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하지 못할 퍼즐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그래,난 공부 못한다.
여집합,교집합,공집합.아름다운 미인들을 집합으로 표시하세요.
아름다운 미인의 집합이라.집합으로 묶을 기준을 찾을 수가 없어요.
제 눈에는 모두 아름다워 보이는데요.
그래? 그렇다면 얘야,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저는 미대에 가고 싶어요.
친구 세정인 소방관이 되고 싶어 하고요.
얘야,미대에 가려고 해도 수학은 해야 한단다.
소방공무원이 되려고 해도 영어,한국사,국어 하다못해 물리학개론 · 화학개론,건축학이나 형사소송법 중 두 과목 이상은 시험을 쳐야 한단다.
에이,설마요. 불 끄고 사람 구하는데,그런 게 왜 필요해요?
얘야,미대는 왜 가려고 하니?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고전주의,낭만주의,초현실주의를 뛰어넘는 화법을 찾고 싶어요.
후후,얘야,아니란다. 미대에 가려면 너는 두 가지 중 하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단다.
사람들에게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는 디자인을 공부하든,아니면 소더비 경매에 나갈 만큼 값이 뛰어난 그림을 그리든.
고흐나 고갱도 수학을 잘했나요?
글쎄.사람들에게 왜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하죠?
얘야,그렇게 해야만 너도 네 자식을 과외시킬 수 있지 않겠니?
사춘기 시절,세상은 무거웠고 고민은 많았다. 그 무렵 나를 구원해준 책 중 하나가 바로 「이인」이었다.
살인을 왜 저질렀느냐는 물음에 "태양 때문"이라는 유명한 대답을 한 이인(異人)이자 이방인인 뫼르소.
내가 이 작품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해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겪었을 테지만 학창시절의 대부분은 정답 찾기로 보낸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님의 침묵]에서 '님'이 의미하는 것은?
삼각형 내각의 합은?
그러나 「이인」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음으로 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며칠간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떠나질 않았다.
누구의 말이 정답인가?
뫼르소를 취조하던 검사의 말이 정답인가,신부의 말이 정답인가,그것도 아니면 뫼르소의 생각이 정답인가.
뿐만 아니었다.
뫼르소의 살인 동기인 '태양'은 무얼 의미하는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뫼르소의 행동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좋은 교육은 정답 찾기가 아니라 생각해서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로댕의 유명한 조각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 조각을 보면서 처음엔 섬세하게 조각된 외양에 놀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생각하는 사람>은 턱을 괴고 앉아 무엇을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조각이 우리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직 관찰력과 상상력으로 스스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예술이 필요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해 해석을 찾아내기.
예술이 아닌 대부분의 것들은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롤플레잉게임을 하여 경험치를 쌓고 높은 단계의 괴수를 무찔렀다고 하자.
무엇을 해석할 것인가?
설령 해석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 수준은 운전면허 필기시험의 상식 수준인 것이다.
「이인」을 번역한 이기언 교수는 작품해설에서 이를 훌륭하게 말하고 있다.
"「이인」은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고난도의 퍼즐과도 같다. …독자들도 퍼즐 맞추기에 도전해보기를.
물론 절대로 완성될 수 없는 퍼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
현대사회에서 노예는 노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마냥 따라갈 때 노예는 탄생한다.
그러나 「이인」은 빼어난 예술작품이 그러하듯이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발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이인」이 고전으로 남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내가 두 번째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뫼르소라는 인물 때문이다.
그의 낯선 세계관 때문이다.
전통적인 기독교 사회에 살면서 그는 기독교를 부정한다.
상식을 오히려 이해하지 않는다.
상식은 절대 진리인가? 천동설은 한때 상식이었다.
인도에선 소를 숭배한다.
일본에선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한다. 상식,체제,시스템,사회는 시대와 공간에 따라 늘 변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상식은 어떠한가.
시간을 아끼고 돈을 모으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마치 진리처럼 군림한다.
우리가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팽창과 기술혁신을 끝없이 욕망하는 체제의 욕망이다.
우리의 자발적인 욕망이 아니다. 생산을 위한 효율성은 체제를 위한 것이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신기술은 끊임없이 체제의 욕망을 욕망하게끔 만든다. 지금 당장 인터넷과 휴대폰을 던져보라.
무엇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가.
뫼르소의 기이한 행동과 생각들은 윤리와 도덕을 떠나서 세상을 주의깊게 관찰하게 만든다.
뫼르소의 행동은 엄청난 용기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이슬람을 거부한다는 것,파시즘 사회에서 파시즘을 거부한다는 것,모두 하나가 되어 한 가지만을 가리킬 때 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이다.
우리 모두 그와 같은 용기를 지닐 순 없겠지만 적어도 동전에 뒷면이 있다는 사실만은 생각하게끔 만든다.
다시 말해 뫼르소의 기이한 생각을 통해 우리들은 북극이 있다면 열대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말한다.
그래,난 공부를 못했어.
하지만 「이인」을 읽고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지,라고.문제 풀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를 생각하는 것이다.
박성원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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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로 사형을 언도받은 '뫼르소'
▶ '異人' 줄거리
알베르 카뮈는 1913년 11월7일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포도주 제조공인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이듬해 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했고,문맹에 귀머거리였던 어머니가 날품팔이를 하며 남은 가족들을 부양했다.
궁핍한 환경에서 자라난 카뮈는 그의 재능을 알아봐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이후 언론사에서 일하며 많은 저서와 사설을 통해 당대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57년에는 43세라는 젊은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이때의 수상연설문을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이끌어준 선생님에게 바쳤다.
「이인」은 카뮈가 1942년 발표한 소설로,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만 매년 약 20만명의 새로운 독자를 만들어내며 전 세계 101개 언어로 번역된 프랑스 현대문학의 신화적인 작품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양로원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는 담담해 보이는 모습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 날 여자친구를 만나 희극영화를 보고 이웃에 사는 건달 레이몽과 친구가 된다.
며칠 후 뫼르소는 그들과 함께 해변으로 해수욕을 가고,그곳에서 레이몽의 주위를 맴돌던 한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재판에 회부된 뫼르소에게 검사는 왜 총을 쏘았느냐고 질문하지만,그는 "태양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검사는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는다며 그를 사회에서 추방시켜야 할 존재라고 몰아세운다.
결국 사형을 언도받은 뫼르소는 회개하라는 신부 앞에서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혼자가 된 감방에서 드디어 뫼르소는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행복을 느끼며 처형의 날 증오의 함성으로 자신을 맞아줄 구경꾼들을 떠올린다.
원제; L'Etranger
저자; Albert Camus(1913~1960)
발표; 1942년
분야; 프랑스 문학
한글 번역본
제목; 이인
옮긴이; 이기언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76(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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