 않는다. -둘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일상에 숨어 잇는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눈이 열린다. -셋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전보다 화를 내는 횟수는 줄고 웃는 횟수는 많아진다. -넷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섯째,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더 배울 수 있고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가 성장하는 자리이다. *시편 116:17,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편 116:18-19,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여호와 성전 뜰에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자는 것이다. ▷구약의 레위지파 사람들은 성전 중앙 뜰에서 축제의 기간마다 레위지파 자기들은 할 일일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다. 우리도 주의 뜰인, 하나님의 예배당에 나와서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여러분과 저는 21세기 감사의 레위지파가 되어야 한다. 역대 상 16장에는 레위지파를 세 분류로 나누고 있다. 세 분류- 레위지파. 첫 번째ㅡ여호와 궤를 섬기는 자. 두 번째 ㅡ하나님의 행적과 은혜를 감사하고 기록하는 자(사관). 세 번째ㅡ 직접적인 연주자. 찬양대나 오케스트라처럼 같다.(연주자) -그래서 다윗은 전쟁하러 나가기 전에 먼저 정결하게 하고 레위지파를 점검했다. 항상 감사와 찬양이 없는 전쟁은 망하고 실패한다. 이것이 거룩한 비대칭 전략이다. 다윗은 전쟁 준비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의 준비부터 한 것이다. 비대칭 전략이란 골리앗을 칼을 들고 나올 때, 다윗은 물맷돌을 들었다. 여호사벳은 모압과 암몬 연합군을 맞설 때, 그걸 준비하는 것이 아닌 찬송을 했다. 비대칭 전략이다. 이것이 영적인 비대칭이다. 우리가 평생에 문제가 있으면 먼저 주의 제단 뜰에 와서 21세기의 레위지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비대칭 전략이다. 예배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곳이다.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불평이 있으면 감옥이 된다. 성숙한 사람은 거룩한 비대칭 전략이다. 부부 싸움할 때도 잠시 화장실 가서 찬송하고 나오라. 그러면 비대칭 전략이 되는 것이다. 미즈노 겐조도 비대칭 전략을 한 것이다. 우리의 비대칭 전략은 찬양 아리랑을 한 것이다. 아리랑으로 찬양을 하면 비대칭 전략이 된 것이다. 애통의 아리랑, 성령의 한의 아리랑이 찬송이 된 것이다. 아리랑이란 비대칭 전략으로 세상을 바꾸기를 소망한다. ♧요약 구원 받은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만 가지 은혜로 우리를 최고로 대우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잔을 높이 들고 영적으로 성공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날마다 애통과 한의 역사를 기쁨과 감사의 역사로 바꾸는 주인공이 되어 어떠한 난관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하여 감사의 비대칭 전략을 세워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ㅡ하나님은 두려움에 떨던 다윗에게 보다 좋은 선물을 주셨으며 환난에 빠진 그를 구하시는 은혜도 베푸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다윗은 '모든 은혜'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긍휼하심을 잘 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많은 은혜에 대한 대가로 적당한 보답을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보답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마침내 다윗은 마음을 다하여 경건하게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고 기도를 올리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즉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율법에 명시된 전제를 드리고 믿음의 동료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즐거워하겠나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구원의 잔'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구원의 날을 기억하면서 마셔야 할 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으니 이제 어떤 잔을 허락하신다 하여도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마시겠나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영접하겠나이다." 똑같은 내용이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나온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구든지 먼저 자기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한 뒤에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내놓아 선한 사업에 사용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야 한다. 또한 이렇듯 아무 가치도 없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바쳐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며 그 백성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귀중히 보시사 그의 죽음으로 대적자들을 만족시키지 않으셨다. 한때 무서운 위험에 빠져 죽음의 손길을 느끼던 다윗도 이 진리를 믿고 위로를 얻었다. 더욱이 체험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고 나자 다윗은 그 말씀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해 주었다. 앞서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고 외쳤던 다윗은 여기서 번제와 희생제보다 뛰어난 자기 자신을 드린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이것은 그렇게 되기를 스스로 선택하여 결심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켜 '성도'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우를 언급할 때에는 '나는 진실로 주의 성도'라 하지 않고 굳이 '주의 종'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종 된 것을 더 영광스러워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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