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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7월 14일)
제목: )"By the Loving God"(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말씀: 로마서 8:37
설교자: 고석찬 목사님(대전 중앙교회 -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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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37절,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말씀은 이 교회 전체에 드리는 말씀이다. 끝까지 지켜 승리하는 주님의 교회 되시길 축복한다.
맬 깁슨의 영화 중에서 ‘렌섬(RANSOM)’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렌섬이라는 단어가 ‘몸값’이라는 단어이다. 맬 깁슨이 연락을 받는다. 아들 숄이 유괴를 당했다. 그 몸값을 요구하는데, 200만불을 요구한다. FBI와 경찰이 같이 합작해서 범인을 찾으려고 하는데 잡히지가 않는다. 직감으로 알게 되어 이것은 돈을 주면 아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도 죽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단을 하고 누구든지 이 범인을 잡는 자에게는 200만 불을 주겠다고 홍보한다. 결국에는 범인을 잡게 된다. 그 범인은 경찰이었다. 그 범인을 잡고 마지막에 범인도 죽일 뿐만 아니라 아들도 구출해 내는 장면을 보면서 이 아버지가 야!!~‘살아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들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지만, 능력이 안 되어서 능력이 된다면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자식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 아버지도 이렇게 조금만 능력이 되고, 능력이 안 된다고 할지라도 정말 생명을 걸고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고 결단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을 가지신 우리 하나님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거시고 살려내실 수 있다. 성도들이 패배하는 것을 우리 하나님은 보실 수가 없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이 실패하고 낙담하고 쓰러져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으신 분이 하나님이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로마서 3:37절,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러나’가 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로 어렵다. 이 시기가 지나고 하나님의 은혜의 시기가 임하게 되면 이 일이 언제 있었는지 잊을 때가 올 것이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우리 삶에 어려움과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신다. 이번 주제가 ‘변화’는 새벽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변화를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가 변화되고 우리가 이기고 우리 하나님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인해 우리가 이긴다. 그래서 본문 앞에

 
*로마서 8:35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라 권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리랴.”

-여기에서 환난을 어려움을 이야기 한다. 바깥의 고난과 그리고 곤고는 압박을 받는 것이다. 적신은 발가벗는 것, 너무 가난해서 모든 것이 다 벗어졌다할지라도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우리는 이긴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길 축복한다. 당장은 변화와 역사가 없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 말씀 이대로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니 넉넉히 이기게 된다. 37절 말씀 성도가 그러나와 아픈 고난, 모든 것들 속에서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이야기 했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는 변화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기뻐하시는 대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이기는 것인가?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 때문에 이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이긴다는 것이다. 아버지 때문에 이긴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이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성질도 못 이긴다. 우리는 이길 수 있는 것 하나는 우리 뒤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이긴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아이가 어리면 혼자서 대변을 못 본다. 모형을 앉아서 연습을 시킨다. 아내가 잠시 없어서 아들이 이것을 찾았다. 그래서 내가 갖다 주니 마치면 이야기 하라고 했다. 대변을 보고 나서 잘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크고 나서도 그것을 자주 달라고 한다. 그리고 한 번은 대변을 보고나서 닦아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한테 그것은 네가 스스로 정리를 하는 것이 맞다고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하니 못 하겠다고 한다. 네가 닦으라 하니 못한다고 하면서 때를 쓴다. 손이 안 닿는다는 것이다. 순간 하나님은 팔이 다 닿게 만드셨다. 했더니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제가 닦아주었다.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돌아서서 울었다. 그 아이를 닦아주고 왜 울었냐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울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분명히 아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나이였는데도 못한다고 했다. 하면 된다고 했는데, 못하겠다고 하는 아들을 아버지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때를 쓰니 하나님을 생각했다. ‘하나님도 그러시겠구나!’~~ 했다. 하나님이 다 주셨다. 은혜도 힘도 다 주셨다. 살면서 겁나는 일이 있어서 그렇지, 습관이 되어서 용기를 잃어서 못하고 할 때 하나님은 너 할 수 있는데 왜 때를 쓰냐고 하시지 않으신다. 그 하나님 아버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깨달았다.
 
*이사야 49:15절에,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이 땅에 있는 부모가 잊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안 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이길 수 있는 이유와, 이 땅에서 당장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없어도, 성장이 더디다고 두려워 말고, 이것 때문에 절망하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에 이기게 되는 줄로 믿는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이유는?
-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우리 부모도 이 땅에서 살면서 자녀에게 돈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능력과 권세와 영광과 존귀가 있으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가 이기는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아이가 태어나서 스스로 일어서기까지 학자들에 의하면 아이가 3천 번 정도 넘어졌다가 일어선다고 한다.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부모이다. 남의 자식의 대소변을 닦아주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아버지들도 잘 못할 때가 있다. 자기 몸에서 난 아이를 보면서 변색만 봐도 좋아한다. 우리가 볼 때는 더럽지만 여전히 못 가린다 할지라도 부모는 안 그런다. 그렇듯이 하나님은 마취 권세 아래 눌려 있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그러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끝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러 주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다. 뿐만 아니라 오늘 이 땅에 살면서도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시고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이긴다는 것이다. 어느날 기도하시는 권사님이 찾아오셨다. 그래서 우시는 것이다. 왜 우시냐면 섬기시는 교회가 참 어려움을 당했다. 교회가 어려우면 참 아프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 교회를 사랑하는 영혼들은 그래서 아파한다. 그러면서 서로 사랑해서 영광을 드리는 것인데, 영광스런 교회에 영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가 정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건강하게 잘 자랐다고 한다. 능력도 힘도 다 주셨다고 했는데 서로 사랑하지 못했기에 두 눈이 빠진 삼손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 눈 빠진 삼손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두 눈 빠진 삼손은 목사님 삼손이냐고 질문했다. 삼손이 맞다고 했다. 삼손은 삼손이다. 두 눈 빠져도 삼손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자주 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에 원수가 더 많이 죽게 된 것이다. 두 눈이 빠진 교회와 성도는 어떠한지를 질문했다. 두 눈 빠진 성도여도 성도이다. 앞을 못 보아도 인생 전체가 다 망가진 자일지라도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한 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 우스운 사람이 될지라도 절망하지 말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질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긴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정복자들보다도 뛰어나게 이긴다. 압도적으로 이긴다. 그분의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는다. 거뜬히 이겨낸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More than conquerors!’.....로마 전체를 평정하고 이 세상에 어떤 정복자들보다도 뛰어나게 압도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가? 여러분 그러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때문에 이긴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압도적으로 이기고 사는가? 여기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으로 이기게 하신다. 그 방법은 멀리 보고 이기게 하신다. 지금 당장에는 지는 것 같지만 이길 기미가 하나도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은 멀리 보고 우리를 이기게 하신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넉넉히 이기며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사람을 안 키운다.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을 쓰기를 원한다. 지금 당장 준비되지 않았어도 키우고 길러야 하는데 멀리보고 길러야 하는데 당장만 보니 못 참는 것이다. 아무리 실수가 많아도 기다린다는 것이다. 아직 어리니 멀리 보아야 한다. 부모가 자식이 일어서기까지 삼천 번이나 넘어지고 일어서도 멀리 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움직이지 못해도 멀리 보면 사랑하게 된다. 누군가가 우리를 멀리 보며 인도하는 것이라면 큰 은혜이다. 멀리 보는 사람이라면 정말 인도하신다. 도우시는 목사님은 신학의 길로 인도하셨다. 늘 멀리 보시고 기도하시고 일을 시키실 때도 내다보고 일을 시키셨다. 누군가가 멀리보고 인도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은 참 행복이다. 은혜 받고 죄짓고, 은혜 받고 쓰러지고, 사랑은 멀리 봐야 한다. 이것을 잘 모르면 실망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멀리보고 이끌어 가시는데,,,
 
성경을 보면, 요셉, 형들에게 배신 노예로 팔렸다. 인생 끝나 보인다. 그러나 형들에게 배신당한 게 억울했다. 자기 분에 못 참아서 자기 인생이 실패라고 했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요셉이 애굽에서도 총리, 바로와 회복, 자기를 팔고 배신한 형들이 무릎 꿇고 엎드린 것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배신당하고 노예로 팔려간 것이기에 인생이 끝나 보이지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면, 배신했던 사람들이 와서 절을 하는 것이다. 다윗도 환난에서 이기게 하신 것처럼, 그 노래가 간증이 되었다. 다윗을 왕으로 삼으시고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시는 것이다. 때가 되면 올리신다.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신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기게 하신다.
 
우리 주님은 멀리 보셨다. 십자가 뒤에 주의 자녀들과 청년들을 하나님은 보시고 계신다. 사랑은 멀리 보는 것이다. 멀리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자. 이끌어 가실 것을 믿는다. 다니엘이 붙잡혀 갔을 때도, 어렸지만, 다 이기게 하셨다. 우리의 심장에 복음의 심장이 있느냐와 없느냐가 인생을 좌우한다. 우리를 멀리보고 계심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은혜 안에서 버티어야 한다. 더 쉽게 이야기 하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버스가 온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길목에서 계속
해서 기도하고 나를 준비하고 있어야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그렇지 않고 엉뚱하게 있으면 버스를 못탄다. 오늘 우리는 견디어야 하는데 길목에서 견디어야 한다.
 
먼저, 주일을 잘 드리며 견디라. 많은 사람들이 주일 성수하면 이것을 잘 모른다. 주일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패턴으로 봐야 한다. 성경 전체를 보면 가장 먼저 복을 주신다. 그리고 나서 복 받은 사람이 이것을 복을 나누게 하신다.
 
창세기 1:28절,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모든 것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복을 주신다.

 
*창세기 12:2-3절,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나누라고 하신다.

 
*창세기 2:3절에,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안식일을 보라. 하나님이 그 일곱 째 날을 복을 주셨다. 안식일을 정하시고 나서는 그 날에 복을 주셨다. 다른 날들과 구별되었다는 것. 하나님의 것. 제사장들에게 옷을 입히시고 양을 드리는데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구별되었다는 것은 따로 떼어놓고 이 날을 하나님의 것으로 하셨다. 천지를 지으신 모든 날은 복되게 하신다.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신다. 그것을 지키는 것을 그 복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누어 갖게 된다. 이것은 무슨 의미냐면, 하나님이 멀리 보고 계신다. 하나님의 안에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그 사람들에게는 반복해서 그 복을 주신다. 세월을 살아가면서 일곱 번째 날은 복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계획이다. 오늘도 주일을 안식일로 주셨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참된 안식을 주시는 날이다. 하나님이 시간 속에 복을 감추어 주시고 계신다. 누구든지 창조하신 하나님의 법칙대로 주님의 날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복이 저절로 스며들도록 하나님께서 안배하시는 것이다. 어떤 어려운 자라도 주일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은 멀리보고 인도하신다. 우리가 버티면서 살 때 가장 큰 복이 주일이다. 주일에 받은 은혜를 가지고 나머지 사는 날은 월,화,수,목,금,토를 복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안식일에 대한 제도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것이다. 믿는다면 그 하나님 안에서 주일을 잘 지켜라.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잘 지켜라.
 
 
*출애굽기 20:10절에,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날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내 것을 가지고 인심을 쓰지 말고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다. 주일을 잘 지키는 것은 내가 복을 받는 것이다. 이 시간 속에 복을 감추어 놓으셨다. 성도가 이 땅에 살면서 어떤 배신이 있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주을 지키면 하나님은 멀리 보심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 주일 성수를 잘 해야 한다. 이번 수양회 기간에 고민을 잘 해서 주님을 잘 섬기는 주의 종으로 주일을 잘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주일만 잘 지켜도 은혜가 된다. 주일은 율법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다.

 
▷두 번째는 모든 하는 일에 대해서 모두가 예배가 되게 하라.
교회 안 밖에서 모두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로마가 복음화가 되고 크리스쳔이 7%였다. 사회의 영향력이 약했다.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창세기 2:5절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 땅을 갈다. 아직 땅을 갈 사람이 없다.

 
*창세기 2:15절에,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킨다. 아바드라는 단어이다. 아바드는 일하다와 예배하다이다. 에덴동산을 하나님이 맡겼을 때, 그 자체로만 보면 일이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것에 순종하기에 이것은 예배가 된다. 밭에서 경작하는 것은 동산을 지키고 돌보는 것이 동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다 예배와 같다. 내가 보기에는 사소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예배이다.

 
*창세기 1:28절,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일이다. 이것이 문화명령이고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고 이것은 인생에게 준 명령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예배이다. 아이도 많이 나아야 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 직장, 학교, 이 사회 발전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다 예배이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도 예배이다.

 
*디모데전서 4:4-5절,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교회서나 어디서나 남과 비교하면 안 된다. 감사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내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감사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예배가 된다. 우리 주변에, 내 형편도 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감사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들어도 그 사람들 붙잡고 엎드리면 다 예배가 된다. 그렇게 기다려야 한다.
 
*골로새서 3:23절,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하듯이 하라. 여러분 무슨ㅍ일을 해도 그렇게 하라.
 
마태복음 25:40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소중하든 안하든 큰 사람에게 하나 작은 사람에게 하나 다 하나님께 예배라는 것이다. 우리는 큰 사람에게만 하는 것은 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작은 사람에게 하는 것은 하찮게 여기는 것이 문제이다.
 
*누가복음 16:10절,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충성이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사소한 것, 작은 것을 해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면 그것은 다 예배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0:42절,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제자라는 것 때문에 이 작은 자 중에 냉수하나 준 것도 하나님은 잃지 않으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소한 일이 없다. 직업이나 일에 차이,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중요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방향이 문제이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셨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현장에서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복이 흐르게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 모든 일에 다 예배가 되게 하라. 공부하는 것도 섬기는 것도, 아주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게 하다보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반드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멀리 보시고 이끄신 분이기 때문이다. 주일을 잘 지켜서 복이 되게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모든 일에 예배가 되게 하며 여러분의 삶을 제물로 드리라.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물로 드려야 한다. 나의 삶을 제물로 드린다. 새벽에 성경은 읽었지만 해석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아래 로마서 12장 1절이다.
 
*로마서 12:1절,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한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뜻인가? 제물로 드리지 못하면 예배가 안 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 나와 있으니 함께 설명하겠다.

 
*마태복음 5:16절,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에 보면, 두 사람이 나온다. 너희가 나온다. 너희는 제자들이다. 너희 빛은 누구에게 비추라는 것인가? 사람들에게 빛을 비치게 하라고 하신다.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라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 성도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는 제사장이다. 구약에 누군가가 제사를 드릴 때에 제사장에게 나온다. 제사장은 그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그러니까 너희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이 사람들이 제물을 갖고 않는데, 화려한 옷을 입고 쇼맨쉽을 하는가? 그것은 큰일이 난다. 하나님 앞에 제물가지고 오는데 제사장이 너무 화려하거나 튀면 하나님께 집중이 안 되고 제사장에게 집중된다. 제물은 제단에 올라가면 죽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제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이 흐르는 곳에 막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섬기는 자리에서 너무 드러나서 예배드리러 왔는데 예배가 방해가 되고 시선이 집중이 되면 하나님께 예배가 막힌다. 내 주변에 모든 사람 관계에서 그 사람이 하나님께 가도록 다리를 놓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주일을 중심해서 복이 흐르게 하고 모든 일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되게 하고 나 자신을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드려야 한다. 그러면서 멀리 보시는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한마디로 인내 하고 버티어야 한다. 코로나 지날 때까지는 인내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고 계시지만 그 크신 역사가 일어나기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은혜 받으면 좋았다가 하나님이 찾으면 없어져버리는 자 된 자를 보고 하나님이 어렵다. 우리가 믿지 못할까봐 성경과 교회를 주신 것이다. 성경, 교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참고 인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살아야 한다.

 
※ 여호수아 국립공원(쟈수야 나무)- 이 나무는 약간의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팔을 벌리고 있어서 여호수아가 팔을 벌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 안쪽에 가면, 히든벨리가 있다. 뭐가 숨겨있어서 히든 벨리라고 했는지가 궁금했다. 완전 여기는 LA 사막지대이다. 여기에 여름에 바람이 불면 다 죽는다. 그런데 히든 벨리 안에는 야생화가 있다. 길을 걸어가다 보면 꽃들이 숨어있다. 그래서 학자들이 연구를 했다. 원인은 히든벨리는 큰 암석이 둘려 싸여 있어서 바위들이 뜨거운 바람을 다 등에 업어서 견딘다. 바가 오면 바위에 스며들어서 바위가 시원해서 꽃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바위가 되어 줄 때, 히든벨리가 된다. 우리 집안에 히든벨리가 되는 것은 그냥 되는게 아니다. 그러나 이 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로 말미암아 주일을 지키면서 버티고, 작은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버리고, 사명을 위해 버티고 냉수하나 주시는 것도 하나님은 기억하시니 나의 작은 능력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버티면 우리의 히든벨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된다. 사랑의 교회가 아픔과 어려움이 있었다. 사랑의 교회가 든든히 서면 이 땅에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선다. 우리 사랑의 교회가 버티어야 히든벨리가 된다. 모두가 잘 되어 갈 것이고 우리 자녀도 잘 될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인내해야 한다. 힘든 가운데 하나님은 멀리 보고 계시니 우리를 이기게 하시니 이번에도 넉넉히 견디고 버티어야 한다. 우리 사랑의 교회가 견디어서 하나님을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실 것이다. 견고한 교회로 예배와 주일을 잘 지켜서 히든벨리인 우리 교회를 잘 지키고 버티어야 한다.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이다.

 
♣요약
모든 일에 다 예배가 되게 하라. 공부하는 것도 섬기는 것도, 아주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게 하다보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반드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멀리 보시고 이끄신 분이기 때문이다. 주일을 잘 지켜서 복이 되게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어디서나 모든 일에 예배가 되게 하며 우리의 삶을 제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물로 드려야 한다. 우리가 잘 견디면 하나님은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히든벨리인 견고한 교회로 예배와 주일을 잘 지키고 버티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참된 신자들 사이에 있는 사랑과 우정의 끈을 끊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 보면,
첫째,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 때문에 그만큼 우리를 덜 사랑하시거나 또한 그렇게 하려고 하시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사랑을 감소시키는 원인도 증거도 되지 못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다른 친구들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는 있다. 바울이 네로 앞으로 불려갔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렸지만 그때에도 주님은 그 곁에 계셨다. 핍박하는 원수들이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갈 수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발악을 할지라도 참된 신자들을 비참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둘째, 우리는 이러한 것 때문에 그를 그만큼 덜 사랑하거나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그만큼 덜 사랑하신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비록 그 때문에 고난을 받을지라도 결코 그를 덜 사랑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결코 그를 나쁘게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①우리는 이긴다. 묘한 방법으로이기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방법이다. 그것은 불과 검보다는 믿음과 인내로 이기는 좀 더 확실하고 고귀한 방법이다. 때때로 원수들은 자기들이 순교자들의 꺾을 수 없는 용기와 지조에 의해서 당황하고 압도되었다는 고백을 하였다.
②우리는 넉넉히 이긴다. 성도들은 정복자보다 더 나은 승리자이다. 먼저, 그들에게는 손실이 적다. 많은 경우에 정복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희생이 치러진다. 그러나 고난 받는 성도들이 잃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그들도 잃는다. 그러나 그들은 금이 용광로에서 잃어버리는 찌끼 같은 것밖에 잃어버리지 않는다. 다음으로 그들은 많은 이득을 얻는다. 그들에게는 명예, 평안, 그리고 시들지 않는 의의 면류관 등 전리품이 매우 풍성하다. 이러한 점에서 고난 받는 성도들이 승리한 것이라고 하겠다. 고난이 많을수록 위로는 더욱 풍성하다. 웃음을 머금고 화형 틀로 가며 불꽃 속에서도 노래하던 이들이야말로 넉넉히 이긴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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