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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거나 유쾌한 난투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나는 대자연으로부터조언을 구했다. 언덕의 휘우듬한 선처럼 둥글게 솟고 떨어지는 느긋한 능선과 깊은 골짜기 아래 나는 살았다. 검은 구름수레가 몰려오면서 잎잎에 빗줄기가 후드득 듣기 시작하는 때와 눈보라의 뒷등이 누군가에 의해 밀려나가는 때를 나는 특히 좋아했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숲의 법칙과 물의 법칙을 모두 배웠다. 마치 『정글북』에서 느림보 갈색 곰 발루가 모글리에게 썩은 가지와 튼튼한 가지를 구별하는 법, 벌집에 다가갈 때 벌들에게 공손하게 말하는 법, 물웅덩이에 첨벙 뛰어들기 전에 물뱀에게 경고하는 방법 등을 가르쳤듯이. 말하자면 나는 『정글북』에서 정글의 존재들이그러했듯이 “너와 나, 우린 피를 나눈 형제야!”라고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작고 큰 생명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서로 속삭이고 대화하는 것을 보고 들었던 것이다.

1894년 출간된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은 1907년 키플링에게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겨주었고, 지금도 여전히아동문학의 고전으로서 세계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메수아의 아들 나투(모글리)가 호랑이에게 쫓기다 늑대 가족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자라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힘과 꾀로 무리를 이끄는 늑대 아켈라, 호랑이 시어칸, 자칼 타바키, 흑표범 바기라, 야생 코끼리 하티, 솔개 칠, 비단구렁이 카 등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모글리는 이들과 어울리고 경쟁하고 싸우면서정글의 법칙을 배우게 된다. 정글로부터 추방되었던 모글리가 소떼를 몰아서 악독한 수장 시어칸을 죽임으로써 용맹을 떨치는 장면으로 일단락된다. 많은 독자들이 1967년 출시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본 내용은 대개 여기서 그친다. 그러나 키플링의 『정글북』에는 모글리 외에 다른주인공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물론 또 다른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말이다.

애니메이션이 포함하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와 그 주인공들은이러하다. 아기 물개 코틱이 ‘물의 느낌’을 다 배워 무리를 이끌고 사람이 살지 않는, 사냥이 없는, 살육이 없는평화롭고 고요한 섬을 찾아가는 여정의 이야기가 있다. “달려라, 그리고 알아내라”라는 가훈을 가진 몽구스 리키티키가 갈색뱀들을 모두 몰아내는 전투의 전말이 들어 있다. 코끼리들과 정글 신들의 총애를 받는 ‘숲의 사람’ 리틀 투마이도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왕의 명령에 따라 대포를끌거나 보병대의 짐을 나르거나 기병대의 일원으로참전하는 노새, 낙타, 말들의 난동도 책 속에서 작은 이야기를 만든다.

『정글북』이 맹렬한 정신을 예찬하고, 모험의 마음, 신의(信義), 무리를 이끄는 지도력, 수직적 위계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강조한다는 비판이 없지는 않다.책 속에는 정글의 법칙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정글의 법칙은 먼저 공격하고 그다음에 짖는 것,무리의 대장이 사냥감을 놓치면 오래 살아남지 못하며 살아남아도 ‘끝난 늑대’라 불리게 된다는 것, 벌을 받고 나면 모든 게 끝난다는 것 등이다. 『정글북』이 말하고 옹호하는 세계가 포용과 구제와 이해심보다는 경쟁과 악의 세계에 대한 응징, 잘한 것에 상을 주고 잘못한 것에 벌을 주는 준엄한 규율이 작동하는 세계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들이다. 게다가 아기 물개 코틱이 최초의 하얀 물개로 묘사되는 대목에서는 인종차별의 혐의가 있다고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점들은 『정글북』을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집필되었다는 힐난으로까지 몰아가게 한다.

그러나『정글북』이 이와 같은 비판에만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정글의 동물들에게 비친 인간세계를 반성적으로 생각해볼 기회를 얻기도 한다. 모글리를 처음 만난 정글의 동물들은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으면 옴이 오르고 이빨이 다 빠지며, 사람만이 늑대의 발에서 가시를 뽑아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가인 모글리를 보며 이런 대화를나눈다. “정말 작네. 이 맨살 좀 봐. 용감하기도 하고.” “털 하나 없어. 발로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죽겠군. 하지만 저걸 봐.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잖아. 두려움이 없어.” 그리고 그들은 인간에게만 눈물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들어 있다. 늑대 소년 모글리가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처음 배운 것이 옷 입는 법, 돈을 쓰는 법, 쟁기질하는 법 등이었다고 진술할 때에 그러하다. 모글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급 차이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어쨌건 이런 서술들은 정글 동물들의 안목을 통해 인간 세계를 되비춘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정글의 동물들이 원숭이족에 대해 보내는 질시의 근거도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그들은 원숭이족은 법칙이 없고, 자기 언어가 없고,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엿보고 엿들은 말을 훔쳐 사용하고, 지도자가 없고, 허풍을 떨고, 재잘거리다 밤이라도 떨어지면 하던 일을 다 잊어버린다며 원숭이족에게 반목의 눈빛을 보내는데 이것은 원숭이족에게만 단일하게 규정되는 특질이 아닐 것이다.

붉게 뜨겁게 타오르는 ‘불’을 ‘빨간 꽃’이라 부르고 이글거리는 ‘적도’를 ‘끈적한 물’이라 부르는 정글 세계의 특수어도 읽는 재미를 보탤 뿐만 아니라 빼어난 시적 수사임에 틀림이 없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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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자' 로 살아가는 늑대소년  모글리

♣'정글북'줄거리

『정글북』은 역대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러디어드 키플링의 대표작이다. 1894년 출간된 이후 시대와 지역, 성별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사랑을 받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이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더불어 가장 많이 읽히는 아동문학이다. 또한 기존의 우화나 전래동화 등에서 나오던 의인화 기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동물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도 꼽힌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늑대소년 모글리의 이야기를 담은 「모글리의 형제들」, 「카의 사냥」, 「호랑이다! 호랑이야!」는 정글에서도 인간세계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중간자’로 살아야 했던 늑대소년 모글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외에도 해마다 겪는 인간의 잔인한 살육을 피해 온갖 역경을 헤치고 해상낙원을 찾아 나선 용감한 물개(「하얀 물개」), 민첩함과 집요함으로 코브라를 처단하는 용맹한 몽구스(「리키티키타비」), 신비로운 ‘코끼리 무도회’를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된 맑고 순수한 인도 소년 리틀 투마이(「코끼리들의 투마이」) 등 원작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가 이 책에 온전히 담겨 있다.

1907년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키플링에게 상을 수여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키플링은 『정글북』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어른들은 신기한 상상으로 가득 찬 동화의 세계를 꿈꾸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그 기쁨을 공유한다.”

원제: The Jungle Book

저자: Rudyard Kipling(1865~1936)

발표: 1894년

분야: 영국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정글북

옮긴이: 손향숙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46(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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