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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7월 16일)-(여름특별토비새-II)
제목: "꽤 괜찮은 해피엔딩"
말씀: 이사야 61:3
찬양인도: 쉐키나, 오준석 전도사님
대표기도: 김도훈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이지선 교수님(한동대)-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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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1:3,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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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한 교회에 불러주셔서 이 새벽에 여러분들과 은혜 나누게 해 주심에 감사하다. 이 새벽에 저를 깨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렇게 안전하게 여러분을 만나러 올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교통사고를 만나게 되었고, 그 이전에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자매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좀 거리가 있어서 종종 오빠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가곤 했었다. 그날도 늘 다니던 길로 다니던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뒤에서 음주 운전하신 분이 저희가 신호대기 중 정차하고 있던 중에 이미 작은 사고를 내고 도망을 가다가 아주 빠른 속력으로 달린 차가 저희 차의 뒤를 들이박게 되면서 그 충격으로 저희 차가 일곱 대의 차와 부딪히게 되었다. 여기 저기 튕겨지다가 차에서 불이 난 모양이고 오빠가 먼저 정신을 차려서 저를 꺼냈을 때는 이미 제 상반신에 불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피부가 워낙 연소되기 좋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오빠가 저를 꺼내려고 안았을 때에 오빠 팔에도 불이 옮겨 붙어서 저의 오빠가 티셔츠를 벗어서 불을 꺼주었다고 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예고 없이 순식간에 그렇게 일어났다. 저는 그렇게 사고를 만나고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오빠에게 지금 동생이 화상 입은 제가 아니라 맥박도 잡히지 않으니 곧 갈 것 같다고 빨리 작별인사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저의 오빠가 저에게 “잘 가라, 좋은 동생이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인사를 다 했는데 아직까지 안 가고 이렇게 잘 살아있다. 살아남는 과정은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 중환자실에 들어가서는 의식도 없었고, 또 산소 호흡기도 끼워져 있었고, 폐에 찬 유독가스를 빼내는 튜브도 꽂아져 있었다고 한다. 생사를 오고가던 그 시간에, 제가 기도할 수 없었던 그 시간에 저희 교회에서 ‘청년 하나를 살려달라고’ 얼굴도 제대로 모르시는 권사님들, 집사님들께서 중보 기도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셨다. 제가 혼자 숨을 쉴 수 있을 만큼 폐가 회복이 되기 시작했고, 의식이 돌아왔다. 산소 호흡기를 떼게 되었고 몇 시간 뒤에 간호사님이 오랫동안 호흡기를 끼고 있었으니까 물이 잘 넘어가는지 물에 빨대를 넣어주시면서 조심스럽게 한 번 넘겨보라고 했다. 제가 너무 많이 부어있을 때라서 눈도 안 떠질 때였는데 캄캄한 중에 물을 빨아들이니까 입안으로 물이 들어오는 것인 게 그 와중에 그 물이 너무 시원하고 맛있는 것이다. 꿀꺽 꿀꺽 넘기고 싶은 만큼 너무 시원하고 맛있었다. 살면서 물이 맛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사실은 제가 그 물을 마실 때만도 상상할 수 없는 시간에 그 뒤에 지나가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들이 있었다. 그런데 진짜 많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정말 사는 게 죽는 거보다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마셨던 그 물의 한 모금을 기억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너무 사소한 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어마어마한 기쁨이 있는 이 살아있음에 대해서 내가 살아서 누릴 수 있는 작지만 아주 큰 기쁨의 대해서 그 시간들을 지나오게 되었다.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이야기를 할까 한다.
 
병원에 있을 대에 제 모습이고, 저는 55%면적의 3도 화상을 입었다. 제 몸의 전체 면적 중에 만 이상이 화상으로 인해서 없어진 상태가 된 것이고 또 3도 화상이라는 말은 화상의 깊이를 진단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피부가 재생되지 않을 만큼 깊이 상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식 수술을 해야 했다. 아주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얼굴에까지 이식수술을 마쳤을 때, 제 모습이다. 사실 저 때만 하더라도 수술을 받았기에 만져도 아프지 않는 피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냥 고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곧 학교도 돌아가게 될 것이고 성가대도 다시 서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번 불이 지나간 자리는 자꾸 줄어들고 당겨지는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위에 얇게 표피만 이식을 해놓으니까 같이 쪼그라드는데, 그 힘이 얼마나 센지, 목 피부가 쪼그라들기 시작하니까 턱을 당겨 내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입을 다물 수 없게 되고 침을 흘리게 되었다. 진짜 침만큼은 흘리고 싶지 않은데 입이 안 다물어지니까 침을 흘렸다. 흘리게 되니 수건을 물고 있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1차 치료가 끝났다고 한 2-3개월이 지나야 수술을 다시 받을 수 있다고 퇴원을 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집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을 하고 7개월 만에 집에 돌아왔다. 다 그대로인데 저만 변해 있었다. 제가 굳이 거울을 찾아서 들여다볼 용기는 없었는데, 밤이 되니까 유리창에 사람 모습이 반사가 되니, 여기 나밖에 없는데 제가 아니었다. 제 입이 작아져서 어린이용 숟가락을 엄마가 사주셨는데 그게 새것이다 보니 밥 먹을 때, 자꾸 숟가락에 얼굴이 비치는 것이다. 너무 빨갛고 눈썹도 없고, 외계인 같았다. 이게 나 아니라고, 나 이렇게 안 생겼다고, 제가 본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썼던 그런 시간도 있었다. 아무리 제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제 진짜 없어지는 얼굴이 아니지 않는가? 어느 토요일 오후에 TV를 보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는 예능 오락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저는 하나도 재미가 없는 것이다. 사고 전에 그냥 그때, 마음을 가지고 똑 같이 살아가기에는 제 삶이 너무 너무 많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젠 아무리 아픈 것을 참고 수술 수백 번 더 받아도 이제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현실을 보고 나니까 마음에 절망이 왔다. 절망을 가득히 채우고 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딱 두 가지 남았다.
 
하나는 아파트 옥상을 찾아 올라가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찾는 일이었다. 몇 시간 고민을 하다가 엄마에게 교회를 가자고 했다. 좀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살려달라고는 했는데 사실 이 모습으로 살게 하실 줄은 몰랐었다. 그래서 교회 가서 토요일 밤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냥 엎드려서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를 어떡하실 것인지요? 라고,,, 살려 놓았으면 무슨 대책이 있을 것이 아니냐고,,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서요?”라고 그 때는 그 말이 너무 야속했다. “왜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하시냐고, 나는 어떡하실 거냐고?” 그렇게 몇 시간을 따지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으셨다. 그러면 하나님은 약간 그런 스타일 이시잖아요?.... ㅎㅎㅎ~
 
아시듯이 울다가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주일이 되었고 늘 다니던 교회이니까, 예배를 드리러 몸은 나와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정말 바닥에 있었던 것 같다. 제가 함께 했던 성가대가 앞에서 막 찬양을 하는데,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 설 수 없기에 그 밑에서 남들이 볼까봐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 하고 또 흘러내리는 침 때문에 수건을 계속 갈아 끼워가면서 조금만 움직여도 찢어져 버릴 것만 같은 쭈그리고 앉아있는데, ‘여기가 끝이야, 더는 할 수 없어, 이거보다 더 떨어지는 바닥은 없을 것 같애.’ 이게 끝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꽉 채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찬양도 부르고 싶지도 않고, 목사님의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앉아서 ‘하나님이 설마 무슨 계획이 있지 않았겠냐고, 내 인생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하나님이 무슨 계획이 있어서 나를 이렇게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게 하신다면 하나님, 그 계획을 나도 좀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야 좀 나도 살아볼 수 있지 않겠냐고’ 마지막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목사님이 제 옆에 오시는 것이다. 저를 안아주시면서 기도를 하시는데, “사랑하는 딸아,”라고 시작되는 기도를 해주시는 것이다.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저조차도 저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저에게 여전히 저를 “사랑하는 딸아!” 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 목사님 딸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사님이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음성을 통해서 저에게 약속을 주셨다. “너를 세상 가운데 반드시 다시 세우겠다고,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네가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할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이다. 사실은 제가 기도했던 약속은 아니다. 제 기도는 ‘네 기도는 회복 될 거야, 금방 좋아져서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를 제일 기다린 기도였다. 그 말씀은 아니었다. 사실은 다 이해되지도 않았다. 참 이상하게도 제가 기다렸던 이야기도 아니었고, 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 약속이 차라리 끝나버리면 좋겠어, 여기가 끝이야, 더는 없어, 그러고 있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여기가 끝이 아니다. 내가 준비한 해피엔딩이 있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끝내지 말아달라고, 하나님이 저를 향해서 애원하시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일을 이루어 가실지 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어쩌면 성경 속에 살아계셨던 그 하나님이 진짜로 살아계신다면 하나님이라면 하실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해피엔딩, 제 계획과는 좀 다르지만 제 기대와는 좀 다르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해피엔딩을 저도 보기 위해서 그때부터 저는 저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를 마음먹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은 이제 저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주제파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는 제게 주어지는 오늘을 살아오고 있고, 그러면서 집에 돌아가서 저에게 8개월 동안 일어난 저의 삶의 일들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마음에 자그마한 용기가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거울을 보는 것이었다. 처음에 거울 앞에 섰을 때는 너무도 어색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거울 속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처음 만났으니까 인사해야겠다고 “안녕 지선아” 하면서 쓰윽 지나갔다. 또 보면 인사하고, 그런데 자꾸 보니까 이 얼굴이 좀 정이 들어갔다. 저도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 갔다. 아 ‘이렇게 생겼구나, 이게 나구나!’ 제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너무 너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 자신을 그렇게 받아들여가기 시작했다.
 
그 힘이 제 안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저를 향해서 “사랑하는 딸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 가족들이, 교회 식구들이, 저의 친구들이, 제가 모습이 이렇게 많이 달라졌는데, 저를 다른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제가 원래 사랑했던 우리 조카, 우리 자매가 여기 살아있다고 똑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저에게 사랑이구나! 그 사랑의 힘으로 알았고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사랑의 힘으로 제 자신을 안을 수 있게 되었고 다음 사진을 보시면, 저의 가족사진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따뜻한 선물이다. 그간 너무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다 너 때문이야, 이렇게 말하지 않고 네가 못하는 것, 내가 대신 해줄게,” 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준 저의 가족이 있어서 그 때를 감사한 기억으로 떠올리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제가 엄마하고 있었던 이야기 하나를 나누려고 한다. 사고 후에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다. 그때는 살아가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사는 게 그렇게 좋지는 않을 때이다. 눈만 뜨면 아픈 것이다. 사는 게 그렇게 좋지는 않을 때다. 눈만 뜨면 아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저 오래는 안 살면 좋겠다고,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고, 그런 기도를 종종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하나도 안 아프다. 그래서 지금은 대게 오래 살고 싶고 그렇게 되었다. 그때는 그랬다. 인생이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거구나, 그런 생각이 자주 들던 때에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한테 물었다.”엄마 인생이랑, 내 인생이랑, 바꿀 수 있으면 엄마가 좀 바꾸어줄 수 있나요?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저희 엄마가 “엄마가 바꿀 수만 있으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엄마는 바꾸어 주고 싶다.”고 그러시는 것이다. 저의 엄마가 한 번도 제 앞에서 우시는 것을 적을 본 적이 없다. 사실 딸이 이 정도 됐으면 매일 붙잡고 너 어떻게 사느냐고 너 죽고 나죽고 하자. 라고 매일 대성통곡을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때였다. 저의 엄마가 제가 모르게 정말 안 보이는 곳에서 정말 많이 우셨을 것이지만 적어도 제 앞에서는 한 번도 우시지 않았다. 너무너무 씩씩하셨다. 정말 울 수조차 없었던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진심을 꺼내 놓으시는 그날 너무 감사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런 거구나, 자식이 힘들고 아플 때,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냥 내가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 그게 부모님 사랑이구나, 그 사랑이 있어서 내가 그렇게 견딜 수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하나님의 생각이 났다. 하나 밖에 없는 예수님을 이 땅에, 너무너무 아픈 길 가운데, 내려 보내셨다. 십자가에서 몸 안에 있는 피를 다 쏟아야만 하는 길 가운데에 아들을 내어 보내신 아버지가 계신 것이다. 살다보면 내가 너무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래서 더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쩌면 지금 어떤 분은 나는 지금 지선씨처럼 그런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고 그런 마음이 드시는 분도 계실지 모른다. 그런데, 그럴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꺼이 나보다 소중한 자기 아들을 내어보내신 아버지가 있음을 우리는 그 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은 자임을 우리 생명이 그렇게 귀한 것임을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사고 때에 저를 구해준 저의 친 오빠이다. 생명의 은인이고 너무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데 저 살려놓고 마음고생 혼자 다 했다. 괜히 살려서 이렇게 아픈 시간을 보내게 했다고, 안 그래도 되는데 맨날 미안 한다. 제가 다 낳기 전까지는 자신이 결혼을 안 할 거라고 하더니 아이가 셋이다. ㅋㅋㅋ!!~~ 너무 우습다. 하나님께서 오빠의 회복을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저 때만 해도 오빠의 눈에 늘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오빠가 저런 동생을 업고도 참 행복해 하는 미소가 사진에 담겨서 제가 종종 글도 쓰고 사진도 올렸던 제 홈페이지에 저 사진을 올렸다.
 
그랬더니 아래 댓글들 중에 ‘솔직히 지선씨가 무섭고 징그럽다.’라고 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게 사실인가 보다. 나 이렇게 생겼구나!’. 마음이 많이 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하는데 그전까지 몰랐던 선물 하나를 발견했다. 제 눈이 그분들의 눈 같지가 않은 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분들이 저를 보는 눈처럼 제가 거울을 한 번도 그렇게 본 적이 그렇게 본 적이 없다. 보기만 하면 나름 내가 꽤 귀엽게 생겼다고 하면서 그러고 살았다. 하나님께서 이 모습 이대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게 남들처럼 밝지는 않은 눈, 그만큼 솔직하지 않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 날개 아래 지켜졌던 생명이었구나!.이마져도 하나님이 하셨구나!’ 저는 사실 다 보인다. 얼마나 울퉁불퉁 한지, 얼마나 독특한 색깔을 가졌는지, 저는 다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자신을 보는 이 눈을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 저에게는 기적이었던 같다. 글을 썼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선물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사고를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던 이야기들을 좀 하고 싶었다. 그 글들이 책이 되어서 출판이 되고 일본어, 중국어로도 번역이 되면서 이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 제 책을 읽고 보내온 편지들은 인생에 대한 다짐이 들어있다. 내가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지선씨가 붙잡은 삶의 희망을 나도 붙잡고 살아가겠노라고, 나 이번 주에 교회에 가볼 거라고 그런 다짐들을 꾹꾹 눌러서 편지를 보내오신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사실은 제 몸에만 남은 흉터이고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는 대게 불쌍한 여자, 대게 안 된 여자, 그런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제 삶을 저의 흉터마저도 가장 귀한 것, 생명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제 삶을 통해서 배우고 있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을 통해서 많은 힘을 얻었다.
 
제가 넘어져 있을 때, 저를 향해 그 손을 통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제 네가 이렇게 넘어져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손을 내밀어주면 어떻겠니? 내밀어 줄 손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주면 어떻겠니?” 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손 내미는 일을 하고 싶어서 사회복지를 공부를 하게 되었고, 제가 사회복지 공부를 마치고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에서 지금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지 이제 6년째가 되어간다. 교수는 가르치는 일 말고도 연구를 하면서 지낸다. 이렇게 작은 목소리를 가진 우리 사회에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단하지는 않지만 저의 연구를 통해서 담아내고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대신 소리치는 목소리로 살고 있다.
 
제가 했던 연구 중에 하나가 저처럼 화상을 입은 화상환자 경험자들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연구 중에 하나인 제가 ‘외상 후 성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가 여러분들과 나누면서 삶의 선물이었다는 것을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참 많은 선물이 있었다고 이야기 드렸듯이 그런데 저 말고, 저처럼 이름도 알려지고 책도 쓰고 하는 이런 사람 말고, 다른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화상을 입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처럼 똑 같은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남은 시간은 빠르게 ‘외상 후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한다.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트라우마’, 상처를 입은 일을 지나고 나서 우리가 회복 과정 중에 어떤 마음의 크기들이 좀 더 커지기도 하고, 성숙되기도 하고 자라나기도, 하는데 이게 상처를 입기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내 삶이 훨씬 좋아졌다고 행복해졌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바로 ‘외상 후 성장’이라고 말한다. ‘교회 안에서는 고난은 축복이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개념인 것 같다.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76%에 달하는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이 트라우마에 노출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이혼을 경험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기도 한다.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좋은 음식만 먹고 운동만 하면서 살았는데 생각지도 않은 병을 진단 받기도 한다. 저처럼 사고를 만나거나 폭행 사건이나, 자연재해 같은 피해를 입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했고 통제할 수 없어서 막을 수 없어서 일어난 일들이 우리 마음에 보호막을 찢어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일들을 겪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트레스 반응들이 나타난다. 불안해지기도 하고 똑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봐 과민하게 경계하기도 하고 실제 수면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슬퍼하고 애도하고 우울 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일이 몸에 어떤 반응들로 나타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생각보다 오래 이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기억할 것은 이런 반응들은 상처 입은 후에 나타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제가 여러분과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상처가 주는 좋은 것, ‘외상 후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에게서 새롭게 깨닫게 된다. 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새롭게 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삶에 대한 우선순위가 변화하기도 한다.
 
‘은혜’라는 찬양에 세상에 당연한 것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그 고백이 바로 이런 삶에 대한 철학이 바뀌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진실인데, 우리가 외면하고 살았던 그 진실 옆에 모든 것이 선물이었음을 고백하는 삶의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게 되는 것, 공감능력이 향상되기도 한다. 영적으로 성숙하기도 한다. 인생을 살면서 비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맞서서 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비바람이 너무 세서 휘청하고 넘어갔다가 또 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게 하기도 한다. 저처럼 외모가 변하기도 하고, 삶의 어떤 한 부분이 우리 관계가 마음의 모양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게 된다.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런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린 아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삶은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얼마나 작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이 아픈 진실을 깨닫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런 진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꽃병이 깨졌다. 너무너무 소중했던, 어쩌면 내 인생에 전부였던 어떤 것들이 깨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원 상태로는 돌릴 수 없다. 너무너무 가슴 아프다. 도대체 누가 깨뜨렸냐고 본인의 잘잘못을 따지고, 사람들을 비난하다가 결국은 ‘처음부터 꽃병 같은 것은 가지지 말았어야지’, 욥처럼, ‘어머니의 태에서조차 나오지 말았어야지’ 라고 자신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난 앞에서 이러한 상처를 입히는 사건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산산 조각이 난 조각을 두고, 깨어진 꽃병을 두고, 슬퍼하기를 멈추고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깨진 조각들, 우리 인생에 소중한 것이 깨졌지만 이 마음을 돌리기를 우리를 향해서 바라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 안에서 깨진 조각들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우리가 보게 되는데 이 깨진 꽃병으로 나는 이제 무엇을 만들까? 하나님은 무엇을 만들까? 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외상 후 성장’이라고 말한다고 했듯이, 깨진 것으로 새로운 조각으로 만들려면 끊임없이 생각해야 된다고 한다. 나에게 주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끊임 없이 아프지만 마주하고 생각하면서 마음에 어떤 감정들이 일어났는지 열심히 노출해야 된다고 한다. 완전한 관계 안에서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는지, 얼마나 슬펐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마음을 잘 노출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표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이 사회적 지지라고 이야기 한다. 무너진 한 사람을 향해서 “응 안 됐다.”가 아니라 “네가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믿어주는 것, “우리가 너를 사랑하고 관심을 보내주고 있어.”라고 그렇게 보내주는 눈빛과 마음과 토닥임이 결국은 깨어진 모습이지만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마음과 스트레스를 이길 힘들 가져다주기도 한다고 한다. 이 세 가지를 통해서 외상 후 성장으로 갈 수 있다고 하자들은 이야기 하는데,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다시 쓰기’의 방법을 권하고 싶다. 제가 초반에 여러분들과 이야기 하면서 제가 좀 독특한 표현을 썼다. 저는 사고를 만났다고 이야기 한다. 사고를 당했다. 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표현이 맞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가 사고를 당했어요.” 라고 하는 말이 좀 불편해졌다. 사고를 당했다고 말할 때마다 제 자신을 “저는 음주운전의 피해자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았고 또 하나님께서 피해자로 살게 하지 않으셨다. 당한 일에 결과는 피해일 수 있지만 만난 일에 결과는 헤어짐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고를 만났지만 저는 잘 헤어진 사람으로 살고 있다. 우리 인생을 다시 썼으면 좋겠다. 상처 입은 희생자인가? 아니 나는 어려움을 극복해 낸 사람인가? 나는 실패자? 나는 다시 일어서려고 도전하는 사람, 이라고 자기 자신을 정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다시 쓰기를 진짜 잘 하는 분이 저를 사고와 잘 헤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각각의 인생에 바로 다시 쓰기를 하고자 하신다. 우리 함께 읽었듯이 이사야 61장 3절에 보면,
 
*이사야 61:3,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더 크게 써있는 말씀을 먼저 보자. 슬픈 자들을 더 이상 슬퍼하는 자들로 두지 않으신다. 그리고 다시 부르신다. 너는 이제 의의 나무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라고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다시 쓰게 하신다. 상처입고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연약한 자, 슬퍼하는 자,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너는 의의 나무, 이제 나의 영광을 드러낼 자라고 다시 부르신다. 그 은혜로 저 역시 사고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이제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주셨다. 깨어진 그릇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아니, 너는 깨어진 그릇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을 담은 보물그릇이라고 다시 불러주셨다. 세상 사람들은 너는 불행을 만난 화상환자, 너는 이제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저를 내 사랑하는 딸이다.”라고 다시 불러주셨다. 우리 인생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그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하나님은 나를 뭐라고 부르시는지 그 소리를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은혜로 우리가 실패한 자가 아니라, 의의 나무라고 부르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나 자신으로 붙잡고 다시 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잘 아시는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주시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생각이 재앙이 아닌, 평안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통해서 깨어진 일이 발생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과 미래를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기가 막히게 이 말씀이 제 책 제목과 연결이 된다. 나쁜 일이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는 현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바꾸셨다. 제가 기대하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고,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하셨다. 우리 인생을 향해서 미래와 소망을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기대를 안고 제가 이제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들어가기만 하면 깜깜하기만 하는 동굴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더 들어가면 위험해 지는 것 아니야? 출구 같은 것은 없는 것은 아니야?’ 라고 그런 생각이 드는 시간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공동체의 사랑이, 저를 다시 붙잡아 주셔서 그 힘을 일어나서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었음을 꽤 괜찮은 해피엔딩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임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여긴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각자에게 계셨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선한 일들이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성장케 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귀 기울여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피곤치 않게 잘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고맙다.
 
▷사고를 만났다.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사고와 헤어지게 하는 것이다. ​깨어진 그릇이 아니라, 다른 작품으로 빚기 위함을 만들어 주시고 다시 쓰게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뭐라고 하시는지 귀 기울이자. --‘꽤 괜찮은 해피엔딩’-- 저자 이지선-
 
 
요약
우리 영 가족이 외상 후 성장하는 자 되어서 하나님이 심으신 의의 나무로 세워지며 세상의 핍박과 공격에도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의 제자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믿음의 4대가 한 마음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잔치를 누리는 예배가 되어 매일의 일상이 회복되고 더 복되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9.26일에 초대되는 한국의 교회 목사님들을 섬기는 데에 헌신하는 가정이 되어서 주님의 깊은 뜻을 올려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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