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7월 17일)
제목: "정답과 노답의 사이에서 “
말씀: 사도행전 16:19-26
설교자: 최민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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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19-26,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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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정답이 좋으십니까? 노답이 좋으십니까? 어 노 답의 의미는 답이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정답이 좋으시죠. 네 다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정답이십니까? 노 답이십니까? 여기서 정답이라고 말씀하신 분들은 답이 없으신 분들이십니다. 정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삶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 인생 만사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죠. 인생의 모든 것들이 새옹의 말과 같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 의미는 인생의 회복 화와 복이죠. 즉 행복과 불행은 변수가 많으므로 예측하거나 단정하기 힘들다. 라는 의미입니다. 화(禍)가 복(福)이 될 수 있고 복이 화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 인생의 정답이 노답이 될 수 있고, 인생의 노 답이 정답이 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답 같은 노 답을, 노 답 같은 정답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도 노 답과 정답의 사이에서 머뭇거렸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삼손이 그렇죠. 삼손은 나실인입니다. 구별된 사람이죠. 삼손은 블레셋을 무찌르는데 쓰임 받았던 사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실은 많은 오류가 있죠. 그는 포도주를 가까이하고 시체를 만지며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살아갔던 사사였습니다. 사사기 14장 7절 말씀해 보면, 그의 삶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는데요.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사사기 14장 7절,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삼손의 눈에 들었다란 의미는 삼손이 그 여자와 동침하였더라. 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즉 자신을 보는 대로,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갔던 사람이 바로 삼손이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히브리소의 기자는 삼손을 믿음의 용장(勇將)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 히브리서 11장 32절에서 33절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2-33절,
32.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믿음의 용장임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에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삼소는 정답입니까? 노 답입니까? 답답이죠.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도 정말로 믿음과 정답과 노답 사이 안에서 정말 머뭇머릇, 머뭇거리며 갈등했던 사람이 바로 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 사건을 좀 말씀드리자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바로에게 넘겨준 사건,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넘겨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지 못하고 화가를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사건, 하나님께서 모래를 봐라. 하늘의 별을 봐라. 내가 수많은 것들을 너에게 약속해 줄 거야. 그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채,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죠. 불순종이죠. ‘어떻게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겠습니까?’ 라고 하나님을 비웃었던 사건, 하지만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거침없이 바친 사건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거장으로 거듭나죠. 아브라함은 정답입니까? 노 답입니까? 답답 답이죠. 아브라함처럼 정답과 노 답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요?
 
제가 주일학교 살고 11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이제 교구로 넘어와서 다락방 순장님들 다락방 순원들을 신망하는데요. 여러분들의 가장 많은 기도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게 하옵소서, 내지는 우리 자녀들이 교회에 꼭 나오게 하옵소서, 내지는 우리 자녀들이 믿음의 회복을 시켜 주옵소서, 자녀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답답할까요? 노 답일까요? 고등부 사역하면서 어떤 한 녀석이 저의 손을 꼭 잡으면서 기도 제목을 이렇게 주었습니다.
 
목사님, 우리 엄마가요. 교회에서만 순장님이 아니라, 집 안에서도 순장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도 제 아내가 순장이거든요. 경제적인 상황은 어떨까요? 코로나 이후에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우리 성도님들은 겪고 있죠. 건강의 문제는 어떨까요? 암에 걸리신 분들, 지금도 응급실에서 생사를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 굉장히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이라는 정답, 신앙일이라는 신앙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지만 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느끼는 삶의 먹먹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제가 2008년도서부터 10년도까지 사랑의 교회 유아부를 섬겼습니다. 유아 부 설교 굉장히 잘합니다. 자동행전 3장 16절 말씀!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제가 사도행전 3장의 말씀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했는데요. 그 설교의 핵심은 ‘성전미문에 있는 장애인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그 설교를 했던 거예요. 굉장히 잘 했습니다. 교만했던 거죠.
 
홈페이지에 어떤 반응들이 올까 막 가슴이 쿵닥 콩닥 뛰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근데 한글이 올라온 거예요. 8월 2일 설교를 들으면서 점점점.... 내심 아 저를 칭찬해주는 그 대응이겠구나,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걸 클릭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내용을 보고 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글이니 그 내용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명입니다.
 
※저희 수민이는 교회에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선생님들도 너무 헌신적이시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가서 친구들 만나는 것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8월 2일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답니다. 라는 순간서부터 가슴 막 후당당 뛰는 거예요. 이제 큰일 났다 수민이는 걷지 못합니다. 그날 설교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베드로 이야기를 듣고, 제게 조그마한 소리로 말하더군요. 엄마 나도 걸을 수 있어. 4~5세의 아이가 성전미문에 있는 앉은뱅이 장애인을 고침으로 말미암아 엄마 4~5세 여자아이가 나도 걸을 수 있어.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보세요. 나도 걸을 수 있어. 하반신 마미로 신경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걸을 수 없는 수민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순간 난감했습니다. 그래 예수님을 믿으면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라고 해야 하는 건지, 4살짜리 아이한테 저건 그냥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신지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야 너무 희망을 많이 가지면 너의 마음이 아프단다. 라고 이야기해 줄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바디메오의 눈을 고쳤다는 내용이 나왔을 때도 수빈이가 혹시라도 그걸 자기한테 적용시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는데 저는 하나님을 믿지만 당장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걷게 해줄 수 있다고 아이에게 말해 주고 싶지는 않고, 그렇게 아이가 믿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도사님, 선생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어요. 기도, 찬양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지만 막상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노 답인 환경과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잠언 16장 구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16장 9절,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답은 알고 있지만, 이 땅 가운데 두 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우리의 걸음은 노 답인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조금 더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숙된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성경에 나오는 배경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의 시작점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세워진 이방 교회를 돌보기 위하여 실라와 함께 떠나기 시작합니다. AD 49년에서 52년까지 3년간 약 2500에서 5600킬로미터를 여행하였습니다. 굉장히 많은 그 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성경 말씀이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무엇보다 2차 선교여행의 가장 큰 열매는 유럽 지역의 복음이 처음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선교 팀이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 성에 들어갔을 때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정답이구나!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와 그 가족의 예수를 믿게 된 것이죠. 16장 14절 하반 절에서부터 16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14-16,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 성에 들어가서 루디아와 그의 가족에게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지요. 그들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4명의 선교사가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함으로, 자신의 믿음의 실제적인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답이죠.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요? 아 이렇게 복음의 열매들이 맺혀가는구나, 더 복음의 열매들이 맺히겠지. 정답의 삶을 살 수 있겠지. 그런데 이렇게 사역이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는데 이후 노 답의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바울과 신라는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엄청 괴롭혔던 것 같아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조국 사도바울이여 우리를 고쳐주소서 막 이렇게 엄청 괴롭혔던 것 같애요. 그러자 바울은 그녀가 그녀는 귀신 들려 있었고, 상당한 주인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주었던 귀신 들린 여정이었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이로 인해 주인들은 이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화가 난 주인들이 바울과 신라를 고발하죠. 사도행전 16장 20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등장합니다.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수익의 소망이 끊어졌기 때문에 복수를 하게 된 것이죠. 주인들은 두 사람이 빌립보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로마 사람인 자기들도 인정하거나 행하지도 않는 관습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는 부랑 유대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문제는 고소에 대한 진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바울과 실라는 즉석에서 옷이 벗겨졌고, 간수 들에게 넘겨져 심한 매질을 당했던 것이죠. 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2절 23절 말씀이,
 
*사도행전 16: 22절 23절,
22 우리가 일제에 일어나 고발하니 상간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세계 선교라는 성령의 역사라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한 발 한발 내딛는 그 순간 정답이 아닌 노 답 같은 인생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이때 우리는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인생의 먹먹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가 바로 이 장면에서 보여준 믿음의 자세는 정말 아름다운 자세요.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신앙의 모범입니다. 그 두 가지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노 답과 같은 환경에서도 신앙의 정공법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 25절 말씀을 다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5절 말씀입니다.
 
I. 첫 번째- 신앙의 정공법.
 
*사도행전 16:25,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함에 죄수들이 듣더라.
-노 답과 같은 그 환경 가운데 인생의 칠흑과 같은 한밤중 그 가운데, 기도와 찬양으로 그 모든 상황을 극복하며 이겨내려고 했던 선교사가 사도바울이요. 실라 임을 성경 말씀이 증언(證言)해주고 있는 것이죠. 정공법(正攻法)의 사전적 의기는 의미는 기교한 꾀나 모략을 쓰지 아니하고 정정당당히 공격하는 방법입니다. 기교나 꾀를 쓰지 않는 거예요. 인생의 한밤중일 때, 노 답인 그 상황에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바울과 실라가 붙잡았음을 성경 말씀이 증언해주고 있는 것이죠. 바울과 실라는 심한 매질과 차꼬라는 이중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니엘도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붙잡았던 신앙의 위인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모략 가운데,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 말씀에,
 
*다니엘서 6장 10절,
10 다니엘이 조서의 왕의 도장에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인생의 노 답인 환경 가운데 인생의 한밤인 그 환경 가운데 기도와 말씀과 찬양밖에 없구나, 이것을 깨달았던 거죠. 여호사밧은 어떻습니까? 암몬이 쳐들어왔을 때, 모압이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역대하 20장 18절 19절 말씀에,
 
*역대하 20장 18-19절,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 하니라.
-찬성하였다. 찬송을 시작하자마자 전쟁에서 이겼음을 우리는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우린 인생의 한밤 가운데, 인생의 노 답인 환경 가운데, 말씀과 기도와 찬양 신앙의 정공법을 붙드는 신앙인이 되어야 되겠구나. 이런 결단을 이런 멋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신앙의 정공법에 부흥이 가정에서 먼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와 말씀과 찬양이 살아있는 우리 가정,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 말씀대로 기도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 부모의 모습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고등부를 6년 동안 섬겼습니다. 아이들에게 항상 강조했던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믿음, 소망, 사랑, 다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 소망, 사랑 다음에 제가 그 고등부 때 올라가 가지고 설교하기 전에 믿음 소망 사랑하면, 아이들이 의리!!, 의리입니다. 사람이 좀 의리가 있어야 됩니다. 4가지 덕목이 의리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자꾸 주입시켰어요. 그 의리는 하나님에 대한 의지를 좀 표현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너희와의 의리, 선생님과 너희와의 의리, 친구들과 너희와의 의리, 나와 너희와의 의리를 꼭 지켜서 하나님께서 핀셋으로 정해준 이 자리 꼭 지켜라.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아이들의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의리를 안 지키는 거예요. 의리 없어요. 예를 들어서 신앙과 자신의 학업이 충돌될 때 의리 안 지켜요. 신앙과 관계적인 문제가 충돌될 때, ㅇ의리 안 지켜요. 신앙과 경제적인 환경이 충돌될 때 의리이 안 지켜요. 교회를 떠나갑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뭐가 문제일까? 제가 하도 죄송합니다. 열이 받아서 이 주제를 가지고 소논문을 썼습니다. “아이들은 왜 의리가 없을까?” 진짜 썼습니다. 그 결론은 그 결론은 결국에는 바로 무엇이냐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아이들이 왜 의리가 없는지 아십니까? 가정이고, 부모예요. 부모가 믿음 적으로 흔들리면 우리 아이들도 흔들려요. 가정 안에 믿음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신앙도 뿌리내리지 않아요. 제가 한번은 이대 교육 공학 박사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자녀에게 있어서 우리 부모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전부입니다. 전부래요. 부모의 신앙이 전부래요.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부친께서는 은사가 있으셨는데, 사업을 말아 드시는 은사가 있으셨습니다. 뭐 하면은 다 이제 말아 드시는 거예요. 만지면 다 말아 드시고, 아 정말 월요일에도 같이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셨는데, 아버지께 입으로 직접 시인하시더라고요. ‘왜 그때는 그렇게 안 됐는지 모르겠다.’ 이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다 말아 드시는 은사가 있으셨습니다. 근데 참 안타까운 것은 화를 죄송합니다. 술로 푸셨습니다. 이제 사업이 안 되시는 것을 늦게까지 술을 드시고 오시면 새벽 1시 2시예요. 와 그때 막 난리가 나는 거예요. 그 당시에 막 정말로 비참하고 처참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제 무서웠기 때문에 이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으면 다른 척을 했죠. 그러면은 모든 상황을 저희 어머니께서 온몸으로 다 받아내셨습니다. 굉장히 처참했고, 비참했고 어려웠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이불을 들고 나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너무 힘드니까, 너무 어려우니깐 집을 나가시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새벽 6시 반에 다시 들어오시는 거예요. 또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어머니께서 이불을 들고 나가시는 거예요. 새벽 6시 반이 되면, 다시 들어오시는 거예요. 하루는 제가 어머니께서 이 새벽에 어디를 저렇게 가시나 몰래 따라가 봤습니다. 빌라 옆에 조그만한 교회가 있었는데, 입을 뒤집어쓰시고 철야 기도를 하셨던 거예요. 제가 기도하시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봤습니다.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아요. 이불을 뒤집어쓰시고 남편을 위하여, 저희 누나를 위하여, 저를 위하여 눈물로 밤새도록 기도 하셨던 거죠.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신앙을 저희 아버지 꺾지 못하셨습니다. 오히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전도하셨고, 할아버지 할머니 주변에 있는 모든 식구들을 전도하셨습니다. 아! 믿음이 이렇게 강한 거구나, 믿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거구나, 믿음은 참으로 숭고한 거구나, 믿음은 능력이 있구나, 이걸 깨닫게 되었어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명절 때 되면, 저희가 저희 누나네 집에서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근데 이제 제가 그래도 목사니깐 예배를 드리고 맨 마지막으로, 아버지 한 말씀 하십시오. 라고 제가 건의를 드렸어요. 근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안경을 탁 벗으시더니, 막 오열을 하시는 거예요. 손주들도 다 있고 매형도 있고, 제 아내도 있는데, 막 우시는 거예요. 저는 속마음을 또 시작됐구나. 그때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눈물을 다 닦으시더니, 이런 말씀하셨어요. “나는 우리 집에서 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집은 너희 엄마가 기도와 말씀으로 세운 집이다. 너희도 힘들더라도 인생을 길게 바라보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정은 너희 엄마가 기도와 말씀으로 세운 집이다.” 저희 부친께서는 70대 중반이신데, 아 70 중반에 제가 처음으로 이 고백을 듣게 된 겁니다.
 
-우리가 인생의 노 답인 환경 가운데 인생의 한밤중인 그 환경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알려 수 있을까요? 신앙의 정공법, 기도와 말씀과 찬양 외에 우리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을 알려주신 적이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러한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오직 신앙의 정공법, 정공법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가정을 세우고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님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첫 번째 신앙의 정공법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의 전 존재를 내어 드리는 거예요. 26절 말씀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두 번째- 하나님의 섭리
 
*사도행전 16:26,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신라가 한 것은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계속 찬양 적으로 암송했던 것 뿐이죠. 그거 왜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키셔서 옥터를 움직이고, 문을 열어주시므로 모든 사람의 메인 것을 벗겨 주셨다.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하심이 그들의 삶 가운데 있었음을 우린 알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저는 항상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왜 바울과 실라가 침묵했을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 권자였습니다. 그러한 대우를 안 받아도 되는 사람들이었어요. 로마 시민이 법정 앞에 설 때 죄의 목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매질이나 고문을 당하지 않을 특권이 있었습니다. 이유 없이 때릴 수 없다. 라는 거예요. BC 2세기 제정된 법에 따르면, 로마 시민들은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형태의 처벌을 면제받았으며 법과 관련해서 설정된 가치 있는 특정 권리들을 누렸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과정을 겪어야 됐고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신문이 필요했고, 적당한 절차와 합리적인 이유들이 있어야 됨을 어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때린 거예요. 근데 침묵한 거죠. 37절 모든 상황이 끝난 이후에 바울이 다음 같이 얘기합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너희가 묻지도 않고 로마 사람들을 이렇게 대우해도 되느냐?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이에 로마 관리들은 그들이 로마 사람인 것을 알고, 듣고 두려워하였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 상황 가운데 바울과 실라가 침묵했을까요? 그것은 고난 앞에 노 답이라는 환경 앞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록 노답인 환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인생의 한밤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을 거야.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을 거야.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거야. 라는 마음의 믿음의 확신이 있었던 것이죠. 섭리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유지하시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참여하시며, 만물을 그들의 지정된 목적으로 인도하시는 신적 에너지의 지속적인 실행이다. 칼빈은 이를 하나님의 돌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이 유지하시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참여하시며 만물을 하나님의 지정된 목적으로 인도하시는 신적 에너지의 실행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힘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바로 섭리다. -칼빈-
-라고 하는 것이죠. 비록 노 답과 같은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이 하나님의 지속적인 신적 에너지가 그들의 삶 가운데 있음을 바울과 실라는 믿었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까? 칼로 자결하려던 간수를 살립니다. 그의 집에 들어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세례를 베풀고 식사 교제를 합니다. 34절 말씀에, “그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하니라.” 노 답과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그 가운데 있음을 믿고 침묵하며 나아갔던 것이죠. 여러분들 환경 가운데 삶 가운데 노 답인 환경이 있습니까?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돌보시고, 위로하시며 마침내 결국 우리의 모든 기도 제목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저의 그 신대원(신학대학원) 동기 형이 1명 있었습니다. 그 형에게 소식을 이제 저희가 목사한테 받고 캄보디아 땅으로 선교를 떠나간다는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훈련을 받고 아내와 함께 캄보디아 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2018년도에 사랑의 교회, 고등 1~2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캄보디아 선교를 갔을 때, 그 선교사님 같이 만나면서 교제하기도 했었습니다.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언어도 배우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열심히 일하고,,, 그런데 뜻밖의 비보(悲報)가 전해졌습니다. 제 최원예 선교사님이시거든요. 주일날 첫 번째 캄보디아어로 설교를 하고, 그 저녁에 쉬던 도중 심정지로 세상을 떠난 거예요. 첫 번째 캄보디아어로 설교를 한 다음에 세상을 떠난 거예요. 사모님 홀로 남겨둔 사모님은 유방암에 걸리셨습니다. 제가 만나 뵀을 때는 머리가 없으신 거예요. 머리가 노 답이죠. 그 삶을 우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좀 흘러 신대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한 누님께서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 글을 읽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이 글을 나누기 원합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다. 하나님 제 얼굴에 보면 이 오른쪽엔 상처가 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이쪽을 피해서 제 잘생긴 이쪽을 보여줍니다. 보기 흉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 이쪽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쪽을 통해 일하실 수 있다. 라는 거예요. 개인적인 기대가 하나님의 방법과 다를 때 우리는 그것을 흔히 고난이라고 부른다. 어떤 이에게는 죽음이, 병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가난이 외로움이 그렇겠지. 그러나 우리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여정은 그것을 고난이라고 부르는 대신, 아멘!!으로 부르기를 선택하는 여정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법으로 배워가고 그 간극을 좁혀 나간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앞에 그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의 뜻 앞에 아멘!의 작은 읊조림을 해본다. 하나님, 하나님, 아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 아멘!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거죠.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는 거죠. 모든 것에는 갈라진 틈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죠. 하지만 그 갈라진 그 틈새를 통하여 반드시 빛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두 가지입니다. 신앙의 정공법으로 나아가는 것,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해피엔딩, 하나님의 해피엔딩,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에 이 한 구절을 위해서 사도 바울과 신라가 고생했던 거예요.
 
*사도행전 16장 31절,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이 한 구절을 위하여 바울과 실라는 신앙의 정공법으로 전적(全的) 위탁(委託)으로 나아갔던 것이죠. 인내 하셔야 합니다. 버티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해피엔딩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대다 하나님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이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결말은 하나님의 해피엔딩,
 
사랑하는 성도님들, 노 답인 환경 가운데 있으십니까? 다른 것 의지하지 마시고 신앙의 정공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인생의 한밤중에 계십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들을 이끄시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멘 하나님 아멘!!! 믿음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해피엔딩을 기다리는 인내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요약
우리의 인생이 한밤중일 때, 다른 것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오직 전적 위탁함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앙의 정공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을 기억하여, 주님 앞에서 참된 신앙인으로 바울과 실라처럼 정답이든 노 답이든 간에 주님 앞에 진정한 헌신자로 살아내어 주님의 기쁜 자녀로 영광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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