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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3월 13일)
제목: "영생의 복이 있는 팀워크"
말씀: 시편 133:1-3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양은규 부목사님(목양9팀, 1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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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1-3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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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의 감격, 하나님의 칭찬, 하나님의 복이 함께 연합하고 함께 거하고 함께 하나 되는 그 동거는 형제들 위에 부어졌다라고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 본문 133편 3편 앞에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렇게 적혀 있는데요.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렇게 돼 있지 않고 다윗의 시 그리고 올라가는 자들의 노래 이렇게 돼 있습니다. 아마 이게 후대에서 아마 이것이 예배에 의해서였기 때문에 성전이라고 붙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 다윗 시대는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회막에서부터 이미 유월절이나 초막절에 그들이 함께 요 앞에 보이고 그 얼굴을 함께 나타내는 그 절기에 이 찬양이 불려졌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 때부터 솔로몬 그리고 솔로몬 이후까지 계속적으로 이 찬양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술에 고백되어지고 함께 노래했던 곡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함께 이 곡을 고백하면서 그들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이 성전에 올라가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함께 고백하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게 됐을 것이고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는 것에 대하여서 우리가 함께 연합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이 절기를 지키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그 동거하는 그 시간을 통하여서 우리가 함께하는 것에 주님이 어떤 복을 주시는가라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편은 단순하게 그들의 공동체의 고백, 그들의 정체성, 하나님의 축복을 넘어서서 여기 안에는 굉장히 계시적이고 언약적인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사도행전 2장 29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29,
29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다윗을 가리켜서 그는 선지자다. 그는 선지자여서 메시아의 부활을 이렇게 예언하였다라고 29:3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다윗은 선지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140편 또한 다윗이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 정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 시에 담아주신 것입니다. 다윗에게 보여주신 영적 의미가 우리는 확인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눈에,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의 감격을 보여줬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의 그 아름다움에 하나님의 감격, 하나님의 그 벅찬 희열을 다윗의 눈과 마음과 그 입술에 담아준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해요? 내 백성의 연합하는 것을 봐라. 그들이 함께 나와서 내 얼굴을 보는 것을 봐라.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이 얼마나 선하냐? 내가 이것을 보고 복을 내리지 않겠냐? 내가 복 내리겠다. 야, 이거 영생이야, 이렇게 하나님이 감격하는 것입니다. 이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감격이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 첫 번째 한번 같이 따라 읽도록 합시다. 시작
I. 첫 번째, 참 연합과 참된 팀워크는 하나님의 눈에 아름답습니다.
다윗은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아름답다 선하다 이렇게 말하는데요. 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a는 b 같다. a는 c 같다. 이렇게 연합의 의미를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a는 b 같다 할 때 이 b는 뭐냐 하면 ⓵첫 번째는 보배로운 기름이에요. 2절에 나와 있는 보배로운 기름, 그래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은 뭐와 같다 보배로운 길을 갔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은 무엇 같다 ⓶헐몬산의 이슬 같다 이렇게 비유해 주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아름다움은 다윗이 야 형제가 연합하는 것에 그 아름다움은 내 눈에 만족스럽다. 지도자의 눈에 기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 선하고, 하나님의 눈에 흡족하고, 하나님의 눈에 아름답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습니까? 3절입니다. 3절에 뭐라고 돼 있어요? 예. 여호와께서 덕을 명령하셨다.
*시편 133:3,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곧 영생이다. 하나님께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의 그 아름다움을 보고 거기에 이야!! 복 받을 행동이다. 잊고 복 받을 만하다. 이거 영생이다.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요. 하나님이 아름답다. 라고 하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토브’ 라고 그러는데 하나님의 눈에 좋다 선하다 ‘토브’ 아름답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어디에 나와 있냐면 창세기에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그 지으신 것이 어떻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다가 토브입니다. 오늘 여기 있는 토브 하나님 눈에 선하다 할 때도 토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눈에 좋았다. 그리고 또 뭐가 좋았어요? 하나님 눈에 힘이 좋은 건 뭡니까? 남녀가 함께하는 것을 보고 심이 좋았더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 근데 하나님 눈에 좋지 않은 것이 있어요. 뭐가 좋지 않아요? 독거하는 거 이 가운데 아무도 혼자 살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네요. 혼자 독차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다. 좋지 않다. 그리고 뭡니까? 죄로 인하여서 남녀 부부의 관계가 깨어지고, 또 죄로 인하여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깨어지고 이것이 뭡니까? 하나님 눈에 좋지 않았습니다. 연합이 깨어진 것이죠. 팀웍이 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연합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연합은 하나님의 눈에 아름다운 것이고, 복을 명령하실 만한 정말 선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b와 c라고 제가 표현했는데 b는 뭐라 그랬습니까? 보배로운 기름, 보배로운 기름 그다음에 c는요. 헐몬의 이슬, 여러분 이 두 가지 다 우리는 뭡니까? 이래도 기억도 잘 못할 만큼 희미하지만 이것을 유대인들이 딱 들었을 때는요. 이거는 매우 강렬한 이미지이고,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동일한 이미지가 그 언어 속에서 다 고백되는 거예요. 여러분, 두 비유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보배로운 기름도, 그리고 헐몬의 이슬도 이 두 가지 비유가 공통점이 있어요. 뭘까요? 자꾸 질문만 하면 곤란하겠죠. 제가 알려드릴게요. 흘러내린다. 두 비구는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이 두 비유조차 그 결과의 공통점이 뭐냐 하니까, 하나님의 축복이고, 그것은 영생 하라 이래가지고요. 그 영원함 그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 비유를 딱 보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 그 영원함이 깃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 한번 읽어보도록 하십시다. 시작
II. 두 번째,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임재가 영생의 복이 있는 팀워크를 만듭니다.
-여러분 여기 나오는 보배로운 기름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이 보배로운 기름 이것은 어떤 기름이냐? 여러분 이 기름은요 아론의 머리에 부었다라고 말했는데 이 기름은 바로 관유라고 합니다. 관유, 관유는 출애굽기 29장에 있는 말씀인데요.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도록 하십시다.
*출애굽기 29“6-9,
6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를 더하고.
7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8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9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서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여러분, 이 특별히 시편 133편에 있어서의 이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 그리고 그 옷깃을 타고 내려서 온몸에 흘러내린 같다. 라고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바로 대제사장의 위임식입니다. 이 위임 식에 쓰이는 관유는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이건 함부로 만들면 안 돼요. 만들다가 사람이 써도 안 돼요. 쓰면 어떻게 돼요? 그 백성 가운데 끊어질 거다 이렇게 표현해요. 굉장히 오묘(奧妙)하고 신비한 기름입니다. 우리 출애굽기 30장에 있는 이 관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번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0:23-25,
23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과.
24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기름 한 힌을 취하여.
25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 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이게 향 기름이에요. 향 기름, 그래서 이걸 더해가지고요. 거룩한 관요를 가지고 어떻게 해요? 아론의 머리에 붙는 겁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게 한 양이 어느 정도냐면 20kg 정도 20kg, 20kg 정도면 여러분 해피 식용유 20kg 한 통 튀김할 때, 쓰는 거 그 정도의 양입니다. 그 기름을 가지고 어떻게 해요? 사람인 부족한 아론 사람이에요. 근데 그에게 대제사장의 위임을 하면서 그 머리에다가 붓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보배로운 기름 그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여기 머리에 부으니까 어떻게 돼요?
여러분 이런 거 안 부어봤죠? 여러분 제 향기를 한번 맡아보세요. 이 신비한 기름이 머릿속부터 쫙 부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여러분 조금은 제가 흘려 내려가지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20kg 20kg 그래서 이게 부어지면요. 이 제사장이 이 에봇을 입거든요. 에봇을 입고 여기에 12지파를 표현하는 보석이 박힌 옷을 입고 이제 세마포는 안 입었겠죠. 이제 탁 내려 있으면 모세가 그 기름을 가지고 붓는 겁니다. 부으면 이 기름이 흘러내릴 때 모든 사람들 눈에 뭐로 보여요? 저거 하나님이 특별하게 세우는 하나님의 임직이 저기 있구나! 눈으로 다 봐요. 두 번째는 이 보배로운 기름이 옷깃을 적셔가지고 흘러내려서 발끝까지 다 흘러내렸을 거예요. 그러면 이 향이 향이 여러분 그 모든 이 대제사장의 위임 식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 향을 어떻게 했겠어요? 다 맡는 겁니다. 저는 아직까지 이 관유를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어요. 만들지 마라 그랬으니까 못 만들었겠죠. 근데 이 기름을 가지고 붙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 대제사장의 위임으로 선포할 때 이것이 신약 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건 구약 적으로는 그런 의미가 있지만 신약 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신약에 보면 우리가 이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것에 대해서 해석하는 단서의 질문을 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뭐냐면 ‘하이베르그 신앙고백서’ 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이베르그 신앙고백서 제31문과 32문에 보면 이렇게 돼 있어요.
제31문, 왜 예수님을 기름부음 받은 자, 라는 뜻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까?
제32문, 그러면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옵니까?
-이렇게 질문을 두 가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는 그렇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하는데요. 예수 그리스도까지가 다 이름인 줄 알아요. 아니에요 예수가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직임, 직임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시고 100% 인간이시지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메시아로 이 땅에서의 공직의 삶을 살게 하실 때에 그 위에 뭘 벗습니까? 세례요한이 물세례를 하죠. 물세례를 하지만 그 물세례 이면에 성령이 어떻게 해요? 비둘기 같이 그 위에 나시는 거예요. 성령이 그 위에 부어지는 거예요. 예수님의 메시아직, 메시아지 예수님의 그리스도 직, 이것이 공식적으로 선언되고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옵니까?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그 직임, 그 사명, 그 기름 부으심을 동일하게 소유하고 우리가 이 땅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그의 소재는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 속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기름 부으신 메시아 적은 공적으로 시작되었고요. 우리는 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땅에서 메시아 책임을 계속적으로 감당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교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아론은 부족한 사람이에요. 그냥 인간이었어요. 은 죄인이에요.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에 구별된 제사장의 그 책임을 감당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에게 관유를 붓게 했습니다. 그 관유가 이렇게 구워지면서 향기가 쫙 나는 거야. 여러분 향기는요. 우리의 뇌에 굉장히 강력하게 박히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자기 똥차가 지나가며 우리는 이미 맡았던 향기이기에 그죠? 냄새가 안 나는데도 나는 것 같아. 여러분 대제사장의 그 위임 식 가운데에 그 기름 부어지는 아론의 모습을 보고 또한 그 향기를 맡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뇌리에 박히는 그 향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마 저의 해석입니다. 아마 속죄의 향기라고 느꼈을 겁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 나를 살릴 하나님 앞에 살릴 수 있는 그 제사장의 향기를 그들이 맡았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희생양을 통하여서 우리를 우리의 죄 문제에서 해결할 분이야! 라는 향기가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 대제사장이요. 아론이 이 기름부음 다 받고 난 다음에 민숙이에서 어떻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시냐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는 내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지니라.” -이게 뭐예요? 대제사장이 세워질 때 그 기름을 관유를 부으면서 그 지금이 세워지고 난 다음에는 그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는 책임을 감당하는 겁니다. 아마 대제사장의 그 기름의 냄새를 맡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축복의 향기다. 하나님의 심정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시는 그 향기다. 라고 느꼈을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어디에 있다고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느끼시는 감동이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게 되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고린도후서 2장 15절 말씀 한번 같이 읽도록 합시다.
*고린도후서 2:15,
15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향기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이 세상을 향하여서 어떤 향기를 바라고, 세상은 교회를 바라보면서 어떤 향기가 그들의 뇌리에 박혀야 할까요? 여러분 물어보셨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주변에 있는 직장인들에게 여러분들의 동료에게 그리고 여러분들의 가족들에게 물어보셨나요? 나에게서 어떤 향기가 납니까? 여러분, 아론이 세워졌을 때 그 아론을 바라보면서 모든 사람들은 죄 사함의 향기를 맡았을 것입니다. 구원의 향기를 맡았을 거예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그 축복의 기도처럼 그들은 다 축복의 향기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 메시아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세상 가운데 어떤 향기를 맡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세상은 어떤 향기를 맡나요?
사도바울은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다.” -여러분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메시아여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향기가 나기를 축복합니다. 메시아의 향기가 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게요 어디서 난다고요? 형제가 연합할 때요. 형제가 서로 사랑할 때, 형제가 자매가 함께 거하며 함께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방향을 맞출 때 거기에 그 향기가 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무엇을 기대할까요? 세상은 교회를 향하여서 그 구원의 향기, 그 축복의 향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에 이 기름 부으심이 있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 우리 같이 한번 말씀해봅시다.
III. 세 번째, 이스라엘 부어짐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풍성해지는 사역 적 팀워크와 열매를 기대하게 합니다.
-여러분 그 두 번째 비유에 보면 ‘헐몬의 이슬’이라고 그랬습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린 같다라고 말했을 때, 이 헐몬의 이슬 여러분 누군가 이렇게 말을 하면요. 못 알아듣는 말을 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해석이 필요하지만 아마 다윗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의 아름다움은 헐몬의, 헐몬산에 있는 많은 이슬들이 모든 시온에서 내린 같다 이렇게 말했을 때는요. 그 언어를 듣는 모든 사람은 동일한 그림,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됐을 것입니다. 이 가나안 땅에서 이 헐몬에 이슬이라는 말은 여러분 헐몬산을 바라보면 거기에 만년설이 있답니다. 요즘 여름에는 만년설이 안 보인대요. 많이 기후가 좀 그래서 그러나 거기에 만년설이 있고,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그 만년설이 녹은 그리고 수증기가 되어서 매일같이 내리는 이슬이 근원이 거기다. 라고 모든 사람들이 다 생각하는 거예요. 매일매일 이슬이 내리는데 그 권한이 어디 있을까요? 다 호르몬에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많은 물이 쌓여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나님의 복이 저기에 쌓여 있다. 라고 보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그 헐몬에 쌓여 있는 그 복들이 어디에 내려요? 시온의 산들에 내린 같지 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아름다움은 바로 형제가 연합하는 그 모습 속에 날리시는 하나님의 복이다. 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헐몬의 이스리를 바라보며 기대할 것입니다. 여러분 목동들이 헐몬의 이슬을 바라볼 때 이 씨를 딱 들려주면 뭘 생각할까요?저 헐몬의 이슬이 쫙 올라가지고 모든 시온의 산들에 내릴 때에, 거기에 내가 몰고 가는 양떼와 소대가 그 풀을 뜯고 살찌는 것을 상상할 겁니다. 농부가 이 시를 들으면서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린 같다. 라고 말을 했을 때, 그 농부들의 뇌리 속에는 저 이슬이 내리면 곡식이 영글고 익어가겠고 올해도 풍년이 되겠구나! 라고 상상할 겁니다.
여러분, 어부가 이 시를 들을 때에는 어떡할까요? 야 저 헐몬의 이슬이 모든 요단들을 적시고 요단의 물이 풍성하여져서 요단이 범람하고 밀과 그리고 수많은 이 어종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그것이 사회로 흘러가서 모든 주변의 밭들의 풍성 함들이 이어지겠지 오늘도 풍년이 들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면 이와 같은 복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면 이것은 기대를 넘어서서 현실적으로 많은 풍성한 열매가 우리에게 맺힐 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가정의 웃음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 기도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 의시하는 모습들을 보셨습니까? 여러분 한 분씩 제가 이렇게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보면 그 제자 반은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출석 체크를 하기 위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뜨거운지 잘 모르겠어요. 주님만 아시겠죠? 그런데 그들이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는 반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나가면서 어떤 생각하는 줄 아세요? “저반은 됐다. 저반은 된다. 저반은 원래 제자반 성공이다. 저반은 원래 사역반의 성공이다. 저 안은 된다. 저 안에는 은혜가 있다.” 이렇게 제가 속으로 딱 이야기하고 가요. 그리고 사역자를 딱 가요. 사역자 다 보고 난 다음에 기억했다가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그런 거예요.
여러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단지 그들만의 어떤 일치, 그들만의 우리 함께 해보자! 뭐 이 정도의 것이 아니라요. 그것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덮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헐몬에 있는데 이것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곳에 어떻게 부어지는 실제적인 열매를 기대하게 되고 그것은 반드시 열매가 맺을 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형제가 연합하여 가는 것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복을 명하마, 영생이다. 이 영생이라는 말을요. 우리는 영생 영원한 삶 이렇게 되는데, 영원함입니다. 영원함 근데 여기는 여러분 우리가 이 영원함이라는 것이 굉장히 많은 개념들이 있지만 다윗은 그 영원함을 생각했어요. 그 영원함은 어떤 영원함일까 아마 다윗의 그 심상 속에 있는 그 영원함은 하나님의 영원함일까, 하나님의 생명의 영원함, 하나님의 복의 영원함,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계획의 영원함, 그 영원함이 어디에 있다고요?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연합하여 나아가는 메시아로서의 그 직임과 그러나 이 땅의 축복의 냄새와 정말 이 땅을 향하여서 정말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그 연합 위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그 위에 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는 연합하고 있는 지체가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함께 연합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향하여 메시아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구속 사역을 감당하고 그 기름 부으심을 하여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드러나며, 세상은 우리를 바라보면서 구원의 향기를 맡으며 구속의 향기를 맡으며, 축복의 향기를 맡으며, 저들로 인하여서 우리가 복을 받을 것이라는 그 기대감을 주는 그 만남이 여기 있는 우리가 함께 연합할 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반 사역반 이것은 굉장히 아름다운 구속의 향기를 바랄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축복의 향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그러한 그 영원함에 복이 머무는 훈련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락방은 어떻습니까? 다락방은요 말씀이 이후로 하나 되고 기도로 연합하고 그 위에 수많은 물을 준비하고 계시고, 수많은 부유함을 준비하고 계신 그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곳이 바로 다락방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락방에 그냥 가지 마세요. 거기에 가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시니 헐몬의 이슬이 내릴 거라는 그 기대감을 가지고 연합하고자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그곳에 그 영원함을 보이시고 복으로 우리에게 풍성함을 선물해 주십니다. 2033-50의 비전을 우리가 이루고자 할 때 이것이 그냥 이루어지겠습니까?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 7천 기도의 용사들이 참 예배 자가 되어주고 은혜의 빚진 자로 자신을 낮출 줄 알고, 복음의 전도자로 용맹을 바랄 줄 알고, 내가 다른 사람을 한 사람으로 치유해 보겠다. 라는 그러한 헌신과 화해자로서 소명자로서 나아갈 때에 우리가 함께 그것을 시도할 때, 거기에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헐몬의 그 이슬이 그 위에 내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러한 팀웍을 원하십니다. 그러한 연합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헌신할 때에 그 위에 영원함이 있는 그 영원함의 복이 열매 맺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할 것입니다. 이 복이 살아가는 교회의 모든 공동체 위에, 그 여러분들의 가정 위에, 충만하게 임할 수 있게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는 서로 사랑함의 팀워크로 하나님께 나아가 누리는 영원함의 축복에 나를 가장 먼저 불러주심을 확신하며 의미 있게 사용해 주시길 원해야 한다. 생명의 풍성함을 사모하고 모든 영 가족들이 성령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믿고, 형제의 연합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사귐의 복을 경험하며, 예수님의 구속에 참여해서 태신 자를 작정하여 주님의 기쁜 자녀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로, 세상을 진동시켜서 우리는 진정한 복음의 씨앗으로 쓰임 받아 영생의 복이 있는 팀워크로, 참 연합과 참된 팀워크로 하나님의 눈에 아름다운 자가 되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임재가 영생의 복이 있는 팀워크를 만들어, 하나님의 성품으로 풍성해지는 사역 적 팀워크로 열매 맺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 1보배로운 기름, 2헐몬의 이슬, -(흘러내림, 영생, 그 영원함, 하나님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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